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위플래쉬’가 지난 12일 재개봉했다. 한국에서 처음 개봉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3월 17일 기준 누적 관객 수는 31,037명으로, 사나흘 만에 3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빠르게 유행이 바뀌는 시대에 10년이 지난 영화가 다시 흥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위플래쉬’는 왜 여전히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을까. 2015년 개봉 당시 ‘위플래쉬’는 전 세계에서 350억 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하고, 다양한 영화제를 휩쓰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유독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주제가 한국 사회의 교육 문화 및 경쟁 구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뉴욕의 명문 음악학교에 입학한 주인공 앤드류가 최고의 지휘자이자 폭군인 플레처 교수의 밴드에 들어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플레처 교수는 제자들에게 끊임없는 폭언과 학대를 퍼부으며 한계를 시험하고, 앤드류는 점점 더 광기 어린 집착으로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인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위대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이 플레처 교수의 가르침 방식에 대한 찬반 논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2015년 개봉 당시 영화를 본 후 주변 지인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플레처 교수의 교육 방식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권에서는 대부분 그를 명백한 가해자로 보지만, 한국에서는 그의 방식이 비록 과격할지라도 제자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치열한 경쟁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0대 중반이 된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며 학창 시절 치열하게 경쟁했던 나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지금도 비교와 경쟁이 끊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위플래쉬’가 한국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은 단순한 음악 영화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개봉 10주년을 맞아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한국 관객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위대함은 어떻게 쟁취할 수 있는가부터, 과연 위대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던져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위플래쉬는 단순히 성공을 향한 열망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희생하며 성공을 쫓고 있는가?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것은 없는가?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지금, 이 영화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당신은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주말, 영화관에서 위플래쉬를 다시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루고 싶은 것과 포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미래의 성취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뤄도 괜찮을지에 대해. 어쩌면 그 고민 자체가, 우리 각자가 찾아야 할 해답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주40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으로 정함에 따라 주5일제가 정착된지 20년이 되었다. 하지만 초과근로 가능시간인 주12시간을 합치면 주52시간까지 근로할 수 있어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시간 근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022년 근로시간은 연평균 1,719시간이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1,904시간으로 185시간이나 더 많다. OECD 국가보다 한달에 15시간 이상 더 많이 일하는 셈이다. 작업장에서 오래 일하면 소음, 분진, 화학물질과 같은 유해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져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근로시간과 업무관련 건강문제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40시간 이하로 근무하는 경우 40.4%에서 업무관련 건강문제가 나타났는데 41~52시간 근무하는 경우는 48.3%, 53시간이상 근무하는 경우는 55.6%로 업무관련 건강문제 발생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 중에서도 피로, 통증 등의 건강문제가 2.13배이상 높게 나타나 장시간 근로가 피로유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장시간 근로로 인해 신체적 피로가 높아지면, 수면의 질도 저하되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증가하여 산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근로시간이 52시간 이상인 경우 52시간미만인 경우보다 산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2.29배 더 높게 나타난 연구결과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작업시작 후 8시간이 넘으면 실수가 증가하고, 9시간째에 사고율이 높아졌다는 실험연구를 소개한바 있다. 반면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휴식시간이 증가하고, 피로가 감소되어 산재가 발생할 확률이 줄어든다. 김우영과 정혜선(2008)의 연구에 의하면 월평균 근로시간이 2시간 감소하면 산재율이 3.7% 감소하는 결과를 보여 산재 감소를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장시간 근로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산전후휴가를 받은 1,000명의 여성근로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임신 중 근로시간이 주44시간미만인 경우에 비해 52시간이상인 경우 자연유산을 경험할 확률이 2.13배 높았고, 사산을 경험할 확률이 1.70배 높았다. 장시간 근로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 중 특히 심각한 것은 심혈관계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심혈관계질환 위험이 높아지면 이는 곧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주4.5일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선진적인 제도의 시행으로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업무능력이 향상되어 기업의 성과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다. 물리적 시간을 증가시켜 생산량을 높인다는 전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건강보장을 통해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미래지향적인 사업이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낼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소득이 증가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주4일제 시행 등을 통해 근로시간을 감소시키고 여가시간을 늘려 근로자 만족도를 증진시키고 있음을 기억하며, 경기도의 시범사업이 우리나라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이를 통해 논란을 조장해서 돈을 버는 일명 ‘사이버렉카’식 보도와 유튜버의 행위에 대해 법적제재가 필요하다는 국회 국민청원이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연예인의 사고와 불행을 스토킹 수준으로 파헤치고 자극적으로 유튜브에 공개해 괴롭히는 일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이런 행태가 반복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이버렉카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처럼 인지도가 있는 유명인의 사건‧사고를 소재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이슈 유튜버’들을 부르는 신조어다. 이들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린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렉카’(구난차)가 경쟁적으로 현장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게 이슈가 발생하면 빠르게 몰려들어 누리꾼의 관심을 낚아채려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쯤을 생각하면 된다. 이들은 한쪽에서 거짓 찌라시 내용을 그럴듯하게 합성해서 유포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당사자에게 문제가 될 만한 부정적인 의혹을 공론화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기도 한다. 심지어 사생활 문제를 폭로하면서 당사자에게 되레 해명을 요구하거나 사실 여부를 추궁하면서 ‘정의 구현’, ‘참교육’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사적제재를 일종의 놀이처럼 즐긴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알바 코스프레라고 하고, SNS에 설명 없이 사진만 올리면 ‘충격’이네 ‘단독’이네 썸네일에 써서 공개한다. 비방과 혐오의 댓글을 쏟아내게 만들지만 이게 곧 돈이 되는 구조다.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나 규제나 처벌은 미미하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올해의 ‘성평등 걸림돌’에 사이버렉카를 포함했다. 여성연합은 수익 창출을 위해 자극적인 영상을 제작하는 유튜브 사이버렉카가 “여성과 소수자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고, 성폭력 사건과 여성혐오를 산업화하고 성차별 통념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온라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양상이 젠더화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사이버렉카가 여성혐오의 정서를 적극 활용하면서 남녀 갈등 문제를 자극하고 이로 인한 조회수는 물론 댓글 건수의 증가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이버렉카의 콘텐츠와 댓글을 중계하듯 보도하는 언론이 문제의 심각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2024)이 ‘사이버렉카 제작 유명인 정보 콘텐츠 이용 경험 및 인식’을 조사했더니 언론보도가 유명인의 사건‧사고를 접하는 경로로 유튜브(2위)보다 훨씬 우위였다. 사이버렉카의 의혹 제기만 있었을 때보다 언론을 통해 ‘그랬다더라’ 식으로 퍼 나르면 의혹에 대한 확신을 크게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종의 괴롭힘 행위임을 알면서도 커뮤니티와 댓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거나 이런 식의 댓글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 언론이 일종의 착취 카르텔을 완성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사이버렉카에 대한 형사상 처벌 규정은 많지만 대부분 벌금형이고 이 벌금은 조회 수로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해소할 정도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에 사회적 공감이 커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 돈이 된다는 인식을 멈춰야 할 때다.
상품정보 취득을 유튜브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의존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사용 후기 업로드 등 상품을 비교하는 유튜브 영상이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족한 공신력과 잘못된 정보가 소비자를 울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SNS에 도배되는 후기 형태의 무분별한 상품평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유튜브나 SNS에 오르는 왜곡된 정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인플루언서가 업체 제품을 협찬받아 제작하면서도 광고·협찬과는 무관한 객관적 후기인 것처럼 제품을 소개하는 ‘뒷광고’ 영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뒷광고’로 알려진 ‘기만 광고’는 추천인이 광고주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음에도 이 사실을 명확히 표시하지 않고 광고가 아닌 척 광고하는 행위를 뜻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주요 SNS에 올라온 후기 형태 게시물을 점검한 결과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표시광고법상 기만 광고 의심 행위는 모두 2만2011건이 발견됐다. SNS별 뒷광고 적발 건수는 인스타그램이 1만19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네이버 블로그(9423건), 유튜브(1409건) 순이었다. 특히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급성장하는 숏폼 콘텐츠에서의 적발 건수가 3691건으로 급증했다. 적발된 뒷광고 유형으로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부적절한 위치에 표기한 경우(39.4%)가 가장 많았다. 게시물이 협찬·광고로 제작됐다는 사실은 밝혔지만 이를 설명란·더보기란·댓글 등에만 기재한 경우다. 아예 협찬·광고 등 내용을 표시하지 않은 경우도 26.5%에 달했다. 협찬·광고 사실을 흐릿한 이미지나 빠른 음성, 작은 문자 등으로 소비자가 인식하기 어렵게 표시한 경우(17.3%)도 비일비재했다. 제품별로는 화장품 등 보건·위생용품(23.6%)이 가장 많았다. 외식업 등 기타서비스(23.1%), 의류·섬유·신변용품(21.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유튜브는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뉴 미디어로 성장해왔다. 쌍방향 소통 채널이라는 장점에다가 생생한 동영상 때문에 유명 유튜버에 대한 구독자들의 신뢰성은 대단히 높다. 바로 그 신뢰성을 파고드는 상혼(商魂)이 문제다. 경기신문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한 유튜버의 ‘가성비 무선 청소기 제품 찾기’ 영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상은 흡입력, 무게 등 유튜버가 정한 평가 기준에 맞춰 여러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 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문제는 유튜버가 비교한 상품들의 구성품 및 제품 연식에 대한 정보가 배제됐다는 대목이다. 최신형 모델과 출시된 지 5년이 넘은 구형 모델을 비교하는 등의 모순이었다. 해당 영상을 시청한 한 시청자는 영상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으면 같은 연식의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며 소비자 피해는 물론 상품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제품 비교 영상의 경우 유튜버들이 수익성 링크를 통해 이익을 얻는 구조일 텐데, 수익을 위해 정보를 편법적으로 제공하는 행태가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공정거래법은 자사 제품을 홍보할 때 타사 제품과 비교하는 것을 위반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므로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이 수익과 연결된다면 문제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유튜브나 SNS는 극히 개인적인 소통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무제한적으로 파고드는 엄청난 파워를 지닌 매체다. 소비자들이 즉각적으로 정보를 상호 검증하기도 힘든 시스템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순식간에 발휘하는 매개물인 만큼, 이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지불식간에 설득당해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제도적으로 통제할 묘책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클래식의 산책’이란 강의를 듣고자 길을 나섰다. Y마트라는 식료품 판매장 앞을 지나가는데 그 마트에 납품할 식재료를 싣고 온 청년기사가 손수레를 끌고 가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 시국에 휘파람 불며 일한다!’ 갑자기 젊은이의 인상이 좋아 보였다. 계절은 봄이라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휘파람 불며 봄을 맞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에게도 젊은이처럼 휘파람 불며 일할 때가 있었던가! 과거를 생각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시리다. 그동안 긍정의 힘으로 나를 끌고 가고자 노력했다지만 휘파람 불며 신명 나게 일을 해본 기억이 별로다. 그런데 고향에서 부모님이 농사지을 때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이 생각났다. 그때 버들피리를 꺾어 불었고 풀 뜯는 소 등을 타고 아버지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가슴속을 환하게 했다. ‘아버지 쟁기질 하고/ 어머니는 밭둑을 오선지 삼아/ 음표 찢듯 씨앗을 묻고/ 형은 두엄 뿌리고/ 나는 고무래로 흙덮기 하던 땅‘ 이란 시도 그 시절 선물이다. 젊은이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가던 길 가는데, ‘휘파람을 불며 가자 언덕을 넘어/ 송아지가 엄마 찾는 고개를 넘어/ 아가씨 그네 뛰는 정자나무 지나서/ 휘파람을 불며가자 어서야 가자/ 아카시아 꽃잎 향기를 풍기는 언덕을 넘어서 가자. 는 박재홍 가수 “휘파람을 불며”라는 노래가 휘파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듯 했다. 박재홍은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1947년 무렵 개최된 가수 선발대회에서 뽑혀 가수로 데뷔했다. 그리고 1940년 후반부터 1960년까지 가수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젊은이들이 배불리 먹지도 못했고 입지도 못했다. 그러나 인생의 꿈과 낭만은 있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큰 비전은 없었어도 삶의 진실과 첫사랑의 꿈과 자연 속에서의 희망이 있어 서로 손잡고 노래하며 저 산 넘어 고개를 넘어 언덕(희망) 길을 달리고자 하였다. 1950년에서 60년대 지성인들의 필독서는 사상계(思想界)였다. 사상계는 장준하(1918-/975) 선생께서 사재를 털어 1953년 4월 창간한 것. 선생은 창간호 권두언에서 ‘인간은 복잡하고도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며, 개념적 추상적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적이며 적극적인 활동과 반성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적으로는 민주⭑양심세력을 대변했고, 꺾이지 않는 필봉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5.16 쿠데타 이후엔 독재에 맞섰기에 그만큼 장준하 선생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투철했다고 사람들은 우러렀다. 근래 대한민국 백성 분들의 삶이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어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일까. 가는 곳마다 임대주택과 빈 집이 늘고 있다. 청년들은 서울과 큰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누구에게 끌려가듯 떠나고 있다. 농어촌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가는데 폐가와 폐인이 없으란 법 있겠는가. 일본 식민지 통치라는 암흑 속에서 신음하던 조선민족에게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다시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6행의 시를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영어로 불러주었다. 동아일보는 “조선에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켜지는 날에/ 너의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가 조선민족을 위해 써준 이 짧은 시에는 평소 그가 동방(the east)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견해가 따뜻한 등불처럼 반영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방에서 영원한 빛이 다시 빛날 것이다. 동방은 인류 역사의 아침 태양이 태어난 곳이다. 아시아의 가장 동쪽 지평선에 이미 동이 트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예언적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피렌체 태생의 랜도어는 1895년 발표한 기행문 21장에서 ‘조선인은 감정 표현을 잘 안 하고,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민족이며 비범한 지성으로 다정다감한 마음씨를 지녔다.’고 평가하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삶의 질과 문화와 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살펴보라고 마트 앞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던 청년은 은유적으로 암시하며 휘파람을 불었던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은행을 방문했다. 최근에는 창구에서 필요한 은행업무를 보더라도 해당 은행의 앱을 함께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디지털기기에 잘 적응하는 것이 시대적 숙명이다. 하지만 50대인 나도 단말기 화면을 꼼꼼히 읽어가며 업무를 처리하기가 매우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께서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얼마 전 한 노인이 예약 없이 미용실을 방문했다가 연이어 거절당한 사연이 전해졌다. 온라인으로 하는 예약이 어려운 탓이다. 이뿐인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한 키오스크 사용법은 낯설고 어렵다. 비행기나 기차표 발권, 비대면 금융거래, 병원 예약 등 온통 온라인 세상인데 노인들의 경우 앱이나 디지털기기를 이용하기도 어렵고 혹 실수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3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노인 중 전자상거래가 가능한 비율은 12.0%, 금융거래가 가능한 비율은 20.2%, 키오스크 활용이 가능한 비율은 17.9%였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들은 키오스크 활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지난해 서울디지털재단이 공개한 ‘2023년 서울시민 디지털역량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의 키오스크 이용 시 불편을 경험한 이유(중복응답)로는 ‘선택사항을 적용하기 어려워서’ 52.6%, ‘사용 중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 47.6%, ‘키오스크로는 이용할 수 없는 서비스가 있어서’ 40%, ‘사용 중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어서’ 28%, ‘용어가 어려워서’ 28%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키오스크 등 디지털시스템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에게 반드시 이와 관련된 교육이 필요하다. 많은 지역사회에서 관련 교육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상에서 마주하는 노인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설명할 수 있는 직원이나 매장 내 다른 손님의 도움 역시 필요하다. 그래서 크게 2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친절한 설명이다. 사람은 누구나 반복학습, 반복행동을 통해 특정지식이나 행동에 익숙해진다. 키오스크가 어려운 노인에게 직접 시연을 보이며 원하는 바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좋겠다. 말의 속도와 손가락의 움직임이 빠르면 설명의 효과가 줄어들 것이고, 명확한 이해도 어렵다. 할아버지, 할머니란 생각으로 조금 시간을 내어 하나하나 짚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예의가 필요하다. 디지털사회에서 디지털약자인 노인들에게는 우울감이나 소외감, 두려움 등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런 노인들에게 예의를 갖춘 배려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자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50대에 들어서니 나이의 무게를 조금씩 인지하게 된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더 노인에게 친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미 대한민국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주민등록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었다. 어린 알파세대부터 노인세대까지 각 세대가 공존하며 잘 살아가는 방법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니 말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미세먼지 없는 경기도를 위해 기후테크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도는 ‘기후테크 100 추진계획’,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사업’, ‘경기도 기후테크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 등 기후테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 중요한 것은 정책 동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다. 기후테크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고, 전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 운명적인 레이스다. 반드시 이겨야 할 속도전을 경기도가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 지사는 며칠 전 화성시 ㈜우양이엔지를 방문해 기술개발 현황과 적용 사례 등을 점검했다. 최근 미세먼지 농도 증가로 노인, 아동 등 기후 취약계층의 건강 피해 우려가 커짐에 따라 실질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이뤄졌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도는 선제적으로 기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RE100 선언도 했고, 기후테크가 미래먹거리이자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고 “도는 기후테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기후테크 100 추진계획’은 내년까지 기후테크 스타트업 100개사 발굴·육성을 위해 특별보증사업과 탄소중립 펀드를 통한 금융지원 등 기업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또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사업’은 기후테크 초기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해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달 모집에서 1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기도 기후테크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는 지난 12일 전국 최초로 도의회와 함께 제정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밖에도 도는 제6차 미세먼지 계절 관리제 시행과 3월 미세먼지 저감 총력 대응을 통해 평소보다 강화된 배출 저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공공기관 운영 소각시설 정기보수·소각량 조절, 다중이용시설 실내 공기질 집중관리, 스캐닝라이다 등 첨단감시장비 활용 산업단지 감시 강화 등 3개 분야 10개 주요 과제를 추진 중이다. 경기도는 내달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이클레이(ICLEI·세계도시 기후환경총회)에서 기후테크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후테크 전시회를 추진해 사업화 단계까지 이어지도록 할 예정이다. 한편 김동연 지사는 지난달 ‘기후산업에 최소 400조 원 투자’, ‘석탄발전소 전면 폐지’, ‘기후경제부 신설’ 등 기후경제 대전환 3대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대규모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기후변화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후테크 산업은 유럽연합・미국・중국・일본 등이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글로벌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무려 2800여 개에 이르고, VC(벤처 캐피털) 투자액은 156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은 기후변화대응 지수에서 고작 세계 64위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인류가 맞닥트린 심각한 현안이다. 지구촌 어느 국가, 어느 구성원도 피해 가지 못할 변수 앞에서 한국은 여전히 갖가지 사유로 인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경기도가 이 문제에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기후테크는 환경 재앙을 막아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을 구축하는 산업인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전도가 선명한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기후테크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정책 지원, 투자, 국제 협력, 인재 양성 등이 필수적이다. 경기도가 이를 선도하려면 이 모든 것이 넉넉히 뒷받침돼야 한다. 정치적 구호에 그치거나, 정략적인 계산이 개입해 흔들어서는 안 된다. 기후테크가 경기도의 산업경쟁력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은 물론 나아가 국제 시장에서 한국이 또 다른 기회를 창출하는 모멘텀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김동연 지사의 ‘기후테크 육성’ 약속이 지속 가능한 정책 동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동하기를 기원한다.
탄핵 선고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나 헌법재판관들 등 헌법기관을 향한 비방과 중상이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나 헌법재판관들이 중국인이거나 중국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는 헌법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독일 형법의 입법자가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한 동기가 이해가 간다(StGB §188). 나치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공적 기관과 공적 인물들에 대한 “공격”(Der Angriff)을 서슴지 않으면서 무서운 기세로 급성장하는 것을 방치했던 역사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입법은 공적 존재자들에 대한 공격적 표현을 특별히 가중해서 제재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수정헌법 제1조에 대한 해석론은 정반대의 생각을 실현해 왔다. 워렌 코트(Warren Court)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Newyork Times v. Sullivan) 사건 판결을 선고하면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원고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증명되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지는 판결들은 공직자로부터 공적 인물 일반으로 법리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왔다. 이러한 해석은 공적 인물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 공적 인물에 대한 공격을 보호하는 것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법질서는 공적 존재자들을 향한 공격을 가중해서 제재해야 할까 아니면 제재를 감경하고 완화해야 할까? 공적 존재자들은 언론과 다중의 공격에 더욱 노출되어야 할까 아니면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까? 어떤 접근법에 따라 설계된 제도들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보존과 공고화에 더 잘 기여할 수 있을까? 공격 내지는 비판을 받는 상대방이 공적 존재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일률적으로 제재를 더욱 무겁게 하거나 더욱 가볍게 하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그러한 공격 또는 비판의 목적이 "비방의 목적"인지 아니면 "공익적 목적"인지 판단하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 심지어 오해에 기초한 비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한 목적이 헌정질서의 수호였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돕는 비판이 될 수 있다. 그런 경우라고 한다면 헌법기관을 겨냥한 비판적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시민의 자기통치(self-government)의 일부로 보고 허용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공격들은 헌정질서의 개선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파국을 바라는 민주주의의 적들에 의해 순전한 비방의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익적 목적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공격까지도 단지 그것이 공적 존재자들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면책의 특권을 부여해 줄 수 없을 것이다. 헌법기관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격이라면 일반 사인에 대한 공격적 표현보다도 더욱 가혹하게 취급해야 할 수 있다. 명예훼손 사건의 판결들에서 '공익성' 또는 '공익의 목적'이라는 요건은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자는 취지에 따라 완화되기도 했지만, 헌법기관을 향한 원색적 공격과 건설적 비판을 분명히 구분해서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시기에는 결국 목적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동료 시민들을 상대로 헌법기관을 불신해야 한다는 엄청난 주장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똑바로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마저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밭에는 봄이 온다. 봄풀이 돋아난다. 이맘때쯤 농부는 한해 작부 계획을 세운다. 이 밭에는 뭘 심고, 이 밭에는 뭐와 뭐를 같이 심고. 밭에서 자라는 풀들은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서로를 이겨내려는 싸움을 하기도 한다. 풀의 다양한 성질을 잘 알면 아는 만큼 밭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의 농부는 아니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아는 수준이다. 흔히 ‘잡초’라 불리는 풀도 그 성질을 알면 ‘작물’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잡초’가 ‘작물’이 되기도 한다. 같은 풀도 내가 모르고 안 기르면 ‘잡초’고, 내가 알고 기르면 ‘작물’이 되니, 순전히 인간 중심적 작명이다. 그 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약이 되어줄 풀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라고 눙 쳐버리는 인간이 가엽고 멍청하게 보일 것도 같다. 자신의 무지를 반성하지 않고 ‘너희들은 잡것이야’라고 건방 떠는 인간이 방자하게 보일 것도 같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 나는 이름 모르는 풀을 ‘잡초’라 하지 않고, ‘들풀’이라 부른다. 마치 학생 이름을 외우지 못한 교사가 그 학생을 ‘어이, 잡놈’이라 부르지 않고, ‘거기, 학생’이라 부르는 미안함, 조심스러움을 담은 표현이다.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그 존재를 모르는 나의 부끄러움과 그 존재를 알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헌법이라는 밭 위에서 같이 사는 우리들은 어떤가? 마치 ‘잡초’라 부르듯 ‘빨갱이’라, ‘수구꼴통’이라 부르지는 않는가. 마을의 어르신이 어떤 때는 정 많은 어르신이 됐다가도 어떤 때는 수구꼴통이 된다. 마을의 고마운 일꾼이 어떤 때는 빨갱이로 불리기도 한다. 생활공동체에서는 정을 나누는 관계가 스마트폰 속에서는 적대적 관계가 된다. 영어 ‘스마트(smart)’란 단어에 ‘영리한’이라는 뜻 외에 ‘쑤시는 듯한 고통’, ‘감정을 해치다’, ‘뻔뻔스러운’과 같은 뜻도 있음이 기괴한 우연만은 아니리라. 스마트폰은 내게 쑤시는 듯한 고통을 주는, 나의 감정을 해치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접하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농부가 밭에 나는 풀을 내 소중한 ‘작물’에 해를 끼치는 ‘잡초’가 아니라, 내 ‘작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들풀’로 여기는 것처럼, 만약 우리가 나를 화나게 하는 스마트폰 속 국민을 제거할 ‘잡초’가 아니라 함께 할 ‘들풀’로 여긴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무지한 농부가 ‘잡초’를 잡겠다고 무작정 제초제를 뿌리면 그 밭은 죽게 된다. 무도한 대통령 윤석열이 ‘반국가세력’을 잡겠다고 무작정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헌법은 죽게 된다. 작년 12월 3일부터 헌법이라는 밭은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흔히 그런 밭을 쑥대밭이라 한다. 알다시피 쑥은 대표적 ‘잡초’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나물과 떡 등 음식 재료가 되고, 약도 된다. 일단 이 밭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그 밭 위의 ‘들풀’ 같은, 헌법 위의 다양한 국민이 제빛을 내며 함께 살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은 그 밭을 살리는 일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 12일 오전 0시 1분(한국 시간 12일 오후 1시 1분)부터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포고문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그동안 무관세 쿼터제를 적용받아왔던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큰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이번엔 미국 축산업계가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가 불공정 무역이라며 규제를 철폐를 요구했다는 소식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3일자 5면, ‘美 축산업계 “韓, 30개월 이상 소고기도 수입해야”’) 기사에 따르면 미국 전국소고기협회가 “한국의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이 민감한 사안인 것은 이해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미국무역대표부에 제출했다. 한마디로 한국에 30개월 이상 소고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30개월령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처음엔 월령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모두 중단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를 협상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미국 측과 체결한 협정의 내용은 ‘뼈와 내장을 포함한 30개월 이상, 대부분의 특정위험부위를 포함한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0개월 이상 사육된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고기 일부 부위를 먹을 경우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벨트-야콥병(vCJD)’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유모차를 몰고나온 엄마들을 비롯,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넘게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 사태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축산업계가 2008년 한미 합의를 통한 30개월 미만 수입 제한 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중국, 일본, 대만 등도 같은 규제를 철폐했다면서 한국도 그렇게 하라는 압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들여오는 나라다. 지난해 미국의 소고기 수출량은 99만7217t이다. 이 가운데 22.3%인 22만2171t이 한국으로 왔다. 미국산 소고기의 최대 수입국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미국 행정부가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검역 규정을 개정하고 한국에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강요하고 나선다면 한미 간의 갈등이 거세질 수 있다. 우리나라 한우농가들의 우려도 크다. 전국한우협회는 12일 “미국 정부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을 요구하더라도 국회와 정부는 농민의 생존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생각해서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강행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광우병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한우농가는 4년째 적자에 허덕이며 한계점에 내몰려 있다”면서 ‘개월령’까지 철폐되면 더 이상 한우농가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미국 축산업계는 “한국이 30개월 제한을 유지하는 것은 과거의 협상 결과일 뿐, 현재 기준으로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한우협회는 “미국에서 광우병은 모두 7건 발생했고 지난 2023년 5월에도 한 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허용된다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히려 미국 축산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트럼프정부가 인식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