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위험한 것은 확신이다. 확신은 연대와 포용의 적이다. 영화 ’콘클라베’에 나오는 이 대사는 지금의 우리사회에 있어 진실로 귀담아들어야 할 경구이다. 이 말을 조금 더 확장하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그릇된’ 확신이라는 말이 된다. 한국의 선관위를 중국과 북한의 해커들이 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 대한민국에 현재 반국가세력, 종북 빨갱이들이 판치고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 등이 그것이다. 얼마나 위험한지는 지난 서부지법 난동 사태에서 확인한 바 있다. 폭동을 일으킨 주범 젊은이들에게 정신교육으로 ‘콘클라베’를 감상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영국의 대(大)감독 스탠리 큐브릭(1928~1998)은 자신의 1971년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폭력과 폭행을 일삼는 청년 알렉스(말콤 맥도웰)에게 루도비코라는 갱생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사지를 의자에 묶어 놓고 눈을 감지 못하도록 눈꺼풀에 장치를 해놓은 채 역사 영화를 반복해서 보여 주는 것이다. 일종의 세뇌이다. 한국에서 요즘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 극우 파시스트들을 보면 이렇게라도 강제적으로 의식을 개조하고 싶게 만든다. 극단은 극단을 낳는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은 상상도 해선 안 된다. 하루빨리 사회가 정상화되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 지금의 한국이 1918년에서 1933년까지 꽃피웠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를 닮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일이다.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는 늙고 무능한 대통령 힌덴부르크에 의해 수상이 됐고 그가 죽자마자 총통 자리를 거머쥔다. 히틀러의 선동 정치는 극단적 민족주의, 반마르크스주의, 반유대주의에 기초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중심의 민족주의, 반국가세력을 일소해야 한다는 新반공주의, 반유대주의에 버금가는 반중주의에 모아진다. 히틀러는 뮌헨의 한 비어 홀에서 쿠데타를 도모했으나 실패한 후 잠시 투옥됐다가 석방됐으며 이후엔 쿠테타 대신 군중 선동정치를 강화하고 나치당을 전국에 확대했다. 동시에 당 내부의 명령체계를 강제하면서 독재자의 위치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윤석열도 투옥됐다가 석방됐다. 히틀러의 우중을 이용한 선동정치는 그에게 총선에서 1130만 표라는 공고한 위상을 점하게 했다. 히틀러는 군사력이 아니라 우민들의 표로 집권한 것이다. 그건 윤석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한국 상황을 바이마르 시대의 몰락과 지나치게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일 역사를 통틀어 독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제정했던 공화국으로 그 이상이 실현되기는커녕 역사의 최암흑기를 여는 데 일조했다. 바이마르 시대에 나왔던 예술품, 예술가들은 아직까지도 칭송 일변도이다. 건축학교 바우하우스를 만든 발터 그로피우스가 이때 사람이며 연극이론가 베르톨트 브레이트, 작가 토마스, 만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막스 라인하르트 등이 모두 이 시대에 활동했던 아티스트들이다. 마치 지금의 한국에서 한강 작가와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같은 영화감독 그리고 로제와 BTS, 블랙핑크 같은 세계적 가수들처럼. 역사는 종종 반복된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역사를 잘 들여다 보고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바로 그게 부족하다. 그 점이 걱정이다.
가까운 이웃부터 낯선 이까지, 우리는 타인의 선택과 행동을 관찰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들에게 쏠리는 관심은 유독 강렬하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 사소한 언행까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회적 담론으로 변한다. 문제는 이 관심이 일정한 선을 넘어설 때다. 호기심이 감시와 통제의 형태로 변질될 때, 타인의 삶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대중이 공유하는 ‘공적 자산’처럼 취급된다. 그 원인을 찾으려면 인간 심리의 깊은 층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타인을 거울삼아 자신을 평가한다. 비교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열등감이나 질투로 이어진다. 공인의 삶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동경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흔들릴 때 은밀한 안도감을 느낀다. 성공한 이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자신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공인의 삶은 대중이 공유하는 ‘공적 서사’가 되기에, 성취는 찬양의 대상이 되며 실수는 철저한 반면교사로 소비된다. 관심이 감시로 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감정의 투영이다. 우리는 단순히 공인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특정 인물을 응원하며 희망을 투영하고, 그들의 서사가 기대를 충족시킬 때 대리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기대와 어긋나는 순간 실망은 분노로 이어진다.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그들이 살아가길 원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타인의 삶이 감정의 배출구가 된다. 이는 일상의 불만과 좌절이 해소되지 않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실의 문제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지만, 공인의 논란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특정 인물에게 비난이 집중될 때, 대중은 하나의 분명한 원인을 발견한 듯한 안도감을 느낀다. 정치적 무력감, 경제적 불안, 개인적 결핍이 쌓일수록 공인을 향한 감정적 투사는 더욱 거세진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은 사적 영역에 머무르지 못하고, 대중이 논평하고 개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공적인 위치에 있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 제한 없이 소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선택과 실수가 집단적 비난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현상을 정당한 공론이라 보기도 어렵다. 타인의 삶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결국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남의 삶을 소비하는 시간만큼, 자기 삶의 균형을 잃는다. 그리고 누군가를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 잣대가 언젠가는 자신을 향할 것이다. 오늘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문화를 방관한다면, 내일 타인의 평가 속에 나의 삶이 놓일 수도 있다. 관심의 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공적 비판과 사적 간섭을 혼동하지 않고, 타인의 삶을 감정 해소의 도구로 삼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타인의 삶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사회는 결국 자기 삶을 중심에 두지 못하는 개인들로 구성된다.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 무엇에 관심을 쏟고 있는지 질문하고 점검해야 할 때다.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나의 삶 또한 지키고 잘 꾸리기 위해서.
지난 연휴에 나는 네일 아트샵에 갔다. 아직도 네일 아트를 여성의 사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지나치게 긴 손톱을 붙여서 일상생활조차 불편하게 하는 네일 아트를 항상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제 나는 한 시간 동안 손톱관리를 받는 동안 손톱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손톱은 우리 신체 중 최말단에 있어서 등한히 여기기 쉽다. 그러나 손톱의 색상, 모양, 강도 등은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손톱이 잘 부러지거나 갈라지면 노화나 영양결핍을, 흰 반점이 생기면 손톱 무좀을 의심할 수 있다.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생기면 피부암의 가능성이 있고, 둥글게 파임이 보이면 철분 부족이나 심장병 또는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가로로 파임이 생기면 당뇨병이나 순환기 질환이 의심된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손톱이 닳도록 일을 하시느라 번번히 손톱을 돌아보지 못하며 살았지만, 손톱도 명색이 톱 중의 하나라서 때로는 앙큼한 자존심을 세울 줄 안다. 딱히 위협하려는 요량은 아니지만 얕보았다가는 날카로운 톱에 할퀴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즉, 손톱의 존재는 우리 신체의 말단에서 우리의 신체를 보호하는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톱이 없다면 우리가 능숙하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도 하기 어려워진다.. 손톱이 닳도록 험하게 살아도 목숨만 부지한다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느리게 보이지 않게 자라는 손톱들도 주인공이 되는 날이 한달에 하루쯤 있어준다면 날카로운 슬픔도 오색영롱한 기쁨으로 감싸고 “너 참 예쁘구나” 하고 칭찬받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여자들이 미용실에서 헤어 스타일링을 할 때보다 네일 아트를 할 때 더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는 헤어 스타일링은 거울을 보기 전에는 자신에게 보이지 않지만 네일 아트는 언제나 스스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도 네일 아트를 받아보지 않은 어머니나 할머니도 모시고 가서 해드리면 어색해하시면서 기뻐하실 모습이 상상이 되어 미소가 지어진다. 예쁜 색과 무늬야 다시 남루해지겠지만 얼마간 예뻐진 자신의 손톱을 보며 힐링이 된다면 무대에서 내려오는 배우들처럼 우리도 다음 무대를 차분히 준비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서로 얽혀사는 우리 사회도 그렇다. 두뇌 역할을 하는 사람, 심장 역할을 하는 사람처럼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손톱이나 발톱 역할을 하는 사람처럼 사소해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다. 이 사회와 세계가 커다란 하나의 유기공동체라고 여긴다면 허투로 볼 수 있는 존재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한시되기 쉬운 손톱 역할을 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네일 아트는 무엇일까? 그 중요함을 인식한다면 스스로 두뇌나 심장이라고 생각하는, 또는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은 손톱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 오늘은 내 손톱이 예뻐서 기쁜 날이다.
한 편의 시와 시조는 그 사람 정신적 부활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라는 시조는 만고의 충신 성삼문의 푸른 혼으로 지금도 내일도 서슬 퍼렇게 살아 있을 것이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왕명을 맡아보던 예방승지 성삼문은 임금의 인장(印章)인 국새를 안고 통곡을 한다. 그 뒤 성삼문은 세조와 그 일당을 죽이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역모 죄로 한강 백사장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때 성삼문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절개를 낙락장송에 비긴 시조를 남기고 갔다. 이것이 인문학 정신이요 문학의 정의이다. 문학은 어떤 형태로 나타내든 결국은 자기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종(種)은 두 개의 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르루아 쿠랑은 말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 걷는다는 것은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인간은 걸으면서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기도 한다. 아침 산책길에서 본다. 길에 떨어져 있는 고목나무의 부러진 가지를. 나무는 지난밤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를 내려놓은 것이다. 밤 시간 나는 자리에서 뒤척일 때 산은 산대로 숲은 숲대로 나무는 나무대로의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다. 시간의 흐름 앞에 영원한 생명의 주체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뭇가지들이 떨어져 나간 대신 땅속에서는 지신(地神)의 조화로 봄기운이 나무뿌리를 기점으로 역으로 줄기를 타고 오르며, 그 물줄기로 나무 표피를 윤택하게 하는 동시에 나무 가지 끝에서는 눈을 트게 하고 잎을 벌게 하여 새봄의 숲 환경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삼월은 그냥 3월이라고 하지 않는다. 삼자 앞에 봄 춘(春)을 붙여 ‘춘삼월’이라고 한다. 삼월을 앞두고 나는 어느 시인의 유튜브에서 3⭒1운동에 따른 새로운 분위기를 읽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장로교 7명, 감리교 9명으로서 16명이 개신교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0년을 지나면서 개신교인은 침례교인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신사참배를 하고 친일부역을 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배 때마다 황국신민으로서의 애국! 을 설교하고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동방오배(五拜)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 어디로 다 도망가고 동네에서 맞아 죽게 되자 바짝 엎드려 있다가 이승만과 결탁 서북청년단 등으로 활동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뿌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집에서 흰 도화지 위에 사발(국그릇)을 엎어서 큼직한 원을 먼저 그렸다. 그리고 그 원을 〜 이와 같이 표시하여 반으로 나누어서 위에는 붉은색을 아래는 군청색을 칠했다. 네 귀에는 괘를 만들었다. 끝맺음으로는 손으로 잡아 흔들 수 있도록 가는 대나무로 묶어가지고 학교로 가지고 가서 기념식 때 교장선생님이 선창 하면 우리는 모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쳤다 그때 그 힘으로 오늘날 여기까지 왔으며 한강의 기적과 수출 강국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나는 3월이 되면 외로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유관순 누나가 참으로 내 누나나 된 양 보고 싶었다. 그 누나는 나이도 먹지 않고 항시 1919년 3월의 그 나이와 모습으로 어느 곳에서 존재할 것만 같았다. 내게 하나의 꿈이 있다면 담백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욕심 없이 조촐한 마음으로 손자가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살고 싶다. 배우자를 잃고 자신을 벗 삼아 살아가는 친구와 산길을 걷고 싶다. 그러나 눈을 밖으로 돌리면 지도자 복이 없는 이 나라의 현실적 슬픔 속에서 성삼문 같은 사육신의 정신과 자신의 절개를 낙락장송에 빗대는 시와 시조 한 수 짓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서글퍼진다. 바라 건데 우리나라가 서울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다는 사람들로 인해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쯤 나라의 행복이 개인의 행복보다 앞선 나라가 될지… 행복은 권력이나 돈보다 지혜를 따르는 법(道)인데.
영상만 보면 흡사 전쟁의 한 장면이다. 국민들이 경악했으니 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얼마나 기겁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6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2리 인근에서 훈련 중이던 공군 KF-16 전투기가 민가가 밀집돼 있는 마을에 폭탄을 투하했다. 영상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고로 주민 2명이 중상을, 13명이 경상을 입는 등 1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들 중에는 군 성당에 와있던 군인 2명과, 마을에 있던 외국인 2명도 있었다. 성당 1동과 주택 5동, 창고 1동, 비닐하우스 1동, 화물차 1대도 파손됐다. 집이 부서지는 피해를 입은 이재민은 18가구 40명으로 인근 지역의 콘도나 모텔, 친·인척 집에 머물고 있다. 부상을 당한 주민들의 쾌유를 빌며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입은 주민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아 하루속히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주택과 차량 등이 파손, 재산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도 위로를 보내며 관계 당국의 신속한 피해복구와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오폭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51년에 만들어져 미군의 폭격·사격 훈련장으로 50년간 사용됐던 매향리 주변 사격장과 폭격장, 일명 쿠니사격장에서는 미군의 오폭으로 인해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폭발의 진동으로 집에 금이 가거나 엄청난 소음으로 젖소·토끼 등 가축들의 낙태, 주민들의 정신건강 이상 등 피해가 컸다. 이에 폭격 중단을 촉구하는 마을 주민들의 민원과 시위, 집단행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주민들의 항거로 미군 사격·폭격장은 폐쇄됐고 매향리는 이제 평화·생태의 공간이 됐다. 그런데 경기북부지역엔 지금도 포성이 울리는 사격장들이 있다. 이 사고가 발생한 이후 군 훈련장이 산재한 경기북부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포천에 있는 미군사격장인 영평사격장(로드리게스 사격장)이다. 이곳은 아시아 최대 사격훈련장으로 불린다. 2014년 이후 영평사격장 인근 주민들은 계속되는 유탄·도비탄 사고에 시달려왔다. 2015년 연습용 105㎜ 대전차 포탄이 민가 지붕에, 2016년엔 포탄이 마을 뒷산에 떨어졌다. 분노한 주민들은 2016년 범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서울 용산구 미8군 사령부 앞에서의 규탄 시위 등을 통해 대책을 촉구했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노력 끝에 지난해에야 비로소 갈등이 표면적으로나마 마무리됐다. 그런데 이번엔 우리 공군 전투기가 민가로 폭탄을 투하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경기신문(7일자 1면, ‘포천시 민가로 전투기 폭탄 투하…주민 15명 부상’)에 따르면 공군 훈련 중 조종사가 MK-82 폭탄 8발을 투하했는데 좌표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사격장 외부로 폭탄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MK-82 폭탄은 건물과 교량 파괴 등에 사용된다고 한다. 폭발 시 직경 8m, 깊이 2.4m의 폭파구를 형성하고 축구장 크기의 살상 반경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끔찍한 폭탄에 마을로 떨어졌으니 주민들이 분노하고 심각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군부대 훈련이 진행되고 있지만 주민 안전 대책은 미흡했다. 결국 오늘과 같은 사고가 난 것 아닌가”라는 한 주민의 말은 우리의 생각을 대변한다. “국가 안보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군사 훈련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임종훈 포천시의회 의장의 말에 동의한다. 아울러 사고가 나자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과 함께 현장을 방문한 백영현 포천시장이 국회와 정부에 요청한 재난 지역에 준하는 구역 선포도 긍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포천시사격장 등 군관련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것처럼 이 사건은 공군의 훈련 관리와 안전절차가 심각하게 미비함을 보여준 사고다. 군 기강해이도 의심된다.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철저한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난 기고문을 통해서 개인간 금전거래시에도 차용증을 충실하게 작성하고 채무불이행시 신속한 집행을 위해서 약속어음공정증서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간에 종종 큰 금전을 대여하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그 소유 부동산이나 제3자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해당 담보물건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꼼꼼히 확인해 근저당권 설정이나 압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시세와 비교하여 추가적인 담보여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통상 시세의 70% 정도를 기준으로 해당 부동산의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의 합계액이 이를 초과하면 해당 부동산에는 더 이상 담보여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금전거래는 통상 민사소송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변제기에 이르러 채무자가 자신이 변제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는 경우에는 실제 민사소송을 통해서 이를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 채권자는 채무자가 금전대여 당시 실제 변제의사가 전혀 없음에도 자신의 변제능력이나 변제방법, 대여금의 사용용도를 기망하여 돈을 빌렸다는 것을 이유로 사기죄로 고소를 하기도 한다. 대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타인으로부터 금전을 차용함에 있어서 그 차용한 금전의 용도나 변제할 자금의 마련방법에 관하여 사실대로 고지하였더라면 상대방이 응하지 않았을 경우에 그 용도나 변제자금의 마련방법에 관하여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고지하여 금전을 교부받은 경우에는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한바 있고(대법원 2005. 9. 15. 선고 2003도5382 판결). 피고인의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그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그 행위 이후의 경제사정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하여 이를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보기도 한다(대법원 2008. 9. 25. 선고 2008도5618 판결). 이렇게 사기죄로 채무자를 고소하고 수사결과 그 혐의가 밝혀지면 추후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채무자가 대여금을 일부라도 변제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최근 법원은 지능적인 경제범죄가 증가하고 서민들의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사기죄의 경우 피해금액이 소액이거나 초범이라고 하여도 실형을 선고하여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차용증을 작성하면서 채무자가 자신의 변제계획이나 방법을 밝히거나 대여금의 사용용도를 밝히면서 고율의 이자를 약속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사실들을 차용증에 잘 기재하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도 차용증을 작성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하는 사항이다.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각종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공해에는, 미세먼지와 같은 공해 문제도 있고, 자동차와 같은 소음 공해도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공해에도 시달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소음 공해와 정치적 공해가 합쳐지는 모양새다. “헌법 재판관들을 처단하라”,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고 있다. 이 모두 때려 부숴야된다. 쳐부수자!", "지금 윤석열이 온갖 거짓말을 하고 잔꾀를 부리고 어느 신부님 말씀대로 'X랄 X광'을 하고 있지만 윤석열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등등의 말들은 정치 공해와 소음 공해가 합쳐진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진보, 보수 각 진영의 적극 지지층들은 자기 진영의 이런 소리를 소음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중도층들은 이런 발언을 들으면 정말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동아시아 연구원 측의 조사(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월 22일부터 23일까지 18세 이상 1514명을 대상으로 웹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2%P.)에 따르면, 현재 중도층의 비율은 전체 유권자의 49%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조기 대선을 치른다고 가정하면, 이 정도 규모의 중도층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이들은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이번 대선은 양대 진영 지지자들의 결집 정도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이들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진짜 진영 구도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중도층은 선거 승리의 캐스팅 보터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중도층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선택이 선거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며,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대선에서 패배를 재촉하는 꼴이 될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면 안 되는 이유는 또 있다, 지금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 정치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를 협상의 파트너로 생각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데, 지금처럼 언어 폭력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면 정치적 상대방은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고, 협상이라는 단어와 타협이라는 단어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단어가 사라진 상태에서 정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정치가 사라지면, 정치인도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런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하며 자기 진영의 강성 지지층만을 바라본다면, 이는 결국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없애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피곤 사회’는 결국 정치적 양극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피곤 사회’는 중도층에게만 피곤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극단적인 소음을 만드는 정치 세력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정치권은 기억해야 한다.
경기도가 ‘빈집 해소 3법’ 개정안을 마련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의 빈집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인구 유입의 중심지이자 가장 많은 주택 공급이 이뤄진 지역임에도 공급이 과도하거나 기존 주택이 방치되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흉물로 방치돼 주거환경을 해치고 우범 위험성마저 높이고 있는 빈집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효율적인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근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이 발표한 ‘연도별·지역별 미거주 주택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의 빈집 수는 153만 4000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106만 8000가구) 대비 43.6% 증가한 것이다. 전국 빈집 비율은 2015년 6.5%에서 2019년 8.4%까지 치솟았고, 2021년 7.4%로 다소 감소했으나 2023년 다시 7.9%로 상승했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 빈집의 18.6%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도내에서 빈집이 가장 많은 지역은 평택(11.2%)으로 나타났다. 이어 화성(8.1%), 부천(6.3%), 수원(6.1%), 남양주(5%) 순으로 빈집 비율이 높았다. 도는 앞서 지난달 중순 시장·군수 등이 빈집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공람을 실시하기 전 도지사 의견을 청취하는 내용 등을 담은 ‘빈집 정비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시·군에 배포했다. 개정안에는 빈집 실태 조사 시 빈집소유자의 빈집정보 공개유도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기도는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시장·군수가 내실 있는 빈집정비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2025년 경기도 빈집정비사업을 효율적 추진해 도심 속에 방치된 빈집을 적극적으로 정비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빈집 증가는 단순한 주택 공급 과잉의 문제가 아니다. 장기간 방치될 경우 주변 주택 가치 하락은 물론, 도시 슬럼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인구 1000명당 빈집 수는 전국 평균 29.9가구로, 2015년(1000명당 20.7가구)보다 크게 증가했다. 경기도는 ‘빈집 해소 3법’ 개정안을 마련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빈집 해소 촉진을 위해 재산세, 양도소득세, 부동산종합소득세를 완화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은 빈집을 철거해 나대지가 되면 재산세가 오히려 인상되어 철거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기도는 나대지를 공공 활용하는 경우 철거 전 재산세에 따라 세 부담을 동결하도록 지방세법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또 ‘세컨드 홈’ 특례에 인구감소 관심 지역인 동두천시와 포천시의 빈집도 포함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도 제시하고 했다. 세컨드 홈 혜택은 종전 1주택자가 인구감소지역에 있는 공시가격 4억원 이하 주택 1채를 추가 취득하면 1주택자에 준하는 재산세, 양도소득세, 부동산종합소득세 특례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흉물로 방치된 빈집은 지역의 미관을 해치고 주택가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범죄와 연계될 수 있다. 빈집 증가는 나아가 지역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그럼에도 빈집 소유주들은 복잡한 소유관계나 개인 사정 등이 얽혀 있어서 관리가 쉽지 않다. 올해부터 행안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중앙부처가 지자체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빈집을 방치하는 것은 주민의 삶터를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무관심이다. 전국적으로 빈집과 공터를 새로운 개념의 주민 편익 시설 등 공익 시설로 탈바꿈시켜 성공한 사례들은 많다. 국비나 지방예산 등 세금을 들여서 찔끔 흉내만 내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민간의 사업참여까지 견인해낼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날로 증가하는 빈집들을 전화위복의 시설로 활용할 더 많은 지혜가 절실하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행복한 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1392년 조선이 한양에 개국하고 3년후 경복궁을 건립하면서 정문을 세웠다. 세종 때 정문을 광화문으로 명명하여 오늘에 까지 이어진다. 광화문 앞 거리는 육조(六曹)거리 라고 불리우고 양 옆으로 조선시대의 중심지였다. 육조거리를 중심으로 국정이 논의되고 시장이 열렸다. 지금은 육조거리가 세종로거리로 지명이 바뀌어 정치의 광장이 되고 있다.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곳에서 탄핵의 찬⦁반을 둘러싸고 함성소리가 장안을 가른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지만 주장하는 목소리는 상반된다. 이제 우리는 가뿐 숨을 멈추고 광화문으로부터 들려오는 역사의 소리를 들어보자.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 때에 허물어지고 1865년 대원군에 의해 복원되었다. 복원된 광화문이 다시 허물어지질 위기를 맞은 것은 일제시기였다. 일제는 경복궁 경내에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광화문을 철거하려고 하였다. 이때 광화문 철거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울린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생명이 조석(朝夕)에 절박하였다. 네가 이 세상에 있다는 기억이 냉랭한 망각 가운데 장사(葬事) 되어 버리려 한다” 이것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목소리였다. 1922년 그는 광화문이 철거되는 것을 통분히 여겨 일본잡지 <개조>에 글을 올린다. “사라져 가려고 하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 라는 제목의 그의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총독부는 광화문 철거를 포기하고 동편으로 이전하였다. 그로 인해 2010년 광화문을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 노력한 일본인의 목소리가 광화문을 지켜 준 것이다. 1984년 한국정부는 그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듣는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노라. 내가 이를 위해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것이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이것은 1446년 10월 9일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 서문이다. 당시 공용문자인 한자를 사용하지 못하는 백성이 90% 이상이었다. 한자를 익혀 사용하기 까지에는 6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한글을 익히는 것은 한 두 주일이면 된다. 대신들은 사대부가 조선의 뿌리라고 생각하고 한글 창제가 성리학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백성이 이치를 깨닫고 정치로 향하게 되면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세종은 백성을 신뢰하며 문자를 창제하였다. 창제자가 누구인지 밝혀진 문자 중에서 한글의 창제는 선구적이다. 당시 세계는 르네상스(문예부흥) 아래에서 학문과 문화, 과학기술의 발전이 풍미하던 시기였다. 세계사적 흐름속에서 내·외의 반대속에서도 세종이 한글을 만든 것은 자주성의 표본이다. 광화문에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광화문에 나서는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들려오는 역사의 생생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에 우리는 내 나라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외세에 의탁하지 않고 주권자인 국민의 손으로 민주공화국을 세워야 한다.
요즘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곧 퇴사를 앞둔 지인 K씨의 사연을 소개해본다. 50대 여성인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회사에서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버겁다고 했다. 이직조차 순탄치 않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는 어느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다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자기 또래의 여성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최근 들어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언제까지 회사에서 버틸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한 후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모습이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직장을 다니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던 그였다. 그러나 현실이란 벽 앞에서 ‘직장’이라는 조직을 졸업할 때가 됐다는 걸 그는 결국 인정했다. 그가 퇴사 후 제2의 직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일은 다소 의외였다. 바로 장례지도사. 고인의 마지막 길을 경건하게 배웅하는 의미있는 일이긴 하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다. 솔직히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울부짖음을 바라보는 것도 버겁고, 차갑게 굳은 고인과 단둘이 한 공간에 머물 자신도 없다. 마지막 숨을 조용히 거둔 사람도 있겠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생을 마감한 분의 안타까운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두렵다. 가냘픈 외모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말이 나온 탓에 그 말을 들은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살아있음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누구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걸 가슴으로 이해하게 됐다며, 고인 한 분 한 분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드리면 뿌듯할 거라고, 삶을 대하는 긍정적 자세를 갖게 될 거라고 했다. 며칠 후 그는 곧장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다. 본격적으로 장례지도사 준비에 착수하겠단다. 발 빠른 실행력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하는 일은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로’라는 건 입시 때 한 번, 대학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며 또 한 번 겪으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언젠가는 기존의 삶에서 궤도를 바꿔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던 삶을 바꾸고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들이 좋다는 일이 보이면 새로운 경쟁에 또다시 휩쓸리기도 한다. 조금 이상적일 수 있으나,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시작할 때는 원하는 일에 한발짝 다가갔으면 한다. 근사해 보이지 않아도 자신에게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어쩌면 많은 이들이 중년의 나이에도 방황하는 이유는 원하는 일을 제대로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장례지도사를 준비하겠다는 K씨를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유를 듣고 보니 그와 잘 어울리는 일 같다. 의미가 없으면 흥미를 잃는 그에겐 누군가의 마지막을 곱게 단장하고 마무리하는 일이 고귀하게 여겨졌을 테니. 그를 보며 깨달았다. 어쩌면 퇴직 후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