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다방 앞이었다. 다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양희은의 노래가 걸어 내려왔다. 양희은의 노랫소리는 턴테이블에 감긴 LP판 눈금을 따라 천천히 풀어졌다. 다방 앞 횡단보도 역시 불어난 퇴근길 인파로 감겼다가 풀리기를 반복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이 신문지를 깔고 앉아 술판을 벌였다. 새내기들은 선배들의 기타 반주에 맞춰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술잔이 부딪칠 때, 대학로의 젊음도 덩달아 참방거렸다. 권이 형은 붐비는 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리곤 불쑥 아무 이름이나 불렀다. 그것도 큰 소리로. “희숙아!”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으면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또 다른 이름을 불렀다. 역시 큰 소리로. “미경아!” 그렇게 아무나 부르는 여성의 이름에 누군가 뒤돌아보면, 비로소 권이 형..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미국 인텔이 최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진출을 선언했다. 반도체 제조의 80% 이상이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권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인텔이 반도체 제조 시장에 본격 뛰어들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이번 인텔의 결정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맞닿아 있어 더욱 그렇다. 지난 2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등 핵심부품의 공급망을 재정비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반도체의 주도권을 미국이 가져오겠다는 신호다. 그동안 미국은 메모리 등 반도체를 삼성전자, TSMC(대만) 등으로부터 공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차량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포드, GM 등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동안 전략적으로 크게 보이지 않았던 반도체에 대해 미국에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 반도체가 자칫 식량이나 원유처럼 확실하게 공급망을 구축하지 않으면 자국의 이익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위기 의식 말이다. 앞으로 개인 PC, 스마트폰에 이어 AI(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완전자율주행차 등에 가속이 붙으면 반도체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특히 반도체는 미사일 무기와 우주산업 등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전방위로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세계 2차대전 종전과 함께 구축한 ‘브레튼우즈(BW)’, 1995년 WTO 자유무역체제 이후 먹거리의 최정점에 있는 분야에 힘을 집중해 왔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식량, 원유를 비롯해 국방·항공·우주, 바이오, 영화 산업, 최근들어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빅테크(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등이다. 이들은 기축통화인 달러, 금융시스템(투자은행 파생상품 등)과 함께 다른 나라나 기업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보다 바로 아래 단계의 기술과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핵심 부품·소재(일본 등), 반도체(한국 등)는 미국에겐 상대적으로 전략적 비중이 높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아래인 제조·조립(기존 자동차 산업, 철강·조선 등), 하청공장(의류 등) 등은 더욱 그랬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미래 IT 세계에서 반도체는 기존의 식량·원유처럼 필수 원료로 격상됐다. 특히 전기차에 들어가는 자동차 반도체가 공급 부족으로 비상이 걸리면서 반도체가 ‘안보’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상황이 발생하면 더욱 그렇다. 이같은 흐름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절, 중국 통신 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 한·일간 반도체 소재 분쟁에서 예견된 바 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 들어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반도체 민족주의’가 본격 점화되는 모습이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을 통해 반도체 굴기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고 유럽도 마찬가지다. 국제경제의 오랜 패러다임인 ‘비교우위(분업)’는 갈수록 빛을 잃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중국(경제)과 미국(안보) 사이에 놓여 있다. 이제 어떤 부문이 민족주의·안보의 영역에 갇힐지 모른다. 우리의 독점적인 먹거리는 무엇인가.
2년전 참여하고 있는 한 학회에서 어떤 명상관련 인사를 초빙하여 마련한 강의코너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대표는 낭랑한 목소리로 사례를 바탕으로 미국과 영국 등에서 이제 마음챙김명상이 주류문화임을 말하였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실리콘벨리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이 마음챙김 명상을 앞다투어 직원들의 근무능력과 사기진작을 위해서 사내프로그램으로 도입하였고 민간 분야를 넘어 미국 공립학교와 군대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하었다. 명상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유발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명상이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 서술이 연상되었다. 어느샌가 그 문화가 우리의 일상으로 성큼 다가왔다. 명상을 언급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많아지고 유튜브 영상들도..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2’가 뜨겁다. 그런데 그 작품성에 대해서는 시청자마다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내용 전개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소재가 너무 자극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우리네 교육이나 정치, 사회 현실의 개연성이 더 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도스토옙스키 등의 고전에서도 반사회적 소재가 단골로 쓰였으니 그리 문제될 게 없다며 맞불을 놓기도 한다. 설령 누군가 이 작품을 ‘갈 때까지 간’ 드라마로 분류하더라도 먼 훗날 그 평가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드라마든 다른 예술 작품이든 사회적으로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는 경계해야겠지만 어쨌든 드라마는 허구이고, 사회적 평가에는 일정한 ‘시간의 세례’가 필요하며, 시청 여부는 결국 시청자가 결정한다는 의견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 특히 선거 과정에서도 선거 막판 펼쳐지는 허위사실 공표와 비방으로 드라마처럼 얼룩질 때가 있다. 이 역시 드라마처럼 모두의 주장을 존중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선거는 드라마와는 다르다. 허구가 아닌 현실 그 자체이며, 선거 결과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아무리 헌법상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말고’식의 근거 없는 비방·흑색선전은 ‘돈 선거’에 버금가는 중대 선거범죄가 될 수 있다. 유권자는 바쁘다. 잠시 멈춰 서서 선거벽보 하나하나 살펴볼 시간도 부족하다. 그런데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선거권 행사에 필요한 정책·공약 정보는 찾기 어렵고, 무분별한 허위사실·비방으로 얼룩지곤 했던 게 지난 선거의 현실이다. 물론 후보자도 네거티브 선거를 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닌 ‘남을 못나게 해서’ 당선되면 민주적 정당성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권자는 결국 역선택에 직면했고, ‘누가 덜 못 났나’를 잣대로 투표하기도 했다. 이는 차선(次善)의 선택조차 될 수 없었다. 4·7 보궐선거가 코앞이다. 비방·흑색선전 뉴스가 간혹 올라온다. 하지만 드라마 시청 여부를 시청자가 결정하듯 투표 역시 온전히 우리의 권리다. 후보자 관련 정보를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진정성 있고 일 잘할 사람에게 천금 같은 한 표를 행사하자. 후보자의 아름다운 경쟁과 유권자의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한다.
“농민들은 죽어간다. 그들은 이 죽음에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들의 죽음, 여성들의 과중한 노동, 특히 노인들의 기아 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제 농민들이 가난에 시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낮처럼 명확해졌다.” 톨스토이의 작품 《부활》에 등장하는 주인공 네흘류도프의 고백이다. 그가 말하는 “가난의 이유”란 무엇일까? “농민들의 유일한 수입원인 토지가 지주들에게 약탈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먹여 살릴 토지가 그들의 손에 있는 게 아니라 소유권을 행사하며 농민들의 노동력으로 먹고사는 자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었다.” - 가난의 이유 그 자신도 지주이자 귀족인 네흘류도프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있다. 그는 자신의 토지 소유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토지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농민들의 공공자금..
요사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34%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 보다, 지지율을 올리기 매우 힘들어 보인다는 데 있다. 그 이유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 먼저 시기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시기적으로 문 대통령은 레임덕으로 돌입할 때가 됐다. 여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은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인간의 불로장생이 가능하다는 소리와 똑같다. 권력도 인간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쟁취하면 시간이 감에 따라 노쇠해지고 사멸..
본보의 기획시리즈 ‘쌓여가는 쓰레기… 대책 없나’를 보면 경기도내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취재 기자의 표현대로라면 ‘도내 곳곳이 쓰레기 무법지대’가 되고 있다. 실제로 수원시내, 특히 구도심지 곳곳에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거나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배출, 수거를 거부당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지만 경기도내 쓰레기 배출량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 환경통계현황을 보면 지난 2017년 도내 생활폐기물은 1만1605t, 2018년 1만2406.1t, 2019년 1만3196.9t이었다. 지난 2020년 폐기물 발생량은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배달상품을 포장했던 플라스틱 등 쓰레기 물량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지난..
신앙은 어느 시대에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신앙(신념)의 변화이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주정꾼이,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향해 비웃으면서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온갖 물질욕망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은 비참한 운명에서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선각자들을 비웃고 있다. (류시 말로리) 과거 예언자들은 외쳤다. “너희는 신을 잊고 신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서 벗어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행이 너희를 덮치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는 신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허위와 기만의 세속에 빠져 진리를 외면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연의 인내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는 아직 세상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자연을 수천 년 전에 발명된 태엽시계 비슷한 고물로 생각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부동산 파문이 광명·시흥을 넘어 3기 신도시, 세종시, 용인, 포천 등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일반 공직자는 물론 국회, 지자체, 4월 재보궐선거 후보자들에게도 불씨가 옮겨붙고 있다. 지난해 검찰개혁 갈등의 한 축이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떠난 곳에서는 여전히 주불인지 잔불인지 모를 화염이 이어지고 있다. 나라 전체가 희뿌연 연기로 가득찬 모습이다. LH발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수사와 함께 이해충돌방지법과 농지법 개정, 부동산백지신탁, 국토보유세, 국회의원 전수조사, 전공직자 재산공개 등 전례없는 고강도 처방들이 제시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곧 발간할 ‘2020년 인권보고서’에는 성추행과 부패항목에서 우리 정치권 인사들이 다수 실명으로 거론됐다. 최근 바이든 정부 외교·안보 수장의 방한은 미·중 패권다툼과 북핵 속에서 한국의 위치가 얼마나 왜소한지 각인시켰다. 남한은 국토면적에서 세계 111위, 인구는 28위 정도에 해당된다. 국토와 부존자원에서 열세지만 세계 10위권 경제강국 대열에 올라 선 것은 교육열과 국민의 단합된 힘이 바탕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분노와 좌절로 ‘코리아 빅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출산율(0.84명)은 세계에서 최하위로 이대로 두면 2100년에는 현재 5천1백만명대의 인구가 3분의 1로 줄며 소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도 나왔다. 코로나 경제 회복 시기도 불확실하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된다. 이번 땅 투기 파문은 위장전입, 논문표절, 특혜 분양, 자녀 입시·취업 비리, 성추행 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 적폐의 최고 완결판이다. 각종 암이 전신에 퍼져 있는 대한민국을 근원적으로 대수술해야 한다. 위기지만 지금이 전화위복의 절호의 기회다.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끝나면 내년 3월을 향한 대선정국으로 급격히 빨려들어갈 것이다. 멈칫거릴 수 있는 제도개혁이나 수사도 각당 후보들의 의지만 있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시기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취임 직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시작으로 금융실명제 도입, 군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등 당시로서는 혁명같은 개혁을 단행했다. 올해 재산공개 대상 중앙정부 공직자의 절반 이상이 “토지를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것이 모두 투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눈높이로는 너무 낯설다. 상식과 정의로 민심을 다시 하나로 묶고, 미래먹거리를 창출하고, 나아가 남북을 통일해 명실상부한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대망(大望)의 지도자라면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먼저 자신과 가족에 대한 엄격함으로 출사표를 던지길 바란다. 이번 대선에서 자신을 돕고 있거나 도우려는 인사들에게 집권후 인사 청문회에 나가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주변을 정리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우리 모두 각자에게 도덕적으로 ‘잔인한 4월’로 출발했으면 한다. 농지·임야의 벌판에서 아파트 숲에서 목놓아 부르는 백마탄 초인(超人)을 ‘영끌’ 기대한다.
3월 셋째 주 네이버 포털 뉴스에서 4‧7재‧보궐 선거보도를 모니터한 서울부산시장보궐선거미디어감시연대 보고서를 보면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는 ‘LH 분노…오세훈‧안철수 둘다 박영선에 18%P 이상 앞섰다’였다.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 보도로 LH 파문이 여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면서 야권 후보의 지지세가 여권 후보를 앞지를지 모른다고 전망하는 내용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유용한 정보지만 해석에 늘 주의해야 한다. 마치 승패가 결정난 것처럼 보도해선 안 된다. 남은 선거기간에 유권자의 선택이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후보자 정책 차이를 선명하게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에서 부각되기 쉬운 거대양당 구도는 선거를 단순하게 압축시켜 버린다. 때문에 소수정당이나 신진후보가 나설 기회를 좁힐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