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 둥치가 굵어지면 나무껍질은 딱딱해진다 몸집이 커질수록 움직임은 둔해지고 줄기는 나날이 경직되어가는데 허공을 향해 제 스스로 뻗을 곳을 찾아야 하는 줄기 맨 끝 가지들은 한겨울에도 푸르다 모든 나무들이 자정에서 새벽까지 견디느라 눈비 품은 잿빛 하늘처럼 점점 어두운 얼굴로 변해가도 북풍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가지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엄동에도 초록이다 해마다 꽃망울은 그 가지에 잡힌다 -도종환 시집 ‘부드러운 직선’ /1988 / 창비 푹푹 찌는 무더위. 여름이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우기의 비바람 속에서도 잘 견디는 나무들의 여름이 수런댄다. 작은 것들의 힘은 위대하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땅은 마르지 않는다. 제 스스로 자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잔가지들은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직선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먼저 몸집 키우려 남의 자리 함부로 딛고 오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꽃망울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눈비 오고 북풍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을 잔가지들 모인 숲에 우리가 있다. /권오영 시인
달 위에는 물돌 stones of water이 있을까? 거기엔 금물 water of golds이 있을까? 가을은 무슨 빛일까? 날들은 서로 부딪힐까? 그들이 난발처럼 온통 풀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게 ㅡㅡㅡ종이, 와인, 손, 시체들 ㅡㅡㅡ 지구에서 저 먼 곳으로 떨어졌을까? 거기서는 익사한 사람도 살까? /성향숙 시인 -파블로 네루다 시집 ‘충만한 힘’/문학동네 어둔 밤하늘은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입니다. 거기 빛나는 별이나 달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상상만을 증폭시키는지 모릅니다. 도시의 불빛이 잠식해버린 아름다운 빛들은 바닷가나 시골에 가서야 비로소 온전히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린 어떤 순간에 하늘을 올려다볼까요? 아마 이 시인도 아픈 추억으로 달이라는 행성을 올려다보았나 봅니다. 혹시 소중한 사람이 익사한 안타까운 사건이라도 겪었을까요? 그 사람은 노란 금물이 흐르는 곳에서 물돌을 던지며 물수제비를 뜨거나 단풍잎 붉은 가을을 맞고 있을까요? 여기 지구에서처럼 맑은 날과 비오는 날들을 두루 겪으며 살고 있겠지요? 익사로 잃은 사람을 거기가면 만날 수 있을 같은 심정으로 ‘거기서는 익사한 사람도 살까?&r
내가 세상 밖 벼랑으로 떨어질 때마다 그가 거대한 파충류처럼 웅크리고 앉아 나를 받아주지만 그에게서 유일하게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만져지지 않는 공기 같은 거 그가 있어도 나는 늘 외롭다 그도 나를 어쩔 순 없다 - 신옥철 시집 ‘뚜껑을 열어보고싶다’ /1999년/도서출판 대한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서만 치유 된다고 한다. 몸 부딪치고 소통하는 일이 어려울 때 신을 찾는다지만 사람의 등가물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또 모든 물질이 그러하듯 넘치면 넘쳐서 괴롭고 부족하면 부족해서 애가 마른다. 그런 부조리한 물질들이 서로 만나서 공존하는 일이니 만나서 희희낙락하기도 하고 벼랑 밖으로 내쳐지기도 하기에 모든 생명체들은 불안하고 서로 외롭다. 인간들의 비명소리에 연민을 느껴 파충류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던 신이 거대한 몸을 일으켜 팔 벌려 받아준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지극히 인간적인 외로움은 신으로서도 참 어쩔수 없는 일이겠다./최기순 시인
이승만 대통령·이시영 부통령 취임식 우리나라 초대 정·부통령이 1948년 오늘 취임한다.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의 취임식은 서울 중앙청 앞 광장에서 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을 비롯한 많은 국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조국을 만년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다짐한다. 이시영 부통령은 건국흥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신을 밝힌다. 타이거 우즈, 최연소 그랜드슬램 달성 2000년 오늘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제129회 브리티시오픈 최종 4라운드! 타이거 우즈가 3언더파 69타를 쳐,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최고의 메이저 골프대회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트로피와 상금 50만파운드를 품에 안은 우즈는 이로써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피랍 일본 여객기 탑승자 석방 후 폭파 1973년 오늘 아프리카 리비아의 벵가지(Benghazi) 공항. 일본인 두 명과 아랍인 세 명으로 구성된 친(親)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일본항공 소속 보잉 747점보여객기를 폭파시킨다. 이들이 나흘 전 납치한 여객기다. 납치범들은 폭파에 앞서 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137명을 모두 석방했다. 이들…
더러 신문지 깔고 밥 먹을 때가 있는데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 꼭 밥상 펴라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신문지가 무슨 밥상이냐며 궁시렁 궁시렁 하는데요 신문질 신문지로 깔면 신문지 깔고 밥 먹고요 신문질 밥상으로 펴면 밥상 차려 밥 먹는다고요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요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고요 어머니 또 한 말씀 가르쳐 주시는데요 해방 후 소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이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 말씀 철학 - 정일근 시집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 /2006년/시학 나와 너 사이에 언어가 있다. 나와 세상 사이에 언어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어의 힘으로 지탱이 되고 있다. 희망, 사랑, 행복이란 단어가 있기에 희망과 사랑과 행복을 기억하고 추구한다. 언어가 사라지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말 한 마디의 힘을 믿는다. 말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세계가 바뀐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언어는 혁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의 언어, 시의 언어가 그렇다. 따뜻한 세상을 원한다면 “따뜻한 말”을 건네자.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우리의 언어에 그것이 달려 있다. /박설희 시인
남북 직항로 첫 시험비행 2002년 오늘, 대북 경수로 인력수송을 위한 양양국제공항과 북한 선덕공항 간의 남북직항공로 첫 시험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북한 고려항공 소속 70인승 TU-134 항공기가 승무원 14명을 태우고 이날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예정보다 8분 늦은 오후 1시 8분에 전조등을 켠 채 양양 국제공항 활주로에 안착했다. 1시간 정도 양양공항에 머문 북한 항공기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의 현장 근무자 등 8명을 태우고 오후 2시 1분 북한 선덕공항으로 돌아갔다. 이소룡 사망 브루스 리, 이소룡이 1973년 오늘 숨졌다. 영화 ‘사망유희’를 촬영하다 갑자기 사망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소룡은 1971년 홍콩 골든하베스타사가 제작한 영화 ‘당산대형’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실전무술 ‘절권도’를 창시하고 ‘정무문’과 ‘용쟁호투’, ‘맹룡과강’ 등의 사령선으로 되돌아갔다. 전 세계인에게 심어 주었다. 그가 사망한 지 20년 만인 1993년에는 아들 브랜던 리 역시 영화촬영 도중 총기사고로 사
한밤중 빗소리에 놀라 창문 밖 거리를 본다 기다림의 얼굴로 가로등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담벼락의 괴발개발 낙서들, 모집 날짜를 넘긴 구인 광고들 사립 밑의 쭈구려 앉은 쓰레기 봉지와 함께 울고 있다 가래침을 쓸며 허튼 발자국을 지우며 빗물은 비탈길을 터벅터벅 걸어오고 담 밖의 세상 그리운 덩굴 하나 삐죽 고개를 내미는데 세상은 무덤처럼 고요하다 이 한밤 사람 아닌 것들 저리 살아 온밤을 분주하구나 -이재무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않고’ / 문학과 지성 빗물이 휩쓸고 가는 흔적들 속엔 많은 것들이 있다. 분주한 일상의 사연들, 구인 광고들은 많은데 구직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삶의 아이러니. 한 때 누군가의 군것질거리이거나 일용한 양식이 담겼을 "봉지"들이 함부로 버려지는 풍경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사연들이 쓸려가고 쓸려오고 쓸려 다니는 비오는 날. 기왕에 내리는 비라면 가뭄 끝에 오는 단비였음 좋겠다. /시인 권오영
고종 강제퇴위 1907년 오늘, 조선 제26대 왕 고종이 일본의 계략에 의해 강제퇴위당한다. 일제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이 헤이그 밀사 사건에 책임을 져야한다며 왕위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들은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고종을 협박해 고종의 퇴위를 선언하는 ‘양위조칙’을 승인하도록 강제했다. 결국 이날 날조된 ‘양위조칙’이 발표되고 순종이 고종의 뒤를 이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다. 일제는 이어서 같은 달 24일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을 강제로 체결시켜 국정 전반을 일본 통감이 간섭할 수 있게 하고, 정부 각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정치를 시작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사망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우남 이승만! 1965년 오늘, 망명지 하와이에서 아흔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해 한국을 떠난 지 5년 만이다. 그의 유해는 타계한 지 나흘 만인 7월 23일 미국 공군수송기에 실려 김포공항으로 들어왔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효상 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외교사절 등이 유해를 맞이했다. 그의 유해는 3군 의장대에 의해 세종로를 거쳐 그가
매미가 허물을 벗는, 점액질의 시간을 빠져나오는, 서서히 몸 하나를 버리고, 몸 하나를 얻는, 살갗이 찢어지고 벗겨지는 순간, 그 날개에 번갯불의 섬광이 새겨지고, 개망초의 꽃무늬가 내려앉고, 생살 긁히듯 뜯기듯, 끈끈하고 미끄럽게, 몸이 몸을 뚫고 나와,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를 살려내는, 발소리도 죽이고 숨소리도 죽이는, 여기에 고요히 내 숨결을 얹어 보는,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 오정국 시집 ‘파묻힌 얼굴’/2011/민음사 시인은 재생을 꿈꾸는 모양이다. 진흙 속에 피는 연꽃에 까지 읽는 이를 이끌어 가고 있다. ‘몸 하나를 죽이고 몸 하나를 살려내는’ 숨 막히는 고요가 팽팽하다. 이 세상 진흙탕을 건너며 흙 묻지 않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시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매미가 벗는 허물처럼 우리에게도 삶을 건너며 벗어놓을 허물이 있다며. /조길성 시인
저도 모르게 왼손이 편하고 좋아 왼손으로 밥 먹고 글씨를 쓰다가 오른손은 늘 바르고 옳으니 오른손만 사용하라며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사랑의 회초리 맞고 자란 내 귀여운 왼손잡이 애인은 이제 왼손 오른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양손잡이가 되어 있지요 왼손은 부정하다고, 틀렸다고 오른손만 고집하다가 왼손을 거의 쓸 수 없는 나보다 훨씬 두 손이 자유로운 사람이. - 임동확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2005년/실천문학사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읽는다. “왼손은 부정하다고, 틀렸다”고 왜 오른손만을 고집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오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때로는 어떤 詩 한 편 때문에 주변의 풍경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지리산 아래 하루에 두세 번 버스가 지나가는 간이 정류소에서 백발의 노인이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있었다. 오른손잡이인 내 눈에는 그리듯 이어지는 그녀의 손놀림이 어설퍼 보였지만 받아든 차표에 씌어진 글씨는 놀랍게도 달필이었다. 왼손으로 꾹꾹 눌러서 날짜와 시간 좌석번호까지 적어놓은 차표는 오래된 유물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런데 잠깐, 노인의 오른손에 눈이 멎었다. 그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