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정익진 왼쪽을 무시하며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귀들 혹은 바람의 왼쪽으로 내려앉는 귀 후, 눈동자의 끝으로 굴러간다 봄, 여름 내내 풍성했던 거짓말들, 물기 많고, 열정이었고, 푸른 것들 비치파라솔 같은 날들의 그런 음악조차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백만 개의 스피커라도 되고 싶었을까 은하수 가득했던 나의 귀들이여 -정익진 시집 『스캇』/문예중앙 어느 시인은 나뭇잎을 물고기에 비유하고 어느 시인은 떨어진 은행잎을 말발굽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정익진 시인은 낙엽을 ‘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낙엽들. ‘봄, 여름 내내 풍성했던 거짓말들’이 듣기 거북했던 모양입니다. ‘물기 많고, 열정이었고 푸른 것들’이 낙엽의 입장에서는 다 부질없고 헛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나의 귀들’은 대지에 가까이 닿습니다. 진정 들어야 할 소리는 땅 밑에 있습니다. 바로 저 깊은 어둠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떨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구르는 것은 더 생생한 진실의 소리를 찾아다니는 여정일까요? /성향숙 시인
장자 /박제천 한 마리 소가 되는 둔갑술쯤 별 것이 아니다 파적삼아 만번쯤 둔갑해 보여줄거나 만 개의 얼굴마다 만 개의 이름을 달아줄거나 아버지이신 무지개 아버지이신 용 아버지이신 귀신 아버지이신 알, 아버지이신 거인의 발자국 내 아버지는 도처에 계시다 그 모든 아버지를 죽여버릴거나 죽비를 들어 소머리를 두 번 두들기고 말을 맺겠다. 기슭에 닿았으면 배를 버리려므나 어찌 만 가지 길을 일일이 묻느냐 시인과 인연은 필자의 장편소설을 문학아카데미에서 출간하면서 일이다. 호탕한 웃음 뒤에는 세상의 도를 알고 있는 도인으로 문학으로 자랐다. 시인이 장자에 대한 끈질긴 고뇌를 오래도록 일구어 내고 있었다. 시인 장자에 사상가로서의 찬탄의 대상이고, 자유인으로서의 그는 경외의 대상이지만 예술가이자 시인으로서의 그는 극복의 대상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스승으로 불리는 삶의 거리에는 극한을 견디고 상상력의 절망을 익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꿈을 꾸며 사는 삶은 고통 반 즐거움 반이라고 한다. 꿈꾸는 속에 무엇이 바른 삶인가를 깨우치고 그른 힘인가를 깨닫는다. 꿈꾸는 속에 꿈을 깨고, 깨어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는 고단한 길이지만 사람들과 대화는 말을 걸고 이어간다. 삶
김주리 /맹문재 미인들이 모인 회사 ‘미모사’ 미인 한 사람 없는 해고 미싱사들의 작업장이었네 지하방에 재봉틀 네 대 들여놓고 하청 일을 했네 주인이 되어 엄격하게 일했네 엄격하게 쉬었네 -맹문재 시집 『기룬 어린 양들』/푸른사상 ‘기룬 어린 양들’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마음이 아프다. 소외된 계층들, 일한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과도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람들... 이런 희생의 댓가로 우리가 좀 더 나은 생활을 누리는 것을 부인할 사람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사자후처럼 ‘조선 건국 이래로 우리는 600년 동안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아도 모르는 척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지난 얘기가 아니다. 아직도 밥이나 먹고 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권력에 순응하며 비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한 이런 세상은 계속되거나 더 강화될 것이다. /성향숙 시인
아기들의 만찬 /한경용 맞벌이 부모 대신 먼저 끓여 먹곤 한잠 푹 빠진 새끼들의 꼬부라진 잠자리 꼬까 장난감처럼 씻어놓은 냄비에는 꼬인 면발이 통통 -한경용 시집 〈빈센트를 위한 만찬〉, 한국문연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철이 일찍 드나 보다. 부모가 당장 곁에 없으니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겠지. 부모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고. 퇴근 후 종종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섰을 때, 기다림에 지쳐 꼬부라져 잠들어 있는 아이들, 텔레비전은 저 혼자 웅웅거리고, 거실의 전등불은 대낮처럼 훤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라면이라도 끓여서 먹었다면,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설거지라도 해놓았다면, 스스로 장난감을 씻듯 제 딴엔 열심히 씻어 놓은 냄비에 씻기지 않은 면발이 붙어있다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면서 절로 눈물이 핑 도는, 아프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미산 시인
녹(綠) /정재학 이십년 넘은 아파트에서 녹물이 나온다. 녹물로 밥을 지어먹고 녹차를 끓여먹고 양치를 했다. 녹물을 많이 마시면 우울해진다. 종일 무기력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눈물에서 쇳가루가 검출되었다. 머리가 녹슬고 가슴이 녹슬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도 녹슬었다. 노란색을 보면 우울해진다. 노란 나비가 나에게 침을 뱉는다. 노란 꽃도 싫어지고 은행나무 잎도 싫어졌지만 난 노란 살덩이가 되어 누런 오줌을 싸고 있었다. -정재학 시집 〈모음들이 쏟아진다〉에서 오래된 아파트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쏟아진다. 녹물이 눈에 보일 때까지는 그 동안 서서히 마신 녹물이야 오죽하랴. 녹은 산화작용으로 인해 쇠붙이 표면에 생기는 물질이다. 대부분 붉거나 검거나 푸르지만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발견하는 녹물은 누렇다. 누런 녹물을 마시다보니 노란 것들에게까지 거리낌이 생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몸조차 이미 누렇게 녹물이 들었으니 이미 늦은 것일 수도 있겠다. 녹슨 수돗물은 타성에 젖었던 지난 시간으로까지 확대 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다. 늘 갈고 닦고 갈아야만 제 빛을 낼 수 있는 것인데, 게으름 탓일까. 제 빛을 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자조적인 심정도 엿보인다.…
손 /이성복 손, 타인의 손, 얼굴보다 더 늙은 손은 너의 가슴을 향해 온다 한번도 잡아주지 못한 손, 타인의 여윈 손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문학과 지성사 사람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손’이 말할 때가 있다. 손잡는 일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올 때가 있다. 세계와 인간과 삶의 무수한 얼룩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손의 주름들. 주름을 펼치면 삶의 진실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손’과 ‘손’은 서로 ‘타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잡지를 못한다. 내가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느냐에 따라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나의 넓이와 깊이로 남게 될 것이다. /권오영 시인
없는 숲 /최승자 숲은 없는데, 숲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아는데, 오늘 아침 창 밖에서 느닷없이 터지는 도시 새들의 울음소리가 내 눈 앞에 천연덕스럽게 숲을, 숲의 배경을 구성해 내고 미처 깨어나지 못한 내 머릿속 공장에서는 뇌세포들이 샛된 새 소리들을 실 삼아, 꿈과 생시를 넘나 들며 황홀한 환상의 숲을 짜고 있다. 언제 였던가… 필자가 문학수업시절, 시인은 따뜻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늘 생각해 본다고 했었다. 침묵으로 충만한 정지된 자연은 휴식을 주기도 하지만 무료함, 지겨움, 정적만이 삶이 무거워 죽음의 공포감 같은 경험을 시인은 가져 본 것 같다. 절대적인 결핍감 불행을 의식하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탈출구를 시인은 자연의 숲에서 찾았다. 자연 속에 태어나, 삶을 위해 자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도심지 어디에서 헐벗은 논과 밭의 경전을 관찰자로 지켜보고 있다. 참새 떼가 몰려와 울어대는 소리는 일상의 깊은 숙면을 깨우기도 하지만 푸르른 것들로, 자연의 잎들로 조금은 치유를 하고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법하다. /박병두 시인·수원영화협회장
견진성사, 그 이후 /정영숙 풀무의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그는 제대로 두 눈을 뜰 수 없었다 물과 불 속을 번갈아 담금질을 수천 번 매질을 수만 번 온 몸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두들겨 맞으며 얇은 종잇장처럼 펴고 있는 대장장이의 손 안에서 오랫동안 뭉쳐 있던 응어리가 풀려나가고 있었다 불과 물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딛혀 있던 목울대가 터지며 울음을 깨트렸다 나이테처럼 생긴 수천 개의 골마다 맑고 고운 음색을 지닌 징으로 그는 태어났다 그때부터 나는 새벽 가을 강가에 서면 은어빛 물속에 웅크리고 있는 한 덩어리의 방짜놋쇠를 만나곤 한다. -정영숙 시집 〈물 속의 사원〉, 문학아카데미 견진성사란 더욱 견고하고 성숙된 신앙인이 되기 위한 종교적 행위이다. 어디 종교적 의미만 있겠는가. 우리네 삶의 길목마다 견진의 과정이 버티고 서있다. 아름답고 귀한 것들은 남몰래 형체가 변형되는 고통과 수고로 이루어졌다. 기꺼이 감수하는 자와 피하는 자의 차이는 나중에 드러난다. 꿈을 이루는 일, 성공이라는 단어가 품은 땀방울을 기억하자. 그래서 삶은 만만하지 않고, 그러므로 삶은 살아볼 가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산 시인
슬픈 ㄹ /박일환 소나무는 솔과 나무가 합쳐진 말이야 합치면서 발음을 쉽게 하려고 ㄹ을 떨어뜨린 거지 하느님, 따님 같은 말도 마찬가지란다 어떤 말이 더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국어선생님 말을 들으며 새 아빠랑 살림을 합치면서 할머니 집에 나를 떨어뜨리고 간 엄마를 생각했다 -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한티재, 2014)에서 시인은 학교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울고불고 뒹굴며 겪었던 일들을 한 편 한 편 만들어 시집을 묶었습니다. 이 시는 한글 맞춤법 중 ‘ㄹ탈락 현상’에 착안하여 오늘날 가정현실을 아프게 담고 있습니다. 엄마와 ‘떨어진’ 아이의 마음은 상처로 슬픔에 젖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이를 ‘떨어뜨리고’ 간 엄마 또한 슬픔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이 두 슬픔이 경중을 따질 수 없이 코끝을 찐하게 합니다. ‘ㄹ탈락 현상’은 주로 파생어와 합성어에서 일어납니다. 그처럼 오늘날 가정은 끊임없이 해체되고 합쳐지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꼭 슬픈 일이기만 할까요? 인생이 살아볼 만한 것은 무한 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
주름 /장옥관 돋보기 쓰고 아내를 보니 온 입가에 잔주름이다 주름진 것들은 모두 슬프다 갓 태어난 딸아이 물미역처럼 쪼글쪼글한 얼굴에도, 누운 지 삼 일만에 흰 나비로 빠져나간 어머니의 무명이불에도 지울 수 없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힘줄 튀어나오도록 꽈악, 꽉 움켜쥔 젊은 날 주먹의 안쪽에도 분명 주름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주름의 갈피마다 스며들었던 눈물이여, 슬픔이여 꿈이든 사랑이든, 한순간 팽팽히 부풀었다 꺼진 것들에는 필시 주름이 잡혀 있을 터 침대 위 던져놓은 아내의 낡은 브래지어 캡에도 보푸라기 인 주름이 자잘하게 잡혀 있다 -장옥관, 『현대문학』 2013 3월 주름은 시간의 흔적이다. 세상에서 처음 맞보는 기쁨의 흔적도 있다. 가슴이 아파서 오그라들어 그대로 굳어버릴 것 같았던 시간도 있다. 꿈꾸고 꿈을 좇아 혼신을 다했던 소중한 날들의 기록이 들어 찬 것이 주름이 아니던가. 그래서 주름은 세상 어느 것보다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몸 속에서 보낸 흔적이 생의 첫 주름이다. 꽃처럼 활짝 펼쳐질 주름, 그런 주름도 있고 얼굴 곳곳에 길을 내는 주름도 있다.지내온 시간의 조분조분한, 혹은 격정적인 삶의 기록이다. 그래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