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길이 없다. 거기가 흡연이 가능한 곳인지 아닌지. 소사역 1번 출구를 나와 왼쪽으로 틀면 곧장 파출소다. 파출소 앞에는 6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가 있다. 그녀의 위치는 횡단보도와 파출소를 y축 밑변으로 하는 직삼각형의 x축 높이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그리도 오묘한 꼭짓점 좌표에서 담배를 물어서일까. 야트막한 화단 담벼락에 엉덩이를 붙이고 이등변삼각형처럼 한쪽 다리를 꼰 체 담배를 피우는 그녀가 문득 궁금하다. 화단은 구청 직원들이 심어놓은 봄꽃으로 요란하지만, 내 눈에 클로즈업 되는 건 그녀 하나뿐이다. - 아시죠. 술 보다 담배가 더 해로운 거. 임플란트 시술을 마친 의사는 금연을 요구했다. 치과 의사의 명령이 없었다면 나 또한 그녀와 한편이 되어서 담배를 태워 물었을까. 저기, 죄송한데요. 뒤통수 긁적이며 다가가 그녀에게 담배 한..
평소 영화를 잘 안 보는 사람들이라도 한 번은 들어 봤고 또 한 번 정도는 봤었을법한 영화가 홍콩 왕가위의 작품들이다. 그의 초기작 ‘열혈남아’와 ‘아비정전’, ‘중경삼림’과 ‘동사서독’ ‘타락천사, 또 ‘화양연화’와 ‘해피투게더’, ‘2046’을 거쳐 비교적 최근에 속하는 2013년작 ‘일대종사’ 까지, 왕가위의 영화들은 희대의 걸작들이다. ‘일대종사’ 이후 그는 연출을 하지 않고 있는데 풍문에 따르면 그 역시 TV 드라마를 시작하려 한다고 한다. 뭐라? 왕가위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상실과 공허의 정서 때문이다. 왕가위의 영화들에는 늘 이별이 있고 사람들의 관계는 항상 이어지지 못한다. 사람들의 일상은 파편적이며 목적을 찾기가 힘든 모습들이다. 그저 실존의 아픔을 견디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일상을 반복해 간다. 그런 왕가위의 작품들을 보는 사람들은 영화가 주는 ‘작위적인 행복’ 보다 ‘리얼한 불행’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왕가위의 영화는 머리는 어둡되 가슴은 촉촉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왕가위의 지성은 늘 비관적이지만 의지는 그래도 약간이나마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다. 왕가위가 그렇게 된 데에는 홍콩의 역사와 정치가 깊이 연관돼 있다. 왕가위 영화 연출 인생의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된 작품은 ‘중경삼림’과 화양연화’ 그리고 ‘2046’이다. ‘중경삼림’은 1994년에 찍었는데 1997년에 홍콩이 영국에 반환되기 3년 전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남녀는 늘 헤어진다. 그리고 모두들 어디론가 떠날 것을 늘 준비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이직(移職)도 쉽다. 주인공인 경찰 663(양조위)은 나중에 매점 주인이 된다. 원래 매점에서 일하던 페이(왕페이)는 스튜어디스가 돼 미국을 오가며 살아가게 된다. 매점에서는 끊임없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1965년 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큰 소리로 빵빵 터져 나온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아일랜드 록그룹 크랜베리스의 1992년 노래 ‘드림스의 왕페이 버전', 곧 광동어 버전이 흐른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1960년대와 1990년대를 오가며 그 시대적 흐름을 이어가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958년생으로 왕가위는 유년시절에 1967년의 홍콩 봉기 사태(홍콩 노동자들의 전국 쟁의로 영국에 의해 철저하게 탄압된다. 이때 노동자들을 도왔던 것은 중국 공산당이었지만 이후 2019년 홍콩 시위사태 때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 시민과 대학생들을 탄압하고 영국과 서방이 이들을 돕는다.)를, 그 불안한 시대의 아우라를 직접 겪었다. 홍콩은 영국도 아니고 중국 대륙도 아니며, 홍콩 자신도 아니고 자신이 아닌 것도 아닌, 늘 경계의 존재임을 ‘생래(生來)적으로’ 알게 된 왕가위는 그 실존의 불안을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시킨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불륜의 두 남녀(그런데 이 불륜에는 기이한 정당성이 있다.)가 만나는 것은 1966년이다. 홍콩봉기 전야의 극도로 불안한 정정(政情)이 영화 전편에 흐른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차우(양조위)는 신문사에서 일하지만 기자인지 아닌지 명확하지가 않다. 그는 늘 (모두들 시위 취재를 나간 듯이 보이는) 텅 빈 편집실에 거의 홀로 앉아 신문 무협 연재소설을 쓴다. 그렇게 해서 번, 약간의 돈을 그는 도박에 쓴다. 차우는 결국 불륜과 소설 쓰기에 매진하는데 여주인공 첸 부인(장만옥)은 그의 글의 감수(監收)를 본다. 그러기 위해서 두 남녀가 이용하는 곳이 바로 한 호텔의 2046호이다. 두 사람은 종종 이별 연습을 한다. 여자의 남편에게 둘 사이가 발각돼서, 혹은 그 반대여서, 그것도 아니면 불륜은 반드시 헤어져야 할 운명임으로, 미리미리 이별 연습을 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첸 부인은 그 ‘리허설’에서 실제로 펑펑 운다. 차우는 그런 그녀를 안아 주며 ‘연습인데 왜 그러느냐’고 한다. '화양연화'는 2000년에 만들어졌고 이미 홍콩은 1997년에 반환됐지만 2046년에는 홍콩이 중국으로 완전히 귀속되기로 결정된 상황이었다. 이별 연습은 단순히 연습이 아닌 셈인 것이다. 1968년 캄보디아를 취재하러 갔다가 돌아온(이때는 베트남 전쟁이 이미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확산된 때였다.) 차우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그렇게 번 알량한 돈으로 도박을 하고 술을 마신다. 당연히 여자 품을 전전한다. 캄보디아에서도 도박을 했고 그런 그에게 도박 빚을 꿔주며 잠깐 사랑에 빠진 여자가 우연찮게도 과거 홍콩에서 만났던 여자와 성이 같은, 수리 첸(공리)이다. 홍콩으로 돌아와서는 예전에 썼던 2046호에서 잠시 몸을 섞던 여인 미미(유가령)가 누군가에게 살해되는 바람에 치우는 어쩔 수 없이 2047호에 들어오게 된다. 호텔 사장의 딸 왕징웬(왕페이)은 일본 남자 타쿠(기무라 타쿠야)를 사랑하다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정신병원 신세까지 진다. 남자 차우는 바이 링(장쯔이)을 만나 사랑하고 늘 격렬한 정사를 나누지만 섹스 후에 그는 여자에게 꼭 화대를 준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화를 내다가 곁을 떠난다. 목적 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차우에게 호텔 주인의 딸 왕징웬은,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무협물보다는 정식의 소설을 쓰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2047호에 틀어 박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SF 판타지물인데 제목이 『2046』이다. 그 내용의 흐름이 바로 영화 ’2046’인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비교적 ‘깡그리’ 무시되는 시대를 코앞에 두고 살아가는 심정은 극히 괴롭고 고독할 것이다. 왕가위가‘중경삼림’을 만들고 ‘화양연화’와 ‘2046’을 만들었을 때가 그랬을 것이다. 1997년의 반환과 2046의 귀속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다. 곧 있을 새로운 5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그때의 왕가위와 비슷할 것이다. 존재 증명의 부정되거나 부인되고, 불안한 실존이 늘 흔들리는 일상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예술은 다다이즘에 빠질 것이다. 왕가위의 마지막 연출작‘일대종사’에서 여주인공 궁이(장쯔이)는 엽문(양조위)과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한다. “인생에서 후회가 없다는 건 다 하는 얘기예요.” 그리고 언젠가 이런 얘기도 했다. “무예인에게는 3단계가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보고 중생을 보라고요. 난 마지막 길을 가지 못하니 나 대신 당신이 가줘요.” 궁이는 지금 죽어 가는 중이다. 맞다. 지금의 우리 상황을 보니 궁이 처럼 후회할 일이 천지다. 무엇보다 자신도 보지 못했고 세상도 보지 못했다. 중생은 더욱더 보지 못했다. 지금 누군가 여기서, 영화를 찍으면 ‘중경삼림’ 이상의 걸작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과연 기뻐할 일일 것인가, 슬퍼할 일일 것인가.
윤석열 새정부 조각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이번주 한덕수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하지만 한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25일 첫날 자료 제출 문제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청문회장에서 퇴장하는 등 초반부터 팽팽한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여야간에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드러난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자격 시비는 역대 청문회의 판막이라는 점이 문제다. 부모찬스를 비롯해 위장전입, 탈세, 농지법 위반 의혹 등 단골메뉴가 망라돼 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이른바 ‘아빠 찬스’ 의혹은 본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인철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 후보 역시 딸의 ‘아빠찬스 장학금’ 논란이 일었다. 윤 당선인의 파격 인사로 주목받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2008년 2월 26일 저녁, 그때 나는 북한 남포항의 식당에서 북한 통전부 L선생과 함께 북한 전역에 생중계되는 뉴욕필하모니의 공연을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경공업 자재 인도단장으로 방문 중이었는데 평양에서 내려온 L선생과 함께 있는 것이다. 나의 관심은 공연이지만 L선생은 어제 이명박대통령 취임사에서 들은 ‘비핵·개방·3000’이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L선생의 질문, 맴도는 나의 원론적 대답. 마지막 L선생의 독백같은 발언, ‘우리는 뭐 핵이 좋아서 그런 줄 아시오!!’. ‘선비핵화’, ‘선제타격’, 등 신정부의 대북관련 발언을 듣고 있는 평양의 L선생을 떠 올려 본다. 남한정부가 야속함을 넘어 미련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핵을 포기하고 미국의 말을 잘 들으면 제재도 없고 경제지원과 대북투자로 경제가 발전되고 인민들은 허리띠를..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 공부를 어디까지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직 놀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활동을 주로하다가, 초등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공부 걱정이 많아지는 걸 종종 목격한다. 옆집 아이는 어려운 영어, 수학 문제를 척척 푼다는데 이제 우리 아이도 자기 주도 학습보다는 학원에 다녀야 하는 건지, 학원에 다니기에 이미 늦은 건 아닌지가 주된 걱정거리다. 걱정의 결론은 선행학습을 해야 하느냐, 현재 배우고 있는 과정에 충실해야 하느냐로 귀결된다. 대화 속에서 이미 부모님이 고민의 정답을 내려놓은 걸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보통 학부모님이 결정한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대답한다. 교사의 조언으로 학부모의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괜히 불안감을 심어줄까 봐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려는 일종의 배려다. 그래서 어떤 분에게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시라고 강력하게 말하다가, 다른 분에게는 아직 혼자 공부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때는 영어, 수학 선행학습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폭넓은 독서와 수학 연산 연습, 여기에 기초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 이 세 가지를 부지런히 해두면 중학교에 가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모든 과목에서 따라잡기 어려운데 독서가 탄탄하면 문제없고, 수학은 공식을 암기하면 풀이 연산 과정에서 결판이 나기 때문에 연산 시간을 줄이는 게 핵심인 과목이고, 운동으로 체력을 길러두면 고등학교에 가서 엉덩이로 결판이 나는 순간에 빛을 발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지금은 특정 과목을 공부하는 것보다 매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수학 연산을 연습하고, 운동하면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하자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조금 더 격렬한 어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많은 책을 읽고, 했을 때 즐거운 운동을 하고, 수학 연산 학습지를 꾸준히 풀어라.’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교과서 공부 그만하고 운동장으로 나가자는 혁명적인 외침도 들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이에게 돌아온 피드백은 웃기면서도 슬펐다. 엄마에게 담임선생님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은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되셨는걸?”이라고 답하셨다고 했다. 다시 정정해서 초등학생이니까 스트레스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 말고, 나중에 중학교 가서 하라고 말해줬다. 많은 연구에서 선행학습은 그 과목의 성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행학습이나 예습은 나만 선행을 안 해서 뒤처진다는 불안을 해소하는 데 주로 도움을 준다.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중 하나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해주는 ‘복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목을 공부한 ‘절대적인 시간’이다. 복습으로 학습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성적을 올리는데 수월하다. 선행 학습은 성적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걸까. 한 과목을 공부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과목 성취도가 올라가니 선행학습을 하는 것도 성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효율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성장 단계에 맞는 학습이 아닌 내용을 미리 배우는 건 200km로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스포츠카를 타고서 50km의 속도로 비포장도로를 뱅글뱅글 도는 것과 비슷하다. 초등에서는 훗날 스포츠카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엔진에 예열하고, 타이어를 정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째 지속되고 있다. 인터넷상으로 퍼지고 있는 부차 지역 등 절규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참혹한 동영상은 차마 끝까지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벌써 난민이 5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전쟁을 규탄하면 절망에 빠진 우크라이나 국민의 안녕을 기원해 본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보도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소식은 대부분 서방 언론을 통해서이다. 당연히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악의 화신이자 전쟁광이고 상대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청맹과니가 아니라면 한쪽의 시각만으로 국제정세를 논해서는 안 된다. 전쟁의 원인제공을 누가 했는지, 모든 책임을 푸틴에게 돌리는 것이 정당한지, 우크라이나의 친나치세력(유로마이단)에 의하여 돈바스 지역에서 1..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이 허가 없이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거나 보관을 소홀히 한 업체들을 대거 적발했다. 도 특사경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8일까지 도내 유해화학물질 취급 허가업체 360개소를 점검했다. 이 결과 77개소 업체에서 총 81건의 화학물질관리법을 위반사례가 적발됐다. 무허가 유해화학물질 취급영업 행위(6건)를 비롯해 사고대비물질 관리기준 위반 행위(10건), 유해화학물질 취급기준 위반 행위(17건), 유해화학물질 보관 장소 및 보관 용기에 표시사항 미표기 행위(7건) 등 사례도 다양했다. 이밖에도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에 대한 자체점검을 이행하지 않았거나 대기환경보전법 및 물환경보전법을 위반한 행위 등도 많았다. 시흥시에 있는 한 업체의 경우 2017년 12월경부터 적발 당시까지 연간 약 2.4톤의 황산, 질산, 염산 등을 관할관청의..
영화 공기살인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을 소재로 했다. 의사이자 주인공인 태훈은 아들의 급성 간질성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아내의 급사를 겪으면서 이 상황의 원인을 찾아보려 나선다. 유사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 사례를 살펴보던 그는 아들과 아내가 누웠던 침대 곁 가습기에 시선을 멈춘다. 태훈의 눈빛이 흔들린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유통되기 시작해서 2011년 판매 금지가 되기 전까지 17년간 43개 제품, 총 998만 개가 판매됐다. 당시 언론은 가습기를 정기적으로 소독해주어야 한다며 광고와 기사로 가습기 살균제를 소개하고 홍보했다. 제품을 사용한 사람은 40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이 중 56만 명은 몸에 크고 작은 건강상의 피해를 경험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7,685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1,75..
북한은 4월 13일 평양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 준공식을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 영상을 공개하였다. 김일성과 김정일 사망 시 중대보도를 낭독했던 리춘히 방송원에게 배정된 주택에 김정은이 방문해서 주택 내부를 살펴보았다. 79세의 리춘히는 연신 기쁘고 행복한 모습을 보였고 김정은은 앞으로도 방송 활동을 잘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번에 준공된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는 북한이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평양 5만 세대 건설과는 별도로 북한 주요 부문 공로자들을 위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나서서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움직여 나가는 핵심 인물들에 대한 보상이자 지속적인 충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 지역은 김일성이 ‘금수산 태양궁전’으로 70년대에 가기 이전까지 거주했..
우리 경제 곳곳에서 비상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4월 1~20일 무역수지가 52억 달러 적자를 기록해 지난 3월 한 달간 무역수지 적자(1억 4000만 달러)를 크게 넘어서며 이달 전체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가 예상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한 달 전보다 1.3% 오르며 역대 최고치를 보였고 상승률만 보면 5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3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4.1% 상승하며 역시 10년여 만에 최고치다. 또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다시 1240원선을 넘어서는 등 요동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낮추면서 한국도 3%에서 2.5%로 크게 내렸다. 반면에 우리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1%에서 4.0%로 대폭 올렸다. 미-중·소의 신냉전에 따른 공급망 교란과 우크라이나 지정학리스크, 지속되는 코로나 파장 등이 맞물린 말 그대로 복합 위기다. 인플레이션에 맞서 미국은 금리인상을 포함한 강력한 금융긴축을 추진·예고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상승 국면이 적어도 1∼2년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구조적인 전환기와 연계돼 우려를 낳고 있다. 첫째 갈수록 고조되는 ‘신냉전-反(반)세계화’의 흐름이다. 미국과 중·소간의 갈등이 경제와 안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기존 세계화에 기반한 지구촌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신냉전-반세계화’의 양대 파고가 장기화될 가능성에다 최종 종착지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 신냉전의 새로운 양태다. 국가 간 연대나 동맹이 기존엔 안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신냉전은 경제 영역과 얽히며 불확실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미국이 공을 들여온 인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미-러시아·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중립’ 태도를 보이며 경제·안보의 실리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전통적 우방국인 미국과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과도 틈새가 벌어져 있다. 셋째 세계경제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인구다. 세계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북반구의 경우 중국을 비롯해 일본 한국,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인구감소 위기에 직면해 있다. 로봇 등 획기적인 과학기술의 진보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인구감소가 노동력 공급 축소로 이어져 지속적으로 임금 인상 등에 따른 고물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차기 윤석열 새 정부는 코로나 소상공인 지원을 비롯해 기초연금 인상, 출산급여, 병사 월급 상향 등 지출해야 할 공약이 즐비하다. 물가·금리 인상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가계빚은 2100조 원이 넘는다. 우리는 고용사정이 좋은 미국과는 달리 고물가만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게 간단치 않다. 나라 안팎의 복합위기에 맞서 우리만의 비상탈출구와 먹거리를 조속히 찾아야 한다. 윤 당선인은 경제와 능력주의에 방점을 둔 첫 조각을 단행했다. 현재의 위기는 과거의 패러다임과는 다른 흐름이다. 안보와 외교, 인구 등 전문가, 민간 관계자를 망라하는 총체적인 경제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