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힘주어 눈을 감아도 하염없이 흐르는 이 눈물의 시작은 양갱 때문이다. 시월의 가을 아침, 쌉쌀한 녹차와 더불어 다식으로 먹게 된 팥 양갱 한 조각이 모처럼의 공휴일 아침을 감성의 봇물로 허우적거리게 했다. 오늘처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달려갔던 곳. 팔순을 훌쩍 넘긴 하정 선생님은 아침부터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계셨다. 시간차를 두고 피고 지는 백일홍, 그 꽃은 언제고 방글거렸다. 항아리 장독을 열어놓아 문득문득 장 냄새가 스멀거리기도 하고 어설프게 심어놓은 녹차나무 잎들이 바스락거리는가 하면 항아리 뚜껑위로 소복하게 쏟아놓은 좁쌀을 먹겠다고 참새 떼 재재거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구들을 펼쳐놓았다. “차향이 좋습니다” “역시 우리 차에는 다식도 우리 것이 가장 잘 어울리지?” 하시며 내어놓았던 누룽지, 팥 양갱, 증편을 나는 참 맛나게도 먹었다. “요즘 내가 컴퓨터 재미에 푹 빠져서 지난 밤 잠을 설쳤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지 나도 내가 걱정이 돼 하하하!” 언젠가 눈이 펑펑 쏟아지던 수요일, 눈보라를 뚫고 엉금엉금…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세 가지 질문’에서 왕이 던지는 질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이 떠오르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왕은 혼자서 현인을 찾아간다. 하지만 현인은 왕의 질문에 아무런 말이 없다. 왕은 궁으로 돌아가려다가 나이 많은 현인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 직접 밭이랑을 판다. 모든 일을 마친 왕이 돌아가려는 순간 다친 사람이 왕의 앞에 나타나 쓰러진다. 놀란 왕은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고 다행히 그는 목숨을 건진다. 사실 그 사람은 왕을 죽이려 한 사람이다. 하지만 왕이 나이 많은 현인을 위해 대신 일을 하느라 현인의 집에 머물러 있었기에 만날 수가 없었고 왕의 군대를 만나 큰 부상을 입었다. 왕은 그런 그를 열심히 도와준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한 그는 왕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때 현인은 왕의 질문에 드디어 답한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 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ls…
정주성 /백석 산턱 원두막은 뷔였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성터 반디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한울빛 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시인이 고향마을의 유산과 향수와 정신이 잘 담겨진 이 시는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해 백석이 시단에 데뷔한 작품이다. 고향마을은 누구나 떠나있으면서도 주검의 목전에 다다른 계절의 상황들이 닥치게 되면 수구초심(首丘初心) 같은 고향으로 동경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시인역시 정주성의 밤에서 어두운 불빛을 보고 자아를 꺼내어 곱씹어 성찰한다. 허름한 등잔불의 풍광들이 외처롭게 느껴지는 고향마을 산하의 현실과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읽을 수 있다. 고향을 버리거나 성취하고자 했던 연민과 향수는 자신이 처한 그리움자락의 서러운 마음들이다. 여기서 무너진 성터는 쇠락한 역사의 한 장으로 허망한 감정들을 담았다. 시인은 폐허가 된 정주성에서 밤하늘에 비친 고향의 숨결들로 날이 밝으면 청배를 파는 늙은 사람들이 삶을 연명하는 모습과 남아있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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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노벨상은 모두 6개분야다.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 등. 이중 10일 까지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분야의 올해의 수상자가 결정됐고 나머지 평화상은 우리 시간으로 오늘 저녁 8시, 경제학상은 14일 6시45분 수상자를 발표한다.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노벨상. 하지만 언제 부턴가 수상자의 업적과 실적은 뒤로 밀리고 수치((數値)상 신기록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엊그제 발표한 화학상도 그렇다. 리튬 이온 배터리(전지)를 개발하고 상용화에 기여한 미국·영국·일본인 과학자 3명이 수상했으나 정작 그들의 업적보다는 역대 최고령자인 97세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과 27번째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켰다는 것이 세인들에게 회자됐다. 따라서 충전하는 세상을 연 그들의 업적은 관심밖으로 밀린 형국이었다. 문학상도 비슷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949년 이후 69년 만에 선정되지 않았다. 스웨덴 한림원이 ‘미투(Me too)’ 직격탄을 맞아 심사위원들이 사임한 탓이었다. 2017년 한림원은 여성 18명이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클로드 아르노로부터 1996년부터 최근까지 성폭력을 당했
침묵의 탑 /김경윤 날마다 아들이 묻힌 소나무 아래 찾아가 한종일 한글아 내 한글아 그리운 이름 부르다 지친 아내는 저물 무렵 빈 등에 돌을 메고 돌아왔다 아내가 방 안에 부려 놓은 돌들은 날이 갈수록 쌓이고 쌓여 이제는 침묵의 탑이 되었다 바늘 뭉치 같은 시간들이 흐르는 밤마다 나는 그 탑 아래서 묵언 정진 중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정(情)은 인간이기를 말하고자 하는 최후의 보루다. 사랑하는 아들 한글이를 가족여행을 끝으로 참화 속에 별리를 했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애상한 곡조의 서러움들이 뼈 속을 파고든다. 시인의 내자는 깊은 슬픔에 잠을 자고 깨어나면 어눌한 문밖을 보다 문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소리를 듣는다. 사랑하는 것들이 남긴 몇 가지의 추억들을 눈물로 새겨 보낸다. 나무 밑에서 깊은 숙면으로 잠이 들어 깨어나 희망으로 일어설 것이다. 어디서 시인과 어머니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프고, 애절한 그리움이 끊어진 것일까 가을은 강물이 되고 낙엽으로 물들어가는 만산홍엽인데 가을날 하늘을 보고 누워있던 아들이 그립다. 땅 끝에서 부는 바람은 해남사람만 안다. 황토 길을 걷고, 밤고구마를 먹고, 비포장 도로 길을, 산비탈 가난한 마을사람들의…
납세자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세법은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1. 납세자보호관과 납세자보호담당관 납세자보호(담당)관은 국세행정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납세자의 고충이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2009년 8월에 만들어졌다. 국세청은 업무수행에 있어 중립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조세·법률·회계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외부인사를 납세자보호관으로 정하고 있으며, 납세자보호관이 독립적으로 전국의 납세자보호담당관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업무수행을 지원하고 있다. 납세자보호관은 납세자가 부당한 세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는데 이들의 구체적인 업무로 ▲세무조사기간 연장 및 조사범위 확대 승인 ▲납세자의 권리존중에 관한 세무서 및 지방청의 납세자보호담당관에 대한 지도와 감독 등이 있다. 또한, 납세자의 권리보호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위법·부당한 세무조사 및 세무조사 중 세무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일시)중지권 및 조사팀 교체권 ▲위법·부당한 처분(세법에 따른 납세고지 제외)에 대한 시정요구 및 근거 불명확한 처분에 대
가축은 단순히 동물만을 일컫는 건 아니다. 인간에게 단백질은 필수공급원이다. 가축은 없어서는 안 될 먹거리다. 특히 양돈 산업은 국민의 주요 영양공급원이자 연간 생산액이 7조 원 이상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축질병으로 그 때마다 나라가 초비상상태다.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이 20여 일 전에 파주 양돈농장에서 처음 발견됐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번져갈 때도 한국은 무풍지대라고 했다. 하지만 경기도 북부지역과 인천 강화 등에서 14번째 확진이 나왔다. 연천의 비무장지대(DMZ)에선 감염된 뒤 폐사한 멧돼지도 발견됐다. 멧돼지는 감염상태로 돌아다니는 강력한 바이러스 전파자다. 여전히 전파경로가 오리무중이라 방역당국이나 국민이 불안하다. 외국사례를 보더라도 너무 다양해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란 쉽지 않다. 감염되면 주위 농가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야 한다. 축산업이 휘청거리지 않게 더 이상 확진 판정이 나오지 않도록 강력한 차단방역이 이어져야 한다. 다른 비발생 청정지역은 사활을 걸고 지켜내야 한다. 방역취약 농가, 밀집된 사육단지 등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나 예찰활동을 더 강화해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여상규 의원(경남 사천 남해 하동)이 지난 7일 법사위 서울고등검찰청 국감에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웃기고 앉았네. XX 같은 게”라고 욕설을 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시정잡배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이자 법조인 출신인 국회의원이 할 말이 아니다. 이에 여 의원을 향한 국민들의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민주당은 여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여 의원은 법사위원장 자격이 없다.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올 것을 요구한다”면서 여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 역사에 기록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불명예로 남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8일 국정감사장에서도 같은 당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이종구 의원(서울 강남구갑)이 욕설을 했다. 참고인 신분으로 국감에 출석한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회장이 이마트의 골목상권 불공정 행위에 대해 성토하는 발언을 하다가 “유통산업발전법 문제로 (이마트를)고발했는데 검찰이 조사조차 하지 않아 지방 권력과 결탁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욕설을 했다. 이에 이 의원은 “검찰개혁까지 나왔어. XX. XXX같은…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세종대왕과 더불어 성군이다. 이견(異見)은 없다. 사적 제478호로 정조 13년인 1789년 수원 신읍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마련한 행궁(行宮)은 정조의 아바타다. 행궁은 왕의 임시 거처이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 참배 등의 임시 거처로 쓰였다. 비상시 위기 극복을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곳 등 다양한 용도로 마련되기도 했다. 또 일반적으로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거처였다. 수원화성행궁은 비슷하면서도 새롭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기 때문이다. 1790~1795년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안양~사근참~시흥~안산~화성행궁 등을 만들었다. 그 중에 제일은 화성행궁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성곽의 요소는 모두 갖췄지만 단 한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정조를 비롯한 체재공과 정약용의 내공이 적들의 침탈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성곽을 축조했다. 그러나 전쟁은 없었다. 정조는 1789년 10월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까지 11년간 13차에 걸친 능행(陵幸)을 찾았다. 아비인 사도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