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천국, 벨기에에 가면 손 모양 초콜릿을 볼 수 있다 화가 반 고흐의 고향인 앤트워프 지역 전설 중, ‘뱃사공의 돈을 뜯어내는 거인 안티곤의 손을 잘라 퇴치한 영웅 브라보’ 이야기가 있는데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초콜릿이다. 내게는 손 모양 초콜릿도, 그 전설도 섬뜩하다. 그리고 손 모양 초콜릿을 관광 상품화한 벨기에 국민성도 섬뜩하다. 선조, 레오폴드 2세(1865 – 1909)의 대학살을 생각하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초콜릿, 와플, 맥주로 이름난, 달콤하고 고소하고 시원한 유럽 선진국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의 아프리카 콩고 대학살은,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에 못지않았다. 벨기에는 전쟁으로 점철된 유럽사의 희생국이었다. 벨기에 역사는 기원전 58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정벌 당한 이후 지난한 식민의 고통으로 얼룩져있다. 15세기말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 16세기말에는 프랑스에, 19세기 말에는 네덜란드에, 1,2차 세계대전시 독일에 점령 당했다. 그런 벨기에 역사에 잠깐의 햇살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1830년의 8월 혁명(프랑스 7월 혁명에 자극받아 일으켰다)으로 얻은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이었다.(1839년) 1865년, 벨기에 국왕이 된 레오폴드 2세는 유럽강국의 해외 식민전쟁에 뒤늦게 뛰어든다. 얼마 안남은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 돼, 필리핀 등 이곳저곳 찔러보던 그는 아프리카 콩고를 먹잇감 삼는다. (사악하게도) ‘과학 증진과 인도주의, 그리고 기독 문명 전파등’을 기치로 내세운 ‘국제 아프리카 협회’를 만들어 ‘박애주의자’란 가면으로 콩고에 식민 깃발을 꽂는다. 이후 본색을 드러낸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 땅의 75배에 이르는 콩고땅을 사유지화하고 고무나무로 뒤덮인 콩고 찬탈을 시작한다. 콩고인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노동자의 아내와 딸을 감금 강간하고, 손발을 자르고, 즉결 처형하는 등 국가 전체를 피바다 만든다. 벨기에 관리들은 노동자의 손발 담은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노동자들을 겁박했다. 레오플드 2세의 약 20년간의 콩고 대학살로 콩고 인구 절반인, 1000만명이 사라졌다. 1908년 대학살 행진은 막 내렸지만, 콩고 독립은 50여 년 지난, 1960년에야 이루어졌다. 나에게 벨기에는 케이옵스(kheops)의 나라다. 낯선 이름이라면, 가수이자 배우 엄정화씨가 예전에 파우더 광고할 때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아르메니안 송(Armenian Song)’을 들어보시길. 이 신비하고 몽환적인 음악은 벨기에 출신 작곡가 애릴로리가 주축이 돼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대만, 영국, 미국 등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그룹의 작품이다. 케이옵스란 이름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이름에서 따왔다. 애릴로리는 ‘케이옵스의 꿈은 서로 다른 문화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들이 음악 교류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것’ 이라고 한다. 벨기에 국민들은 현재도 레오폴드 2세를 건축왕으로 떠받들며 위인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는데 (교육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 애릴로리도 그럴까? 케이옵스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집시 파워(Gipsy Power)를 듣는데, 오늘은 카카오 함류량 높은 초콜릿보다 더 쓰게 들린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건희 씨의 2007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컨텐츠디자인 전공의 박사학위 논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 ‘애니타’ 개발과 시장 적용을 중심으로'의 표절 사실에 대해 대학사회가 어수선하다. 김 씨는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구연상 교수의 2002년 논문 '디지털 컨텐츠와 사이버 문화'를 표절했고, 국민대는 조사 결과 표절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구 교수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단을 통째로 베끼는 등 “완전 표절”이라고 밝혔다. 구 교수를 인터뷰한 MBC 시사집중 8월 8일 방송에서 진행자는 특수대학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국민대 교수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수대학원 같은 경우는 박사학위 논문 검증이나 심사과정이 좀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이런 것들을 오히려 감안”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민대 교수의 발언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문제의 대학원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특수대학원이 아니라 전문대학원이다. 특수대학원은 전문가 재교육을 목표로 하는 석사과정으로 박사과정이 없다. 대학교수가 전문대학원과 특수대학원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대학원 과정이 난삽하다. 김건희 씨는 국민대 외에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을 다녔고,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에서 경영전문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안양대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라고 써놓은 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고위 과정이라는 것도 있다. 김건희 씨와 함께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수료한 동기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sbs 리포트도 있었다. 김 씨는 서울대 GLA(Global Leader Association) 과정도 다녔는데, 그때 5일 일정의 뉴욕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별도의 뉴욕대 과정을 이수한 것처럼 이력서에 쓴 적도 있다. 학구열이라고 해야 할지 인맥이나 스펙 쌓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대단한 열정이다.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전문대학원과 특수대학원, 그리고 최고위 과정 따위를 두는 목적은 돈이다. 영리기업이 된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학위논문 지도와 심사가 밀도 있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위논문이 부실해지는 건 기본이고 표절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유독 김건희 씨에게만 해당되는 경우가 아니라는 얘기다. 적어도 대학교수라면 근원적으로 구조적인 원인과 문제를 직시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본분에 맞는 일이다. 이 경우 드러난 표절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되, 그걸로 그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의 모색에까지 실천적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수한 교육적 열정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행위라는 오해를 받기 쉬울 것이다. 대학이 진리 탐구와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마당에 특정인의 표절 행위를 단죄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었다. 일제에 강제 병합된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대한제국에게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한다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됐지만 일본은 두 나라의 관계개선을 위해 보여야할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처럼 전범국이었던 독일과는 달리 과거사 청산을 위한 진정한 사과에 인색했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가 하면 여전히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 2019년 7월엔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수출통제 조치까지 함으로써 우리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물론 우리 국민들도 일본상품 사지 않기, 일본여행 하지 않기 운동 등으로 맞섰다. 해방된 지 77년이 넘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로 성장했다. 현재 일본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 관료 출신 경제석학인..
추석(秋夕)의 계절, 가을이다. 가을은 그 저녁(夕) 추석이 정겹고, 그 물결(波) 추파는 은근하다. 추파(秋波)가 무엇인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 바람에 시나브로 일렁이는 호수처럼, 가을의 물결은 조용하고 투명하다. 맑아서 서늘하다. 사람 눈빛이라면 보는 이의 가슴을 싸늘하게 얼려버릴 강렬함을 품었겠다. 사랑을 구하는 여인의 그것이라면 아름다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날카로운 비수(匕首)는 아닐까. (2016년 9월) 언어는 역사를 품는다. 그 틀(프레임)이 보듬었던 지난 사람들의 마음(생각)이 그 글자의 획(劃)과 점(點)에 빼곡히 서렸다. 세상 이치다. 서양 언어와 생각(철학)도 비슷하다. 가을의 물결이 ‘은근한 눈빛’이더니 마침내 ‘엉큼한 아첨’이 되었다. 원래의 뜻을 모르는 이들도 있겠다. ‘추파가 윙크지 왜 가을의 물결이야?’ 하는 질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사전엔 ‘가을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이 秋波의 1번 풀이다.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은근히 보내는 눈길’과 ‘환심을 사려 아첨하는 태도나 기색’이 2, 3번 풀이다. 초사(楚辭)의 ‘초혼(招魂)’, 초나라 문장(시)의 대표 격(格)인 굴원 등의 작품 모음 중 주목할 시다. 죽은 이의 혼(魂)을 불러 ‘너 살던 옛집에 어서 돌아오라.’고 유혹하는 절규가 담겼다. 굴원 작품이라고도 하고 제자 송옥의 시라고도 한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그 楚다.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아름다운 시다. 그 혼의 살아생전 부귀영화에 춤추는 요염한 16명 여인들의 눈빛이 선명하다. 주군(主君)을 오늘밤 홀로 차지하고자 흘겨보는 눈길 즉 묘시(眇視, 妙視)의 목파(目波·눈의 물결)를 秋波라고들 한 데서 그 뜻이 무르익었던 듯. 맑고 서늘한 이미지가 가을(秋)의 느낌을 불렀으리. 눈이 품어내는 에너지의 파장(波長)일까. ‘여자의 은근한 정을 나타내는 눈치, 즉 곁눈질이 水波(수파)의 橫流(횡류)와 같다.’고 그 시 구절을 해석한 자료도 있다. 가을의 물결이 은근한 정이 된 사정이겠다. ‘말뜻’의 전이(轉移)나 확대는 의미 또는 정서적 인신(引伸)으로 설명된다. 언어의 활용 방식 중 하나인 인신은 ‘말(단어)의 뜻을 잡아당기고(引) 늘려 펴서(伸) 표현의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다. 긴 장(長)자가 팀장처럼 ‘조직의 윗사람’이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문자는 발음기호에 뜻을 더한 것이다. 이를 알면 세상 여러 이미지(언어)의 속뜻을 빙그레 웃으며 읽을 수 있다. 윙크인 추파가 가을의 물결인 사정도 설명 가능하다. 설명할 수 있어야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다면 모르거나 어설프게 아는 것이다. 말의 본디를 돌아보면 추파만큼 (부귀영화보다 더) 재미있다.
국가가 없으면 어찌될까. 보호해줄 국가가 없기 때문에 살아있어도 투명 인간이다. 그래서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 했으니, 개인에게 국가라는 울타리는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고 희망이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그곳은 터전이 아니라 속박이 된다. 삶의 터전을 잃어보았기에 역할을 상실한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프게 경험했다. 조국이라는 말은 타향에서 서러움을 가진 사람에게 향수처럼 다가온다. 1960년대 부모님은 두만강을 건너 북조선으로 갔다. 처음에는 못 생긴 고무신에 딱딱한 과자도 좋았다고 했다. 사는 것이 형편없이 불편해서 아버지는 몇 번이고 이전에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막혀버린 국경과 가정이라는 멍에를 놓을 수 없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려고 얼마나 노력..
이성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인생의 법칙을 배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배반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것을 편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그 익숙한 생활을 방해하려는 이성의 목소리를 압살하려고 애쓴다. 사람은 자신의 생활이 양심에 합치되지 않으면 양심이 마비되어 생활에 장단을 맞춘다. 사격을 받고 있는 엄폐물 뒤에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병사들은, 위험한 순간을 더 쉽게 견딜 수 있도록 애써 일거리를 찾는다. 사람들도 때때로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은 명예욕으로, 어떤 사람은 오락으로, 어떤 사람은 법률 문서를 씀으로써, 어떤 사람은 향락으로, 어떤 사람은 정치활동으로 그것을 견디고 있다. 폭풍이 나무를 뽑고 바위를 굴리지만 하루를 못 갑니다. 정말 크고 강한 것은 소리 없이 흐르는 맑은 시내입니다. 살진 들을 적셔 천하를 기르는 것도 그것이요, 모든 비, 바람, 구름, 물결을 일으키면서도 자기는 억만 년 노함도 흔들림도 없는 대양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도 그것입니다. 그리고 시내는 억억만만의 물방울이 음악 속에 하나 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연의 시내보다도 더 무한히 큰 것은 역사의 흐름이요 그 흐름을 이루는 것은 씨ᄋᆞᆯ입니다. 스스로의 큼 속에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함석헌)/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심심한’ 이란 단어가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젊은 세대의 어휘력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루한 사과’로 오해한 젊은 세대를 향해 나이 든 세대가 ‘이런 단어도 모른단 말이야?’라며 거드름을 피운다. 필자도 한 축하행사에서 옆 자리 안면 있는 대학 교수에게 기성 세대 눈으로 이 말을 꺼냈다가 핀잔을 들었다. ‘심심한’을 ‘깊은’으로 바꾸면 누구나 다 알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나의 의견에 동조해 주지 않아 서운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각해보니 ‘나도 역시 꼰대가 되고 있구나’라고 반성했다. 역시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직업이라 달랐다.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 가운데 뜻을 몰라 ‘그 뜻이 뭐야?’라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킹받을’ 때(열받을 때)’, ‘존맛탱(아주 맛있다)’, 헬창(헬스 매니아) 등이 이런 말들이다. 언론도 유행어 유통에 크게 일조한다. 정치권에서 한 말이 언론을 타면 일상어가 된다. ‘개딸(개혁의 딸)’, ‘이대남(20대 남자)’처럼. 해외 언론도 우리 언어를 번역하기보다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서울의 집중호우 피해를 보도하면서 반지하를 ‘banjiha’로, 위키백과는 꼰대를 ‘kkondae’로 등재했다. 이런 말들은 언어생활을 윤택하게 하기도 하지만, 다른 세대들이 쓰지 않은 어려운 말로 소통을 어렵게 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언론은 보편적이고 쉬운 용어를 써야 하는 게 맞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상균 전 MBC 기자는 지난 11일 ‘좋은기사 연구모임’(회장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에 나와 어려운 방송언어 개선을 주문했다. ‘내홍(내분 혹은 집안싸움)’, ‘정체현상’ 같은 어려운 한자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쓸 것을 제안했다. 또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처럼 전문가도 검색해야 알 정도의 어려운 용어를 설명 없이 무분별하게 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취재원이 제공하는 용어를 그대로 따라가는 법조 관련 기사는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청의 장은 ‘검찰청장’이어야 하는데 ‘검찰총장’이라고 쓰면서도 문제의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변화의 조짐도 있다며, MBC 김아영 기자의 보도를 주목해보라고 권했다. 문장 읽기식 보도방식을 철저히 거부한다. 옆에 사람들과 대화하는 듯한 보도방식이다. 마치 시청자가 기자에게 상세한 설명을 듣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지난 2월 고인이 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장관 재직 중 가장 잘한 일로 ‘노변’을 ‘갓길’로 만든 일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김지수 문화전문기자가 지난해 10월 암투병 중이었던 고인을 매주 화요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언급된 내용이다. 생활 언어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언어는 소통의 도구일 때 최고의 존재가치가 있다.
지난 8월 27일 저녁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수원역 앞에서 ‘수원 세 모녀 시민추모제’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최근 ‘태어난 새는 날아야 한다’라는 시집을 낸 이종구 시인은 날지 못한 채 떨어진 가엾은 세 모녀를 시로 추모했다. ‘바람이 가끔, 문밖을 불어갔지만/비를 머금은 먹구름 뿐이었고, 눈물도 없이/세찬비만 여름 내내 조마조마한 가슴을 적셨습니다/한번도 가난해 본 적 없는 세상처럼/거리에 불빛이 요란하지만, 그곳에는/나의 여린 가난과 장애가 쉴 둥지가 없었습니다’-시 ‘미안합니다’ 일부 이른바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은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참변사건과 함께 우리 사회에 연이어 큰 충격을 줬다. 본란(8월 25일자 13면)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이들은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 등은 전혀 받지 못했다. 수원시에 전입신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서방진영은 러시아의 핵전쟁 위협과 에너지 무기화에 질질 끌려다니며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고,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무슨 단서를 줄 수 있는가? 젤렌스키가 크림반도 탈환을 최종 목표로 삼은 점을 감안, 1853년부터 1856년까지 2년 반이나 질질 끌며 25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크리미아 전쟁은 반면교사가 된다. 양쪽의 전쟁 주창자들이 기진맥진해서야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첫 번째 교훈은 ‘전쟁은 시작과 다른 형태로 끝난다’는 점이다. 독일의 군사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말했다. “전쟁은 그 어느 사안보다 우리가 예상했던대로 끝나는 법이 없다.” 1853년에도 전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대다수의 예측은 부정확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크리미아 전쟁이 러시아 본토와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러시아가 무적이라는 믿음까지 널리 퍼져있었다. 두 번째는 ‘훈련이 덜 된 병사가 시원찮게 전쟁한다’는 것이다. 크리미아 전쟁이전까지 러시아 군대는 유럽 국가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곧 러시아 군대의 허약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사기가 떨어지고 어린 징집병 혹은 소작농으로 구성된 러시아 군은 장악한 지역 상당수를 잃고, 군사적 평가도 땅에 떨어진 상태로 종전되었다. 러시아무기는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성능이 뒤졌다. 영국·프랑스 군대는 원거리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히 사격할 수 있는 총과 부대로 무장했다. 세 번째는 ‘인기 없는 전쟁을 오래 끌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론인들은 최전선에서 기사를 송고하여 런던이나 파리에 있는 독자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전쟁 소식을 접한다. 문제는 전쟁이 기대했던 대로 잘 굴러가면 지지를 보내지만,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압력으로 작용한다. 네 번째는 ‘막연한 평화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1856년 파리협정을 맺으면서 양측 간의 적대행위는 종식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여러 근심거리를 남겨놓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남동부 유럽 국경 문제가 대표적이었다. 소위 “Eastern Question”은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각국 지도자들을 괴롭혔다. 다섯 번째는 ‘전쟁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1세는 1855년 사망했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 2세는 패배를 받아들였는데 당시로선 엄청난 충격적 사변이었다. 알렉산더 2세는 이 재앙과 같은 전쟁을 되돌아보면서 러시아의 전쟁수행능력은 강고한 계급 구조와 농노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1861년 3월 농노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알래스카도 이 전쟁을 계기로 미국에 팔았다. 알래스카를 통치할 능력이 부족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전쟁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 보자. 김정은은 7차 핵실험 시기를 만지작 거리며 핵무기 고도화를 통한 동북아 세력 재편에 대한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남한의 종속화는 당연한 수순이다. 한편으로 대북강경책을 구사하는 윤 정부의 안보전선을 무너뜨릴 기상천외할 모략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여전히 ‘평화’를 외치면 ‘평화’가 무조건 실현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강대국들이 전쟁의 길로 가고 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무자본 M&A”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돈이 있어야 기업을 인수하든 합병하든 할 수 있다. 그런데 돈도 없이 무자본으로 기업을 인수․합병한다니 봉이 김선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소리다. 하지만 현실에서 “무자본 M&A”는 성행하고 있다. 무자본 M&A라고 해서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수하는 주체가 자기자본 없이 M&A를 한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남의 돈으로 M&A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돈을 빌려와 기업을 산다. 하지만 담보도 없이 “기업 좀 사게 돈 좀 빌려주세요”라고 하는 이에게 선뜻 돈을 내어줄 은행은 없다. 그렇기에 무자본 M&A 세력은 “사모펀드”를 이용한다. 말이 좋아 사모펀드지 사체다. 돈이 많은 개인 몇몇으로부터 돈을 모으는 것이다. 당연히 이자는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