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임기를 거의 마쳐가는 대통령의 얼굴은 부어 보였고 표정은 굳어있었다. 역대급 임기말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은 마지막 대담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재만 남은 신갈나무 그루터기처럼 보였다. 그는 때로는 짙은 아쉬움과 회한을 비치기도 하였고 한편으론 작심한 듯 세간의 비판에 항변하고 깊은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나는 대담을 보면서 분노를 억누르며 말하고 있음직한 대통령의 항변과 우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스스로 아이러니라 언급했던 야당후보로 변신한 검찰총장의 당선! 곧바로 숱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이는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기행들, 또 차기정권 각료인선에서 불거지는 목불인견의 잡음들을 지켜보는 대통령의 마음은 어떠할까? 탄핵이란 폐허를 딛고 애써 쌓아 올린 대한민국이란 공든 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나를 안타깝게 만든 것은 정작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패인을 묻는 질문에서 “나는 한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는 대목이었다. 아니.. 선거는 힘을 모아 교대로 싸워야 하는 태그매치였다. 야당은 합종연횡으로 태그매치 상대까지 바꿔가며 링에 오르는데 여당은 현직 대통령이 링을 떠나버렸으니 낭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나라 곳곳에서 일상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관광산업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거의 고사 위기에 빠져 있었던 여행 관련 업계는 해외여행 수요와 외국 관광객 유입 증가에 큰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각 지방정부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해제에 따라 그동안 억눌렸던 관광수요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본격적인 관광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움츠러들었던 관광욕구가 분출하고 있는 현상은 전자상거래 업체인 티몬은 지난 1분기의 국내여행 실적을 집계 결과에도 나타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동기간의 실적보다 5% 높았다고 한다. 제주 여행 매출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기 전과 비교해 22% 늘었으며, 4월 7~17일 국내여행 매출은 전달 동기 대비 105%나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원하는 '대한민국 숙박대전'이 시작된 영향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등 여행약자들에 대한 기반이 부족하다. 국민들의 인식도 장애인들의 여행 욕구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관광서비스 업체도 지방정부도 장애인 여행에 소극적
올레길을 걸을 땐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길에서는 조랑말 모양 표지인 간세가, 나뭇가지에 묶인 파란색과 빨간색 리본이, 전봇대와 돌담에 붙은 화살표가 방향을 알려준다. 때때로 부슬비가 내리거나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흐리지만 한적한 숲길이나 바다 옆길을 걸을 때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어느 골목 어귀에선 집 앞에 앉아 지나다니는 이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어르신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말을 지날 땐 반가움에 살짝 손을 든다. 잠시 생각에 잠기거나 으레 가던 방향으로 가다 보면 표지를 놓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당황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표지를 봤던 곳까지 되돌아가 다시 길에 오른다. 자동차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은 가장 빠른 길과 시간을 검색한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초행길을 걸을 때면 모르는 길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경계하면서 스마트폰을 꼭 붙들고 긴장을 놓지 않는다. 길을 잃었을 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먼저지만 위치 파악은 위성이 해주니 화면만 들여다보며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가면 된다. 자연스레 길을 보는 시간보다 화면 속 지도를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초록 나무와 파란 바다를 마주할…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다는 평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건강한 비판을 하지 못해왔던 점도 이런 비판을 받게 한 요인이다. 언론이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려면, 정치가 국민 상식을 일탈할 때 개처럼 짖어대야한다. 그래서 감시견이다. 다만 감정 섞인 비판은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감정의 개입은 언론이 짖는 소리를 의례 그런 집단 정도로 전락시킨다. 새 정부 인사청문회는 언론이 언론다움을 회복할 좋은 기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4월 3일 한덕수 전 총리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10일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13일에는 나머지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언론의 집중 검증을 받았다. 지명 다음 날인 11일(월), 언론은 그가 윤 대통령 당선자와 ‘40년 지기’라고 보도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윤 당선자가 경북대 의대 출신의 정 후보자와 어떻게 40년 지기가 됐을까?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정 후보자의 고교 친구와 윤 당선인이 서울대 법대 동기여서 친분을 맺게 됐다는 한 줄 보도 덕이었다. 조선일보는 “윤 당선인은 40년 한결같은 친구”라며 “식사할 때면 먼저 계산하려 했다. 공무원 봉급을 받아 가
싸움과 말다툼은 쉽지만, 끝내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끄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논쟁을 할 때 노여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미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논쟁하게 된다. (칼라일) 어떤 사람을 설득할 때는, 그 사람이 지닌 사상에 의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즉 그 사람 안에 건전한 사려와 분별심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 이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마음은 그 자신의 감정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 사람 속에 선량한 마음이 틀림없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무리 악의 무서움을 얘기하고 선을 칭찬해도, 악에 대한 혐오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선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칸트) 이성의 승리에 가장 공헌하는 것은, 이성에 봉사하는 자의 평정한 마음이다. 진리는 종종 반대자의 공격보다 옹호자의 열광 때문에 더 괴로워한다. (토머스 페인)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은 마음껏 칭찬하라.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지지와 격려를 얻지 못해 바른 길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고, 너 자신도 상대방에게 그것에 대한 당연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청사진을 만들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취임 보름을 남겨놓고 새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으로 ‘공정, 상식, 실용’을 잠정 확정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다음 달 3일 110개의 국정과제를 공개할 계획이다. 10년 만에 부활한 인수위가 높은 국민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일단 그리 후하지 않다. 특히 ‘대통령 관저’를 어디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갈팡질팡’ 이미지는 자못 실망스럽다.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가 최상위 ‘국가 비전’ 아래 6대 국정 목표, ‘국민께 드리는 약속’ 20개, 이를 구체화한 국정과제 110개의 4단 구조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6대 국정 목표는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나라’,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 시대’ 등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달 18일 인수위 출범식에서 “새 정부는 일 잘하는 정부,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정부가 돼야 한다”며 “국정과제는 개별 부처와 분과를 넘어…
20대 대통령 선거가 민주진영의 패배로 끝났다. 근소한 차이로 졌다고 하지만 그 영향이 너무도 엄청난 것이기에 패배 원인이라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그 원인을 민주정부의 치밀하지 못했던 국정 운영과 민생 정책의 총체적 실패에서 찾고자 한다. 우선 국정의 이니시어티브를 잡지 못한 탓이 크다. 해방 후 한반도는 애초 미국의 냉전 전략에 따라 민주주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어렵도록 설계돼 있었다. 미국이 주도한 냉전 속에서 일본과 한반도에는 소련의 남진을 막을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 민족의 이익이나 민주주의에 앞선 이 핵심적 국익 때문에 미국은 줄곧 독재세력의 집권을 도와왔다. 친일 부패 엘리트들이 지배 세력으로 재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승리를 쟁취한 민중을 대신해 집권한 민주 정부들은 하나같이 빈약한 정치적 비전으로 국정 난맥상을 보이다가 자멸하고 말았다. 4월 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의 좌절, 1980년대 서울의 봄과 6월항쟁의 상황에서조차 독재를 끝장내지 못한 것 등은 그 생생한 사례이다. 민주 정당들의 분열과 일부 지도자들의 과욕이 빚은 결과였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역시 거악 세력들의 발목잡기로 휘청거리다가 정권을 내주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육체적 존재 혹은 영적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육체적 존재로 인식하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신에 대한 사랑’이란 자기 존재에 최고의 창조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진과 노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의 창조력은 모든 생명체에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것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생명체는 인간이다. 그 힘이 작용하려면 인간이 먼저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이 최선의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인간은 반드시 최악의 것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무슨 일에서든 그것이 신의 뜻임을 알았을 때, 나는 내 의지를 버리고 신이 원하는 것만 행하리라”라고 진심으로 네가 말할 때, 비로소 너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에픽테토스) ‘실컷’ 못 먹어본 것 먹어야겠다느니, ‘실컷’ 못해본 것 해보겠다는 ‘실컷’ 따위의 말은 땅에 내버려야 합니다. 대신 깨끗하게 깨끗이 한 얼 줄(經)을 잡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땅 위의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은 땅덩어리와 같이 딴딴하게 확실히 있다고 합니다. 반면 하늘은 하늘하늘하기 때문에 믿기 어렵습니다. 똑똑한 곳에서 살아야지 하늘하늘한 하늘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합니다. 딴딴한 것이 훌륭하
금발의 어여쁜 두 소녀가 피아노 앞에 있다. 한 소녀는 악보를 응시하고 다른 소녀는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피아노 치는 소녀들(Jeune filles au piano)'.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대표작이다. 파리에서 모델 살 돈이 없어 시골로 거처를 옮겨야 했던 르누아르. 마흔아홉에 행운을 잡았다. 프랑스정부가 룩셈부르크 뮤지엄에 전시하기 위해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산 것이다. 큰돈을 번 르누아르. 난생처음 파리에 집을 사고 에소이(Essoyes)에 아틀리에도 열었다. 늦게 인생이 활짝 피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무지하게 고생한 흙수저였다. 재봉사인 아버지와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그. 부모님은 가난을 탈출하고자 세 살배기 르누아르를 업고 파리로 이사했다. 하지만 도회지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열세 살의 어린 르누아르는 결국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도자기공장에 취직해 문양을 넣고 부채를 그리고 장롱에 문장을 넣었다. 이때 8년간 야간학교에 다니며 장식예술과 데생을 공부했다. 그 덕일까. 르누아르는 스물한 살 때 프랑스 최고의 미술학교,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 합격했다. 여기서 모네를 만나 친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