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산하 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에게 론스타에 손해배상금으로 2억1,650만 달러(약 2,901억 원)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정부는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은 한 푼도 내줄 수 없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죽은 아이 불알 만지는 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확정된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면 왜 이런 사태를 초래했는지 그 과정에 잘잘못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 정부의 역할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사안도 복잡하지만, 론스타 건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진출해서 극동건설을 매수, 매각해서 7천 1백억 원의 이익을 냈고, 뒤이어 외환은행을 매각함으로써 5조 1천억 원을 얻어 한국을 떠났다. 당시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은 금융기관을 인수하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산업자본인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더욱이 국가 소유였던 외환은행은 숫자 조작 등을 통해서 부실 금융기관이 되고 외국계 투기자본에 넘겨졌다. 여기에 관련한 행위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이 문제는 영화 “블랙머니”로 만들어져 국민적 공분을 샀다. 6조 원대의 엄청난 순이익을 챙기고 떠났던 론스타가 또다시 외환은행 매각시 정부의 방해로 손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간 국제투자분쟁소송(ISD)을 통해 6조 원의 배상금을 요구한 것이 2012년이었다. 애당초 6조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은 자신들이 낼 세금까지를 알뜰하게 포함했기 때문이고 실제는 6-7천억 원대의 소송이었다. 한국을 국제 호구로 보고 하는 행동이었다. 중재재판은 10년 만에 종결되어 세금 등의 소송은 각하하고 한국 정부의 매수방해행위를 인정하는 한편 론스타도 매각 당시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를 인정하는 식으로 양측 모두의 50%씩의 책임을 수용하라며 손해배상금을 확정한 것이다. 정말 피 같은 국민 세금으로 이자에 변호사비 포함 약 4000억 원 가까운 금액을 내게 된 국민은 눈뜨고 코 베게 되었다. 법무부는 취소소송을 하겠다면서도 재수사는 시효 만료로 어렵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산업자본 론스타를 숫자 조작까지 하면서 외환은행을 부실기관으로 만들었던 자는 누구인가. 론스타에 투자해 이익을 챙긴 검은 머리 외국인은 누구고, 2006년 대대적인 수사에도 모두에게 면죄부를 준 자들은, 어처구니없는 제도를 추인한 당시 국회의 주역들은, 론스타의 소송대리인으로 나서 국익에 막대한 해를 끼친 법률인은 또 누구인가가 밝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반면교사로라도 남을 것 아닌가. 이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혈세를 걱정한다면 철저하게 수사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책임자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 변상, 구상권 청구를 하면 된다. 그러나 어쩌랴. 관련자들이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부총리, 법무장관, 금융위원장 등 한국사회의 지배자들이 되었으니. 아니 20년 전의 권력이 아직도 권력인 것이 우리의 비극인가. 오해받지 않게 제대로 수사해 달라.
남미 우루과이의 전직(2010~2014) 대통령이다. 1935년 몬테비데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곱살때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가축을 키우고, 꽃을 팔아 먹고 살았다. 고교 졸업장도 없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쌀을 벌면서 식물학, 원예, 문학, 역사책을 두루 탐독하였다. 훗날 이 분야의 전문가들도 놀라는 큰 지성을 독학으로 이루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호세 무히카-조용한 혁명가'. 이 책들은 보통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만큼 검소하게 사는 한 대통령에 관한 감동의 기록이다. 현실정치의 바이블이다.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이 필독해야 한다. 실은 이로써 정치학 교과서는 폐기하고 다시 쓰여져야 마땅하다. 정치학자들과 정치인들은 그의 제자가 되어 '구세(救世)로서 정치(政治)'를 역설해야 한다. 무히카는 20대 때 군사독재와 싸우는 도시 게릴라의 리더였다. 장장 14년을 옥살이 했다. 그와 동지들이 겪은 수감생활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야만적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이 땅에서 이뤄졌던 수많은 '지옥'의 사례들을 떠올리며 두 시간 내내 몰입하게 되는 탁월한 정치영화 '12년의 밤'이 바로 이 특별한 사상가 정치인을 다룬 걸작이다. 넷플릭스에 있다. 무히카는 지옥의 폭력과 고문에다 망상장애까지 심해져서 자포자기로 가고 있었다. 그 때 면회온 어머니가 아들을 죽비로 내리쳤다. "저항하라. 저항해야만 저놈들이 너를 죽이지 못한다." 그날 바로 저항했고 대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잘난 아들들은 이 대목에서 등급이 정해진다. "감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의외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장소다." 무학의 게릴라 전사가 그 지옥에서 훗날 세상을 놀라게 한 최선의 품격을 이뤘다. 그가 펼친 정치는 당연히 구미 선진국들의 오만한 리더들을 겸손한 학생이 되게 했다. 무히카, 체 게바라, 프란시스코 교황은 삼총사로 사상적 동지다. 객관적 평가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 유엔연설 때도 노-타이였다. 대통령 월급의 90%를 극빈층 주거열악자들의 집짓기 운동조합에 기부하고 함께 지었다. 옷과 양말은 꿰매어 입는다. 누구를 만나도, 어디를 가도 눈썹 진한 소탈한 농부의 모습이다. 대통령궁은 노숙자들에게 제공하고 부인과 살던 허름한 농가주택에서 30년 된 자동차로 출퇴근했다. 영국 '가디언'의 기자는 대통령이 얼룩진 운동복에 구멍난 운동화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모습을 특별하게 기사화했다. 그런 그가 마리화나 생산 유통을 합법화하여 미국 등 세계가 벤치마킹 중이다. 카톨릭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동성혼과 여성 혼자서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입법했다. 혁명이다. 호세 무히카 왈, "욕망을 물리칠 줄 아는 것, 싸고 흔한 식자재로 맛난 음식을 만드는 것, 마케팅 사회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교양이다."
지난 8·19 북한 김여정은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고 반응하였다. 김여정은 ‘담대한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거부한 10년전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용어 선택에서부터 입장 표명 주체,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 번영에 대한 고민 등에 있어 여러모로 아쉬운 북한의 반응이다. 담대한 구상은 남북이 상호 협력하면서 함께 번영 발전해 나가자는 구상이다. 다만 구상 실현을 위해서는 북한이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핵무기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겠다는 의지 즉,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가 선제적으로 해결되어야 협력하겠다는 ‘리비아’식 해법과는 달리 비핵화 의지만 확실하다면 우리 및 국..
지난달 30일 기획재정부가 지역화폐 보조금 지원 전면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 지역 상권과 소비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취약계층 직접 지원에 쓰는 게 우선순위로 보여 보조금을 예산안에 담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0년 보조금을 8% 지원한 뒤 2021년 6%, 올해 4%(6053억원)로 계속 축소해왔는데 이마저도 아예 없애버렸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강력한 방역체제에서 영업을 제한 받다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서 생활형 자영업자들이 조금 숨을 쉴 수 있나 싶었다. 그런데 살아날 만 하니까 이번에는 지역화폐 보조금 지원을 아예 끊어버린 것이다. 지역 화폐는 ‘10%’라는 높은 캐시백 혜택을 앞세워 지역 내 소형 점포 이용을 유도해왔다. 이를테면 1만원을 내면 1만1천원을 카드형 지역화폐에 충전시켜 주는 방식 등이다. 혹독한 가뭄속의 보리고개를 넘던 자영업자들에겐 감로수와도 같았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20년 10~11월에 실시한 ‘지역사랑상품권 유통실태 조사’를 보자. 국내 소상공인 가맹점(매장)의 경우 매출증가율은 3.4%였다. 매출증가액은 87만5000원으로 전체사업체 평균대비 32만6000원 높았다. 소비자들의 지역 내 소비 비율은 40%에서 50%로 높아져 지역순환경제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특히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역 내 음식점이나 동네 가게, 식료품점, 미용실 등 생활형 자영업자들이 혜택을 많이 봤다. 상황이 이러니 소상공인들이 지역화폐 예산 전액삭감 소식에 낙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지도 않은 상황인데 캐시백 혜택을 없애면 결국 매출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 지방정부들도 난감해 하면서 간신히 숨통을 열기 시작한 지역 경제가 다시 침체의 깊은 나락으로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크게 반발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주재한 도정 확대간부회의에서 지역화폐가 소상공인 매출 증진에 기여해왔다면서 “상인들을 만날 때마다 긍정적 반응과 확대 건의를 들었는데, 국비를 전액 삭감했다는 건 경제와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상공인의 매출 하락과 민생 어려움이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이유나 목적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도 거두지 않았다. 일각에선 유통 대기업·카드사를 위한 것이란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경기도는 지역화폐를 가장 많이 발행하고 있는 지역이라서 국비 전액 삭감 소식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도의 지역화폐 총 발행 규모는 해마다 증가, 올해 4조9992억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28.5%나 된다. 지역화폐 지원예산은 지난해 1조522억 원이었는데 올해 6050억원으로 감액시켰고 그마나 내년 예산엔 단 1원도 반영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김지사나 소상공인들이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본보(2일자 6면)는 지역화폐의 국비지원 전액 삭감 소식을 들은 수원 시장 상인들은 당혹감을 전했다. 지역화폐인 ‘수원페이’의 경우 매출의 40%정도를 차지한다는 화서시장 상인은 상인들과 소비자들이 타격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부와 국회는 지역화폐 활성화가 지역경제와 물가안정을 돕는 길이란 상인들의 말을 귀담아 듣길 바란다.
초콜릿 천국, 벨기에에 가면 손 모양 초콜릿을 볼 수 있다 화가 반 고흐의 고향인 앤트워프 지역 전설 중, ‘뱃사공의 돈을 뜯어내는 거인 안티곤의 손을 잘라 퇴치한 영웅 브라보’ 이야기가 있는데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초콜릿이다. 내게는 손 모양 초콜릿도, 그 전설도 섬뜩하다. 그리고 손 모양 초콜릿을 관광 상품화한 벨기에 국민성도 섬뜩하다. 선조, 레오폴드 2세(1865 – 1909)의 대학살을 생각하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초콜릿, 와플, 맥주로 이름난, 달콤하고 고소하고 시원한 유럽 선진국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의 아프리카 콩고 대학살은,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에 못지않았다. 벨기에는 전쟁으로 점철된 유럽사의 희생국이었다. 벨기에 역사는 기원전 58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정벌 당한 이후 지난한 식민의 고통으로 얼룩져있다. 15세기말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 16세기말에는 프랑스에, 19세기 말에는 네덜란드에, 1,2차 세계대전시 독일에 점령 당했다. 그런 벨기에 역사에 잠깐의 햇살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1830년의 8월 혁명(프랑스 7월 혁명에 자극받아 일으켰다)으로 얻은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이었다.(1839년) 1865년, 벨기에 국왕이 된 레오폴드 2세는 유럽강국의 해외 식민전쟁에 뒤늦게 뛰어든다. 얼마 안남은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 돼, 필리핀 등 이곳저곳 찔러보던 그는 아프리카 콩고를 먹잇감 삼는다. (사악하게도) ‘과학 증진과 인도주의, 그리고 기독 문명 전파등’을 기치로 내세운 ‘국제 아프리카 협회’를 만들어 ‘박애주의자’란 가면으로 콩고에 식민 깃발을 꽂는다. 이후 본색을 드러낸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 땅의 75배에 이르는 콩고땅을 사유지화하고 고무나무로 뒤덮인 콩고 찬탈을 시작한다. 콩고인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노동자의 아내와 딸을 감금 강간하고, 손발을 자르고, 즉결 처형하는 등 국가 전체를 피바다 만든다. 벨기에 관리들은 노동자의 손발 담은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노동자들을 겁박했다. 레오플드 2세의 약 20년간의 콩고 대학살로 콩고 인구 절반인, 1000만명이 사라졌다. 1908년 대학살 행진은 막 내렸지만, 콩고 독립은 50여 년 지난, 1960년에야 이루어졌다. 나에게 벨기에는 케이옵스(kheops)의 나라다. 낯선 이름이라면, 가수이자 배우 엄정화씨가 예전에 파우더 광고할 때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아르메니안 송(Armenian Song)’을 들어보시길. 이 신비하고 몽환적인 음악은 벨기에 출신 작곡가 애릴로리가 주축이 돼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대만, 영국, 미국 등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그룹의 작품이다. 케이옵스란 이름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이름에서 따왔다. 애릴로리는 ‘케이옵스의 꿈은 서로 다른 문화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들이 음악 교류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것’ 이라고 한다. 벨기에 국민들은 현재도 레오폴드 2세를 건축왕으로 떠받들며 위인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는데 (교육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 애릴로리도 그럴까? 케이옵스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집시 파워(Gipsy Power)를 듣는데, 오늘은 카카오 함류량 높은 초콜릿보다 더 쓰게 들린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건희 씨의 2007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컨텐츠디자인 전공의 박사학위 논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 ‘애니타’ 개발과 시장 적용을 중심으로'의 표절 사실에 대해 대학사회가 어수선하다. 김 씨는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구연상 교수의 2002년 논문 '디지털 컨텐츠와 사이버 문화'를 표절했고, 국민대는 조사 결과 표절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구 교수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단을 통째로 베끼는 등 “완전 표절”이라고 밝혔다. 구 교수를 인터뷰한 MBC 시사집중 8월 8일 방송에서 진행자는 특수대학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국민대 교수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수대학원 같은 경우는 박사학위 논문 검증이나 심사과정이 좀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이런 것들을 오히려 감안”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민대 교수의 발언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문제의 대학원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특수대학원이 아니라 전문대학원이다. 특수대학원은 전문가 재교육을 목표로 하는 석사과정으로 박사과정이 없다. 대학교수가 전문대학원과 특수대학원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대학원 과정이 난삽하다. 김건희 씨는 국민대 외에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을 다녔고,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에서 경영전문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안양대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라고 써놓은 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고위 과정이라는 것도 있다. 김건희 씨와 함께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수료한 동기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sbs 리포트도 있었다. 김 씨는 서울대 GLA(Global Leader Association) 과정도 다녔는데, 그때 5일 일정의 뉴욕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별도의 뉴욕대 과정을 이수한 것처럼 이력서에 쓴 적도 있다. 학구열이라고 해야 할지 인맥이나 스펙 쌓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대단한 열정이다.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전문대학원과 특수대학원, 그리고 최고위 과정 따위를 두는 목적은 돈이다. 영리기업이 된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학위논문 지도와 심사가 밀도 있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위논문이 부실해지는 건 기본이고 표절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유독 김건희 씨에게만 해당되는 경우가 아니라는 얘기다. 적어도 대학교수라면 근원적으로 구조적인 원인과 문제를 직시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본분에 맞는 일이다. 이 경우 드러난 표절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되, 그걸로 그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의 모색에까지 실천적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수한 교육적 열정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행위라는 오해를 받기 쉬울 것이다. 대학이 진리 탐구와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마당에 특정인의 표절 행위를 단죄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었다. 일제에 강제 병합된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대한제국에게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한다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됐지만 일본은 두 나라의 관계개선을 위해 보여야할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처럼 전범국이었던 독일과는 달리 과거사 청산을 위한 진정한 사과에 인색했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가 하면 여전히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 2019년 7월엔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수출통제 조치까지 함으로써 우리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물론 우리 국민들도 일본상품 사지 않기, 일본여행 하지 않기 운동 등으로 맞섰다. 해방된 지 77년이 넘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로 성장했다. 현재 일본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 관료 출신 경제석학인..
추석(秋夕)의 계절, 가을이다. 가을은 그 저녁(夕) 추석이 정겹고, 그 물결(波) 추파는 은근하다. 추파(秋波)가 무엇인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 바람에 시나브로 일렁이는 호수처럼, 가을의 물결은 조용하고 투명하다. 맑아서 서늘하다. 사람 눈빛이라면 보는 이의 가슴을 싸늘하게 얼려버릴 강렬함을 품었겠다. 사랑을 구하는 여인의 그것이라면 아름다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날카로운 비수(匕首)는 아닐까. (2016년 9월) 언어는 역사를 품는다. 그 틀(프레임)이 보듬었던 지난 사람들의 마음(생각)이 그 글자의 획(劃)과 점(點)에 빼곡히 서렸다. 세상 이치다. 서양 언어와 생각(철학)도 비슷하다. 가을의 물결이 ‘은근한 눈빛’이더니 마침내 ‘엉큼한 아첨’이 되었다. 원래의 뜻을 모르는 이들도 있겠다. ‘추파가 윙크지 왜 가을의 물결이야?’ 하는 질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사전엔 ‘가을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이 秋波의 1번 풀이다.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은근히 보내는 눈길’과 ‘환심을 사려 아첨하는 태도나 기색’이 2, 3번 풀이다. 초사(楚辭)의 ‘초혼(招魂)’, 초나라 문장(시)의 대표 격(格)인 굴원 등의 작품 모음 중 주목할 시다. 죽은 이의 혼(魂)을 불러 ‘너 살던 옛집에 어서 돌아오라.’고 유혹하는 절규가 담겼다. 굴원 작품이라고도 하고 제자 송옥의 시라고도 한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그 楚다.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아름다운 시다. 그 혼의 살아생전 부귀영화에 춤추는 요염한 16명 여인들의 눈빛이 선명하다. 주군(主君)을 오늘밤 홀로 차지하고자 흘겨보는 눈길 즉 묘시(眇視, 妙視)의 목파(目波·눈의 물결)를 秋波라고들 한 데서 그 뜻이 무르익었던 듯. 맑고 서늘한 이미지가 가을(秋)의 느낌을 불렀으리. 눈이 품어내는 에너지의 파장(波長)일까. ‘여자의 은근한 정을 나타내는 눈치, 즉 곁눈질이 水波(수파)의 橫流(횡류)와 같다.’고 그 시 구절을 해석한 자료도 있다. 가을의 물결이 은근한 정이 된 사정이겠다. ‘말뜻’의 전이(轉移)나 확대는 의미 또는 정서적 인신(引伸)으로 설명된다. 언어의 활용 방식 중 하나인 인신은 ‘말(단어)의 뜻을 잡아당기고(引) 늘려 펴서(伸) 표현의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다. 긴 장(長)자가 팀장처럼 ‘조직의 윗사람’이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문자는 발음기호에 뜻을 더한 것이다. 이를 알면 세상 여러 이미지(언어)의 속뜻을 빙그레 웃으며 읽을 수 있다. 윙크인 추파가 가을의 물결인 사정도 설명 가능하다. 설명할 수 있어야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다면 모르거나 어설프게 아는 것이다. 말의 본디를 돌아보면 추파만큼 (부귀영화보다 더) 재미있다.
국가가 없으면 어찌될까. 보호해줄 국가가 없기 때문에 살아있어도 투명 인간이다. 그래서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 했으니, 개인에게 국가라는 울타리는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고 희망이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그곳은 터전이 아니라 속박이 된다. 삶의 터전을 잃어보았기에 역할을 상실한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프게 경험했다. 조국이라는 말은 타향에서 서러움을 가진 사람에게 향수처럼 다가온다. 1960년대 부모님은 두만강을 건너 북조선으로 갔다. 처음에는 못 생긴 고무신에 딱딱한 과자도 좋았다고 했다. 사는 것이 형편없이 불편해서 아버지는 몇 번이고 이전에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막혀버린 국경과 가정이라는 멍에를 놓을 수 없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려고 얼마나 노력..
이성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인생의 법칙을 배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배반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것을 편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그 익숙한 생활을 방해하려는 이성의 목소리를 압살하려고 애쓴다. 사람은 자신의 생활이 양심에 합치되지 않으면 양심이 마비되어 생활에 장단을 맞춘다. 사격을 받고 있는 엄폐물 뒤에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병사들은, 위험한 순간을 더 쉽게 견딜 수 있도록 애써 일거리를 찾는다. 사람들도 때때로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은 명예욕으로, 어떤 사람은 오락으로, 어떤 사람은 법률 문서를 씀으로써, 어떤 사람은 향락으로, 어떤 사람은 정치활동으로 그것을 견디고 있다. 폭풍이 나무를 뽑고 바위를 굴리지만 하루를 못 갑니다. 정말 크고 강한 것은 소리 없이 흐르는 맑은 시내입니다. 살진 들을 적셔 천하를 기르는 것도 그것이요, 모든 비, 바람, 구름, 물결을 일으키면서도 자기는 억만 년 노함도 흔들림도 없는 대양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도 그것입니다. 그리고 시내는 억억만만의 물방울이 음악 속에 하나 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연의 시내보다도 더 무한히 큰 것은 역사의 흐름이요 그 흐름을 이루는 것은 씨ᄋᆞᆯ입니다. 스스로의 큼 속에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함석헌)/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