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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역사 숨쉬는 강화, 가슴으로 품어보세요

강화팔경을 찾아서

여름이 가고 있다. 저만치 앞에서 가을이 미소를 흘리며 손짓하고 있다. 이번 가을엔 더위에 지친 심신의 충전을 위해 가을 속으로 떠나는 것도 좋으리라. 수도권의 보석 강화도는 유난히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그 중에서도 강화 8경은 보는 이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강화도는 멀리 국조 단군성조의 개국과 그 역사를 함께 하며 도서 특유의 지정학적 숙명으로 고금을 통해 왕실의 흥망성쇄가 곧 강화의 역사를 이룬 곳이다.왕궁을 중심으로 한 고적과 수비를 위한 국방 유적이 강화도 곳곳에 산재해 있을 뿐 아니라 천혜의 자연적 경치가 도처에 펼쳐져 있다.

특히 강화도의 많은 문화유산 중 풍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강화팔경은 바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삶의 기쁨과 안식을 제공하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강화 8경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 연미정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돼 있으며, 강화읍 월곶리 242번지에 있다. 이 정자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고종이 구재(九齋)의 학생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케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줄기는 강화해협(염하강)으로 흘러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해서 ‘연미(燕尾)’라 했다 한다. 높은 석주 위에 세운 팔작집으로 영조 20년(1744) 중건, 고종 28년(1891) 중수 등 수차에 걸쳐 보수를 했다. 조선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이곳에서 청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이기도 하다. 정자에 오르면 고목나무의 그늘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 적석사

내가면 고천리 210-3번지에 있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중종39년(1544)과 선조 7년(1574), 그리고 그후 6차에 걸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4년에 대웅전을 건립 그 이듬해인 1986년에 요사채를 주지 도암 김종칠이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 동편에 있는 우물은 돌 틈에서 나오는 샘이 맑고 찬데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거나 흉년이 들 때면 별안간 마르거나 흐려지는데 6·25 한국동란을 비롯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도 그랬다고 전한다.

절 서쪽상봉은 낙조봉이라 해 서해 수평선이 붉어지며 파도위에 떨어지는 해를 보면 세상 삶이 별 것 아님을 깨닫고 해탈한 마음으로 하산하게 된다.

▲ 갑곶돈대

사적 제 306호로 강화읍 갑곶리 1020번지에 있다. 이 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후 몽고와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조선 인조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이 돈대는 숙종 5년 (1679)에 축조됐다. 고종 3년(1866) 9월 7일 병인양요시 프랑스 극동함대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해 강화산성, 문수산성 등을 점령했다.

같은 해 10월 13일 프랑스군은 삼랑성(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주했다. 이때 강화성 내에 있던 강화동종을 가져가려 했다가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성내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등을 약탈하고 조선궁전 건물은 불을 질러 소실됐다. 돈대 내에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전시돼 있다.

▲ 마니산

마니산은 백두산이나 묘향산 등과 함께 단군왕검의 전설이 얽힌 강화도의 명산으로서 화도면 문산리 소재 해발 468m로써 북으로 백두산과 남으로 한라산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산 정상에는 단군성조께서 우리민족의 번영을 기원하던 제단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사적 136호의 참성단이 있다.

화강암으로 된 높이 6m의 사각제단인 참성단의 기초는 하늘을 상징해 둥글게 쌓았고, 단은 땅을 상징해 네모로 쌓아 신성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해마다 개천절에 이곳에서 개천대제를 지내며, 전국 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는 이 참성단에서 칠선녀에 의해 채화돼 행사장까지 봉송되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흔히 풍수전문가나 기(氣) 수련가들은 “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곳”, “기가 솟구쳐 올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사람에게 활력이 생기는 곳”으로 ‘마니산’을 꼽길 서슴치 않는다.

▲ 보문사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에 있다. 본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서해바다 아름다운 섬 안에 안겨있다.

여기에는 불상을 모신 석실과 마애불이 있는데 석실은 천연동굴속에 21개의 감실을 설치하고 석불이 안치돼 있다.

마애석불은 높이가 32척 폭이 11척의 관음보살상이다. 32척은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을, 11척은 11면 관음의 화신을 상징했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에 의해 창건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중건된 석굴사원인 보문사석실(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이 있다.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건너며 마주치는 갈매기의 군무가 일품이고, 사찰에 이르는 솔숲길과 나무숲 사이로 드러나는 바다 정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 초지진

사적 제 225호로 지정돼 있으며 길상면 초지리 624번지에 있다. 이곳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고종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성벽이 아름답고 노송에 박힌 총탄 자국 등이 처절한 근대사를 증언하고 있어 처연한 심정이 드는 곳이다.

▲ 광성보

사적 제 227호로 불은면 덕성리 23-1번지에 있다. 광성보는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됐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돈대가 축조됐다. 영조 21년(1745)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按海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고종 3년(1866) 프랑스의 극동함대와 치열한 격전(병인양요)을 치렀으며, 고종 8년(1871) 미국의 아세아함대(신미양요)가 이 성을 유린해 우리 수비군은 탄환 및 화살이 떨어지자 어재연장군 이하 전 장병이 백병전으로 맞서 용감히 싸우다 전인원이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성곽이 아름답고 걷기 좋은 곳으로 손돌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 적격이다.

▲ 전등사

전등사는 정족산(鼎足山) 삼랑성(三郞城) 안에 있는 사찰로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72) 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를 연 데서 비롯됐다. 이곳이 전등사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의 원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불전에 옥으로 된 등잔을 올린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안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울창한 숲과 고요한 풍경소리가 세속의 번뇌를 씻어내게 하는 운치 있는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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