너무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 한 일이다. 나는 그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고 지금처럼 글쟁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서울의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때처럼 열정적으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때는 젊기도 했거니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이 있었다. 시민단체는 시민의 자발적인 후원에 의해 운영된다. 그러다보니 낮은 임금과 처우는 당연한 노동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클라이언트의 민원은 천천히 지쳐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활동 목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합리한 현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점일 것이다. 나 역시 이를 충분 이해하고 있었기에 제도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못 다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선술했듯이,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재정 또한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나 역시 모아둔 돈이 없었다. 그렇다! 난 등록금이 없었다. 공부는 하고 싶지만 등록금이 없는 현실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고 방 안에 들어 앉아 고민만 깊어가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가고 싶은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제출했고 운이 좋았는지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등록 마감일은 하루 이틀씩 다가오는데 여전히 돈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역시 가난한 사람이었기에 돈을 빌리려 하기보다는 소주라도 한 잔 마시면서 푸념이라고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주도 없는 깡소주를 먹던 술자리 말미에 그가 내게 말했다. “딱! 생각나는 사람 5명에게만 연락해서 부탁해 보면 어떨까?” 동굴 같았던 내 방으로 돌아와서는 머리에 떠오르는 다섯 명의 이름을 적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전화를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등록 마감일은 당장 내일이었다. 첫 번째 지인, 본인도 어려움, 두 번째 지인, 역시 어려움, 세 번째 지인, 본인도 돈이 필요함. 내 심정은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게 가난한 사람만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의 전화를 포기하려다가 전화를 했던 네 번째 그 사람은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다. 사진을 전공하고 있던 그 사람은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었었다. 참담하고 미안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 사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돈은 갚았지만 지나간 오랜 시간과 내 무심함이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창신동 언덕의 시민단체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고맙고 또 고마웠던 분, ‘나도 나누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예상됐던 일이다.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수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할 것이라고. 그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이 구속되면서 예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40년 가까이 뉴스 읽고 보는 일을 업으로 살아왔음에도 대장동 의혹은 진실을 가늠하기 어렵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해 8월 31일, 경기경제신문이 보도한 이후 15개월이 흘렀다. 성남시장 재직때 이재명 후보의 연관성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고, 윤 대통령 부친 연희동 단독주택을 대장동 드라마의 감독격인 김만배의 누나가 매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여기에 곽상도·박영수·권순일·김수남·최재경 등 ‘50억 클럽’의 명단이 폭로 되어 사건은 더 혼란에 휩싸였다. 이 사건을 수사한지 1년이 넘었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정리된 것이 없다. 성역 없는 검찰과 책임 있는 언론이 있었다면 이럴까 반문해본다. 검찰은 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꿰맞추는 모양새다. 그래서 없는 것을 짜내고, 있는 것도 덮어둔다는 비판을 받는다. 탐사보도가 거의 불가능한 언론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팩트 조각들을 닭에게 모이 주듯 적절하게 활용한다. 오죽하면 경향신문 사회부장은 칼럼에서 ‘수사는 언론과 함께 가야한다는 게 검사들의 관용구’라고 토로한다. 언론은 재판에서 이해관계가 상반된 한 쪽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한다. 검증 시간이 부족하면, 최소한 이해관계자의 발언을 균형있게 보도해야 한다. 그것 조차 없다. 사실확인이 안 된 범죄자의 발언이 언론사의 필요에 따라 기사 제목으로 둔갑한다. 지난 11월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재판을 전하는 언론보도가 그렇다. 대장동 일당인 남욱은 증인으로 출석해, “천화동인 1호 지분 절반이 이재명 당시 시장측 지분이라는 걸 김만배씨로부터 들었다”며 “당시 개발 사업의 책임자인 이 시장의 의사에 따라 대장동 사업의 지분이 결정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들었다’ ‘생각했다’ 같은 범죄자의 추측성 표현들이었다. 한국일보는 26일자에 《남욱, “대장동 이재명 몫 선거·노후자금이라 들었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李시장 측 지분은 이재명 포함한 것”》라며 단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는 《남욱 “李측 몫에 선거-노후자금 포함된 걸로 이해”···김만배는 침묵》이라며 균형감을 유지하려 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각각 《남욱 “이재명 설득하려고 김만배 대장동 사업에 영입했다”》, 《“이재명 설득하려 김만배 대장동 사업 참여”, 남욱·유동규와 입맞춘 듯 이재명 조준》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해, 이재명 당시 시장을 접근하기 어려웠던 인물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1년 이상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뉴스 제목이 온통 따옴표다. 고품격 저널리즘을 가리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제목에 사용되는 따옴표 비율이다. 뉴욕타임스는 편집지침에 제목에 따옴표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며칠 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다세대주택에서 생활고에 찌든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입증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에 이어 ‘수원 세 모녀 사망’으로 온 국민이 애통해한 기억이 뚜렷하다. 정치권이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구축해 비극 재발을 막겠다고 약속했음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스템 구축에 정성을 다하기는커녕 잠시 성난 민심 달래기에만 급급하는 지도자들의 얄팍한 대응에 여론이 곱지 않다.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지난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패턴이다. 집 앞에는 5개월 밀린 전기요금 등 공과금 미납 고지서가 쌓여 있었다. 보..
벨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대’라는 프랑스 말이다. 문학, 음악, 미술 등이 활짝 핀 19세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문화융성기를 주도한 건 단연 문학이었다. 쥘 베른,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보들레르, 모파쌍, 조르주 상드, 발자크, 플로베르, 스탕달. 이 뛰어난 작가들은 화가들, 작곡가들과 함께 모든 예술을 인류사상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 중 스탕달(Stendhal)은 프랑스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쓴 ‘적과 흑’은 바깔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에 자주 등장한다. 이 소설은 사회의 모든 계층을 넘나드는 활기찬 개인주의자 줄리앙 쏘렐(Julien Sorel)을 통해 역사적 과도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이전의 스탕달은 무명에 본명은 앙리 베일(Henri Beyle)이었다. 그렇담 스탕달이란 이름은 어디서 연유한 걸까. 스탕달은 베일로 살던 1807년과 1808년 프랑스 동부 라인강 하구의 빌헬민 그리에쉐임에 살았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독일의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예술비평가인 요한 요아힘 빙켈만의 고향인 삭사날(Saxe-Anhalt: 독일어 발음은 작센 안할트)이 있었다. 빙켈만을 존경했던 베일은 이 마을의 이름을 본떠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지었다. 사랑을 받는 스탕달이지만 어린 시절은 가여웠다. 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Grenoble)의 고등법원 판사 아들로 태어난 그. 일곱 살 때 가장 사랑한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는 위선적이고 포악하고 돈만 챙기는 부르주아였다. 이런 그를 다독이고 애정으로 보살펴 준 건 외할아버지 앙리 가농(Henri Gagnon). 명망 있는 의사였던 그는 계몽주의자로 친절하고 유쾌한 인물이었다. 몰리에르, 페넬롱, 호라스, 오비드, 단테, 세르반테스, 생-시몽 등을 외손자에게 소개해 준 건 바로 그였다. 유년의 추억은 스탕달에게 고향을 애증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서전 ‘앙리 브뤼라르의 삶(Vie de Henry Brulard’에서 그르노블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르노블의 부르주아들은 저질이고 싱겁다. 그르노블에 대한 모든 추억은 나를 공포스럽게 한다. 공포스럽다는 것은 너무나 고상한 표현이다. 맘이 아프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에게 그르노블은 고약한 소화불량에 대한 추억이다.” 이는 그르노블 부르주아지의 심기를 건드렸고 화해할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했다. 한편 스탕달은 알프스산과 드락, 그리고 이제르 강들이 흐르는 그로노블을 소설에 자주 등장시켰다. 정신과 맘을 일깨워준 진정한 홈은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장소이자 눈이 시리도록 수려한 그르노블이었다. 스탕달과 그르노블의 애증관계는 2세기 간 지속됐다. 그러나 스탕달 탄생 200년 만인 지난 2005년 둘은 극적으로 화해했다. 그르노블은 닥터 가농의 집을 개조해 이 고장의 인물인 스탕달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은 그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추억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밖에 대학 이름과 거리 이름 등에 스탕달을 붙여 그르노블하면 스탕달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사랑의 관계가 됐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으로 한계를 드러내었던 아세안이 최근 아세안 플러스 3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캄보디아 프놈펜), G20(인도네시아 발리), APEC(태국 방콕) 등 열흘 동안에 걸친 연속 국제회의의 개최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본 회의보다는 그 전후에 벌어지는 각국 정상들의 개별 회담에 시선이 더 집중되었고, 미중 정상회담은 그 중 백미를 장식하였다. 미중 양국은 그간의 팽팽하였던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고 경쟁(또는 협력) 관계로 나아갈 것임을 표명하였다. 또 3년 만에 한중 정상회담도 개최되었다. 미중 양국 사이에서 외교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우리에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후 "중국과의 신냉전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확언함으로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 짙어지던 신냉전에 대한 우려..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후 1년 반 가량이 지났다. 3차백신접종 그리고 오미크론 대유행 후부터 지금까지 한의원에서 만나는 분들의 패턴이 흥미롭다. 대부분 “백신 다 맞았는데 코로나 19도 걸려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나의 대답이 이어진다. “감염되지요. 코로나 19는 RNA바이러스죠. 특징이 변이가 계속 일어나요. 변한다는 겁니다. 백신은 변이 된 후에 만드니 백신을 만드는 속도는 바이러스가 변이 하는 걸 뒤따라 갈 수밖에요. 그래서 백신접종이 감염을 예방할 수 없지요. 그러면 ”저는 모르죠. 전문가가 아니니 어찌 알겠습니까.”라는 대답부터 “어떡해요. 직장에서 안 맞으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라는 체념조나 혹은 “국가의 감염병에 대한 관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등 다양한 대답이 따라온다. 신기한 게 그다음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도 안 맞았으면 더 심하게 앓았을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안 맞으려고요.” 이런 풍경 속 최근에 어찌어찌 소개로 한약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내원한 한 86세 할머님은 작년 2차백신 접종 후부터 크게 앓고는 입맛을 잃고 전신이 저리고 안 아픈 데가 없다는 표현이다. “앓기 전에는 정말 스무 살은 젊어 보인다고 했는데 완전 폭삭 삭아 버렸어요. 자식들이 내가 잘못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하신다. 할머님에게 “백신은 보약이 아니에요. 쉽게 말하자면 약하게 코로나19에 걸리게 하는 거예요. 부작용도 있고요. ” 하니 “몰랐지요. 나 코로나도 걸렸잖아요. 이렇게 앓을 줄 알았으면 안 맞았지요. 그래도 죽은 사람도 있는데 다행인 건지” 백신은 보약이 아니라는 말은 그것이 맞은 사람의 활력을 더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비유적으로 보약이라고 할 때는 에너지를 더해줘서 우리 몸에 원래 있는 면역을 포함한 몸이 전체적으로 잘 기능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백신은 그렇지 않다. 다만 특정 병원체의 항체 생성을 돕는다. 오히려 중증을 예방하고자 맞은 백신에 해당하는 바이러스가 변이 되면 인체는 그것에 감염될 때 면역의 방어기전이 더 취약해질 수 있는 최초항원원죄(original antigenic sin) 개념이 있다. 책 『호메시스』에서 저자인 이덕희 교수는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llutants;POPs) 이 혈중 GGT를 증가시켜 당뇨병이나 각종 만성질환의 시초가 된다는 대규모 연구결과를 말한다. POPs는 적은 농도에서도 인체의 에너지 생성 공장인 미토콘드리아에 독성을 나타내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장기간 마스크 착용도 POPs로 작용할 수 있다. 유래 없이 인류에게 접종된 mRNA백신은 어떨까? 장기간, 또, 반복되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질병청의 통계는 코로나 19 백신으로 인한 중대한 이상 사례는 19319 건, 그중 사망자는 1903명이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본보 25일자(1면, 7면)에는 악질적인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와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관련 기사가 실렸다. 화성시가 최근 봉담 원룸에 입주한 박병화가 신청한 생계지원을 유보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조두순이 안산 와동의 집에서 선부동으로 이사할 계획을 철회했다는 내용이다. 박병화는 여성 10명을 연쇄 성폭행, 15년 옥살이를 마치고 지난달 31일 만기 출소해 화성시 봉담읍의 한 원룸에 입주했다. 이에 화성시와 주민들의 거센 퇴거요구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화성시는 즉각 “박병화 가족이 임대차 계약 과정에 위임장을 제출하지 않는 등 절차상 하자가 발견됐다”면서 계약을 무효로 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며 건물주도 당사자에게 퇴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출소 직후 봉담읍 초등학생 학부모 50여 명과 정명근 화성시장은 박병화가 입주한 원룸 앞에서 기..
안 그런 것 같지만 축구 영화는 사실, 그리 많지가 않다. 야구나 풋볼, 특히 복싱을 다룬 영화들은 많아도 축구는 그렇지가 않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고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예컨대 야구 같은 경우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았던 1984년 영화 ‘내추럴’ 같은 것이 있고 케빈 코스트너의 1999년 영화 ‘사랑을 위하여’ 같은 작품은 잊을 수 없는 야구영화…라기보다는 러브 스토리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배리 래빈슨이나 샘 레이미 등등 명장 감독들이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을 위하여’ 같은 경우도 케빈 코스트너의 앞 머리가 아직 남아 있을 때이고(웃자고 하는 소리이며 대머리 남성 분들 기죽지 마시라. 끝까지 사랑하고 연애하며 사실 수 있다.) 켈리 프레스턴이 유방암으로 죽기 훨씬 전의 일이다. 스포츠 영화는 스포츠가 앞으로 너무 나오면 안된다. 그러려면 그냥 TV 중계가 낫다. ‘내추럴’이든 ‘사랑을 위하여’ 든 영화 속에 음모와 범죄가 나오기도 하고 팜므파탈(요부)이 등장하기도 한다. 풋볼 영화인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애니 기븐 선데이’ 같은 풋볼 영화는 광활한 경기장을 하나의 국가 영토처럼 놓고 점령을 위해 일보 전진 이보 후퇴를 거듭하는, 정치 드라마이자 인생 드라마로 엮어 낸 역작이었다. 이에 비해 정통 유럽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는 비교적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할리우드의 거장 감독인 존 휴스톤이 1982년에 만들었던 ‘승리의 탈출’이 기억나는 정도이다. 연합군 포로들이 수용소의 독일군과 축구 시합을 벌이는 이야기이고 양 팀 선수가, 양측 군인이 두 나라 간에 전쟁을 벌이 듯 목숨을 걸고 경기를 펼치게 된다는 내용인 바, 연합군 포로들은 이 과정에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는 전쟁 드라마이다. 제목이 왜 승리의 탈출인 지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축구가 영화로 잘 안만들어지는 이유는 과정이 비교적 우직하고 정직하며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싸우는 선수들, 정직하게 훈련했던 사람들, 남의 뒷 머리를 치는 지략보다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그 ‘육질의 정확도’가 승부를 가로지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별로 음모나 뒷거래가 없다. 한마디로 영화가 가져다 쓸 드라마적 요소가 야구나 풋볼에 비해 그리 많지 않거나 축구 경기의 흥분감만큼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 수 있는 축구 영화를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세상이 온통 축구 얘기, 월드컵 얘기다. 요즘 축구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많은데 확실히 한국 팀이 매우 잘한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관심이 비단 한국 팀의 우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시합에서 만끽할 수 있는 화끈한 재미, 그럼으로써 일상의 지루함과 비루함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 팀의 기량이 높아진 것은 다른 모든 이유에 앞서서 선수들 개개인의 체력이 매우 높아진 것 때문일 것이다. 전후반 90분 동안 선수들은 지치지 않고 구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뛰어다닌다. 전반에 반짝했다가 후반이면 공격과, 특히 수비에서 현격하게 밀리는 상황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선수들 모두 잘 먹고 잘 크고 잘 단련된 덕이다. 개인과 국가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기량과 국력, 국격이 동시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축구 팬들은 비록 한국이 16강에서 떨어진다 해도 중계 시청을 중단하지 않는다. 누가 이겨도 또 누가 져도 축구는 축구이고 그 열렬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국 팀이 탈락하면 중계방송조차 중도에 중단될 만큼 한국 우선의 경기가 아니라는 것이고, 바로 그게 월드컵 정신이며, 팬들의 태도가 이제 경기는 경기 자체로 즐기겠다는 것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글로벌 화 됐다는 얘기이다. 축구가 국수주의나 지나친 민족주의 감정에 휩싸이거나 그렇게 이용되던 시대는 지나도 한참을 지난 것이다. 우리도 과거엔 그럴 때가 있었다. 전두환 시대 때가 그랬다. 선수와 축구 팬들은 이제 선진화될 만큼 선진화돼있는 상황이다. 감독이나 축구 운영위원회가 이상한 짓, 못된 짓을 하면 당장 쫓겨나거나 해체될 것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선수를 기량과 상관없이 주요 포지션에 배치하거나 이유 없이 특정 선수를 내치거나 하면 안 될 것이다. 축구 역시 승리를 향해 가는 여러 매뉴얼이 있을 것인 바, 사리에 어긋나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훈련방식으로 선수들을 압박하고, 그런 것 등등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축구위원회나 팬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독선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감독이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축구에서 바라는 것은 정직하게 노력하는 경기이며 그래서 얻게 되는 그 대가이다. 그건 승리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쩌면 곧 축구 영화가 한편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의 정치 상황과 연계해서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얘기로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주성치 주연의 ‘소림축구’에서 웃음과 코미디를 싹 걷어 낸 분위기 같은 것. 약한 자들, 선한 자들이 승리하는 이야기 같은 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라가 축구보다 못한 세상이 됐다. 사람들이 축구를 보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찝찝한 것은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여론조사업체 모닝 컨설트의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세계 지도자 22명 가운데 꼴찌인 22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축구는 좀 지더라도 재미와 감동을 주면 된다. 지도자의 국격과 품격은 그럴 수가 없다. 되돌리기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럴진대, 실로 닥치고 축구나 볼 일이다. 근데 과연 그럴 일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칸초네 3곡을 꼽으라면 산타 루치아,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가 아닐까 싶다. 가사를 몰라도 격정과 애수 가득한 멜로디가 심장으로 직진한다. '노래'라는 뜻의 칸초네는 이탈리아의 민요, 대중가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세상의 모든 가요가 그렇듯이 사랑과 이별, 우정,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소재로 하고 있어 가사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번역해 가사를 들려주면 멜로디처럼 이국적이고 시적인 노랫말을 기대했던 이들은 살짝 실망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 노래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타 루치아의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처럼 흥미진진하다. 4세기 초, 로마제국 시절, 시칠리아에 살던 처녀 루치아는 출혈이 멈추지 않아 죽어가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성녀 아가다의 무덤을 찾아가 눈물로 기도한다. 기적적으로 어머니가 살아나자 루치아는 남은 삶을 예수님께 바치기로 하고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다. 문제는 루치아에게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다는 것. 약혼자는 파혼보다 곧 제 손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한 루치아의 재산이 날아가는 것에 분개한다. 그래서 집정관에게 그녀가 기독교도(당시 불법이었던)라는 것을 고발한다. 로마 법정은 루치아의 눈을 뽑고 매음굴로 보내라 명한다. 그런데 기이하게 루치아의 몸은 여러 장정들이 달려들어도 꿈쩍 하지 않았고 화형을 시키려 해도 불붙지 않아 결국 칼로 최후를 맞는다. 그 후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한 뒤, 루치아는 성녀로 지정된다. 루치아의 시신을 거둔 곳은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성당과 역의 유래다. 루치아가 당한, 눈 뽑힌 고문에서 기인했는지, 빛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루체( Luce)와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성녀 루치아는 이탈리아에서 시력 보호의 성인으로 숭앙받아왔다. 12월 13일이 루치아 성녀의 축일인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날, 눈알 모양의 빵을 먹으며 눈병 없기를 기원한다나. 루치아 수녀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여러 화가들의 그림 중, 스페인 화가 주르비란의 그림을 보라. 붉은 조끼를 입은 루치아가 오른쪽 손에 접시를 들고 있다. 그런데 접시 속에 담긴 것은 놀랍게도 눈알 두 개다. 섬뜩하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이야기도 재미있다. 1902년, 호텔 경영자이기도 한 소렌토 시장 트라몬타노는 마을 주민들의 꿈인 '우체국 건립'에 고심하고 있었다. 그즈음, 수상이 재해 현장 방문을 위해 소렌토를 찾았다가 트라몬타노의 호텔에 묵게 된다. 트라몬타노는 기회를 놓칠세라 수상에게 우체국 건립을 부탁한다. 수상은 긍정적인 답변을 준다. 수상의 마음이 변하거나 잊어버릴까 전정긍긍한 트라몬타노는 급히 작사, 작곡자를 섭외해 노래 한 곡을 만들게 한다. 그리고 수상이 호텔을 떠나는 날, 미리 불러온 가수에게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 노래가 바로 '돌아오라 소렌토로'다. 번안 가사로 귀에 익은 산타 루치아는 인생 찬가인데 알고 보니 종교 박해로 비참하게 죽은 처녀 루치아의 비극적인 삶을 품은 노래라는 것, 그리고 제목과 분위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 혹은 이별 노래로 알았던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우체국 청원가였다는 것, 이 사실을 알고 노래를 듣게 되면 명곡의 환상이 깨지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이 되는 사람을 노인이라 한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노인은 노인성 질병, 고령 등의 사유로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며,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사람으로서 뇌질환·치매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온 분들로서 존경과 더불어 생활의 안정과 그분들의 능력에 맞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받고 원하는 만큼 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해 주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자치단체장들은 노인복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상담·지도, 노인(의료)복지시설 입소 위탁 등의 조치를 해야 하며,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은 매월 일정액의 연금이나 장기요양급여 등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