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역도 선수는 든다 비장하고 괴로운 얼굴로 숨을 끊고, 일단은 들어야 하지만 불끈, 들어올린 다음 부들부들 부동자세로 버티는 건 선수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희한하게 힘이 남아돌아도 절대로 더 버티는 법이 없다 모든 역도 선수들은 현명하다 내려놓는다 제 몸의 몇배나 되는 무게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텅! 그것 참, 후련하게 잘 내려놓는다 저렇게 환한 얼굴로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 창작과 비평사 삶의 목표나 목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견뎌내야 하는 무게는 더하게 마련이다. 누구나 설정하는 삶의 목적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획득, 어떤 부(富), 어떤 만족 따위일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허리가 휘도록, 등이 굽도록 지고 있는 무게를 과감히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역도선수처럼 남아도는 힘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손에 쥐려고만 하지 말고 일순간 “텅!” 하고 내려놓다보면 남아도는 힘은 다시 삶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쓰일 것이다. “환한” 웃음은 그럴 때 보이는 것이다.…
/박경숙 세계문화유산 화성 행궁동 거리에 서면 온 몸으로 느껴지는 역사의 모듈 인류 문명으로부터 진화해 온 첨단을 달리던 자동차 사라지고 도로 위로 나선 사람들 무동력 바퀴로 굴리는 세계의 이목이 정조로를 따라 구른다 사람을 중히 여긴 정조의 어심 뿌리내린 인류의 미래를 향한 생태교통의 시발지 수원화성 행궁동에서는 사람이 도로의 주인이다 ‘자동차는 말썽이다. 왜 하필 눈사람을 치고 달아나는가?’ 최승호의 시 <눈사람>은 자동차라는 문명의 상징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우화적으로 담아냈다. 이 시 역시 문명보다는 휴머니즘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은 자동차가 사라진 수원화성 에코의 거리이다. 자동차가 사라진 도로에는 자전거 등의 친환경 운송수단이 정조로를 따라 구르고 있는데, 이는 사람을 중히 여긴 정조의 어심과 맞닿아 있다. 수원화성 에코의 거리에서는 사람이 주인이다. 시인의 어머님이 병상에 누워계신다. 쾌유를 빈다.…
/김명수 늙은 남자가 네모진 솜틀기계에 발판을 밟았다 뽀얀 먼지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 아내가 활 채로 뭉친 솜을 타기도 했다 수건 쓴 머리에도 얼굴에도 눈썹에도 솜먼지는 뽀얗게 내려앉았다 오십 년 전 충청도 어렸던 시절 하학 길 집에 올 때 제천 읍 서부동 길가에 있던 이불솜을 타주던 오랜 솜틀집 반백 년 시간이 자옥이 흘렀다 누가 긴 활 채로 나를 타고 있는 걸까 솜 가루의 시간이 솜먼지의 시간이 내게도 흘러갔다 -시집, 곡옥/ 문학과 지성사/213년 솜틀집이란 말, 참 오랜 기억 속으로 데려다 준다. 학교 앞 문방구 옆에 솜틀집이 있었다. 시인의 말처럼 머리며 눈썹이며 옷이며 어디 한 군데 빈틈없이 하얗게 솜먼지가 앉아있던 솜틀집 내외. 철거덕거리는 솜틀기계가 신기해 방금 산 알사탕을 입에 물고 망연히 서서 바라보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도 솜 가루 같은 시간이 솜먼지 같은 시간이 흘러 머리에 하얗게 솜먼지 같은 백발을 뒤집어쓰고 저마다 어디서들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 활 채로 나를 타 지금의 여기에 이렇게 부옇고 밋밋하게 낯선 나를 데려다 놓은 것처럼.…
/이면우 단풍나무 잎새만한 아이 손 막 맺힌 오이에 갖다 대고 오이, 오이, 힘줘 말해보는 아침 안개 젖은 파란 잎 새로 오이꽃 노랗고 가까이 호박벌 붕붕붕 스무 발자국 저쪽 오두막에서 안개를 건너오는 도도도도 도마질 소리, 그때 산과 호수와 숲을 처음이듯 둘러보며 오싹 소름 돋아 무심코 내뱉은 말 그래, 단 한번이면 족하다. -이면우 시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작과 비평 2001> 데자뷰, 언젠가 꼭 와봤던 곳 살아봤던 친근한 느낌으로 낯선 곳에서 울먹여 본 적 있다. 자메뷰는 그 반대 느낌이다. 처음 보는 느낌, 모든 것이 너무도 낯설게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물리학에서는 평행우주 안에 우리와 동일한 우주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시인은 어느 날 아침 아이의 그 조그마한 손이 오물거리는 걸 보고 우주의 운행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른 우주를 보았을지도, 오이꽃 주위를 붕붕거리는 호박벌에서 도마질 소리에서 온 생애를 꿰뚫고 오는 말씀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침 속으로 들어가 나도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다.…
/박현수 어린 날 저 주름을 망치로 펼쳐 병뚜껑 딱지를 만들었지 양철소리도 맑은 동그란 딱지를 만들었지 주름을 펴면 둥근 원이 된다는 건 일종의 화두 그때 우리는 양철을 두드리는 구도자였지 이제 어떤 아이도 병뚜껑으로 딱지를 만들지 않지 이제 어떤 아이도 주름진 것들도 한때는 완전한 원이었다는 걸 깨닫지 못하지 --계간 리토피아 2013년 겨울호에서 본질을 깊숙이 살피다 보면 본래 직선이라는 것은 없다고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강직한 것을 좋아하고 분명하게 각이 진 것을 좋아한다. 바르게 펴진 것을 좋아하고 똑바로 서거나 똑바로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 바르게 산다는 것도 直에 해당한다. 곧다는 것이다. 대쪽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쪼개지는 것으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실 직선은 쭉쭉 뻗다보면 가는 철사가 되고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주변 사람들이 항상 조심을 해야 하고 경계를 해야 하는 서늘함이 배어있게 마련이다. 반면에 둥근 것은 어떠한가. 직선보다는 차라리 편안한 존재이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다칠 일이 없는 부드러운 존재이다. 동심이 발견해가는 이런 따뜻한 세계도 세상 물이 들어가면 잊히게 된다. 각진 것들 사이에서 혼…
/조영여 히! 하고 헤- 하면 하루 다 간다 뭘 그리 이고 지고 살았을까 몰래 훔쳐 내 것인 양 품어온 것들 미련 없이 버린다 헐거워진 배낭 고개 들어 하늘이 보인다 곁에 있는 당신 얼굴이 오래도록 보인다 --<거와 미> 동인 시집 ‘하루, 다 간다’(2013, 심지)에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했던 인생이 이제 하루처럼 여겨집니다. 그만큼 시간의 걸음걸이는 분주합니다. 지금 바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모두들 모처에서 날이 저물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두교의 좀비처럼 누군가 우리의 영혼을 저당잡고 빼앗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렇게 의지 없이 허허로운 도시를 헤매고 다니겠습니까. 그런데 본래 우리의 삶은 신에게서 훔쳐온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죄지은 자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깨어나 고개 들면 지워졌던 당신의 얼굴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고순례 과열된 욕심은 고단한 일상으로 보이고 터질 것 같은 열기 속 짊어진 부채 밤새 붙들어 기운 빠진 속 몸보다 커다란 짐을 지고 살아가는 별난 세상 그냥 매달리는 것에 이력이 나는 가녀린 풀줄기에서 더욱 돋보이는 풍경. 시인과 정겹게 웃던 사월 어느 날, 침묵의 잠언을 들었다. 달팽이는 많은 시에서 소재로 쓰이고 있는데, 주로 고난과 열정을 상징해 왔다. 그런데 이 시는 달팽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별난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 이 시에서 달팽이는 과열된 욕심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제 분수보다 큰 욕심을 품고 사느라 부채와 고민은 늘어나고 우리의 일상은 고단할 뿐이다.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벌어야만 할 것이다. 소유욕을 조금만 줄이면 우리 몸에 안성맞춤인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성백원 뿌리 없는 생명이 어디 있으랴 비는 근원을 찾는 신호등 이방인의 하루를 슬프게 한다 낯익은 기억 속의 세포를 더듬어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로 모인다 저 물길의 끝을 찾아가면 원초적 태생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까 세상살이에 지쳐 구겨진 몸을 끌고 먼 길을 떠나는 생명 하나 성글게 보이는 강둑 너머로 아픔의 흔적들이 나풀거린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고 했다. 또한 탈레스는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세상 모든 사물에는 제 나름대로 삶의 의미가 충만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의 화자는 사소한 사물의 하나인 종이컵에 크나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 오는 날 물길을 따라 떠내려가는 구겨진 종이컵을 보며 종이컵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사유한다. 종이컵의 운명은 곧 우리 인간의 운명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디에서 흘러왔고 어디로 흘러가는가? 이 물길의 여정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인생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 ‘성글게 보이는 강둑 너머로 아픔의 흔적이 나풀거린다’는 시인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서정춘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됃이 피는 마을 까지 백 년이 걸린다 -- 서정춘 시집 「죽편」, 동학사 2002 아주 오랜만에 무궁화 열차를 탔다. 남쪽나라 풀섬으로 떠나는 밤차, 어딘가로 떠나는 밤은 아무리 여행이 목적이라 해도 마음을 긴장하게 하는 것이 있다. 불빛 환한 역사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밤차에 몸을 실었다. 짐들이 올려진 선반도 기차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 깊어가는 어둠속을 달리는 기차, 사람들은 속도에 맞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 풀섬으로 가는 길은 백 년이 걸렸을까. 고속열차가 생긴 후 우리는 고즈넉한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싣는 일이 드물어졌다. 어디든 빠르게 바로 도착해서 바쁘게 움직여야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매사 서두르다보니 우리가 살던 세상은 저만치 뒤로 멀어져버렸다. 아득해졌다. 자꾸만 지워지는 기억을 간신히 움켜쥔다.…
/문정영 비 그치고 돌멩이 들어내자 돌멩이 생김새만 한 마른자리가 생긴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발 크기가 비어 있다. 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 키는 다 젖었고 걸어온 자리만큼 말라가고 있다. 누가 나를 순하다하나 그것은 거친 것들 다 젖은 후 마른 자국만 본 것이다. 후박나무 잎은 후박나무 잎만큼 젖고 양귀비꽃은 양귀비꽃만큼 젖어서 후생이 생겨난다. 여름비는 풍성하여 다 적실 것 같은데 누운 자리를 남긴다. 그것이 살아가는 자리이고 다시 살아도 꼭 그만큼은 빈다. 그 크기가 무덤보다 작아서 비에 젖어 파랗다. 더 크게 걸어도 더 많이 걸어도 꼭 그만큼이라는데 앞서 빠르게 걸어온 자리가 그대에게 먼저 젖는다. -포엠포엠 2013·가을 Vol, 59 사람은 꼭 자기 그릇만큼의 삶을 산다고 한다. “저 녀석은 그릇이 그것밖에 안 돼.” 흔히 모든 사물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비가 적시지 못한 돌멩이의 자리, 내가 서 있는 발자국만큼의 공간, 후박나무 젖은 잎은 돌멩이라는, 나라는, 후박나무라는 본체의 극히 일부분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작고 보잘 것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의 결과는 꼭 그만큼의 자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