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을 밀어붙이는 자세를 둘러싸고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의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 직후 느닷없이 용산으로의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 시절 이전부터 일방적으로 그를 띄웠던 극우언론마저 ‘소통을 위한 이전’이 아니라 ‘이전을 위한 소통’부터 하라며 싫은 소리를 쏟아 붓는다. 집무실 이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58% 이상 나온다니 앞으로 그가 펼칠 국정운영이 더 걱정이다. 도대체 누구 말을 듣고 이처럼 서두르는가? 울진 삼척 일대 큰 불로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이재민들, 코로나 환국으로 장사가 안되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소상공인들에게는 이런 그의 모습이 과연 어떻게 비춰질까?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는 중국 역사에서 춘추시대(기원전 770년)의 개막..
1. 달콤하고 상쾌한 맛.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톡 터지는 느낌. 이렇게 말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맞습니다. 콜라입니다. 갈증이 날 때나 기분전환용으로, 특히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와 함께 하면 금상첨화지요. 전 세계 콜라 브랜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코카콜라입니다. 코크(Coke)로 약칭되는 이 음료가 처음에 두통약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886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약사 존 팸버튼(John Pemberton)이 코카(coca)잎과 콜라(kola) 열매를 주재료로 만들었지요. 그리고 두통을 없애주는 특효약으로 판매를 합니다. 상표 명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동업자이자 경리책임자였던 프랭크 로빈슨(Frank M. Robinson)이 심플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두 가지 주재료의 이름을 묶은 다음, 콜라의 K를 C로만 바꿔서 작명을 한 거지요. 문제는 이 음료가 매우 맛이 없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외면을 한 건 당연한 일. 어떻게 하면 판매를 늘릴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팸버튼은 자신이 개발한 원액에 탄산수를 섞어봅니다. 그랬더니 달콤 시원한 맛에 톡 쏘는 느낌이 가미된 전혀 새로운 무엇이 태어납니다. 청량음료의 제왕이라 불리는 현재의 코카콜라가 탄생한 겁니다. 1887년이 되면 역시 약제사이자 명민한 사업가였던 아사 캔들러(Asa Candler)가 2,300달러에 코카콜라의 제조법과 판매권을 사들입니다. 이때부터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림 1>에 당시의 코카콜라 광고가 나와 있습니다. 카피를 읽어보면 두통을 치료하고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이상적인 두뇌강장제(ideal brain tonic)”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코크의 성분은 거의 비슷하니 명백한 과장광고임을 알 수 있겠지요? 탄생한지 백 수십 년이 지났지만 코카콜라의 제조법(recipie)은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애틀랜타의 코카콜라 박물관 ‘월드 오브 코카콜라’ 금고에 꽁꽁 숨겨져있다고 합니다. 이런 비밀주의 때문에 코카콜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루머가 떠돌아 다닙니다. 코카나무 잎에서 추출한, 마약 성분인 코카인(cocaine)이 미량 함유되어 있다는 황당한 헛소문이 대표적이지요. 또 하나 그럴싸하게 퍼진 것은 콜라 원액은 오직 미국 본사에서만 만든다는 가짜뉴스입니다. 그 원액을 각국의 병입공장(甁入工場 : bottling plant)에 독점적으로 제공하는데, 이들 공장에서 하는 일이라곤 거기에 물과 액상과당, 카라멜 색소, 탄산가스 등의 성분을 추가, 희석한 후 병에 담는 작업 뿐이라는 거지요. 모두가 루머입니다. 각국의 지사에서 콜라원액을 만들뿐 아니라 그걸 완제품으로 출고하는 공정까지 전담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콜라 원액의 재료 배합비율과 조리방법에 관한 정보만이 지식재산으로 분류되어 엄격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세계적 컨설팅그룹 ‘인터브랜드(Interbrand)는 해마다 세계 100대 브랜드(Global Brand)를 발표합니다. 브랜드 자산(Brand Equity), 즉 특정 브랜드가 얼마나 인기가 높고 마케팅 파워가 강한가 하는 순위를 정하는 겁니다. 코카콜라는 2013년 애플(Apple)에 1위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10년 연속 해당 순위에서 최고봉에 올랐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팔리는 청량음료이기 때문입니다. 한 해에 무려 470억병이 팔립니다. 세계 인구가 79억 정도 되니까, 한 사람 당 1년에 여섯 병 가까이 마시는 셈입니다. 이 브랜드가 단순한 청량음료를 넘어 미국식 자본주의와 문화의 강력한 상징으로 명성을 떨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코카콜라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경제대공황이 본격화된 1930년대 초였습니다. 이 시기에 이 브랜드가 결정적 도약을 한 것은 역설적으로 가혹한 불황 때문이었습니다. 쓰리고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달래주는 존재가 대중들에게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5센트만 주면 살 수 있는 짜릿한 청량음료 한 잔을 통해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싶었던 거지요. 특히 1931년부터 광고대행사 다시(D'Arcy)가 산타클로스(Santa Claus)를 모델로 하는 대대적 광고캠페인을 펼치는데, 이것이 오늘날 코카콜라 전설의 출발점이 됩니다. 크리스마스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는 아마도 산타클로스일 겁니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은 기원 후 3세기 경 소아시아 파타라(Patara)에서 출생한 성 니콜라스에서 비롯됩니다. 터키의 성직자였던 이 사람은 평생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들 모르게 창문으로 선물을 넣어주기를 좋아 했다고 합니다. 이 전설이 북유럽에 전해졌다가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미국에 들어오면서 미국에도 퍼져나간 거지요. 산타클로스(Santa Claus)라는 이름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성 니콜라스 (St. Nicholas)라는 이름을 네덜란드어로 잘못 표기하면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산타클로스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하얀 수염을 기르고 언제나 웃는 표정의 뚱뚱한 할아버지일 겁니다. 오늘날 세계 공통의 이미지로 굳어진 이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다름 아닌 코카콜라 광고였습니다. 1931년, 당대의 천재 일러스트레이터 헤이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의 손에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의 산타클로스가 처음으로 탄생한 거지요. <그림 2>를 한번 보시지요. 당시 미시시피 주 멤피스에 있던 코카콜라 공장의 사진입니다. 가두광고용 자동차 위에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A Merry Christmas to All)”이란 캐치프레이즈를 적어놓았습니다. 전면에 코카콜라 직원과 경찰관들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뒤편 입간판에 커다란 흰 수염 할아버지 모습이 보일 겁니다. 털 달린 모자와 외투, 널찍한 가죽벨트를 맨 산타클로스입니다. 코카콜라는 이 캐릭터를 내세워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Evening Post)>, <레이디스 홈저널(Ladies Home Journal)>,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등 당대의 유명 잡지에 대대적 광고캠페인을 펼칩니다. <그림 3>이 1931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실린 첫 번째 코카콜라 산타클로스 인쇄 광고입니다. 헤이든이 멤피스에서 그린 간판 그림을 레이아웃만 살짝 바꿔 광고화시킨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My Hat's off to the pause that refreshes”란 헤드라인은 세련된 중의법(重義法) 문채를 채용했습니다. 여기서 'My hat's off'는 (왼손으로 허리춤의 모자를 누르고 있는) 비주얼에서 보듯이 아이들에게 열심히 선물을 전해주던 산타클로스가 모자를 벗고 잠시 쉰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관용구는 ‘존경을 표하기 위해 모자를 벗다’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의역해보면 ① “상쾌한 휴식에 경의를!” 혹은 ② ”이 상쾌함을 즐기기 위해 잠시 쉬세요“ 정도의 뜻이 되겠군요. 아시다시피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문화권 최고의 명절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선물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날이지요.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따스한 톤 앤 매너(tone & manner)가 작품 전체에 가득합니다. 이 광고가 불경기 속 크리스마스 맞은 대중들의 마음을 얼마나 위로했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코크는 언제나 산타클로스 광고를 내보냅니다. <그림 4>는 이듬해인 1932년 크리스마스 때 집행된 광고입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 몰래 방문한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 ‘지미(Jimmy)'란 꼬마가 쪽지를 남겨놓았습니다. 코카콜라 병으로 눌러놓은 종이 위에 비뚤비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어놓았네요. “산타 할아버지, 여기서 (코카콜라 마시고) 잠시 쉬다 가세요(Dear Santa. Plesae Pause Here)"”.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의 두근거림과 크리스마스 이브의 따스한 정경을 이보다 생생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일러스트레이션도 멋지고 카피도 좋습니다. 3. 이후 다시(D'Arcy)는 정교한 전략 아래 수십 년에 걸친 산타클로스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역시 헤이든 선드블롬(그림 5)이 주역이었습니다. 그는 1964년까지 무려 33년간 해마다 다른 스토리를 설정하여 78 종류의 산타클로스 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스토리가 달라도 레드(red)와 화이트(white)의 주색조(主色調), 활자체, 콜라병의 위치 등 통일적 레이아웃 정책(layout policy)을 유지시킵니다. 이를 통해 코크만의 이미지빌딩(image building)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는 거지요. 코카콜라가 창조한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빠르게 주위로 퍼져나갑니다. 영화, 크리스마스카드, 심지어 구세군 냄비를 위한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코카콜라 산타’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1947년에 상영된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탈리 우드가 주연으로 나와서 대 히트를 친 영화지요. 여기에 등장하는 산타클로스 이미지를 보십시오. 코카콜라 광고에 나온 산타를 그대로 옮겨왔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그림 6). 산타클로스 캠페인은 막대한 규모의 광고비로 계속 집행됩니다. 그만큼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지요. 모자를 쓰고 빨간 색 외투를 입은 인자한 할아버지가 코카콜라를 세계 최고 브랜드로 키운 일등공신이 된 겁니다. 동시에 이 캠페인 덕분에 코카콜라 산타는 온 세상 산타할아버지의 표준이 되어버렸습니다. 21세기를 맞아 광고미디어 생태계가 디지털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 크리스마스 캠페인의 주인공도 오래 전에 북극곰으로 바뀌었지요. 하지만 코카콜라 산타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아래는 2010년에 집행된 코카콜라 모바일 광고의 첫 화면입니다(그림 7). 세상에 나타난 지 80년이 지났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정정하십니다. 광고는 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입니다. 그 같은 광고의 위력을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 제가 늘 코카콜라 산타클로스 캠페인을 사례로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는 이성적 프로세스여야 한다. 하지만 정치를 하는 주체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어서, 감정적 갈등이 이성적 프로세스이어야 할 정치 과정을 때로는 망치기도 한다.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요즘 윤석열 당선인 측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갈등이 간단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의 표면적인 발단은 청와대 이전 문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인사 문제를 두고 윤 당선인 측과 문 대통령 측이 갈등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거에도 “등장할 권력”과 “퇴장할 권력” 사이의 갈등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첨예한 경우는 없었다. 이처럼 갈등이 첨예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이번 대선에서 표 차이가 아주 근소했다는 점이다. 표 차이가 근소했기 때문에, 현재의 여권은 패했지만 “자신만만”할 수 있..
“바스크의 촉망받던 군인 돈 호세.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집시여인에게 영혼을 빼앗겼다. 착하고 얌전한 고향처녀 미카엘라와 결혼하려고 맘을 돌려 보지만 그 집시여인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비극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이 곡의 작곡자는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다. 그 역시 너무나 천재적 이어서였을까. 서른여섯의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카르멘을 두고 한 말 같다. 비제는 파리에서 가발을 만들고 이발사를 하다 가곡 선생이 된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였을까. 피아노에 소질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건 어머니다. 비제는 어려서 피아노와 작곡 경연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오페라를 작곡한 건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아름다운 ‘진주조개잡이(Pêcheurs de Perles)’는 스물다섯에 만들었다. 하지만 비제는 아직 성공한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에게 찬스가 온 건 파리 오페라 코미크가 카르멘을 주문했을 때. 비제는 야심찬 꿈을 갖고 부기발(Bougival)로 거처를 옮겼다. 센 강 둔치의 한적한 곳에서 카르멘을 쓰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그가 쓴 원고는 1000페이지. 그러나 초연은 실패였다. 관객들에게 관능적이고 자유분방한 카르멘은 시기상조였다. 비제는 탈진했고 심근경색으로 부기발에서 숨을 거뒀다. 카르멘이 성공을 거둔 건 그의 사후 4개월 만인 빈에서였다. 공연을 본 니체와 바그너, 차이콥스키는 극찬했다. 브람스는 카르멘을 무려 20번이나 보았고 “비제를 포옹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가겠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카르멘의 작곡가를 사랑했다. 비제의 안식처였던 부기발. 이곳은 센강이 툭 튀어나온 녹색의 작은 낙원이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앞 다퉈 여기 들어와 불멸의 경치를 그렸다. '부기발에서의 춤'을 그린 르누아르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러시아 작가 뚜르게네프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비제와 교류했다. 파리지앵들도 부기발을 좋아했다. 둔치의 선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겼다. 오늘의 부기발은 19세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불멸의 작곡가 비제의 집과 카르멘 광장이 초입에 멋지게 복원돼 있고, 노트르담 성당 주변에는 유쾌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부기발의 자랑 마쉰 드 마를리(machine de Marly)의 자취는 여전하다. 세계에서 경이롭기로 이름난 이 기계는 루이 16세가 고안한 것이다. 센 강의 물을 품어 베르사유와 마를리 성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대선이 끝났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스산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외 이동 제약이 풀리기 시작했다. 정처 없을 땐 여행이 약이다. 파리로 훌쩍 떠나 밤거리를 거닐며 심호흡도 해보고 태양이 다시 뜨면 교외선에 몸을 실어보라. 30분이면 비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부기발에 당도한다. 거기서 아름다운 카르멘의 아리아 ‘아바네라(Habanera)’를 들어봐라. 분명 카타르시스와 함께 힘이 솟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기자회견에서 “정말 외람되오나”라며 질문을 시작했던 기자가 자신의 표현에 대해 사과하고, 공식 해명했다. 오마이뉴스에서 밝힌 해당 기자의 말인즉 “답변자가 윤석열 당선인이기 때문에 쓴 표현은 아니었다”고 했다. 평소 인터뷰 때에도 상대방이 누구든 난처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예의상 입버릇처럼 썼던 표현이었고 이 논란이 있고서야 적절치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해당 기자는 지난 13일 윤 당선인이 인수위원회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인수위 관련 질문을 하고 그 뒤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특검’에 대해 추가로 질문했다. 미디어오늘 보도를 살펴보면 1인 1질문 체제에서 질문을 연달아 했던 상황인지라 다른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차원이기도 해서 “정말 외람되오나”라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1. 이제 곧 벚꽃 잘 쓰지 않는 한자지만, 터질 탄(綻)이란 글자가 있다. 탄로가 나다, 파탄이 나다 등으로 쓰는데, 속에 들어 있는 것이 터져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형성한 한자다. 놓을 방(放)과 합쳐서 탄방(綻放)이라 적으면, 꽃이 터질 듯이 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터지듯 피는 꽃이라면 단연 벚꽃이다. 앵화탄방(櫻花綻放)은 봄날에 터지듯 무리지어 피어난 벚꽃 군락을 가리킨다. 아직 벚꽃이 핀 것은 아니지만, 주야로 걷는 천변의 벚나무마다 꽃눈이 움트는 걸 보니 이제 곧 벚꽃 철이 올 모양이다. 벚꽃이야 예년처럼 장히 피어나겠지. 피더라도 꽃구경하러 갈 마음은 영 나지 않는다. 꽃구경이 다 무언가. 세상사 부질없다는 생각만 가득한 요즘이다. 2. 그는 나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 전에 미리 마음을 다져 먹긴 했지만, 막상 결과를 받아들자 가슴 한 켠이 무너..
검찰은 최근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숨진 여성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하던 대학생이었다. 새벽에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30대 음주운전자는 지난해 10월 음주운전을 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 여성과 30대 남성을 들이받은 뒤 도주했다. 이 사고로 여성 숨지고 남성은 전치 12주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지점은 제한속도가 시속 30㎞인 어린이보호구역이었지만 운전자는 시속 약 75㎞로 달리며 사고를 냈다. 뿐 만 아니라 블랙박스를 꺼내 도망쳤다고 한다. 음주운전은 항상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최근 언론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음주운전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인 래퍼 장용준 씨 사건이다. 장씨는 면허 없이 운전..
그런 날이 있습니다. 무얼 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텅 비어버린 날 말입니다. 껍데기만 살아 펄럭거리는 하루는 시간을 삼키는 종이인형 같습니다. 인형이 삼켜버리는 시간 때문일까요. 봄이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봄을 맞을 겨를도 없이 겨울을 삽니다. 세상은 ‘확진’과 ‘격리’의 틈에서 몸살을 앓습니다. 약기운인지, 봄기운인지. 거리에는, 계절을 따라 걷지 못하고 주저앉은 그림자로 가득합니다. 애써 길을 걸어도 보이는 건 겨울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아무리 찾아도, 왔다는 봄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다시 봄입니다. 움트고 싹트는 것들로 세상은 천지가 젖몸살입니다. 몸살꽃 이파리는 저물고 뜨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돋아납니다. 저무는 것과 뜨는 것들이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서 요란합니다. 삼월의 낮과 밤이 덩달아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하늘과..
무리 없이 진행되리라 예상되던 신구정권 인수인계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충돌 양상을 연출했다. 오는 5월 10일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겨 새 정부 업무를 시작하겠다는 윤석열 차기 대통령 당선인과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현 청와대의 입장이 맞부딪쳤다. 여야 정치권은 정권 인수인계의 불협화음을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맞물려 첨예한 정쟁 소재로 써먹으려는 조짐마저 보인다. 인수위가 일단 새 정부 출범 이후로 이전 작업 스케줄을 수정한 듯하지만, 사사건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여야가 정권교체기에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하는 것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척도다. 정치적 유불리 셈법에 함몰돼 사명의 본질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층 불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개월째 이어지면서 초토화에 준하는 무자비한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 중단 시기를 놓고 여러 견해가 엇갈리지만, 3월말 경 마무리 국면을 보일 것이라는게 대체적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 자유를 수호하려는 서방측의 단합된 의지에다가 전장인 우크라이나가 3월말경이면 겨우내 얼었던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러시아군의 탱크를 동원한 작전이 쉽지 않다는 것이 논거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하여 ‘정보’의 역할은 지대했다. 정보의 예측적 기능이 십분 발휘되었고,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정보기관들의 정보능력 또한 막강함을 각인시켰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모두가 온라인으로 전쟁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최초의 TikTok 전쟁이다. 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