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이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알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학자란 책을 읽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교양인이란 그 시대에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지식과 풍속, 관습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을 말한다. 현자란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오늘날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필요 없는 지식을 산처럼 가득 채워 넣고 자신을 학자나 교양인, 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의의도 모르면서 오히려 그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깊은 미망의 구렁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학 분자식도 모르고 라듐의 시차와 그 성질도 모르는 무지한 문맹자 가운데, 인생의 의의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도 내세우지도 않으며, 다만 끝없는 자만에 의해 더욱 미망의 구렁에 빠져드는 사이비 지성인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유일한 학문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학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람의 손에 닿는 학문이다. 생명의 원리는 스스로 함이므로 이론으로 하면 진리는 곧 나 자신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생각만 하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을 실현하는 힘도 내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한 것이라, 깨닫기도 쉬운 것이 아니요, 실행 연습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스승이 절대로 필요하다. 스승의 하는 일은 세 가지다. 첫째는 가르침이요, 둘째는 본을 보여줌이요, 셋째는 감화를 줌이다. 그중에서 이 마지막 조건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혼 속에 잠자고 있는 정신적 생명이 잠에서 깨어나 모든 바깥 것의 방해를 물리치고 정말 영원히 스스로 하는 올라감이 되려면, 지식이 나 본보기만 아니라 산 혼의 방사능에 의하여 불붙임을 받아야만 되기 때문이다. (함석헌)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새해 벽두부터 서민들을 놀라게 한 끔찍한 ‘난방비·교통비 폭탄’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 정치권은 이를 놓고 또다시 ‘전 정부 탓’, ‘현 정부 무능 탓’부터 꺼내 들고 정치 공방을 시작했다. ‘수혜자 신청주의’의 안일한 갑질 행정에 막혀 가스요금을 감면받지 못한 영세가구가 수십 만이라는데, 위정자들은 부끄럽지도 않나. 국제적 환경변화가 겹친 현실을 함께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어 장기 대책 수립에 나설 때다. 난방용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 급등은 지난 2021년 8월부터다. 2022년 1월 이후 잠잠해졌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작년 3월에 다시 상승해 지난 한 해 동안에 무려 128%나 뛰었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 4월에야 가스요금을 올리기 시작했다. 대선을 의식해서 인상을 늦췄다는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가스공..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한 혁명가가 있다.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나 농림학교를 졸업한 전일은 일찍이 북간도로 넘어가 광복단 단장으로 활약했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다음 연해주로 건너간 전일은 일본군과 반혁명군의 공격을 받고 있던 극동소비에트 정부를 지키기 위한 적군의 하바롭스크 방어전에 참전했다.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자이자 여성혁명가였던 김 알렉산드라가 외무장관으로 있던 극동소비에트 정부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3·1 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는 시베리아주둔 일본군의 철퇴와 병사들의 반란을 선동하는 유인물 5만 부를 배포하려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전일의 재판을 맡은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 재판장이 직업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본업은 조선독립운동이올시다.”..
북한 무인기들이 서울 상공을 침범한 사건을 전후로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전쟁 준비’, ‘핵전쟁 불사’와 같은 강경 발언을 토해냈다. 2018년 이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불었던 한반도 평화 무드는 이 정부 들어 일전불사의 전쟁 위기로 치달으면서 깨졌다. 대통령의 이 발언들은 물론 공허한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개시권이 미국에 부여돼 있을 뿐 우리의 군사주권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1조는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 주권재민의 대원칙은 방위조약 앞에서 무력하다. 조약 4조에는 “한-미 상호합의에 근거해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돼 있다. 미국은 군사력의 반입과 반출, 배치, 전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어떠한 동의도 받을 필요가 없다. 조약 하위법인 주둔군지위협정과 방위비분담특별협정 관련 조항들도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투성이다. 주한미군의 시설, 구역, 경비에 관한 부담을 한국이 져야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새 이전지인 평택 기지가 우리 돈으로 전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졌던 것도 그 규정에 따른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주한미군 기능이 오래전 전략이동군으로 변경된 뒤 평택기지가 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지휘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 위협과 함께 중국과 대만, 중국과 일본 간 충돌에 대한 군사적 역할도 주한미군에게 주어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 땅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 구상은 일본이 대 태평양 군사전략 실행에 따른 미국측 부담을 떠안는 대신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양해하는, 우리로선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미-일이 동북아와 아시아 전역에서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것인데, 이 전략은 일본을 군사 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양국 극우세력들의 의도에도 부합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국이 이 동맹의 하위 단위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주변국 사이의 군사적 충돌의 경우에도 한반도는 전쟁에 곧바로 휩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겉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를 반대하는 시늉을 하지만 기실 그 존재를 은근히 즐기고 있는 눈치다. 북핵이야말로 동맹국 일본의 군비증강을 정당화할 구실인 동시에 남한을 중국에 대한 전초 군사기지로 활용하는 데 더 없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북-미 간 하노이회담 결렬은 미국을 움직이는 군산복합체의 반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회담 성사로 인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죽음의 무기상’인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더 이상 미국과의 담판을 통한 핵 협상을 하진 않을 것 같다. 현재 북-미 간 긴장이 높아져 미국은 전략자산 증강을 비롯한 대규모 군사연습에 나섰고, 북한도 이에 맞서 수십 차례에 걸친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한반도 전체가 마치 기름을 부은 섶과 같아서 누군가 불만 당기면 금방 불바다로 변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동시 절멸의 참혹한 전쟁 위기에서 민족을 구하고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그러려면 군사주권부터 찾아와야 한다. 한-미 방위조약을 호혜-평등의 원칙에 걸맞게 개정하는 것이 평화 만들기의 첫걸음이다. 군사주권을 이민족에 맡겨 민족이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던 구 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질문했다. “선생님 제가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데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공자가 답을 했다. “나라를 만들려면은 믿음(信)과 군사(兵) 그리고 먹을 것(食), 3가지가 있어야 하니라.”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중에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입니까?” 공자가 잠깐 머뭇거리다 답했다. “그것은 군사이니라.” 자공이 또 물었다. “남은 2가지 중에서 하나를 제외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공자는 즉시 답했다. “당연히 먹을 것이니라. 국가는 먹을 것이 부족해도 몇 달은 버틸 수 있지만, 백성의 신뢰가 없다면 단 하루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언급되는 『논어』의 안연편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신뢰는 국가를 유지하는 최고의 기반이자 기초이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본보(26일자 인천판 1면)에 실린 인천시 중구 ‘신포 눈꽃마을 청년몰’ 철거현장 사진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눈꽃마을은 지난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15억 원(국비 7억 5000만 원, 구비 6억 원, 자부담 1억 5000만 원)을 들여 조성됐다. 인천의 중심 상권 1번지였지만 침체된 신포동 일대 골목상권을 부활시키자는 취지였다. 우현로 35번지(KEB 하나은행 뒷편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구조물을 조성, 고객들을 유치했다. 눈이 쌓인 유럽 마을을 연상시키는 눈꽃마을, 푸드 트레일러, 광장과 무대, 고객 쉼터 등을 설치하고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했다. 눈꽃마을은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에도 나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방문객들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발길이 끊어졌다. 청년점포들도 문을 닫아 이..
흔히들 우리나라 국민들을 두고 국난극복이 취미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조상들부터 그랬다. 왕조시대 국왕이 의주까지 내뺐어도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다.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쳤어도 만주에서 총들고 싸운건 국민들이었다. 독재정권에 목숨걸고 저항해 민주화를 이룬 풀뿌리 민중들이었으며, 나라가 부도났을 때 금가락지 빼서 보탠 건 권력하나 쥐어보지 못한 장삼이사 국민들이었다. 이런 국민들에게 27일 윤석열대통령은 점잖게 한마디 하셨다. “국민이 어려울 때 나라가 돕고, 나라가 어려우면 국민이 헌신하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만 하자. “대한민국은 나라만 잘하면 된다. 국민 탓하지 마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대통령이 내뱉는 말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워낙 실언이 잦은 터라 본인 스스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미를 알고 하는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위의 발언도 대통령이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던 청와대 영빈관에서 행안부, 통일부 등의 업무보고를 받는 와중에 한 말이다.(하긴 요즘 부쩍 청와대 사용이 잦다. 그럴꺼면 뭣하러 수천억 들여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뻘짓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려 충성경쟁을 마다않는 분위기에서 ‘국민이 헌신하는 시스템’이란 워딩이 또 어떤 나비의 날개짓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면 60명에 달하는 검사들이 야당대표 수사에 올인한다. 200회가 넘는 압수수색에도 뚜렷한 물증조차 없이 소환조사를 거듭하며 모욕주기를 이어간다. 대통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고 MBC를 대통령 전용기에 타지 못하게 몽니를 부리질 않나, 검찰이 MBC를 가짜뉴스로 수사한다더니 이제는 감사원까지 조사에 나선단다. 그뿐이랴? 이태원참사 희생자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12월7일 ‘더탐사’ 강제 압수수색, 1월26일에는 시민언론‘민들레’에 또 압수수색팀이 들이닥쳤다. 1월18일 국정원은 때아닌 간첩단 운운하며 민주노총 압수수색을 벌이더니 28일에는 경남 시민단체 활동가 4명을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체포했다. 무서운 검찰공화국이요 검사독재정권이라 불릴만도 하다. 독재에는 늘 호가호위가 뒤따르기 마련, 세간에서는 법무부장관이 부통령의 권한을 누리고, 진짜 대통령은 김건희여사라고도 한다. 각 부문마다 충성경쟁을 넘어서 이제는 “이 구역 미친 놈은 나야”하는 것을 시전하는 것 같다. 이게 나라냐? 서민들은 난방비폭탄, 치솟는 물가에 신음하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자괴감에 몸부림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더러 국가에 헌신하라니.. 여당 유력 당대표후보자마저 하루아침에 내려놓게 만들 정도로 당신은 대선기간 손바닥에 새기고 나왔듯이 주변으로부터 이미 충분히 ‘왕’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가? 무슨 헌신이 더 필요한가? 속내는 “공공요금 더 올리고 복지 후퇴 시킬테니 그래도 참아라”는 말을 하고싶은거 아닌가? 선거에서 38%의 지지로 권좌에 오른 히틀러가 총통이 되어 독일민주주의를 땅에 묻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9개월 남짓한 가시밭길을 지나며 대한민국은 “전두환이 양반이었고 박근혜가 차분한 능력자로 보인다”는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가 어땠는지를 알기에 나는 오늘도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피켓을 목에 걸고 일인시위에 나선다.
지금, 어떤 여행을 꿈꾸는가. 홀로 일정과 동선을 꼼꼼하게 검토하며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이도, 채널을 돌려가며 홈쇼핑 여행 상품을 들여다보는 이도, 모아뒀던 곗돈을 풀자고 모임을 설득하거나 연인과 함께 sns 핫플을 찾아보는 이도 모두 여행자다. ‘지금, 여기’를 떠나기 위한 준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평생을 들여 열심히 구축해둔 자신의 세상을 등지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일이다. 계획과 준비부터 길에 오르는 과정,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아무리 휴식을 추구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해도 일상을 벗어난 미지의 세상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행을 꿈꾸고, 떠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뭘까.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삶은..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공정특사경)이 올해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불법 고금리 대부, 대리입금 등 고강도 집중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불법 사금융을 발본색원해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공정특사경이 곤궁에 처한 서민들의 약점을 노려 초고금리의 불법사채업으로 피해자를 아예 막다른 내모는 ‘악덕’ 범죄를 뿌리 뽑는 계기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공정특사경은 우선 1~5월까지 대학생·취업준비생 대상 미등록 대부행위·온라인 불법 대리입금을 집중수사한다. 이어서 7~10월에는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 고금리 대출행위를 단속한다. 이와 동시에 관계부처와 협업하여 온라인상 신종수법을 연중 단속하며, 각종 예방 활동 및 수사단서 확보를 위한 ‘찾아가는 불법 사금융 피해상담소’ 운영을 확대·..
이해영 감독의 야심작 ‘유령’이 비교적 개봉 초기부터 꺾어진 데는 사람들이 가능한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칭찬이든 욕이든 영화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노이즈 마케팅도 처음엔 도움이 된다. 영화가 안된 것을 보니 그 어느 쪽도 아니었던 셈이다.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는 영화가 비교적 졸작이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가 않고 그보다는 뭐랄까, 지나치게 젠 체를 한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을 줬다. 이 영화는 독립운동 얘기다. 그중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의 얘기다.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얘기다. 이런 영화는 사람들이 쉽게 미워하지 못한다. 근데 뭐랄까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간 혀를 차게 하는 느낌이다. 영화 속 테러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이 너무 멋이 들렸다고 해야 하나, 역사적 사명감의 스노비즘 같은 것, 그 이상한 속물성 때문이다.(이준익 감독이 제작했던 2000년도 영화 ‘아나키스트’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실패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갱스터 영화처럼 꾸민 것은 영화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해영 감독은 1930년대를 유희의 공간처럼 여겨지게 끔 찍었는데 그게 결국 패착이었다고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박차경(이하늬)이 묘령의 여인 난영(이솜)과 담배 불을 나누는 곳이 마를렌디트리히 주연의 영화 ‘상하이 특급’ 간판이 그려진 극장 앞이다. ‘상하이 특급’은 1932년작이다. 근데 영화 속에서는 조선총독부의 신임 총독이 문화통치를 천명하느라 유령의 테러 조직인 흑색단을 공공연하게 수색하거나 탐문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부터 일단 시대의 코드가 맞지 않는다. 1932년이라면 만주사변 직전의 해이고 1937년 중일전쟁으로 가는 길목이다. 다시 무단통치로 가는 때이다. 여러 가지 실제 사회 상을 영화적으로 일그러뜨려 놨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에서부터 영화가 턱 막힌다. 오히려 영화의 최대 장점은 일본 순사인 무라야마 준지(설경구)란 인물이 가져온다. 그는 조센징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반만 일본인인 경무국 간부다. 그는 일본인 장군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직접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출신 성분 때문에 좌천된 상황이며 그렇기 때문에 호시탐탐 복귀를 노리는 중이다.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는 그런 그의 경쟁자이다. 무라야마는 경성에 들어온 유령을 체포해 공적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유령을 잡으려는 자가 오히려 더 거물인 유령일 수도 있다. 그건 마치 프랑스 비시 정부에서 독일군 앞잡이 노릇을 했던 프랑스 장군이 사실은 레지스탕스가 심어 놓은 스파이였다는 것과 같은 식이다. 무라야먀도 겉으로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서 고문하는 쪽이지만 사실은 더 큰 거사(총독 암살)를 위한 위장일 수 있다. 이해영 감독의 ‘유령’이 만약 그 같은 플롯이라면 꽤나 흥미로운 반전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경구의 정체는 비교적 일찍 드러나지만 설경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교적 마지막까지 그에게 희망을 걸게 된다. 진짜인지, (이중 스파이어서) 그러는 척하는 것인지, 무라야마는 영화 속에서 줄곧 이런 얘기를 한다. “아직도 조선이 독립할 수 있다고 하는 헛된 희망을 가진 자가 있다. 틀렸다. 조선은 결코 독립하지 못한다. 영원히 일본 천황과 함께 내선일체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못하든 1930년대의 지식인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일본이 러시아도 이기고 이제 만주도 차지하고 곧 중국도 이길 판이다. 누가 감히 일본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암살자 유령이 소속된 흑색단이? 어림도 없는 얘기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의 명장면도 의외로 배신자의 고백에서 나온다. 최대의 밀정이었던 염석진(이정재)은 저격수 안옥윤(전지연)과 명우(허지원)에게 처단당하기 직전 이렇게 말하며 애걸한다. “내가 조선이 정말 독립이 될 줄 알았겠는가. 그때 그걸 알 수가 있었겠는가”라고. ‘암살’과 ‘유령’이 보여주는 흥행의 갈림길은 그런 역사적 패배주의에 맞서는 사명감의 진정성이다. ‘암살’의 안옥윤이 겪게 되는 비련(하와이 피스톨, 하정우가 그녀를 두고 죽는 것)과 그녀의 동지 속사포(조진웅)와 황덕삼(최덕문)의 희생은 멋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멋있는 것이었다. 영화 ‘유령’에서 암약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서는 바로 그런 분위기가 떨어진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의 근거가 다소 불분명하다. 관객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그 지점이다. 독립운동의 행동동기들은 다소 인공적이고 억지스러운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반(反) 독립의 설법은 오히려 내추럴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래서는 궁극적으로 악이 이기는 세상이 된다.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 ‘유령’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시대를 그대로 묘사하려 했지만 서사를 촘촘하게 엮어 내는 능력이 부족해 실패의 길을 걷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유령’에서 유령을 잡으려고 설치는 자처럼, 그리고 영화 ‘암살’에서 밀정인 염석진처럼, 지금도 주변이 온통 부역자 천지이다. 변절한 지식인들 천지이다. 지식인의 본산인 언론이 그렇고 대학이 그렇다. 변절자들이 점점 승승장구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이래선 이기지 못한다. 변절한 지식인들의 수를 줄이거나 없애지 않는 한 시대는 바뀌지 못한다. 영화 ‘유령’의 마지막 장면처럼 잔뜩 멋만 부려서 될 일은 안될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1930년대 일본 식민지 시대를 빼닮았다. 영화 ‘유령’이 낱낱이 보여 준 대목이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로나마) 속시원하게 시대적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 흥행이) 실패한 이유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시절이다. 영화도 답답하고 시대도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