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이지선 미안해 농부로 너를 만나 정말 미안해 내가 초원의 주인이지만 농부가 되면 잡초로만 보이는 게 너무 미안해 네가 꽃을 피울 때까지 시인이 되어 기다려 줄게 근사하게 꽃 한 번 피지 못하고 밟히고 뽑혔던 생존의 일상 꽃도 피우지 못한 채 뽑혔던 일이 어디 너뿐이런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지선 시집 『배낭에 꽃씨를』 (청어, 2014) 세상은 근사하게 피어난 것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러나 시인은 대접받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인사를 건넨다. 마치 농부는 들판에 초원을 이루는 많은 풀들 중에 그저 열매와 수확이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만 시인은 단 한번 꽃피우지 못한 채 밟히고 뽑혔던 생명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둘러보면 세상에 푸르름도 이름없이 피었다 진 우리 어머니같은 잡초도 많으련만 우리는 언제나 화려한 꽃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아닐까? 늘 그 꽃이 되고 싶어 곁에 밟히어 죽어가는 잡초라 불리는 생명들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문득 가장 가까이 가장 평범하게, 그러나 질긴 생명으로 세상을 푸르게 지켜가는 잡초같은 생명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아침이 열린다./김윤환 시인
마음의 선생님 /윤형돈 우리들 마음의 고향엔 아주 오래된 풍금 소리 같은 초등학교 선생님의 애잔한 기억이 산다. 서툰 날을 기다려 준 당신의 커다란 동공(瞳孔) 안에서 어느새 중년 나무가 된 상고머리 아이들은 그 옛날 사진첩에서 감미론 선율에 문 리버 ‘달빛 강물’을 노래한다. 아,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사랑 가득한 눈빛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곧은 언어와 정직한 교사상을 가진 연무초 교장 권월자 수필가를 詩想에 두고 쓴 윤詩人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에는 아프고 못난 곳에 상처와 훈장을 안고 사는 일이 다반사다. 봄날은 새순으로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피고, 샘물은 바위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다. 권 수필가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일은 선생의 몫이라며” 말했다. 45세의 중년의 남녀제자들이 찾는 우연한 자리에서 참 스승의 길을 걸어온 그의 제자들로부터 들었다. 엄마 같은 교장이 되시리라 믿는다./박병두 시인·문학평론가
박쥐 /문동만 박쥐도 그랬을 것이다 희디흰 얼굴로 어둠의 생계를 꾸렸을 것이다 사선(死線)이 된 평면에 발톱을 찍고 수직의 밥을 먹었을 것이다 끝까지 검어지지 않는 얼굴로 바닥을 천정이라 부르며 천정을 바닥이라 부르며 거꾸로 매달린 어둠을 한낮이라고 할 것이다 -일과시 동인시집 〈못난 시인/실천문학 2014〉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직장상사가 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불러서 가보니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밖에서는 사기도 치고 도둑질도 할 수 있지만 시를 쓰려고 백지를 마주한 순간에는 절대로 거짓말 하면 안 됩니다.”했더니 “그럼 나는 시를 쓸 수 없겠구만” 하며 쓸쓸해했다. 우리는 어둠의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박쥐처럼 살아간다. 퇴화된 눈을 가지고 해와 달과 별을 바라 볼 수 없게 되었다. 거꾸로 매달린 어둠을 한낮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어떡할 것인가 시인은 우리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다. /조길성 시인
그 순간 /성명진 뱀이 숟가락 모양의 대가리로 새 새끼를 무는 그 순간 어디서는 아이가 기다랗게 똥을 누었는데 똥이 부처님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또 어디서는 콩벌레가 콩처럼 숨어 큰 짐승이 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 어미 개가 새끼를 나면서 죽어 가고도 있었다 하늘이 잠시 잠깐 퍽 환한 빛을 드리웠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삶에 애쓸 뿐 알 것 없었다 -시집 『그 순간』(2014) 먹고 싸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기본욕구다. 생체리듬이다. 약자가 강자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은 보호색이나 보이지 않게 숨는 방법 등 나름 해결책을 찾아 살아간다. 생과 사가 빗겨가고 가슴 아프고 기쁜 일이 한순간에 이뤄지기도 한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참사가 있었던 그 시간에 대한 의문이다. 책임자는 그 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나. 무엇하나 명쾌한 답이 없다. 그 오랜 순간 우리나라 국가시스템은 불통이 아닌 먹통이었다. 황당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안전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하늘이 잠시 퍽 환한 빛을 드리웠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의 삶에 애썼을 뿐 정말 알 것이 없었을까. /
별정우체국 /채상우 저건 강아지풀이고 저건 참나리고 그래 오늘도 안녕 십 년 전에도 그랬듯 작년처럼 저기엔 말냉이꽃이 피었더랬는데 애기별꽃은 이미 다 숨었고 개오동나무엔 다시 꽃이 피고 있구나 붉은 괭이 밥은 여전히 붉은 괭이밥이고 장미를 심을까 내년엔 파란 장미를 내 발톱에서 곰팡이가 피어난다. -계간 『시와 세계』(2014. 가을) 별정우체국이라는 말이 정겹다. 나라 소속이 아니라 개인소유의 우체국, 영세하나 우체국장의 따뜻한 마음이 나무난로처럼 구수한 냄새와 함께 따뜻하게 맞이하는 우체국이다. 별정 우체국에는 강아지풀 참나리고 말냉이꽃 개오동나무 붉은 괭이밥·장미의 꿈 곰팡이가 피는 발톱이 있다. 별정구체국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시간이 멈춘 듯한 별정우체국으로 십년 지났으나 변하지 않는 가슴으로 편지를 부치러 오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별정우체국이 건재한 곳에는 싱싱한 그리움이 있다. 싱싱한 사랑이 있다. 별정우체국이란 말로 당국이니 공화국이니 어떤 제도권 밖의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이 바로 꿈의 파수꾼일 것이다. 민주의 선두주자일 것이다. /김왕노 시인
죄인 박덕규 코를 세게 고는 통에 잠을 설쳤잖아! 다리 꼬고 앉지 마, 허리 나빠져! 젓가락으로 반찬 들쓰시지 말라니까! 잔소리하던 아내가 오늘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고개 한번 안 들고 밥을 먹고 있다 아침 신문에 난 배병우 씨 사진의 소나무 껍질 같다. 백련사 뒷숲에서 오래전 딱 한번 꽃 피워 본 뒤 해바라기 해바라기하느라 몸이 뒤틀려버린 동백나무 닮았다 창밖 구름 쪼아 먹는 오리주둥이 같다 이제는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다. -박덕규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서정시학, 2014) 우리의 삶에는 익숙해서 놓치는 풍경이 있다. 남편의 풍경, 아내의 풍경, 가족의 풍경, 이웃의 풍경이 그러하다. 특히 아내의 잔소리 풍경은 늘 같은 맥락이라 무심히 지날 때가 많다, 어쩌면 아내는 정말 백련사 뒷숲에 딱 한번 꽃 피우려 해바라기 하느라 몸이 뒤틀려버린 동백나무는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이가 전하는 말(語)들 중에 감추어져 있는 참 말, 속마음을 자신도 꽃으로 피고자하는 몸부림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더러는 고개숙인 채 말을 잃어버린 그를 쳐다보게 한다. 아니 내가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시인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
여정(旅程) /원재길 늘 열려 있는 길 금곡이나 수색 지나면 숨이 풀리고 어깨도 힘이 빠지고 나무 그늘이나 하나씩 옮기면서 세끼 밥과 찌개에 묻혀 살지요 서류 더미 위로 나는 파리 쏟아질 듯한 빌딩 벽타일 네시 너머 창으로 엿보는 피로를 다 두고 떠나온 길 알아 그대도 뒤따라 올까 걸인인 마음 변두리 가게에 들러 잠시 땀 식혀 저린 다리를 풀며 칠월은 가난한 사람들 몸 하나씩 끌고 어디로들 가나 툭 먼지를 털고 노을에 손 저으며 저녘 빈들에 드는 저기 정다운 집들 시가 따뜻해 보인다. 도시의 정적을 삼아 쓴 직장인의 고단한 환경과 시인의 현실반영 같은 좋은 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기억의 저편에서 언제나 자리를 하고 지워지지 않는 것이 추억이다. 도심지에도 봄은 있고 도시도 농촌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들이 어울려 알쏭달쏭 살아가는 곳 그 곳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슬픈 일들도 많고 외로운 일들도 많다. 슬퍼지는 건 대체로 우리가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고 느끼는 주체성에 있다. 예술은 그런 경험을 표출하고 존재한다. 모든 걸 다 털어버리고 교외선에 몸을 맡겨 가까운 봄의 들판을 찾아볼 일이다. 쌓인 피로들이 조금이나마 걸터앉아 숨을 쉬고 싶은 까닭이다. /박
빨강 속의 검정 /이소연 모란 꽃송이; 그 어둑한 동굴로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빨강 속에서 느끼는 검정의 일렁임 소리가 들린다 지독하게 독한 검은 방의 모서리에서 나는 색의 층위를 발견한다 속엣 것들 환해지고 서늘해져 몸이 한결 가벼워질 때 당신은 짐작했겠지만, 내 아랫배에선 빨강 속의 검정; 핏덩이가 쏟아진다 드맑은 통증이 너무나 눈부셔서 모란꽃 여러 번 피었다 진다 나는 꽃에게 파 먹히기를 바라듯 새로운 정절이 찾아온다고 쓴다 모란 꽃잎들 오므렸던 입술을 활짝 벌려 흥건한 새벽 나는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내 불두덩을 씻은 적이 있다 그때 첫 경험의 감추고 싶은 신음 소리가 떠오른다 그건 빨강 속의 검정의 흐느낌이다 나는 잠시 조용해진다 《시와 경계》2014년 여름호 그 어둑한 동굴로 따라 들어가게 만드는 시다. 그 관능의 신선한 맛이 흐르는 동굴로 초대 받고 싶은 밤이다. 그 눈부신 통증 곁에서 여러 번 피었다 지고 싶다. 그 지독한 빨강 속의 검정을 마시고 싶다. 내 몸뚱아리 통째로 뜯어 먹히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절정이 찾아오는 감동의 새벽을 이슬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지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련다. /조
서문을 위하여 /문정영 제목은 갈잎으로 물든 저녁해로 해야겠다. 본문에는 만신창이 사랑이 부른 한 소절도 적어 넣고 싶다. 가장 억울한 한 줄은 감추고 감추었다가 첫눈 녹듯 들여 써야겠다. 한두 행은 여백으로 두어 못다 한 용서는 적지 말아야 겠다. 부끄럽다고 쓰는 순간 사라지는 행간은 없을까. 어느 책의 첫줄도 관용으로 시작된 것은 없다. 그래서 본문이 끝나고 나면 서문은 여력으로 써야 한다. 힘이 들어가는 순간 가장 빛나는 언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비문(秘文)처럼 모르는 이가 써준 머리말을 본 적 있는가. 모르는 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선물이어야 한다. -시집 〈그만큼〉(시산맥사, 2014)에서 우리는 인생의 서문을 오래 전에 썼다고 봐야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울음 울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 시는 ‘서문을 위하여’라기보다는 ‘발문(跋文)을 위하여’가 적당해 보입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살아온 내력과 감상을 적어야 어울릴 듯합니다. 거기에 만신창이가 된 사랑 얘기를 넣는 것이고 용서와 부끄러움과 비밀스런 말들을 담는 게 마땅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후서를 쓰는 것이 시적이지 않고…
혹 /박우담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낙타의 눈은 사막의 달 달력의 스프링처럼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어제로 이어지는 혼돈의 찌꺼기 바람이 수습하지 못하는 생의 이력서 시간의 혹을 등에 진 낙타 한 마리 허름한 담벼락에 기댄 채 모래밭에 오아시스를 구겨 넣고 있다 -박우담 시집 〈시간의 노숙자〉, 한국문연 2014년 낙타의 눈은 예쁘고도 슬프다. 긴 속눈썹은 모래먼지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데 사막이라는 환경과 등짐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눈을 껌뻑거릴 때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낙타의 혹은 비상식량을 저장한 창고다. 슬픈 눈동자와 기형적으로 진화한 혹, 어디 낙타만의 얘기일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 죽는 날까지 사막의 모래밭에 오아시스를 구겨 넣는 꿈. 낙타의 혹을 만져보듯 내 따뜻한 살을 쓰다듬는다.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