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류 외국인 유학생이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명을 넘어섰다. 2024년 4월 기준 대학의 학위과정이나 어학연수 과정에서 수학 중인 유학생은 20만8962명으로, 이는 국내 4년제 대학과 전문대 재학 중인 전체 학생 233만 명의 9%에 해당하는 규모다. 아시아 지역에서 온 유학생들이 전체 유학생의 90.8%를 차지하며, 그 뒤를 유럽(5.1%), 북미(25), 아프리카(1.4%), 남미(0.5%) 등이 잇고 있다. 국적 분포를 살펴보면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34.5%로 가장 많고, 베트남(26.8%), 몽골(5.9%), 우즈베키스탄(5.8%)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부의 본격적인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정책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Study Korea Project)’가 처음 시행되었던 것은 2004년이다. 그보다 앞서 1967년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사업(GKS, Global Korea Scholarship)이 시작되었지만 당시 정책 기조는 지금과 많이 달랐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학생’이라 하면 해외로 나간 한국인 유학생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언어가 담아내는 의미와 내용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교육부는 2023년 8월 16일 제7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고 글로벌 교육 선도국가로 발전해 가기 위해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선언이다. 학령인구 및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지역 소멸, 대학 신입생 감소 등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대학 재정 확충, 뿌리산업 및 조선업 등 산업인력 확충, 첨단 과학기술 분야 우수인재 확보 등을 목적으로 실천 전략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학생 유치정책의 지속적 발전과 추진을 위해서는 심도 있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양적 확대와 질적 관리의 균형에 대한 고민이다. 유학생의 양적 확장을 위해 선택하기 쉬운 입학 조건 완화 정책은 유학생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자칫 학교 교육과정 운영상의 폐해와 교육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추진 과정과 결과에서 예상되는 지표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산업 및 중소기업 인력으로 흡수하여 유학생의 취업과 정주를 지원하겠다는 정책도 이를 도모하기 위한 세부 과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기관 간의 소통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정부-대학-지자체 및 기업 간의 연계 정책과 시행 방안 수립 및 로드맵의 설계와 실천 과정에서 자칫 소통 부재로 인한 사각지대와 불합리한 손실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내국인 학생들과 외국인 유학생들의 협력적·발전적 공생 관계를 위해 필요한 정책적 지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정책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나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 공유 및 상호문화이해교육 등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정부 부처 간에는 물론이고 대학과 기관 내에서도, 정책 입안자와 시행 담당자 및 현장 교육자 등 구성원 간의 충분한 정보 공유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 정책 이해에 기반한 리더의 비전과 섬세한 추진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특히 유학생 유치정책의 경우 한국어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전공자뿐 아니라 대학 구성원의 역량 제고에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탐색이 필요하다. 자본의 논리에 기반한 사회적·경제적 자원으로만 이들을 대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 선택에 대한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고 구성원의 개별적 정체성과 개인서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학생 유치부터 학업-취업-정주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한 정책 설계와 추진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수시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학도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실력보다 커넥션이 중요한 사회의 공고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호구지책을 위해 모대학의 모교수에게 강의를 주실 수 있는지 타진하는 손편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 답신이 와서 나는 그 교수를 만나러 학교 연구실로 찾아갔다. 모교수는 내가 전공한 여론과 여론조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면서 여러 질문을 하셨다. 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론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그 개념에 입각해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한국이 여론조사로 공천을 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여론조사를 공천에 사용한 민주당의 2002년 대선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도 설명 드렸다. 여론조사란 오차범위가 존재하고 그 오차범위 안에 있는 후보들은 우열을 매길 수 없는 것인데 0.01%라도 앞선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룰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한국 사람들 너무 겁이 없다”라는 말까지 드렸다. 그러자 그 교수는 웃으면서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방법이 없어서라고?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 다기 보다 일을 쉽게 신속하게 처리하려다 보니 아무 방법이나 사용하는 것 아니던가? 난 요즘 AI 교과서 채택을 서두르고 있는 정부를 보면서도 너무 용감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무엇이 급해 그토록 서두른단 말인가? 다른 나라들은 AI 교과서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며 여러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는 그런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용감하게 밀어붙이는 인상을 준다. 그 결과 세종시는 채택률이 9.5%, 대구시는 100%라는 보도가 전해진다. AI 교과서 채택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분명 새 기술은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킨다. 하지만 해결해야할 많은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AI를 훈련하고 가르치기 위한 초기 단계의 방법을 잘 모색해야 한다. 윤리적 원칙에 입각해 기술을 사용하고 모든 학습자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AI 교과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 효과성을 따져봐야 한다. 교육 지도자는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여 학생 성과를 분석하고 콘텐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AI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과 전통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하기 위해 사례 연구는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실제 부가가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이러한 도구를 자신의 교육 방식에 잘 통합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혁신을 장려하고 교사들의 디지털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워크숍과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 모두를 교육 변혁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필수이다.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교육적 접근 방식과 디지털 도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인식 캠페인을 실시해야 한다. 부모는 교육 분야에서 AI를 사용하는 데 따른 윤리적 틀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에 대해서도 안심할 필요가 있다. AI 교과서의 성공적인 전환을 보장하려면 이처럼 거쳐야 할 과정들이 많다. 분명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주는 이점이 많지만 폐단도 적지 않다. 양자의 갭을 줄이기 위해서는 AI 교과서 채택을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경기도가 360° 언제나돌봄 정책의 일환인 ‘언제나 어린이집’을 1일부터 5개에서 11개로 확대 운영한다고 밝혔다. 맞벌이 부부에게 유사시 아이를 맡기고 일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절박한 민생이다. 육아에 얽매어 별도의 시간이 필요한 일체의 사회적 활동을 차단한 채 살아야 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언제나 어린이집’은 획기적인 새로운 개념의 보육 복지 사각지대 해소책이다. 망국적 저출산 풍조 해소책과도 직결된 이 정책은 대폭 확대 발전돼야 한다. 경기도가 도입 시행하고 있는 ‘언제나 어린이집’은 평일과 토·일·공휴일 및 주·야간(새벽) 등 연중(24시간) 운영하는 보육시설로, 일시적·긴급상황 발생 시 영유아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긴급돌봄시설이다. 도에 거주하는 영유아(6개월 이상 7세 이하 취학 전)를 둔 부모(보호자)라면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거나 어린이집·유치원을 다니거나 ‘언제나 어린이집’과 거주지역이 달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도는 지난해 6월 1일 부천시(아람 어린이집), 남양주시(시립힐즈파크 어린이집), 김포시(시립금빛하늘 어린이집), 하남시(시립행복모아 어린이집), 이천시(이천시 24시간 아이돌봄센터 ‘아이다봄’) 등 5개 시군 별로 1곳씩 ‘언제나 어린이집’ 운영을 시작했다. 올해는 고양시(고양시립장미 어린이집), 안산시(시립아기별 어린이집), 안양시(신촌 어린이집, 협심 어린이집), 의정부시(민락사랑 어린이집), 포천시(포천 어린이집) 등 6개를 추가해 총 10개 시군·11곳으로 확대 운영한다. 돌봄이 필요한 가정은 이용 당일 오후 3시 전까지 아동 언제나돌봄센터 또는 언제나 어린이집(11개소)으로 전화해 문의·신청하면 된다. 단 야간·새벽 보육은 이용 전일 오후 6시까지 사전 예약해 준비 시간을 배려해야 한다. 혜택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도민들로 한정하는 만큼 보호자(신청인)의 신분증, 영유아와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등본 또는 가족관계증명서(외국인의 경우 외국인등록사실증명서)를 지참해야 한다. 시간당 3000원의 이용료가 부과된다. 경기도는 가장 많은 젊은이가 모여 살고 일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이 나라의 가장 크고 중요한 삶터다. 이 같은 환경은 경기도가 펼치는 정책이 유효하면 곧 중앙정부 정책으로서의 효용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육아에 손발이 묶여 모든 개별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이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한다. 핵가족 시대에 부모 형제나 친척들에게 의지할 방법도 점차 사라지는 상황이다. 꼭 필요할 때의 보육 애로만이라도 원만히 해결된다면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하다면 비용을 써서 해결하겠지만,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대다수 젊은 부부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다. 중앙정부·지방정부 할 것 없이 정부의 으뜸 존재 이유는 국가의 영속성, 국민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제도와 정책을 완비하는 일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경기도가 추구하고 있는 저출산 정책을 비롯한 선도적인 복지 정책들은 대단히 유용하고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어린이집’은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마땅한 대책이 없는 육아 부부에게 천금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엄마 아빠들에게 이 같은 든든한 비상벨이 있다면, 그리고 그 안전성과 수준을 공공기관이 보장하는 시스템이라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장치다. 경기도의 ‘언제나 어린이집’ 정책은 확대돼야 한다. 전국 최대의 자치단체에서 총 10개 시군·11곳 정도라면 아직 시범적인 실시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밀한 성과분석과 보완책 마련을 통해 하루빨리 보편화해야 한다. 경기도가 성공하면 대한민국이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사회가 책임지고 다 길러주고 가르쳐주는 나라로 가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웃고 있는 조카의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얼마 전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찍은 것이었다. 사진을 보며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을 떠올렸다. 학교 건물 벽에는 반과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벽보가 붙어있었다. 우리는 반이 표시된 운동장의 깃발 아래로 모였다. 나란히 줄을 맞추느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몇 걸음씩 우르르 옮기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의 운동장에서, 코를 훌쩍이며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입학식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쓸 줄 아는 글자는 겨우 내 이름뿐이었다. 자음과 모음의 순서도 모르고 쓰는 글씨는, 그림에 가까운 상형문자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따라 읽고, 공책의 네모 칸을 한 글자씩 채우며,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는 ‘받아쓰기경시대회’라는 것을 했고, 나는 백점을 맞았다. 선생님은 상 받을 몇 명의 아이를 호명하며 교탁 앞에 세웠다. 그리고 우리를 한 명씩 돌아가며 업어 주셨다. 이름밖에 쓰지 못했던 나를 보고는 더 기뻐하셨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 우리는 매일, 등 뒤에서 외치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런 당부들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랐다. 선생님은 학교라는 공간을 포함하는 장소였고, 부모를 대신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온전하고, 학교는 안전한 곳이었다. 스쿨 존을 지날 때면, 속도를 더 잘 지키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시속 30킬로의 느린 속도는, 아이를 눈에서 떼어놓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생명이 눈에 들어오는 속도니까.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몇 년 전 인상 깊게 봤던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빨간 정장을 차려입고, 주인공의 졸업식에 찾아간 삼신할미의 등장이었다. 삼신할미는 담임선생님에게 “아가, 더 좋은 선생일 수는 없었니?”라며, 주인공을 구박하던 선생님을 향해 부드러운 훈계를 했다. 우리 모두가 아이를 지켜보는 선생님이자 삼신할미였으면 좋겠다.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조카의 사진 속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따라 웃는다. 우리는 아이의 웃음으로 웃을 수 있는 어른이다. 선생님의 사랑과 지혜가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뼈를, 단단하게 키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커지는 새 학기다. 오후가 되면 창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재잘재잘, 와글와글 아이가 자라는 소리가 회색의 아파트에 빛을 들인다. 이름 세 글자로 시작된 나의 여덟 살은, 선생님이 불러주는 말을 받아쓰며 부화를 시작했다. 어린 제자를 위해 쭈그려 앉아 등을 내밀던 나의 선생님! 그분의 불편하고 아름다웠던 자세를 잊지 못한다. 선생님의 따스했던 넓은 등이, 내게는 커다란 상장이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좋아요’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받침이 틀려도 천천히 쓰고 지우며, 자기 세계를 눈부시게 확장해 나갈 것이다. 올해도 1학년 교실에는 ‘참! 잘했어요’가 푸른 별처럼 반짝이겠다.
생성 인공지능(AI)이 던진 충격은 언론산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크기는 다른 산업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생성 AI는 지식정보 콘텐츠를 정리하고 만드는 데 특화된 기술이다. 뉴스는 지식정보 콘텐츠의 대표격이다. 콘텐츠 생산에서 언론사와 생성 AI 서비스의 경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언론사가 대중을 위한 지식정보 콘텐츠를 생산한다면, 생성 AI 서비스는 개인이 대상이다. 얼마 전까지 생성 AI 서비스의 최대 단점으로 실시간 정보 반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이를 언론사 뉴스와 생성 AI 서비스 콘텐츠의 결정적 차이로 봤다. 지금은 실시간 정보를 반영한 생성 AI 서비스가 적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예의 기술은 언제나처럼 축적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생성 AI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초기, 기자들은 자신의 직업 안정성과 전문직주의에 큰 위협을 느꼈다. 이 기술이 기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생성 AI가 내놓은 일부 결과물이 거짓 정보를 그럴싸하게 창조하거나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판명되면서 대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었다. 대신 많은 사례에서 생성 AI가 저널리즘 품질을 제고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임이 증명되고 있다. 뉴스 생산의 각 과정에서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생성 AI 덕분에 효율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고 있다. 거의 모든 뉴스 생산에서 AI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상당한 의미를 가진 실험이 시작됐다. 현지시각 지난 18일 이탈리아 일간신문 '일 포리오(Il Foglio)'가 세계 최초로 생성 AI를 활용한 기사만 실린 4쪽 분량의 종이신문 '일 포리오 AI'를 발간했다. 여기서 활용된 생성 AI는 챗GPT 프로다. 인터넷에서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해 기사 작성, 헤드라인 생성, 인용문 추가, 요약 작성 등 모든 과정을 담당했다. 기자 20여 명은 AI에 질문하고 AI가 생성한 기사를 검토하는 역할만 했다. AI 신문 발간 첫날 매출은 60% 증가했다. 이 AI 특별판이 한 달 동안 발간될 예정이며, AI 저널리즘의 한계와 가능성을 테스트하게 된다. 기다려지는 실험 결과이긴 하지만, AI가 인간 기자의 창의력과 직관력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언론사와 AI 기업 간 관계는 갈등에서 협력으로 전환되고 있다. 물론 갈등 관계가 완전히 청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뉴스 저작권에 대한 양측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뉴스 저작권을 둘러싼 각종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 저작권을 침해 받았다는 언론사와 공정 이용(fair use) 수준에서 뉴스를 이용했다는 AI 기업이다. 현재 국내외 일부 AI 기업은 특정 언론사에게 뉴스 사용료를 지불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기술 개발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산업 전체가 만족할 만한 묘수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내년 시행을 앞둔 AI 기본법에서도 양측의 입장 차는 크다. 현재 AI를 통해 생성된 콘텐츠의 저작권은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다. 기존 개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저작권법 개정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 포리오 AI'와 같은 언론사의 적극적 AI 활용은 저작권과 관련된 또 다른 이슈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언론사도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를 활용해 기사를 생성할 때 다른 언론사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경우,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원저작자가 분명한 콘텐츠 등을 기반으로 한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언론사는 이러한 경우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만수천은 199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지역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복개됐다. 이로 인해 주차난은 일부 해소됐다고 하지만 녹지공간은 콘크리트로 덮여 사라졌고 도시는 삭막한 풍경으로 변했다. 이에 원도심의 자연환경 복원을 통한 휴식‧녹지 공간 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활기찬 도시 공간 조성을 위해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만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수천 복원사업은 박종효 남동구청장의 1호 공약이자 민선8기 역점사업이다. 박 구청장은 “만수천을 서울 청계천에 버금가는 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천을 복원해 친수공간으로 만들고 주변 환경 개선사업을 마치면 인구가 유입되고 침체한 원도심 상권에도 활력이 되살아난다는 것이 박 구청장의 주장이다. 그런데 박구청장의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수원시의 경우 관선시장 시절인 1991년부터 수원시 중심가의 교통체증 및 주차난을 해소하고 수원천변의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수원천 복개 사업을 추진했다. 매교-지동교 간 780m가 복개됐다. 그러나 공정이 30% 정도 진행되던 1996년, 시민들의 복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문화재와 자연이 이루는 살아 있는 하천으로 복원돼야 한다는 시민들과, 교통문제 해소를 내세워 복개를 주장하는 일부 시민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복개를 반대하던 심재덕 씨가 시장으로 당선된 후인 1996년 5월 시가 복개 공사 철회 결정을 발표했다. 수원시는 고수부지에는 자연초지와 자연석으로 경관을 조성, 주민들에게 친수공간을 제공했으며 수원천은 문화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형 하천으로 되살아났다. 시민과 관광객들의 휴식·정서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다른 지방정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남동구의 계획은 소하천 정비 종합계획 수립 용역을 마무리한 뒤 소하천 지정이 완료되는 대로 실시설계 용역과 복원 공사를 진행해 2030년 사업을 완료한다는 것이다. 사업 구간은 남동구 만수동 909 일원부터 장수천 합류 지점인 만수동 811 일대까지 총 2.4㎞ 구간이다. 지난 2023년 11월엔 사업대상지인 만수1동, 구월4동, 만수5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설명회도 진행했다. 주민들도 만수천 복원을 통한 주거지역 내 휴식‧녹지 공간 조성과 주변 지역 재개발을 비롯한 원도심 활성화, 지역경제 발전 등에 호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걱정도 크다. 복원사업이 진행되면 제2~4공영주차장 250여 면이 사라져 주차난이 심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신문은 주민들의 우려를 전했다.(28일자 인천판 1면, ‘만수천 복원사업 속도…주차장 확보는 여전히 숙제’) “이 동네는 이 주차장 없으면 난리 난다. 여기는 전부 옛날에 지은 빌라라 주차장도 없다. 주차난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놔야 한다”는 70살 상인과, “복원하는 건 찬성이지만, 먼저 주차장을 확보하면 좋겠다. 부모님이 오거나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항상 주차가 불편하다고 얘기 한다”는 30살 주민은 ‘주차공간 확보’를 걱정했다. 구는 주차장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물론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만수천 복원사업이 본격화되면 기존의 주차공간이 사라진다. 이에 구는 제1공영주차장에 271면으로 이뤄진 2단짜리 주차타워를 세울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무산됐다. 사업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 6월 준공을 목표로 지평식 공영주차장 3곳을 조성할 계획이지만 92면 밖에 안 된다. 구는 앞으로 주변 토지를 확보해 건물식 주차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힌다. 예산 확보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인천시가 만수천 복원에 필요한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 만수천 복원은 지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사업이다. 그러므로 꼼꼼하게 추진하되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거의 매일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를 설득하고 있다. 직장에서 업무하는 중에, 집에서 식구들에게도 내 뜻을 말하며 설득하는 상황들에 직면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협상 테이블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최근 뉴스를 보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을 위한 상호관세 결정을 앞둔 상황이어서 우리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관세 폭탄을 막기 위한 막판 ‘설득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의대생 복귀를 위해 대학은 계속 ‘설득작업’을 했지만, 마감시한까지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결국 제적 예정 통보서를 발송하게 되었다. 그러자 제적을 앞둔 의대생들은 입장문을 내고 정부를 향해 의대협과 진심으로 ‘소통’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여야는 오랜 줄다리기 끝에 보험료율(내는 돈)은 현행 9%에서 13%으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41.5%에서 43%로 올려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마무리했는데, 「재정 안정화」와 「보장성 강화」라는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란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나 보다. 이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당장 내년부터 윗세대가 연금을 더 받게 되어 청년층이 오른 보험료를 계속 내게 되었다며 청년층의 반발이 거세어지고 있다. 이처럼 소통과 협상의 과정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 일은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분란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정치는 어떠한가? 어쩌면 정치는 협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을 잡는 것이니 정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막전막후 교섭이 펼쳐질 것이다. 입법 과정도 결국은 조정과 설득의 과정이다. 그런데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광장으로 나가 제각각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샤우팅의 위력을 보이려는 게 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다. 와튼 스쿨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그의 저서 '기브앤테이크'(2013)에 설득하지 않고도 설득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으려하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테이커(Taker)와 상대방을 우선 생각하며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기를 좋아하는 기버(Giver). 두 사람의 설득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 그랜트 교수는 확신에 차서 단정적으로 말하는 테이커들보다 ‘힘을 뺀 의사소통’ 방식으로 말하는 기버들이 명망을 얻는 데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라고 한다. 힘을 뺀 의사소통은 덜 단정적으로 말하고, 상대의 조언에 의지하는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도 하며, 자기 권리는 포기하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힘을 뺀 의사소통 방식이 정말 힘을 얻을까? 그렇게 되기 위한 조건이 있으니, 훌륭한 사람이면서도 겸손히 말하고, 상대를 향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힘을 뺀 의사소통’은 설득의 효과를 크게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사법 이슈로 인한 혼란 속에 우리나라 정치가 새롭게 전환되기를 바라는 많은 시각들이 있다. 우선 위정자부터 목소리를 낮추고 무엇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대도인지를 잠잠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을 위한 따뜻한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 애쓴다면 그 노력은 바로 국민이 알게 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 받음으로써 민주당과 이 대표는 사법리스크로부터 한 숨 돌리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6-2부는 26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이 대표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 1처장을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용도 지역 상향 변경이 국토교통부 협박에 따라 이뤄졌다고 발언한 것’ 모두 허위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아닌 주관적 인식에 대해 허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교유행위를 부인한 발언으로도 해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골프 발언’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패널의 질문에 대한 전체 답변 중 일부”일 뿐, "'김문기와 골프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호주 출장 당시 사진에 대해서는 ‘조작된 사진’으로 규정하며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진은)김문기와 골프를 쳤다는 자료로 제시된 건데, 원본은 해외에서 10명이 한꺼번에 찍은 것이므로 골프 행위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 나와 ”백현동 부지 용도지역 상향 변경은 국토부 요청에 따라 한 것이고, 안 해주면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는 발언 역시 의견 표명에 불과해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국토부로부터 혁신도시법 의무조항에 의해 용도변경을 요구받았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이 대표의 발언은) 국토부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경했다는 것이지 혁신도시법상 의무 조항에 따라 불가피하게 백현동 부지의 용도 변경을 했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봤고, ”용도 변경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는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핵심 내용은 국토부가 법률에 의거해 변경 요청을 했고, 성남시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변경했다는 것"이라며 "(발언의) 일부가 독자성을 가지고 선거인의 판단을 그르칠 만한 발언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중요 부분이 합치되는 경우에는 진실과 차이가 나거나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허위사실로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고 법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공지를 통해 밝힌 검찰의 입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피고인의 발언에 대한 일반 선거인들의 생각과 너무나도 괴리된 경험칙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판부 판단이 ‘위법’하다는 강경 어조까지 쏟아냈지만 법률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판례와 법리를 가지고 다퉈야 하는 검찰이 정치권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일반 선거인들의 생각’, ‘경험칙과 상식’을 거론한 것은 구차해 보인다. 선거법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민주당과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이 대표는 8개 혐의로 기소됐고, 5개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조기대선이 이루어질 경우 현실적으로 대선 전 결론은 어렵겠지만 민주당과 이 대표가 더 겸허해져야 하는 이유다. 당장의 급한 불은 끈 형국이지만 선거법 항소심 무죄에 심취되어 오만해지거나, 편협한 정치로 빠져든다면 사법리스크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정치리스크를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적 리더십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또한 야당 대표의 무더기 기소부터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오늘 날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성찰이 절실하다. 조기대선이 치러질 경우 ‘정치의 사법화’현상을 근절할 수 있는 ‘사법개혁’이 공론화되어야 한다. 정치보다 사법이 우선하는 민주공화국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무죄, 유죄, 무죄. 지난해 말부터 있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형사재판 결과다. 그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국민의힘은 환호를 질렀다. 반면 무죄가 선고되면 어김없이 잘못된 판결이라며 악다구니를 부렸다. 판사 개인에 대한 색깔론 공격도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윤상현 의원은 "좌파 사법 카르텔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걱정스럽고 참담한 마음"이라며 재판부를 공격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의 재판은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대장동·위례동·백현동·성남 FC 재판, 위증교사 항소심, 대북송금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등, 이들 재판이 모두 마무리되려면 앞으로도 최소한 3~4년은 족히 더 걸릴 것이다. 물론 조기 대선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이재명 대표 재판 선고에 따라 들썩거려야 할 듯하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의 재판 결과에 따라 각 정당이 입장을 내고 개별 의원들이 성토하고 모든 언론이 도배하듯 기사를 쏟아내는 현상은 분명 정상은 아닐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이 있으면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면 될 일이지 이렇듯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을 그 누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온 나라가 괴이한 현상에 빠진 데는 검찰과 사법부의 신뢰 상실이 크다. 검찰의 수사를 못 믿으니, 사법부가 무죄를 선고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아니겠는가? 사법부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으니, 유죄든 무죄든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이렇듯 검찰과 사법부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데는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탓이 크다. 일찍이 야당 지도자가 수사기관의 표적이 되어 사냥하듯 탈탈 털린 사례는 없었다. 야당 지도자가 한 주에 4일씩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사례도 없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인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마치 이재명을 죽이는 것이 사명인 양 그와 그의 가족을 수사했다. 수백 건이라는 압수수색영장은 이제 세기도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반면 윤석열과 그의 부인 김건희에 대한 수사에는 한없이 인자했다. 압수수색은커녕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조사한 것이 검찰이 불려 가 조사를 한 것인지 받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소위 콜검 조사였다. 이쯤 되면 검찰을 신뢰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 아니겠는가? 사법부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70여 년 역사 중 단 한 차례 있었던 결정이 내란수괴 윤석열에게 발생했다. 그 결과 윤석열은 모든 국민이 생방송으로 보는 앞에서 군을 동원해 국회를 침탈하고도 개선장군인양 유유히 구치소를 걸어 나왔다.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선고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윤석열은 여전히 대통령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법원이 내란수괴를 풀어주고 대통령직을 유지시키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며 과연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검찰과 사법부의 틈바구니에서 이재명 대표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그렇기에 그의 정치적, 생물학적 생존이 검찰과 사법부 개혁의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옛날에는 대부분 걸어 다녔고, 양반이라도 하인이 끌고 가는 말을 타고 다녔기에 그 속도는 걷는 것과 같았다. 그러면 서울에서 융ˑ건릉까지 최단코스로는 며칠이나 걸렸을까? 하루? 수원에서 서울로 통학이나 통근을 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다. 그러면 이틀? 그것도 힘들 것 같다는 반응이지 않을까? 하루 종일 걸어본 적이 없는 현대인에게 이런 물음 자체가 무리일 것 같다. 그래도 가끔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그 답을 찾아보자. 영조 임금 때 편찬한 전국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55책, 1765)에는 모든 고을의 앞쪽에 서울과 고을 읍치(邑治, 중심지)를 오가는 최단코스 길 위의 거리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충청도의 천안에는 “210리 이틀 반나절 일정(二百十里二日半程)”, 충주에는 “282리 사흘 일정(二百八十二里三日程)”, 제천에는 “330리 나흘 일정(三百三十里四日程)”이다. 요즘과는 많이 다른 거리 개념인데, 이런 수치들은 어떻게 나온 걸까? 원리를 알면 답은 의외로 쉽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90리를 간다고 여겼다. 그래서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90리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1~29리면 버림으로, 30~59리면 반나절로, 60~89리면 반올림하여 하루로 계산했다. 이 계산법을 천안, 충주, 제천에 적용하면 210리는 2일×90리+30리(반나절)로 이틀 반나절, 282리는 3일×90리+12리(버림)로 사흘, 330리는 3일×90리+60리(하루)로 나흘 일정이 된다. 아쉽게도 '여지도서'에는 수원의 지리지가 빠져 있다. 다행히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25책, 1531년)에는 88리로, 규장각 소장 '해동지도(海東地圖)'(8첩, 1720년대)에는 90리로 나온다. 옛사람들이 하루면 걸어가는 거리인데, 이때 수원의 읍치는 정조가 팔달산 아래로 옮기기 전의 옛읍치, 즉 융ˑ건릉 지역에 있었다. 사도세자의 현륭원이 들어선 이후 서울-현륭원의 거리가 100리로 나오는데, 그 이전 최단코스의 길보다 좀 돌아가게 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90리는 지금의 미터법으로 몇 ㎞였을까? 요즘 사람들은 10리를 무의식적으로 4㎞라고 여기지만 일본식 거리 개념이다. 1909년에 일본의 곡척(曲尺) 1척=30.3cm을 채택하여 10리=10×1,296척×0.303m=3,926.88m≒3.93㎞로 계산한 것을 약 4㎞로 본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에서는 주척(周尺) 6척=1보(步), 360보=1리(里)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거리를 측정했다. 현재 남아 있는 주척의 길이는 약 20.62cm로 10리=10×360보×6척×0.2062m=4,453,92m≒4.454㎞이고, 90리=9×4.454㎞≒40.09㎞다. 하루에 40㎞를 걸어간다고? 현대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거리일 것 같다. 필자는 2019년부터 시작하여 2024년까지 여덟 번을 완보한 경복궁-도산서원 구간의 600리 퇴계길 걷기에서 하루에 얼마나 걸어갈 수 있는지 여러 번 실험해본 끝에 나에게 딱 알맞은 거리를 찾아냈다. 점심과 쉬는 시간 포함해서 하루 9시간 30㎞를 기본으로 하여 상황에 따라 ±4㎞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며칠을 연속으로 걸어도 별 무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