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알 것 같아요 누구라도 혼자 있고 싶을 땐 살짝 옆에서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그래도 어딘가 당신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다가올 땐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은데… 힘들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당신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마음만 안타깝고 안쓰럽고 그래요 당신은 내 마음을 알까요 항상 마음 조리며 지켜보고 있는 나를 조금씩 조금씩 내게도 당신의 사랑을 주세요 바라는 건 많이 있지만 어떤 것도 당신께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시인 소개: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동 대학원 작곡전공. 이탈리아 로마 A.I ART 아카데미 합창지휘과 졸업. 안동대학교 음악과 외래교수. 제20회 ‘문예춘추’ 신인문학상. 저서로 시집 <아름다운 여행> <그대 사랑하라> 등
지금 그리운 사람 사람의 그늘에서도 늘 푸르게 서 웃는 함박꽃 새삼 사람이 그립다 촘촘히 삶을 바느질하는 사람의 마을 재봉틀로 바삐 지나간 시간의 흔적 속 오래 머무름 없이 그리운 사람이 있다 세상 모통이 이마 맞대다 보면 부드러우며 단호하게 바쁘게 여유로운 문득, 반듯하게 단정한 사람 냄새 젖어온다 꽉 찬 여유, 동양화의 여백으로 그냥 그 자리에 허허로운 듯 진솔한 그런 사람 시인 소개:1959년 경북 안동 출생. 안동대 경영학과, 동국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졸업. 1999년 시집 <기억 속에 숨 쉬는 풍광 그리고 그리움>으로 작품 활동 시작. 욜목문학상, 경기문학인상, 한민족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경기시인협회, 과천문인협회에서 활동 중
고요한 호수 그라치오소(grazioso) 파랑새가 날고 있다 한 잎 한 잎 갈앉는 세연(世緣) 옛 기억을 깁는 달빛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얼굴 하나 그리고 있다 시인 소개:1962년 서울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업, 2005년 <월간문학> 시조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누렁이 마음>, <리트머스 고양이>, 제2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사방이 풋비린내로 젖어 있다 가까운 어느 산자락에선가 꿩이 울어 반짝 깨어지는 거울, 한낮 초록 덩굴 뒤덮인 돌각담 모퉁이로 스르르 미끄러져 가는 독(毒)배암 등죽기의 무지개 너의 빳빳한 고독과 독(毒)조차 마냥 고웁다 이 대명천지 햇볕 아래서는 시인 소개:경기도 양주 출생,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졸업, 2004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집묵의 자세>가 있음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 시인 소개: 오세영 1942년 전남영광 출생. 장성과 진주에서 성장. 1965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1년 동대학원 국문과 수료. 문학박사. <잠깨는 수상>(현대문학)으로 추천.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 교수.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대로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을 법도 하구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葉脈)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葉綠素)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시인 소개: 1907년 전북 부안 출생. 1924년 <기우는 해> 데뷔. 1973년 한국예술문학상, 1972년 문화포장, 1968년 한국문학상 수상. 1974년 별세.
오월 햇살에 고추장 항아리 배부르다 열 남매 키운 기사식당 아줌마 저처럼 배부른 항아리 씻다가 붉은 입술 삐죽이며 함박웃음 짓는 장독대 옆 모란 꽃더미에 놀라 엉덩방아 찧으며 주저앉는다 눈치 빠른 봄바람 쓸쓸한 그녀 젖무덤 파고들며 주름 깊은 눈자위 군살 붙은 목덜미로 햇살을 부른다 장마와 가뭄을 이기고 오십 년 묵은 장맛으로 단맛 키운 항아리 오월 아침 모란꽃이 눈부셔도 굽은 허리 일으키는 산등성 너머로 우르르 몰려드는 꿀벌떼는 항아리 언저리에만 붙어 날개 비빈다 암술 올라타며 입술 부비다 말고 문 좀 열어라 배불뚝이 항아리를 두들긴다 시인소개: 서울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 중국 북경 중앙민족대학원 석사 졸. 97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광화문 쟈콥>(고려원·1998년)과<넘치는 그늘>(천년의 시작·2006년)이 있슴. 한국시인협회 및 국제펜클럽 회원.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抒情詩)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散文的)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 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 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 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시인소개 : 시인 수녀. 1945년 강원 양구 출생,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석사. 시집 <눈꽃 아가>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내 삶은 당신을 향해 흐르는 그리움입니다> <민들레 영토> 등 다수. 산문집 <마음의 풍경>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등 다수.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고 살아왔다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두 눈동자를 굴렸다 눈동자는 쪼그라들어 가고 부딪히고 넘어질 때마다 두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는데 짓무른 손가락 끝에서 뜬금없이 열리는 눈동자 그즈음 나는 확인하지 않아도 믿는 여유를 배웠다 스치기만 하여도 환해지는 열 개의 눈동자를 떴다 시인소개: 1967년 강원 동해 출생. 1997년 두 눈 실명, 시각장애 1급 판정.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구상솟대문학상, 민들레문학상,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전국장애인근로자문학상, 2010년 서울문화재단창작지원금 수혜. 경희대사이버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시집 <푸른 신호등>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어요.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이름을 불리지 못했기에 무엇도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래서 계단 하고 불러주었지요. 그랬더니 오른쪽 끝에서 날개 하나가 삐죽이 솟는 거예요. 내가 너무 작게 불렀나요? 조금 더 크게 불러줄 걸 그랬나요? 어제는 얼음이 든 쥬스를 마시는데 첫눈이 오고 앵두들이 빨갛게 익었어요. 첫눈이 녹고 앵두들이 떨어지고 그녀가 울었어요. 내가 첫눈 하고 부르자 첫눈에서는 하얀 양파꽃이 피어났는데요. 조금 더 크게 불러줄 걸 그랬나요? 언제나 배가 고파서 굳게 닫힌 문들을 뜯어먹고 싶었어요. 후식으로 반짝이는 문고리도 먹어치우고 싶었지요. 그녀의 네모진 방에 직각들이 부풀어 오르면 시계 초침은 왜 그리 초조해 하던지요. 조금 더 크게 불러줄 걸 그랬나요? 그랬다면 내 관자놀이에서 사과들이 둥글게 커졌을텐데요. 시인소개: 1970년 대구 출생. 2009년 시전문계간지 ‘애지’로 등단 후 작품발표 시작. 시집 공저 ‘버거씨의 금연캠페인’ ‘내게로 망명하라’ ‘떠도는 구두’ ‘편운아래 서다’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