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이후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벌은 재벌대로 참여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위축된 세계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정경제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비롯한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고, 선진국의 긴축 재정정책은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와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미 디폴트 상태에 있고 몇몇 국가는 디폴트 직전이다. 과연 한국 경제는 이로부터 자유로운가? IPEF 참여는 작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상황을 악화시킬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또 다른 결과는 ‘지경학적 분열’ 현상이다. 세계는 러시아에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는 진영과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 또는 강화하는 진영으로 양분화되고 있다. 설상가상 IPEF의 출범은 지경학적 분열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IPEF가 러시아 진영에 속해 있는 중국의 고립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난 30년간 ‘통합’의 힘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경제 규모를 3배로 늘렸으며, 십 수억 명의 극빈층을 구제하였다. IMF 조사에 의하면, ‘지경학적 분열’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그간 누려온 수출 증대 및 기술 노하우 습득을 통한 부의 축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부담과 혁신 파트너 상실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분열’은 고소득 전문가, 중소득 제조업 종사자, 저소득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득 계층에 피해를 준다. 특히 기술 부문의 ‘분열’은 관련 국가의 GDP를 5% 감소시킬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공급 사슬을 새롭게 재구축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투자장벽으로 인한 비효율로 인하여 통합 이전의 ‘결핍’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지경학적 분열은 기업 경영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주가가 급락한 이유는 미국의 금리 인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경학적 분열이 가져올 시장의 축소와 그로 인한 매출 및 이익 감소 우려 또한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다.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존과 지속 가능 경영이다. 기업 경영자는 ‘탈통합’에 선제적으로 앞장설 필요는 없다. 기존의 글로벌 ‘통합’의 이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서서히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긴 호흡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도 수출 및 수입의 다변화 정책을 통하여 공급 사슬 재구축의 소프트랜딩에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강대국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 맞추어 대응하여도 늦지 않다.
공동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회적 자본은 신의가 첫째로 꼽힐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신의이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는 곧잘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운다. 예부터 왕과 신하, 백성 상호 간, 스승과 제자, 부부 사이, 부자 관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자 판단 근거이었다. 춘추전국시대 秦 나라의 실력자 公孫 앙(鞅)은 위 나라에서 사이좋게 지냈던 公子 앙(卬)을 전쟁터에서 상대국 장수로 맞는다. 하지만 공자 앙에게 과거 인연을 미끼로 서로 싸우지 말고 동시에 병력을 철수시키자며 거짓 화친을 제의한다. 그는 이에 속은 공자 앙을 불러내 붙잡아 죽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의는 무너진다. 새로 등극한 왕이 ‘믿음이 안가는 인물’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시 위 나라로 피신했으나 하급 현령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대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니 내가 당신을 챙겨주어야 할 도의란 찾을 수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속임수로 권력에 오른 자의 배신행위가 낳은 인과응보이다. 권력자들은 주로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신하곤 한다. 무릇 사익에 빠진 자들은 처음에는 서로 돕지만 나중에는 미워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마는 법이다. 신의와 함께 지혜가 공직자의 소중한 덕목이라고 역설하는 역사적 사례도 넘쳐난다. 나라를 망칠 군주는 겉보기에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고, 간신 역시 충신처럼 위장하니 제대로 사람 됨됨이를 살필 일이다. 역사는 지혜를 갖춘 권력자의 작은 善은 큰 선을 불러오지만 어리석은 자의 작은 악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가르친다. 중국의 西周 왕비 포사가 나라를 망친 것도 유왕이 지혜를 못 갖추고 그녀의 작은 즐거움에 집착했던 탓이다. 결국 나라는 망해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의 신하들이 모두 달아나 버리고 유왕 자신도 참극을 당하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지난 3월25일자 '공동선' 참조) 오늘의 대한민국은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자신이 전임 대통령에게 검찰 개혁을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이를 배신해 최고 권력에 오른 사람이다. 나아가 검찰 조직을 진두 지휘해 개혁을 추진하는 인사를 도륙을 내더니 대통령이 된 이후는 아예 검찰공화국의 건설에 몰두하는 듯하다. 또한 그 부인은 엉터리 논문에 허위 이력,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도덕적 기준을 넘어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법과 원칙’ 적용 기준에서는 예외인 듯하다. 도덕적 틀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새 정부에서 신뢰는 누구에게 구할까? 개인이나 법인, 특히 모든 권력은 유한한 생명체이다. 언젠가는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시민들의 어깨가 이제 조금 더 무거워졌다. 기본적 신의마저 저버린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일이 우리 역사 앞에 놓인 것이다.
할머니가 앉았다. 시장 입구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한다. 생김새만 보아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천막 같다. 생김새만 닮았을 뿐, 저렇게 작은 천막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쪼그리고 앉은 라면 박스 위로 비가 들친다. 할머니 발치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에도 비는 어김없다. 상추랑 쑥갓은 이천 원이고 고추는 천오백 원이다. 파란 바구니가 상추랑 쑥갓이고 빨간 바구니는 고추다. 빨간 바구니는 파란 바구니보다 작다. 할머니의 굽은 어깨도 비닐을 씌운 우산보다 작다. 우산을 씌운 비닐을 타고 빗물이 줄줄 흐른다. 비닐 안쪽은 할머니의 입김으로 뿌옇다. 비 오는 날의 하루가 뿌옇다. 할머니 앞에 아주머니가 앉는다. 두부가게 아주머니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하는 할머니에게 콩물을 건넨다. 콩물 담은 바가지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으..
“‘기자’ 대신 ‘기레기’를 요구하는 자본”. 지난 6월 14일 KBS 아침 뉴스 한 꼭지의 제목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KBS의 우리은행의 라임주가조작 관련 보도와 호반건설의 ‘2세 일감몰아주기’ 관련 보도에 대해 두 기업에서 해당 기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고 개인재산 채권가압류를 신청했다. 겁주기를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이라 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이 나온다 해도 담당 기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재벌기업의 언론 장악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30년 전에 ‘김중배 선언’이 있었다. 1991년 동아일보는 두산에 의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집중보도했다. 대광고주 두산은 동아일보 사주를 통해 집요하게 보도 통제를 시도했고 이에 저항하던 김중배 편집국장은 결국 사퇴한다. 그 퇴임사가 바로 ‘김중배..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 여전히 매끄럽지 못하다. 정치신인이 정권을 잡은 현실 때문에 어느 정도 혼선과 부실이 불가피하리라는 예측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국내외적 환경이 험궂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마저 여야의 강경 대치 국면을 무한정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국정운영에 불협화음이 불거지는 모습은 분명히 국민의 걱정거리다. 행정부가 원활한 국정운영 시스템 안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움직임에 반발하여 임기종료를 며칠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권고한 경찰국 신설안을 그대로 수용하자 이에 반발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흘 전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를 놓고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질타하고, 대통령실이 즉시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의 인사 검증 동의서를 받는 등 압박이 가해진 끝에 일어난 불협화음이다. 이른바 검수완박법이 올 9월부터 시행돼 경찰의 기능과 역할이 큰 폭으로 확대되는 만큼 새로운 경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방안이 마련돼야 할 계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권력에 예속된 경찰상을 혁신하기 위해 지난 1991년 옛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경찰청을 분리했던 역사를 고려하면 이 문제를 이렇게 성급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대통령실의 엇박자 노정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노동정책과 관련된 전혀 세련되지 못한 정책추진 과정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주 52시간제 개편’ 방침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 만에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뒤집은 일은 정책 방향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도무지 호흡이 맞지 않는 정부의 허술한 행정과정의 허점을 노출한 것이다. 이처럼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잡음을 빈발하는 것은 여러 요인을 상상하게 한다. 그 첫 번째 문제점은 윤석열 정부가 뭔가 시간에 쫓기는 듯 지나치게 서두르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바뀐 정권이 정책을 바꾸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집권 초기에 제대로 된 포석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정이란 아무리 신속하게 하더라도 지나치게 소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은 집권 초기인데도 승리감에 취한 채 일찌감치 긴장감을 떨어뜨린 것은 아닌지 하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시기에 닥친 국내외적 환경은 결코 녹록한 형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먹구름이 돼버린 세계적 경제 위기가 몰고 올 민생의 고통을 생각하면 정부가 이렇게 엉성한 팀워크를 노출할 여유란 조금도 있지 않다. 이런 정도의 느슨한 실력으로는 물가·금리·환율 등의 복합 경제 위기, 퍼펙트스톰을 슬기롭게 대처하기란 버거울 것이다. 굳이 정치신인 대통령의 집권이 아니더라도, 정권 초기 손발을 맞추는 시기에 일어나는 어느 정도의 잡음과 실책에 대해서 민심은 당분간 야멸차게 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부 불협화음과 원만하지 못한 국정운영이 지속될 경우에 닥치게 될 민심 이반은 예측을 벗어난 혹독한 국가적 불행을 야기할 수도 있다. 닥쳐오는 난제들을 유능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빈틈없는 국정운영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장마철에 열대야가 겹쳤다. 비 소식이 그치지 않고, 연일 6월 최저 기온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장마철에는 식중독, 신경통, 호흡기 질환 등이 늘고 건강에 이상이 없는 사람도 신체 조절 능력이 떨어져 실수가 잦아진다. 꿉꿉한 공기와 제대로 마르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옷, 조금만 움직여도 끈적끈적해지는 습도에 불쾌지수도 올라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게 되고, 일조량이 부족해 불면증과 우울증도 짙어진다.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고 다닐 만한 시기다. 그러나 장마철에도 여행은 계속된다. 삶의 모퉁이에서 연속된 불행이 잠시 멈추고 숨 고를 시간을 주지 않듯 날씨도 사람들의 사정을 봐주며 잠시 쉬었다 가라고 맑은 날을 안겨주진 않지만, 삶처럼 여행도 끊이지 않고 지속된다. 비가 내리는 날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실내관광지다.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식물원, 온실, 실내 물놀이장, 찜질방, 실내 동물원, 아쿠아리움에 카페, 원데이 클래스 체험, 영화나 공연까지 실내에서도 즐길 수 있는 여행은 얼마든지 있다. 이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내관광지에서 실내관광지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실내형 여행’은 쾌적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송보송하고 청량하게 유지한 곳에서 여행을 즐기다 보면 치솟았던 불쾌지수도 사그라든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만 가능한 여행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던 비가 내리면 길을 떠난다. 우비를 입고 방수가 되는 신발을 신은 채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떨어지는 물을 보러 간다. 비 오는 날의 폭포는 장관이다. 평소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벗어나 자연의 위엄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숲으로 들어간다. 비 오는 날의 숲은 소란스러운 동시에 고요하다. 툭, 툭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해진다. 식물들은 온몸으로 비를 받아들이며 초록을 내뿜고, 동물들도 숨죽여 비를 맞이한다. 숲은 빗속에서 생명력을 발산하고, 숲을 찾아간 사람은 맑은 날과 사뭇 다른 길을 걷는다. 비 오는 날은 준비할 게 많다. 신발과 옷을 못 쓰게 될 수도 있고 안전도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꿋꿋하게 빗속으로 들어간다. 비를 맞고, 비의 향을 느끼고, 비와 함께 숨을 쉬며 그 시간을 온전히 체감한다. 맑은 날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경치를 발견하고 맞이하며 새로운 시선과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궂은 날이 이어진다. 뉴스와 신문을 보며 한숨만 뱉는 사람부터 묶인 자금에 가슴을 움켜잡는 사람까지 인상을 찌푸린 사람이 늘어간다. 피하든 그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든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장마철은 해마다 돌아오며, 무사히 버텨낸다 해도 이후엔 폭염과 태풍이 기다리고 있다. 그 어떤 시기든 그 시간만의 새로움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자연형 여행작가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공기업들이 지난해 거액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18곳이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약 4000억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인데도 임직원들에게 총 1586억원의 성과급을 줬다.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도 각각 772억원, 110억원의 성과급을 나눠가졌다. 사기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한계공기업의 ‘성과급 잔치’가 가능한 이면에는 문재인 정부가 평가지표에서 ‘경영실적’ 점수 비중은 낮추고 ‘사회적 가치 구현’ 비중을 높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350개 공공기관의 정규직 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30만 7690명에서 지난해 41만 6191명으로 10만 8501명(35.3%)이나 늘었다. 공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먼저 경영평가시스템을 개편하고 재무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경영 평가 항목 중 전 정부가 대폭 높인 사회적 가치는 배점을 낮추고 경영 성과 배점을 다시 높여야 한다. 이와관련해 경영평가시스템의 지속성이 중요하다. 그동안 공기업의 부실 또는 방만한 경영이 이뤄지게 된 동기를 보면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권코드’에 맞는 평가항목이 새롭게 들어가고 또 평가 비중에도 변동성이 확대된 탓이 크다. 정권이 바뀌어 눈높이가 크게 달라지면 경영 안정과 추진력을 확보할 수 없다. 윤 정부는 전 정부가 과도하게 비중을 낮춘 재무 부문을 조정하되, 5년후 다른 정권이 들어서도 이번에 달라질 경영평가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도록 공익적 가치와 재무상태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기관장에 대한 철저한 실적평가가 요구된다. 공기업 기관장은 일반 행정부와는 다르게 정권의 전리품처럼 전문성이 결여되거나 무시된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했다.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정무적 인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선 과정에서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고, 임명된 이후 CEO평가를 보다 치열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윤 대통령이 특히 정치인 출신들의 기관장 인선에서 예전보다 훨씬 높은 잣대로 전문성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다행스럽다. 셋째 책임과 함께 공기업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공기업의 부실한 경영 내용을 보면 자원외교,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임원 인사 등 역대 정권(청와대)이나 해당부처에 과도하게 예속된 경우가 많았다. 또 기관장과 손발을 맞춰야 할 일반 상임이사 인선 등에서도 외부 입김이 강해 인사가 왜곡되거나 늦어지는 파행 사례가 많았다. 큰 방향에서 정부와 호흡을 맞춰야 하지만 공기업과 기관장의 재량권이 대폭 개선돼야 한다. 그래야 책임도 물을 수 있다. 끝으로 공공기관 개혁은 정부, 정치권 등 다른 부문의 혁신이 동반돼야 저항을 줄이고 추진 동력을 배가시킬 수 있음을 명심하자.
개봉과 동시에 엄청 화제를 모을 것이 확실히 되어 보이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에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형사는 자꾸 자신 앞에 용의자가 돼 나타나는 여자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이 대사는 이제 여기저기서 패러디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여자의 대답은 이거였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남자 형사의 저 대사를 지자체장들에게 해주고 싶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특히 새로 되고 나면, 늘 만만한 게 영화제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영화제를 만들겠다, 혹은 만들어 달라 등등 이쪽 전문가들에게 요구와 부탁을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영화제 하면 그저 극장에 영화를 ‘갖다 붙이는 행위’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거,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오? 얼마면 된다는 거요, 식이다. 문제는 영화제가 그렇게 만만한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극장에 영화를 갖다 붙이는 것만으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영화제를 돈만 가지고 할 생각이라면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수없이 영화제를 해 온 사람으로서 그럴 때마다 지자체장 당사자에게 거나 관련 공무원에게 분명히 경고성 얘기를 건넨다. 영화제는 한번 시작하면 ‘빽도’가 불가능하다, 한번 멈추거나 연기하는 순간 중단되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영화제란 존재를 알리기까지 최소한 3년의 시간이 걸린다, 길게는 5년까지 걸린다,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단체장의 임기는 4년이다. 혹시 선거에서 지고 단체장이 교체된다 하더라도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등등이다. 대체로 초기에는 모든 걸 호언장담한다. 그리고 많게는 수십 억, 아무리 적어도 10억 내외를 투여해 첫 해 영화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체로 3년이 못 가서, 혹은 그 언저리에 사단이 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현재 강릉국제영화제다. 이 영화제에 대해서는 신임 시장이 선거 운동 당시부터 아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매년 10월 말 혹은 11월 초에 열리는 이 영화제는 지난해까지 3회를 했으며 예산은 매년 30여 억원 가까이 투입돼 왔다. 지금 폐지한다면 백억 원 가까이를 허공에 날리는 셈이다. 영화제를 단체장의 취향에 따라, 정치적 의도에 따라 만들었다 없앴다 하는 식으로 하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영화제 자체를 우습게 안 결과라느니(영화제를 하려면 수십, 수백 편의 영화를 사전에 검토하고 일일이 저작권 이슈를 해소하고, 돈을 들여 수급을 해서는, 한 편 한 편 번역과 자막 작업을 해야 한다. 그걸 번인으로 할 때가 있고 슈팅 기법으로 자막을 할 때가 있다. 그런 것도 결정해야 한다. 번인은 스크린 안에 자막을 심는 기술이다.) 영화인들에 대한 모욕적인 행태라느니(한번 씹고 버리는 껌처럼 자신의 정치적 홍보에만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기에도 지쳤다. 그냥 막대한 예산 낭비를 지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의 얘기만 하고 싶다. 다 지역민들이 세금으로 낸 것, 국민이 세금으로 낸 것으로 예산을 충당했고 그 돈이 헛되이 쓰인 결과가 됐다면 결국 국민과 지역민들만 희생이 된 꼴이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열어서 외부인사들, 배우들, 연예인들을 초청하려면 숙박과 교통이라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역으로 얘기하면 영화제를 하면 지역의 숙박시설, 교통 인프라가 확충되고 발달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쪽이 먼저 돼야 한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한쪽이 한쪽을 자극시키고 결과적으로 산업이 확장되는 형태로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전략적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일단 영화제를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와 동시에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얘기를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려고 한다. 앞에서는 네네 하면서도 뒤에서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된다는 소리를 반복한다. 그렇게 충돌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 영화제가 현재 전국적으로 270개가 넘는다. 발상의 전환, 의식의 전환을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한국에 영화제가 많은 이유는 극장 환경 때문이다. 국내 극장에서는 오로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상업영화밖에 볼 수가 없다. 예술영화, 비상업영화, 독립영화는 오로지 영화제에서 밖에 볼 수가 없다. 영화제가 많아진 원초적인 이유는 극장 문화의 균형이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이걸 수정하고 복원하면 영화제의 수도 자연스럽게 정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영화제가 복무해야 할 것은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중국의 시장 의존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시장을 개발해야 하는데 6억 5000만 명에 이르는 아세안(ASEAN) 10개국 만한 곳이 없다. 전 정부의 新남방정책은 윤석열 정부 들어 가차 없이 폐기됐다. 영화계 입장에서 보면, 실로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복무해야 할 두 번째 방향은 철저하게 지역화하고 소규모화 하라는 것이다. 전국 단위의 영화제는 부산과 전주, 부천 정도로 됐다. 다른 영화제들은 공연히 ‘국제’ 소리 붙이며 몸집만 키울 필요가 없다. 과도한 욕망이다. 지역에 맞는 콘셉트로 지역 축제로 만들어 내되 콘셉트도 특색 있게 좁힐 필요가 있다. 날자도 줄이고 편수도 줄여서 예산 역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다. 수십 억을 들인다 한들 스태프들 월급은 거의 최저 수준을 밑돌 때가 많다. 그건 실로 괴이한 일이다. 하여 영화제를 만들겠다고 하는 단체장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 정말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현재 영화제를 없애겠다고 발 벗고 나서 있는 시장이나 군수, 혹은 시의회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다고 생각하는가? 하기사 대통령이 EU가 아니라 NATO에 가서 경제실리외교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하는 현실이니. 실로 자괴스러운 나날이다. 할 말이 없다.
공기업 6월은 인사철이다. 상반기 퇴직일정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느라 각종 모임마다 작별인사가 이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빠져나가느라 떠들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 퇴직인사 자리는 분위기가 조금 독특하다. 아무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없다. 떠나는 사람이야 아쉬움에 그렇다 치더라도 분위기메이커가 되어야 할 후배들마저 자뭇 심각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철도공사는 정부 지분매각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권발 노동시간을 92시간으로 연장하느니 마느니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러니 후배들은 “또 얼마를 싸워야 할지..”라며 떠나는 선배들을 외려 부러워하기도 하는데.. 일전에도 적은 바 있지만 철도기관사 입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폭주기관차”라는 말이다. 거대한 중량과 힘을 가진 기관차가 폭주한다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잘 아는 입장에서 꿈에라도 떠올리기 싫은 말이다. 그런데 두 달된 윤석열 정권을 보노라면 이 끔찍한 단어가 떠오른다. 인플레와 불경기로 허리가 휘는 국민들은 뒷전이고 요직이란 요직은 죄다 검사출신 측근으로 채우며 세간을 경악케 했다. 이 정도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국방부청사와 공관을 빼앗곤 4성장군 7명을 임기와 상관없이 한꺼번에 옷을 벗겼다. 국정원 1급 27명을 전원 대기발령시키고, 경찰고위직 인사를 화투패 뒤집듯 뒤집어놓곤 되려 ‘국기문란’이라 거품을 물었다. 거기다 부동산이건 세금이건 죄다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만 매일 땡윤뉴스로 흘러나오니 국민들은 폭주기관차를 마주하는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폭주기관차 같은 윤석열 정권이 더욱 무서운 것은 공동체의 제어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 때문이다. 권력의 폭주를 제어하는 장치는 언론과 야당이다. 돌아보라. 지금 대한민국에 참언론이 있는가? 제대로 된 야당이 존재하는가? 눈이 먼 탓인지 나는 찾아볼 수 없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이 인사후보자만 내놓으면 코드인사니 보은인사니 하면서 씹어대던 언론들은 역대급 참사에 가까운 현 정권의 인사에 대해선 꿀먹은 벙어리다. 속칭 김학의동영상을 보고도 김학의를 몰라보고 선배를 선배라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 검사들의 안구질환이 언론에 집단으로 전염된 듯하다. 대한민국3대천재 중 하나로 놀림받는 한동훈 장관의 딸과 나경원의 아들이 모두 무혐의를 받아도 어느 언론도 조국 전 장관의 딸과 비교해 문제를 제기하진 않는다. 야당은 또 어떤가? 당권이란 잿밥에만 눈이 멀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누구는 당대표에 나오지마라며 떼거지로 아우성이니 살다살다 출사표는 들어봤어도 ‘출사저지표’는 또 처음이다. 당선가능성 1도 없는 사람이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면 당이 깨질 것이라며 내가 안나갈테니 너도 나오지 말란다. 팬도 없는 정치인이 자기 당 팬덤을 능멸한다. 부끄러움이 없다. 이러니 코미디프로가 폐지되고도 남는다. 대한민국에 예고된 위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철도에는 폭주기관차를 막기위한 방편으로 탈선전철기라는 장치가 있다. 통제 없이는 절대 진입하지 말아야 할 구간에 실수로라도 진입할 경우 무조건 탈선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놓은 선로전환기를 말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서는 안 될 길로 밀고 들어가는 폭주정권에게 탈선전철기 역할을 해온 것은 시민사회였다. 제어장치가 마비된 위기의 대한민국에 시민사회가 최후의 보루로 또다시 탈선전철기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언론과 민주당만 정신차리면 된다.
시절 참 수상하다. 국내외 험한 정세는 끝내 죄없는 민초들을 희생시키고 미봉될 것이다. 나는 지금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 나라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저 악몽이었으면 좋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 어째야 하나. 이렇게 걱정이 태산일 때, 나는 종종 안전하고 편안한 은신처를 찾아 찐하게 의존한다. 오늘은 그곳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서 벗들과 측은지심으로 동병상련한다. 한 친구가 불안한 미래를 높은 통찰력으로 예언하면 착하게 받아들인다. 이 진지한 실용주의의 시간은 한 사내가 두부김치에 막걸리 서너 병을 시키면서 이내 막을 내린다. 침울의 그늘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활기를 띤다. 술은 다정하고 똑똑한 친구들 보다 늘 곱절로 유력하고 우호적인 물질인 것이다. 오죽하면 서양의 멋쟁이들이 술을 '스피릿'이라 했겠는가. 번역하면 '술은 올바른 정신(spirit)을 일깨워주는 실로 큰 친구, 대붕(大朋)'쯤일 거다. 실은, 이 정도는 세상의 모든 술집에서 가능한 체험이다. 인사동 주점에서 그 기본 미덕에 더하여 매번 특별한 감동과 기쁨을 주는 까페가 하나 있다. 후배들이 '서정춘이라는 시인'이라는 시집을 헌정한 그 시인이 홍보부장이다. 문화공간 '시/가/연(詩歌演)'. 거기에는 항상 시와 노래, 공연이 있다. 우정과 환대가 있다. 시인 김영희와 건축가로 소리시인(시낭송가) 이춘우는 짝꿍이다. 이 집 주인이다. 40명쯤 앉을 수 있는 공간에 무대와 피아노까지 다 갖춰 놓았다. 손님 중 누구든 나머지를 관객으로 하여 시낭송, 연주, 노래를 할 수 있다. 나도 취하여 이 무대에 올라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를 암송하고 '남도의 비'를 불렀다. 소설 '옥봉'의 저자인 장정희 선생과 함께 한 곳도 여기였다. 우리말 지킴이 故 외솔 최현배 선생의 장남은 최영해 정음사 대표고 그 아들이 최동식 고려대 화공과 교수다. 시/가/연은 최영해/최동식 부자의 제사를 모셔 왔다. 정음사는 윤동주 시집 초판본을 낸 출판사로 유명하다. 故 이창년 시인의 제사도 지낸다. 각박한 인생살이의 어느 지점에서 만난 타인들에게 이렇게 뭉클하게 예를 다하는 건 이 부부의 품격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생진, 임보 등 걸출한 시인들과 박찬일, 서봉석 시인 등이 시가연에서 시창작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각각 운영한다. 또 우리가곡 부르기는 손종렬 단장, 영화모임은 최명우 교수, 판소리 모임은 이규호 교수가 이끌고 있다. 임진택, 김명곤 등도 이 무대에 섰다. 지난 주 안주인의 초대를 받고 갔다. 국내 현역 최고령(97세) 성악가 테너 홍운표 선생과 17세 바리톤 박원일군의 80년 세월을 무색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놀라웠다. 바리톤 원영재(80세), 바리톤 양태갑 선생과 이경혜 교수(75세) 등이 함께 하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문화감성이 폭죽이 된 거였다. 그 무렵 또 다른 날, 동국대 불교학과 박경준 교수, 울산대 건축과 김선범 교수, 관동대 환경학과 김영덕 교수와 함께 했다. 모두 70대 초반의 명예교수들인데 50대 청춘의 안색에 연주와 노래는 프로에 가까웠다. 한참 아래인 나는 그 틈에 끼어 모처럼 유쾌했다. 전공도 다른 그들은 시가연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한다. 전설의 운동가요 '직녀에게'는 박교수의 동생 박문옥이 작곡한 걸 그날 알았다. 이별이 너무 길다. 그래서 슬픔도 너무 길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시가연은 이처럼 날짜와 요일을 달리하여 열 개의 학교로 가동된다. 손님은 자동으로 관객이 되고 수줍음만 떨쳐내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주객 구분 없이 함께 즐긴다. 이곳 벽면에는 수천 권의 시집이 꽂혀 있다. 이들의 가슴은 따숩고 넓다. 머리는 옳다. 이 멋으로 코로나도 이겼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생진 시인(94세)은 '섬의 시인'답게 특구 인사동을 '인사島'로 개칭한다. 대한민국을 서울로 줄이면 인사동은 제주도격이라는 것. 시가연은 '인사도'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가/연! 실로 희귀하고 소중한 문화예술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