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4년 발간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간행되자마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유럽 젊은이들을 모방 자살 신드롬에 빠지게 했다. 소설속 주인공에게 공감한 젊은이들이 그를 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유럽 각국에선 금서 지정과 함께 발간을 중단하는 조치까지 내리고 급기야 괴테는 모방 자살을 하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을 따라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은 현대사회에선 더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일찍이 이를 두고 ‘베르테르 효과’라 했다. 그는 20년 동안 자살을 연구하면서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함을 발견한 후 이같이 명명 했다는 것. 유독 전염률이 강한 것이 자살이라고도 한다. 그 중심에는 베르테르 효과가 있다. 각 나라별 사망률 증가역시 베르테르 효과가 첫 번째 원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여기에 속한다. 실제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인기 연예인들이 자살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자살률이 어김없이 높아진 것만 봐도 그렇다.…
30여년을 인쇄출판업으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면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 같다. 365일 봉사현장을 누비던 나였기에 그렇다. 그래서 옛 어르신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먹고 사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장애당사자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여하튼 나는 현재도 인쇄출판업에 종사하고 있는 CEO이다. 10년 전 ㈔경기도인쇄문화협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주장해온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요즘 우리 업계의 불황이 현실에 안주하여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여 생긴 문제라고 진단한다. 뒤처진 사고와 행동은 미래를 개척하고 예측하는데 있어 걸림돌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적극적인 자세와 개혁은 불황을 극복하는 척도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주저앉아서 경제가 어렵다고 타령 섞인 푸념만 늘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불황이란 경기순환의 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불황을 적극적으로 극복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1960년대 이후 8~10%대의 고도성장을 이룩한 우리 경제는 최근 들어 미국
1912년, 20대의 마르셀 뒤샹은 가장 적게 구속받고 최대한 많은 자유를 누리는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동료 피카비아의 소개로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 사서로 취직하였다. 이곳에서 일하여 얻는 수입은 그로 하여금 굶지 않고 월세를 내며 혼자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아버지가 보내주는 생활비에도 일부 의존했다. 그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경제 상황에 따라 상속분을 미리 떼어 생활비로 나누어주었다. 그는 그런 아버지의 깊은 배려를 늘 존경했었다. 그는 애초부터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독신이었으니 생활비가 많이 들어갈 일도 없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열시부터 오후 두세 시까지였다. 근무를 마치면 샤르트르 학교 서지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 학교의 시험에 통과할 계획 같은 건 처음부터 세우지 않았다. 단지, 성인 남자가 남들만큼 충분히 일하지 않고 있는 사정에 대한 변명거리가 필요해 강의에 등록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근무 시간과 수강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유롭게 누렸다. 자유 시간 대부분은 작품 구상에 할애했다. 창작 활동으로 돈을 벌지 않기로 했다. 예술가가 작품으로 돈을 벌려면 의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뒤샹은 스스로에게 의미
지극히 높은 향기 /김여옥 어린 초승달은 푸른 별빛 뿌리며 눈썹 위로 내려와서는 내 쓸쓸한 이마를 쏘다닌다 엄마 몸에서 막 빠져나온 아기 염소는 미간을 찌푸리며 휘청휘청 물기를 털어낸다 엄마 품에 안겨 꼬물거리는 아가의 작은 손가락에서는 지극히 높은 곳의 향기가 난다 세상 오만 곳에서 묻혀 온 비린 바람의 흔적들 지우고 남을 향긋함이다 순정한 어여쁨이다 - 김여옥 시집 <잘못 든 길도 길이다> (2019, 책만드는집) 성탄의 계절이 다가왔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눈빛이 그러했을까? 신이 인간의 몸으로 탄생할 때도 요란한 팜파레나 엄중한 지존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가장 여리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온 것은 그러한 작은 곳에서 높은 향기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반기지 않는 쓸쓸한 마굿간에서 오직 엄마의 신음과 아버지의 기도만이 작고 여린 아가의 손가락을 만진다. 세상 온갖 비린 흔적을 지우고도 남을 향기. 그것이 바로 순정의 어여쁨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 향기다. 시인의 시에서 아가의 손, 엄마의 품에서만 나오는 지극히 높고 거룩한 성탄의 향기가 난다. /김윤환 시인
문재인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일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박남춘 인천시장도 함께다.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적 해석을 가급적 자제하더라도 시기가 묘하다. 이 지사의 대법원 확정 판결과 관련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호사가(好事家)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체를 들여다보면 ‘미세먼지 줄이기 등 대기 오염원 단속을 통한 살기 좋은 수도권 만들기를 위한 참석’이 사실(팩트)이다. 이미 경기도는 지난해 7월 이 지사 취임 후부터 국무회의 배석 대상에 경기도지사를 명시해 달라는 국무회의 규정 개정을 꾸준히 건의해왔다. 국무회의 규정에 서울시장은 배석자로 명시돼 있지만 다른 광역단체장은 배석자로 명시돼 있지 않다. 단, 의장인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은 배석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다. 게다가 이번 국무회의의 주제는 이번 달부터 내년 3월까지 시행되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에 대한 추가대책 논의’이니 이 지사와 박 시장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인정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섣부른 추측과 오해가 자제돼야 하는
최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행정복지센터가 관내 기관·단체, 기업들과 ‘생활밀착 지역경제 챙기기 업무협약’이란 것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광주지역 막걸리 소비를 확대하고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곤지암농협과 곤지암상인회 등 8개의 기관과 업체, 주민단체가 참석, 지역 막걸리의 보존과 판매확대에 노력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협약 내용은 곤지암농협과 상인회는 별도의 지역막걸리 매대를 제공하고 음식점·마트 등의 입점을 협조하기로 했다. 아울러 관내 주요 주민단체는 주민홍보와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막걸리 생산업체인 남한산성소주와 유통업체인 성현유통은 판매수익금(1병당 100원)을 불우이웃돕기 기금으로 곤지암 행정복지센터 등에 기부하기로 했다. 지역막걸리를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아름다워 보인다. 전국에는 막걸리 양조장이 꽤 있다. 나름 차별화된 맛과 품질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곳도 여러 곳이다. 한때 막걸리 붐이 일어났었지만 현재는 양조장 운영이 쉽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난 2011년 ‘막걸리의 날’을 제정하기도 했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막걸리 시장규모는 2014년 이후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충남연구원에서 열린
12월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을 비롯 속해있는 크고 작은 조직에서 한 해를 보내는 송년 모임을 갖는다. 그간의 아쉬움과 안부를 나누며 서로 간 친목의 시간을 가지는 자리인데 술이 빠지지 않게 주를 이룬다. 술은 기분이 좋아서 마시고, 안 좋아서 마시고 감정에 따라 일상에 가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 술을 마시게 되면 솔직해진다. 그간의 좋았던 것과 서운했던 것 그리고 평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술기운을 빌어 표현하기도 한다. 아울러 술자리에서 일종의 의식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건배와 건배사 이다. 건배사는 모임에서 축사의 의미로 모임의 대표를 비롯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술잔을 들고 간단한 인사를 하게 된다. 건배사에 한해의 아쉬움과 함께한 사람들 간의 미래에 대한 바램과 기원을 담아내는 것도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와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하여왔다. 술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되어‘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불리는 반면에 부정적인 면에서 광약(狂藥)’이라고도 불렸다. 술을 마시니 근력이 생기고 묵은 병이 낫…
1624년 3월, 조선은 내란에 휩싸였다. 인조반정의 주체였던 평안병사 이괄이 국경을 방어하던 1만2천명의 최정예 군사들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하는 놀라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괄의 반란은 불신이 초래한 내전이었다. 이괄은 인조반정 당시 군대를 진두지휘했던 주역이었다. 그러나 논공행상에서 시간을 어긴 김유는 일등공신이 되었으나 이괄은 이등공신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병조판서를 기대했으나 변방의 방어를 책임지는 평안병사에 임명되었는데,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이귀가 반역을 꾀한다고 무고했던 것이다. 가까스로 반란은 평정되었지만 왜란 이후 총력을 기울여 육성한 평안도의 정예로운 군대가 거덜나고 말았다. 여기에다 변화를 읽지 못한 조정의 친명정책은 결국 청을 자극하여 연거푸 전쟁(정묘·병자호란)을 부르고 말았다. 끝내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 주었다. 문화국으로 자부하던 조선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소현세자 대신 왕위에 오른 효종은 북벌이라는 정책으로 부족한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효종은 재위(1649~1659) 10년 동안 군비를 증강하고 실추된 왕권을 강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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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인의 시조를 영어로 번역한 『해돋이』 출판기념회가 지난 11월 30일 서울 함춘회관에서 있었다. 대규모로 번역이 된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이 있어 참석을 했다. 예술원 회장 사천 이근배 선생이 먼저 축사를 했다. 미당 선생의 시조를 구수히 읊고 나서 우리나라에 시조의 해가 뜨고 있음을 빗대어 얘기하셨다. 사천선생은 역시 재담이 넘치는 천상천하의 얘기꾼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러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함을 강조하였다. 오늘의 시조조인회의 의장 재임시 시조의 정전이 될 만한 시조 150편을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 고시조를 포함하여 이를 확정하는 작업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위원장은 정수자 시인이 하였지만 적지 않은 위원들이 시간을 할애하여 2년 가까이 걸려 이를 확정하고 발간하였다. 이를 토대로 번역 작업을 착수하였는데 문제는 이것이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단순히 번역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해당어의 국가에서, 그것도 좀 알려진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일은 일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선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를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