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한바탕 내리더니 기온이 영하권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래도 부곡체육공원, 고천체육공원, 왕송저수지 둘레길, 도로 등을 걸을라 치면 반려견을 동행자로 또는 운동 삼아 같이 산책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반려견이 내어놓는 용변을 보고도 나 몰라 지나친다. 또 갑자기 달려드는 반려견으로 주변인이 화들짝 놀라는데 그 원인은 목줄 또는 가슴줄이 없어서다. 간혹 입마개를 해야 하는 맹견의 입은 자유롭다. 목도(目睹)하는 필자의 눈살에 주름살이 더하며 찌푸려지는 이유다. 과태료 부과, 목줄 착용이란 문구가 알람 하듯 내걸려 있지만 반려견주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한 가족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를 반려견(伴儷犬)이라 일컫는다. 반려견은 가족이라는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는 구성원이자 우리 곁을 지켜주는 감사함 그 자체다. 반려견 1000만 시대, 우리나라 인구의 5분의 1이 반려견과 함께한다. 앞으로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웃과 함께 사는 공존의 사회에서는 반려견을 관리하는 예절이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목줄 또는 가슴줄은 반려견과 외출시, 주변인에 대한 배려이면서 견주와 반려견을 동시에 보호하는 방편이 된다.…
‘빈곤(貧困)포르노’라는 반응도 나왔다. 미술의 한 장르(갈래)인 피에타상(像)의 원용(援用)이라는 해석도 있어 이채롭다. 대통령실이 제공한 ‘그 사진’에 대해 세상 관심이 크다.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병 아동을 안고 있다. 언론을 많이 타서 익숙해진 이 사진, 아픈 아이를 보살피는 그녀의 이미지에 대한 세상의 눈길이 동정적(同情的)이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느끼게 한다. 명암(明暗)과 구도(構圖)가 김 여사에게 포커스(초점)를 맞추고 있다는 (학구적인) 이미지 분석 또는 감상평도 주목을 받는다. 빈곤포르노는 포르노 기법으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그려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시도다.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난민을 구하자는 국제적인 TV 캠페인에도 그런 지적이 가해진다. 포르노건 (예술)작품이건 세상이 그로 인해 색다른 느낌을 가졌다는 것은 작가나 제작자의 의도와 숙련도 때문이겠다. 이를테면, 관객이 색정(色情)이나 감동을 느끼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이 감수성을 승화시키거나, 장삿속 같은 (숨겨진) 의도를 구현하게 하는 것이리라. 그 (심장병 아동과 찍은) 사진은 전형적인 모자상(母子像) 이미지다. 상당한 수준의 기획과 기법이 보인
수원은 초기삼국시대의 벼농사 흔적이 발견됐고 조선 정조 대 국영농장이 시범운영 된 곳이다. 정조는 1800년 6월 1일 “내가 화성(華城)을 건설한 진짜 이유는 조선의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새로운 농법을 실험하고, 이를 성공시키고, 성공시킨 농법을 조선 전체에 보급하여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수원이 농업혁신지역으로 선택됐다. 서호(축만제)와 서둔이 그때 조성됐다. 서호는 유엔 국제관개배수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정도로 세계 농업사에 획기적인 농업유산이다.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수원에 자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 감정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원은 우리나라 ‘농업의 성지’였다. 수원의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 농업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업의 성장을 견인했던 농촌진흥청은 2014년 9월 수원을 떠났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축산과학원은 전북혁신도시(전주)로, 농림축산검역본부·국립종자원이 경북혁신도시(김천)로 갔다. 농대도 서울로 이전했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곤 하지만 수원으로서는 아쉬운 결정이었다. 이에 수원시는 정부에 ‘농촌진흥청이 이
사랑은 때때로 위험한 말이다. 가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사악한 행위가 저질러지고, 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악한 행위가 자행되며, 인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큰 사악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사랑이 인간 생활에 의의를 주고 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도대체 그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동서고금의 현자들에 의해 해답이 제시되어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부정적인 답이었다. 즉, 흔히 사랑이라 불리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마치 서로 이방인이나 원수처럼 살고 있는 이 피폐하고 낡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여, 그들은 당장 정치가들의 외교활동과 거대한 군대, 수많은 요새가 아주 쉽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은 어떻게 저런 불필요하고 사악한 것을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을 해왔을까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에머슨) 중국의 현자 가운데 맹자와 비교되는 묵자(墨子)가 있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힘과 부와 권력과 위세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존경심을 사람들에게 고취하라고 충고했다.
크로아티아를 가면 시내 곳곳 붉은 글씨로 ‘KRAVATA’라고 쓰인 간판을 만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수제 넥타이 판매점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를 넥타이로 쓴다. 기원을 알면 재미있다. 17세기, 기독교 신·구교간 ‘30년 전쟁’(1618-1648)은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등 대부분 유럽 국가가 참여한 국제전이었다. 프랑스 우방이었던 크로아티아는 파리로 파병을 한다. 파리 시민들은 크로아티아 병사들의 목에 맨 붉은 스카프를 보게 된다. 국왕 루이 14세도 스카프에 관심을 갖고 한 병사에게 정체를 물었다. 국왕의 질문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병사는 얼결에 ‘크라바트’라고 답한다. 크라바트는 ‘크로아티아의 군인’이라는 말이다. 병사는 답을 이렇게 했어야 했다. ‘우리 크로아티아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 나갈 때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마귀를 쫓는다고 생각해 부적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무사귀환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루이 14세의 눈에 그 붉은 스카프가 멋있게 보인 듯하다. 루이 14세는 ‘크라바트’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파리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모두 이를 ‘크라바트’라 불렀다. 크라바트는 프랑스를 대표
1.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를 빌리자면, 성(性)에 대한 관심은 우월적 종족 보존을 위한 DNA의 절대 명령입니다. 거부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유혹이지요. 사랑과 섹스 이야기가 세계 각국의 신화와 전설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폼페이(Pompeii)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처에서 융성했던 환락도시였습니다. 그런데 A.D. 79년 8월 24일 비극이 닥칩니다. 근처의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한 거지요. 거대한 용암과 유독 가스가 도시를 덮칩니다. 수만의 생명이 불길과 화산재 아래 묻혀버렸습니다. 이 도시는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1592년 밭을 갈던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됩니다. 본격적 유적 발굴은 174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전성기의 문화와 생활풍속이 기적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2018년 폼페이의 레지오 브이(Regio V) 유적지구에서 새로운 프레스코 벽화 하나가 발굴됩니다.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발견이었지요. 그리스 신화를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유혹하는 이야기. 이때 레다가 임신을 해서 알을
아침 새벽 찬 공기가 내 몸을 감싸는 겨울철이 다가오면 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몸은 괜찮으신지? 시골집 난방은 잘 되는지? 일하시는 데 지장은 없는지? 걱정부터 앞서는 시기가 온 것이다. 지금은 내가 아버지의 근황에 대하여 걱정을 짊어지고 있지 한결같은 아버지는 본인보다 늘 불혹이 넘은 자식부터 걱정하신다. 시골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기차를 탈 때면 매회 같은 근심 어린 아버지의 말씀이 붙어온다. 늘 ‘공무원(경찰)이 욕심부리면 큰일 난다.’ ‘네가 한번 더 생각 있게 행동하고 공직생활하면서 나쁜(부패) 것에 연루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주변인(시민들)에게 성심껏 도와줘라’라고 강조하면서 국가와 국민들을 대상으로 행동거지는 바르게 하고 있는지 매사 걱정거리다. 모두가 그러하듯 주변에 나를 포함해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늘 성실하게 일하고 자식 걱정하면서 행여 신세를 망치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는지 근심이 많다. 경찰이 되기 전에도 강조하셨고 경찰이 되어서도 더욱더 두고두고 잊지도 않고 얘기를 하신거 보면 처음부터 ‘청렴’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거 같다. 청문감사실이라는 부서에 발령을 받고 청렴업무를 담당하였을 때 막연하고 추상적인 언어를 구체화시킬 필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의 방점을 ‘수출’에 두고 있다. 고물가‧고금리에 한국경제 침체가 가시권에 진입했다.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초 이후 처음으로 두달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다. 무역수지는 8개월 연속 적자를 내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두번째로 장기간 적자다. 내년 경제 성장률은 1%대로 추락하고, 수출은 4% 감소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다. 14일(현지시간) 끝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내년에도 고물가로 긴축 기조가 이어질 것임을 내비쳤다. 금융‧실물을 망라한 전방위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길은 결국 수출밖에 답이 없다. 그래서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초점을 수출에 두고, 세제나 보조금 등을 통해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원전·방산‧K-콘텐츠 등 주력 먹거리 산업 중심으로 수출 엔진을 본격 가동하려 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실행력이다. 비상벨이 울리고 있는 수출과 수입 동향과 관련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주요국의 긴축에 따른 세계경기 둔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
내가 베트남에서 만난 아주 인상적인 화가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여섯 살 때부터 천재적인 미술신동으로 주목을 받은 화가 탄증은 열 살에 미술영재학교에 입학했다. 7년 과정의 미술영재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의 조국은 전쟁 중이었다. 17세였던 그는 많은 그 또래의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원입대했다. 붓을 내려놓고 소년병사가 된 미술신동이 만지기 시작한 것은 폭탄이었다. 탄증이 배치받은 부대는 전쟁이 가장 격렬했던 꽝닌이었고,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폭탄해체였다. 미군이 투하한 불발탄을 해체하는 일은 가장 위험한 작업의 하나였다. 사방에 깔린 지뢰의 뇌관을 제거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해체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수만 해도 자신의 온몸이 해체되는 작업을 그는 무려 10년 동안이나 했다. “10년 동안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단 두 달이었다.” 전쟁터에 있었던 10년 동안의 일을 묻는 나에게 그가 한 대답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두 달을 제외한 10년의 나머지 세월을 그는 오로지 폭탄을 해체하며 보냈다. 미국이 베트남에 쏟아부은 폭탄은 2차 세계대전에서 양 진영이 사용한 폭탄을 모두 합한 것보다 2.5배가 많은 양이었다. 그가 해체해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