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조선의 잔다르크’라 불렀다. 45년 12월,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김무정 장군과 함께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종로거리로 행군해 들어오던 날 ‘백마탄 여장군’이 왔다며 환영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후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를 뺀 모든 사람들이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파하던 장군은 48년 10월, 해방된 조국의 부평경찰서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조선의용군 지휘관 김명시의 이야기다. 1907년 마산에서 태어난 김명시 장군은 일찍이 오빠 김형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유학을 마치고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해 1930년 하얼빈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의 길에 들어선 장군은 1932년 국내잠입 활동 중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의 옥고를 치렀다...
지난 21일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했다. 정치권, 행정부 곳곳에서 ‘특단 조치’를 말한다. 공동체주의와 연대가 대안이란다. 좋은 말이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 두 가지 경우를 보자. 먼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현황 통계’의 등록장애인은 263만3000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5%대다. 실제 장애인 수는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장애인이라는’ 낙인, 수치심 등은 등록과 신고를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된장녀’, ‘된장남’(의존적 과소비자, 혹은 여성과 남성을 비하하는 신조어)이라는 단어엔 ‘불편한 진실’이 함의돼 있다. 어쩌면 된장녀, 된장남은 정신지체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행태일 수 있다. 한국 사회에는 정신질환과 장애를 숨기는 문화가 있다. 장애인 등록과 정신과 치료를 터부시하기도 한다. 등록과 신고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2022년의 ‘수원 세 모녀 사건’은 무등록, 무신고가 공통점이다. ‘송파 사건’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법 등이 개정됐다.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지자체별로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사무소 직원들은 ‘소외된 골목길’의 ‘고단한 삶’을 찾아내지 못했다. 카메라 앵글을 돌려 보자. 수원 세 모녀는 ‘빚에 쫓겼다’는 것이 ‘송파’와 다른 점이다. 복지체계 등록과 신고 부재의 문제를 ‘정신 건강’과 ‘서민금융’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에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빚쟁이에게 쫓기는 사람은 ‘극한’의 경험을 한다. ‘신분 노출’의 두려움에, ‘동굴’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소지는 화성, 거주지는 수원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이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은 애석하다. 구석에 몰린 사람이 지자체에서 상담을 받을라치면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신분을 감춰야만 하는 실정을 아랑곳 않는 ‘불편한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선 불법 체류자일지라도 자녀교육만큼은 ‘묻지도 않고’ 시켜준단다. 조지 W. 부시, 오바마 행정부가 그랬다. 미국선 정신 상담, 복지 상담 등의 경우, 성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우리가 갖고 있는, 빈곤층의 성명과 주소를 정밀 추적해야 한다는 관점과 반대적 현상이다. 빈곤층의 자살 방지는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앵글을 맞춰야 한다. 사람은 정신을 차려야 TV, 인터넷도 볼 수 있다. 그래야 사회보장체제에 신고와 등록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사회복지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자본주의 틀’을 부분적으로 깨뜨릴 필요가 있다.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서민금융을 찾아갔는데, 일정한 신용등급과 소득이 있어야 하는 ‘메커니즘’으로는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 역시, 기초생활수급자는 ‘중위소득의 30~50% 구간에 해당해야’ 한다는 조건도 난센스다. ‘세 모녀’ 해결엔 턱도 없다. 무이자, 혹은 저금리로 급한 불을 끄게 해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정신건강 회복과 서민금융 제도가 중요하다. 추상적이고 경직된 이념만으로는 ‘가난이 단골인 빈곤층’을 구제할 수 없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상담 시스템 구축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돼야 한다.
“이 감정은 뿌듯함입니다.” 6/29일부터 16회를 달려 8/18일 막 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마지막 대사다. 로펌 한바다의 정규직이 된 우영우는 뿌듯하다.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도 뿌듯하다. 완벽히 톱스타 반열에 올랐기에. 제작사인 에이스토리는 우영우 IP로 웹툰을 출시하였고 뮤지컬도 계약했다. 우영우 방송 전 6/23일 종가 기준 16,250 원하던 주가가 7/19일 32,800원이 되었다. 한 달 만에 시가총액이 두배 되었다. 안 뿌듯하면 그게 이상하지. 투자를 결정한 스튜디오 지니의 김철연 대표와 채널 ENA의 윤용필 대표도 뿌듯하다. 올 4월 ENA리브랜딩 미디어데이 때 향후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첫 번째로 언급한 드라마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다. 이름도 생소한 채널명을 TVN에 버금가게 만든 공은 윤용필 대표와 우영 우에게 있다. 이들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에서 포천시 관인면 초과리까지 연결되는 일반 지방도로인 387호선 확장공사를 요구하는 지역주민들의 민심이 폭발했다. 이 구간은 편도 1차선이지만 하루에 2만4178대(2020년 기준)의 차량이 통과하고 있다. 이 도로를 이용, 수동면과 화도읍 일대에 공장과 물류창고의 물류가 운반되고 있다. 많은 차량이 이용하는데다가 도로 폭마저 좁아 출·퇴근 시간대의 정체는 심각하다. 게다가 여름·가을철에는 행락객과 등산객까지 몰려 주차장을 연상케 한다. 5분이면 통과할 수 있는 거리지만 출퇴근 시간대에는 통행에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악성 정체구간이다. 이석균 경기도의원에 따르면 이 도로 위에서 교통정체로 구급차가 움직이지 못해 4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이에 지난 2004년 도로확장 계획인 ‘지방도 387호선 화도~운수..
국민대가 이미 심각한 표절 사실이 드러난 김건희 박사논문에 대한 시민사회의 검증 요구를 최종 거부했다. 숱한 허위 경력과 표절로 얼룩진 그녀는 논문 제목에 ‘멤버 yuji’라는 우스꽝스런 표현이 나올 정도로 어설픈 내용에 남의 논문과 블로그를 그대로 베낀 흔적들이 너무 많아 이미 국민들과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쯤 되면 대학이 논문을 취소하고 대학 본부가 공식 사과함이 마땅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달 초 국민대는 “논문 작성의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심각한 표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 대학 교수회가 표절 여부의 심사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절차인가? 연구 진실성 여부는 즉시 검증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마저 부결되어 교수회는 망신을 자초했다. 대학은 언론, 건전한 야당과 함께 민주주의 사회를 지키는 3대 축의 하나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시대에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해야 봉건과 전제가 발을 못 붙인다. 그런데 그 한 축인 대학이 이 정도로 타락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진실의 토대 위에서 존재하는데, 진실을 지키려는 대학인의 기본 윤리가 눈에 안띈다. 상대가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어서인가? 물론 대학의 퇴행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권력에 눈치나 보고 출세에 목을 맨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오래 동안 대학 사회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식 수준에 따라 행동을 하는 법이다. 유아기에는 생물학적 본능에 따라 낮은 수준의 지각만으로 생명 유지가 가능하다. 성장하면서 차츰 다각적 인식을 하게 되고 행동도 고양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인식이 거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식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은 재이론과 재실천의 변증법적 지양(止揚) 과정을 거치면서 극복된다. 가장 높은 수준의 이론과 실천을 가르쳐야 할 대학이 오늘날 제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대학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질문과 토론이 없는 수업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식이 상대방과 얼마나 또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성찰할 대목은 어떤 것인지 깨닫는 검증과정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저 학점이나 잘 따서 졸업장을 받으면 그만이라면 대학은 직업훈련소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풍토에서 학생들의 올바른 시민의식 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이 비판정신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비판의 대상과 초점을 제대로 잡도록 하고 엄격한 성찰 과정을 거치도록 가르치는 것은 온전히 교수들의 몫이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金洙暎)은 “신문이 지면에서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현실의 폭동을 조장하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경향신문 창간 21주년 기고문, 1967). 언론에 주는 경고였지만 토론이 사라지고 진실을 두려워하는 대학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공식적으로 1905년 통감부 설치에서 시작해 1945년까지 무려 35년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1880년 무렵부터 조선을 침략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반세기 이상 조선의 식민 착취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 일본은 정보통제부터 실행했다. 조선인들이 말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해야 저항이 쉽게 일어나지 않고 손쉽게 조선을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1907년에는 신문지법, 1909년에는 출판법을 만들어 두고 조선어 민간신문과 잡지를 사건검열 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본격적으로 탄압했다. 조선어 민간신문이 일제 검열에 어떻게 투항하려 했는가를 연구한 이민주(2018)의 연구를 보면, 조선어 신문에 내려졌던 행정처분에는 주의, 삭제, 차압(압수), 발행정지, 발행금지가 있었다. 1930년 ‘조선..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반지하에서 참변을 당한 발달장애 가족 소식에 국민들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 물이 차올라 탈출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들의 공포를 함께 느꼈다. 이 악몽과 같은 참변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해서 세상을 등졌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21일 오후 경찰이 “세입자의 방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심하게 부패한 시신 3구를 발견했다. 앞으로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겠지만 남긴 유서에는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어려웠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져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망자는 60대 여성과 두 딸로써 암과 난치병 등 건강 문제에 더해 사업실패로 인한 빚도 있어 심한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편과 아들은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60대 여성은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 등을 앓고 있어 일상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 등은 전혀 받지 못했다. 이들은 2020년 2월 수원의 현 주거지로 이사했음에도 화성시에서 알고 지내던 이웃의 집에 주소 등록이 된 상태였다. 수원시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수원과 화성에서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이들이 만약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당 관청에 알렸다면 긴급생계지원비나 긴급 의료비 지원 혜택, 주거 지원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빚 문제 등으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의 갖은 추측이 나온다. 지난달 25일에도 도내 의정부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부부와 6살 아들, 키우던 고양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부인이 “남편이 너무 힘들어한다, 남편과 같이 가 주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친한 이웃에게 보냈고, 남편의 메모에도 “빚이 많아 힘들다, 가족들과 함께 진짜 갈 시간”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아들을 살해하고 부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걸로 추정된다. 이 가족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자매 사이인 30대, 40대 여성과 초등학생 자녀 2명이 숨져 있었다. 지난 5월말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 양 일가족 3명도 극단적 선택이었다는 결론이 났다. 8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복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과금 3개월 이상 체납 시 관할 구청에 연체 사실이 통보되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세 모녀가 주소 등록지인 화성이 아닌 수원에 거주하면서 아무런 복지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료를 오랫동안 체납했다는 통보를 받은 화성시 관계자가 최근 주소지를 방문했으나 거주사실이 없고 연락처도 알 수 없어 복지시스템 비대상자로 처리됐다. 사회보장시스템이 개선됐다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세 모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현행 복지제도의 한계다. 앞으로 주소가 불분명한 경우라도 끝까지 소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기 바란다.
8월의 태양이 뜨겁다고 하지만 광복 77주년을 맞이하는 열기만 하겠는가. 독립운동의 가치와 의미를 나누는 각종 기념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렸다. 해방이 가져온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에게 해방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기념해야 하지.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은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북쪽의 반발은 거세다. 쏟아내는 막말은 거칠고 수위를 넘는다. 분단이 가져온 불신과 몰이해는 지켜보는 사람조차 숨가쁘게 한다. 유일하게 남북은 8월15일을 해방의 날로 인식하고 기념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정책 구상도 이날 제시한다. 남쪽에는 해방과 분단을 자각할 수 있게 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각종 기념행사가 많다. 기억하건데 북쪽에서의 8월 15일은 남쪽에서 열리는 행사만큼 요란하지 않다. 북쪽은 1995년부터 8월 25일을 선군절로 기념한다. 8월 25일은 선군정치 시작을 기념하는 국가적 명절이자 휴일이다. 그 시기 나는 고향을 떠났고 북쪽에서는 군(軍)을 우선하는 정치를 했다. 이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넜다. 그렇게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수는 파악하기도 어렵고 여러 경로를 거쳐 대한민국에 입국한 사람은 3만명을 훌쩍 넘는다. 이산가족은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실향민만이 아니다. 1990년대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이들의 아픔도 이야기되어야 할 때이다. 진정한 광복은 분단으로 아프고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돌아갈 고향조차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읽어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정말로 아픈 사람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너무 아파서 그 아픔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적당한 표현조차도 없다. 분단이라는 괴물은 불신과 몰이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아니면 지각하지 못하게 한다. 북쪽 김여정의 말처럼 의식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볼거리 먹을거리 풍성한 곳에서 뼈를 깎는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분단, 통일, 광복이라는 단어가 멀어져 구경꾼이 되어가는 내 모습도 보게 된다. 이제는 아픔도 무뎌져 간다. 생명을 갉아먹는 아픔 따위는 흘려보내고 선선한 바람으로 익어가는 가을을 기다려 볼 일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하루에 의미를 두고 기대하고 희망하기에 시간은 너무 빨리도 흐른다. 뒷산에 도토리는 몇 년에 한 번씩 풍작이다. 떨어지는 도토리를 보니 올해 많이 내릴 것 같다. 파들거리는 파동이 감동을 몰아오던 고향 도토리 묵 한 그릇이 생각난다.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는 삼십 년을 살아온 나의 고향이다. 진정한 광복이란 용인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점심에는 북쪽 고향에서 도토리 묵 한 그릇 먹고 저녁에는 두만강을 건너 아들을 잉태했던 곳까지 돌아보고 오는 것이다. 시간의 토막을 이어주어야 해방이고 기념일이라 생각한다.
윤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큰 기대는 안했지만 어려운 국내 정국을 감안할 때 나름 획기적인 대북정책 관련 대북제의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를 했었다. 식량지원을 포함 발전, 항만, 농업기술, 의료, 국제투자 금융지원 프로그램 등 그간 북한에게 제의했고 또한 북한이 원하는 모든 내용이 포함된 그야말로 ‘담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조건이다.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준다면’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참 답답한 것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한 것은 ‘90년대 초 핵문제가 대두된 후 수 십 차례는 될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계속해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해 왔으나 지난 2018년 판문점, 평양남북정상회담과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그들의 진성성을 확실하게 확인한바 있다. 남한의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국민 앞에서 직접, 자유롭게 연설을 하도록 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같은 조건을 제시하며 ’담대한 구상‘을 얘기 하니 북한이 발끈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 정부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북한관련 문제를 정쟁화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전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한반도 핵문제를 우리가 해결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 전 정부의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처한다면 성공하는 정부로 인정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말이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문제나 연금, 노동, 교육개혁 등이 모두 난제임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 어려운 문제에 몰입해도 부족할 시간과 정력을 잘못된 길에 낭비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북한을 바로 볼 수 있는 관점의 전환과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높고 넓은 마음을 갖는다면 새 정부를 선택한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윤 대통령께서 2018년의 일련의 남북정상회담 과정과 북미 1차 싱가포르회담의 경과를 정확하게 분석을 하고 이듬해 하노이 2차 북미회담 결렬의 근본 원인을 파악한다면 북한 핵문제 나아가 남북관계 재개와 발전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통령 취임시에 했던 선서를 잊지 않길 바란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노력은 지금 안고 있는 북한핵문제 해결 노력이라는 사실 명심하시길 바란다. 문제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전 정부가 평양회담에서 약속했던 일들을 내가 실천 하겠다는 결단만 하면 된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의 모라토리엄과 제재완화를 동시에 추진하자는 뜻을 미국측에 전하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초대함이 어떨까. 일단 대화를 시작함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나름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 생각된다. 평화 가치의 최 우선성, 그리고 북한이란 존재의 이중성, 지금은 적이지만 다시 함께 살아야 할 형제라는, ’우린 원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1. 불세출의 평론가 김현 제자 중에 정과리가 있다. 정 교수가 사십 초입일 때, 스승에게 요즘 논어를 읽고 있노라고 말했다. 김현은 그래? 하면서 말꼬리를 올렸는데, 눈치 없는 제자는 이어 말했다.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었어요. 내가 이 에피소드를 읽은 건 서른 초반이었다. 논어를 읽으면서 무척 행복하다는 제자의 진술에 스승인 김현이 마뜩잖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공자님 말씀을 읽으면서 세상 행복하다는 말이 기껍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도록 께름한 게 남았다. 사십 중반에 들어 스승 밑에서 논어를 읽으면서 비로소 정 교수의 행복을 공감했다. 옳게 된 선생님 지도 아래 읽는 논어 말씀은 그 자체로 천국이었다. 성현의 가르침이란 일점일획도 틀림없어서, 읽는 도중에 자꾸 눈물이 났다. 하근기인 내가 공부자 말씀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바로 태평성대로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논어를 읽고, 대학과 중용도 읽고, 노장에 주역도 얼추 떠들어 보았지만, 성현의 말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20대 초반에 알게 모르게 맑시즘 세례를 받았던 세대로 불의한 군사정권을 타도하고, 혁명을 통한 만민 평등을 부르짖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말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공자의 말은 옳고 바르므로 세상의 악을 광정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것은 간절한 개인이 모이고 모여서 비로소 거대한 흐름이 되고, 들불이 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치를 깨닫고 나니, 김현이 왜 제자의 독서에 혀끌탕을 쳤는지 알겠다. 제자가 성현의 말씀 대신 한국문학 텍스트를 더 파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의 나이 갓 서른에 발표한 ‘민중문학의 의식구조’에서 민중문학의 한계와 방향성을 예리하게 짚어냈던 것처럼, 더 높은 성취를 낼 수 있는 제자가 논어를 읽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때, 스승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다. 물론 그가 행하는 인사와 정책,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멋진 말씀들 덕분이다. 당선 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개인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사람 보는 눈도 가관이다. 그러니 그의 치세에서 우리가 어떤 희망을 걸겠는가. 그와 국민의 힘 인사들 입에서 아무리 훌륭한 말씀들이 쏟아진다고 해도, 논어 말씀 한 줄에도 미치지 못할 터다. 그러니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 이 글을 쓰는 8월 23일은 처서다. 더위가 그치는 날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노염은 한참 동안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그러니 처서란 절기로 오늘을 기억하지 말고, 21년 전, 2001년 오늘에 우리가 예정보다 3년 먼저 IMF 차관을 상환한 날로 기억하자. 1945년 8월 15일에 나라를 되찾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광복할 것이 많다. 나라 빚도 갚아야 했고, 자주국방도 되찾아야 하며, 남북통일도 기어이 이뤄야 할 일이다. 통일이 너무 멀다 싶으면, 저 허영청한 대통령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리해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