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선 평택시장은 지난해 9월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임기를 끝으로 모든 공직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30년 정치인생을 마무리 한다”고 발표했다. 정계은퇴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이번 6.3 지방선거에 출마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임기 말인 현재까지 주요 현안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다만 이에 대한 평가는 성과와 한계를 함께 짚는 균형 있는 시각 속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 결실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알파탄약고 이전’이다. 알파탄약고는 고덕면 율포리 산 48에 위치한 약 28만㎡의 주한 미공군 시설로, 미 7공군사령부가 관리해 왔다.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라 평택 고덕국제화계획지구 개발이 추진돼왔지만 이 시설만은 2020년 한미 양국이 발표한 우리 측 반환 대상 미군기지 목록에서 제외됐다. 고덕국제화계획지구는 2008년부터 단계별 개발에 들어갔고 현재 3-2단계까지 완료되어 약 6만 7000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 중심부에 알파탄약고가 자리하면서 마지막 3-3단계 사업 추진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탄약고와 인근 지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행위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알파탄약고에는 10여 개의 창고형 탄약고 건물과 부속시설이 들어서 있다. 신도시 중심부에 군사시설이 위치한 데 따른 안전 우려와 개발 제한 문제로 지역 내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이전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돼 왔다. 이에 정장선 시장과 고덕신도시 주민들은 국방부 등에 조속한 이전을 촉구했다. 2021년 4월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을 위한 첫 실무회의를 열고, 같은 해 8월에는 한미 SOFA 실무협의회에 해당 사안을 상정했지만 협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에 평택시는 주한미군, LH 등과 특별합동실무단을 구성하고 협의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주한미군 간 협의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사업 추진의 난이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결과 평택 고덕국제화계획지구 개발의 주요 현안이었던 알파탄약고 이전 작업이 지난 3월 19일 완료됐다. 이로써 착공이 어려웠던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 건설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해당 조치가 실제 도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후속 개발 계획과 실행 과정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 시장은 이달 초 시청 브리핑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알파탄약고 이전 과정과 향후 부지 활용 계획을 설명했다. 정 시장은 해당 부지를 시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에 대해 향후 구체적인 개발 방향과 운영 방식은 시민 의견 수렴 과정과 공론화를 통해 결정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울러 군사보호구역 해제 및 공여구역 반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고, LH와 협력해 고덕지구 개발을 이어가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와 함께 재원 조달, 유지관리, 공공성 확보 등 후속 과제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평택호 관광단지 개발, 브레인시티 일반산업단지 조성, 국가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 광역급행철도(GTX)-A·C 노선 연장 등 지난 8년간 다양한 사업이 추진돼 왔다. 일련의 사업들은 일정 부분 성과를 보였다는 평가와 함께, 교통·생활 인프라 확충과 지역 간 균형 발전 등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공존한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특정 성과를 강조하기보다,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도시의 장기적 발전 방향을 함께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택의 미래는 개별 사업의 성과를 넘어, 정책의 연속성과 시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또한 대규모 개발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는 상황에서 행정의 일관성과 정책 간 연계성을 확보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된다. 개별 사업이 성과를 내더라도 도시 전체 차원의 전략이 부재할 경우 기대했던 파급효과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도시 개발과 원도심 정비 간 균형, 산업단지 조성과 정주여건 개선의 조화 등은 향후 평택시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아울러 인구 유입에 따른 교육·의료·교통 인프라 확충 문제 역시 중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기적 성과를 넘어,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 경쟁력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있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의 출현으로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미 식당에는 조리 로봇이 들어왔고, 산업 현장에는 생산 로봇이 배치되어 있으며, 요양 시설에는 돌봄 로봇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인간의 노동 영역 전반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본에서는 인간과 정서적 관계를 형성하는 로봇이 등장했고, 그 로봇과 결혼을 선언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기술은 이제 노동을 넘어 인간의 관계와 존재 방식까지 흔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공지능 시대는 더 이상 디지털 시대라고 부르기 어렵다. 디지털이 세계를 데이터로 분해하고 추상화하는 과정이었다면, 인공지능은 그 데이터를 다시 현실과 인간의 판단, 감각 속으로 결합시키는 기술이다. 즉, 디지털이 세계를 코드로 환원했다면, 인공지능은 그 코드를 통해 인간의 현실을 다시 구성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기술과 결합된 존재, 이른바 트랜스휴먼으로 이동한다. 인간은 더 이상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신체를 보완하며, 의사결정 능력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노동 역시 순수한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결합된 결과물로 재편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이 기존 노동법의 전제를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노동법은 ‘인간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이분법 위에서 설계되었다. 그러나 트랜스휴먼 시대에는 이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 인공지능의 보조를 받아 수행한 작업은 누구의 노동인가. 생산성을 극대화한 결과는 개인의 성과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산물인가. 인간의 인지와 신체가 기술로 확장된 상황에서 노동의 범위 자체를 어디까지로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기존 노동법은 근로시간, 임금, 고용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을 보호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은 더 이상 시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구조 속에서 노동의 가치는 결과와 영향력으로 이동한다. ‘얼마나 일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기여했는가’가 기준이 되는 순간, 노동이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재정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법 역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는다. 인간을 노동 제공자로 보호하는 법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술이 결합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기여와 그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다루는 체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 기준을 다시 설정하는 문제다. 노동법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간의 사유적 독단과 생명의 무시를 조절해온 제도였다. 무제한 노동과 착취를 통제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 노동이 더 이상 인간 존재의 필수 조건이 아닌 시대에 들어서면서, 노동법 역시 새로운 기준을 필요로 한다. 앞으로의 노동법은 노동을 규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익 속에서 인간의 몫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규범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결국 트랜스휴먼 시대의 핵심은 노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위치를 다시 정의하는 데 있다. 노동은 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의 기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여를 어떻게 인정하고 분배할 것인가가 새로운 사회의 기준이 될 것이다.
늘 현실은 영화보다 절박하다. 이란의 다리 위와 발전소 앞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그들은 군인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지키기 위해 '인간 방패'가 된 아버지와 어머니들이다. 세계 최강대국의 폭격이 시작된다면 온몸으로 불벼락을 받아내야 한다. 여차하면 일방적 학살이 벌어질 이 비극적 대치 앞에서 나는 애끓는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진정코 21세기 인간의 문명이란 말인가? 2주간의 휴전이 선포되었다. 트럼프는 군사적 목표를 초과달성했다고 떠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쉬 끝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여, 당신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가? 2월 1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금이 이란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적기”라며 일련의 작전을 브리핑하면서 이 비극은 시작되었다. 네타냐후의 계획에 래클리프 CIA국장은 ‘웃기는 계획’, 루비오 국무장관은 ‘개소리’라 했다. 그러나 한창 막바지 협상 중이던 2월 28일 15시 38분, 트럼프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댄 케인 합참의장에게 명령을 보낸다. “에픽퓨리 작전이 승인되었다. 중단은 없다. 행운을 빈다.”(트럼프는 어떻게 미국을 이란과의 전쟁으로 이끌었나-뉴욕타임즈 인용) 이 전쟁은 명백한 침략이다. 고로 네타냐후와 트럼프는 전범이다. 달리 포장해선 안된다. 이스라엘의 핵무기는 '안보'로 치부하면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세계의 재앙'으로 낙인찍을 수는 없다. 진실로 끔찍한 재앙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 그 자체다. 허나 미국은 전쟁을 게임처럼 만들어 소비한다. 팔란티어 AI가 공격을 결정하고 인간을 사냥한다. 다리 위에 선 이란 국민들의 공포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머지않아 쿠바 국민들이, 다음엔 어느 나라 사람들이 발전소 앞에 방패가 되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협상 전망은 밝지 않다. 휴전 선언 이후 외려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인구밀집 지역에 최대의 폭격을 가했다. 수백 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백주대낮에 학살당했다. 이번 휴전은 헤즈볼라 섬멸에 집중하기 위해 2주간 시간을 달라는 이스라엘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미국은 협상하는 척하다 기습공격을 주특기로 하는 나라다. 결국 협상은 벼랑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종전협상이 무산된다면 트럼프는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는 협박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아.. 누가 이 무자비한 폭거를 멈출 수 있는가? 우리는 기억한다. 과거 베트남의 정글에서 무고한 생명이 쓰러져갈 때 미국인들은 반전을 외치며 광장을 메웠다.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나는 베트콩과 아무 감정이 없다"며 징집을 거부하고 챔피언 벨트와 전성기를 포기한 채 감옥을 택했다. 그것은 거대한 폭력에 맞선 '인간의 존엄'이자 '진정한 위대함'이었다. 그 뜨거웠던 반전평화의 정신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는가? 미국에서도 “미치광이는 물러나라”며 트럼프 축출을 위한 ‘수정헌법 제25조’ 발동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테일러그린 공화당 전 하원의원은 “미국엔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체 문명을 죽일 수는 없다”고 앞장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종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양심을 향해 쉼 없이 울리고 있다. 이 전쟁은 인류 양심의 전쟁이다. 학살은 멈추어야 한다. 학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미국 국민들과 깨어있는 세계시민들뿐이다. 반문명적 만행 앞에서 세계의 양심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미국이여. 이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미국과 이란이 극적인 합의를 통해 2주간의 휴전에 들어갔다. 호르무즈 해협 충돌로 전면전 위기가 고조 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과 이에 따른 유가 폭등에 세계 각국의 우려와 이해관계가 파키스탄을 중재국으로 나서게 했다. 결국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합의’ 제안과 미국 이란 양측의 실리적 이해가 맞물려 극적 합의가 이뤄졌다. 에너지 시장 안정과 민간 보호를 명분으로 성사된 이번 2주 휴전은 10일부터 진행될 이슬라마바드 후속 협상의 결정적 발판이 되었다. 전면전의 공포 속에 얼어붙었던 국제 정세가 잠시나마 숨을 돌리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휴전은 근본적인 갈등 해결이 아닌, 서로의 전열을 정비하기 위한 '시한부 평화'에 가깝다. 14일이라는 짧은 시간 뒤에 더 큰 폭풍이 몰려올지, 평화의 물꼬가 트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에 이번 휴전은 안도할 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익의 관점에서 이번 휴전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국제 유가의 폭등세가 일시적으로 주춤하면서 물가 상승 압박을 덜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 봉쇄 가능성이나 중동 내 물류 대란의 위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경제의 혈맥인 에너지 공급망이 중동 정세에 저당 잡혀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국익수호를 위한 외교다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미국은 우리의 핵심 동맹국이지만, 이란 역시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자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전쟁의 재발은 우리 기업들의 중동 사업 중단과 수출 급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는 한미 동맹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적 채널을 가동해 우리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교한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한다. 정부는 이번 2주를 전시 상황에 준하는 비상 대응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에너지 비축량의 확보다. 현재 우리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원유 비축량이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한 추가 물량 확보와 수입선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주나 아프리카 등 대체 노선을 즉각 점검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행정적 준비를 마쳐야 한다. 또한, 유가 급등에 따른 국내 실물 경제의 타격을 최소화할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에너지 바우처 확대 등 서민층 보호 대책과 더불어, 물류비 상승으로 고통받는 수출 기업들을 위한 긴급 금융 지원책을 더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시장의 불안 심리가 가동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정치권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금은 상대를 향한 비난보다는 민생과 안보를 위한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할 때다.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한 관련 법 개정이나 비상 경제 대책 추경 편성 등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나 정략적 계산으로 외교·안보 현안을 흔드는 행위는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국회는 외교통일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를 상시 가동하여 중동발 위기 관리 상황을 점검하고, 정부가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입법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국민은 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이 얼마나 성숙하게 대응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2주의 휴전은 금방 지나간다. 이 기간이 지나고 다시 포성이 들릴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준비된 자만이 줄일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휴전을 '폭풍 전의 고요'로 인식하고, 국가의 명운을 건다는 각오로 에너지 안보와 민생 경제 보호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설령 평화가 정착된다 하더라도, 이번에 다진 에너지 자립도와 위기 대응 시스템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2026년 4월, 작은 도전으로 경기도 주민참여예산 주민제안 사업에 신청서를 냈다. AI와 IoT 기술을 접목한 돌봄시스템을 활용해 도내 요양시설 어르신들의 용변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고질적인 야간 돌봄 공백을 줄여나가는 수억 원 규모의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소셜벤처 단독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예산 규모였지만, 예산의 주인이 공무원이 아닌 시민이 되는 구조인 ‘경기도 주민참여예산제’가 이 담대한 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올해 총 500억 원 규모로 도정참여형, 지역지원형, 민관협치형으로 나뉘어 운영되는 이 제도는, 도민이 직접 우리 지역의 예산을 설계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든든한 상징이다. 이 제도가 가진 가장 큰 기대 효과는 단연 '현장 기반의 문제 해결'에 있다. 요양 돌봄 현장에서 매일 어르신들의 곁을 지키며 돌보는 종사자들, 복지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원장들, 그리고 이들의 고충을 덜어줄 헬스케어 혁신 기술을 개발하는 사회연대경제 기업들이 협력하여 직접 현장의 문제를 정의하고 살아 숨 쉬는 해법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경제 조직과 수많은 시민단체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목소리를 낸다면, 경기도 복지정책의 질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할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신청서를 작성해 가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첫 번째로 마주한 과제는 '홍보의 사각지대' 해소다. 올해 집중접수 마감일이 4월 6일까지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제도의 존재조차 알지 못해 기회를 놓치는 사회적경제 기업과 비영리단체가 여전히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기도의 촘촘한 네트워크와 다양한 사회적경제 포럼, 박람회 등을 통한 적극적인 제도 안내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더불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있지만 행정 문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현장 활동가들을 위해 실질적인 사업 제안 컨설팅이 병행되면 더 다채롭고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굵직한 예산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도 자체의 구조적 개선도 필요하다. 현행 주민참여예산 규정은 원칙적으로 사업 완료에 1년 이내만 소요되는 단년도 사업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돌봄 인프라 구축이나 복잡하게 얽힌 재가·시설 복지, 취약계층 지원과 같은 심도 있는 사회문제 해결형 사업들은 단 1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인프라를 깔고 데이터를 모아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의 중장기적인 실행 기간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시범사업 1년을 통해 그 성과를 면밀하게 검증하고, 성공적인 모델로 판명될 경우 이듬해 타 시·군 확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단계형 주민제안 트랙’을 신설해 사업의 지속성과 효과성을 모두 담보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정 이후의 사후 모니터링 체계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주민의 치열한 고민과 손끝에서 제안되고 최종 선정된 사업이, 현장에서는 본래의 취지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당초 기대했던 혁신적인 효과를 온전히 내고 있는지 도민 누구나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의견을 더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이 필요하다. 주민참여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도민의 삶에 스며드는 그날까지 끈질긴 관심과 참여로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자치이자 협치다. 현장의 뼈저린 문제를 가장 깊이, 그리고 가장 잘 아는 사회연대경제 조직과 시민들이 예산의 쓰임새를 직접 설계할 때, 우리의 복지는 비로소 주민의 따뜻한 삶에 온전히 닿을 수 있다.
대통령 윤석열의 첫 일성은 집무실 용산 이전이었다. TV를 통해 이를 지켜본 나는 참 황당하다고 느꼈다. 큰 애국자도 아닌 나이지만 앞으로 5년이 너무 걱정됐다. 어느 날 종부세 때문에 윤을 찍은 지인과 통화를 했다. 그는 정치학자인 내게 물어 볼게 있다면서 윤이 어떤 정치를 할 것 같냐고 질문했다. 나는 야박하게 평가하며 그를 대통령으로 찍은 것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대통령은 별로 중요치 않아. 한국을 지탱하는 건 기업인들이지 정치인들이 아니거든. 이 말은 두산 그룹에 다닐 때 박xx 회장이 한 말인데 그 양반 참 비상하단 말야!”라며 본인의 주장에 한껏 힘을 실었다. “어디 그런지 두고 보자”라는 말을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예감이 맞기라도 하듯 윤석열은 탄핵됐고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사람 하나 바뀌니 정말 많은 것이 바뀌는 나날들이다. 이래도 아무나 뽑아도 된다는 주장을 할 셈인가? 사람 한 명이 나라도 살리고 지자체도 살릴 수 있다. 도시화, 생태변화, 고령화, 인구감소로 오늘날 지방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를 지도자 한 명이 바꾸는 곳이 많다. 프랑스 남부 도르도뉴 지역 생피에르드프뤼지가 대표적이다. 이 지자체에는 3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인구 감소로 학교도 상점도 문을 닫는 처지가 됐다. 2008년 새 시장에 당선된 길베르 샤보(Gilbert Chabaud)는 생태와 삶의 질에 중점을 둔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8년을 계속한 결과 생피에르드프뤼지의 인구는 450명으로 늘어났다. 시장의 명확한 비전 제시가 성공의 키였다. 샤보 시장은 “저는 마을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주민들의 기본적인 니즈, 즉 식량, 의료, 학교, 그리고 질 높은 환경을 갖춘 활기찬 마을을 만드는 것 이었지요”라고 설명했다. 이 비전 위에 생활 향상을 위한 전략을 세웠다. “삶의 질이 마을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요.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이니까요”라고 그는 강조하며, ‘생태’, ‘전환’, ‘회복력’과 같이 이념적으로 민감한 단어들을 신중히 사용했다. 환경 보존, 생물 다양성 존중이나 에너지 절약은 그에게 있어 당연한 상식이었다. 또 다른 키는 ‘확고한 의지’였다. 마을을 개선하려면 주민들과 소통하고, 설득하고, 참여시키고, 파트너를 찾고, 외부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이때 핵심 그룹에 의존하는 것이 필수다. 생피에르드프뤼지에서는 이 그룹이 가장 적극적인 선출직 공무원들과 의욕 넘치는 네 명의 직원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마을은 기존 관행을 바꾸고 공동체 정원을 조성하고 퍼머컬처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오해와 반발이 컸다. 시장이 주민들을 이해시키는 데 2년이 걸렸다. 공청회를 열어 설명하고, 이어진 교육 시연을 통해 점차 수용도를 높였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점차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원주민과 신주민 간의 유대감을 강화했다. 결론적으로 생피에르드프뤼지의 활성화는 시장이 정치적 비전을 주민들과 공유하고, 의욕 넘치는 직원들의 의지를 통해 이를 실현하면서 주민들을 사업에 참여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 지자체장들도 이런 유익한 모델을 개발해 마을 전체를 살릴 때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경기남부경찰청과 경기남부자치경찰위원회가 시행하고 있는 청소년 사이버 도박 근절 ‘고백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연초부터 3개월간 접수된 자진 신고자가 121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도박 자진신고는 도박에 빠진 청소년을 구출하고,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일에도 성과를 낼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좋은 방안이다. 자진신고 시스템의 폭을 넓히고 더욱 정밀하게 설계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접수된 자진 신고자 중 117명(96.7%)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수사 부서로 넘겨졌다. 자진신고의 신고 방식은 대부분 본인이 직접 신고한 경우로서 109명(90.1%)에 달했다. 보호자를 통한 신고는 12명(9.9%)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고등학생이 81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이 40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 상당수는 또래의 권유나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도박에 처음 접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수사 대상 청소년에 대해 도박 금액과 반복 여부, 범행 경위, 반성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처분 수위를 결정한다. 특히 선도심사위원회를 활용한 훈방이나 즉결심판 제도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전과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하는 등 낙인 방지에도 중점을 둘 계획이다. 경찰청 형사사법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1월부터 1년간 실시한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에서 총 3544건에 5196명이 검거됐고 이 중 314명이 구속 수감됐다. 환수한 도박 범죄 수익금은 총 1235억 원에 다다른다. 청소년 도박 중독의 폐해와 심각성은 지속해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년간 경찰에 적발된 청소년 도박행위자는 무려 7153명에 달한다. 기간 중 법적 조치된 피의자는 10대 417명(7.0%), 20대 1514명(25.3%), 30대 1489명(24.9%), 40대 1366명(22.8%), 50대 800명(13.4%), 60대 이상 306명(1.7%) 등이다. 경미한 청소년 범죄혐의자는 경찰서에 설치된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한다. 범행 정도를 감안하여 일부는 훈방·즉결심판 청구 또는 송치하고 있다. 또한 당사자·학부모 동의를 전제로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등 전문상담기관에 연계해 치유 및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한다. 친구 소개·문자·커뮤니티 등으로 유인되는 청소년 사이버 도박은 도박 빚과 재정적 부담이 누적되면서 결국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이 된다. 빚을 갚기 위해 중고 거래·대출·사기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중대성의 핵심이다. 범죄 사이트 운영진의 프로그램 조작으로 초기에는 ‘이익’을 보게 만든 뒤 구조를 바꿔 수익을 강탈하는 방식이 구사되기 때문에 사회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이 되고 있다. 청소년 사이버 도박이 일으키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청소년 도박 문제 군(群)이 절도 경험, 자살 생각, 다툼, 학교생활 문제 등에서 정상 청소년 대비 두 배 이상 높은 차이를 보인다는 끔찍한 일부 조사 결과는 소름을 부른다. 일단 연쇄 중독의 악순환에 빠지면 치료·재활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 사이버 도박은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사이버 도박 청소년들을 방치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기남부경찰청 등이 시행하고 있는 청소년 사이버 도박 근절 ‘고백 프로젝트’는 그 대상의 특성 때문에 대단히 유용한 수단이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못한 아이들은 나쁜 유혹에도 약하지만, 그들을 구해내기 위한 효과적인 노력에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고백 프로젝트’에 높은 호응도를 나타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이버 도박 근절 자진신고는 그들을 구해내기 위한 희망의 두레박이라는 인식을 심을 수 있도록 더욱 정밀한 방책으로 진화돼야 한다. 지옥문 앞에서 만난 구세주처럼 그들이 안심하고 두드릴 수 있는 ‘기적의 문’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2026년 4월 3일 제22대 국회는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헌법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헌법 제128조 제1항). 이번 헌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을 제외한 6개 정당의 187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헌법의 제목을 한자에서 한글로, ‘大韓民國 憲法’에서 ‘대한민국 헌법’으로 바꾼다. ② 헌법 전문에 부마민주항쟁과 518광주민주화 운동을 명시한다. ③ 계엄에 대한 헌법 조항을 개정해 비상계엄 요건을 강화한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하고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계엄 선포 후 48시간 이내에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승인이 부결될 경우 계엄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의결한 때에도 계엄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④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한다. 대통령 연임제와 같은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내용은 이번 개정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헌법개정안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헌법 제89조). 대통령은 2026년 4월 6일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 공고안을 심의의결했다. 제안된 헌법 개정안은 대통령이 이를 20일 이상의 기간 공고하여야 한다(헌법 제129조).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 공고안도 20일 간 관보에 공고될 예정이다.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헌법 제130조 제1항).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헌법 제130조 제2항). 국회의원 재적의원 중 3분의 2가 의결정족수이므로, 197명의 찬성표가 확보되어야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가능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반대 당론을 유지하고 있고, 개헌 국민투표가 성사되려면 국민의힘 의원 중 10명이 이탈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국민의힘은 개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선거 기간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지방선거가 개헌 선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6월 지방선거는 이미 개헌선거가 된 셈이다. 국민의힘이 일치단결하여 개헌 국민투표가 좌절된다면, 국민의힘은 “헌법의 한글화”,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 “비상계엄 요건 강화”, “지역균형발전의 헌법화”를 저지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지방선거를 시작하게 된다. 개헌 국민투표가 성사되어도 지방선거는 개헌선거가 되겠지만, 개헌 국민투표가 좌절된다면 지방선거는 더욱 개헌선거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헌법 개정은 바람직하다. 헌법 개정안에 의하면 또다시 비상계엄이 선포되더라도 비상계엄을 무효화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들이 계엄군의 무력에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의사당에 모여야 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계엄을 하기는 더 어렵게 되었고, 국회가 계엄을 막기는 더 쉽게 되었다.
뭍에도 섬에도 진달래꽃 천지다. 붉은 꽃 한 아름, 가슴에 묻은 딸이 아비의 묘비를 찾는다. 저것이 내 아비의 이름인가. 눈으로 더듬고 손으로 불러도, 묘비에 박힌 아비의 이름은 아득하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라서 허망한 것일까. 일흔이 넘은 딸이 아비의 묘비 앞에 술을 따른다. 드세요, 아버지. 일흔이면 어떻고 아흔이면 또 어떠한가. 아비라는 단어는 나이와 상관없는 울음인 것을. 참으면 참을수록 화르르 타오르고 마는 설움인 것을. 일흔도 넘은 딸이 아비의 묘비 앞에 담배를 태워 놓는다. 드세요, 아버지. 불러도 대답은 없고, 담배 연기만 묘비 너머로 종종걸음친다. 진달래가 지고 나면 봄이 오던가. 야속할 노릇이다. 기억은 남겨진 자의 몫이어서, 봄조차 되살릴 수 없음을 떠올리게 할 뿐. 계절은 되돌릴 수 있어도 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올 수 없음을. 그렇게 누구는 가고 누구는 남는 게 세상살이인 것을. 돌아본들 무엇하겠는가. 뭍에도 개나리꽃 머금었는지. 밥풀 같은 노란 꽃 흩어지면, 그 너머로 하얀 저고리에 핏물 적시며 목련꽃 쓰러지는지. 섬에서는 없어진 지 오래잖는가. 사내란 사내는 죄다 무너지고, 서 있는 거라곤 뭉그러진 돌하르방뿐이라. 뭍에서는 돌과 바람과 여자뿐인 섬이라고 부른다지. 잎이 돋기도 전에 꽃부터 지고 마는 진달래꽃인 걸 모른다지. 하긴, 그런다고 해서 또 어쩌겠어. 견디는 것들이 모여 산으로 우뚝 솟구친 게 섬의 운명인 것을. 포구에도 바다에도 봄 햇살 천지다. 파도 소리 한 묶음, 가슴에 묻은 아비가 딸의 교복을 펼친다. 이것이 내 새끼 이름인가. 입김 불어 호호 닦아도, 명찰에 새겨진 딸의 이름은 아득하다. 꿈에서조차 대답 없는 이름이라서 먹먹한 걸까. 교복을 품에 안은 아비가 딸이 누운 바다에 밥을 먹인다. 배고팠지, 내 새끼. 자식 앞세운 죄인은 물만 마셔도 창자가 끊어져. 딸이 살던 방문을 열면 손발부터 오그라들어. 딸과 찍었던 사진을 보면 숨이 턱 막혀. 교복을 품에 안은 아비가 딸이 누운 바다에 옷을 입힌다. 추웠지, 내 새끼. 만져도 대답은 없고, 차가운 온기만 파도 너머로 달음박질친다. 진달래가 떨어지면 봄이라던가. 환장할 노릇이다. 기억은 남겨진 자의 몫이라서, 봄조차 되살릴 수 없음을 떠올리게 할 뿐. 계절은 되돌릴 수 있어도 한 번 떠난 세월은 돌아올 수 없음을. 왜 그래야만 했을까. 섬으로 가야 할 배가 숨을 멈추고 가라앉는데도, 스피커에선 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하였을까. 아비는 아직도 기가 막혀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해. 너를 태운 배는 어느 섬을 향해 흘러가고 있을지. 너와 보낸 세월은 배냇저고리와 교복 사이의 항로만 하염없이 떠돌고 있어. 지도를 펼쳐도 네가 도착할 항구는 보이지 않아. 남은 거라곤 이름 세 글자 새겨진 교복뿐이라서. 아비는 오늘도 딸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바다에 선다. 저기, 진달래꽃 닮은 배 하나 섬으로 간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새해 국민주권 정부의 목표 중의 하나가 ‘산재(산업재해)근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 앞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성취는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다”고 했다. “아침밥 먹여 보낸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면서 “생명 경시에 대한 비용과 대가를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치를 수 있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 이면에는 산재노동자가 있었다. 그동안 정부는 산재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해 9월 1일 기자 간담회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오는 2030년까지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산재 감소는 국가적 책무라며 (장관)직을 걸겠다는 말도 했다. 건설업계 불법 하도급 구조 개선과 고령·이주 노동자 보호 대책 등 구체적 실행 방안을 약속했다. 정부는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강도 높은 정책을 내 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산재 사망자는 더욱 증가했다. 3월 31일 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이었다. 이는 전년도 589명 대비 16명(2.7%)이 늘어난 것이었다. 지난해에 발생한 중대재해로는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복합리조트 신축공사장 화재사고(6명 사망) ▲안성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현장사고(4명 사망)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사고(7명 사망) ▲광주 서구 광주대표도서관 건립공사 현장 사고(4명 사망) 등이 있다. 올해도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 사고(14명 사망) ▲경북 영덕의 풍력발전단지 발전기 화재사고(3명 사망) 등 산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산재든 중대재해든 기본적으로 안전문화가 정착돼야 하고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노동부 관계자의 말은 옳다. 따라서 지난해부터 4월 28일을 ‘산업재해근로자의 날’(법정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보다 앞서 한국노총은 지난 2000년 12월 서울 보라매공원에 ‘산재희생자 위령탑’을 건립하고 매년 4월 28일 추모제를 개최하는 등 산재노동자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을 촉구해왔다. 우리나라 노동정책의 후진성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는 산재 처리 지연 문제가 여전하다. 한국노총은 “업무상 질병의 경우 평균 7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어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신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개선 방안 또한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오는 28일은 두 번째 맞는 산재노동자의 날이다. 경기도 노동계는 “죽음의 일터 구조를 바꾸겠다”며 4월에 집중적으로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일자 4면, ‘죽음의 일터 구조 바꿀 것… 경기 노동계, 이달 집중 투쟁 예고’) 1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와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경기운동본부는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을 선포했다. “건설현장에서의 중대재해, 불법고용, 불법하도급, 임금체불 등 ‘4대 문제’에 묶여 있다. 자본은 책임지지 않고 죽음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건설노조 조용준 수도권남부본부장), “급식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이 이어지고 있지만 환기시설 개선과 인력 충원은 여전히 미흡하다”(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임명순 노동안전위원장) 등의 발언도 이어졌다. 여당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 최대 영업 이익 5%를 과징금으로 부과’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 중심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따라서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구조적 요인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말도 참고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