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다. 그러나 그 권리는 어디까지나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는 국민에 대해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다. 의무는 지키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리는 경기도민들이 늘고 있음을 드러내는 추징 통계가 나와 충격이다. 지방세 납부를 누락하는 경우의 적발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 고장이 나 있다는 방증이다. 원인을 정밀 분석하고 방지책을 세우는 일은 결코 미뤄서는 안 될 화급한 사안일 것이다. 경기도는 올해 시군과 공동으로 실시한 지방세 ‘기획조사’ 결과 모두 7357건의 세금 누락 사례를 적발하고 199억원을 추징한 것으로 집계됐다. 도와 시군은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도·시군 공동 지방세 기획조사’를 통해 이 같은 거액의 누락 세금을 추징했다. 이는 최근 5년 동안의 추징금 가운데 최대이자 5개년(2019~2023년) 실적 평균인 120억 원보다도 79억 원이나 많은 세액이다. 기획조사는 지방세 탈루·과세 누락 개연성이 높은 분야에 대한 일제 조사를 통해 숨은 세원을 발굴하고 공평과세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올해 주요 과제별 성과는 개인 신축건축물 과세표준 기획조사 30억 원(479건), 부당행위계산 과세표준 기획조사 1억 원(35건), 일시적 2주택 처분기한 도래 기획조사 147억 원(426건) 등이다 적발된 사례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 화성시에서는 건물 신축 시 시가표준액 약 19억 원을 12억 원으로 낮춰 취득세를 거짓으로 신고 납부한 경우가 발견됐다. 도는 도급법인 장부가액을 조사했고 누락 과표 약 7억 원을 적발, 취득세 등 3000만 원이 추징했다. 용인에서는 취득 토지에 대해 약 3억 6000만 원을 신고 납부했으나, 시가 인정액이 약 4억 8000만 원인 것으로 조사돼 도는 취득세 등 700만 원을 추가 징수했다. 이 경우에는 ‘부당 행위 계산 부인’이 적용됐다. ‘부당 행위 계산 부인’이란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 중 시가 인정액과 사실상 취득가격의 차액이 시가 인정액의 100분의 5에 상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과천에서는 기존의 아파트를 보유한 채로 22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새로 취득하면서 기존 아파트를 일시적 2주택 처분기한 내 처분하지 않았음에도 취득세에 중과세율을 적용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돼 취득세 등 1억 6000만 원을 추징했다. 도는 2020~2024년 5년간 ‘지방세 기획조사’로 총 739억 원의 누락 세금을 적발해 추징했다. 내년에도 시·군과의 협업을 통해 지방세 누락·탈루 의심 분야에 대한 기획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에게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 등 권리를 보장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자 헌법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헌법은 이와 함께 국민의 의무로서 납세의 의무·국방의 의무 외에 환경 보전의 의무,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 의무, 근로의 의무·교육의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납세의 의무는 국방의 의무와 함께 고전적 국민의 2대 의무 중 하나다. ‘납세의 의무’가 갖는 최고의 특성은 이 의무가 국가사회 존속의 기본 조건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납세의 형평성이 무너지면 곧바로 국민의 ‘조세저항 심리’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탈세와 누락은 조금도 잠시도 방치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행정 영역이다. 경기도가 올해 시군과 공동으로 ‘기획조사’를 실시해 은닉돼 있던 역대 최대의 누락 지방세를 적발해내고 이를 추징한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숙제로 떠오른, 현상의 발생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 또한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조세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잡듯이 뒤지는 ‘기획조사’를 계속 동원할 것인가. 성실납세, 정직한 납세가 보장되는 세금 관리 시스템 확보에 더욱 전념해야 할 것이다.
12.3. 계엄선포 사태 후 환율 오름세와 국내 증시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도 진정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번 정국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높게 인식하게 된 것 같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본시장이 개방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들이 한국의 자본시장을 대변하는 용어로 즐겨 써 온 말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말 그대로의 뜻은 한국에 본거지를 두고 있어서 실제 기업 가치에 비해 주식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거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남북 간 대립이나 지나친 수출의존형 경제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1960년대에 경제개발을 추진함으로써 비로소 빈곤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성장은 몇몇 대기업 재벌이 주도해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 주도의 경제 성장은 결국 한국의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남북 분단의 지정학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그에 따른 낮은 주주환원 등으로 그 원인이 확대된다. 기업지배구조란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시스템,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와의 관계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업경영자가 이해관계자, 특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감시, 통제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부실계열사를 인수합병하고, 쪼개기 상장 등을 통해 이익을 편취해 온 재벌이라면 건전한 기업지배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고, 소액주주권한을 강화하며, 회계감사제도와 금융감독체계 등을 강화해 왔다. 사외이사제도는 199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다. 상법 제542조의8에 의하면 자산 규모가 2조원이 넘는 상장회사는 사외이사를 3명 이상 두되 이사 총수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등재토록 했다. 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은 일반이사에 준하므로 사외이사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어 손실이나 경영실패를 초래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 한다. 2020년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165조의20은 자산 규모 2조원이 넘는 상장법인은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 조항은 2년의 경과조치 기간이 지나고 2022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여성도 이사회를 구성토록 한 이 정책은 인적 다양성이 기업 성과에 긍정적 요인이 되며, 기업지배구조를 강화하는 방편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영환 동국대학교 명예교수는 10년 전 저술한 그의 저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vs 코리아 프리미엄'(2014)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주식과 같은 금융상품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모든 분야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잠재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에서도 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고, 인터넷 인프라를 기반으로 IT강국의 명성을 다져왔다. K팝을 위시하여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 등 K드라마와 영화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 뿐인가, 한식 또한 K컬처의 상징처럼 되었고, 그래서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급증했다. 이번 사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에 ‘정치적 리스크’가 더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분열된 정치와 이기적인 진영정치가 촉발하는 불안정성이 지속된다면 한국경제, 도약하던 K컬처의 미래는 암울한 뿐이다.
나는 정치적으로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이며 사제이니 굳이 말한다면 “예수파” 혹은 “그리스도파”이다. 개인적 성향은 보수적이다. 글쎄 누군가 “당신은 진보요? 보수요?”라고 묻는다면 답을 하는 사람들 중 80% 이상이 “나는 보수적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지구상의 물리적 법칙 중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관성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도 그와 비슷하다. 살아온 방식대로 사는 것이 에너지가 덜들고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힘을 써야 하는데 누군들 변화를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어떤 “변화”는 힘이 들어가더라도 내 삶에 신선함을 주고 재미있을 수 있기에 그나마 우리 삶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다.(발전이라는 단어는 다시 돌아볼 필요는 있다) 또 한 가지는 생활의 불편함을 극복하거나 혹은 좀 더 나은 생활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과학적, 기술적 발전으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인류가 아주 크게 진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전기, 인터넷, 스마트 폰 등은 인류의 생활 모습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캐나다의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은 이렇게 말했다: “매체가 메시지다(The media is the message)” 이는 우리가 새로운 매체, 예를 들어 인터넷, 스마트 폰을 쓰면 그 매체 자체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메시지 자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급진적 변화를 갈망하고 이루는 때도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외침이 들릴 때이다. 바로 혁명적 상황이다. 많은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 혹은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이 얼마간 지속되면 그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사생결단을 내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러한 상황을 역사적으로 여러 번 겪어왔는데 지난 12월 3일, 화요일 밤, 바로 그러한 상황이 또 한번 시작되는 순간이 엄습해 왔다. 바로 “비상계엄”이다. 그런 상황이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져 우리 시민들은 그런 지옥 같은 상태가 지속될 때 앞선 세대들이 치열하게 쟁취하고 지켜온 민주주의가 말살될 것을 우려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국회로 모여 계엄군을 막아냈고 국회의원 190명이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켜 계엄을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어 헌재의 심사와 인용을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아직 국민의 짐이 되는 당과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려는 검찰과 기득권 세력이 이 민주주의 물결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질문과 답: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고 말했듯이, 과거 민주주의를 지킨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응원봉을 흔들며 춤추고 외치는 “빛의 혁명” 전사들인 2030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울컥한다.
한 해가 저문다. 벅찬 마음으로 문을 열었던 2024년. 새해 첫날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손수 제작한 연하장(年賀狀)을 국내외 친지·선후배·동료들에게 보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거리·비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을 글로벌 IT문명의 이기(利器)인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그리 힘들지 않게 새해 인사를 보냈던 것이다. 연하장의 배경은 재외동포재단의 제주 근무 당시 찍었던 사진들 중에서 정성껏 골랐다. ‘새로운 날의 이미지’를 물씬 느끼게 할만한 것으로 한정했다. 한라산 등정 중에 짝었던 멋진 설경(雪景) 사진과 서귀포시 법환동 해안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범섬이 담긴 제주 바다 사진이 유력 후보였다. 승자는 남쪽 바다에 은은히 담긴 아침 서광(曙光)이었다. 문제는 연하장에 어떤 문구를 담을 것인가였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문장을 흰 종이 위에 자필(自筆)로 써내려갔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갑진년 새해, 자유와 평화와 번영의 선한 기운이 이 땅끝에서 저 땅끝까지 두루두루 퍼져나가 지구촌 모두가 행복하길 기원합니다”라는 인사에는 전쟁과 기근, 질병과 분쟁, 시기와 질투, 다툼과 미움, 고소와 고발, 사기와 거짓, 조롱과 비난 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지구촌 온누리에 하느님의 축복과 정의, 위로와 격려가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서명 앞과 뒤에는 낙관(落款)으로 외향민(外向民) 도장과 아호인 외산(外山) 도장을 찍은 다음 완성된 SNS 연하장을 국내외 각지로 보냈다. 그동안 간간이 소식을 주고 받던 지인들 중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새해 일출 사진과 함께 따뜻한 마음의 덕담을 나눠준 분들도 계셨다. 이분들에게는 “마음이 품는 생각마다, 눈이 가는 눈길마다, 발이 가는 걸음마다, 손이 하는 일마다 모두의 기쁨되고 보람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라는 문자로 화답하였다. 이렇게 시작했던 2024년이 마지막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새해 다짐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는 분들도 있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마음 뿌듯한 분들도 있다. 그 결과가 어떻든 실망·좌절·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자만·우쭐·착각해서도 안 된다. 옛말인 새옹지마(塞翁之馬), 전화위복(轉禍爲福), 칠전팔기(七顚八起), 호사다마(好事多魔) 등의 교훈이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인생사 자체가 불확실성에 기초한다. 아무리 미리 준비하고 철저하게 구상했어도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있고 예상치 못한 행운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일의 성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요불굴(不撓不屈)과 결국에는 바른 길로 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에 달렸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곳저곳으로 실어 나르느라 고생한 신발의 끈을 다시 매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으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8500만 해내외 동포 한 분 한 분에게 따뜻하고 정감 있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 되길 바란다.
2024년의 겨울, 대한민국 국민들은 내란 소요가 일어난 현장에서 또는 미디어를 통해 역사를 보았다. SNS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계엄령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잠 못 이루던 그날 밤, 미디어는 전 국민을 역사의 기록자로 만들었다. 미디어가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미디어 연구자라면 그날의 현상에 관해 이런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계엄령 관련 정보를 접하기 위해 이용한 미디어가 이용자의 정치 태도와 참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미디어 연구는 미디어가 일반 시민의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정치 엘리트가 전략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할 것이라 전제한다. 그러한 까닭에 정치 엘리트는 시민이 접하는 미디어와 정보를 통제한다. 언론 보도를 정정하려 하고, 심의를 통해 특정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한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였다. 당혹스럽게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은 계엄령이 그들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정의롭고 ‘합리적’인 결정이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합리성’은 도대체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극단적 결정을 합리화하게 되기까지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접해왔으며, 어떤 정보 환경을 만들어 왔던 것인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소위 ‘극우’ 유튜브 채널들이 생산하는 정보가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의 판단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확증 편향은 비단 유튜브 알고리즘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시시각각 발표되는 속보들에 따르면,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동조한 주변 인물들 역시 놀라울 만큼 ‘선별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력자의 위험한 생각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반향실을 만들었을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일찍이 배제되거나 침묵해야 하는 억압적 상황에 놓였던 것이 아닐까. 국민을 지키기 위해 거국적인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는 그들의 진부한 언어에서 우리는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의 의사결정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계엄령 이외의 결정들은 도대체 어떻게 내려졌단 말인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전쟁과 계엄을 선포할 수 있고, 긴급경제명령을 발동할 수 있고,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고, 정부법안도 발의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런 권력을 가진 자가 불합리로 일관할 때마다 그를 일깨우려 국민이 직접 한겨울 광장에 모일 수는 없지 않나. 대통령이 어떤 정보 생태계 안에서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극히 드물다. 관련 정보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심지어 이번 정부는 대통령 기록물도 제대로 남기고 있지 않으며, 대통령실을 구성한 인물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하기까지 의사결정 과정을 담은 회의록이 제대로 남아 있기는 한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결정은 어떤 침묵과 불통 위에서 내려졌는가.
경기도가 경기도의회를 중심으로 ‘외국인 간병인’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서 화제다. 2025년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20%)에 진입한다. 노인은 급격히 늘고 젊은이는 부족한 상황에서 간병인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다. 외국인 간병인에게 한국어 등을 교육한 뒤 병원과 요양원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이 골자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게 아니다. 경기도의 계획이 좋은 성과로 귀결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더불어민주당 김동규 경기도의원은 지난달 말 ‘외국인 간병인 제도의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필리핀 가사 관리사 시범 사업과는 다르다. 다른 국가·기관과 협력해 외국인 간병인을 모집한 다음 일정 기간의 교육·훈련을 거쳐 비자를 전환하여 현장에 배치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2~3월쯤 조례안을 도의회에서 통과시키는 게 목표다. 경기도의회는 외국인 간병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할 방침이다.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면 외국인 간병인이 돈을 더 주는 다른 일자리로 이탈해 불법 체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최저임금(시간당 1만30원)을 적용하면 이들은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할 때 주휴수당을 포함해 월 209만 원을 받는다. 앞서 서울시가 도입한 필리핀 가사 관리사 가운데 2명이 무단이탈하면서 낮은 처우 문제가 불거진 데 따른 개선책이다. 서울시의 필리핀 가사 관리사 사업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기도의회는 간병인들에게 정주(定住) 여건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에 신경을 쓰고 있다. 식당과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는 요양원 등에서 외국인 간병인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한계가 있다. 외국인은 재외동포(F-4)와 방문 취업(H-2) 비자를 가진 경우에만 간병인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회는 외국인 간병인을 2년간 체류할 수 있는 단기 연수(D-4-6)비자 등으로 입국시킨 뒤 교육·훈련을 거쳐 특정 활동(E-7) 비자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필리핀 가사 관리사처럼 고용허가제(E-9)로 외국인 간병인을 도입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서울시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 도입에 앞서 국내에서 한시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 허가를 받은 전례가 있다. 경기도에서 외국인 간병인을 고용허가제로 도입하려면 이런 과정을 거치면 가능하다. 초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른 나라들의 외국인 간병인 도입은 이미 오래 된 얘기다. 일찍이 노인 환자 케어 문제에 봉착한 일본은 지난 2008년부터 경제연계협정(EPA)을 통해 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등 외국인이 간병 시설에서 교육받고 일하며 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였다. 유학 외국인이 2년 이상 교육을 받으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호주의 경우는 ‘노인 돌봄 산업 협정’으로 노인을 돌보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준다. 대만은 외국인 간병인이 최장 14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간병인 등 돌봄 서비스직 노동 인력은 이미 2022년에 19만 명이 부족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지금 상태라면 오는 2042년에는 무려 61만~155만 명이나 부족할 것이라는 추계도 있다. 늙고 병든 부모를 임종 시까지 돌보는 일은 이만저만 큰 문제가 아니다. 멀쩡한 젊은 노동 인력의 손발이 묶여서 생산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도록 할 수도 없다.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하는 고령자들의 비율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초고령 사회에는 가능하지도 않다. 경기도에서 외국인 간병인 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경기도의 외국인 간병인 제도 도입은 성공해야 한다. 효율적인 간병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우리에게 이제 선택과목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하면 각양각색의 섬네일(thumbnail)이 시선을 끌며 클릭을 유도한다. 막상 섬네일을 클릭하면 기대하는 내용과는 다르다. 직설적으로 언급하면 가짜뉴스(fake news)나 거짓 내용으로 클릭 장사한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속이는 사람도 속임 당하는 사람도 익숙해져 별다른 느낌도 없다. 이미 가짜나 거짓에 대한 불감증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민족(異民族)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민족’이라 하여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매스컴에서는 가짜뉴스가 판치는가 하면, 진실을 보도하는 미디어(media)가 오만불손한 권력자들에 의해서 반국가적 세력으로 몰려 오히려 매도당하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국민은 언론도 정부 당국도 신뢰(trust)하지 않는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인데, 신뢰하지 못하고 불..
같지 않습니다. 아닌 건 어떻게 해도 아닙니다. 넘나들기 쉽도록 설치한 사거리 신호등이 아닙니다. 이리저리 옮겨 가도 무방한 온탕(溫湯)과 냉탕(冷湯)이 아닙니다. 선택 장애 손님을 위한 메뉴, 이를테면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치킨’은 더더욱 아니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같을 수 없습니다. 다름과 틀림 역시 그렇습니다. ‘세상’이라는 울타리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이라는 울타리를 둘로 가르는 ‘낮’과 ‘밤’처럼 별개의 존재입니다. ‘세상’이라는 울타리를 ‘그릇’으로 좁히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밥그릇도 국그릇도 모두 그릇입니다. 다만 그릇 안에 담는 음식에 따라 쓰임새가 다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밥그릇과 국그릇은 생김새와 쓰임새가 서로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라는 별에 사는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경기도가 내년 지역화폐 예산을 1043억 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올해(954억원) 보다 10% 증액된 것이다. 특히 설을 앞두고 도내 시·군과 함께 할인율을 10%까지 높이기로 했다. 현재는 6~7%다. 이 조치는 계엄 사태와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침체한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도는 설을 앞두고 시·군과 함께 현재 6~7%인 할인율을 10%까지 높이기로 했다. 수원시의 경우 민생회복 특별경제대책의 일환으로 지역화폐 예산을 2배로 증액했다. 시는 지역화폐인 수원페이 발행액을 올해 200억 원에서 내년 411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종전의 충전 한도는 30만 원이었지만 다음 달부터 50만 원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인센티브 할인율은 기존 6∼7%에서 10%로 올린다. 뿐만 아니라 설과 추석 명절이 포함된 1월과 10월에는 20%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
‘5월 광주’를 아는 어떤 이가 뉴스를 보았다. 찬찬히 세수했다. 이게 마지막 재계(齋戒)는 아닐까. 계엄이란 이름의 군사반란을 또 보는구나. 비장한 길을 나섰다. 천지신명이여, 선배가 앞장설 기회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 후,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지난다. 여의도의 인파, 젊은 여성들 한 동아리가 “와, 아저씨도 오셨네요, 고맙습니다.” 응원봉 흔들어 환호했다. 그렇지, 그들(몫)의 세상이지. 마음으로 축원했다. 상황의 그런 변화는 진화(進化)일 터다.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四字成語), 계엄 전에 뽑았다는데 우연이었나? 도량(跳梁)과 발호(跋扈)를 묶은 1위작 도량발호는 황당한 저들의 행태를 제대로 찍었다. 후안무치(厚顔無恥)와 석서위려(碩鼠危旅)가 뒤를 이었다. 셋 다 상황에 딱 맞는다. 여러 사람들이 보내고 있는 ‘어려운 밤’을 떠올리다 문득 생각했다, 계엄 후에 선정 했다면 1위로 전전반측(輾轉反側)이 뽑히지 않았을까 하는 발상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비통과 무력감은 도량발호를 넘어서는 특선작이 될 수도 있었으려니. ‘저 몇 사람의 도량발호’보다는, ‘나(우리)의 전전반측의 총량’은 얼마나 참혹한가. 작년엔 ‘이끗 보더니 의리 잊더라’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왜(倭) 제국주의의 심장을 쏘아 처단한 안중근 장군의 그 글씨 견리사의(見利思義)의 반대편에 서는 말이다. 그런데, 관련기사 살피다가 특이(特異)한 점을 보았다. 일부매체가 도량발호는 한자 ‘跳梁跋扈’ 사진 올리고, 본문은 한글로만 썼다. 후안무치와 석서위려는 아예 한글로만 적었다. 작년의 견리망의 기사도 일부는 역시 한자 없이 한글로만 적혔더라. 특기(特記)할 사항이라 본다. 문해력이 문제라는데, 발음(기호)만으로 뜻을 풀까? 어차피 모르는 말이니 그냥 지나쳐? 좀은 의도적으로 단어들을 선택한 이 글도 그런 걱정을 품는다. 한자 배우지 않은 세대와의 소통부재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일 터다. 당장 급하지 않다고 미뤄두니 치유나 개선이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고사성어 따위의 유식한 ‘말씀’을 멈추지 않는다. 다음세대를 위한 정책의 배려도 없다. 도량발호는, 물론 1위작이니 간단한 해설은 기사에 붙어있었다. 한글로 쓰인 후안무치가 뭐지? 대충 그런 사람을 이르는 말이겠지. 하지만 석서위려는? 견리망의나 견리사의는? 特異와 特記는 같은가? 재계 계엄 축원 장삼이사 따위는 뭐고, 왜 그런 뜻이 쓰일까? 이 또한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일(전전반측) 상황이다. 전전반측, 시경(詩經)의 국풍(國風)에 나오는 시 한 대목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익숙한 말의 초나라 노래(歌)의 대표적인 것이 국풍이다. 이런 따위, 전에는 ‘상식’이었다. 연말연시엔 ‘원단’ 들어간 인사 무성하다. 元旦은 ‘새해 첫 아침’의 비유적 표현이다. ‘문자(질) 좋아하는’ 선배들의 저 유식한 인사에 다만 멀뚱한 후배들 표정의 의미는 뭘까? 언어가 바르게 전해지지 않아 세상이 비뚤어지는 건 아닐까. 말과 글이 겨레의 혼이라며. AI시대에는 국어공부도 필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