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가 잘 된 것은 아름답지요. 이를테면, 계절을 나누고 때와 장소에 맞게 차려입을 수 있도록 정리가 된 드레스룸 말입니다. 엄마의 옷장은 그야말로 옷 무덤이었어요. 나는 엄마의 허락을 받아 옷장에서 꺼낸 옷들을 방바닥에 쌓았습니다. 옷이 든 바구니와 서랍까지 쏟자, 방 한가운데가 봉분처럼 우뚝 솟았습니다. 온갖 색이 뒤섞여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검고 붉어 고르게 자라지 못한 뗏장 같았어요. 헤집어 놓은 옷에서 취향 같은 것은 발견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의 옷에는 비싼 값을 자랑하는 라벨 대신 고단했던 삶이 붙어있습니다. 쌓인 옷가지는 헌옷 수거함에서 나온 것 같아, 다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아 보였는데요. 신기하게도 엄마의 눈에는 버릴 것이 없는지, 자꾸만 내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며, 나는 버릴 것을 더 많이 골라냈습니다. 옷은 날개가 아니었습니다. 무릎이 나오고 보풀이 인, 수많은 계절이 한꺼번에 걸어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이 나오고 포장지가 붙어버린 사탕도 나왔습니다. 다른 옷에 짓눌린 스웨터의 한쪽 팔이 축 늘어져 있고, 치마는 마치 보자기 같았어요. 세탁을 잘못해서 줄어버린 니트와, 늘어진 티셔츠를 다 입을 수 있는 엄마의 몸은 놀랍기만 합니다. 엄마는 몰래 옷을 추려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어요. 내 눈빛을 못 이기고 슬그머니 다시 내려놓기는 했습니다. 입을 것과 버릴 것을 분류하며 엄마의 세월을 갈라놓았습니다. 옷 속에서 시간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훌쩍 넘나들었어요. 좋은 옷은 아끼느라 못 입고, 낡은 옷은 익숙해서 버리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속옷을 버리지 못했고, 동생과 내가 싫증나서 입지 않은 오래된 옷도 있었어요. 엄마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딸들, 그 사이에서 날마다 늙어갑니다. 옷을 들출 때마다 엄마 냄새가 났는데요, 그 냄새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았으면, 잠시 헛된 마음을 품었습니다. 낡고 헤진 것들을 골라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엄마의 옷장, 아니 옷 무덤 속에서 버릴 것과 입을 것으로 분류하는 일이 쉽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나의 기준으로는 쉬웠지만 엄마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가치를 매기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한눈에 보이도록 정리한 옷장은 보기에 좋았습니다. 한 사람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옷은, 그가 품은 욕망의 기호로 읽히기도 하지요.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기 좋은 수단이면서 몸의 결점을 숨길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숨기려는 마음은 더한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입을까? 엄마의 옷을 비우는 데는 낡고 헤진 것이 기준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더 아름다운 이유와 의미로 비워내고 정리하겠지요.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는 일은, 다가오는 계절을 마중하는 일 같아요. 어디만큼 왔는지, 저편을 향해 미리 손을 흔드는 일. 봄을 기다리며 엄마의 옷장을 정리했습니다. 유독 길게 느껴지는 겨울이었어요. 슬픔과 혼돈의 겨울을 지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조급함이 입니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올 새순을 기다립니다. 선명하게 드러날 색을요. 봄이 오면 비워낸 엄마의 옷장에도 화사한 봄옷 한 벌 들여야겠습니다. 옷장 속에 혹시 운 좋게 내 눈을 피한, 요란한 꽃무늬 스카프 같은 게 걸려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버리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나의 옷장을 열어볼 차례입니다. 옷장 속에 꼭꼭 숨겨진 나의 색(色)을 보겠습니다.
나 때는 말이다,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것이 빨갱이였다. 학교 화단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있었다. 세종대왕, 유관순 동상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다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더 잘 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1년에 한 차례씩 꼬박꼬박 반공웅변대회가 열리면 웅변학원에서 써준 북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원고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는 했다. 북한에서 날아왔다는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책받침도, 공책도 푸짐하게 주었다. 잊을만하면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한 가족이 간첩이기도 했고, 심지어 어촌의 한 마을 전체가 간첩이기도 했다. 수지 김이라는 간첩은 홍콩에서 남편을 납치해 북한에 데려가려다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첩단 사건 중 상당수는 세월이 한 참 지난 후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혔다. 수지 김은 간첩은커녕 남편에게 살해당한 억울한 피해자로 밝혀졌다. 간첩 사건은 유독 선거 때 터지고는 했다. ‘간첩’이라는 두 글자는 모든 뉴스를 집어삼켰다. 사회문제든 정치문제든 그 어떤 이슈도 간첩 사건 앞에서는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간첩 사건 뒤에는 어김없이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 이름은 바뀌었지만 같은 조직인 현 국가정보원이 있었다. 그들이 조작해 낸 간첩단 사건 중 후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사건만 해도 수두룩 빽빽일 것이다. 나 때는 그랬다. 빨갱이가 가장 무서웠고, 반공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어느새 세상이 바뀐 듯했다. 수사기관이 총동원되어, 심지어 재판부까지 하나로 짬짜미로 묶여 무고한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넣은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흥행에 대성공했다. 빨갱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천만이 넘는 시민이 관람하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그렇게 빨갱이 사냥은 우리 곁을 떠나 도시전설로 남는 듯했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이 바뀌기는 정말 바뀐 것 같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전 대변인인 김민수는 홍장원 전 국정원 제1차장을 가리켜 북한이 보낸 빨갱이라고 했다. 수없이 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냈던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넘버 투’가 빨갱이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직은 대통령인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에서 정부를 비판한 모든 행위를 싸잡아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고 지목한 그들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레드컴플렉스, 빨갱이 사냥,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빨갱이를 때려잡던 정보기관 이인자가 빨갱이라 공격 받을 정도로 '빨갱이'는 희화화되었다. 대통령이 빨갱이라 지목해도 정신 나간 이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빨갱이의 힘은 희석되었다. 이제 정말 빨갱이는 '라떼'가 된 것 같다. 우울한 현실에서 찾은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지 않을까? 빨갱이가 “라떼는 말이다”의 소재가 되었으니.
이제 웬만한 식당은 테이블마다 키오스크가 있어서 손님이 앉은 채 주문하고 계산까지 한다. 무인커피숍에서는 로봇이 주문한 커피를 만들어 준다. 사무실에서도 많은 일들을 AI가 대신하고 있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고 기획서 작성, 광고물 제작까지 생성형 AI에 맡겨 본다. 사람은 그저 제대로 되었나 훑어보며 감탄사만 연발하면 되게 되었다.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집도 로봇 공정으로 며칠 만에 뚝딱 지어낸다. 부식을 막기 위해 대형 선박의 외관을 세척하는 일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잠수부 대신 로봇이 수행하고 있다. 오픈 AI의 챗GPT를 필두로 저비용 고성능의 딥시크 R1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성형 AI 서비스들이 출시되어 경쟁하고 있다. 이를 직접 사용해보고 효과를 체감하면서 AI 파급력은 커졌고, 우려도 높아졌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애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산업혁명의 전 과정에 등장하였다. 산업혁명기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은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일자리 수는 줄지 않았고 일의 형태가 바뀌어 왔다. 그러나 AI가 일으킨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은 다르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의 미래 2023’ 보고서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생산현장의 일자리를 AI가 대체하게 되더라도 이를 통해 늘어난 수익이 새로운 투자를 유발하면서 새 일자리들을 창출한다고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AI로 인해 새로운 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데이터 분석가, 머신러닝 엔지니어, 로봇 유지보수 전문가 등이 그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부호화되어 있는 정보는 인공지능에게는 쉽지만 인간에게는 어렵고, 반대로 부호화하기 힘든 정보는 사람에게는 쉽지만 인공지능에게는 어렵다는 ‘모라벡의 역설’을 주장했다. 모라벡 패러독스는 인간이 AI와 더불어 협업사회, 공존시대를 이끌어갈 것을 예상하게 한다. 감성이나 창조성으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하던 일이었는데 완전히 자동화되어 이제는 인공지능이 전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이 하는 일을 보조하는 일도 생겼고, 사람이 인공지능이 하는 일을 보조하는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확장하여, 그동안은 사람이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일도 등장했다. e-커머스나 메타버스가 바로 과거에는 불가능했으나 인공지능으로 가능해진 일자리들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어 AI패권을 두고 국가 간 갈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달 10일 프랑스에서 개최된 인공지능 정상회의에서 ‘사람과 지구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인공지능에 관한 선언문’에 미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는 성장지향적인 인공지능 정책으로 미국이 인공지능 기술의 세계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미래 사회에 관한 여러 저술로 주목을 받은 제이슨 생커는 그의 저서 '로봇시대 일자리의 미래'(2020)에서 미래 사회를 로보칼립스(Robocalypse)와 로보토피아(Robotopia) 양극으로 대별하였다. 로보칼립스는 모든 직업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고, 기계가 인류를 멸망케 하는 극단으로 조명한다. 반면 로보토피아는 로봇이 모든 일을 다 하므로 사람들은 무한히 자유를 누리게 되는 세상을 그린다. AI가 불러올 미래는 단지 기술과 일자리 문제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기술 경쟁 너머 자국을 위한 규제와 정책이 맞물리게 되는 지점은 로보칼립스와 로보토피아 사이 어디쯤이 될까.
후진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사고가 또 터졌다.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 구간 9공구 천용천교 건설 현장에서다. 교각에 올려놓았던 상판 4개가 떨어져 내렸다. 공사현장 상부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10명도 52m 아래로 추락했다. 4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중·경상을 당했다.(관련기사:경기신문 26일자 1면, ‘고속도로 다리 통째로 우르르…사상자 10명 발생’)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부상자들의 쾌유도 기원한다. 현장을 지나가던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 현장 모습을 보면 흡사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름이 돋는다. 지난 1994년 성수대교 참사 때의 처참한 기억도 소환된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당시의 처참했던 공사장 상황을 보도했다.(경기신문 25일자 인터넷판, ‘아수라장 된 안성 고속도로 공사장 붕괴 사고 현장’) ‘사고 현장은 시멘트와 철근 등 붕괴된 상판 잔해로 아수라장이 됐다. 교각 위에는 작업자 안전을 위해 설치된 철제 울타리가 무너진 상판과 충돌해 휘어 있었으며, 상판을 설치하는 데 사용된 런처 장비도 휜 채로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그러면서 인근 주민들의 놀란 심정을 전했다. “아내와 외출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쿵’ 하는 굉음이 들렸다. 급히 나가 보니 어제까지 멀쩡했던 다리가 사라져 있었다”며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려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다”는 것이다. 다른 주민도 “땅이 울리고 흰 먼지가 자욱했다. 매일 아침부터 작업자들이 나와 일하던 곳이라 피해가 클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사고 직후 소방당국은 대응2단계를 발령했다가 곧바로 ‘국가소방동원령’으로 격상했다. 국가소방동원령은 해당 재난지역 지방정부의 소방력 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차원에서 소방력을 재난현장에 동원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충남소방재난본부는 물론 전국의 119특수구조대, 119화학구조센터 대원과 장비 등이 동원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78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편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며 고용노동부도 사고 직후 작업 중지 명령과 함께 박상우 장관을 본부장으로 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하고 2차관,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을 현장에 급파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도 긴급구호활동을 전개했다. 구호차량과 직원, 봉사원을 급파해 지원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사고소식을 듣자마자 예정된 행사 참석을 취소하고 사고 현장에 도착,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인명구조를 최우선으로 하라”며 빠른 시간 내에 구조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면서 “작업하고 있는 소방대원들 안전 확보에도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 역시 앞서 예정된 행사 참석을 취소하고 고속도로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가 “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해 상황이 잘 수습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이번 사고가 교각 위에 교량 상판을 올려놓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섣불리 원인을 논할 수 없다. 현장 감식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고 원인이 규명돼야 한다. 따라서 경찰의 치밀한 수사와 함께 시공사인 현대 엔지니어링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처참한 사고 현장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은 ‘안전불감증’이다. 아직도 건설 현장을 비롯, 이 나라에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의 말처럼 “대형 사회기반시설 건설 과정에서의 안전관리 부실과 구조적 결함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윤종군 원내대변인의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말에도 적극 공감한다.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만 반복할 것인가.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학교 안전 문제와 입시·교육과정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로 학생, 학부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전 초등학교 학생 피살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학교 안전 이슈에다가 입시제도 등 교육 환경이 어느 것 하나 안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역 교육청 등 교육 당국의 신속한 대책 마련으로 새 학기 교육 시스템을 완비해야 할 것이다. 교육 환경의 불확실성이 학생과 교육자들의 안정감을 크게 해치고 있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내달 4일 2025학년도 1학기가 시작되지만, 개학 전부터 이어진 각종 사건 사고와 교육과정 변화로 학교 현장에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40대 교사가 학교에 재학 중이던 1학년 학생을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교육 당국은 해당 사건이 방과 후 돌봄 시간에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해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임용시험에서부터 ‘고위험 교사’를 거른다는 방향의 정책은 사회적 낙인효과로 인한 부작용,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발표 단계에서부터 교원단체,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경기도교육청도 교육부 방침에 맞춰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의 대면 인계, 동행 귀가를 원칙으로 한다는 공문을 각 교육지원청에 발송했으나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한 상황이다. 맞벌이 등으로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어 돌봄교실을 이용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상황과 어긋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개학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학부모들의 우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낮에 하교할 때도 대면 인계, 동행 귀가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 공교육 서비스는 더 이용하기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학부모들의 걱정 속에서 학생, 교사 모두를 불편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정책에 대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도 입시 변화, 정책 변화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올해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적용되는 첫해인데다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특히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변화’가 예고된 만큼 어느 해보다도 변화가 큰 해다. 2028학년도 수능은 기존 ‘개별과목’에 대한 평가에서 ‘통합과목’에 대한 평가로 변화하며 국어·수학·탐구 과목은 선택형이 아닌 통합형으로 일원화된다. 수능 개편안과 서술형 확대로 입학 전 걱정이 큰 학생들은 입시 정보를 하나하나 파악하고 이해해 맞는 전략을 짜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는 의대 정원 확대도 입시 불확실성을 높이는 큰 요소다. 최상위권 학생, ‘N수생’들이 지원하는 의대 증원 규모에 따라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와 학과의 입시 결과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당초 교육부는 입시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이달 말까지 이번 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2025학번 의대 신입생들에게도 휴학을 강요하는 등 의대생들의 복귀 조짐이 보이지 않아 증원 확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 정책과 교육 환경은 예측과 신뢰가 가능해야 한다. 교육이 갖는 영속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급변이 불가피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차가 안정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천만뜻밖으로 발생한 ‘정신질환 교사에 의한 초등학생 피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올해는 학교 안전 문제에 중대한 의문부호가 떠오르는 바람에 교육계의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안전한 학교 정책 구축에서부터 입시 정책, 학교 운영 정책에 이르기까지 관심 정책들이 하루빨리 정돈돼야 할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육 정책 당국과 학교를 믿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국가사회가 돼야 한다. 믿을 만한 교육 환경의 조속한 구축을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1795년 윤2월 9일,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장엄한 7박 8일의 정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3월 29일로 매화꽃이 한창인 봄이었고, 길가 여기저기에는 농사일을 시작한 백성들이 바삐 움직였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1796)에 수록된 행렬 그림인 반차도(班次圖)에는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등장하고, 정조의 친위대인 장용영(壯勇營)을 비롯하여 군사 4,500여 명을 합하면 6천 명을 훌쩍 넘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권위주의 시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정조의 효심만을 부각시키며 정치적 의미를 축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인 요즘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정치적으로 계획되고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결정이 국가와 국민의 삶에 미치는 힘이 그 누구보다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권력이 혈연을 통해 승계되던 조선에서는 어떠했겠는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할아버지 영조(재위: 1724~1776)에 이어 1776년 3월 10일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를 외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자신이 펼치고자 했던 개혁정치의 불가역성을 선언하고 과시하기 위한 정치 퍼포먼스로 만들고자 1년여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여 실행했다. 고도의 이미지 정치다. 창덕궁에서 화성행궁-현륭원을 오가는 5일간의 행차도 예외일 수 없다. 단순히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길의 의미를 뛰어넘는 정치적 함의를 부여하여 검소하면서도 장엄한 정치적 관광(觀光)의 모습으로 계획했다. 이 소중한 역사의 길이 옛 문헌의 기록과 그림, 길과 그 위에 점점이 펼쳐지는 많은 유적과 이야기로 21세기의 우리에게 전해지며 함께 걸어보지 않겠냐는 손짓을 하고 있다. 조선 최고의 지도 제작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수도 서울에서 융건릉까지 100리로 기록돼 있으니 ‘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이라 명명하면 딱 좋지 않을까? 필자는 2024년 9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창덕궁의 돈화문부터 융건릉의 입구까지 전 구간을 직접 걸어봤다. 18일에는 동일한 코스를 자동차로 이동하며 현대의 미터법으로 측정했는데, 정조의 원행을묘 날짜별 이동 코스와 거리는 이렇다. ①윤2월 9일 [오전] 창덕궁 돈화문 → 숭례문(2.8km) → 용양봉저정(5.8km) [오후] 구로디지털단지역(5.6km) → 시흥행궁(4.0km) * 구간 (18.2km) ⓶윤2월 10일 [오전] 시흥행궁 → 안양역(6km) → 사근행궁(7.5km) [오후] 노송지대(4.1km) → 화성행궁(5.2km) * 구간(22.8km) ⓷윤2월 12일 [오전] 화성행궁 → 세류역(4.2km) → 안녕리 표석(4.9km) → 융건릉입구(2.9km) * 구간(12.0km) 전 구간의 합계는 53.0km인데, 하루 만에 걸어서 돌파할 현대인은 없을 것 같다. 첫째 날 18.2km, 둘째 날 22.8km, 셋째 날 12.0km의 일정을 그대로 따라 걸어가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혹시 저질 체력의 소유자라면 오전과 오후의 일정을 각각 하루로 계산하여 5일로 잡으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너무 무리인가? 필자는 이후에도 두 번을 더 걸었다.
‘우(迂)’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첫 글자이다. 우여곡절은 일상에서 상투어처럼 쓰이는 사자성어이다. 쓰기에 따라서는 고급스런 느낌도 준다. 국어사전에서는 ‘여러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로 풀이해 놓았다. 상투어로 보인다는 건, 말의 뜻이 자못 심오한데도 그런 것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기능적으로만 쓴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약점이기도 하다. 한자 ‘우(迂)’는 잘 쓰지 않는 한자다. '한자 자전'에서 이 글자를 찾으면 ‘멀다’라는 뜻으로도 나오고, ‘에돌다’라는 뜻으로도 나온다. 그런데 ‘멀다’라는 뜻이나 ‘에돌다’라는 뜻은 그야말로 서로 멀지 않다. 사촌쯤 되는 친밀한 뜻이다. ‘에돌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곧바로 나아가지 않고 멀리 피하여 돌다’로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迂)’가 지닌 ‘멀다’라는 뜻에는 단순히 거리가 멀다는 뜻보다는 그 어떤 대상을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그걸 멀리 두고 돌아서(피해서) 가려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우회(迂回)’라는 말이 떠오른다. 곧바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가는 것이 ‘우회(迂回)’이다. 이 한자어에 대응하는 고유어가 ‘에돌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곧바로 가지 못하고 멀리 돌아서 가게 될 때가 있다. 우회하지 않고 살아 온 자, 누가 있겠는가. 때로는 가던 길을 울면서 돌아선 적도 있고, 때로는 위기 앞에서 돌아서 가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적도 있다. 누군가 자기 인생의 ‘우여곡절’을 절절하게 말하며 ‘우(迂)’의 시간을 고백하는 걸 듣노라면, 그 우회가 운명적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우회의 인생길’은 내 현실을 감당해 내려는 깨달음의 길일 수도 있고, ‘도전의 길’일 수도 있다. 우회의 인생길, 거기에는 하늘의 섭리가 배경으로 놓이기도 하고, 인간의 깊은 성찰이 스며들기도 한다. 모세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바로 가나안 땅으로 오지 않고, 광야에서 40년을 에돌며 우회했던 사건에 대한 성서 해석학적 의미는 참으로 풍성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回軍)은 긴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우회의 지혜’를 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흥하는 세력 명(明)을 치러 곧바로 나아가다가 그 길을 우회하고 되돌려 온 것은 그가 뒷날 조선을 세워 나라를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5세기 유럽의 해양 세력들이 바다를 통해 인도로 가겠다고 해서 나아갔지만, 그들이 도달한 곳은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서인도 제도)이었다. 자기들도 모르는 우회의 길을 갔던 셈이다. 그 우회는 오류였던가? 그렇지 않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으로 흘러가게 했다. 전쟁의 기술에서는 적의 강한 예봉(銳鋒)은 무조건 피하여 우회할 것을 강조한다. 삼국지에 수백 번도 더 나오는 장면이다. 이보전진(二步前進)을 위한 일보후퇴(一步後退)에는 우회의 진경이 담겨 있다. 적을 험지로 유인하려고 후퇴를 연출하는 것은 우회가 지략의 경지에 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인생의 먼 길을 가며 우회를 생각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돌아서 가야만 닿게 되는 것이 인생 행로의 숨은 질서라는 너그러운 생각도 든다. 돌아서 가는 우회의 생(生)이 있으므로 해서 그 인생은 모종의 심연을 배태한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거의 3개월이 흐르는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제도의 후퇴를 목격하고 가슴을 졸이며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보며 완벽하지 않지만, 그동안 이룩해 놓은 민주제도의 회복을 바라고 있다. 물론 탄핵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헌법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세력들도 있긴 하다. 이들의 대부분의 행동양식은 강약약강을 기초로 하기에 정권이 바뀌면 그들의 주류세력은 사라질 것이다. 물론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남아있긴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더욱 팍팍해졌다는 것이다. 국내 한 일간지가 인용한 미국의 유명 경제지의 기사 내용을 보자: 미 보수경제지 ‘포브스’는 지난 6일 ‘윤석열의 필사적인 곡예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살인자(Killer)인 이유’란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한국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비상계엄을 한 마디로 ‘지디피 살인자’로 표현했다. 기사는 말미에 섬뜩한 문장으로 끝난다.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사태가 초래한 값비싼 대가는 한국인 5,100만 명이 시간을 두고서 분할해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현재 우리 사회는 먹고살기 힘든 상황이다. 의료대란(현재 지속 중) 때 나온 유행어, “각자도생”은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연장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자신도 스스로 살 궁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살아날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더욱 지혜로워야 한다. 일자리가 없고 벌이를 할 수 없다면 역으로 씀씀이를 줄여야 할 것이다. 각자도생의 진리가 여기에 있다. 마치도 겨울에 동굴에 들어가 겨울잠(hibernation)을 자는 곰처럼 가장 에너지를 적게 쓰는 모드로 돌입하는 것도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런 비상시국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지구상의 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이고 세계적 기후재난 중이기에 지구상의 인류 모두가 에너지를 가능한 적게 쓰는 “상시 하이버네이션 상황”으로 돌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계체제 안에서 이런 주제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는 우리 인류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유일한 길일 수 있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1845년에서 1847년까지 월든(미국 보스톤 근처,walden pond)의 숲속에서 한 평 정도의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인간이 최소한의 물질로 자급자족하며 얼마나 단순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지 실험하며 저술 활동을 했다. 이로써 헨리의 사상은 훗날 러시아의 톨스토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사실, 인류 역사상 종단, 종파를 막론하고 소위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런 단순하고 “청빈한 삶”을 자발적으로 살아왔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사제 아니고 수녀와 수사)들은 3대 서원(Three vows, 하느님 앞에서 하는 약속)을 한다. 청빈, 정결, 순명이다. 이 세 가지 서원의 직접적 목적은 ‘자유’다. 청빈은 물질로부터의 자유, 정결은 사람으로부터의 자유, 순명은 내 의지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렇게 세 가지 서원으로 얻은 자유를 가지고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 혹은 예수가 주신 임무(mission)는 선교, 포교, 전도가 아니다. 예수는 교회를 세우라거나 교회의 멤버십을 늘리라고 한 적이 없다. 예수가 초대 교종(교황)인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강조하며 주신 임무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이다. 여기서 양은 겁이 많고 약한 존재의 상징이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은 우리 주변에 있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광화문파의 전씨나 여의도파의 손씨처럼 예수의 이름을 팔아 정치적 세력에 기생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정치는 허위와 비밀을 ‘정당하게’ 활용하며, 이로써 권력이 목적으로 했던 ‘더욱 고귀한 바’를 달성하면 그만이다. 진실은 취사 선택된다. 역사에는 거짓 선동을 반복함으로써 권력을 쟁취, 유지, 확대한 정치적 사례가 숱하게 많다. 선동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허위 정보, 고정관념, 폭력적 환상, 공포가 반복되며 정교화될 때 우리는 처음에는 거짓이라고 인식했던 메시지조차 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진실에 관심이 없다. 진실은 어렵고 드물다. 그러니 많은 경우 심지어 민주적 국가에서도, 권력자가 진실을 추구할 유인은 없다. 권력자에게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쉬운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권력이 진실 추구를 표방한다면 어떨까. 이는 성공하기 힘든 목표인데, 진실성을 판단하는 주체의 자율성을 통제하려는 열망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실과 허위를 판단하는 권력 앞에 진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물음에 권력은 필요에 따라 다른 답을 내놓기 십상이다. 언론은 진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이 또한 녹록하지 않다. 2016년 트럼프 선거본부를 이끌었고, 트럼프 정권의 백악관 수석 전략가를 지냈으며, 수백만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부사장이었던 스티브 배넌은 2019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그저 ‘때리고, 때리고, 때리는 것’ 그렇게 하여 추진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대는 미디어다. 그리고 미디어는 멍청하고 게을러서 한 번에 하나밖에 다루지 못한다. 우리는 홍수를 만들면 된다.” 유능한 언론에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언론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밝혀낸 언론에 경제적, 사회적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진실은 어렵고 드물다. 좋은 보도를 응원하지만, 좋은 보도를 진득하게 읽어내는 건 고역이다. 고백하건대, 진실은 나에게도 인기가 없다. 이렇듯 진실은 정치의 친구였던 적이 없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우리는 허위의 시대를 잘 살아낼 수 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 뿐이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으로 구성된 어떤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진실과 허위가 뒤엉켜 있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타인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로써 자신의 위치를 짐작한다. 이야기를 쓰는 것은 결국 우리다. 그 이야기가 드높은 환대와 용기로 쓰이길 바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쟁의 비극을 그려낸 작가 커트 보니것은 그의 소설 <타이탄의 세이렌>에서 하모늄이라는 외계 생명체를 묘사한다. 집단생활을 하는 하모늄은 허위와 폭력의 장막이 둘러쳐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 단 두 가지를 제시한다. 두 메시지는 서로에게 응답한다. 첫 번째 메시지는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이고, 두 번째 메시지는 “네가 있어서 기뻐, 네가 있어 기뻐, 네가 있어 기뻐”이다.
또 터졌다. 시대적 비극인 대형 전세사기 사건을 막겠다고 내놓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요란한 대책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수원시 일대에서 또 70억 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불거졌다. 변명의 여지 없이,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다. 실효성이 확실히 담보된 예방책을 하루빨리 실행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인 젊은이들을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몰아넣는 전세사기 범죄에 언제까지 이렇게 질질 끌려다닐 작정인가. 수원시 일대에서 또 70억 원 규모의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사회초년생으로 1억 원이 넘는 전세보증금을 잃고 개인회생을 준비하는 등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지난 6일 한 인테리어 업자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과 인계동 일대에서 전세사기를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피의자가 소유한 우만동 원룸 건물에는 총 27세대, 인계동 투룸 건물 2채에는 총 38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입주민 모두 1억 원 이상의 전세보증금을 지불한 만큼 총피해 금액은 약 78억 원에 달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사회초년생들이다. 피해자들의 하소연은 하나같이 눈물겹다. 입주민들은 피의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자 지난해 중순쯤 돌연 잠적했다고 설명했다. 집을 찾아갔으나 아무도 없었고, 우편함에는 관리비가 오랜 기간 미납됐다는 등의 독촉장이 다수 꽂혀있었다고 전했다. 우만동 원룸에 거주한 또 다른 피해자는 “전세사기를 당하면서 피의자의 행방을 쫒기 위해 결혼식을 미뤄야 했다”며 “빚을 지며 전세보증금을 구했지만, 이 모두 잃게 되면서 현재 개인회생을 준비 중”이라고 호소했다. 팔달구 투룸에 거주하는 다른 피해자는 “입주자들과 함께 시내 한 주택에서 가까스로 발견한 ‘진행 중인 공사 대금이 들어오면 전세보증금을 꼭 돌려주겠다’는 각서까지 작성했으나 현재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결국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다”며 “입주민 모두 어린 나이에 억대에 달하는 빚을 떠안게 됐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그동안 전세사기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내놓은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소리만 요란했지, 막상 시장에서 법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사기꾼들의 범의(犯意)를 차단하는 데는 역부족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제일 한심한 것은 이미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사태의 진상 파악부터 제대로 하고 있는지다. 한 사람이 수십~수백 채의 집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데 그 현상을 파악하고 예방하는 일조차도 왜 이리 실행이 더딘지를 알 길이 없다. 피해자 구제를 위한 입법이나 제도 마련에 공을 들이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2023년 말까지 국토교통부에서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만 2만 5578명에 이른다. 작년 9월 말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접수된 전세 보증사고 피해 금액의 합계는 전국적으로 13조7907억원, 경기도에서만 4조2284억원(30.7%)에 이른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 진행 중인 것이다. 경기도가 27일 수원 경기대학교 텔레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하는 경기 안전전세 프로젝트 ‘부동산 컨퍼런스 2025’를 주목한다. 전세사기 예방 및 안전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 신기술을 공유하고, 공인중개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는데 부디 속 시원한 해법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전세사기는 세상을 향해 비상하려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무참히 낚아채는 흉악한 올무다. 그 덫을 제거하는 일은 온전히 중앙·지방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논의 중인 ‘주택 소유 제한’, ‘전세사기 피의자 가중처벌’ 규정부터 과감히 진전시켜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범행 중이거나 잠재된 전세사기 시한폭탄들을 찾아내어 신속히 제거하는 일이다. 애꿎게 희생당하고 있는 청춘들의 비명이 이만큼 계속됐으면 이제는 속 시원한 해법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