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대 미용실 주인이 전단지를 우편함에 넣었다는 이유로 70대 할머니를 다그쳐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만든 해괴한 일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이 깊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강퍅한 인심이 공존하면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서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세상이 온통 대통령 선거 같은 거대담론에 휘둘리고 있을 때 사회의 저변을 잠식하는 몰상식, 몰인정한 처사들이 인심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반증이다. 구성원들의 인성이 이토록 망가진 천박한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사건은 한 유튜버가 자신의 방송에 할머니 B씨가 무릎 꿇고 사과하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다. 공개된 사진에는 얇은 패딩 소재 점퍼를 입은 한 여성이 미용실 내부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비는 모습이 담겨있..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거대한 대기가 내 책을 폈다가 다시 접는다. 가루 같은 물결이 바위에서 솟아난다! 날아가거라 정말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희열하는 물로 부숴라. 삼각돛들이 모이를 쫓고 있는 이 지붕을. 계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거대한 바람, 치솟는 파도, 부서진 포말. 시원하고 거침없는 한나절의 해안가 파노라마다. 해변의 묘지(Le Cimetière marin). 20세기 최대의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대표작이다. 이 시를 발레리는 그의 고향 세트(Sète) 언덕에 있는 한 공동묘지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 스산한 공동묘지. 그 묵중함을 경쾌한 미로 승화시키는 이 마법. 거장 발레리가 아니면 누가 감히 이 기교를 부릴 수 있겠는가. 이 마법은 발레리의 고향 세트로부터 나왔다. 발레리의 정신적 동반자였던 세..
조중동에스와 종편 등 ‘적폐언론’의 무기는 불법, 탈법으로 장악한 기득권과 선택적 ‘담합저널리즘’이다. 이들의 특권을 통한 여론시장 개입과 왜곡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최근 이들 적폐언론의 부당한 기득권과 여론시장에서의 횡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 서울행정법원은 11월 19일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셜록 등 ‘독립언론’들이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서울고등검찰청)을 상대로 제기한 ‘출입증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거부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법조기자단’을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법원은 “신청이 거부됨에 따라 침해되거나 제한되는 기본권 내지 법률상 이익은 그 소속 기자들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언론기관 고유의 것도 포함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적시함으로써 배타적 기자단 운영으로 특정 언론기관이 배제될 경우, 그 언론과 관련한 국민의 보편적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법조기자단 카르텔은 검찰과 언론 유착과 ‘부당거래’의 핵심 고리였다. 감시대상과 감시자의 담합결과 언론사는 기소되지 않는 특권집단이 되었고 검찰비리는 언론보도의 성역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검찰기자단 폐지 국민청원에 대해 34만 3622명의 국민이 동의를 표한 바 있다. 둘. 경찰은 11월 23일 신문 발행 부수를 조작과 관련하여 조선일보 지국 6곳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3월 2일 언론소비자주권행동과 민생경제연구소 등 8개 시민단체에서 불공정거래행위와 보조금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3월 18일 더불어민주당 김승원·김용민 의원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 국회의원 30명이 ‘부수 조작, 광고비 사기 및 정부보조금 편취’ 혐의로 각각 조선일보를 검찰에 고발한 지 8개월 여 만의 일이다. 어떤 ‘조작 자료’를 확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셋. 서울남부지법은 11월 25일 부패방지법 위반과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혜원 전 의원 관련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천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손 의원의 거래가 시세차익을 통한 부동산 투기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끝까지 판다’며 집요하게 손 전 의원을 부동산투기꾼으로 몰고 갔던 ‘토건방송’ SBS는 2심 결과에 대해 “‘목포 투기 의혹’ 손혜원, 2심서도 유죄”라는 제목을 뽑았다. 자신들이 집요하게 문제 삼았던 사건이 무죄로 결론지어졌으면 일단 사과하는 것이 순리다. 수미일관한 왜곡보도로 자신들이 기레기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서울방송(SBS)의 손혜원 전 의원 관련 보도는 전형적인 ‘허위조작정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해당 언론사와 기자가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분위기다. 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손배제가 필요한 지 잘 보여준다. 대폭 강화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급하다. 다시 국회가 나설 차례다.
‘개고기 식용’ 관련 논란을 생각한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구라파와 미국, 특히 불란서에서 고급요리로 치는 푸아그라(foie gras)다. 유럽과 유에스에이(U.S.A. 아메리카), 프랑스를 동아시아 방식으로 부른 것은 ‘문화의 차이’를 보이고자 함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의 동아시아의 용(龍)과 동굴 속 공주를 구하는 기사(騎士)의 창에 찔려 피 흘리는 서구(西歐)의 드래곤(dragon)은 전혀 다른 상상의 동물이다. 상당수가 龍의 번역어가 ‘드래곤’이라고 착각하는 마당이다. 개고기 문제의 (문화적) 발생 지점으로 읽는다. 나는 푸아그라를 즐기는 저 사람들을, 속으로는 못마땅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먹어봤다. 맛있었다. 그 후 먹지 않았다. 그 뜻은 ‘기름진 간’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요리다. 한국의 일부 식품점, 서양..
한의원 대기실이 시끄럽다. 알고 보니 한 환자가 이사회 회의하다 말고 너무 아파왔다고 하며 빨리 치료받고 가야 한다며 간호사를 재촉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난 모양이었다. 처음 내원하면 하는 잠깐의 예진 시간에도 마음이 쫓기는 말쑥한 양복차림의 그는 붉은 얼굴과 크고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급하게 들어온 진료실에서도 목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데 중간에 나온 이사회 회의 걱정이 먼저이다. 목과 어깨 근육이 긴장으로 전체적으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고혈압으로 혈압약도 복용 중이다. 그녀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마감에 항상 쫓긴다. 예민한 성격인데 완벽하게 일하길 원하고 또 그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지속되니 몸이 영향을 받는다. 혼자서 일하다 보니 입맛이 없을 때도 있고 귀찮기도 해서 식사시간이 들쭉날쭉이다. 입맛..
여야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청년 대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20대는 강력한 유동층이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선출 등에서 청년층이 더 이상 특정 정당의 집토끼가 아님이 드러났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한 홍준표 의원에 대한 청년층의 반응은 이념과 기존 세대 개념을 뛰어넘는 흐름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2030 세대가 판을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은 ‘세대 간 자산 격차’ 보고서를 내놨다. 핵심은 지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10여 년 동안 모든 세대 중에서 가장 빠르게 자산을 증식시키며 앞 세대와의 격차를 줄인 세대는 3040이고, 반대로 자산 형성이 가장 늦고 앞 세대와의 자산 격차를 좁히지 못한 유일한 세대는 2030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대구조를 산업화 세대(1940~1954년..
나이가 드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도시,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살기 좋은 도시, 평생을 살고 싶은 도시에서 활력 있고 건강한 노년을 위해 모든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 이것이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하는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다. 그런데 인천시 미추홀구가 지난달 WHO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 가입 인증을 받았다.(본보 24일자 14면) WHO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 가입 승인은 교통, 주거, 여가 등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8대 분야별 지표를 충족시켜야 한다. 쉽지 않은 조건이지만 미추홀구가 이에 부합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전세계에는 1000여 개 고령친화도시들이 있다. 2010년 뉴욕이 세계 첫 고령친화도시에 가입했다. 우리나라도 2013년 서울시가 첫 번째로 가입한 이래 33개의 도시가 고령친화도시가..
난데없이 떠오른 음률. 그런데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하루 종일 기억의 재를 뒤지다 아하! 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영화 속 음악이었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 1990)’. 데보라 윙거가 나왔을 거야. 사막이 무대였어. 줄거리가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일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장엄한 주제곡, 처연한 느낌의 아프리카 음악들의 가슴을 적신 기억은 선연하다. 그 기억이 오래전 영화를 호출해 다시 보게 만든다. 영화 ‘마지막 사랑’의 무대는 아프리카 모로코다. 부부관계 권태와 작품 창작의 벽을 만나 여행길에 오른 작곡가, 작가 부부 포터와 키트. 그들 곁에는 부유하고 잘생긴 동행자가..
84년 즈음 한 친구가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책 제목이 ‘황강에서 북악까지’였는데 표지의 사람 얼굴이 낯익었다. 9시를 알리는 땡소리만 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를 시작했던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전대갈’이라 부르며 이를 갈았던 우리는 지피지기라며 책을 펼쳤지만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사과서리를 하다가 들켜서 거짓말을 했는데 이때 부끄러움 때문에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아버지가 악질순사를 강에 처박고 만주로 도망갔다면서(실상은 노름빛 때문이라는데..) ‘행패를 부리는 순사 놈을 보는 소년 두환의 주먹이 불끈’ 운운하며 시작하는데 80년대 피끓는 청춘들이 완독하기에는 보통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작가 천금성은 당시 권력핵심이자 서울대 농대 2년 선배인 허문도의 권유로 전기..
지난 22일 이재명 39.5%, 윤석열 40%라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윤석열 후보 캠프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김영환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를 받아 쓰는 언론도 있다”며 “혹세무민의 여론조사를 규제할 방법은 없는가”라고 했다. 많은 언론이 이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같은 날 개그맨 강성범 씨의 유튜브 채널도 뉴스원으로 등장했다. “정권을 재창출해서 다음 정부가 이 정부를 계승한다면 부동산 폭등에 대한 ‘원죄의식’이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부동산을 잡으려고 머리카락을 세울 것이다. 근데 정권이 넘어가면 ‘우리가 한 거 아닌데’라며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가 낮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이 이 내용을 보도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