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 커넥티드 의료! 원격 상담은 시민과 의사의 일상을 개선하고 의료 사막을 퇴치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단, 원격 진료는 기존 의료 서비스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원격 상담실을 설치하도록 당국이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원격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3세 미만의 어린이는 이용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의사는 필요한 도구를 갖추고 있다. 의사는 심장이나 폐를 진료하기 위한 청진기, 화면에 표시된 비디오를 사용하여 멀리서 환자의 목이나 귀를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동북부의 루즈(Louze)는 주민 3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지자체다. 2년 전, 주민의 염원을 받아들여 원격 진료가 시작되었다. 시청 입구의 벽에 붙여 놓은 다섯 개의 의자가 진료 대기실 역할을 한다. 복도 끝에는 의료 장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방이 있고 그곳에는 진찰대, 급수대, 무엇보다도 원격진료 컴퓨터 키트가 있다. 진료실에서는 여 간호사 한 명이 거의 모든 일을 보고 있다.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진료의 운영 시스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기기들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비인후과 질환을 검사할 수 있는 검이경은 제가 직접 환자의 귀에 꽂아 주지만, 영상 피드백은 의사가 컴퓨터로 받고 있지요. 제가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직접 보는 것이지요. 청진기도 마찬가지이고요. 의사가 폐나 심장에서 나는 소리를 직접 수신합니다. 의사는 연결된 헤드셋을 착용하고, 듣는 소리에 따라 진료를 진행해요. 예를 들어, 벌에 쏘이거나 상처가 났을 때는 휴대용 카메라를 환자가 호소하는 부위에 대고 영상을 더 빠르게, 더 가까이, 덜 가까이 촬영합니다. 제가 의사에게 치수, 예를 들어 충혈 정도를 알려주지요. 그리고 사진을 찍지요. 직접 손으로 찍는 것도 의사입니다.” 진료는 루즈 시청에서 진행되지만, 의사는 원격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 센터인 트루아 지역의 원격 진료 센터에 있다. 루즈에서 5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집 근처에서 의사를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근 도시인 몽티에-앙-데르에는 5명의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두 명이 은퇴하고 현재는 두 명만이 진료를 보고 있다. 의료 사막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남은 길은 혁신뿐이었다. 리브-드부아즈(루즈를 비롯한 3개의 지자체를 통합한 새 코뮌)의 여성 시장인 크리스티안 벨티가 앞장서 다른 선출직 공무원들, 그리고 의료 전문가들과 함께 협회를 만들었다. 이는 루즈에 원격 진료소를 개설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이 여 시장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격 진료는 의사가 없고 치료를 포기하는 주민들이 있는 농촌 지역의 요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저희는 사소한 증상이라도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지요. 예방이 매우 중요하고, 예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농촌 지역의 경우, 이러한 예방의 질적 부족으로 도시 지역 주민보다 기대 수명이 1.4년 더 짧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였다. 이 상황은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의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서라도 원격 의료를 서둘러 도입해야 할 때다. 이제 거리는 더 이상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디지털 인프라가 한국만큼 좋은 나라도 없지 않은가! 위기 앞에 혁신을 모색할 것인가, 기득권의 눈치만 살필 것인가, 국가의 결단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사회연대경제의 활성화가 통일 한국의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발전을 위한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는 공통의 비전이 필요하다. 사회연대경제가 추구하는 '경쟁보다 협력, 독점보다 공유'의 가치는 분단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할 통일 한국에 가장 적합한 발전 모델이 되고 통합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통일 한국은 단순한 영토의 확장을 넘어, 이질적인 경제시스템과 사회 문화를 통합하는 거대한 과제를 안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사회연대경제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회적자본 구축 및 신뢰 회복. 오랜 단절과 체제 차이로 인해 남북 주민 간에는 깊은 불신과 이질감이 존재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주민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특성상,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업과 성과 공유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사회적자본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는 남북 주민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및 자립 기반 마련. 북한은 광범위한 지역 불균형과 낙후된 인프라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기반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역 주민의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고,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사업 모델을 개발하여 지역 경제의 자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중앙 집중식 개발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 주도의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사회서비스 격차 해소. 통일 초기 북한 주민의 의료, 교육, 돌봄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접근성은 매우 취약할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정부나 시장이 미처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며, 서비스 격차를 줄이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는 통일 한국의 기본 서비스 공급망 구축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회연대경제의 활성화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 한국의 사회연대경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 ▲법·제도적 기반 마련. 통일 초기부터 사회적경제 활동의 법적, 제도적 기반을 명확히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사회적경제 협력 모델 구축. 통일 전후 남북 사회적경제 조직 간 교류 및 협력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사업 노하우를 공유하며, 공동의 사업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지역별 특화된 사회적경제 모델 개발. 통일 한국 각 지역의 특성과 자원을 고려한 맞춤형 사회적경제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사회적금융 활성화. 통일 초기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자금 조달은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정책 자금 지원 확대, 사회적금융 활성화, 민간 투자 유치 등 다각적인 금융 지원 방안을 마련하여 사회적경제 조직의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물론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도전 과제가 따를 것이다. 재정적 제약, 기존 시장과의 조화, 그리고 남북한 주민 간의 이질감 극복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사회연대경제는 ‘협력과 공유를 지향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가치를 통해 이러한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통일 한국은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인간다운 삶과 사회적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연대경제는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남북 주민이 함께 번영하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경기도에서 소방 인력이 정원조차 채워지지 않은 채 현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정원의 80% 수준에 불과한 인력으로 화재와 구급 대응을 감당하고 있어 현장에서의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소방 인력 확충은 그간 위정자들이 수없이 약속해온 중대사안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첨병인 경기도 소방 인력 태부족 현상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공업단지가 밀집돼 있고,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는 화재·구급 등 각종 재난 상황이 집중되면서 전국에서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지역이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7931건, 재산 피해는 약 3664억 원에 달했으며 인명피해 역시 88건으로 전국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재난 대응을 책임지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의 인력 상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재 도 소방관 정원은 약 1만 4000명으로 설정돼 있으나 실제 근무 인력은 이보다 20%나 부족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소방관 1명당 담당하는 인구수가 1000명을 넘어서며, 현장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등 극심한 인력난이 지속되고 있다. 현장에선 인력 부족으로 소방차 등 장비를 운행할 사람이 없어 차질이 빚어지는 사례도 많다. 일부 119안전센터에서는 운전 가능한 인원이 1명뿐이어서 차량마다 번갈아 복귀·교체를 반복하는 경우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119 신고 접수 시스템 발전 속도에 걸맞지 않게 실제 출동 인력의 만성적인 부족 현상에 대형 화재 시 구조할 인원이 모자라 소방관들은 늘 조바심을 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구급대 상황도 비슷하다. 경기도의 2021년 기준 구급차 3인 탑승률은 39.6%에 그쳤으며, 최근 인력 보강을 통해 올해 70%까지 늘었지만, 여전히 충족에는 미치지 못한다. 2명이 탑승하면 1명은 운전을 하므로 환자 관리는 사실상 1명이 모두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중증 환자 대응은 물론, 만취자의 폭력 등에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하소연이다. 119 소방서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안전망이다. 일부 몰지각한 시민의 장난 전화나 허위 사건·사고 신고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긴 하지만, 119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시민 안전 시스템의 대표 기관으로 성장해왔다. 대다수 국민은 범죄로부터 지켜주는 112 못지않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보호기관으로서 119를 신뢰하고 의존하며 산다. 경기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지역이라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다. 수도권 핵심이라는 사회지리학적 여건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지역에서 사건·사고 발생이 많은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경기도의 소방 인력이 어림없이 부족한 현상은 결코 정상적이 아니다. 경기도 인구 1416만 명을 1만 1495명의 소방관이 감당해야 하는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소방관 한 명당 무려 1231명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 된다. 휴가도 못 가고 교육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음을 뜻한다. 아무리 사명감으로 지켜내고 있다고 해도 이런 현상이 누적되면 119 역할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인력을 충원해 최소한 4교대 근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방 인력 확충’은 위정자들이 선거 때만 되면 단골로 내놓는 대표적인 공약(公約)이다. 정치인들의 공약(空約)에 이대로 계속 유권자들이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은 변명도 해명도 필요치 않다. 도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태부족한 경기도의 소방 인력은 하루빨리 제대로 충원돼야 한다.
입양은 아이의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이다. 그만큼 입양은 철저히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of the Child)’이라는 원칙 아래 추진되어야 하며 그 과정은 국가와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공적 시스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입양제도는 민간기관이 주도해 왔으며 입양이 아동 보호의 ‘빠른 출구’로 기능해 온 것이 현실이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입양되는 사례, 아동의 친생가족에 대한 정보 부재, 입양 전 보호 공백 등은 오랫동안 제기된 구조적 문제점이었다. 특히 입양을 통해 아동의 삶이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전환되는 만큼 사전 준비와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입양 구조는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높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7월 19일부터 입양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자 한다. 핵심 방향은 입양을 ‘민간 중심 절차’에서 ‘국가 책임에 기반한 보호 결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출생 직후 곧바로 입양기관으로 아동이 이동하던 기존의 흐름을 차단하고 일정 기간 국가가 보호하는 체계 안에서 아동의 상황을 충분히 평가·조정한 후, 친생가정 복귀 가능성을 우선 검토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변화는 입양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동을 급하게 새로운 가정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친생가정 유지 가능성을 포함해 다양한 보호 대안을 숙고함으로써 진정으로 아이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주자는 철학적·실천적 전환이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특히 아동 보호 전달체계의 일선에 있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경기도의 경우 현재 일시보호소 3개소, 아동양육시설 23개소, 공동생활가정 152개소, 가정위탁지원센터 2개소 등 다양한 공적 보호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다. 입양체계 개편 이후 이러한 보호 자원이 보다 정교하게 작동하도록 연계·조정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되었다. 예컨대 출생 직후 아동이 일시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보호되는 사이에 친생가정의 회복 가능성, 아동의 심리·건강 상태, 가정위탁이나 시설보호의 적절성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호 결정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의료기관, 심리상담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하는 유기적 협업 구조를 통해 더욱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출생 등록 의무화, 입양 전 친생부모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정보 제공, 입양 후 사후관리 강화 등 입양 전후 모든 과정에서 국가와 지자체의 행정책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입양은 최후의 보호 수단이며 가장 신중해야 할 결정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랄 권리는 모든 아동에게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가족이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이에게 최선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이다. 입양을 둘러싼 논의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위한 사회의 책임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이번 개편은 그 첫걸음이다. 입양체계 개편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라 아동 권리 실현을 위한 국가의 의지를 반영하는 구조적 개편이다. 지방자치단체, 민간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아동 중심 보호체계를 구현해 나갈 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나라’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표절(剽竊)은 지식인사회,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세계에서 타인이 인생을 걸고 몰두하여 이룩한 결실을 가져다가 자신의 것으로 하는 짓이다. 절도(竊盜)다. 이 악행은 시공을 초월한다. 저열한 욕망에 추동되는 그 특이종자들의 비루한 행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약 2500년 전, 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노동없이 영예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타락한 욕망이 표절을 낳는다." 그 시대에도 이미 표절이 만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보다 더 오래 전, 수메르 시대(대략 기원전 4500년~1900년)의 대홍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흡사하다. 히브리족이 수메르 신화를 사실상 베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들도 사상과 저술의 차용과 모방이 극심하여 표절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적소유권 개념이 없던 당시의 먹물들은 그 지식절도범들을 '흉악한 쌍놈'들로 취급했을 것이다. 그 피해자들의 상심과 분노가 '표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 동의어들 글자 속에도 같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서양이 똑같다. 고대 로마 사람들이나 동양 사람들이나 침해당한 사람의 마음이 다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표절(剽竊)의 剽(표)는 칼(刂)을 들고 부자를 겁박하는 형상을 나타낸다. '훔치다'의 뜻을 가진 竊(절)은 원래 곡식창고에서 쌀벌레들이 쌀을 갉아먹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였다. 칼을 든 강도나 쌀벌레나 본질은 같다. 그렇게 남의 사상이나 주장, 연구결과를 가져다가 자신의 것처럼 설파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표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抄襲(초습)은 표절과 같은 말이다. 남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 얻은 열매들을 적군을 습격(襲)하듯 덮쳐서 빼앗아가는(抄) 강도행위를 일컬었다. 발음이 같은 剿襲(초습)도 동의어다. 칼(刂) 든 강도가 남의 재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기습하는 행위다. 둘 다 원뜻은 살인무기로 적을 습격하여 처단하고 쓸모 있는 것-먹거리, 농기구, 부녀자-들은 강탈하는 만행이었다. 그 잔혹행위인 표절과 초습이 다른 사람의 지적 성과를 도둑질하는 무혈의 범행을 이르는 어휘로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는 표절이 참으로 엄중한, 실은 무시무시한 윤리적, 법적 사안이라는 뜻을 웅변한다. 영어로는 표절을 plagiarism이라고 한다. 라틴어의 plagiarius(유괴범)에서 왔다.이는 plagium(납치)에서 왔다. 이는 또 plaga(올가미)에서 왔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자신의 시를 도용한 시인을 plagiarius(유괴범)이라고 부르면서, 남의 창작물을 훔치는 것을 어린 아이나 연인을 납치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 어원적 의의는 오늘 이 시간에도 유효적절하다. 대학에서 권력자인 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는 작태는 도둑질이면서 폭력이고 인권유린이다. 만행이고 패륜이다. 그런 자가 교육부 장관 되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다. 이진숙 교수는 그런 제자들 논문 표절한 건수가 10편이나 된다고 한다. 지난 겨울, 우리는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북만주 독립군들의 마음으로 혹한을 넘었다. 나라를 벼랑에서 구했다. 겨우 이 따위 저품위 교수를 출세시켜주려고 거기서 그 차가운 시간에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진사퇴하라.
전세사기를 일으킨 임대인들이 ‘기획파산’으로 막다른 골목의 임차인들을 거듭 울리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면책이 된 사기꾼들이 멀쩡하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경우조차 있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실정이다. ‘기획파산’으로 전세보증금 반환의 길을 아주 막아버리는 악성 임대인의 변칙을 막기 위한 정밀한 대책이 요구된다. 가해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사회는 온전한 공동체가 아니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개인파산은 ‘개인사업 또는 소비활동 결과 본인의 재산으로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개인채무자를 대상으로 법원이 모든 채권자가 평등하게 채권을 변제받도록 하고 채무자에게는 면책 절차를 통하여 남아있는 채무에 대한 변제 책임을 면제하는 절차’다. 파산 제도는 과도한 빚을 지고 살길이 막힌 서민을 위한 마지막 생명줄 장치다. 문제는 전세사기를 일으킨 일부 임대인들이 이 파산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을 편취해 다른 사업에 투자한 후 탕진해 갚지 못하게 되면 파산을 신청해 책임을 회피하는 수법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기획파산’을 도모해 피해 임차인들의 고통이 수년 후에도 끝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신문 취재 결과 화성시 향납읍 30대 초반의 한 다세대주택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소송을 걸자 즉시 파산을 신청했다. 이후 단 한 달 만에 파산이 결정된 후 모든 재판 일정이 중단되면서, 이 임대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임차인들은 1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잃었지만, 임대인은 부모의 재산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또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다세대주택을 건설하던 건설업자인 또 다른 임대인도 50~100억 원에 달하는 전세사기를 일으킨 후 파산 신청했다. 그는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지만 정작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녀, 임차인들을 농락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임대인이 파산하게 되면 전세보증금을 직접 갚지 않아도 돼 직접적인 책임을 피할 수 있으며 환급되지 못한 전세보증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떠안게 된다. 실제 지난해 11월 부천에서 ‘바지사장’을 내세워 393억 원 상당의 전세사기를 벌인 일당은 바지사장 명의로 임대 계약을 한 후 이들을 파산시키고 전세보증금 반환 의무를 공사에 떠넘기려고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담당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재정이 일부 ‘악성 임대인’에게 악용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HUG가 악성 임대인에 혈세를 털어 넣는다’라거나 ‘깡통전세 대신 갚느라 깡통 공기업이 된 HUG’라는 비아냥마저 등장하는 판이다. 전세보증 사고의 리스크를 집주인 대신 HUG가 모두 떠안는 보증 체계를 손질하는 한편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제재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 악성 임대인의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다시는 전세시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전세사기를 일으킨 임대인이 파산을 신청할 경우 법원은 이러한 정황을 반영해 파산을 기각해야 임차인들의 피해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호소한다. 파산이 악성 임대인들의 ‘면피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전세 사기꾼들이 처음부터 이 ‘기획파산’을 포함하여 못된 짓을 꾸밀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는 악성 임대인의 ‘기획파산’은 근절돼야 한다. 전세사기로 인한 막대한 피해 규모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보다 정밀한 근절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편법·불법으로 점철된 전세사기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국장 탈출은 지능 순.” 이 문장은 한국 증시에 대한 집단적 냉소와 미국 증시에 대한 매혹을 함께 드러낸다. 주식을 매수하는 일에는 그 기업이 대표하는 가치와 미래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무언의 서약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수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더 큰 이야기의 일부로 위치시킨다. 이야기가 대중의 몰입과 충성을 이끌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변화와 완결의 약속, 선명한 드라마와 영웅, 참여와 소속의 감각, 그리고 서사의 유통성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문학과 영화, 브랜드, 정치뿐 아니라 금융 시장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미국 증시는 이 네 가지를 거의 완벽히 충족하는 서사다. AI, 기후 기술, 우주산업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미래 비전이 투자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언젠가 더 큰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집단적 신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테슬라, 엔비디아, AMD 같은 종목은 혁신과 변화를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리사 수는 몰락 직전의 AMD를 재건해 산업의 아이콘이 되었고 젠슨 황은 GPU를 AI의 핵심으로 탈바꿈시켰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를 공언하며 테슬라를 극단적 변동성과 과감함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주가는 급등과 폭락을 거듭하지만, 그 변동성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로 소비된다. “화성 갈 거니까”와 같은 밈을 온라인에서 공유하면서 투자자는 글로벌 혁신의 무대에 조연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차트, 인터뷰, 영웅의 일화는 소셜미디어에서 재가공되어 확산한다. 투자자는 이야기에 동참하며 서사의 일부가 된다. 반면 한국 증시는 이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테마주는 짧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신뢰를 마모시키고, 정책 리스크는 예측 가능성을 마비시킨다. “이 시장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체념이 깊게 스며 있다. 중심이 될 만한 인물과 비전은 부재하거나, 오히려 냉소와 피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투자자는 자신이 관객에 머물러 있으며 내부자에 의해 희생당한다는 감각을 떨치기 어렵다. 서사가 사라지는 순간 소속감도 함께 사라진다. 차트와 상징은 밈으로 재생산되지 못하고 투자자들 사이에는 드라마가 아니라 허탈감만 남는다. 수익률의 높음과 낮음 이전에, 이 이야기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더 큰 결핍을 만든다. 투자자의 이야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고려하면,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더 나은 서사를 찾아 떠나려는 본능을 드러낸다. 미국 증시는 변화와 완결의 약속, 드라마와 영웅, 참여와 유통의 조건을 충족시키며 투자자를 이야기의 공동 저자로 만든다. 한국 증시는 이들 요소를 거의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동 서사의 경험이 불가능하다. 흥행의 조건이 사라진 무대에서 관객은 자연스레 자리를 뜬다. 단순히 수익률이 낮아서가 아니라, 공유할 서사가 없다는 사실이 이탈을 부른다. 이야기의 부재는 시장의 피로와 냉소를 낳는다. 투자라는 서사는 결국 어떤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젊은 투자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좇는 동시에 더 큰 이야기를 찾아 미국 증시로 발길을 옮긴다. 미국 시장에는 변화의 서사와 영웅, 참여의 동력이 흐른다. 수익률의 차이도 분명하지만, 더 깊은 격차는 결국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투자는 언제나 이성적이기보다는 서사적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증시가 끝내 잃은 것이다.
이제 7월 초인데 벌써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지구는 이렇게 계속 뜨거워져 가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점점 편안함을 잊어가고 있다. 그래서 어디 시원한 거 없을까 하고 찾게 되는 음식이 콩국수이다. 여기에 얼음 몇 개 동동 띄우면 먹는 순간만은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콩국수의 유래는 조선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콩이 서민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식품이었고, 국수는 주로 밀가루로 만드는데 곡물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밀가루에 콩가루를 첨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콩국수 형태가 일반화된 것은 조선 후기인데 콩은 맛도 있고 영양가도 높아서 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콩국수는 단백질, 미네랄, 무기질, 섬유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글루텐이 없고 열량이 낮아서 지금은 건강한 다이어트 식단으로도 잘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콩이 콩국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주로 “콩알만 한 게….”라고 하면 작다는 것을 무시할 때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콩알은 비록 작지만 단단하여서 웬만한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신만 옳다는 옹고집은 없어서 물에 불리면 연하고 순하게 물러져서 부드러운 음식의 재료가 되고 반으로 나눠지는 콩알은 “콩 하나도 반으로 나눠 먹는다”라는 비유처럼 작은 것에도 서로 돕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콩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룻밤 푹 불린 콩을 잘 갈아서 밀가루와 적당히 섞은 반죽을 얇게 펴서 국수 모양으로 잘게 썬다. 그리고 갈아놓은 콩가루를 물에 풀어서 콩국수 국물을 만들어 시원하게 냉장해 놓는다. 콩국수를 잘 삶으려면 펄펄 끓는 물에 국수를 넣고 거품이 올라와서 넘쳐흐르려는 찰나 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거품을 잠재우면 된다. 비록 콩알은 온데간데없이 형태가 사라졌지만, 그 고소함은 그대로 남아 걸쭉한 콩국수로 태어나 더위에 지친 서민들의 입과 속을 시원하게 달래주며 자신의 훌륭한 소명을 마무리한다. 냉콩국수를 먹으면서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면 더운 여름도 좀 더 시원하게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정치인들이야말로 콩국수의 소명에서 배울 것이 많지 않을까? 국민은 거대하고 위대한 정치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콩알처럼 작아도 단단하여 의지를 쉽게 꺾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기 고집만 피우는 불통이 아니라 콩반쪽이라도 나눌 줄 아는 마음, 그리고 물속에서 충분히 물러져서 가장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존재를 국민은 원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욕망이 거품처럼 끓어오를 때 국민의 소리를 한 줌의 소금처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제할 줄 아는 인격을 원하는 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열망이 있다, 그러나 자신을 높이려는 그 열망의 허울을 버리고 본질에 주목한다면 비록 콩알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영양은 그대로 남은 훌륭한 콩국수처럼 모든 서민이 즐거워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무더워 짜증 나기 쉬운 올여름, 텔레비전을 켜면 화면에 나타나서 국민 마음속에 열이 뻗치게 하는 이들 대신 냉콩국수처럼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지도자를 바라는 게 국민의 과욕은 아닐 것이다. 어떤가? 오늘 냉콩국수 한 그릇...
오늘도 느낀다. 아침 운동하러 가는 길, 이 숲 터널을 지날 때 행복하다는 것을. 그동안 겨울나무 검은빛에서 죽음보다 강한 기운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무들 땅 속 뿌리의 작은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겨울나무는 세상 모든 생명보다 고요히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 침묵은 곧 묵수(默言修行)요. 겨울 숲의 신앙이요 기도였다. 그 겨울 숲에 흰 눈이 소복소복 내릴 때, 하늘의 사랑이 우리 곁으로 어떻게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눈은 겨울의 선물이다. 대지 위의 흰 눈은 백지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꿇어앉아 그곳에서 시를 쓰고 편지를 써 수신자 없는 그곳의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었다. J 대학 생활관이 위치하고 있는 숲 속의 길은 가운데에 아름드리의 플라타너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양 쪽으로는 곧은길이어서 자동차가 서행하도록 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넓은 잎과 주변 나뭇잎들은 7월의 아침 빛 스며드는 녹색기운으로 바다 밑 같은 정밀한 고요 속에 가슴 벅찬 감동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대학로의 젊은 기운과 함께 상상하기 힘든 거목들의 넓고 푸른 잎잎 하나하나가 제철을 맞아 온 세상을 푸르고 두텁게 감싸면서 생명을 껴안아 주는 듯했다. 녹색이 주는 위로와 편안함이 행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주차하고 도립 체육회관 3층 헬스클럽으로 들어섰다. 아침 공기 신선한 가운데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가볍게 체조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 창밖으로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펼쳐진다. 동쪽 화단으로는 칼을 차고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바로 옆으로는 의자에 앉아 왼손으로는 책을 펴든 채 오른팔을 펴고 앞에 있는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고자 하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그 앞으로는 붉은 바탕에 하얀 선을 그어 만든 트랙이 펼쳐져 있다. 얼마 전 일이다. 몸이 기억 자 같이 굽은 할머니가 힘겹게 걷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가다 앉아 쉬고 또 걸어가고- 하는 모습을 한동안 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 무슨 일이 …’ 하면서 기다려졌다. 건강도 경쟁인가. 탤런트 같은 의사들이 TV 화면에서 의술의 신같이 몇 마디씩 들려주고 나면 많은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건강관리에 새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은 뉴스가 되고 유행이 되어 신바람(風)을 일으켰다. 운동장을 보고 운동을 하다 보면, 반백년 전 초등학교 운동회 때, 만국기 펄럭이던 때의 기억이 소환된다. 청군 백군의 나눔 그리고 목소리가 찢어지도록 외치던 응원! 중고등학교 때의 축구 배구 탁구 그리고 경제개발이 이루어지고서 야구 테니스 수영 골프 등 먹고살만해지면서 운동 경기 종목도 하루가 다르게 값 비싼 경제세계로 변신 하고 손에 쥐는 기구의 값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인격의 가치를 달리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싫증이 났는지 나이 따라 몸속 기능이 옛 같지 않은지, 의사 말씀 따라 맨발 걷기가 시작되었다. 도시 근처의 산에는 맨발로 걷기 위한 길이 생기고 길 위엔 황토 흙을 깔았다. 그런가 하면 야자수 나무 잎으로 만든 카펫이 산길 위로 펼쳐지기도 했다. 마침내 화장 짙게 한 사모님과 이웃 분들로 인해, 인조 화장품의 향이 자연의 숲 내음과 꽃향기보다 압도적인가 싶었다. 자연스럽게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외면하게 되고 다른 길을 걸었다. 산은 조상과 나이 든 세대에게는 신(神)의 영역 같이 신비스러웠고 두려워했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불교도들은 깊은 산을 찾아들어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도를 닦는 곳이 되었다. 신춘문예를 꿈꾸던 예비 작가도, 고시공부를 하던 젊은이도 산에서 공부하면서 그곳을 도장(道場)이라 하고,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량이라고 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맨발이든 군화든 자전거든 산을 산답게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나무와 한 포기의 풀과 벌레까지도 생명이요 그 숫한 생명으로 인하여 자연이라고 했을 것이다. 건강도 남보다 내가 더 건강해야 하고 누구에게 뒤지기 싫어 오늘도 경쟁하고 질투하듯 걷는다는 데 무슨 말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몸이 죽고 죽어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 청청하리라.”라고 읊었던 성삼문 선생이 지금의 ‘맨발의 산꾼’ 들을 본다면 어떤 표정일까…
닥터 헬기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의 환자를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송시켜 치료를 받게 함으로써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인천시는 전국 최초로 2011년부터 닥터헬기 운항을 시작, 의료진과 함께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 도서지역과 의료취약지에 출동해 위급한 처지에 놓인 생명을 구했다. 닥터헬기 도입 이후 14년간 총 1593회 출동, 1608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 가운데 400여명은 중증외상 환자였고 280여 명은 뇌졸중 환자였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위급한 상황이었다. 경기도도 당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 원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와 손을 맞잡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닥터헬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매년 수백 명의 중증외상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임에도 인천 닥터헬기는 계류장도 마련하지 못해 떠돌아다니는 신세였다. 인천시청 운동장, 문학야구장, 소방서 주차장, 김포공항, 부평구 항공부대 등을 임시 계류장으로 사용해왔다. 격납고도 없어 기상이 악화될 때마다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023년 12월 인천시의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 신축용 토지 매입과 건물 건축 계획을 심의·의결함으로써 인천 닥터헬기의 전용 계류장 조성 사업이 본궤도로 들어섰다. 인천시는 남동구 고잔동 월례근린공원에 내년 말까지 계류장과 격납고, 사무실을 준공할 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남동구 월례공원과 약 450m 떨어져있는 연수구 연수2동 아파트 밀집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연수구의회도 사업초기부터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인 월례공원 닥터헬기 계류장 설치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환경적 문제도 제기됐다. 월례근린공원과 약 100m 떨어진 곳에 승기천이 있고, 승기천 하구 남동유수지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서식지다. 검은머리갈매기·도요새·노랑부리백로 등 60종 철새들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승기천은 저어새 등 조류들의 주요 이동경로다. 이에 인천시는 닥터헬기 이동경로를 변경하는 등의 조류 피해 저감 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닥터헬기 계류장 설치사업 내용이 담긴 ‘공유재산 매각 및 연구시설물 축조 동의안’이 지난달 남동구의회 총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일자 인천판 1면, '인천 정치권, 닥터헬기 계류장 기싸움’) 시가 주민 소통이나 조정 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남동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국민의힘 인천시당 간의 갈등과 함께 연수구의회와 인천시의회도 이 논란에 가세했다. 이로 인해 닥터헬기 계류장 설치사업은 실시설계 용역 과정에 멈춰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0일 인천광역시의회 한민수 의원(국․남동구5)은 인천시의회 제302회 정례회 제5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계류장 설치를 촉구하며, 이 사업이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해 공감을 얻고 있다. 한 의원은 “인천은 생명을 지켜줄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 하나를 갖지 못하고 또다시 멈춰 섰다”고 지적한 뒤 “인천시가 73억 원을 들여 남동구 월례공원에 설치하려는 닥터헬기 전용 계류장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 시설”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을 살리는 소리”라고 강조했다. “실효성 있는 소음 대책이 이미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대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은 더 이상 ‘민원’이 아닌 ‘지역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의원의 주장처럼 닥터헬기 계류장은 ‘시민들의 생명선을 지탱하는 공공안전 인프라’이다. “단 한 명의 생명도 정치의 변수로 취급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닥터헬기 계류장은 결코 정쟁의 대상이 아닌 시민의 생명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한 의원의 말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