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이다.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시간을 뒤로하고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날, 그 끝에 서서 1년 동안을 되 돌아 본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한 해였다. 때론 좌절과 슬픔을 맛보기도 했지만 성취와 기쁨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살아갈 날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맘 때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일에 열중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살아간다면, 사람들의 나이가 반드시 늙어 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삶에 치여 서다. 매년 연말만 되면 다시 생각나지만 처음 듣는 말처럼 낮 설다.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는 말처럼 올 한 해 진정으로 살아본 날이 얼마나 될까? 하루 하루가 소중한 날들이었지만 무의미하게 보낸 날들은 또 얼마나 허다했나. 때문에 많은 시간이 허비되고 의미 없이 조각나버렸다. 1년 동안 나 자신이 한 역할에 대해서도 되 돌아 본다.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자신의 역할은 제대로 못하면서 남은 비하지 않았나
성경말씀 에베소서 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이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인생은 마라톤 경기와 같습니다. 페이스를 끝까지 잘 유지해야 합니다. 처음에 빨리 달린다고 끝까지 잘 달릴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친가지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인생을 잘 마무리할 것인가는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은 마지막 모습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은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말고, 지혜 같이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님에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라. 2019년도 己亥年을 맞이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눈앞에 마무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물음에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스쳐가는 것은 무엇들일까? 보람을 느낀 시간들도 많이 있고, 때로는 아쉬운 시간, 안타까운 시간들이 마음을 울립니다. 디모데후서 4:7-8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음악 감상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소리의 높낮이·장단·강약 등의 특성을 소재로 하여 목소리나 악기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예술이며, 감상이란 음악작품의 형식이나 작품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 행위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상이란 음악을 지적(知的)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물론 인간은 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본능적으로 감응할 수 있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음악 감상에는 두뇌가 필요 없다.’라는 말을 했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 없이, 또는 참된 감상 없이 음악을 즐기거나 기쁨을 얻는 다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최대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음악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지적 태도가 극도의 즐거움을 가져온다.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비밀 장소를 파고든다.’라고 철학자 플라톤은 말했고,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음악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위대한 가능성을 인간에게 보이는 것이다.’라고 예찬 했다. 음악 감상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뇌가 좋아하는 음악은 도파민이라는 ‘기분 좋음’신경물질을 방출하여 심리적으로 스트레스가 낮아지거나 불안을 해소하여 기분을 좋게 해 더욱 행복감을 느끼게 하며 면역체
한 종지의 소금을 대하고서는 /문태준 그릇에 소금이 반짝이고 있다 추운 겨울 아침에 목전(目前)에 시퍼렇게 흰 빛이 내 오목한 그릇에 소복하게 쌓였으니 밤새 앓고 난 후에 말간 죽을 받은 때처럼 마음속에 새로이 생겨나는 시(詩)를 되뇌듯이 박토(薄土)에 뾰족이 돋은 마늘 촉을 보듯이 -문태준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하얗고 깨끗한 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정화됨을 느낀다. 그 크고 작음의 정도는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추운 겨울 아침 소복하게 쌓여있는 흰빛을 보면 누구나 그 빛에 감화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밤새 앓고 난 후에 말간 죽을 받은 때처럼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새로이 생겨나는 시(詩)를 되뇌듯이,’ ‘박토(薄土)에 뾰족이 돋은 마늘 촉을 보듯이,’ 내 오목한 그릇 같은 눈에 담기는 저 흰빛, 그 시퍼렇도록 싱싱함이 주는 저, 그것은 백지 위에 그림 한 점 다시 그려보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주저앉아 있던 생명에 새 생명을 발아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어주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
이낙연 국무총리의 막걸리 사랑은 유별나다. 한국막걸리협회에서 지난 27일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전달했을 정도다. 이 총리의 막걸리 공개 사랑은 내정자 신분이었던 2017년 5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야당과 소통의 다리’로 언급하면서 화제가 됐다. ‘막걸리 정치’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취임 후 보인 막걸리 행보는 이렇다. ▲매주 일요일 저녁 당정청 모임 ▲지난 7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태풍 미탁 피해 주민 위로 ▲지난 10월 일본 순방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포천 이동막걸리 선물 등 수없이 많다. 특히, 총리공관으로 초대한 사람들의 고향막걸리를 대접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취임 이후 전국 95종 6천500여병의 막걸리가 만찬 건배주로 테이블에 올려졌다. 외국 순방길에도 어김없이 막걸리와 동행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지난 3월 몽골을 방문했을 때다. 오흐나 후렐수흐 총리가 환영 만찬주로 이 총리 고향인 전남 영광의 대마할머니 막걸리를 준비해 화제가 됐다. ‘막걸리 세계화’ 일등 공신이다. 한 해를 보내며 이렇게 막걸리 예찬을 펼친 것은 경기도에서 생산된 막걸리의 항산화와 항균활성 효과가 가장 우수하다는 조사 결과 때문
시흥 배곧지구가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제자유구역(이하 경자구역)인 4차 산업 연구개발단지 후보에 선정됐다. 경제자유구역은 조세 감면과 규제 완화 등 기업에 유리한 경영 환경과 생활 여건을 조성해 투자 유치를 촉진하는 특별구역이다. 경기도내에서는 안산 대부지구, 시흥 배곧지구, 김포 대곶지구 등이 경합을 벌였으나 산업부는 시흥 배곧지구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선정에서 제외된 두 도시는 아쉬워하고 있다. 특히 주민과 산업체 모두 유치를 원했던 김포시는 경자구역 유치에 실패하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포시는 수도권 규제 등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대곶지구 경자구역 지정을 적극 희망했다. 이 지역 1천400여 곳 주민과 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주민 92%, 산업체 82%가 경자구역이 지정에 동의했다. 반면 안산시 대부지구는 처음부터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겪어야 했다. 농민들이 대부지구 사업구역은 정부가 간척 사업으로 생계를 잃는 어부들에게 농지 분양을 약속한 땅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한 것이다. 40여 개 영농조합으로 구성된 ‘시화·화옹지구 간척지 관리협의체위원회’는 산업부에 안산시 대부지구를 제척(除斥)해 달
배를 채워 허기를 면하려면 식사를 해야하고 추위를 피하고 몸을 가리려면 의복을 입기 마련이다. 누구나 허기를 채우고 몸에 온기가 돌면 그땐 수면의 엄습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세상의 모든이들이 공평하게 느끼는 신체적 현상이며 누구에게나 삶을 영위하는 그 바탕은 의식주이고 기본적인 욕구이다. 인간의 욕구는 다양하고 순차적 단계가 있으며 인간 욕구에 관한 학설이 이른바,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가장 기초적인 욕구는 생리적 욕구이다. 생리적 욕구가 만족되면 안전해지려는 욕구와 더 나아가 사랑과 소속 욕구, 그리고 존경 욕구와 그 마지막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를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 생리적 욕구인 숨쉬고, 먹고, 자고, 입는 등 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배설하고 그리고 종족 번식 본능 등이 첫 단계에 해당한다. 고금이래 우리네 범부 인생은 돈을 벌고 권력을 탐하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질서에 어느 정도 순응 하며 사는것이 최선이었지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눈 부시게 발전해 오다보니,…
흙바닥 위에 세운 나무 기둥은 썩고 미끄러지기 쉽다. 당연히 오래 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기둥 밑에 주춧돌을 받쳐 놓고 집을 지었다. 그런데 자연에서 얻은 주춧돌 모양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이지만 톱으로 자른 기둥의 단면은 평평하다. 그 때 옛 장인들은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기 위해서 단단한 돌을 평평하게 깎는 것보다 깎기 쉬운 기둥의 단면을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과 꼭 맞도록 깎아냈다. 이렇게 주춧돌의 표면과 기둥이 꼭 맞도록 그 단면을 깎아내는 것을 ‘그렝이질’이라고 한다. 그렝이질이 잘된 기둥은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단단하고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지진이 났을 때도 쉽게 밀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이처럼 두 물체가 만날 때 하나의 모양이 거칠고 울퉁불퉁해도 다른 하나의 모양이 그 거친 모양에 맞추어 감싸 줄 수 있다면 그 둘의 만남은 견고한 결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실상은 그 반대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여 불확실한 미래사회를 열어가야 할 학교가 경직되고 획일적이며 변화에 둔감하다. 교육제도나 시스템을 변화시키지 않고 아이들을 교육제도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나무기둥의 단면에 맞추기 위…
다사다난했던 己亥年(기해년), ‘황금 돼지해’가 하루 남았다. 모두가 힘겹게 보낸 한해, 평탄한 길 보다는 험한 길이 많았고 내리막길 보다는 오르막길이 더 많았다. 좌고우면 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지만 사회 곳곳에서 각자 나름대로 앞만 보고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개개인의 의지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했던 한해다.. 그런데도 우린 이맘때만 되면 새로운 날을 기대하며 미래를 설계 한다. 매년 의도한대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같이 계획하는 것은 아마 과거를 보냄으로써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지나가는 해는 옛것이요 맞이하는 해는 새것이다. 한해의 마지막날 뜨는 해와 다음해 첫날 뜨는 해가 다르지 않음을 알면서도 굳이 구분을 지어 의미를 부여해 오는 것도 이 같은 연유다. 하루 상관에 인생사나 세상 일이 크게 달라질 일이 없건만 우리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가늠해 놓고 새로운 시간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거기엔 그렇게 해서라도 구태를 훌훌 떨쳐버리고 새 희망을 맞이하고 싶은 모두의 마음이 담겨있다 사실 계획이란 미래에 대한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산엣새가 별로 나려 멕이고 /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 이것은 오는 것이다 /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당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 하로밤 뽀오한 횐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 산멍애 같은 분들을 타고 오는 것이다 / 이것은 아득한 넷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 먼 옛적 큰 아버지가 오는 것 같이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