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들어가서 1962년 8월 체포되기까지 그는 집권당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는 운동을 펼쳤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어 있는 동안 남아공 흑인들과 세계 각국 재야인사들은 그의 석방운동을 벌였다. 결국 1990년 2월, 여론의 압박을 못이긴 더클레르크 대통령은 복역한지 27년 만에 그를 석방했고, 아프리카민족회의를 합법화했다. 만델라는 이후 남아공 정부 및 정당들과 협상을 벌여 1991년에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시키고, 1993년에는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그해 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흑인이 대다수인 남아공에서 흑인들에게 첫 투표권이 주어진 1994년 총선이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과반이 훨씬 넘는 의석을 확보하여 국민당, 잉카타 자유당과 거국정부를 구성했고, 다수당 대표로서 만델라는 남아공에서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첫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에 취임하며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해 과거의 인권침해 범죄 사실들을 낱낱이 밝혔지만 모두 사면했다. “용서는 하되 잊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며, 오히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함께 뭉쳐 위기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만델라의 리더십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오랜 기간 아파르트헤이트로 분열됐던 사회는 새로운 리더십 아래서도 여전히 분열과 불안 속에 있었다. 만델라는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럭비’에 주목했다. 당시 럭비는 백인들의 상징이었고, 흑인 대중에게는 오히려 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럭비 국가대표팀 ‘스프링복스’가 자국에서 열리는 1995년 월드컵에서 승리한다면 그 기쁨이 인종차별을 넘어선 통합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프링복스의 주장 프랑수아 피나르를 만나 자신의 뜻을 전했다. 대통령의 진정성을 알게 된 프랑수아는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백인인 팀원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경기에 전념하면서, 점점 국민들의 응원을 받게 된다. 드디어 결승전. 남아공은 세계 최강 뉴질랜드를 맞아 고전했지만, 기적 같은 승리를 이루며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 날의 승리는 단순히 결승전에서의 우승이 아니라 국민 대통합을 이룬 역사적 사건이었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실화를 영화 ‘인빅터스(Invictus, 2009년 개봉)’에 담담히 전개하며,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큰 울림을 남겼다. 만델라 최후의 자서전으로 불리는 「나 자신과의 대화」(2010)는 넬슨만델라재단이 만델라가 남긴 일지, 서신, 일기, 메모 등을 수집하여 그대로 담은 책이다. 그 책 마지막 쳅터에 대통령 임기 막바지인 1998년 10월 16일에 써 둔, 그의 저서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1994) 속편 초고의 다음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노련한 자유의 투사들을 가지고도 농간을 부렸다. 한 때 혁명가였던 사람들이 탐욕에 쉽사리 굴복하는 일이 빈번했고, 개인의 치부를 위해 공공 자원을 전용하는 행태들이 결국 그들을 제압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목표를 거스름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국민 대다수를 저버리고 이전 억압자들의 대열에 합류해,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강탈해 치부를 했다.” 1996년에 대통령 5년 임기를 연임할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되었고, 당시 만델라 지지율이 80%에 달했지만, 재선 출마를 하지 않고 퇴임했던 이유를 그가 남긴 글에서 확인하게 된다. 만델라의 신념과 경계심, 그리고 그의 리더십을 우리나라 6·3 조기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래본다.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의 레스토랑에서는 만찬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도시마다 훌륭한 식당들은 많은 손님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 무척이나 분주하다.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에 따르면 미국 전 지역 풀 서비스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종업원 수보다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종업원 수가 1.8배나 많다. 그러나 맨해튼에는 식료품점보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무려 4.7배나 많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과는 달리 언제든지 외식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능력이 입증된 요리사들이 제공하는 요리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요리사들이 최고급으로 갖춰진 공간에서 먼 나라로부터 조달해 온 신선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또 그들은 지리적으로 다양한 요리 스타일을 섞어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고 특화된 레스토랑들에서 맛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레스토랑은 원래 요리로 사람들을 끌어오는 장소라는 의미로 18세기 후반에 파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세계 최초의 레스토랑은 마튀랭 로즈 드 샹투아조(Mathurin Roze de Chantoiseau)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스토랑이 먹는 곳이란 뜻을 갖게 된 것은 로즈가 그곳에서 파리 사람들에게 건강식 수프를 팔기 시작하고부터라고 한다. 로즈가 운영한 레스토랑에서는 고객들의 자석을 따로 배치했고, 음식을 직접 주문토록 했으며, 그들이 주문한 것에 기반하여 음식값을 받았다. 당시 로즈는 요리사가 아니라 탁월한 사업가였다고 한다. 1782년에 라 그랑 타베른느 드 롱드르(La Grande Taverne de Londres)가 파리에서 오픈되었다. 식도락가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에 의하면 이곳의 요리사는 우아한 방, 똑똑한 웨이터, 포도주 저장고 그리고 뛰어난 조리법(recipe) 등 네 가지 필수적 요소를 갖췄다. 그 당시 귀족들은 개인 요리사에게 돈을 지출할 정도로 충분히 부유했으며 유일한 고객이기도 하였다. 그런 고객들은 도시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요리가 개인적 즐거움이 아닌 대중적 즐거움이 되면서 개별적 혁신과 관련된 지식은 손쉽게 전파된 것이다. 유명한 레스토랑은 도시의 고물가에 적응해 나가기 위한 한 가지 방식으로 공동의 공간을 공유했다. 어떤 면에서 도시는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공적 공간을 사회화와 과시적 소비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다. 19세기 부자들은 르 그랑 베푸(Le Grand Vefour)나 막심(Maxim’s) 같은 식당에서 부를 과시하였다고 한다. 도시는 대륙 간 요리 지식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맨해튼에 있는 델모니코스(Delmonico’s) 레스토랑은 미국에서 최초로 프랑스 요리사를 고용하여 뉴욕의 성공한 대식가를 위해서 도금시대(Gilded Age)에 즐겼던 랍스터 뉴버그(Lobster Newburg)와 베키드 알래스카(Baked Alaska)로 꾸며진 연회를 제공했다. 오늘날 런던에는 해외 인재를 데려와서 똑똑한 사람들끼리 상호학습하게 함으로써 레스토랑은 억만장자나 부자가 아니더라도 먹을 수 있고, 먹기 좋은 멋진 장소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대도시들의 레스토랑은 가장 전문화된 요리에 대한 수요를 감당해 내기 위해서 충분히 다양화되어 있다. 더 나아가 그곳에서는 고객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춰 특이한 음식들을 혼합한 유럽 스타일 퓨전 요리를 제공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기에 지금도 맛을 찾는 사람들은 미각의 향연을 이어가고 있을 게 뻔하다.
흔히 화재는 건조하고 난방기 사용이 많은 겨울철에 집중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최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의 발표는 이러한 통념에 경종을 울립니다. 놀랍게도 지난 3년간(2022~2024년) 경기도 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는 겨울(26%)보다 오히려 여름철(28%)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둔 지금, 우리 집의 안전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3621건의 공동주택 화재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화재는 전체 주거시설 화재의 55%를 차지하며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는 부주의(44%)와 전기적 요인(37%)이 꼽혔는데,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계절용 기기에서 비롯된 화재입니다. 계절용 기기 화재 579건 중 무려 33.2%에 달하는 192건이 '에어컨'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전기장판(20.9%)이나 열선(13.8%)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더욱이 에어컨 화재의 85%가 바로 여름철에 집중 발생했습니다. 이는 냉방을 위해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철, 실외기 내부에 쌓인 먼지나 노후된 전선, 과부하 등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설마 에어컨 때문에 불이 나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화재는 발생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위험성이 크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분석 결과,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대 화재는 다른 시간대에 비해 1000건당 사망자 수가 2~3배나 높았습니다. 또한 아파트 화재 사망자 23명 중 87%인 20명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건물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화재 초기 대응 시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이에 오산소방서에서는 에어컨 실외기 내부 먼지 청소, 전선 피복 상태 확인, 연결 단자 점검 등 본격적인 사용 전 철저한 사전 점검을 통해 화재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소방시설 미설치 주택 점검 강화, 공동주택 관리자 대상 안전교육 확대, 새벽 시간대 화재 대응 훈련 등 다각적인 예방 및 대응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에어컨이나 가스레인지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전기제품일수록 방심이 가장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사전 점검과 예방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다가오는 여름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대신 '나부터 실천하자'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지금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 집 에어컨과 실외기를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은 관심과 실천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지난 2017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부터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수원시가 정책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수원시는 최근 ‘제3차 수원시 아동친화도시 조성 기본계획 수립 연구(2026~2029년) 용역 착수보고회’를 진행했다. 아동친화도시 성과는 인구절벽시대로 몰려가는 망국적 출산 기피 풍조를 개선하는 정책과 정확하게 맞물린다. 내실 있는 정책으로 수원시가 아이들의 천국이 되고 성공적인 인구소멸 대응 정책의 중심이 되길 기대한다. 아동친화도시는 1989년 196개국이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기본정신을 실천하며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이 권리를 충분히 누리면서 살아가는 도시’, ‘어린이와 청소년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말한다. 아동의 목소리와 요구, 권리가 법, 정책, 예산 등 지역사회, 지자체에 반영되어 지역 내 모든 아동이 존중받으며 생활하는 데 초점을 두는 도시다. 수원시는 한국에서 13번째로 아동친화도시로 인증받은 자치단체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동이 사는 도시다. 2017년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후 6대 핵심 영역, 12개 정책과제, 36개 세부 실천과제로 구성된 ‘제1차 아동 친화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해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아동친화조시 조성 4개년 기본계획을 지속해서 수립해 아동친화 중점사업을 발굴·추진하고 있다. 아동친화정책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서는 아동정책 원탁토론회를 열고 있다. 원탁토론회는 관내 아동 및 학부모, 아동친화도시 추진위원회, 아동시설관계자 등이 참석해 아동학대 예방, 아동시설 및 보건안전 등 분야별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 도출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4월 말 기준 수원시의 19세 미만 아동은 약 18만 6694명에 달한다. 2016년 ‘수원시 아동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와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에 관한 조례’를 시작으로 아동친화적 제도체계를 구축했고, 2년마다 아동친화도(兒童親和度) 조사를 실시하며,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제3차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에서는 지난해 실시한 ‘제4차 아동친화도 조사’ 결과와 ‘아동 정책 원탁토론회’에서 나온 제언을 활용, 지속 가능한 정책을 발굴하는 등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지난해 수원시의 아동친화예산은 6355억 4000만 원으로 본예산의 22.9%에 달한다. 2023년 6097억 7300만 원보다 약 0.7% 증액됐다. 또 지난해 아동 친화 관련 사업 수는 492개로, 2023년 469개 대비 23개를 늘리기도 했다. 올해는 시 지역 특성을 반영한 정책을 발굴하고 6대 영역별로 세부 과제를 제시할 계획이다. 아동권리인식향상과 영유아발달, 경제적 취약계층 아동지원, 아동학대·학교폭력 예방, 장애아동 지원 등 분야별 각 부서의 사업도 활발히 추진해 지속 가능한 아동 정책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모든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도록 한다’는 ‘아동친화도시’의 목표는 도달하기 쉬운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국가사회의 숙명적 과제인 ‘인구 절멸’ 문제와 연결해 헤아리면 ‘아동친화도시’의 목표는 우리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이상이다. 세상을 아이들의 천국으로 만들지 않고서야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마음 놓고 출산을 하라고 권유할 수 있을 것인가. 출산 기피 이유 중에는 역시 육아 등 경제적인 부담 외에 태어날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분명히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내가 낳을 아이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은 지극히 당연한 고민이다. 세상 그 어떤 조건보다도 ‘안전한 미래’ 만큼 소중한 것은 없는 게 인간사회의 상식이다. ‘아동친화도시’의 성공은 인구소멸 위기 해결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수원시가 천하제일의 ‘아동친화도시’로 착착 발전해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정조는 1789년 10월 11일 수원의 옛읍치에 현륭원을 조성했고, 1790년 2월 8일에는 현륭원을 처음으로 참배하기 위해 창덕궁을 출발했다. 그리고는 동쪽의 흥인지문으로 나가 말을 타고 뜬다리(浮橋)를 건너 과천 관아에 이르렀고, 다시 출발하여 사그내(沙斤川)에서 잠시 휴식 후 수원 관아에 이르러 밤을 보냈다. 이때 한강을 건넌 나루는 사람들이 수원을 오갈 때 일반적으로 건너던 동재기나루도, 새로 선택한 노들나루도 아니었다. 문헌 기록에 나루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으나 동쪽을 향하는 흥인지문으로 나갔다고 하니, 사도세자의 관을 영우원에서 현륭원으로 옮길 때 뜬다리를 만들어 건넜던 뚝섬나루인 것 같다. 1790년 7월 1일, 정조는 배다리 제작의 다양한 내용을 담은 규정집인 '주교지남'을 신하들에게 공표했다. 이때 배다리(舟橋)를 만들 곳으로 노들나루를 최종 선택했고, 배다리 설치를 담당할 관청인 주교사(舟橋司)도 신설하여 노들나루에 설치하기로 했다. 그 결과 1791년 1월 16일, 1792년 1월 24일, 1793년 1월 12일의 현륭원 참배 때는 창덕궁-숭례문-노들나루(배다리)-남태령-과천을 거쳐 수원의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1794년 1월 12일에는 오후 3시에 창덕궁을 출발했고, 노들나루(배다리)-남태령을 거쳐 과천행궁에 도착하여 밤을 보냈고, 다음 날 첫닭이 울자 출발하여 사근행궁에서 잠시 휴식 후 수원의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이때 날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 그날 현륭원 참배까지 다 끝내기 위해 서두른 것이다. 1794년까지만 해도 정조의 현륭원 행차는 뚝섬나루를 건너든 노들나루를 건너든 과천길을 통해 오갔다. 당시 수도 서울과 수원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동재기나루를 건너고 남태령을 넘어 과천-지지대고개-수원을 거치는 최단코스의 과천길을 통해 다녔기 때문에 다른 길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동재기나루가 아니라 뚝섬나루와 노들나루를 건너면 우회하는 것이기에 얼마간 더 멀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조의 행차는 그 길을 하루 만에 돌파했고, 그때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춘향전에는 과거급제한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전라도의 남원을 향해 지나갔던 서울-수원 구간이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부모님께 하직하고 전라도로 갈 때 남대문 밖 썩 나서서 서리, 중방, 역졸 등을 거느리고 청파역 말 잡아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 얼른 넘어 밥전거리 지나 동적이(나루)를 얼른 건너 남태령을 넘어 과천읍에 중와(점심) 하고 사그내 미륵댕이 수원 숙소(숙박) 하고 대함괴(대황교) 떡전거리 진개울 중밋 진위읍에 중와(점심) 하고…(하략)” 당연한 것이지만 암행어사 이도령은 정조의 현륭원 행차 때 배다리를 놓아 건너던 노들나루가 아니라 서울-수원의 최단코스에 있던 동적이, 즉 동재기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그리고는 정조 임금처럼 남태령을 넘어 과천읍(내)에서 점심을 먹었고, 사그내(사근행궁)와 미륵댕이(지지대고개)를 지나 수원(읍내)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었다. 이때 수원읍내는 대함괴(대황교) 가기 전에 기록되었으니 수원의 옛읍치가 아니라 팔달산 아래의 새읍치였다. 정조만이 아니라 이도령도 서울-수원을 하루 만에 돌파했다. 물론 현대인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기쁘다’와 ‘즐겁다’, 이 두 말은 비슷해 보인다. 그 말이 그 말 같다. 무언가를 흐뭇하고 좋게 느끼는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아도 이 두 말은 그 의미를 상당 부분 공유한다. ‘기쁘다’는 ‘욕구가 충족되어 마음이 흐뭇하고 흡족하다.’이고, ‘즐겁다’는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로 풀이하고 있다. ‘즐겁다’ 안에 ‘기쁘다’가 있는 것 같고, ‘기쁘다’ 안에 ‘즐겁다’가 있는 것 같다. 사전은 ‘기쁘다’의 용례로 “시험에 합격하여 정말 기쁘다.”를 들고 있고, ‘즐겁다’의 용례로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냈다.” 등등을 들고 있다. 구체적 용례를 보아도 이 두 말의 의미를 얼른 구분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말이란 비슷할 수는 있지만, 그야말로 똑 같은 뜻의 말이 두 개 있을 수는 없다. 무언가 미세하게라도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말로 나타나는 것이다. 설령, 사전적 의미가 유사하더라도 두 말이 쓰이는 맥락이 미묘한 차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다가 사전에 등재된 말의 뜻이라도 언제나 고정불변의 절대적 의미로 고착되지 않는다. 이 분야를 다루는 의미론(semantics)에서는 어떤 말이든 그 말을 사용하는 언중(言衆)들의 사회문화적 환경이나 사회심리적 생태가 변화하면 말의 뜻도 조금씩 달라짐을 밝힌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즐겁다’는 말은 의미의 변이(變異)가 있어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한국인의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생태가 변화한 데서 온 것이다. 즉 현대인이 즐거움을 추구하고 누리고 평가하는 양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한 변화의 배경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놀이, 게임, 쇼츠 영상 등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통해서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즐거움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환경이 있다. 우리 일상 주변에 디지털로 콘텐츠화 된 즐거움은 항시 장전되어 있고, 원하면 언제나 그 즐거움을 발사하듯 소비할 수 있는 생태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도파민(Dopamine)’이란 말이 이런 즐거움 현상을 잘 표상한다. 도파민은 기대한 즐거움이 충족될 때 뇌에서 나오는 물질이다. 이런 즐거움의 소스가 일상화 되면서 잠시라도 즐거움이 지연되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특히 어린이 청소년)이 많아졌다. 도파민 분비가 중단되면 모종의 불안으로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정도가 심하면 도파민 중독이 된다. ‘즐겁다’는 현상에 이런 도파민의 기제가 끼어드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기쁘다’는 ‘즐겁다’와 의미론적으로 조금씩 변별되어 가는 듯하다. “쇼츠 게임을 하면 나는 즐겁다.”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쇼츠 게임을 하면 나는 기쁘다.”라는 말은 부자연스럽다. “도파민이 즐거움을 준다.”라는 말은 성립하지만, “도파민이 기쁨을 준다.”라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다. ‘즐겁다’가 몸 중심의 감각적 욕망을 즉흥적으로 해소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만족을 대변하는 말이라면, ‘기쁘다’는 어떤 정신이나 가치 등을 마음에 품고 노력한 데에 대한 어떤 심리적 만족이나 내적 감흥을 나타낼 때 쓰는 말로 옮겨져 가고 있는 듯하다. 즐겁기는 해도 그것이 진정 ‘기쁘다’의 상태로 이어지지 않는 심리 생태를 우리는 경험한다. 기쁘기는 해도 그것을 마냥 즐겁다고 말하지 않는 경우도 늘어난다. 진정한 기쁨의 소중함을 그 자리에서 다 소비하지 않고, 오래 지키고 내면화하려면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전적인 의미의 ‘즐겁다’가 사라지고 있다.
수원시 중부대로 102, 지번으로는 팔달구 인계동 208-6 성빈센트병원 건너편 풍림빌딩 건물에 수원제일평생학교가 있다. 1963년 수원제일야학으로 시작, 지금까지 60년 동안 6000명이 넘는 졸업생 배출했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운영되는 건 마찬가지다. 건물에 불이 나자 고등동성당 교리실 등을 전전하다가 교사와 졸업생·재학생들이 일일찻집을 여는 등 모금운동을 벌여 평동 교회 한 층을 빌려 교실을 마련했다. 이후 수원 매교동의 건물 3층에 있다가 2019년 현 건물로 이전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60~70대가 많다. 2000년 전까지는 정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과 청년, 낮엔 일하고 밤에 공부하러 오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늙거나 젊거나 모두 배움에 목이 말라있으며 ‘못 배운 것이 한이 된’ 사람들이다. 이 학교에서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문해(文解) 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정규 과정의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제2의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학습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인성교육과 사회교육을 실시해 성실하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사회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육은 40명이 넘는 교사들의 봉사로 진행된다. 문해 교육을 비롯해 검정고시 과정,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 교육, 다문화 주민들을 위한 교육 등도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다. 교사들의 중심엔 ‘야학의 산증인’ 박영도 교장이 있다. 박 교장은 1995년부터 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 1980년 대학생 시절부터 야학교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재야교육’에 헌신해왔다. 대구효목성실공민학교, 서울 YMCA 청소년학교에 이어 수원제일평생학교 교사와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배움에 목말랐던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준 공로가 인정돼 지난 2017년 ‘평생교육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세계평생교육 명예의 전당’에 정지웅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헌액 되기도 했다. 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에 있는 세계평생교육 명예의 전당은 1996년부터 평생교육에 공헌한 전 세계 인사를 선정해 1996년부터 매년 한 차례 헌액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포스코청암재단이 선정해 시상하는 포스코청암상도 수상했다. 이와 관련, 경기신문은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 학습자들이 배움의 기쁨을 느끼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일평생학교를 취재, 교육특집을 내보낸바 있다.(19일자 6면, ‘배움에 일시정지는 있어도 정지는 없습니다’) 제일평생학교엔 초등학력인정과 중학학력인정 과정이 있으며 중학학력인정 과정은 초등학력을 이수한 뒤 입학할 수 있다고 한다. 각 과정을 모두 이수하면 학력이 인정된다. 실제로 참여 학생들은 집안 사정으로, 남아 중심의 사회 분위기로, 또 일하기 바빠 의무교육조차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 학습자들이 배움의 기쁨을 느끼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로 '학력인정 문해교육'이다. 때문에 학생들의 열정도 뜨겁다. 한 교사의 말처럼 ‘자발적 학습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학교와는 참여율, 열정 등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사를 존중하고 진정성을 보이는 문해 학습자들의 태도”로 인해 자부심과 열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밝힌다. 경기도교육청은 기본지원금과 예산 운용을 통해 수원, 고양 등 도내 많은 지역에서 운영되는 문해교육 기관을 지원하고 있다. “공부하는 것도 생활하는 것도 즐겁고 성격이 저절로 밝아져 일상생활도 활기차게 변했다”는 70세 학생의 말을 정부와 지방정부가 흘려듣지 말고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비상계엄’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가 “따놓은 당상”이다. 어찌 됐든 새로운 정부에서 할 일은 엄청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반드시 청산해야 일과 급한 일과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 등이 있을 것이다. 민주제도가 정착되고 어느 정도 문화강국으로 부상한다고 생각한 대한민국이 하마터면 50여 년 전 독재국가로 돌아갈 뻔했다. 이 원인을 분석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찾아 청산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또다시 국민을 위협하여 권력을 찬탈하는 세력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근본적 원인 중 하나를 ‘교육’이라고 본다. 나는 초등학교 등굣길. 그 시간과 거리가 그렇게 싫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그 학교는 서울 변두리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교였기에 학교 앞길이 일부만 포장이 되었고 많은 부분은 그냥 흙이어서 비가 오면 운동화가 빠져 쩍쩍 달라붙는 진창이 되었다. 사방에서 교문 앞으로 "몰려드는" 학생들의 등교하는 발걸음들이 바빴다. 여기서 강조하고픈 단어는 "몰려드는 바쁜 걸음"이다. 늦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우르르 몰려드는 나를 포함하여 "바쁜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그 풍경은 어린 내게 무언가 불안감과 조급증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되돌아보니 그 불편한 느낌을 주는 주범은 단지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이 아니었고, 지각할까 봐 우려하는 걱정하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또래들을 "경쟁"시키는 교육 제도였다. 이것을 이제 “생각하는 한 인간”으로서 숙고하면, 그 불편함의 핵심은 우리 모두를 파시즘으로 몰아붙인 당시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만들어 낸 환경이었다. 파시즘은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무시하면서 집단으로서 다양성을 무시하며 “우열(優劣)을 나누고 경쟁시키고 그 안에서 지배와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내가 태어나서 1987년(민주화의 원년)까지 그런 파시즘의 세계에서 교육받고 성장했던 것이다. 내가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민주제도)를 위해 이바지하고자 약간의 노력 했다고 해도 내 안에는 파쇼적인 성향이 남아있다. 내가 대학 때 고딩인 동생의 어리석음에 대해 야단칠 때의 태도를 보면 소리치고 손을 올려 때리는(딱 한 번) 내 모습에서 파쇼적 독재자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민주제도의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내 모습이다. 윤석열 내란 과정에서 동조자들, 재판관들 안에서 많은 나를 본다. 권위주의적이면서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의 찌질한 인간들이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귀를 닫고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다. 그런 망조가 든, 그 자체로 만평이 되는 모습을 보여 준 이들이 있으니: 최근 희대의 파기환송 결정 조희대와 석열탈옥 방살롱 지귀연, 즉시항고포기 심우정이다. 아~이 파쇼적 구악들이 다 죽으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제도를 실현하는 사회가 될까? 아니면 그 파쇼들의 자손들이 또 파쇼가 되어 지속적 반민주적 사회를 만들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할 것인가? 이는 우리가 “지금 여기” 어떻게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의 민주시민들을 길러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지난 1월 19일, 서부지법을 침탈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육과 언론의 개혁이 시급함이 우리 시대에 조급증처럼 다가온다.
규제 완화, 규제 혁파는 어떤 대통령 선거에서나 심심치 않게 제시되었던 공약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인공지능 규제 완화 논의만큼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수준은 이제 국가의 경제 및 국가 경쟁력과 동일시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검토해볼 겨를도 없이, 세계 각국은 자국민이 자국 국경 내에서 창업하고 발전시킨 인공지능 기업이 하나라도 더 등장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꽃 튀는 세계 경쟁 와중에 치러지는 대선이니, 앞으로 들어설 정부가 인공지능 기업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려 하는지 후보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지당하다. 그러나 규제 완화(de-regulation)란 도대체 무엇인가? 일단 규제를 완화하면 이 나라의 인공지능 생태계는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운 것은 어째서 정부는 언제나 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외치는데, 기업은 규제 좀 없애 달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규제 완화의 이상적 이미지는 흔히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경쟁이 유지되며 혁신적인 시장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시장 행위자들은 가격 메커니즘에 따라 국가의 간섭 없이도 자정작용을 거친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비단 시장 실패 때문만은 아니다. 인공지능 기업 또한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요청하고 있는데, “인공지능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에 대한 전략적 혜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국 기업이 데이터, 고급 인력, 반도체, 인프라 등에 있어서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국내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국가가 나서서 국내 기업의 인공지능 서비스를 적극 구매하고,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를 바란다. 이들의 요청을 가로막는 규제들만이 혁파되어야 할 규제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니 기업과 대선 후보자들이 이야기하는 규제 완화는 사실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기존의 규제 체계를 정비하는 재규제(re-regulation)에 가깝다. 기존의 규제 체계가 세계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발맞추어 세련되게 정비하는 과정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규제의 변화는 따라서 언제나 뒤늦고, 부족하다.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규제 완화는 보이는 바와 달리 시장이 자유화되기보다는 국가와 기업 간 결속과 협력이 강화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여 이번 대선에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공약은 새롭게 정비될 과학기술 생태계의 규제들이 어떤 기업을 왜 보호해야 하며, 시민사회가 이러한 결속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재규제는 단순한 기술 진흥을 넘어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이루어져야 하며, 공익을 위한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진행하는 ‘2025년 전국 예비 창업자·창업 7년 이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 경진대회 경기 창업 공모(G-스타 오디션)’에 무려 777개 팀이나 몰렸다는 소식이다. G-스타 오디션에 폭발적으로 많은 팀이 참가한다는 것은 일단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수한 창업 아이템을 보유하고도 활로를 찾지 못해 목말라하는 기업·기업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해 씁쓸한 현상이기도 하다. 올해 G-스타 오디션의 참가팀은 지난해(421개 팀) 대비 84.5%나 증가해 경쟁률이 77대 1을 기록했다. 경기도는 창업 경진대회 운영을 통해 지역 제한 없이 우수한 창업 아이템을 보유한 창업가를 발굴, 사업화 자금과 글로벌 진출 기회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경진대회는 예선(서류 평가) 심사 마무리 단계이며, 다음 달 중 본선(발표 평가)을 거쳐 결선을 진행한다. 결선은 오는 10월 1~2일 열리는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 ‘2025 경기 스타트업 서밋’과 연계해 박람회 현장에서 공개 발표 평가 형식으로 진행한다. 본선과정을 거쳐 총 30개 팀이 결선 무대에 진출하며, 이 가운데 10개 팀이 최종 수상팀으로 선정된다. 최종 10개 팀에는 총 1억 1500만 원의 상금과 상장이 수여되고, 결선 진출팀에게는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 내 부스 우선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창업 오디션에 기업들이 몰려 열기를 드러내는 것은 절박한 상황을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장기간 이어지는 경기 하방 추세는 자못 심각하다. 경기도에서만 하더라도 폐업 쓰나미가 장난이 아니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지난달 30일부터 선착순으로 모집을 시작한 ‘2025년 경기도 소상공인 사업정리 지원사업’ 신청은 불과 22일 만에 한도를 채워 조기 마감됐다. 이번 사업은 폐업을 앞두거나 최근 폐업한 도내 소상공인의 성공적인 재도전을 위해 사업정리컨설팅, 사업지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경상원은 ‘경기도 소상공인 경제이슈 브리프 VOL.4’ 내용 중 최근 6년간 처음으로 도내 폐업자 수가 창업자 수를 상회했다는 통계가 반영된 것이라고 봤다. 해당 브리프에는 올해 1분기 도내 음식점업 폐업률은 2.85%, 개업률은 2.49%로서 최근 6년 중 각각 최고,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분기 기준 폐업률이 개업률을 앞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기화된 소비 침체로 경기도 내 커피음료점 수가 7개월 연속 감소했다. 또 편의점, 분식집, 호프주점 등 여러 업종에서도 위축된 양상이 나타났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3월 도내 커피음료점 수는 2만 1082개로 전월보다 20개, 전년 동월과 비교해서는 274개(1.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8월 2만 1368개로 전월(2만 1361개)보다 소폭 상승한 이후 적게는 매달 9개에서 많게는 160개까지 감소세를 보이며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7개월 연속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대표적 창업 업종인 편의점을 비롯해 분식점, 호프주점, 식료품가게 등 골목상권을 책임지는 여러 업종도 1년 전보다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편의점은 지난해 3월 1만 4527개에서 올 3월 1만 4359개로 168개 줄었다. 같은 기간 분식점은 1만 3006개에서 1만 2352개로 654개 감소했고 슈퍼마켓 211개, 식료품 가게 166개가 각각 줄었다. 이처럼 일단 창업을 했다가 견디지 못하고 폐업으로 내몰리는 사업체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창업 경진대회에 기업들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산업 환경이 각박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창업지원책은 물론 유용한 기업경영 컨설팅 공간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G-스타 오디션’의 성공적인 개최를 빈다. 창업과 지속경영의 험난한 길을 부축해줄 국가사회의 광범위한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