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사회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국내 정치권은 끝없는 진영싸움에 빠져 있고,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으며, 언론은 진실보다 이익을 좇는다.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국민은 분노와 불신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해외로는 대미 관세 분쟁, 북한과의 불안한 신뢰, 한국 기술자의 해외 구금 사건 등이 이어진다. 이 모든 난제의 밑바탕에는 ‘진실의 부재’가 있다. 거짓과 왜곡이 자리할 때 사회는 분열되고, 국가는 갈등에 휘말린다. 그 해답은 이미 100년 전 도산 안창호가 외쳤던 ‘무실역행(務實力行)’, “참을 힘써 실천하라”는 가르침 속에 있다. 도산이 말한 ‘무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거짓 없는 진실, 말과 행동이 하나 되는 성실, 삶 속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행동 철학이다. 그는 “진실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실천하지 않을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거짓말, 허황된 약속, 무책임한 행동이 민족을 병들게 한다는 경고였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불신과 갈등의 뿌리 역시 이 ‘무실정신’을 버린 데 있다. 오늘 한국은 문화·기술·경제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성취 뒤에는 ‘진정성 상실’이라는 그림자가 짙다. 겉만 번듯하고 속은 텅 빈 사회, 말뿐인 정치, 신뢰를 잃은 기업, 구호만 남은 교육, 위선에 물든 종교. 진실이 빠진 발전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진실’에서 시작된다. 도산은 ‘진실’과 ‘신뢰’를 민족 번영의 기초로 삼았다. 거짓 없는 마음이 개인의 인격(Personality)을 세우고, 그것이 모여 민족의 도덕을 이룬다고 믿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신뢰받기 위해서도, 내부의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다시 ‘무실역행’의 길을 걸어야 한다. 거짓보다 진실을, 편법보다 성실을,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사회로 바뀔 때 진정한 개혁은 시작된다. ‘무실역행’은 개인 수양(修養)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는 사회철학이다. 이제 우리는 거짓이 만연한 정치, 신뢰를 잃은 경제, 말뿐인 교육, 위선 가득한 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모든 위기의 공통된 해법은 ‘참을 향한 실천’이다. 말보다 행동, 약속보다 실행, 체면보다 양심이 앞설 때 한국사회는 도약할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에 가장 절실한 존재는 ‘정직한 사람’이다. 거짓으로 이익을 취하는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무실역행’은 과거의 교훈이 아니라 오늘의 혁명이다. 진실을 말하고 참을 실천하는 한 사람이 사회를 바꾸고, 그 작은 실천이 국가의 운명을 바꾼다. 도산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한국사회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실역행’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실’ 위에 세워진 ‘신뢰’만이 사회를 개혁하고 국가를 발전시킨다. 결국 한국사회를 지탱할 마지막 키워드이자 우리가 당장 실천해야 할 유일한 혁신의 길은 바로 이 ‘무실역행’이다.
최근 학교 현장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특정 앱을 사용하면 AI가 학생의 학습 수준을 분석하고, 부족한 부분의 맞춤형 문제를 제시한다. 교사는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의 약점을 파악하고,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제시한다. AI가 만들어주는 학습 보고서는 정교하고, 학생 별 진단은 섬세하다. 예전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일이 이제 몇 초 만에 가능해졌다. 교사로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감탄의 순간은 길지 않고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지? 교실에서 학습 관리와 평가, 피드백을 AI가 대신한다면, 교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기술의 도움은 분명 편리하지만, 편리함이 교사의 존재 이유를 희미하게 만들 때가 있다. 척척박사인 AI를 보고 있으면, 교사가 AI로 대체될 확률이 낮은 직업에 속하는 게 맞을까 싶다. 완벽해 보이는 AI는 뭘 못 할까.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 입력된 정보와 패턴 안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낸다. 교실은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 그 이유는 수십 가지일 수 있다.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친구 관계의 갈등이나 가정의 어려움, 자신감 부족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AI는 그 맥락을 모른다. 아이의 눈빛, 표정, 한숨 속에 담긴 사연을 읽어내는 일은 오직 교사만이 할 수 있다. 또, AI는 정답을 잘 찾지만, 함께의 가치를 가르치지는 못한다. 학생이 친구와 다투었을 때, 누가 잘못했는가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이끌어주는 건 교사의 몫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알고리즘은 현실 세계의 도덕을 행동으로 가르칠 수 없고, 공감하는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 무엇보다 AI는 실수하지 않는다. 반대로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 다시 해보겠다는 결심, 용서를 구하는 마음은 인간만의 성장 방식이다. AI가 빠르게 정답을 알려주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 겪을 시행착오를 잃는다. 교육의 본질은 완벽한 정답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실수를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에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은 점차 기술에게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로 보인다. 하지만 교사는 여전히 사람됨을 가르칠 수 있다. AI는 학생의 학습 능력을 측정하지만, 교사는 그 아이가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본다. 교사는 성적이 아니라 마음을 기록하고, 점수가 아닌 가능성을 본다. AI가 할 수 없는 일, 그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다. 아이의 말 속에 숨은 두려움을 읽고, 실패를 감싸주며, 함께 웃는 일. 이 일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교육은 결국 사람의 온기로 완성된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느리게 자란다. 교실이 느린 성장을 품을 수 있다면, AI 시대에도 교육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다만, 사람됨을 만드는 교사의 역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난달 17일 오전 이천시 한 물류센터에서 60대 노동자가 지게차와 충돌해 사망했다. 같은 날 오후에도 부산시의 신축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던 펌프카 압송관(붐대)이 60대 노동자 머리를 때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루 전 인천시 금속 제조 공장에서도 40대 캄보디아 국적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국은 이들 사고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을 적용, 수사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안전 관리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기업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처음엔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건설 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인 사업장에 우선 적용됐다가 지난해 1월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일괄 적용됐다. 그럼에도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사고사망자는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2024년 589명이었다. 약간 감소하는 추세라지만 아직도 산업현장의 안전문제는 후진국 수준이다. 17일 국회 환노위 소속 이학영(군포시·민주)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산업재해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건설사는 현대건설(17명)이었고 롯데건설(14명), 대우건설(13명)이 뒤를 이었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DL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의 산재 사망자도 적지 않았다. 포스코이앤씨의 경우 올해 들어서만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건설현장 붕괴 사망 사고, 경남 함양~울산 고속도로 건설현장 기계 끼임 사고 등 5건 사고가 발생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8일자 5면 ‘정부·국회, 중대재해 반복 기업 제재…대형사 CEO 줄소환 전망’) 이에 이재명 정부는 중대재해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전 부처가 힘을 모아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최근 3년간 두 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설사가 또다시 중대재해를 일으킬 경우, 아예 등록 말소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법인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 또는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도 부과한다. 중대재해 반복 발생 시 영업정지 요청을 할 수 있는 업종은 지금까지 건설업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기, 정보통신, 소방시설공사업까지 포함된다. 제재 강도가 높아졌고 업종범위도 넓힌 것이다. 고용부는 전기공사업법, 정보통신공사업법, 소방시설공사업법 등 소관법과 산업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해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안전 예방을 촉진하는 제재 수단 도입 ▲안전 주체로서 노사의 역할·책무 확립 ▲노동안전 확산을 위한 인프라 확대 ▲안전 사각지대 예방 지원 강화 등이다. 특히 안전 예방을 촉진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도입된다. 영업정지 요청 기준도 바꾸고 사망자 수에 따른 영업정지 기간도 한층 강화시킨다. 아울러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부 장관의 ‘긴급 작업중지 명령제도’도 신설하고, 유해위험 기계 등에 대한 시정조치 명령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건설 공사 기간 연장 사유에 폭염 등 기상재해 등을 추가하는 등 노사 역할·구조적 취약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들어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규모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재정·인력·기술 등을 종합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2조723억 원을 투입, 1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품목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산재왕국이라는 오래된 오명을 벗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엄벌 위주의 정책이 산재 발생을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는 만큼 산업계 의견도 충분히 반영하기 바란다.
이어령 선생이 지병으로 타계한 지 벌써 3년 7개월이 지났다. 향년 88세.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필자는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면서 선생을 처음 만났고, 선생의 문학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썼으며,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는 선생을 고문으로 모셨다. 선생과의 만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3년 4월 '문학수첩' 편집위원으로서 ‘대중문화 인물탐방’ 시리즈 첫 순서로 선생과 함께 한 장장 3시간의 대담이었다. 많은 이들이 선생에 대해 ‘세태를 앞서 읽는 눈과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선언’이 전매특허라고 말한다. 1960년대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출발한 선생의 시대 선언 장정(長征)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역설하면서 서막을 열었다. 1970년대의 ‘신바람 문화’는 군사독재 시대에 민족의 열정을 깨우는 목소리로, 1980년대의 ‘벽을 넘어서’는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초대형 국가 이벤트를 이끌며 지구촌의 화합을, 그리고 1990년대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IT강국을 기반으로 한국이 글로벌 정보화 사회의 리더가 되는 길을 제시했다. 2000년대의 ‘디지로그 선언’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명 융합을 주창한 새로운 시각이었고, 2010년대에 이르러 ‘생명자본주의의 주창’은 한국과 세계를 아울러 문명 인식의 새로운 전환점을 열어 보이는 회심작이었다. 일찍이 세익스피어는 백만인의 성격을 지녔다는 수사(修辭)가 있었지만, 선생은 그야말로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누군가가 재미 삼아 세어보니, 그 직함이 무려 십수 개였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대학 교수, 신문 칼럼니스트, 문화부 장관, 문명비평가, 에세이스트, 시인…. 어느 호칭을 사용해 그를 불러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저술은 무려 200권을 넘었다. 그런데 그 저술들이 그냥 책이 아니다. 그의 책들은 그때마다 살아있는 시대의 화두(話頭)가 되었다. 천재성의 필자, 비범한 상상력의 소유자, 겹시각의 황제 등 현란한 수식어들이 그다지 무리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닫혀있는 인식과 세계관의 창을 활짝 열어주는 선각자였다. 기존 문학의 우상을 파괴하고 창의적 시각의 새 길을 열자고 주창했던 그는, 어느결에 그 자신이 하나의 새로운 우상이 되었다. 그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백철·조연현·서정주·김동리 등은 이미 세상에 있지 않지만, 그 또한 후세의 사필(史筆)을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옛 세대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 세대의 그것은 아직 세워지지 못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더 빛난다. 이 양자를 함께 바라보며 우리가 선 지점의 좌표를 깨우치고,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인도하도록 예정된 예인 등대의 불빛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 누가 있어, 이 겨레의 정체성이 어떠하며 왜 어떤 각오로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할지를, 그와 같이 드러내 보일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이어령이다. 1970년대 책 읽는 젊은 대학생들의 가방 속에 꼭 한 권씩 들어 있던 책이 이어령의 에세이였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군 병사들의 배낭 속에 꼭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숨어 있었듯이.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이나 ‘아들이여 이 산하를’과 같은 제목, 그리고 ‘저 물레에서 운명의 실이’ 등의 레토릭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어쩌면 지성미 충일한 아고라 광장에 갓 들어선 희랍의 젊은이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에세이들의 결정판이 곧 한국인의 풍토(風土)를 다룬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강과 바다가 수백 개 산골 물줄기의 복종을 받는 이유는, 항상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뒤에 있ᅌᅳᆯ 지라도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며 그들보다 앞에 있ᅌᅳᆯ지라도 그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은, 한 시대의 천재였던 선생을 거울로 하여 오래 되새겨야 할 경계의 말이다. 필자는 선생이 가고 없는 이 허전한 산하, 이 쓸쓸한 문화비평의 마당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아직 생각을 가다듬을 수 없다. 분명한 해답은 그동안 선생이 남겨놓은 언술 속에 충분히 잠복해 있을 것이다.
“일만 명의 병졸을 얻기 쉬워도 한 명의 장수를 구하긴 어렵다.” ‘맹자’의 말이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해도 외로이 비추는 달 하나만 못하고, 높은 탑에 층층이 불을 밝힌다 해도 어두운 곳에 등불 하나 건 만큼 밝지 못한 바와 같다고 하겠다. 민선 8기 ‘동네 일꾼’으로 위상 확보 지방분권 시대다. 지방시대를 이끌어가는 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지역정치를 책임지는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크고 무겁다. 1991년 지방의회·1995년 단체장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도래했다. 민선 지방자치 30년이다. 우리 지방자치는 다수단체장들의 위민행정 실천과 함께 지방의원들이 입법 활동·예산 심의·행정사무 감사 등에 힘써 ‘동네 일꾼’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예컨대 민선 8기 지방자치를 책임지고 있는 시·도 지사와 교육감, 시·군·구청장, 각급 지방의원 등은 풀뿌리민주주의를 현장에서 성실하게 착근시키고 있다. 3년 전 주민이 제대로 된 인물을 선택한 곳은 해당 지역의 발전을 가져왔다.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고 생활환경이 쾌적해졌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체장이 독직(瀆職) 사건으로 구속되거나, 재산이 몇 년 전보다 껑충 뛰어 의혹 보도가 나오는 등 물의를 빚는 곳도 있다. 일부 단체장은 캠프 출신 위주 인사 및 지역 토호 배려 공사 배정을 버젓이 하고 있다. 일부 단체장 친인척과 측근 공무원들의 부패상은 내밀화·지능화되고 있다. 지방의회는 또 어떠한가. 지방의원들도 단체장과 한통속이 돼 놀다 보니 주민들의 분노는 커지고 인내심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 지자체에선 “내년 지방선거 때 보자”며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의장단 나눠먹기 자리다툼·거짓말·도박·부패 비리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이 끊이지 않는다.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연수 기간 추태’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주민을 위해 집행부를 상대로 정책과 예산 등을 꼼꼼히 세우고 감시해야 할 지방의원이 오히려 주민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방의원들의 책무 방기요 본말전도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목민심서’에는 지방 관청 관리들의 부패상을 고발하고 있다. “백성은 토지로 논밭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으로 논밭을 삼는다”고 할 정도로 개탄했다. 200여년 시대를 뛰어넘어 청백리를 그리워하는 민초의 마음은 한결같다. 일부는 부패비리 연루 선공후사 요청 바른 정치란 무엇인가. ‘논어’는 '백성들이 모여들도록 하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가르치고 있다. 백성들은 민심 소재를 아는 이에게 찾아오게 돼 있다는 뜻이다. 초나라 대부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어떤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이 기뻐해 따르고, 먼 곳에 사는 이들이 그 덕을 흠모해 모여들도록 하는 것입니다(近者說 遠者來).” 그렇다. 선출직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주민을 위한·주민에 의한·주민을 위한 행정을 펴야 한다는 본령을 되새길 때다. 21세기형 지방자치는 지역사회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능동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과 같이 정보가 개방적으로 소통되는 시대에는 더욱더 주민 다수의 여론을 존중해야 한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잖은가. 선공후사(先公後私)적 실천의지가 요청된다. 그래서 우리 시·도, 우리 시·군·구에 사람들이 이사 오는 행렬이 줄 잇기를 기대한다.
중국 단체관광객들의 무비자 입국이 예고대로 지난 29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변화된 정책에 대한 기대와 국민적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국내 체류 중국인은 1백만 명에 육박하면서 중국이 외국인 국적 중 단연 최다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인 범죄 발생률이 내국인보다 높지는 않지만, 군사시설 불법 촬영·강력범죄 등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참이다. 몰려오는 유커(遊客)들을 상업적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법체류 증가, 강력범죄 발생 등 부작용에 대한 관리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2020년 235만 명에서 2024년 550만 명으로 한 해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한국 방문 외국인 중 66%가 인천국제공항,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다. 인천을 통해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25년 상반기 전년 대비 23% 늘어나며 증가세가 뚜렷하다. 국내 체류 외국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중국인 범죄자 수 역시 단연 1위다. 2024년 기준, 중국인 범죄자는 1만6097명으로 전체 외국인 범죄자의 52.2%를 차지한다. 다만 범죄율(체류 인구 대비 범죄자 비율)은 1.68%로, 한국인(2.4% 내외)과 러시아인(2.0%)보다 낮다. 그러나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추행) 피의자 수는 1만 명당 0.03%로, 주요 국적 중 중간 수준이다. 지난 5월 중국 국적의 중국동포 차철남이 시흥시 정왕동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동포 형제 2명을 살해하고, 이틀 뒤 자기집 인근 편의점주와 자기집 건물주 2명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등 4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은 끔찍한 기억이다. 같은 달 중국동포가 화성시 동탄호수공원 내 수변 상가의 주점 데크에서 술을 마시던 20대 남녀 5명에게 흉기를 들고 돌진하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또 화성시 병점동의 음식점에서 50대 중국동포가 길거리에서 허공에 대고 흉기를 휘두르다가 경찰에 검거되는 일도 있었다. 중국인과 대만인이 공군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해 경찰에 붙잡힌 일도 개운찮은 사건이다. 지난 3월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 주둔한 수원 공군기지 부근에서는 중국 국적의 10대 2명이 이·착륙 중인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하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4월에도 미군 군사시설인 오산 공군기지(K-55) 부근에서 같은 중국인 2명이 여러 차례 무단으로 사진 촬영을 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대만인 2명이 오산 공군기지에서 열린 ‘2025 오산 에어쇼’에 내국인들 틈에 끼어 잠입해 미군기지 내부 시설과 장비를 불법 촬영했다가 경찰에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경제적 효과는 놀라운 수준이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항 면세점 매출은 2022년 6007억원에서 2024년 2조1459억원으로 3.5배 이상 급증했다. 매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1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면세점 이용객 수 역시 2020년 320만 명에서 2024년 1333만 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중국 단체관광객 무사증 입국은 내년 6월 말까지다. 이 기간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 황금연휴(10월 1~7일)와 맞물려 있어서, 대규모 유커 유입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 허점이 하나도 없는 무결한 정책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허점을 보완할 대책이 주도면밀하게 마련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개별 범죄 사건이 무분별한 혐중 정서나 외국인 혐오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면서도, 관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들이 활발히 논의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외국인 범죄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는 만큼 면밀한 현황 분석과 범죄율을 줄이기 위한 대안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 대안정책에 차질 없이 반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요즘 그리운 사람이 생겼다. 살면서 난감한 지경에 처했을 때 찰진 욕설로 우리의 맘을 속 시원히 뚫어주던 욕쟁이 할매 고 김수미 배우다. 그녀가 감정을 끓어 올려 구수한 욕을 한마디 뱉으면 울컥하던 속이 가라앉고 그 억센 목소리에서는 시원한 감정의 해소를 넘어 묘한 따뜻함과 위안을 얻었으며 독설 같지만 위선 없는 솔직한 그 말들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고 김수미 배우의 ‘맛깔난 욕’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그렇다면 욕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아마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했을 것이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상하관계를 무너뜨리는 욕이 옛날부터 엄격히 통제 되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신을 모욕하는 욕이 금기시 되었다. 오늘날 세상은 스마트하게 발전해 가며 우리에게 더욱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와 점잖은 척 하는 매너를 요구하고 우리는 대부분은 그럴싸한 언어로 포장된 일상을 보낸다. 욕은 감정을 억제하고만 살 수 없는 인간에게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저마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순간을 산다. 친구의 배신, 부당한 대우, 억울한 누명,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골목에서 인간은 울거나 욕이라도 해야 할 때 욕도 못하면 우울은 속으로 스며들고 분노는 안으로 굽어 결국 병이 되는 것이다. 심리학과 신경학의 많은 연구는 금지된 말을 할 때 엔돌핀이 분비되어 삶의 애환에 대한 인간의 내성을 키우는 순기능이 있고, 위기 상황에서 생존 본능을 촉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욕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어 감정을 조절하는 심리적 진정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욕은 깊은 역사적, 사회적 뿌리를 두고 있다. 욕은 우리가 처한 역사와 사회상에 따라 개인적 사건뿐만 아니라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는데 사용되었다. 때론 이러한 욕설이 모이고 또 모여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며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욕을 일상화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써 욕은 해악이다. 하지만 참기 어려운 순간 자신을 위해 내뱉는 정직한 분노의 언어까지 통제돼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욕하는 순간은 감정이 언어의 외피를 찢고 튀어나올 때다. 정제된 언어론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감정, 억눌린 현실에 대한 강하고 솔직한 반격, 욕은 아마도 가장 진솔한 언어이며 감정의 생존본능일 것이다. 욕은 유행을 탄다. ‘오지네’, ‘개쩐다’, ‘지렸다’ 과거엔 욕을 무례하고 거칠며 저속하다 여겼지만 지금은 그 말들이 세련된 감탄사로 변해 간다. 비록 모두에게 환영받는 일상의 언어는 아니지만. 우리말에는 ‘비어’, ‘속어’, ‘욕설’이 많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비어와 속어가 각각 1000여 개 이상이며, 욕설 또한 사전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비어, 속어, 욕설을 보유한 민족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표현들은 우리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과 풍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일상을 묵묵히 버티며 살아내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두려워 말고 욕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욕을 참느라 목에 멍들고 마음에 병드는 삶보다는 가끔 xx 한마디 던지고 털고 일어서는 사회가 더 건강하지 않을까? 욕설이 왜 나오는지, 어디서 오는 감정인지 이해하고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수용하는 사회가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은 ‘청년의 날’이다. 2020년 2월 제정된 '청년기본법'에 근거해 “청년발전 및 청년지원을 도모하고 청년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날”로,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았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청년과 시민이 함께한다. 올해도 청년의 날에 참여하며 자연스레 청년 정책의 의미와 방향을 돌아보게 되었다. 청년 정책은 중앙정부의 '청년기본법'과 지자체의 '청년기본조례'에 근거해, 청년이 겪는 문제 해결을 위한 다섯 가지 영역―일자리, 주거, 교육, 복지·문화, 참여·권리―으로 구성된다. 청년 정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당사자 참여’라 할 수 있다. 청년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반복되는 이직, 세입자로서 마주하는 불평등한 임대차 관행, 곳곳에 남아 있는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등-를 겪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며 새로운 제도를 제안하고 변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진로 탐색과 준비에 집중할 시간을 보장한 ‘청년수당’, 기존 주거급여의 공백을 메운 ‘청년월세지원사업’은 그러한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청년 참여로 만들어진 정책들이 제도화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지도 6년이다. 청년 정책의 종류가 늘고 예산도 확대된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그에 비해 청년 참여의 폭이 넓어졌는지는 되돌아보게 된다. 청년 참여가 ‘청년 정책’이라고 규정된 다섯 가지 정책 영역에 국한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해서다. 본질적인 청년 참여의 의미, 즉 사회문제 설정과 해결 과정에 미래 세대의 관점을 반영하는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청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청년 정책’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인공지능과 같은 미래 기술,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 부동산을 둘러싼 자산 격차 등 구조적 문제들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오래 이 사회를 살아갈 미래 세대의 관점을 정책 전반에 반영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청년 참여가 ‘청년 정책’에만 국한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청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기 쉬운 이주민, 장애인, 저소득 가구 등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물론 이미 고착화된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 또한 견고하게 자리 잡아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의 속도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바로 그 변화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관점과 새로운 시도가 절실하다. 마침 올해 청년의 날을 계기로 정부는 '국민주권 정부 청년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청년 정책의 큰 틀을 내놓았다. 교육, 출생, 일자리, 국민연금 등 국가의 주요 의제에 청년의 당사자성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인데, 앞으로 청년과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이 멈춰 서는 사상 초유의 대란 사태가 벌어졌다. 그동안 수없이 자랑해온 ‘정보기술(IT) 강국’ 운운이 이번 화재 사고를 계기로 온 세계에 완전한 헛소리로 비치게 됐다. 단 한 번의 화재로 무너진 정보 안전 대참사를 놓고 정치권은 철부지 ‘네 탓 공방’의 늪에 빠졌고, 당국은 또 한심한 예산 부족 타령이다. 열일 젖혀놓고 ‘정보 시스템 이중화 장치’ 구축에 들어가야 한다. 더 이상 무슨 변명이 필요한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에 화재가 발생해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이 마비됐다. 대국민 행정 서비스 관련 647개 업무 시스템이 멈추면서 정부 업무 전산망인 ‘온나라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이다. 국민 일상과 밀접한 무인 민원 발급기와 주민등록증 발급, 정부24 등도 일시에 멈춰 섰다. 인터넷 우편 서비스와 우체국 예금·보험은 중단됐고 모바일 신분증 발급이 안 돼 병원·여객터미널에서도 혼란이 빚어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중화 장치와 대체 장비가 없었던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전산망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냉각 장치 등 모든 구성 요소를 이중화해 한쪽이 마비되더라도 즉시 복구가 가능하도록 설계되는 게 원칙이자 상식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센터 간 백업체계는 있지만, 데이터를 돌릴 장비가 없다”며 “예산이 빠듯했다”고 해명했다. 예산 부족으로 관련 장비 여유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화재의 원인이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를 빚은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때와 마찬가지로 리튬이온 배터리였다는 점은 특히나 뼈아픈 대목이다. 데이터센터 화재 발생할 때마다 서버 분산, 실시간 백업체계 구축 등의 대책을 강도 높게 요구하던 정부가 정작 국가 전산망 관리는 엉망으로 하고 있었던 셈이니 참담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유사한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확대 정책을 유지하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ESS는 대부분 열폭주 시 대형화재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높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활용해 전력을 저장한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올해 6월까지 ESS 화재는 55건이 발생했다. 배터리 화재는 2020년 292건에서 2023년 359건, 2024년 상반기 296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29년까지 2.22GW, 2038년까지 23GW 규모의 장주기 ESS를 도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화재 방지, 냉각, 자동 차단 장치 등 안전 설비를 갖추지 않고 용량만 늘리면 같은 위험을 키우는 셈”이라고 경고한다. 국회 행안위 소속 의원들은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피해 복구 상황을 살펴본 뒤 여야가 각각 별도의 현장 브리핑을 통해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화재 원인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전 정부의 부실 대응과 예산 문제 때문’이라고 변명한 반면, 국민의힘은 ‘현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부실’이라고 비판했다. 세상만사를 정쟁거리로 만드는 정치꾼들의 탁월한 능력만 빛나고 있는 셈이다. 2019년과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디지털정부 평가에서 2회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디지털 선도국 명성이 이번 화재로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다. 땜질식 처방으로 비판 여론이나 가라앉힐 궁리에만 빠지는 습성부터 제발 고쳐야 한다. 정보 안전 시스템은 ‘백업’만으로는 어림없다. 사고 즉시 작동하는 핫 스탠바이 체계가 필요하다. 복구 지연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치명적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정보 시스템 이중화 장치’와 ‘대체 장비 확보’에 즉각 나서야 한다. 염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국민 걱정부터 덜어놓고, 그다음에나 지지든지 볶든지 해야 할 거 아닌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는 인간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본성을 말한다. 사회적 관계는 안정감, 소속감, 스트레스 해소를 통해 정신 건강을 높여 준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과의 교류가 없으면 고독해지거나 삶의 즐거움과 의미가 줄어들게 된다. 즉 사람에게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동창회나 동우회 등 한두 개 이상의 각종 모임을 지니고 있다. 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러하다. 특히 마음을 터놓고 진솔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상대가 절실해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불렸던 모씨가 어느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남겨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때 썩 성공적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남들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개인적 삶은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 풍성하지를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존경하고 의례적인 대화를 나눌 사람들은 차고 넘쳤지만, 정작 자신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상대 혹은 실없는 수다를 떨 상대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해 이런저런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성복회’라는 이름을 가진 모임이 3개나 된다는 점이다. 성복회란 이름은 물론 우리가 만나는 장소인 신분당선 성복역에서 따왔다. 사실 성복역은 수지 지역에 새로 들어선 대형 쇼핑몰인 롯데몰과 연결되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름을 붙인 성복회는 ‘성공한 사람, 그리고 복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도 가진다. 우리가 성복회를 결성하기 전, 서울과 경기지역에 거주하는 모임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한 차례씩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다. 이후 각 지역을 비교 분석한 결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여는데 가장 좋은 지역으로 선정되어 낙착된 곳이 바로 우리 동네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살고 있는 용인 수지 지역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사를 오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면 이처럼 성복역 주변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임의 명소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무엇보다도 먹거리가 싸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사실 도농 복합도시인 용인은 오래전부터 향토색 짙은 음식이 다채롭게 존재해 왔다. 또 최근 들어서는 이름난 맛집과 카페들이 우후죽순 들어섬에 따라 이제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음식과 카페의 도시가 되어있다. 특히 성복역 부근 신봉동 일대는 가격대비 맛도 좋고 안락한 분위기를 지닌 소위 가성비가 높은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음식점은 한정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일식과 피자집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곳의 카페들은 직접 커피를 로스팅하거나 빵을 구워 내놓기에 그 맛과 향이 일품이다. 또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야트막한 산기슭에 위치해 운치와 낭만이 넘친다는 점도 인기 있는 비결 중의 하나다. 실제로 고기리로 이어지는 신봉동 산기슭 일대는 음식문화 거리로 지정되어 있다. 3개의 성복회의 일정은 모두 12시경 성복역에서 만나 신봉동 골짜기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근처의 베이커리 카페(bakery café)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물론 성복회가 있는 날이면 내가 차를 가지고 성복역에서 이들을 픽업해 점심 장소와 카페로 이동하는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이는 우리 동네를 기꺼이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아주 작은 서비스에 불과하지만, 느끼게 되는 어떤 기쁨과 뿌듯함은 대단히 크다. 성복회 회원들은 옮겨 간 카페에서 본격적인 수다를 떤다. 이곳은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실내공간 장식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항상 손님들로 꽉 차 있다. 수다의 주제는 다를 나이가 나이인 만큼 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건강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정신없이 실없는 이야기를 꽃피운다 보면 어느덧 오후 서너 시가 되어있다. 그때면 우리는 슬슬 자리를 접고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귀가하도록 다시 성복역으로 모시고 간다. 이렇게 해서 성복회의 하루는 끝이 난다. 다음 성복회가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