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작자(作者) 조선 문신 남구만(1629~1711)이 관련된 이야기다. 문장과 경사(經史·경서와 사기)에 밝았고 영의정까지 지낸 당시의 ‘셀럽’이다.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간단한 줄거리와 그것의 취지(趣旨)다. 하루는 낚시를 하는데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조과(釣果)가 화끈한 곁의 한 낚시꾼에게 남구만이 물었다. 그 문답(問答)의 기록이 남았다. “똑같이 낚싯대를 던지는데 물고기가 그대의 미끼만 잇따라 무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법을 가르쳐주게나.”(남구만) “법(法)을 일러드리기는 어렵지 않으나, 묘(妙)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소이다.”(낚시꾼) 남구만이 그 대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겠다. 요즘 말로 ‘의미부여’다. 그가 어떤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비유(比喩)의 방법으로 글을 지어냈을 개연성(蓋然性)도 있다. 세상 이치이기도 하리라. 낚시의 방법은 같아도 경험이 주는 절묘한 경지가 어찌 같을까? ‘법과 원칙’을 늘 내세우는 대통령과 ‘완장질’로 헛발질 연발하며 급전직하 지지율에 당황하는 여당의 대표 직무대행(당시)을 생각한다. 낚시의 ‘일반론’은 法이고 물고기를 잘 낚는 ‘비법’은 妙일 터다. 나름의 ‘정의’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로 빗대볼 수도 있겠다. 법전이나 책에도 이미 적혀 있는 법과 원칙만을 챙기기 위해서 굳이 대통령과 같은 직책은 필요하지 않다. 말 그대로 법과 원칙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정치(政治)는 다르다. 회초리로 세상을 바룬다는 뜻 칠 복(攵)자가 正의 곁에 붙어있는 것이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正義의 에센스인 ‘바를 正’의 어원은 ‘오래된 미래’처럼 뜻밖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적(敵)의 성(城)을 향해 진격하는 잰 발걸음이 正이란 글자를 이룬 그림이다. 한자가 그림에서 온 기호임을 다시 생각하자. 사방을 둘러싼 성의 모양인 囗(국)은 나라 국(國)의 옛글자다. 그친다 멈춘다는 뜻으로 쓰는 지(止)는 발 그림의 기호로 다른 글자와 합체할 경우 ‘가다’는 뜻이 된다. 正자 윗부분 一은 囗의 생략형이다. 법과 묘처럼, 正과 政의 차이는 엄연하다. 그림이 그렇듯 글자는 (세상 뜻의) 상징이다. 저 성(囗)을 차지(점령)하는 것이 正이니 승자독식의 어떤 규칙처럼 전에는 억지이던 것도 지금은 정의인 것인가.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여기나보다. 정치 도치(道治) 덕치(德治)를 구분해 세상의 지도 원리를 설명한 원불교의 법어가 그들에게 혹 답이 될까? 정권이 바뀌면서 얻게 된 독(과)점적 발언권이나 기회를 정의나 정치라고 착각하지 말 것이다. 자기(들)만의 ‘애국(심)’을 오로지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고래심줄 세금을 쓰는 것은 조만간 (국민의) 회초리를 맞을 수 있는 행실이다. 문자(文字)의 원리는 이렇게 법보다 묘를 보여주었다.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6년을 땅속 칩거하다가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으면 매미가 된다. 그리곤 짝을 찾느라 저리도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본능에 따라 울고, 짝을 만나면 사랑을 하고 그러다가 어길 수 없는 때가 되면 사라진다. 언제 아플 시간이 있을까.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그때는 그랬다. 힘이 없었잖아. 그리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미물같은 매미도 할 일은 다 하고 사라진다. 너덜거리는 시간을 뒤져봐야 한숨만 나오지만 그래도 도대체 머리가, 아니 심장이 왜 아픈지 아무리 최고의 병원 의사를 찾아도 진단도 처방도 못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혹여 북쪽의 지도자는 이러한 변명은 하지 말았으면. 옥수수도 여물어 가는데, 나만은 살아 있어 매미 울음소리가 덧없이 커지는 8월이다. 태어난 고향이라고 부모 형제의 소식은 알고 싶어 생명줄 잡고 이 글이..
윤석열 대통령이 하계 구상중이다. 취임후 3개월여 숨가쁘게 달려온 국정운영에서 재충전의 소중한 시간이 돼야 한다. 윤 대통령에게는 역대 어떤 정권 초기보다 대내외적으로 많은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새정부가 목표를 향해 이륙할 때 가장 필요한 게 국민 호응이다. 그런데 국민지지가 계속 하향세다. 하루빨리 국정동력을 살리는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최우선의 큰 방향은 나와 있다. 여론조사에서 국정수행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인사 문제다. 대통령실과 정부 조각의 편중인사와 야당 패싱 장관 임명, 사적채용·민간인 순방동행 등 인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인사는 두가지 관점에서 중요하다. 첫째 도덕성과 능력에서 국민에게 대리만족감을 부여해야 한다. 둘째 선거과정에서 공을 세우고 공직에 출사(出仕)를 기대하던 창업 공신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엄중한 눈높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지역‧세대 등 지지 세력에 2차 울림으로 이어져 국정에 힘이 보태진다. 인사권자는 야당은 물론 국민과 집권층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집권당의 지도체제 면면도 현 정부의 평가에 큰 몫을 차지한다. 소위 ‘윤핵관’ 인사들의 내부 갈등이나 사적 채용 논란 등은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이준석 대표의 징계 파장은 국정 수행지지와 여당 지지율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 당 대표나 직무대행, 원내대표 등 집권당의 간판은 정부 인선 이상으로 중요하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 거취와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국민의 피로감을 키웠다. 당권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국정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통령실에 비서실장과 수석들의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오랫동안 검사의 외길을 걷다가 국정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어느 때보다 열정과 능력, 도덕성으로 무장된 최고의 참모들이 절실하다. 여론은 변화무쌍하다. 이제 임기 초반인만큼 새로운 결기와 각오로 국정의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 이번주가 분수령이 돼야 한다. 먼저 윤 대통령은 인사 문제와 관련해 차분하게 복기부터 해봐야 한다. 또 대통령실이나 정부부처의 의사결정 등 시스템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둘째 휴가기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정‧재계 원로나 각 분야의 전문가 등과 최대한 소통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평소 소신대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름’에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셋째 여당내 갈등이 더이상 장기화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넷째 윤 대통령의 측근 그룹은 선공후사 정신으로 심기일전해야 한다. 국정운영이나 인사는 대통령이 혼자 할 수 없다. 주변 인사들은 자신들의 세력 확산에 앞서 최적의 인물을 삼고초려해 대통령의 인재풀을 넓혀줘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이준석 대표 등과의 갈등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소통과 포용의 능력으로 반전에 성공했다. 대선 창업(創業)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국정동력을 복원해야 한다.
노르웨이의 가수, 카리 브렘네스 (Kari Bremnes)의 베를린의 사랑( A Lover in Berlin)을 들으며 신문을 보고 있는데 노르웨이의 연례 행사에 대한 토막기사가 눈에 띈다.(카리 브렘네스의 목소리가 만든 고적하고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날아간다) 노르웨이인들은 연례로 ‘대구 혀 자르기’ 행사를 하는데 주어진 시간 2분내 대구 혀를 뼈 없이 가장 많이 발라내는 이에게 상을 준단다. 참가 연령은 13세 이하. 어린이판 몬도가네 느낌이라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문화 차이로 돌린다. 노르웨이 하면 대개 인형의 집 작가인 헨리크 입센, 절규의 화가 에드바드 뭉크, 페르귄트 모음곡으로 유명한 에드바르 그리그를 떠올리고 스웨덴 핀란드와 묶어 북유럽 지상낙원이라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무엇 때문에 부국이 됐을까? 100년 전만해도 척박한 땅, 적은 인구 등으로 고생하던 농업국가였다. 오늘날 스웨덴은 이케아와 H&M, 볼보, 스카이프, 에릭손, 일렉트로룩스 등을 내세우고 핀란드는 (노키아는 지는 노을이 됐지만) 게임계의 슈퍼스타 슈퍼셀과 로비오, 그리고 모바일 운영체계 안드로이드 기반인 리눅스로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상징기업도 없는 노르웨이가 어떻게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가 넘는, 북유럽 최고 부국이 됐을까? 석유 때문이다. 50년 전인 1969년, 노르웨이와 면한 북해에서 엄청난 양의 원유가 쏟아졌다. 스웨덴, 핀란드도 천연자원부국이지만(스웨덴은 철광석, 핀란드는 질 좋은 목재) 오일 머니와 는 비교 불가. 게임 끝이다. 나라 곳간만 그득한 게 아니다. 부자나라의 병이라는 고독,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률이 OECD 5위권에 들어 심각한 사회문제였으나 1990년, ‘프로작’ 같은 항우울제가 시판되면서 현격히 개선됐다. 올해 우리의 자살률은 여전히 OECD국가 중 1위인데 노르웨이는 15위이다(2022.2월/Health Data/OECD제공) 가장 부러운 건 젊은이들이 남과 비교 없이, 열등감 없이 꿈을 좇을 수 있는 사회기반과 인식이다. 30프로가 고등학교 졸업을 안해도, 70프로가 대학을 안가도, 루저가 되지 않는 나라다. 입시와 취업과 혼수 마련 걱정 없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카레 브렘네스의 목소리와 노래가 답을 한다. 애태우지 않고 속 끓이지 않는 목소리로 ‘사랑을 하면 아이처럼 빠져들고 천국과 지옥의 끝까지 가보라. 그게 사랑한다는 것이다’고. 한때 베를린에서 연인을 만났어/ 옆 테이블의 연약한 노파가 말했어/ 그의 목소리가 오래된 바이올린 같다고 그리고 말했어/ 그 목소리, 목소리/ 사람들은 그걸 남자에게 빠져드는 거라고 하네/ 하지만 이 추락은 내게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날아오르게 했네 / 말도 안돼, 아무 계획도 없어/누가 이 열정을 마른 땅의 안전과 바꿀까/ 나도, 그도 아니야 (후략) 이 나라에 ‘사랑의 지옥과 천국을 끝까지 가볼 수 있을 여유 있는 청춘’이 얼마나 될까. 창밖으로 심야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에 괜히 가슴이 아려온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29일 출산 예정 경기도청 북부청사 공직자를 격려하고 축하선물을 직접 전달했다. “출산 휴가자들이 보직이나 근평, 승진 등에서 인사상 불이익과 차별을 받지 않고 오히려 이익을 받도록 하겠다. 여성 직원과 남성 직원들 모두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란 말도 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27일에도 본청 청사에 근무 중인 출산 예정 공직자들을 찾아가 격려하기도 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양육 지원금만으로 출산·육아 에 부담을 느끼는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며 “그들의 결정과 책임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중을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경기도가 먼저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사는 취임 후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잇달아 표명하고 있다. 7월 11일 도청에서 열린 제11회 인구의 날..
복날은 7월과 8월 사이의 가장 더운 시기쯤 10일 간격으로 초복, 중복, 말복을 일컫는다. 복날은 몸에 기운을 보하여 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내라는 일종의 관습적 식문화이다. 과거에 프랑스의 여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우리나라의 개고기 식용을 비판하면서 우리나라가 야만국가처럼 회자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브리지트 바르도의 조국인 프랑스도 한 때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생또노레(Saint-Honore)라는 곳에는 개시장이 있어서 개고기 1kg에 2프랑 50센트 받고 팔았다고 한다. 사실 개고기 식용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남미와 북미 일부, 아시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고기 식용문화 자체가 사라지거나 정부의 정책에 의해 개고기 식용이 사라지게 되었을 뿐이었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과거에 개고기 식용은 생존하기 위한 선택적 식문화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래도 개고기 섭취를 금지하거나 자발적으로 금식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먼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충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전체 인구의 30% 정도로 세 집 중 한 집은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꼴이다. 법제도도 이와 같은 상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동물을 학대하면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을, 동물 유기 시 3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다음으로, 이 땅의 현대인들은 과거 조선시대처럼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개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식당과 시장에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반려동물의 상징과도 같은 개를 식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영양과다로 인해 다이어트를 실천하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지경이다. 한 때 재래시장의 한쪽을 점령하다시피 즐비했던 보신탕가게도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보신탕 문화를 없애기 위해 실태조사를 했던 통계를 볼 수 있었다. 1980년대까지 수 백 개가 넘던 보신탕 가게가 현재는 10여 개 업소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나마도 일부는 영업 중단을 고려 중이고 일부는 주인들의 나이가 많아 조만간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말 많고 탈 많았던 개고기 논쟁이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수업을 하면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아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만들어낸 결과물을 확인할 때이다. 특히 고학년을 맡으면 글쓰기나 영상 만들기 수업을 하면, 이후에 몹시 기대감에 차서 아이들의 과제물을 기다린다. 어린이들의 편견 없고 솔직한 글솜씨에 한번 감동 받고, 기대 이상의 영상 퀄리티에 다시 한번 놀란다. 이번 영화 만들기 수업도 혼자 여러 가지 기대를 품고 시작했다. 단편 영화 제작은 방학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팀당 5분 남짓의 단편 영화를 만드는데 25차시 혹은 그 이상이라는 막대한 시간이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1차시에 40분이니 16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처음 계획은 17차시에서 끝내는 거였는데 진행하다 보니 도저히 시간을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모두가 열정적으로 영화 만들기에 매달렸..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지인의 아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고향집으로 내려온다고 기별이 오니 지인 가족들은 비상이 걸렸다. 기숙사가 퇴소 원칙이라니 집에 올 도리밖엔 없는데 아버지는 이불 보따리를 싸매고 운영하는 학원으로 긴급 대피했다. 아들이 집에 있을 때는 매일 신속항원검사를 해야 할 판인데 그것도 무증상자는 유료(3~5만 원)라니 차라리 도망치는 게 최고란다. 지난 26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은 "문재인 정권 5년은 비과학적 정치 방역과 탈원전, 정치가 과학을 압살해 버린 반지성의 시간이었다"며 대정부 질문의 포문을 열었다. 어떡하나? 당신들이 주창한 ‘과학 방역’이 218곳의 선별 진료소를 4개만 남기고 폐쇄한 결과 지금의 재확산에 눈부신 기여를 한 꼴이니 말이다. 졸지에 학원에서 먹고 자고 하는 지인이 울화통..
어느 시대나 신분 상승은 어려웠다. 자신이 처한 불우한 환경을 딛고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그만큼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얻은 성취는 더욱 소중하고 빛난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일이 있다. 자신이 얻은 성취를 타인을 위해 내놓는 일이다. 얻는 일보다 내놓는 일이 훨씬 어렵다.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과 처지를 바꾼 사람들은 드물다. 자신이 얻은 성취를 어제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 드물고 드문 사람의 하나가 박서양이다. 박서양은 1885년 9월 30일,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정과 백정의 자식은 호적조차 부여받을 수 없는 최하층 계급이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 존재였다. 이름도 성도 없이 ‘봉주리’로 불리던 그에게 뒤늦게 ‘박서양’이란 이름과 호적이 허용된 것은 저절로 세상 좋아져서가 아니었다. 대대로 백정이었던 박서양의 아버지는 돈으로 자기 아들 하나의 신분을 사는 대신 갑오개혁으로 시행되던 신분차별 철폐법을 모든 백정에게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운동에 앞장섰다. 백정 아버지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존재를 인정받고 이름과 호적을 얻었던 소년은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의 미국인 의사 에비슨의 조수가 되었다. 처음부터 에비슨의 조수는 아니었다. 병원 청소와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다. 급여도 없는 그 일을 새벽부터 밤중까지 너무도 성실히 해냈기에 그는 모두의 인정을 받았고, 에비슨은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제중원의학교 1기생으로 입학시켰다. 1908년 6월, 박서양은 동기생 여섯 명과 함께 조선인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다. 그들의 졸업식은 조선의 권력자들은 물론 한양 주재 외교관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백정의 아들이 거둔 대단한 성취였고 영광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단했던 것은 박서양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그 성취와 영광을 지금의 자신이 아닌 어제의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신분을 바꾸고 영광을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외과 의사가 된 박서양은 어제의 자신인 불우하고 가난한 동포들을 위해 자신의 의술을 사용했다. 마침내는 조선에서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만주의 용정으로 가 구세의원을 개업하고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만리타국으로 떠나온 사람들을 도맡아 치료했다. 독립군과 그들의 가족들 대부분은 돈 한 푼 내지 않고 조선 최초, 최고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다. 홍범도, 김좌진이 이끈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전투에 종군하며 부상자를 치료했던 군의관도 그였다. 고종의 진료를 맡아보며 세브란스의전의 교수 자리에 올랐던 그의 선택은 아름다웠다. 아버지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성공한 지금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어제의 나로 살아가고 있는 불우한 동포와 나라를 위해 사용했던 그의 삶은 감동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동조합원 유최안씨가 가로세로, 높이 1m, 0.3평 철창 속에 자신을 가두고 지내는 동안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를 향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경찰특공대 투입을 검토했다’는 말을 하는 분도 있었다. 가장 밑바닥에서 절규하는 유최안과 그의 동료들을 더 아프게 한 사람들이 있었다. 178cm인 유최안이 눕지도 서지도 못하고 꼬박 31일을 지내는 동안 어제의 유최안이었던 대우조선해양노조의 정규직 노조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었나. 하퀴라니, 숨이 턱 막혔다. 오늘의 하청 노동자들이 바로 정규직 노동자의 어제였다. 오늘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는 그만큼의 권리가 누구의 피와 눈물과 희생으로 획득한 것인지 그들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 하퀴, 오늘 그들이 내뱉은 그 모욕과 혐오의 언어가 내일은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까. 남으로부터 모욕당하는 자는 반드시 남이 모욕하기 전에 스스로 모욕한다. 참으로 무더운 여름, 오늘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제의 자신이었던 이들과 더불어 내일을 살아가려고 했던 박서양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지난 26일 국무회의서 의결됐다. 8월 2일에 공포·시행된다. 경찰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여론은 부정적이다.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검찰은 되고 경찰은 안 된다’는 이중 잣대의 적용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 말대로 ‘검로경불’이 아닐 수 없다. “인사(人事) 앞에 장사(壯士) 없다”는 것이 공무원 조직이다. 경찰공무원의 1인 시위와 릴레이 삭발은 어떻게 보면 목숨을 내건 것과 진배없는 행동이다. 류 총경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명언’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 한 말이다. 유명세를 떨친 이 말은 윤 대통령에게 되돌아갔다. 대통령은 경찰의 집단행동을 “국기문란”이라고 경고했지만, 도대체 영(令)이 서지 않는다. 한편, 류 총경은 “행안부 경찰국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 훼손”이라고 했다. 이는 내무부 치안본부가 왜 경찰청으로 독립했는가와 맞닿아 있다. 청년 박종철(1987)과 이한열(1987)이 왜 꽃다운 나이에 죽었을까를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은 시민의 인권과 생명 보호 측면서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만, 한 가지. 경찰청 독립(1991년) 이후 2015년, 백남기 농민(1년 가까이 의식불명에 있다가 2016년 사망)은 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는가?에 대해 경찰 전체의 진지한 숙의가 있어야 한다. 경찰은 공권력 남용, 혹은 ‘과잉 충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허언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관해 국민과 공무원의 시각엔 차이가 있다. 국민은 ‘공무원이 정파성 없이 일처리 하는 것’을, 다수의 공무원은 ‘국민이 선출한 정권에 충성하는 것’을 정치적 중립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과연, 어디까지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일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숙고 없이 윤석열 정부는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을 졸속으로 강행했다. 경찰청 독립의 취지와 배경은 뒷전에 뒀다. 사회 갈등만 불거졌다. 인사권으로 경찰을 통제하겠다는 낮은 수일뿐이다. 굳이 경찰국을 신설하지 않더라도 경찰 고위 인사에 대한 인사 제청권은 행안부 장관에게 있는데 말이다. 더 이상 공직자인 경찰관이 거리로 나서선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간단하게 물러나서도 안 된다.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경찰의 독립성을 경찰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면, 경찰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본다. 이 시점에선 국회도 적극 나서야 한다. 입법부가 ‘거친’ 행정부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입법 취지를 무시하는 시행령이 용납되어선 안 된다. ‘밀어붙이기’ 행정이 능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