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쿠데타) 이후 102일이 지났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대한민국호가 폭풍우에 갇혔다.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탄핵찬반 군중들의 함성 속에 전국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문제는 에너지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돌아봄, 스스로 객관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자칫 우리 공동체는 그릇된 확신 속에 파괴되고 말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무사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는 이재명 과 민주당을 악마로 규정하는데서 출발했다. 그 악마가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겼으니 부정선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자칫 악마가 정권을 잡는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 뻔하니 군대를 끌여들여서라도 모조리 처단해야 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이 그대로 극우세력에게 이식되고 증폭되었다는 점이다. 편향되고 맹목적인 확신은 무섭다. 서부지법이 초토화되었다. 헌재도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아니, 지금 가장 위태로운 사람은 이재명 대표가 아닐까? 벌써 한차례 칼에 테러를 당한 이재명 대표가 아닌가? 공격깊이를 감안하면 생존자체가 기적이라 할만치 심각한 테러였다. (헌정사상 처음인 야당대표 테러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대응은 더 기적적이었다. 테러사건을 ‘헬기이송 특혜문제’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행했으니...) 지금도 아스팔트를 점령하고 있는 수만명의 극우맹동주의자들은 오매불망 “악마 이재명 처단”을 외친다. 탄핵심판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 테러에 대한 제보가 민주당에 빗발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야당대표가 경호대상이 아니란다. 만일 또다시 테러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씻을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내전을 방불케하는 대립 속에 각본 없는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지귀연판사가 구속기간을 ‘구속일(日)’이 아닌 ‘구속시간’으로 해석하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상고없이 윤석열 을 석방했다. 정작 지귀연판사 본인은 자신이 집필한 형사소송법해설서에서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고 적었으니 스스로 자기부정을 한 셈이다. 검찰은 이후 현장실무에서 논란이 되자 ‘구속시간’으로 적용하지 말 것을 지침으로 내려보냈으니 ‘웃자고 한 짓’인지 의문이다. 12.3내란이후 가장 궁금했던 점이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부대인 검찰이 왜 친위쿠데타에서 조용할까”였는데 결정적 시기에 곤경에 처한 주군을 풀어주며 내란에 전격 참전을 선언하며 물꼬를 다잡는 모양새다. 이제 이 선택의 후과는 온전히 검찰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시위현장에 ‘검찰개혁’이란 용어가 사라졌다. 누구도 이제는 검찰을 고쳐서 쓸 수 있는 집단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신 그 빈자리를 ‘검찰해체’라는 구호가 차지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 다섯가지가 있다고 한다. “입밖에 낸 말, 쏘아버린 화살, 흘러간 세월, 돌아가신 부모님, 놓쳐버린 기회”가 그것이다. 검찰은 검찰공화국을 거치면서 자정의 기회를 영원히 놓친 것이다. 폭풍우에 갖힌 대한민국호는 전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무게를 덜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내란에 본색을 드러낸 내란옹호 집권당과 똥별들이 가득한 군대, 그리고 사법부와 검찰까지 사회대개혁 차원의 대수술만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한걸음 더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덧붙여 야당대표에 대한 경호도 시급하다. 어쩌면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않을 기회이다.
우려한 사태가 발생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죄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52일 만에 석방되었다. 판사는 윤의 구속 시간이 초과하였다며 구속취소를 결정했고, 대한민국의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석방하였다. 검찰총장은 7일 이내에 항고해서 다시 한번 상급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 있었음에도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을 들어 석방지휘를 강행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범죄자들의 구속 기한을 산정할 때 날짜 기준으로 하다가 갑자기 윤석열에게만 시간을 기준으로 적용한 것은 무슨 연고인가. 일부 언론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앞으로 기존에 잡아들였던 모든 범죄자가 날짜가 아닌 시간 기준으로 해서 구속해야 한다면서 재심 신청하면 모두 석방할 것인가. 교도소마다 대혼란을 초래될 전조를 보이자 대검은 서둘러 앞으로는 날짜를 기준으로만 삼으라고 검사들에 지시했다. 결국 한 사람만을 위한 법적용이었다. 판검사들은 도대체 왜 여론과 이렇게 동떨어진 판결을 내린 것일까. 그들 모두 배울 만큼 배웠고 아니 최고의 엘리트들인데 왜 국민의 상식과 이렇게 다른 것일까. 영화의 대사처럼 “어차피 국민은 개돼지야. 금방 잊게 되어 있어”를 실천하는 것인가. 법조계 엘리트들은 법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일컫는다. 그들이 내리는 판단과 판결은 도덕의 잣대가 되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부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명예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슈퍼·울트라 엘리트로 불리는 한국 법조계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특정 대학 출신이 70% 이상을 차지해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을 형성한다. 둘째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이 갖는 특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셋째는 행사하는 권력에 책임은 없고 잘못된 판단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물론 선진 국가도 특정 대학 출신이 상당수이지만, 카르텔도, 특권의식도 약하고 행위에 대한 책임은 매우 엄격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법조계 엘리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깊이 있는 철학을 발견할 수 없고, 정서적으로는 나약하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 12.3 내란사태에서 보인 그들의 행태다. 그날 이후 국격의 추락과 함께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마감시키고 끊어내야 할 역할은 전적으로 사법 시스템의 엘리트들에게 있다. 그러나 수사와 영장 청구, 석방 조치까지 보여준 모습은 비겁함 그 자체였다. 어떤 법조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것은 잘못된 행위야. 엄단해서 후사의 모범이 되게 해야 해!”라는 단호함을 보인 인물이 기억나질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법 지식을 교묘하게 해석, 합리화하여 내란범들에 협조하고 있다. 이 정도면 법 수호자가 아니라 법 기술자, 법꾸라지들이다. 오늘 법조계의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나는 국민과 다른 세계 그리고 오류가 없다’는 선민의식은 학교 교육시스템에서 시작되었다. 오로지 성공, 경쟁만이 최고인 한국 교육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없다. 퇴계 선생이 왜 학문은 명성과 칭찬만을 구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신을 깨닫고 닦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백골난망이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남았는데 설마…
우리나라는 그동안 크고 작은 숱한 위기와 시련을 격었다. 하지만 한 번도 위기에 무너져내린 적이 없었다. 위기때마다 주저함 없이 국민이 나섰기 때문이다. IMF외환위기 때도 그러했고,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러했다. 외부의 경제적 충격과 나쁜 정치가 불러온 사회적 충격이 사회 갈등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기도 했으나, 주권자 국민의 마음이 모아지면서 갈등은 진화되었고, 끝 모를 것만 같았던 위기를 어느 순간 기회로 탈바꿈시켰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강한 회복력이고,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위기는 과거와는 다른 양태로 확대되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벌써 100일이 훌쩍 넘어버린 12.3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점점 극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처럼 불안이 엄습해온다. 우선 과거 대통령 탄핵 판결보다 늦어지는 헌재의 선고기일도 사회적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변론 종결 14일 만에 선고했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11일 만에 선고기일이 잡혔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선고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확대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헌재가 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는지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법률적 숙고가 아닌 정치적 숙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두 번째로는 정부가 나서서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문제다.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종적 수단은 법치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 수호하고 따라야 할 정부가 헌법과 헌재의 판결을 거스르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헌재는 2월 2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가 선출한 사람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부여한 헌법재판소 구성권을 형해화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 판결 직후 최상목 권한대행은 “헌재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로부터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위헌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권의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길거리로 나가 연일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헌재를 압박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각하 또는 기각해야 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헌재 앞에서 24시간 ‘5인조 릴레이 시위’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재 압박 수위를 갈수록 높이는 것인데, 당 안에서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취소 후 민주당이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을 검토하는 것 또한 국민 시선이 곱지 않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회는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라고 했고, 김병주 최고위원도 “자진 사퇴를 거부한다면 탄핵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력하게 단행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검찰총장 탄핵을 예고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커지고 있다.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탄핵은 위헌적 법률 위반이어야 되는데, 이 사람은 법률을 위반한 게 아니라 잔수를 둔 것”이라며 탄핵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동안의 사례에서 보듯이 별 효용성도 없이 민주당의 힘자랑처럼 비춰지는 잦은 탄핵은 정국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갈등과 혼란은 하루빨리 수습해야 한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만 의지해서 조속히 판결을 선고해야 하고, 국회와 정부, 정치권은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이 순간부터 국민의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해서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것이다.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 대표적인 독재자가 히틀러였다. 그는 국민을 무지한 존재로 여겼다. 조종 가능하다고 했다. 또 쉽게 망각하는 존재였다. 반복적이고 간결한 메시지로 선전(프로파간다)하면 조작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인간의 존엄성은 안중에 없었다. 사회분열은 관심 밖이었다. 우리 역사에 갑자사화가 있다. 1504년, 연산군 10년이었다.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폐출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을 때 찬성했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복수가 이 사화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폐비 윤씨가 사사된 사건은 22년이 지난 일로 사화의 직접 원인이 아니었다. 근저에는 자신의 절대왕정 구축에 걸림돌이었던 사간헌과 사헌부 등 감찰기관을 무력화하고 깐깐한 비판 세력이었던 선비들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조선일보 주필은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윤 대통령의 실상을 압축해 고발했다. “스스로 자폭했다”.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다”. “사려깊지 않고 충동적이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다” 등 대통령의 자격 상실을 요건을 적나라하게 열거했다. 민주당의 몇 개월 전 계엄령 선포 주장을 괴담으로 비판한 것도 사과했다. 이러던 조선일보가 돌변했다. 지난 3월 5일부터 3일간 보도한 105주년 특집 기사는 기획 의도를 의심케 했다. “2030 세대 ‘우린 86 부모 세대와 달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필두로 갈등을 과할 정도로 부각시켰다. 4050 세대보다 보수 성향 지수가 높고, 계엄·탄핵 시각도 온도차가 뚜렷하다고 보도했다. 반중(反中)의식은 70대 이상보다 강하다고 했다. ‘청년 70%가 비상계엄 선포에 부정적’이라는 조사결과를 보도하면서도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2030 세대 4명만의 인터뷰를 집중보도했다. 이들의 사진을 같은 날 한 신문에 두 번 싣는 파격 편집까지 했다. 최소한의 균형조차 없었다. 결과적으로 2030세대 70% 여론은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항목설정도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민주주의가 항상 낫다’. ‘상황에 따라선 독재가 낫다’. ‘민주주의나 독재나 상관 없다’는 항목에 답하도록 했다. ‘독재가 낫다’거나 ‘상관 없다’는 두 항목에 답한 응답자가 20대와 30대가 각각 33%와 36%였다. 전체 평균 27%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과 해결책 제시는 미흡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비율이 이 정도면 심각한 문제다. 이런 현상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기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2030 세대의 반중(反中)의식을 부각시킨 점도 바람직하지 못했다. ‘강의실과 사회서···내가 볼 혜택, 중국인이 뺏는 느낌’이라고 크게 보도 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혐한, 반한 여론이 일어났을 때를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주류 언론은 과도하게 수용자를 계몽하려 들거나 특정 집단만을 부각해 아부성 기사라는 인상을 줘서도 안 된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도 해야 한다. 이번 조선일보의 창간 특집 기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환호할 기사로 넘쳤다. 조선일보 보도 태도가 계엄선포 직후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라고 우크라이나를 압박한다. 우크라이나는 아쉬워도 끝낼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열세에 있는 사이 러시아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 필사적이다. 막판 최전방에 북한군을 세웠다. 수천명이 죽었다는 믿기지 않는 통계가 나왔다. 전우의 시체를 넘으며 싸우는 기술은 날로 늘어 전투력이 높아졌다는 소식이다. 국가는 병사를 전장에 내몰면서 참전 사실마저 부인한다. 그러나 한국어를 사용하는 포로를 감출 수 없다. 처음 붕대를 감은 북한 군인을 뉴스로 보았을 때 가짜라 생각했다. 북한군인 참전은 사실로 나타났다. 휴전 협상에서 포로는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이슈가 되는 북한군 포로를 놓고 벌써부터 신경전이다. 국가가 참전을 부인하니, 병사에게 국가는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 군인도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병사는 한국을 희망한다. 이들을 국내로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병사는 한국으로 올 수 있을까. 참전을 부인하는 국가는 포로를 송환할 생각은 있는가. 존재조차 인정되지 않는 병사에게 어떤 선택이 있을까. 그들은 귀향할 수 있을까. 병사의 생명에 조금도 관심 없는 권력자가 병사를 전쟁 소모품으로 내몰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름도 국적도 없이 전쟁에 참여한 병사는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다. 불법 참전한 병사를 우크라이나에서 어떻게 할지 또한 관심사이다. 우크라이나는 북한 병사를 어떤 방식으로 교환할 것인가. 북한 병사를 최전방에 내몰고 설마 참전 사실마저 부인하면 포로가 된 그들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병사의 나라가 당신을 버리지 않고 참전을 인정한다면 군인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군인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주어진다. 한국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쟁이 끝나는 시점에 포로의 귀향 문제는 이슈가 된다. 전쟁은 참혹하다. 보다 참혹한 일은 포로 교환이다. 정치의 연장이 전쟁이라는 말처럼 포로 교환에 정치가 작동한다. 더욱이 이념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에서 포로들을 어떻게 했었는지 아직 과거는 살아 있다. “당시 아버지는 전쟁 포로가 되어 거재도 포로수용소에 있었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나서라 했다.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선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총으로 모두 쏘아 죽였다. 아버지는 뒷줄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 먼저 나선 사람들의 죽음이 있은 뒤 아버지는 포로 교환으로 함북도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살아왔다는 이유로 의심에 눈초리를 받았다. 포로 교환된 사람들은 사상 증명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이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서명한지 70년이 지났다.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에 포로가 된 병사의 생사에 권력자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전장에서 죽은 병사와 살아남은 병사의 귀환을 책임져야 한다. 사상검증 했던 시대는 지났다. 병사는 소모품이 아니다. 병사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마시라. 살아있음을 부정하지 마시라. 포로의 귀환은 병사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전쟁으로 얻는 이익보다 포로 귀환이 먼저 이슈가 되어야 한다. 살아있음에 당당해지도록.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수원과 용인, 안양에 큰 선물을 줬다. 김 지사가 11일 수원 월드컵경기장 야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회타운 3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수원월드컵경기장, 용인 플랫폼시티, 안양 인덕원 역세권에 2030년까지 새로운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관련기사:경기신문 12일자 1면, ‘김동연, 더 고른 기회로 삶의 선진국’ 만들 것‘) 김 지사는 우만테크노밸리는 경기 남부의 AI지식산업벨트와 경기 북부까지 이어지는 바이오 벨트를 잇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용인플랫폼시티는 반도체 메카 동탄테크노밸리로 이어지면서 AI와 반도체 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만들고, 안양 인덕원 기회타운은 경기 남부의 테크노밸리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서울대농대, 농촌진흥청, 기상청 등 국가 공공기관과 경기교통공사,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경기도사회서비스원 등 도 공공기관이 잇따라 이전했고, 앞으로 경기연구원,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주택도시공사, 경기도일자리재단, 경기관광공사,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경기문화재단 등도 이전을 추진하고 있어 불만이 큰 수원시민들에게 위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공공기관 대거 이전이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희생을 하고 있는 북·동부 지역 주민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 “공정의 가치에 부합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지만 수원시민들과 해당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반발이 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동연 지사는 매번 빼앗기기만 한다고 생각해오던 수원시민들을 위로하듯 “직장과 집 사이 거리와 출퇴근 시간·비용은 줄고, 여가와 휴식을 즐길 기회”를 늘여 ‘내 삶이 더 나아지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우만 테크노밸리에 대한 이재준 수원시장의 기대감 또한 크다. 우만 테크노밸리를 “환상형 첨단과학 혁신클러스터의 마지막 조각” “주변 역세권 개발 등과 결합해 ‘수원 대전환’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개발 혁신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만 테크노밸리 사업은 7만㎡ 규모의 수원월드컵경기장 내 유휴부지를 활용해 첨단산업 융복합 혁신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다. 김동연 지사의 말처럼 우만 테크노밸리가 들어서는 수원월드컵 경기장 부지 인근은 생활 기반과 교통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인덕원~동탄 복선전철과,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선에 들어설 ‘수원월드컵경기장역’과 가까우며 영동고속도로 동수원IC는 차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울러 인근엔 광교 테크노밸리, 200개 이상의 바이오 기업, 경기대·아주대, 3개 종합병원 등이 있다. 산·학·연 연계가 잘 이뤄질 것이라는 수원시의 전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만 테크노밸리가 개발되면 1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경기도의 예상도 과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 더해 기존 월드컵경기장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체육시설을 추가 조성하겠다고 한다. 체육인과 지역주민 모두를 위한 스포츠 타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만 테크노밸리 사업은 경기도와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이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내년 하반기에 착공, 2030년 12월에 준공할 계획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개발 계획 수립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고려한 건축계획 수립 등을 적용, ‘기후타운’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태양광, 소형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갖춰 사용한 에너지의 30%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겠다고 한다. 또 단열과 채광을 활용해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을 높여 에너지 소비의 40%를 줄이고 ‘제로 에너지 빌딩’을 목표로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탑동이노베이션밸리, R&D사이언스파크, 북수원테크노밸리 등 거점을 연결하는 첨단과학 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수원시와 경기도의 목표가 계획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는 가족 간병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가장 선호하는 간병 형태로 ‘재가서비스’를 선택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노인 실태 조사’에서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노인이 87%를 상회하였다. 내년 3월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됨에 따라 지역사회에 적합한 돌봄·의료 서비스 모델 및 보건의료와 연계한 통합 돌봄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반적인 의료·돌봄·복지 수요를 바탕으로 재택의료센터를 확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체계적이며 통합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초고령사회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정부는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고도 내 집에서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장기요양 공급 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과 제도적 개선을 병행해 가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95곳에 불과한 재택의료센터를 2027년까지 250곳으로 확대함으로써 노인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재택의료’를 강화하고, 국민 간병 부담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뤄 환자의 집을 찾아가 건강을 관리하고 지역 복지 자원을 연계해 필요한 돌봄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큰 비용 부담 없이 고령자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방문진료비 본인부담률을 기존 30%에서 15%로 대폭 낮출 예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장기요양 수급자가 다양한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급자의 80% 가량이 하나의 서비스만 이용하고 있는 현실 속에 통합서비스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가입된 1~5등급의 수급자에게 필요한 재가 서비스를 한 기관에서 제공하는 '통합 재가서비스'가 이번 달부터 제공된다. 주·야간 보호나 방문간호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이 방문요양과 목욕, 간호 등 수급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통합하여 제공한다. 우선, 주·야간 보호형 103개소와 가정 방문형 87개소 등 총 190개 기관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고 하반기에 추가 공모를 통해 확대해 갈 계획이다. 경기도는 '간병 걱정 없는 나라'라는 비전을 세우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호자 없이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맞춤형 방문 의료 및 돌봄 서비스를 도입하여 환자에게 안정적인 회복을, 가족에게는 간병 걱정 없는 일상을, 간병인에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간다는 방침이다. 1인당 연 최대 12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해 ‘돌봄의 부담을 지역사회가 함께 나누어지고자 한다’는 실행 전략에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화사회에서 대다수의 노인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중앙정부,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개개인 삶의 변화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가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기술로 등장한 인공지능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기계의 행동은 실제 우리의 행동과 비교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5년 전의 일이다. 1950년 수학자 앨런 튜링은 ‘컴퓨팅 기계와 지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기계에 지능을 부여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게 바로 ‘튜링 테스트’ 개념이다. 그는 기계가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완벽하게 파악했다. 즉, 어떤 사람이 인간과 대화 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계와 대화 하고 있는지 구별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이즈음 워렌 위버는 기계가 자동으로 텍스트를 번역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냄으로써 인공지능에 의한 번역의 역사를 예고했다. 그로부터 단 5년 만인 1956년, 인공지능은 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앞 다퉈 인공지능 연구에 들어갔다. 기술 혁명은 점점 더 가속화됐고 많은 전문가는 인공지능이 2000년대에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혁명이 그리 쉽게 오겠는가? 1970년대 초반 ‘AI의 겨울’이 찾아왔다. 값비싼 투자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자 투자자들은 뚜렷한 결과가 도출되는 프로젝트로 선회하며 인공지능을 포기했다. 인공지능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쏟아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공지능은 1980년대 들어 다시 명성을 찾기 시작했다. 시장 규모는 약 10억 달러(한화 1조 5000억)로 인공지능에 다시 자금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금상첨화로 1997년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IBM이 딥블루를 출시했다. 이 기계는 높이가 2미터, 무게가 700킬로그램이 넘는 슈퍼컴퓨터로, 체스게임에 특화됐다.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와 두 번의 경기를 개최했다. 첫 번째는 199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렸고 이때 카스파로프는 6개의 경기 중 4승을 거두어 인간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불과 1년 후인 1997년 뉴욕에서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 기계는 인간을 3.5 대 2.5로 물리쳤다. 이는 우리를 전율케 했다. 다양한 기술적 발전과 혁신으로 인공지능이 진화하며 우리는 사회적 문제를 염려해야 했다. 이는 많은 영화의 중심 주제로 떠올랐고, 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매트릭스’가 1999년 개봉됐다. 이후 인터넷이 널리 보급돼 대부분의 가정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연결이 가능해 졌고 컴퓨터가 대량 생산되면서 구입도 훨씬 용이해졌다. 물론 컴퓨터의 용량과 기능도 훨씬 우수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10년대부터 딥러닝과 머신러닝이 등장했다. 이는 기계가 작동하기 위해 규칙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이다. 이 사업은 아마존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디지털 거대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핵심사업을 잊은 채 혈안이 돼 대형 프로젝트에 투자 중이다. 인간의 일상에 전 방위적으로 침투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그들에게 분명 매력적인 아이템일 것이다. 그러나 기술을 통해 현재의 환경문제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지 않을까!
생활고 등 다양한 이유로, 가족들을 살해한 후 사망하는 야만적인 가족살인 비극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처자식 등 가족은 엄연히 별도의 인격체를 지닌 독립적 생명이다. 도대체 왜 귀한 생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숨지는 비극이 그치지 않는가. 제대로 된 교육과 계몽을 통해서라도 이 그릇된 인식과 몰상식한 사고체계는 하루빨리 세척돼야 한다. 수원중부경찰서에 따르면 10일 오전 11시쯤 수원시 장안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40대 남성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남성의 신원 확인을 통해 이 아파트 주민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후 집 내부를 수색했다. 그 결과 경찰은 안방에서 숨진 남성의 40대 아내와 중학생인 큰아들, 초등학생인 작은 딸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의 목 부위에는 졸림 흔적과 불을 지핀 흔적 등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유서는 없었다. 경찰은 자영업자인 남성이 지인에게 3억 원가량의 돈을 빌려준 뒤 이를 되돌려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어 왔던 사실을 파악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해당 지인에게 여러 차례 “생활이 어려우니, 빌려준 돈을 빨리 갚아달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다만, 이들 가족은 복지지원 대상(기초생활수급)은 아니었다. 경찰은 주민센터 호적등본 등에서 찾아낸 다른 유족과 함께 남성의 신원을 확인한 지 27시간 가량이 지난 10일 오전 11시쯤 해당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문을 개방했다.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적마다 이를 ‘가족살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나왔다. 자신의 사망을 염두하고 홀로 남겨질 자녀를 살해하는 범행에 대해 법원은 번번이 ‘자녀살해’라고 지적해왔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살해한 후 사망하는 것은 ‘살인’일 뿐이며, 다른 표현으로 감싸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사망하려는 심리는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 ‘이타적 살해’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있다. 내가 죽고 나면 자녀가 스스로 개척해야 할 세상이 너무나 참담하기에 질병과 빈곤으로부터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한 결단이라는 분석이다. 혼잡한 세상에 자식을 혼자 놔두고 갈 수 없다는 책임감, 자식을 향한 사랑에서 차라리 함께 죽는 게 낫다는 착각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자식을 개별적 유기체로 존중하는 서양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다른 존재이기에 부모는 사망하더라도 별도로 보장돼야 할 자식의 삶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은 “부모들이 자녀들은 소유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인격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자녀 인생을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지나친 생각도 버려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잠시 도와줄 뿐 서로가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모일수록 난관이 닥쳤을 때 자녀를 위해서라도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갖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어떤 양형 이유’라는 책의 저자인 박주영 부장판사가 한 판결문에서 밝힌 “사건의 원인을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해버리는 시각 역시 동의할 수 없다”는 견해에 주목한다. 유사한 사건 발생이 좀처럼 그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우리 국가사회가 국민의 안전한 삶을 온전히 담보하는 ‘비상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이 떠오를 때, 누구든지 손쉽게 누를 수 있는 ‘비상벨’이 완비된 그런 사회를 구축해내야 할 것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를 맞아 집집마다 노환을 비롯한 환자 돌보는 부담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간병국가책임제가 긴요한 정책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소멸 현상이 불러온 급격한 생산연령인구 감소로 2050년에는 약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이라는 추계가 나오는 판국이다. 환자가 발생하면 영락없이 온 가족의 일상이 흔들리는 일은 개선돼야 한다. 간병국가책임제를 조속히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김동연 지사는 간병국가책임제 비전 발표에서 “한 사람이 쓰러지는 순간 가족의 삶까지도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는 비극을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며 ‘모두의 나라, 내 삶의 선진국’을 실현하기 위한 4대 전략을 제시했다. 김 지사가 내놓은 간병국가책임제 전략의 골간은 ‘국민건강보험 의료급여 항목에 간병급여 포함’, ‘재택의료·재가요양 인프라 확충’, ‘365일 주야간 간병시스템 도입’, ‘간병인 처우 개선’ 등이다. 김동연 지사는 우선 간병급여를 국민건강보험 의료급여 항목에 포함하고 간호·간병 통합병동을 대폭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 30조 원을 활용해 상급종합병원부터 종합병원까지 전 병동의 간호·간병 통합병동 운영을 허용하고 간호 전문인력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병상을 늘리는 내용이다. 또 간병 취약층을 위해 노인주택 100만 호를 지원하는 한편, 주택 80만 호를 개조해 계단·문턱 등을 없애 노인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반값 ‘공동 간병 지원주택’ 20만 호 이상 확충안도 제시했다. 독거노인이나 노인 부부가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간병인이 365일 24시간 상주해 돌봄을 제공하는 형태다. 응급 버튼, 안전 감지기 등 스마트홈 설치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든 곳에서 나이 들기’가 가능한 재택의료, 재가요양 인프라도 확충한다. 김 지사는 2028년까지 주야간 보호시설을 1000개소까지 늘리는 동시에 365일 운영 확대도 촉구했다. 노인장기요양 수급자의 단기 보호 이용 일수를 현행 9일에서 20일로 늘리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면서 ‘돌봄 노인 24시간 응급 의료 핫라인’, ‘재택의료 네트워크’, ‘스마트 간병 시스템’을 통해 간병 부담을 줄이는 구상도 내놨다. 마지막으로 돌봄 종사자 전문성 제고·개인 역량 편차 해소를 위해 국가가 돌봄 종사자 양성·관리를 주도하는 내용을 담아 간병인 임금과 처우 개선을 촉구했다. 특히 AI 기반 실시간 원격모니터링을 강화해 야간 간병 부담을 줄여 지속가능한 간병 체계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연 지사 취임 이래 경기도는 각종 복지정책을 확대해왔다. 경기도가 시행하고 있는 간병 SOS 프로젝트는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에게 횟수 제한 없이 연간 최대 12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하는 제도로서 도내 15개 시군이 참여하고 있다. 김 지사는 앞서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일곱 번째 나라 랩(Lab)·포럼 사의재 주최 공동심포지엄’에서 여·야, 진보·보수, 노사가 ‘통 크게 주고받는 빅딜(big deal)’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날 김 지사는 해법에 ‘간병국가책임제 도입’을 포함했다. 간병국가책임제는 이미 온 국민의 여망이 담긴 정책 방향이다. 지난 2023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응답자의 96%가 간병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무려 57.6%가 간병국가책임제에 대해 찬성했다. 간병국가책임제는 이제 선택과목이 아니다. 국가 예산 우선순위를 조정해서라도 방안을 찾는 게 맞다. 생산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해야 할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는 부담들은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덜어주는 게 옳다. 국민이 더 안락한 나라를 만드는 게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대전제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발상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