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소낙비 /박성우 청개구리가 울음주머니에서 청매실을 왁다글왁다글 쏟아낸다 청개구리 울음주머니에서 닥다글닥다글 굴러 나오는 청 매실 소낙비가 왁다글왁다글 닥다글닥다글 왁다글닥다글 자루에 담아간다 -현대시학/ 2012년 7월호- 개구리 울음소리가 푸르고 시큼한 매실들 굴러 떨어지는 비유로 시끌벅적 하다. 청개구리가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왁다글닥다글 울어대는 농촌의 여름풍경이라니…. 개구리가 울어대면 소낙비가 온다. 머리에 수건을 쓴 아낙들이 뒤란을 오가며 비설거지를 하고 장단지가 검은 동네 남정네들은 물꼬를 트러 분주히 들로 나간다. 개구리 울음소리 뚝 그칠 게 뻔하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 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세계숨은시인선/아담 자가예프스키『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문학의숲 늘 구원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우린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들 때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비로소 위안을 생각하고 구원을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구원하는가? 누구는 전지전능한 神만이 인간을 구원한다 하고, 누군 종교를 떠올리고 누군 구원 따윈 없다고도 말한다. 나는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나라는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오직 타인만이, ‘타인이 가진 그 시, 음악, 그림에서만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태어나는, 즉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인간
행인 2 /신동집 가지에 주렁 달린 열매를 보아라. 행인(行人)이여 반짝이는 한 알씩의 노래를 보아라. 할 일 마친 나무는 아득히 생각에 잠긴다. 열매들의 달롱이는 노래도 알 바 없이 나무는 대지(大地)의 다스림을 받아들인다. 해 짧은 날의 목숨을 한로(寒露)의 가지 끝에 걸어 놓고 떠나는 행인(行人)이여. 누구나 다 한 번은 마지막이 될 인사를 남겨 놓고 돌아갈 곳은 언제나 서리 묻은 원점(原點)이다. 길 떠나는 이여. 한로의 가지 끝에 짧은 목숨을 걸어놓고 떠나는 이여. 열매를 맺은 후 할 일 마친 나무가 대지의 다스림을 따르듯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無)로의 영원한 회귀, 그것이 삶이다. 그것은 허무가 아니다. 시작된 원점으로 돌아가는 우주적 삶이다. 시원에 이르는 길이다.
주흘산(主屹山) 그녀 /김경은 늦은 걸음 시침(時針)을 끌어다 힘껏 동여맨 새벽하늘은 가장 가까이 누운 여인의 귀에 자명종(自鳴鐘)을 울린다 뒤척이다 보인 미끈한 속살 밤새 그녀를 덮고 있던 옅은 구름의 탄성 늘어뜨린 머릿결에 송정(松情)을 심어 사철 바람이 전하는 무수한 언어에도 그녀는 말이 없다 다만 삶의 무거운 짐 벗은 사람들 마음을 품고 가슴 언저리로 부는 샛바람에 날아오르는 새가 된다. 주흘산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운달산과 그 왼쪽으로 멀리 소백산 등이 이어진다. 주흘산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면 시간이 그대로 정지했으면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멈출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이 시에는 그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주흘산에서 그녀와 함께한 간밤의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갔으면 싶지만 매정한 새벽하늘은 시침을 끌어다 밤을 사라지게 한다. 간밤의 정취를 담아 그녀에게 정을 보내지만 어느덧 아침이 밝아오고 그녀는 말이 없다. 우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야 한다. 그것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숙
나비 /성명순 몇 그램 달랑 갖고 접었다 폈다 이 꽃 저 꽃 비밀을 털어버린다 나도 접고 싶다 아주 가볍게 아주 시원하게 아주 고운 색으로 분칠하고 사뿐 날아가고파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잠시 침묵하고 산으로 들로 날아오르는 날들 한 번 더 깊은 숨을 들이 마신다 바람처럼 스치는 세월 수국이 하얗게 피어난다 가슴 한쪽이 아릿해 철모르는 화사한 날개짓 하루 해 늪으로 빠진다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모양을 보면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과 흡사하다. 이 시에서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옮겨가며 비밀들을 털어내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나비처럼 누군가에서 누군가로 옮겨가며 가볍고 시원하며 고운 색의 언어들을 털어내고 싶어 한다. 바로 그런 존재가 시인(詩人)이 아닐까? 시인은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잠시 침묵하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 한쪽을 아릿하게 만드는 시어들을 토해낸다. 이 시를 쓴 성명순 시인은 수원예술학교 교장인 신금자 수필가와 함께 교감으로 봉사하고 있다. 비바람 몰아쳐도 해바라기 씨앗을 둥글게 여물 듯, 엄마의 모성으로 모진 서러움을 감싸 안으며 꼬박꼬박 비상의 하루를 열어가는 시들을 쓰고 있다. 시인의 날갯짓으로 아름다운 꽃잎들이 만개하기를 바라본다.…
토요일 아침 신문을 읽으며 /윤석산 토요일 아침, 조간신문 토요 섹션을 본다. 신문 첫 면에는 한쪽 팔이 없는 부인과 한쪽 다리를 못 쓰는 남편이 서로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서 있다. 신문을 넘기고 넘겨 맨 마지막 면에 이르면, 팔십 세 소년이 팔십 세 소녀 부인의 손을 잡고 빙긋이 웃고 있다. 손을 잡으면, 누구나 웃는구나 손을 잡으면 누구나 마음이 환해지는구나 팔이 한쪽 없어도, 한쪽 다리가 불편해도 나이가 팔순이 넘어도 손을 잡으면 누구나 세상을 향해 웃을 수 있구나 그래서 세상의 앞면과 뒷면 모두를 장식하는구나. 토요일 싱그러운 아침을 열며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이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사람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걸어 나온다. 팔순이 훨씬 지나도 스물같이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계면쩍음도 없이 서로 손 꼭 잡고 한 장 한 장 또 한 장 세상 넘기고 계신다. 출처 - 윤석산 시집 『나는 지금 운전중』- 2013년 푸른사상 형식적인 인사치레이기 십상인 악수와 달리, 둘이 나란히 손을 잡는 행위는 ‘열린 마음’ ‘동행’의 의미가 짙다. 친구나 형제자매, 부부, 부모 자식 간이 아니면 선뜻 나올 수 없는 포즈다.…
목련 /전기철 세밑이었어요. 杜甫는 今夕行. 집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어요. 종묘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자고 가요!” 할머니였어요. 어둠을 휩쓸어가고 있는 거리는 몽상으로 얼룩졌어요. “자고 가요!” 나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말씀 때문에 종종걸음을 치며 안절부절 못했어요. 불량배들의 놀이터인 도시 서울에서는 길을 잃어야 제대로 산다고 했던가요. 今夕行! 세상의 표지는 너무 우울했어요. 불행한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고 했던가요. “자고 가요!” 신의 말씀을 어기고 뒤돌아보니 저 멀리 목련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라 캄파넬라! -전기철 시집 <누이의 방>에서- 한 번쯤은 이성을 잃고 흐트러지고 싶을 때도 있다. 저물어가는 거리로 나서며 제발 나도 한 번쯤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싶다. 나를 숨기고 제멋대로 노는 사람들과 어울려 하루 저녁을 보낸다고 해서 커다란 죄가 아닐성도 싶다. 그러나 그러한 방황으로도 끝내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야 만다. 저무는 거리의 유혹하는 모든 것들이 마침내는 목련꽃처럼 하얗게 피어버리고…
마음의 등불 /고찬규 반짝이는 눈도 없이 별을 노래하려느냐. 무엇이 있어 어둠 꿰어 수놓겠느냐, 잠든 밤 스스로를 밝히는 별빛도 스스로를 노래하던 풀벌레 소리도 이미 하나의 생을 위한 홀로의 몸짓이 아니었다. 밤하늘 멀리 피워 올리는 교신 살아 있음을 일깨우는, 영원한 귓가에 소곤거리는 복음 그리고 새벽종과 함께 스미는 눈물 바람 부는 날에도 숨죽인 동굴은 있고 그 안에 등불을 밝히는 마디 굵은 거친 손이 있다 -시인축구단 글발공동시집 토요일이면 지구를 걷어차고 싶다에서- 이미 하나의 생을 위한 홀로의 몸짓이 아니었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별은 별 혼자만으로도 밝을 수 없다. 어둠이 바탕이 되어주어야 빛난다. 풀벌레 소리도 풀벌레 소리 혼자만으로 소리가 될 수 없다. 숨죽인 고요가 있기에 자신의 울음을 달빛에 물든 고요에다 한 뜸 한 뜸 자신의 노래를 수놓는다. 등불을 밝히는 손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희생이란 아름다운 과정을 거친 손이다. 모든 것은 서로에게 배려를 하고 섬세한 호흡으로 뿌리로 몸짓으로 연대감을 가지고 있다. 우주를 공유하고 있다. 봄 들판에 나가보라, 어디 풀꽃 한 송이만으로 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김왕노 시인
공 41 /이순옥 한 움큼의 먼지를 닦아내고 털어내고 날려 보낸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싹싹 버리고 비워낸다. 마음의 고삐를 여리게 풀어놓아 맑게 흐르는 물에 헹구어 놓는다. 누구나 인생길을 걷다 보면 어려운 고비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 고비를 잘 이겨내면 인생길이 순탄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이순옥 시인의 이 시에도 인생길에서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의 첫 시어인 ‘한 움큼의 먼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탄탄대로만 걸을 수는 없다. 하지만 뒤돌아서서 후회하면 무엇 하랴. 우리에겐 지나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들이 놓여 있다. 시의 제목이기도 한 ‘공(空)’은 ‘일체의 더러움과 그릇됨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상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질없는 근심과 걱정들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시의 시어처럼 ‘뒤돌아볼 것도 없이’ 지혜롭게 새 길을 열어가자. 열심히 걸은 만큼 길 찾기 여행도 새로울 것이다./박병두 시인
황산 일출 /전오 여명(黎明)의 운해 호자관해(狐子觀海) 정상에 하늘이 앉았다. 기기묘묘한 암봉 위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호자(狐子)가 앉았다. 천년이 하루련가? 세월의 덧없음을 알몸으로 끌어안고 발갛게 익은 햇덩이에 몸을 던진다. 운해 아래 세상은 욕망으로 앓아대는데 구천 봉우리 헤집고 오르는 새날은 참으로 신선하다. 청정하다. 중국 황산은 바위와 소나무, 구름 등이 빚어낸 절경으로 유명한 산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오악(五岳: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황산은 중국 최고의 명산이다. 이 시는 그런 황산의 풍경을 한 폭의 수묵담채화처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열 번 올라가도 한 번 볼까 말까 한 황산의 일출, 이 시의 화자는 운 좋게도 황산 일출을 만끽하고 있다. 운해 사이로 여명이 밝아오자 간밤의 어둠과 안개가 걷히고 기기묘묘한 암석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웅장한 풍광 앞에서 시간의 덧없음과 욕망 가득한 산 아래의 세상살이를 깨닫게 된다. 그와 더불어 새날의 소중함도 마음에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