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노사민정협의회가 산업재해를 줄여 나갈 수 있도록 모든 사회구성원이 주체로 참여하는 산업안전 민관협력(거버넌스) 구축에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산업재해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완전한 방지책을 후 순위로 미뤄둔 시대적 과제다. 신문명시대에 인명과 재산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번영의 목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민정협의회가 자발·자율적 산재 예방 목표를 달성하여 지방이 앞장서는 ‘산재 제로’ 사회 달성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김동연 지사를 비롯한 김연풍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의장, 김춘호 경기경영자총협회 회장, 노길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과 노사민정협의회 위원 등 5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며칠 전 ‘2023년 제2회 경기도 노사민정협의회’를 열고 산업안전 실천을 선언했다. 선언문은 지역사회 전체가 산업..
계묘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곧 갑진년이다. 1980년대 즈음에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던 선배로부터 신년 달력을 받았다. 우편물의 소인에선 따뜻한 냄새가 났다. 살다보면 호황이 있고 불황이 있지마는, 인생의 높고 낮은 파장 속에서도 변함없는 선배의 항심(恒心). 불현듯 받아둔 캘린더엔 “낭만과 멋스러움은 아직 살아 있단다”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는 듯 했다. 이 선물, 이익과는 무관한 정겨움이다. 안부를 전하는 아름다움, 애틋함이다. 교수신문은 올해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 : 이익을 보고 옳음을 저버리는 것)’를 꼽았다. 김병기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정치인은 (국민을)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견리망의를 사자성어로 추천했다. 이익과 옳음. 어떤 것이 우선돼야 하는 가치일까. 공자는 “군자라면 이익을 보면, 먼저 옳음을 생각해야 한다(見利思義)”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선 견리사의보다 견리망의가 쉽게 살아가는 방편으로 읽혀진다. 이긴 자의 편을 들고, 권력자의 힘에 아부하고, 옳음보다 이익을 먼저 생각하면 여러 방면에서 하등 차질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소인의 길이다. 당장 먹고 살길 없는 필부와 크고 작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다. 어찌 이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리사의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한 사람은 언제나 위대한 이웃이었다. 그런 점에서 언론매체에 보도된 류삼영 전 총경, 박정훈 대령, 봉지욱 기자 등은 대한민국의 보배 같은 의인들이다. 그들은 집단의 힘을 빌린 사람들이 아니라, 오롯이 바로 선 사람들이다. 혹자는 지금을 캄캄한 동굴의 시대로 비유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 옆에 의인들이 있기에 터널의 시대로 봐야 한다. 동굴은 출구가 없지만, 터널은 출구가 있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정과 상식을 왜곡하는 지형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게 세상 이치다. 지난 19일, ‘김건희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고발장이 공수처에 접수됐다. 권익위엔 신고서가 접수됐다. 현직 대통령 배우자의 뇌물 수수 의혹 보도는 알게 모르게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런데 더욱 ‘웃픈’ 건, 정권의 홍위병들이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북한 배후설” “정치 공작” “선물 보관창고에 보관 중” “함정 취재”라고 강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치졸한 변명이다.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주장했던, 그 이상의 후안무치다. 국가경제와 미래비전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공직자와 그 배우자의 사익에 눈 먼 모습을 일방향적으로 호위해야만 하는 현실세계. 어찌 보면 계급주의 정치의 어두운 단면일 수 있다. 정치는 정치대로 혼돈 국면인 가운데, 우리 경제는 올 상반기 누적 무역적자가 전 세계 순위 208개국 기준으로 200위를 시현했다. 180계단 내려앉았다. 다가오는 2024년. 부끄러운 동굴에 갇힐 것인지, 해방의 터널로 나아갈 것인지는 지켜봐야겠다. 추락한 국격, 바닥에 뒹구는 대한민국의 위상 복구는 우리의 사회적 각성에 달렸다.
올 여름, 코로나 방역이 완화된 이후 주취자들로 여기저기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단골 뉴스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가 주춤해지고, 추위가 찾아오면서 주취자 관련 뉴스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듯하다. 하지만, 주취자들에게는 한겨울이 더 위험한 계절이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저체온증은 물론, 혈관이 수축되어 뇌출혈 등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방치됐던 주취자가 잇따라 사망하여 경찰이 거센 비판을 받았던 기억을 돌이켜보자. 당시 출동 경찰관들은 주취자를 주변에서 관찰만 하거나, 주소지 인근에 앉혀놓고 돌아오는 등 현장 조치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이후 경찰 내부에서는 보호조치 업무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 강화’라는 과제를 내걸고 많은 노력을 기..
경기도 중·고등학생 대다수가 청소년 창업캠프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에게 창업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꼭 필요한 교육이다. 기업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영위되는지를 알게 하는 과정은 건강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 소양이 될 수 있다. 교육 당국은 물론 산업계에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중·고등학생 창업 교육시스템을 잘 만들고 발전시킬 가치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최근 경기도 소재 중·고등학교 재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창업 교육 현황 및 교육수요’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학교 창업 교육 활성화 방안, 창업캠프 프로그램, 청소년 창업지원센터 설립 등을 묻는 순서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창업캠프 프로그램 참여 의향을 묻는 설..
고이는 것들이 있다. 속으로 깊어져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다. 겨울이 그렇고, 상처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고여서 깊어지는 건 뭐든 아찔하다. 겨울이든 상처든, 사람이든 사람 아닌 것이든, 속으로 깊어져서 켜켜이 가라앉는 것들은 위험하다. 그래서 병(病)드는 줄도 모른다. 낙하를 거부하고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도 그렇다. 녀석을 가리키며 그 누가 간밤에 흩날린 눈이라고 하겠는가. 간신히 붙들고 매달린 수직의 눈물 작대기를 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본래 같은 것들이라 단정하진 말기로 하자. 비든 눈이든 얼음이든 벗겨놓고 보면 똑같은 것이라고.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쇼윈도 속 마네킹 같은 것이라고. 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섣부른 결정은 때늦은 후회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니까. 쌓이는 것들이 있다. 안으로 깊어져서 아득해지는 것들이다. 세월이 그렇고, 고독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쌓여서 깊어지는 건 뭐든 애처롭다. 세월이든 고독이든, 사람이든 사람 아닌 것이든, 안으로 깊어져서 켜켜이 고립되는 것들은 위험하다. 그래서 하얗게 소멸하는 줄도 모른다. 드러내지 못하고 나무껍질 속에 똬리 튼 나이테도 그렇다. 녀석을 가리키며 그 누가 고스란히 기록된 아름드리나무의 역사라고 하겠는가. 끝끝내 살아남은 것들의 들숨과 날숨이라 하겠는가. 뜻도 소리도 없이 안으로 깊어지는 동그라미의 흔적을 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안으로 깊어져서 쌓이는 것들을 ‘쓸모없음’으로 멸시하진 말기로 하자. 말이 없다고 해서 뜻조차 없음은 아님이니. 진정한 ‘앎’이란 ‘모름’의 벽 너머에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늘 고이고 쌓이는 것들 틈에서 산다. 도시를 배회하는 것들을 따라 밀물과 썰물처럼 출렁인다. 소비가 미덕인 세상에서 소비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밥벌이 속으로 깊어지기라도 하면 시절을 파먹는 밥벌레로 꿈틀거린다. 그렇게라도 살아야겠지. 자동차 똥구멍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바늘 끝 같은 자존심을 꿀꺽 삼키며 도시의 그늘 속으로 기우뚱 걷는다. 당신도 그러할까. 문득 궁금하다가도, 눈보라 흩날리는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면 귀를 닫고 만다. 발을 동동거리며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의 머리 위로 함박눈이 흩날린다. 퇴근길에 내리는 눈은 더 이상 하얀색이 아니다. 네온 불빛은 맑음을 가만 두지 않는다. 맑음을 방치하고 있을 자본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눈물조차 화려한 색깔이어야 하니까. 당신도 그러할까. 속으로 고이고 안으로 쌓이는 사람들처럼. 비명조차 간신히 삼켜내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까. 동동걸음을 반복하며 함박눈 틈에서 나부끼고 있을까. 신호대기 상태의 고드름처럼 울지 못하는 것들의 나이테를 새기고 있을까. 그리 보면, 당신도 또 다른 당신도 눈(雪)을 닮았다. 나는 눈을 닮은 당신들이 좋다.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모두 같은 게 아니다. 눈은 비처럼 소리 내서 울지 않는다. 소리 내며 흐느끼기보다 찬란히 부서짐으로 울음을 대신한다. 그래서 눈은 겨울 하늘을 골라 투신하는지 모른다. 한줌의 온기마저 상실한 당신과 나를 대신하여 울어주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소멸하는지 모른다. 겨울에 쏟아지는 비는 있어도 여름에 흩날리는 눈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1. 문화인류학자 타이거와 폭스(Tiger & Fox, 1971)는 ‘보은(報恩)의 망(web of indebtedness)’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타인에게 은혜를 받으면 그것을 되갚는 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이 원칙이 노동을 분화시키고 재화와 서비스의 상호 교환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거다. 사냥으로 생존을 유지하던 구석기 시대가 대표적 사례다. 발 달린 사냥감이 필요한 시기에 딱 맞춰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먹거리 획득이 부정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잡은 짐승 고기를 자기와 가족만이 독식한다 치자. 그 같은 습관을 반복하면 나중에 자신이 굶을 때 주위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봐서 무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는 거다. 주어진 호의와 선물을 되갚는 후성유전학적 DNA가 호모..
경기도 지역에서 폐수처리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오니)을 불법 매립·보관하거나 허가 없이 폐기물 처리 영업을 한 업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규정을 어긴 채 폐기물을 불법으로 다루는 것은 일단 당사자들의 공공질서 의식 부재가 주원인이다. 폐기물 불법 처리 행위를 선제적으로 적발 단속할 수 있는 감시시스템이 강화돼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환경에 대한 인식을 대폭 개선할 획기적인 대안 마련 등 입체적 대책이 절실하다. 경기도 민생특별사법경찰단(특사경)은 올해 사업장폐기물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결과 118건의 위반을 적발해 95건은 검찰에 송치했고 나머지 23건도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적발된 위반 내용은 ‘불법 폐기물 소각·매립 28건’, ‘무허가 폐기물처리업 15건’, ‘폐기물 처리기준·..
지역 살리기와 지방 정부시대를 맞아 2024년부터 지역특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1월 2일, 17개 광역 시·도, 지역 혁신기관, 우수 지역 중소기업이 함께 개최한 제1회 지역혁신대전 기념식에서 지역특화 프로젝트 ‘레전드(Region+end) 50+’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지역특화 프로젝트 레전드(Region+end)50+는 지역 현안을 해결하고 지역에 특화된 프로젝트를 지원해 국내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을 50% 이상으로 제고하기 위한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협력형 프로젝트다. 중기부는 17개 광역 시·도가 제출한 35개의 프로젝트에 대한 컨설팅과 심사를 거쳐 최종 21개의 세부 프로젝트를 선정하였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5개, 충청권 5개, 호남권 5개, 영남권 6개가 선정되었다. 중기부는 이들 17개 지역의..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 지형을 보면, 여전히 선거제도도 확정되지 않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모두 내부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 결코 조용하지 않다. 더욱이 이번 총선이 지난 21대 총선과 같이 준연동형으로 진행될 것을 예상해 여러 창당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의민주주의와 양당정치로 규정되는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경험과 비대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시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나 표현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형식적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국민이 직접 정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성숙시킨다. 사회 발전에 의한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도 있다. 공정한 사회, 국민 모두가 함께 가는 사회, 그리고 분열과 갈등이 적은 평화로운 사회 등은 시대나 문화를 떠나 늘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이자 정치적 지향점이다. 아쉽게도 혼란스런 정치 상황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면, 국내 정치지형에서 무엇보다 분명한 것이 사회적 가치의 실종과 방향성 상실이다. 여당은 정치검찰의 권력 장악을 위해 기존 정치인에 대한 압박을 더욱 높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경원, 이준석 당대표 등에 대한 과거 제재 상황은 물론, 이동규 국민의힘 후원회장 구속을 통한 압력 효과는 장제원이나 당대표 김기현의 최근 행보에서 잘 나타난다. 야당 역시 당대표 중심의 당 개혁에 저항하는 기존 주류 의원들은 물론, 심지어 당운영에 불만을 표명하며 창당을 거론하는 전 당대표마저 등장하는 상황이다. 여당은 정권 안정을 내세우고,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심판을 내세운다. 신당이나 창당 움직임에서도 윤석열 탄핵이나 현 정부 타도가 핵심 주제로 등장한다. 예상을 초월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을 보면 너무도 타당한 구호지만, 한 정당의 핵심 가치나 과제가 당장의 정권 심판이라는 것은 너무 초라하다. 심지어 현 당대표의 당 운영을 비난하면서 창당을 말한다는 것은 정치를 단지 정치 타산과 이해관계로 접근함을 말해 준다. 여야 양당에서 병립형 선거제도가 다시 거론되는 것도 국내 정치 발전보다는 정당 의석수 계산에 근거한 정치공학적 접근일 뿐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 구현과 양당제 극복을 말하면서도 정당의 최우선 핵심 가치가 단지 현 정권 심판이라면, 이는 주류정당이건 신당이건 과거 양당정치의 구태를 내면화한 것에 불과하다. 단지 다른 진영을 비난하면 차악의 선택을 통해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국민을 바보로 아는 정치문화의 재현이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국민에게 차악이 아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당을 준비해 제시해야 한다. 상대방 비난과 심판을 넘어 희망과 발전의 정책, 전쟁위기 없는 한반도 평화 공존의 방향, 국제사회를 이끌어 갈 선진국으로서의 인도적 가치와 현실정책의 최우선 제시가 없는 정당의 난립은 결국 국민 개혁 열망의 낭비와 소진을 불러온다. 윤석열 정부 평가 및 심판의 당위성 명백하다. 그러나 그것은 21세기 국제 선진사회에 맞는 사회적 가치와 희망의 정치라는 맥락에서 거론되어야 한다. 총선이 양당을 위한 병립형 선거제 선택을 통해 현 정권 심판에 그친다면, 이는 차악 선택에 의한 사회 퇴행으로 가는 길이다. 주류정당이건 신생정당이건 표면적인 정권 심판을 넘어 보다 바람직한 가치와 희망, 현실적이자 구체적 대안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 모습이 필요하다. 정치적 상상력이 없는 사회에서는 군인이나 검찰 권력이 등장한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진영을 넘어 선진국에 걸맞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그런 상상력 풍부한 꿈을 지닌 이들이 절실하다.
봄꽃이 필 정도로 포근한 날씨, 이례적으로 더운 겨울이 순식간에 살을 에는 것 같은 추위, 평년보다 강력한 한파로 바뀌었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아 3일간 한랭하고 4일간 온화한 날씨가 된다는 삼한사온 현상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크다. 더구나 반팔을 꺼내입다가 내복을 껴입는 일주일 사이 기록적인 폭우까지 쏟아졌다. 사상 처음으로 호우특보와 대설특보가 동시에 발효되는 일도 일어났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해 적응하기 힘든 날. 경험과 예측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날씨다. 여행에서 날씨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예측 불가의 날씨는 심혈을 기울여 짠 코스를 단숨에 뒤엎어버린다. 고민 끝에 준비한 옷과 소품도 무용지물. 단순히 휴대용 우산을 꺼내지 않을 정도면 괜찮지만 선크림, 선글라스, 민소매의 원피스와 모자, 샌들은 꺼내지도 못하고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와 회색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준비한 시간이 길고 기대가 컸던 여행일수록 실망도 커진다. 이 여행을 위해 들인 정성과 비용이 아까워 기분이 처지고 짜증만 늘어간다. 하지만 모든 계획과 준비와 꿈과 기대와 희망이 전부 무너진 순간, 반짝여야 할 여행지가 최악의 여행지로 기억될 위기 속에서도 시간만큼은 착실하게 흐른다. 찌푸리고 험한 날씨 속에서도 여행은 계속된다. 어차피 떠난 여행이니 실내관광지라도 찾아가는 사람, 안전하게 숙소에서 머무르며 푹 쉬는 사람, 번거롭더라도 비가 쏟아지거나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몰아치는 그 순간을 가장 찬란하게 만끽할 장소를 찾아 새롭게 계획하고 떠나는 사람. 저마다 그 시간을 통과하는 방식도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숨만 쉬고 있더라도 이미 일상에서 떠나온 이상 그 시간조차 여행이다. 여행자에 따라 내리지 않을 비가 내리거나 여행지에 따라 맑은 날에 천둥번개가 내려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날씨가 이상하더라도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며,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현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대한 즐길지, 여행자의 불운과 기이한 세상을 탓하며 한숨만 내쉴지는 온전히 여행자의 몫이다. 여행에 정답은 없다. 가성비를 셈하든 가심비를 헤아리든 여행하는 사람이 그 시간을 통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얼마나 만족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결국 마음이 판단한다는 의미다.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림 같은 풍경 속을 걷는 시간만큼 쏟아지는 빗속에서 쫄딱 젖은 서로의 모습이 우스워 깔깔 웃는 시간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 있다. 계획을 벗어난 곳에서 만나는 우연한 즐거움은 더 깊게 기억된다. 예측 불가한 여행을 통해 힘을 빼고 즐기는 법을 익힐 수도 있다. 오늘의 여행,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 당신이 만들어 갈 여행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