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호모사피엔스의 타고난 특질이다. 이러한 성질은 지적 활동이 활발하던 고대국가 시절부터 간파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정치와 형벌로써 다스리려 하면, 백성들은 피해가려만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라고 했다. 1년여 전 허위날조 보도에 대해 징벌적 책임을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은 기자단체들의 저항으로 무산되었고, 새해 벽두에는 소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까지 통과되면 공영방송은 정치적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부터가 허점투성이다. 1987년 체제의 산물이라는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의 독주를 제어하지 못한다며 대통령 중임제나 내각제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 되었다. 그렇게 바꾸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경험적 증거라도 있나? 미국은 대통령 중임제인데 민주주의에서 그다지 모범적이지 않고, 일본의 내각제는 제왕적 파벌이 군림하고 있는 형편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확실한 대안이라고 주장할만한 법과 제도는 없다. 서구 국가들의 방송을 모델로 거론하기도 하지만, 딱히 법과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숱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거쳐 정착된 문화인 것이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대통령제나 내각제도 그렇고, 또 역시 공영방송의 독립성도 법 이전에 운영, 관행, 문화의 문제다. 한국언론학회와 방송학회의 1월 9일 세미나에서 조항제 부산대 교수는 “제도에 준하는 관행이 된 정치적 후견주의가 방송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력의 인사권을 매개로 공영방송은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소위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관행을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모든 정치권력이 인사권을 매개로 공영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삼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바꿔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관행이다. 굳이 법을 바꿔야 한다면, 제시하는 대안이 논리적 방법론적 정합성에 부합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제기한다고 할 때, 그때는 경험적 귀납적 논리에 따라 우리의 조건에서 도입하면 확실히 좋아질 수 있다는 개연성을 명징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위론을 앞세워 관성적으로 성급하게 도입해서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현재 2월 말에 임기가 만료되는 MBC 사장 선임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방통위원장의 임기가 유지되는 가운데 현행의 지배구조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새로운 관행이 산고를 겪고 있는 중인 것이다.
엄청난 예대금리 차이로 떼돈을 번 시중은행들이 역대급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데 이어 지난해 높은 이익률을 실현한 정유업계도 대규모 성과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이들 은행과 정유업체의 대박은 서민과 기업이 겪는 눈물겨운 고통의 반대급부라는 점에서 과연 정의로운 결과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횡재세’ 도입 등 특정 업계의 이익 독식을 막을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은행들은 기본급의 300~400%에 달하는 경영성과급을 책정했다. 신한은행은 기본급의 361%(현금 300%, 우리사주 61%), 국민은행은 280%에 특별격려금 340만 원을 따로 준다. 농협은행은 기본급의 400%를 지급한다. 은행 이익의 대부분이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나..
경기도 내 고령인구가 199만 명을 넘어서며, 젊은 층이 많은 경기도마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 같은 사실은 행정안전부가 밝힌 지난 연말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통계에서 드러났다. 주목할만한 지점은 2026년으로 예측됐던 ‘초고령사회’ 진입이 2025년으로 앞당겨지고 있다는 대목이다. 출산율 하락 문제와 함께 가속도가 붙은 고령화 문제에 대한 정밀한 대책이 시급해지고 있다. 적극적인 대처가 긴요한 시점이다. 행안부가 밝힌 2022년 12월 31일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5천143만9천38명으로, 2021년보다 19만9천771명(-0.39%) 줄었다. 남녀 간 인구 격차는 16만5천136명(여자 2천580만2천87명, 남자 2천563만6천951명)으로, 2015년 처음 여자 인구가 남자 인구를 추월한 이래 역대 최..
1. 몇 년 전 텍사스에 교환교수를 다녀왔다. 오스틴 북쪽, 집 근처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 주차장의 승용차 뒷범퍼에 이런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DISABLED & PROUD’. 장애가(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레이건 집권 이래 30년 이상 가혹한 신자유주의적 수탈을 통해 재화가 극단적으로 최상층에게 쏠렸다. 경제학자 피케티가 주도하는 《세계불평등보고서(World Unequality Report)》에 따르면, 2022년 미국 전체 가구 순자산에서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한 비중이 70.7퍼센트다. 반면에 하위 50퍼센트는 고작 1.7퍼센트에 불과하다. 불법이민자, 사회적 약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무덤 위에 쌓아 올린 바벨탑이다. 인종차별과 총기 문제는 여전히 현..
함흥은 동해안에 위치한 화학공업도시이다. 흥남은 함흥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져 행정구역상 함흥시 흥남구역에 속한다. 함흥은 1416년 함주라는 함자에 흥하라는 의미에 함흥이라는 지명을 가졌고, 흥남은 1927년 질소비료공장이 생기면서 함흥에 남쪽이라는 의미에 흥남이라는 지명이 새로 태어났다. 함흥은 조선시대 함경도 행정중심지로 조선을 일으킨 전통적인 도시이며 흥남은 일본인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에 의해 생겨난 근대적 도시다. 1943년기준 함흥인구는 12만명, 흥남인구는 16만명으로 1960년 함흥-흥남이 통합하면서 평양 다음가는 제2도시로 부상했다. 함흥면적(2003년기준)은 556㎢이며 현재 인구는 83만7000명(2013년 기준)으로 추정한다. 함흥-흥남 행정구역은 분리와 통합을 거치면서 변화되었다. 물의 길을 보면 랑림산맥과 함..
인천, 경기, 서울 수도권 일대에 깡통빌라 전세사기를 당한 청년세대의 울분이 가득하다. 아파트 값 폭락에 따른 2030세대의 격한 분노와 뒤엉켜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종자돈을 털린 성난 청년의 한숨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신속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사기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살아가는 게 즐겁지 않을 것이다. 위험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사기범죄 1위인 나라, 서민의 등을 쳐 잇속을 챙기는 자들이 기승을 부리는 사회다.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연실 같은 희망조차 가질 수 없을까봐 두려워진다. 2, 3년 전부터 ‘빌라 왕’ 전세 사기 행각이 알음알음으로 전해졌었다. 행정, 입법, 사법 당국은 두 손 놓고 있다가 이제야 관심을 갖는 제스처를 취한다. 서민 경제사범 행위는 조직화, 지능화되고 있는 데, “각자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였..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있는 수원 동원고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인근 주민들은 학교 담장 하나 사이로 지나는 고속도로 방음터널 공사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한국도로공사는 방음벽 높이를 당초 11m에서 18m로 높이는 방안을 내세우며 학교 측의 소망을 외면해왔다. 그러나 마침내 학교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숙원이었던 방음터널 공사가 올해 안으로 착공될 예정이다. 동원고등학교는 지난 30년간 고속도로 소음으로 학습권 침해를 받아왔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4월부터 안산 상록구~북수원 장안구에 이르는 영동고속도로 14km 구간 도로를 6차선에서 8~10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원고등학교 학생·학부모들은 도로 확장에 따른 소음 피해를 호소하면서 방음터널 설치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는 방음터널공사에 약..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친다. 슬기로운 사람이나 그런 공부에 대해 얘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어구(語句)다. 우리 속담(俗談)이라고도 하고, 문자 속 좀 든 이는 선비의 속성(屬性)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해다. 속담처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이 말의 전파력과 매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속담이 아니다. 첫 번째 오해다. 또 하나는 공부하는 사람을 뜻하는 우리말 선비를 한자 士(사)로 추측해 ‘하나(一) 들으면 열(十) 안다는 데서 온 말’이라고 푸는 오해다. 개연성(蓋然性)도 있고 멋진 센스의 추리지만, 어원인 갑골문을 보면 그렇지 않다. 士는 감옥을 지키던 벼슬아치의 도끼 그림이다. 인터넷 페이지의 글. ‘속담에 하나 들으면 열 안다는 말 있잖아요? 한문으로는 어떻게 표현하나요?’ 어떤 이가 ‘문일지십(聞一知十)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헝가리의 별난 도서관 이야기를 들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을 대출해 주는 도서관이라는데 이름하여 ’살아 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은 ‘만남을 원하는 이’를 전용 카드로 신청한다. 대개 직업과 성향등을 기록한다. 사서는 고객이 원하는 이를 백방으로 찾아내 도서관에 오게 한다. 대면 시간은 딱 한 시간. 일반 도서관의 ‘기한 내 책 반납’과 같은 규정이 있는데 ‘만난 사람과 싸워서는 안 되며 한쪽이 대화를 원치 않을 시 바로 중단해야 한다’는 것. 최다 대출 희망 대상자는 ‘은행강도’였다. 당연지사, 대출을 원하는 이는 일반인이 평소 만나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레즈비언, 랍비, 유럽연합관리 등이 눈에 띈다. ‘집시’를 만나기 원하는 ‘네오 나치주의자’도 이색적이다. 헝가리에서 집시는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닌데? 그가 집시를 만나고 남긴 기록이 마음에 남는다. ‘과거 세상의 모든 집시를 증오했는데 도서관에서 만나 대화해 보고 달라졌다. 지금도 도둑질하는 놈들은 싫지만!’ 헝가리 하면 제일 먼저 집시가 떠오른다. 야생의 냄새가 맡아지는, 인간의 바닥 정서가 밴, 심장을 저미는 애조가 끓는 집시 음악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헝가리를 집시의 고향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오랜 세월 학자들의 연구로 그들의 출발은 인도 북부 지방이라는 것, 수천 년 동안 천천히 서쪽으로 이동해 지중해 남단으로, 이베리아 반도로, 러시아 쪽으로 흘러갔다. ‘집시’라는 단어는 생김새만으로 ‘이집트인’이라고 속단한 영국인들이 줄이고 변경해 부른 것이 펴져 오늘에 이르렀다. 집시문화와 먼 우리는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에 나오는 ‘카르멘’, ‘노트르담 파리’에 나오는 에스메랄다 등을 통해 이국의 매혹적인 존재를 떠올리지만 집시가 살고 있는 유럽 등지에서는 전혀 아니다. 15세기 작품,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서 집시 얼굴도 헬렌처럼 아름답게 여긴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처럼 그들은 가난하고 저급한 부류로 대해졌다. 천년 떠돌이 삶의 곤궁은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거리에서 춤, 노래, 마술 등의 재주로 생계를 잇는 이들이 많다.(버스킹 공연도 집시 문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집시와 음악, 두 단어가 붙어 다니는 이유다. 그들이 즐기는 악기 중 바이올린이 대표적인 것은 떠돌이 삶을 용이하게 하는 작고 단순한 구조 때문이다. 헝가리에 내가 좋아하는 집시 바이올리니스트가 많다. 요제프 렌드바이(Jozsef Lendvay), 안탈 잘라이(Antal Salai), 로비 라카토시(Roby Lakatos) emd...... 그들의 음악은 비 내리는 이 음울한 겨울에 잘 어울린다. 안개까지 자욱한 오늘, 집시 소울에 클래식, 재즈가 섞여있는 로비 라카토시의 ‘Spring of dream’을 소개하고 싶다. 불편한 질문 하나. 집시들이 천 년 동안 떠돌이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첨단, 모던의 사각지대에서 거칠게 살고 있지 않다면 그 소울(soul)이 유지되었을 것인가.
새해 윤석열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중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일단 국회 차원에서 공식 시작됐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11일 회의를 열고 내년 총선 시행을 위한 법정시한인 오는 4월 초까지를 목표로 관련 논의에 들어갔다. 앞서 조해진·전해철·심상정 등 여야 중진급 의원 9명도 지역구도 타파 등을 위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을 제안했다. 특히 김진표 국회의장은 3월까지 새로운 선거제도를 확정하겠다는 일정을 밝히며 연일 정치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9일엔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위촉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 지도부와 의원 다수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침묵 또는 신중론을 펴고 있고, 특히 여권내 핵심축인 ‘친윤(친 윤석열계)’내에서도 이렇다할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어 정치개혁 논의가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