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여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8일 국민의힘 윤리위는 긴급회의를 개최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절차 개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가능성은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이준석 전 대표 본인은 발언 취지가 왜곡됐을 뿐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양두구육”, “개고기” “신군부”등의 용어로 국민의힘을 공격해 국민의힘과 정치권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 총회에서도 추가 징계에 대한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17일, 이준석 전 대표는 경찰에 출석해, 성 상납 의혹과 관련된 무마 의혹과 무고 의혹 등등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만일 기소가 된다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론 측면에서 보자면,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와 이에 대한 이 전 대표의 대응은, 국민의힘과 이 전 대표 양자 모두에게 득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가 내려질 경우, “당연히” 가처분을 추가로 신청할 것이고,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국민의힘 내홍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피로감은 지난 16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0.2%,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비호감도는 65%에 달해, 주요 정치인 비호감도 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렇듯 이 전 대표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이유 중의 하나는, 계속되는 가처분 신청과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언행 때문일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미 결정이 내려진 가처분을 포함해 현재까지 5개의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앞으로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또한 유엔 인권 선언 19조와 미국 수정 헌법 1조, 대한민국 헌법 21조 등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면서 유엔에 제소할 수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들의 피로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싸움에서 승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미래가 창창한 젊은 정치인이 벌써부터 “피곤하게 만드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될 경우,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어두워지기 때문에 이 전 대표도 패자일 수밖에 없고, 국민의힘은 여당임에도 상황 통제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기 때문에 패자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이준석 전 대표가 정치적 포용력을 보여주고, 국민의힘 역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것이 가능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우려하던 경제위기 비상벨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위협받으면서 외환 당국이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원가 상승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식품업계가 일제히 가격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경상·재정수지 ‘쌍둥이 적자’ 경고음까지 요란하게 울리면서 한 마디로 총체적 경제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여야가 힘을 합쳐 충격 대비책을 마련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치솟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마저 위협하자 지난주 정부는 강한 구두 개입에 나서는 한편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방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 급등으로 나타난 수입 물가 상승, 무역적자 확대에 대응 강도를 높인 것이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는 조만간 환율 마지노선이 깨지고 1천450원까지 오를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 식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식품 가격들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농심 신라면, 팔도 비빔면 등 라면 가격이 평균 10% 이상 단번에 올랐다. 오리온 초코파이와 포카칩 등 과자 가격도 12%가량 인상됐다. 우유와 야쿠르트, 컵밥, 제과·제빵, 치즈, 커피, 아이스크림 등도 줄줄이 가격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치킨, 햄버거, 피자 등 외식상품 가격도 모두 상승세다. 식품은 물론 배추와 무 등 농산물 가격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을 24년 만에 가장 높은 5%대로 예측했다. OECD는 19일 발표한 ‘2022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5.2%로 전망했다. 이는 OECD가 지난 6월 경제전망 때 발표한 4.8%보다 0.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또한 1998년 외환위기(7.5%)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OECD는 코로나19 영향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등에 떨어진 불’인 물가 관리에 나섰다. 추 부총리는 19일 “정부 차원에서 일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와 소관 부처를 통해 합동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물가 폭등부터 막아내야 한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정부가 철저히 물가상승에 대비하고 있다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내어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추 부총리가 물가 여건이 점차 개선될 것이라며 연일 ‘10월 정점론’을 피력하는 속내가 이해는 된다. 그러나 수치로 정확하게 나타나는 경제전망을 놓고 지나치게 기획 마인드로만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의 협치가 더없이 중요한 시점이다. ‘남탓’ 관성에 무한정 빠져 ‘경제위기’마저도 정쟁의 먹잇감으로 삼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작금 밀어닥치고 있는 경제 먹구름을 해결하지 못하면 지도자들을 섬길 국민도 사라질 것이다. 경제난 타개를 위한 광폭의 협치 정신이 절박한 시점이다. 여야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사상 유례없는 복합 경제위기를 타개할 대책을 허심탄회하게 숙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다.
단풍이 지기 전 추석이 왔다가는 게 다행스럽다. 숲에는 아직도 나뭇잎들이 나무의 상처를 가려주고 하늘을 적당히 숨기다가 드러내 주기도 한다. 철 늦게 우는 새소리는 ‘가을이 가요’ ‘가을이 가요’하고 낮은 소리의 리듬을 탄다. 산속 작은 벌레들의 연주는 땅으로 깔리다 그 소리 끝내 나무뿌리로 스며든다. ‘숲 속의 고요’에 청각이 맑아지는 시간이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인간관계보다 일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어느 정도 고립되어 지낼 때 창작의 방향으로 개성이 발달되기도 한다고 했다. 내가 강의하는 수필창작 반에 등록함으로써 인연을 맺은 L 씨라는 분과 도청 옆 ‘담’이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일주일 전부터 예약해야 된다는 그 집 분위기는 뭔가 담 안의 깊이와 가볍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L 씨는 내게 ‘보리굴비 정..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통합하기로 했다. 세종교육청의 최교진 교육감은 충청투데이 9월 14일자 기고 <민주시민교육을 허하라!>에서 “인성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의 여러 영역 중 하나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교육부의 ‘인성교육’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면서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적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라고 강조했다. 민주시민교육이 중고등학교 교사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열정으로 수행되다가 제동이 걸린 셈이다.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에서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교사들의 자발적 열정과 사명감으로 진행해온 것이니 차제에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며 다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진행되었느냐 하는 진단과 성찰이다. 살펴본 바로는, 주로 민주화운동 세대에 해당하는 교사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그들의 경험을 투영하여 부지불식간에 학생과 시민들을 ‘의식화’ 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주입식 수업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 방식 등 형식에서 진전된 측면은 있으나, 내용은 민주주의, 인권, 노동, 평화, 환경 등 정치사회적 쟁점들로 제한되어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진보 편향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먼저 민주시민의 개념 정의부터 명료하게 합의해야 한다. 대체로 민주시민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생활화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배우고 경험하면서 형성된 품성이 평생을 간다. 특히 사회성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 교육과 환경이 중요하다. 문제는 교사들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생각이 편협하다는 점이다. 교사들부터 먼저 달라져야 민주시민교육이 바로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런 고민을 하는 가운데 길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강조하는 인성교육은 과거 군사정권이 대학에 국민윤리학과를 신설했던 발상의 도덕교육일 것이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역사와 철학, 정치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지식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교육을 의미한다. 19세기 산업화 이전의 교육이 그랬다. 산업화 이후 교육 시스템은 이제 낡았다. 인성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의 여러 영역 중 하나일 수 없으며, 그 반대로 민주시민교육을 포괄한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는 융합형 지식인으로서의 전문가다. 진화론과 우주론을 도외시하는 휴머니즘은 공허하고, 신경과학과 진화심리학을 배제한 행동과학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지식의 융합을 강조하는 21세기에 구태의연한 민주시민교육은 학생과 대중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교사들과 시민사회는 이 기회에 민주시민교육의 환골탈태를 모색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위기는 기회다.
정부가 878억여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용산 영빈관’ 건립을 추진하려다가 논란 끝에 중단된 일은 결코 유야무야 흘려넘길 사건이 아니다.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실 수석들조차 모르게 국유재산관리기금 예산안에 슬쩍 끼웠다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비서나 관료들의 국민 공감 능력이 마비됐다는 증거다. 어물쩍 넘길 생각 말고 책임소재를 따져서 고장 난 의사결정 매커니즘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국정 난맥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실은 기재부가 새 영빈관 건립에 878억여 원 예산을 편성한 데 대해 “국익을 높이고 국격에 걸맞게 내외빈을 영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용산 시대에 걸맞은 영빈관의 필요성..
“뚜 뚜 뚜우, 오후 1시입니다. HLKA 방송입니다.”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면 아나운서는 수시로 현재 시각과 방송국의 무선호출부호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 이같은 시보(時報)와 함께 알려주는 HLKA와 같은 방송국의 알파벳은 무심히 들었던 것이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오랫동안 궁금증을 더하였다. HL은 방송국이 사용하는 무선국의 국가 식별부호이다. 그렇지만 나라마다 사용하는 무선국의 식별부호라고 해서 각국 정부가 마음대로 정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이라는 국제기구가 전파를 사용하는 각 국가에 국가식별부호를 부여하여 국가별로 구분하여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7년 미국에서 열린 ITU회의에서 HL을 부여받았다. 당시 미군정이 신청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각 방송국은 HL이라는 접두어에 방송국마다 부여된 알파벳을 사용하게 된다. HLKA, HL은 한국의 무선국을 의미하고 KA는 KBS의 제1라디오라는 뜻이어서 언제든 다른 방송국과 식별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일종의 고유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HL은 한국의 미디어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디오방송이 1947년 처음 시작된 해라는 것일까. 한반도에서 라디오방송 전파가 최초로 발사된 것은 1927년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경성방송국이 사용한 전파로서 JODK라는 호출부호를 사용하였다. JO는 일본의 식별부호로 도쿄(JOAK), 오사카(JOBK), 나고야(JOCK)에 이어 개국한 조선총독부 관할의 방송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국가무선식별부호로 방송을 시작하지 못한 것은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이 되고 광복이 되면서 미군정이 HL을 국제기구로부터 부여받고 대한민국이 전해 받아 사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JO라는 일본의 국가식별부호를 사용하여 방송되었던 일제강점기의 라디오방송은 막을 내리게 되고, HL이라는 한국의 국가식별부호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전파 영역에서도 주권 국가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는 미디어 역사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1950년대 등장했던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의 이름은 HLKZ-TV였다. 방송국의 무선호출부호를 방송국명으로 그대로 사용하여 선보였던 예이다. 아쉽게도 이 방송국은 전쟁 직후인 1950년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다가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방송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방송은 1961년 개국하는 KBS에 채널 9번을 넘기고 폐국하게 된다. 이후에 개국하는 방송국들은 이러한 무선호출부호를 채널명이나 방송국명으로 사용하기 보다 KBS라든지 MBC라는 영문자를 사용하는 경향이다.
윤석열 후보 시절 공염불 수사(Rhetoric), 제1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Investigation). 정치권은 내전 중이다. 국민이 보기엔 수사(修辭)와 수사(搜査)는 정치가 아닌데 말이다. 문제는 경제이건만, 정치는 ‘문제 그 이상’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는 국내 기업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가져다 줬다. 무능한 정치는 국익 손상과 직결된다는 것. 확실하게 드러났다. 지난 5월,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내방해 삼성(반도체)과 현대(전기차)의 ‘대미 투자’ 실익을 챙겼다. 얼마 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발효되면서 현대의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서 제외됐다. 미국은 IRA(Inflation Reduction Act)뿐만 아니라 반도체, 바이오에 관해서도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방침에 따라 한국의 미래에 위기가 닥쳤다. 기회는 있었다.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펠로시를 상대로 노력했어야 했다. 정부 역할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정원, 외교부와 주미 대사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의 총체적 안이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 위협에 대비해 예방 정책을 풀가동했어야 했다. 변명과 책임 회피는 기업과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산업은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AI, 신재생에너지, 방산·우주산업 등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젖줄이다. 삼성, SK, 현대, LG, 한화, 두산 등 재벌그룹이 주력하고 있는 업종이다. 물론 기업지배구조 등으로 인해 재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외교 무능’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대기업집단에게 국민은 동정심마저 보일 태세다. 바라건대, 정부는 법인세 경감 정책 대신에 기업이 맘 놓고 활동할 수 있는 무역의 조건들을 만들어줘야 한다. 북미의 캐나다, 남미의 멕시코와 브라질, 중국과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과 다자 외교 정책을 분리, 혹은 통합적으로 구사할 필요가 있다. 기술 및 산업 능력 발전(북미, 남미, 유럽 등), 국경적 협력(중국, 일본), 자원공급 사슬·금융·신용 유지(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측면의 발전적 상호작용을 안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산업 분야는 2030년 무렵이면 반도체산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산업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리튬, 희토류 등 원자재 확보를 위한 외교 전략 재점검은 물론이고, 국가 간 협력조약 체결에도 나서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멕시코로, 캐나다로 뛰기 이전에 정부가 사전 조율에 나섬으로써, 산업의 미래에 안정성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수사(搜査)에 목숨을 걸고 있을 때, 삼성전자는 늦었지만 ‘RE100(기업의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가입을 선언했다. 글로벌 트렌드에 합류했다. 정부가 ‘원전 올인’을 주창하고 있을 때, ICT 초일류기업 삼성전자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익’을 넘어선 ‘가치’의 추구… 기업 환경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삼성을 보면서 경제는 물론이고, 미래의 정치와 권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후원금 의혹'으로 시끄러운 성남FC를 바라보는 구단주 신상진 성남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신시장은 불법 후원금 비리의혹에 더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성남FC의 구단주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비리의 대명사’, ‘혈세를 먹는 하마’로 전락한 ‘혁신의 대상’이라며 냉랭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기업에 매각하거나 어떤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선 의지도 없고 꼴찌만 하고 시민들의 혈세를 먹는 구단을 계속 갖고 가는 것은 성남시민들에 대한 배임”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실제로 성남FC는 최근 5년간 계속 강등권에 머물러 있다. 2부리기로 강등된 적도 있었다. 계속되는 성적부진에 얼마 전엔 김남일 감독이 사퇴했다. 상황이 이러니 성남FC는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성남구단 프런트, 선수는 물론 서포터들도 구..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은 자국 이익만 중시하는 것이 아닌 국제질서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했다. 실제로 바이든은 집권 초기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에 재가입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와 기후변화 위기에 지도력을 발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도 결국은 트럼프와 다름없는 미국 우선주의, 미국 제일주의의 미국 대통령이었다. 이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사인함으로써 내년부터 판매되는 차량은 모두 미국 내에서 생산된 부품만을 사용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법규화 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과 12일에는 새로운 ‘바이 아메리칸법’에 서명하였다. 미국 내에 건설하는 반도체 생산시설에 거액의 보조금을 주는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그리고 국내 개발과 생산을 우대하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NBBI)’ 행정명령을 승인한 것이다. 향후 자동차산업과 반도체 그리고 바이오산업까지 모두 미국 내 생산시설과 제품생산을 유도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꿈을 실현하는 내용들이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대응하겠다는 논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산업을 경쟁 없이 미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산만을 사라는 정책이다.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패배한 민주당은 왜 미국인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친 트럼프에게 열광하는가를 분석했다. 특히 현 정부의 국가안보 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은 당시의 패배를 중국에 생산을 의존하는 방식의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 중산층의 실망에 있다고 판단하고 첨단기술의 강화와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미국의 강력한 외교력을 이용하자는 안을 구상하였다. 즉,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타국의 주요산업 생산시설을 모두 미국 내로 옮겨 생산케 하는 정교한 미국 제일주의의 실천이었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생명 바이오산업 등 향후 미래 최고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영역들을 모두 미국이 가져가겠다는 이 바이든 정부의 구상은 트럼프 시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더 철저한 아메리카 퍼스트이다. 다른 국가에서 힘들여 개발해 놓은 산업들을 우격다짐으로 자국 내에 몰아넣겠다는 발상의 오만함은 깡패국가(rogue state)의 모습 그 자체이다. 벌써 미국 내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1920년 상선법을 제정해 미국 내에서 상품유통의 배를 모두 미국 상선으로 제한하자 오히려 해상이용이 줄었다는 사례를 들면서 경쟁을 통한 기술개발과 혁신만이 일자리와 생산성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임을 지적하고 있다. 동맹을 배신하고 자신들의 배만 부리겠다는 심보로는 결코 세계의 지도 국가가 될 수 없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혼자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며 함께 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누가 일갈을 해 주어야 하는데 마침 윤 대통령이 미국을 간다니 제발 대국다운 자세를 보이라고 큰소리 좀 치고 올 수 없을까.
세기의 장례, ‘유해’는 뭐고 ‘운구’는 또 뭐지? ... 여왕의 유해를 운구차로 옮기는 것은 밸모럴 영지의 사냥터지기들이 맡았다. (뉴시스) ... 여왕 유해 보러 2만 명 밤샘, 조문에 최대 35시간 줄 (국민일보) ... BBC에 따르면 이날 오전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실으며 장례가 시작된다. (이데일리) 언론의 기사다. ‘여왕의 遺骸(유해)’는 금방 사망한 주검이 아니다. 추려진 뼈도 크게 보아 주검이라고? 억지다. 유해는 ‘남은 뼈’ 유골(遺骨)이다. 骸(해)의 뼈 골(骨)자를 보라. 다 안 적어서 그렇지,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유해’들이 언론에 떴다. 뉴스1 조선일보 중앙일보...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싣는다고 했다. 운구가 뭘까? 높은 사람 주검의 이름일까? 아마 ‘시체 넣은 관(棺·柩)의 운반’을 뜻하는 운구(運柩)를 그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주검=운구’가 된 것이다. 맞나? 틀렸다. 개념어(槪念語)의 활용, 서툴거나 어색한 것 까지는 ‘새로운 언어적 시도’라고 짐짓 못 본체 한다고 치자. 그러나 잘못된 단어가 공공(公共)의 위치에 놓이면 곤란하다. 사람들이 보고 배운다. 기우(杞憂)일까? 언론 종사자들이 BBC를 인용할 정도로 영어는 잘 하면서, 우리 말글 실력은 그런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점도 걱정이다. 점점 언론인을 포함한 우리 지식인들의 (한국어) 어휘(語彙)가 빈약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을 지켜보고 있다. 외국어 공부도 바탕인 한국어가 튼실해야 잘 한다. 상식이다. 언론의 언어는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말글의 ‘약속으로서의 뜻’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언어의 작은 차이 또는 잘못이 큰 피해를 부를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우고는 금방 잊었을까? 구두점만 잘못 찍어도 전체의 뜻 달라진다, 따위 사례를 다시 기억해내자. 죽은 몸이 주검이고 송장이다. 천한 말 같아서일까, 송장은 저런 장례의 용어로 잘 쓰지 않는다. 둘 다 우리말이다. 다행히 주검은 그런 편견 없어 자연스럽게 쓰이는 듯하다. 한자말도 시체(屍體) 사체(死體) 등은 느낌이 ‘별로’여서인지, 이번 세기의 장례 기사에서는 좀 꺼리는 것 같다. 시신(屍身)은 좀 나은가? 우리 생활문화에서 장례(葬禮)는 기피 또는 휘(諱 꺼림)의 대상인 듯하다. 공동묘지가 유명 관광지인 유럽의 경우와 비교된다.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사는 것인가? 미워하나? 생(生)과 사(死), 생명현상의 (동전의) 앞면과 뒷면 아닌가. 죽음의 이름들이 낯설고 유장(悠長)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종교의 죽음의 이름들은 상징적으로 더 경건하다. 왜 그래야 하느냐 물을 필요는 없다. ‘메멘토 모리’와 같은 뜻,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로 삼으면 의미 있으리. 인생의 깊이일 터. 그러나 언론 등 공공의 언어는, 지킬 건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