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거리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독감과 코로나19 예방접종을 권장하는 지자체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추위가 몰려오는 환절기에는 자연스럽게 아픈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주거복지 현장에서 접하는, 불안정한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의 상황이 더욱 우려된다. 건설·봉제·요식업 등 분야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라도 일을 쉬면 그만큼의 일당을 잃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일터를 떠날 수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규모 있는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아플 경우 유급 병가를 통해 회복의 시간을 보장받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먼 이야기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내건 구호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권고에 불과했다. 일을 쉬는 순간 곧바로 생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해서 일을 이어가다 병이 악화되고, 다시 일하지 못하며 빈곤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22년, 한국 사회는 ‘아플 때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상병수당’을 시범적으로 도입하였다. 상병수당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일정한 소득을 보전해주는 사회보장제도다. 이 제도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OECD 38개국 중 한국과 미국 일부 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운영 중이며, 국제사회보장협회 회원국의 90% 이상이 상병수당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7월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2025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했지만, 최근 정부는 제도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입 시점을 2027년 하반기로 연기했다. ‘아플 때 쉴 권리’가 세계의 보편적 제도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여전히 시범사업의 문턱을 넘어가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3년 가까이 시범사업을 이어왔음에도 제도화가 지연된 현실은 매우 아쉽다. 더욱이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낮은 예산 집행률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만 사업이 시행되다 보니 제도 인지도가 낮았고, 참여 의료기관도 제한적이어서 국민이 제도를 실제로 이용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게다가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상병수당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누구나 아플 수 있음에도, 제도 안에서 ‘누구나’가 충분히 보호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상병수당의 전면 도입이 늦춰진 것은 분명 아쉽지만, 그만큼 제도를 더 세심하게 다듬을 시간이기도 하다. 상병수당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아파도 쉬지 못할까?”라는 질문에 “누구나 아프면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쉴 수 있다”고 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질병이 생계의 위기가 아닌, 회복과 재생산의 시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기본적 삶을 위한 안전망 강화’에 상병수당이 포함된 만큼 상병수당이 하루빨리 안정적이고 포괄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나는 요즘 TV 예능프로에서 근대사 강연을 종종 시청한다. 유명 강사들은 우리 역사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강연함으로써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가 지나치게 예능화 되고 상업화 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 중 하나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화와 왜곡이다. 역사적 사건은 복잡한 맥락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TV에서는 그 맥락을 단선적으로 구성하거나, 인물의 행적을 극적 서사로 꾸미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개항기나 일제강점기의 사건들을 지나치게 ‘선과 악’으로 양분함으로써 역사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배경을 단순화시켜 버린다. 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역사를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한 예로 명성황후의 경우가 그러하다. 명성황후는 우리 근대사의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워 주는 인물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검증도 잘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강사 중에는 학문적 연구보다 대중적 인기에 부합하기 위해 재미위주로 강의를 진행한다. 따라서 사실관계의 오류나 과도한 해석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역사 강연이 일종의 ‘역사 예능’으로 소비되며, 교육적 깊이보다 흥미 위주의 콘텐츠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시청자의 무비판적 수용 역시 문제가 된다. 쇼 형식의 강의임에도 수강자는 어느 새 흠뻑 빠져들어 강사가 하는 이야기를 무의식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이는 역사 이해를 다원적 탐구 과정이 아닌 일종의 신앙적 믿음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가치나 이념적 편향의 문제도 제기된다. 특정 관점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거나, 현재의 정치 현실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애써 연결 지어 시청자의 정치적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역사 교육이 지녀야 할 객관성과 비판적 사고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역사 인식을 이분법적 사고에 가두는 결과를 낳게 된다. 역사 강연은 대중적 흥미 유발뿐만 아니라 사실 검증, 다양한 시각의 소개, 청중의 비판적 사고 함양이라는 교육적 책임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에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떻게 다루어지는 것이 좋을까? 현재의 대한민국은 누가 뭐래도 위대하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근대화를 꿈꿀 희망조차 없게 철저히 약탈당하고 6.25전쟁으로 처참히 파괴되었던 폐허 위에서 우리가 초단시간에 근대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달성한 것은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 눈부신 과정에는 선조들의 치적뿐만 아니라 과오, 그리고 백성들의 처절한 피와 땀, 그리고 희생과 한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따라서 우리의 진실 된 역사는 교과서에 실린 영웅담이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강사들이 들려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조선왕조의 그릇된 정치와 잘못된 선택으로 어려움에 처했던 적도 많았고 대한민국 수립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도 도덕적이지 않고 정의롭지 못했던 역사의 장면들이 많다. 역사를 아름다운 면만 부각시켜 한편의 서사로 장식하기보다 지성의 눈으로 그 속살까지 바르게 볼 때 우리는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친부모를 알 수 없는 아동에게 정부가 임의로 부여한 ‘기아(棄兒) 호적’이 3만 80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들은 가족을 찾는 일이 막막한 것으로 드러났다. 첨단 전자정보로 인해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아진 요즘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니 예상치 못한 사각지대의 허점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DNA 등록을 통해 가족 연결이 가능하도록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산(離散)의 아픔은 인간이 견디기 힘든 극단적 고통 중 하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수진(민주·성남중원) 의원이 28일 대법원으로부터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7년까지 대법원이 발급한 기아 호적은 3만 8361건으로 기록됐다. 기아 호적은 호주제 폐지로 호적법을 대체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2008년에 시행되면서 2007년까지 시행된 제도다. 부모와 떨어진 아동이 본인의 정보를 기억하지 못한 채 가족을 찾지 못한 경우 정부가 아동에게 임의로 호적을 발급해 시설에서 보호하게 하거나 입양을 보내기 위해 사용됐다. 가장 많은 기아 호적이 발급된 해는 1999년으로 4025건이다. 그다음으로는 2003년 3412건, 2001년 3046건으로 집계됐다. 17개 시도 중 기아 호적이 많이 발급된 지역으로는 서울 2만 7456건으로 가장 많고, 부산 3869건, 경기 1379건 순이다. 그렇게 입양된 이들에게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가족 찾기를 위해 정보공개청구 열람을 안내하고 있지만, 이들이 성인이 된 후 가족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오기(誤記)되거나 임의로 작성된 기아 호적을 발급받아 시설에서 자란 경우 가족을 찾을 방법은 DNA 확인이 유일하다. 하지만 관련 법 제도가 이를 전혀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42년 전 KBS 1TV에서 방영된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의 기적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동년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138일, 총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했던 이 생방송 프로그램은 지구촌 인류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면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최고의 휴먼드라마였다. KBS 내부 인력과 전화를 받는 대학생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이 방송 기간에 동원된 인력만 1000명에 육박한다. 이산가족 5만여 명이 여의도를 찾았는데 방송에서는 10만 952건이 접수되었다. 그중 5만 3536건이 방송되었고 결과적으로 1만 189가족이 재회할 수 있었다. 이산가족이라고 하면 남북으로 갈라진 가족들만을 일반적으로 떠올리던 시대에 이 프로그램은 남한 국내, 그리고 남한과 해외에서 그렇게 많은 가족이 이산(離散)의 아픔을 겪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새롭게 각인시켰다. 현행 아동복지법, 국내·국제입양에 관한 특별법 등 입양과 관련된 법에는 정보공개 청구 권한에 관한 내용만 있을 뿐, 정부가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이수진 의원은 “과거 아동보호시설이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길 잃은 아동을 강제로 시설에 데려오는 일이 많았다”면서 “가족 찾기 DNA 등록 관련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전문가들은 가족을 찾고 싶은 사람들만이라도 대상으로 하여 당사자 동의를 얻어 정부가 DNA를 등록하고 가족을 찾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늘 가족과 함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절한 고통을 깊이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의도적인 이별이나 소통 단절의 경우는 예외일 수 있지만, ‘기아 호적자’처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과 헤어져 평생 그리워하고 사는 이들의 고통만큼은 국가사회가 해결해주는 게 맞다. DNA 등록과 대조 과정을 통해서 작지만 견디기 힘든 깊은 고통을 덜어주는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많이 쓰였는데, 요즘 와서는 그 쓰임이 현저하게 줄어든 말로 ‘교양’이란 말을 들고 싶다. ‘애국심’, ‘효도’, ‘순종’, ‘인내’ 등과 같은 말도 그런 편에 드는 것 같다. ‘교양’을 비롯하여, 위에 나열한 말들이 품고 있는 어떤 가치가 요즘 사람들에게 크게 호소력을 발휘치 못하는 현상을 언어가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의 가치인 듯한데, 그런 가치도 이렇게 시대의 흐름(時流)이나 인심의 쏠림에 영향을 받는다. ‘교양’이란 말이 지닌 의미가 퇴색해 보이고, 올드(old)해 보인다면, 그건 교양의 쇠퇴를 암시한다. 교양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가갔지만, 어떤 매력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리라. 게다가 교양의 자리로 밀고 들어 온 다른 가치들의 기세가 참으로 드세다. 당장의 실용적 쓰임이 약하고, 돈벌이에 써먹기에는 거리가 먼 ‘교양’은, 힘센 기술 지식(knowledge of technology)의 도도한 진군에 밀려나고 있다. 실제로 대학의 교양 영역 커리큘럼에 이러한 기술 교양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교양’이란 말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곳이 있다. ‘교양’은 표준어를 규정하는 조건이 되어서 당당하게 살아 있다. 우리말 표준어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처음 정해졌다. 당시 조선어학회는 표준어 사정(査定) 원칙을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정했었다. 그로부터 55년 뒤 1988년 정부는 ‘표준어 규정’을 개정했는데,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 사정 원칙으로 삼았다. ‘중류 사회’라는 계층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 개정의 핵심이었다. 표준어 사용과 관련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의 모델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교양의 개념이 다양하게 파생, 변천해 간 데서 생기는 어려움이다. 실제로 ‘교양’은 지식과 학문을 닦아 인격으로 내면화된 품성의 차원이 있는가 하면, 교통 규칙을 어긴 운전자에게 벌칙으로 부과하는 일정 기간의 교육을 ‘교양’으로 부르기도 하는, 그런 차원의 교양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교양 있는’은 바로 우리가 사용해야 할 표준어의 자질에 해당하는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교양 있다’는 말은 품위 있고 세련된 ‘언행’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표준어를 일상의 언행으로 실행함으로써 ‘교양 있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양 있는 사람’이란 그 진경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교양 있음’이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데서 교양의 진정한 경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교양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진정한 교양에서 멀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속물이라 한다. 그런데 여간 숨기려 해도 교양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 '언행'이다. 표준어 규정에 ‘교양 있는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은 그래서 적실하다. 다른 어떤 규범 규정에 ‘교양 있는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보다도 표준어 규정이 들어가 있는 것이 맞다. 맞아떨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통령경호처가 작년 4월 공동 발주한 연구개발 과제, ‘지능형 유무인 복합 경비안전 기술개발사업’이 논란에 휩싸였다. 총 240억 원이 투입될 계획이었던 이 사업은 군중 속에서 위험 행동을 사전에 인식하고, 생체신호를 분석해 긴장도를 탐지함으로써 잠재적 위험 인물을 식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당 인공지능 시스템은 이동형 카메라, 로봇, 드론 등 다양한 장비를 투입하여 원거리에서도 군중의 행태를 분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즉, 과기부와 경호처는 군중 감시 인공지능을 개발하려 한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윤리 사전검토도 받지 않았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실제 적용 대상이 사실상 국민 전체이며, 수집 및 처리하게 될 데이터가 극히 민감한 생체정보에 해당함에도 어떠한 윤리 검토도 없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왜 이런 연구과제가 발주되었을까. 과제 공고문은 문제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기존의 ‘차단·분리형’ 경호 방식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줄이고 ‘개방형 경비안전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요약하자면, 이번 군중 감시 인공지능은 국민 안전과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주권자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감시해달라고 요청했는가. 연구과제를 발주한 과기부와 경호처는 감시의 일상화를 국민 편의로 정당화하려 하는가. 더군다나 해당 과제의 수요기관은 대통령경호처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은 경호 대상을 전·현직 대통령과 그 가족으로 한정한다. 결국 문제의 연구과제는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기술을 활용해 국민을 프로파일링한, 국가 주도 감시 사회로의 퇴행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사회단체의 비판과 언론 보도 이후 문제의 연구과제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연구 중단이 곧 사태의 종결을 뜻하진 않는다. 연구윤리 검토 절차의 무시, 그리고 기술의 본질적 목적에 대한 사회적 논의 부족 등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한국은 감시 기술의 등장을 막을 법적 장치도 취약하다. 개인의 범죄 가능성을 평가하거나 예측하는 인공지능을 ‘허용할 수 없는 위험(Unacceptable risk)’으로 분류해 금지하는 EU AI법과 달리, 한국의 AI 기본법은 고영향 인공지능이 서비스되기 전에 검인증과 기본권 영향평가를 받도록 “노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제2, 제3의 감시형 인공지능은 얼마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문제의 해법은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성찰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기술은 그것을 설계, 개발, 배포하고 사용하는 주체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통제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해치지 않는 인공지능은 기술 개발 전 과정에 민주적 통제와 윤리적 책임이 스며들어 있을 때만 나타날 수 있다. 감시가 아닌 신뢰, 통제가 아닌 투명성 위에서만 진정한 기술 강국을 이룰 수 있다. 더 정교한 감시 시스템이 아니라, 더 성숙한 기술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22일 용인 소재 ㈜셀로맥스 사이언스를 방문, 김성락 총괄사장과 임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주4.5일제가 생산성과 워라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주4.5일제 시범사업에 참여 중이다. 주4.5일제는 금요일 오후를 법정휴무로 편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 4일 반만 근무하는 노동제도다. 김 지사가 셀로맥스 사이언스를 방문한 이유는 이 기업이 실시하고 있는 주4.5일제가 임직원들의 삶에 변화를 주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 지사의 기대대로 직원들은 만족감을 보였다고 한다. 한 직원은 아이랑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커진 변화라고 밝혔다. “그전에는 아이와 시간을 못 보냈는데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고 학교 숙제를 도와주거나 몸으로 놀아주는 시간이 늘다 보니까 친밀감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할 수 있어 삶의 질이 나아졌다” “자기개발을 할 시간이 생겨 꽃꽂이 수업도 듣고 필라테스로 건강관리도 하게 됐다”는 직원도 있었다. 이 기업은 지난 7월부터 경기도 주 4.5일제 시범사업 기업으로 선정돼 주 35시간제를 운영하고 있다. 도는 주4.5일제 장려금과 근태관리시스템 및 정착컨설팅, 일하는 방식 개선 컨설팅 등의 지원을 해왔다. “구성원들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생산성이 내려갈 일은 없다고 본다”는 김성락 총괄사장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사장은 도태되지 않으려면 이 변화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앞으로는 재택근무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경기도의 주4.5일제 시범사업은 임금 삭감 없는 선택형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건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경기도 내 기업 중 104개 기업과 1개 공공기관이 시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은 노사 합의를 통해 ▲주4.5일제 ▲주 35시간제 또는 36시간제 ▲격주 주4일제 ▲혼합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도는 선정된 기업에 노동자 1인당 월 최대 26만 원(주 5시간 단축 기준)의 임금 보전 장려금, 기업당 최대 2000만 원 한도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업무 프로세스·공정 개선 컨설팅, 근태관리시스템 구축 등을 지원한다. 4.5일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도 이 내용이 포함됐다. 2027년까지 연간 노동시간을 현재 1859시간에서 OECD 평균인 1717시간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김 지사는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활용하게 되면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노동, 헛된 노동도 없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실제로 셀로맥스 사이언스의 사례처럼 일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주4.5일제 시범 운영은 생산성 유지, 근로자 만족, 지역경제 활성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반면 경영계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한다. 임금 인상과 생산성 저하 등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들의 반대가 크다.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지난 1일 고용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과도한 인건비 부담 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4.5일제 도입은 생존 벼랑 끝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에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주휴수당이 유지된 채로 주4.5일제가 실시되면, 5.5일치 기본급에 더해 휴일수당 및 초과근무 수당으로 1.5~2배의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치영 회장은 “내년도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1만2384원이다. 주휴수당이 추가 인건비 부담을 16.7% 증가시켰다”면서 ‘주휴수당 폐지 없는 주4.5일제’를 반대하기 위한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정부는 주4.5일제를 걱정하는 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따라서 주4.5일제는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성공할 수 있다.
미국의 성씨는 대장장이 스미스, 제분업자 밀러처럼 가족의 역사와 뿌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지금 세계를 관세 폭풍 속에 몰아넣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의 이름이 부상하기 전에는 트럼프란 하트, 다이아몬드, 클럽, 스페이드 4종류의 슈트와 조커가 끼어 있는 53장의 카드를 떠올리게 했던 말이다. 그래서인지 ‘트럼프(trump)’ 라는 말은 ‘으뜸패(를 내놓다)’, ‘이기다’라는 뜻도 있고, ‘누명’이나 ‘비방’이라는 비유적인 뜻도 있다. 부동산 사업자와 기업가로 명성을 날렸고, 45대 이후 47대까지 미국 대통령에 두 번이나 당선된 그는 ‘트럼프’ 가문의 사람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 각국과 19~20% 수준으로 무역협상을 마무리 짓고, 태국과 캄보디아 간 평화협정문에 공동성명도 했다. 특히 말레이시아로부터는 핵심 광물과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거나 할당제를 두지 않기로 하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희토류 수출 통제를 예고했던 중국에 견제의 메시지를 던졌다. 다음 날 일본으로 간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방위비 증액과 관세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5천500억 달러 대미 투자 건을 협의하고,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에서 만든 일본 차를 ‘역수입’하는 방안과 함께 미국산 대두나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구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 언론들은 미국이 일본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까지 늘리고, 주일미군 주둔 경비부담액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점쳐왔는데, 그 결과는 임박했다. 10월 31일과 11월 1일 양일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개최된다. 23일 열린 APEC 재무·구조개혁장관회의에서 의장국인 우리나라는 역내 경제전망, 혁신, 디지털금융, 재정정책 등 4가지 주제를 주도하여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했다. 27, 28 양일에는 APEC 최종고위관리회의를, 29, 30 양일에는 APEC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를 열어 의제를 공유하며 정상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일본 순방을 마치고 29일 한국으로 들어오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정상회의 이틀째 날엔 불참한다고 예고했다. 회원국 정상들이 회의를 마치며 함께 서 기념 촬영하는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던 미중 정상회담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1년 미루고, 미국도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함으로써 30일 부산에서 열리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는데, 이것이 미중 정상회담 성사의 지렛대가 되었을 것이다. 한미 양국 간 무역협상은 이번에 타결될 수 있을 것인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6일과 22일 두 차례 워싱턴을 방문하여 쟁점들에 대해 회담했지만,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두 정상의 결단에 따른 결과로 남게 되었다. 대통령에 출마하기 한참 전 트럼프가 출간한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1987, 2015)을 보면 대통령이 된 그의 지금 행적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된다. 나라마다 이 책을 분석하고, 그의 협상법을 역이용하며 이번 무역 전쟁의 전략을 세웠다고 할 정도다. 그의 저서가 알려주고 있다. 트럼프는 항상 자신이 유리한 지점을 만들고 그것을 협상에 이용한다. 그의 압박은 ‘협상용’인 경우가 많으므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되 지나치게 압박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관세 인하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투자·산업협력을 맞물리게 하는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의 관심사에 맞춘 새로운 거래 구조를 만들어라. 트럼프의 협상은 종종 예측불가하며, 마지막 순간에 뒤집기가 일어나기도 하므로 끈질기게, 그리고 즐겁게 협상에 임하라. 대한상공회의소와 딜로이트 컨설팅 분석에 의하면, APEC 개최로 인한 경제효과는 약 7조 4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겪었던 여러 어려움을 만회할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인공지능(AI)은 일상생활과 업무 전반에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특히 유용한 콘텐츠 생산 도구로서 AI에 대한 활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져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많지만, 이용을 막을 수는 없다. 뉴스라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AI 활용이 주는 효율성은 이미 저널리즘을 변화시키고 있다. 뉴스콘텐츠 품질과 관련된 여러 우려와 함께 탐사보도·심층보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생존전략은 상식이 됐다. 뉴스콘텐츠 생산 보조 도구로서 AI 활용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많다. 그럼에도 언론사와 AI기업의 갈등은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외 많은 언론사는 AI기업과 소송 중이다. 뉴스저작권과 공정이용을 둘러싸고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뉴스콘텐츠 이용 계약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저명한 거대 언론사의 얘기다. 다른 많은 언론사는 해결 방안을 찾기가 난망하다. 일단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AI 서비스에서 뉴스콘텐츠의 기여분을 증명해야 한다. 지난 7월 미국의 AI 기반 브랜드 마케팅 회사인 제너레이티브 펄스(Generative Pulse)는 ‘AI는 무엇을 읽고 있나?(What Is AI Reading?)’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대표적 AI 서비스인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 클로드(Claude)의 인용 출처를 분석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AI가 인용한 출처의 27%가 저널리즘 콘텐츠였다. 이중 최신성과 관련된 질문만을 보면, 49%에 해당한다. 물론 이들 AI는 로이터, AP, 파이낸셜타임스 등과 같이 잘 알려진 신뢰할 수 있는 출처, 즉 저명한 거대 언론사의 콘텐츠를 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널리즘 콘텐츠는 주관적 질문보다는 객관적 질문에서 더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AI 서비스별로 저널리즘 콘텐츠 인용에 차이가 있었다. 챗지피티와 제미나이가 클로드보다 저널리즘 콘텐츠를 훨씬 더 많이 인용했다. 한편, 이들 AI의 유료 콘텐츠 인용은 5% 미만이었다. 언론산업 입장에선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로 증명된 순간이다. 이제 대응이 남는다. AI 기업은 수많은 언론사 중 일부와 계약하면 그만이라는 견해일 것이다. 언론사가 AI기업과 맺는 개별 계약을 막을 방법이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얼마나 평등한 조건에서 합리적으로 계약이 이뤄지는지는 살펴봐야 한다. 계약 내용의 상당수가 기술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언론사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때 언론사와 AI기업 간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 이 표준계약서를 근거로 해 개별 언론사는 AI기업과 뉴스콘텐츠 데이터 이용 계약에서 고려하고 점검해야 할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은 뉴스콘텐츠 데이터의 이용 목적과 방법, 뉴스저작권 및 뉴스콘텐츠 보호 방안, 보상의 형태와 비용 산정 방식, 명시적인 계약 조건과 법적 내용, 기술 지원 및 협력 내용, 모니터링 및 투명성 보고 등과 관련된 사항으로 촘촘히 구성돼야 한다. 특히 뉴스콘텐츠 데이터의 이용 범위와 보호, 보상을 위한 뉴스콘텐츠 가격의 산정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계약 당사자인 언론사와 AI기업 간 공정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제정과 보급에 국가행정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이 중점적으로 힘을 쏟고 있는 학교시설 개방 정책에 대한 도민들의 호응도가 높다. 학교시설 개방은 생활체육 공간 부족 해소와 주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학생 안전 문제와 무단 훼손·오염되는 부작용에 대한 예방책이 완벽하게 수반될 때 비로소 정책 목적이 극대화될 수 있다. 확산하고 있는 개방 정책 시행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 당국 및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경기도교육청이 주민 호응도가 높은 학교시설 개방 정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부천교육지원청이 협업 모델 구축을 통해 정책을 선도하고 있는 이 정책은 일단 주민 호응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 부천 관내 초·중학교 11곳이 운동장·체육관·주차장을 개방 중인 부천교육지원청의 만족도 조사에서 긍정 응답이 94%에 달했다. 신규 신청도 꾸준히 늘고 있다. 도교육청은 27일 부천시 신도초등학교에서 ‘학교시설 개방 계획과 우수 사례’발표회를 개최했다. 부천교육지원청은 가장 활발한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천교육지원청은 도내에서 부천이 유일하게 부천시·부천도시공사·학교와 ‘학교시설 개방 위탁 협약’을 맺고, 부천도시공사가 관리 인력을 학교에 파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파견 인력은 체육 프로그램 운영, 이용객 접수, 시설 유지관리를 맡아 주민의 이용 편의를 돕는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3월 ‘학교시설 개방 활성화 추진단’을 구성하고 2025년도 제1차 협의회를 개최했다. 추진단은 도교육청 행정국장을 단장으로 경기도의회, 지자체, 학교, 경기도체육회 소속 직원 등 16명의 위원으로 구성했다. 이어서 학교와 지역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고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8월 전국 최초로 실무형 지침서인 ‘학교시설 개방 길라잡이’를 제작·보급했다. 특히 학교시설 사용 절차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용자 표준안’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이용자의 책임 있는 사용을 유도하고 학교의 부담을 완화한다. 학교는 지침서에 부담을 덜고 이용자는 만족하는 학교시설 개방 문화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학교시설 개방 정책에 대한 일선 시·군의 반응은 뜨겁다. 안산시는 지난 3월 관내 8개 학교와 ‘학교시설 개방 활성화를 위한 실무 협약’을 체결했다. 고양시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학교체육시설 공유 활성화 사업’을 통해 올해 1억 9800만 원에 이어 내년에도 1억 4600만 원의 국비를 추가 확보에 성공했다. 군포의왕교육지원청도 관내 4개 학교와 ‘학교시설 개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역주민을 위해 체육시설을 개방했다. 학교시설 개방은 분명히 지역사회와 학생 모두의 삶을 증진하는데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이용자 무질서, 안전 문제, 학교 부담 등 부작용에 대한 온전한 대책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소기의 목적 달성이 가능하다. 시설의 무단 사용이나 무분별한 행위 등에 대한 페널티와 함께 이용 주민들의 인식 제고 방안도 당연히 뒷받침돼야 한다. 범죄 위험 등으로 인해 한동안 학교시설은 외부와 차단하는 정책이 우선적으로 시행됐다. 그러나 주민들을 위한 편의 및 여가 시설이 태부족한 현실이 시대변화에 발맞춰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극적으로 불러 왔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는 현실에 대한 뒤늦은 자각인 셈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2025년 학교시설 개방 활성화 학교장 연수’ 자리에서 “학교시설 개방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한 매듭씩 풀어가면 지역민들의 소중한 인프라인 학교시설의 효용성을 극대화할 방안들이 하나씩 채워져 주민들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정책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학교시설 개방’은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만들어갈 만한 좋은 정책 주제다.
얼마 전 우연히 읽은 신문 기사가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손편지가 붙었다. 그것은 갓난아기를 낳은 부부가 아이 울음소리에 불편을 겪을 이웃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편지글이었다. 예의를 갖춘 부부의 편지는 아름다웠고, 이웃들은 편지에 축하의 메시지를 가득 채웠다. 기사에는 이웃들이 남긴 메시지가 소개되었는데, 그중에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한 구절을 만났다. 그것은 “우리 모두 울면서 자랐습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짧고 단순하지만 뜨거운 문장이었다. 어딘가에 숨어있던 나의 울음이 곧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태어난다는 건 세상에 울음을 들려주는 일이다. 우리는 울음소리로 세상에 나를 알렸다. 나의 존재는 울음으로 시작되었으니, 울음의 기원은 탄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배가 고프면 울고, 외로우면 울고, 아프면 울었다.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세상에 닿는 방식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며 자랐다. 그 울음에 누군가는 달려왔고, 누군가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울음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울음은 생의 첫 언어이자 관계의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 순간 울음을 멈췄다. 울음을 참을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른에게 울음은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이것을 울음의 구속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그런데 문제는 단지 울지 못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여전히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도 참아지지 않는 울음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듣지 않음으로 평화를 유지한다. 귀를 막고, 눈을 피하고, 모르는 척함으로 질서를 지킨다. 무관심은 생존의 기술이 된다. 울음이 멈춘 세상은 점점 조용해지고,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서로 멀어진다. 들리지 않는 울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더 많은 사건을 만들어 내고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울음으로 매 순간 탄생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울음 속에서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등을 두드려주며 살아가야 하는 어린, 어른들이지 않을까. 아이도 어른도, 아프고 배고프고, 외로우면 우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울고, 억울하면 우는 것이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라고,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지니고 왔을 것이다. 아이의 울음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마음으로 이웃의 울음을 들어줄 귀가 있으면 좋겠다. 어디선가 숨죽여 우는 사람들의 흐느낌이 잘 들리도록 그 귀가 예민하게 살아나면 좋겠다. 그래서 아무도 버려두지 않는 세상이기를. 아이 울음소리를 염려해 미리 이해를 구한 젊은 부부의 지혜와 축하의 메시지로 응답한 어느 아파트의 이웃들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더 나아가면 서로를 품으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어 본다. 층간소음보다 이웃의 울음소리를 듣는 귀가 필요한 시절이다. 날씨가 추워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나무의 뒤척임조차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바람이 몰고 온 소리에는 우리가 들어주지 못한 울음이 섞여 있는 것만 같다. 어디선가 울고 있을 사람들의 웅크린 등이 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