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5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친일 청산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일부 친일 세력들은 “해방된 지가 언젠데, 무슨 잔재가 남아 있다고 아직까지 친일 청산을 얘기하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독일과는 반대로 일본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역사 왜곡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이걸 또 옹호하는 한국인들이 있으니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들은 ‘토착왜구’라고 불린다. 이에 대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에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던 친일세력의 반발로 친일 잔재 청산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며 “그 후과를 지금도 겪고 있으며, 잊을만 하면 독버섯처럼 되살아나는 과거사에 관한 망언 역시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사는 지난 1일 3·1절 기념사를 통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았지만 ‘미완의 해방’이었다고 지적했다. 피해 당사자인 한반도가 분할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냉전의 최전선으로써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왜곡된 역사는 왜곡된 미래를 낳습니다. 우리가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에 얽매이거나 보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지사의 말에 동의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해서 그대로 놔두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올해를 ‘경기도 친일청산 원년’으로 삼아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도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도내 친일잔재 조사를 시작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을 의뢰, 자료를 수집했다. 이 결과 친일인물(257명), 친일기념물(161개), 친일 인물이 만든 교가(89개), 일제를 상징하는 모양의 교표(12개) 등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한 뒤 친일 기념물에 역사적으로 잘못 알려진 부분은 바로잡고, 친일 행적 등 역사적 기록을 명확히 담은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친일 행적이 확인된 작곡가가 만든 '경기도 노래'도 폐지하고 새로 만들었다. 이에 앞서 수원시 권선구는 2019년 9월 권선구 88올림픽공원에 있는 난파 홍영후 동상 앞에 ‘봉숭아’를 비롯한 많은 가곡과 동요 100곡을 남긴 업적과 함께 2009년 대통령 소속기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됐다는 사실이 기록된 안내판을 설치한 바 있다. 도는 안내판 설치와 함께 친일문화잔재를 디지털자료로 기록·보존·관리하는 아카이브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도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친일 관련 행적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일방적 ‘청산’ 작업을 넘어 수원시 홍난파 동상의 경우처럼 공과(功過)를 같이 기록해 후대에 남겨주자는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국내외 과거사 청산 사례를 소개하고 친일잔재 아카이브를 구축해 기득권을 위해 공동체를 저버리는 세력이 다시는 득세할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은 지금껏 ‘역사 바로 세우기’를 이어오고 있다. 감추고 왜곡하기 급급한 일본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기도의 의지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K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식구를 이끌고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갓 돌이었던 K는 열병을 앓았고 소아마비가 와서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다. K는 아무 목표도 없이 중학생이 되었다. 희경중학교 다닐 때 김광석(우리가 모두 아는 그 김광석 말이다!) 선배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었다. 그래도 아무런 의욕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과 같았다. 덕수상고에 갔지만 상고를 졸업해도 장애인이 갈 직장은 없었다. 작은 아버지 신발도매상 장사를 도왔다. 노점상도 해봤다. 그러던 중 덕수상고 선배를 만났다. 마침내 K는 할 일을 찾았다. 삶에 목표가 생긴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K는 장애인 운동뿐만 아니라 ‘세상을 뿌..
세탁기가 있고 맨발로 들어가기엔 바닥이 차서 슬리퍼를 신어야 하는 곳, 종종 빨래를 걸어 말리기도 하고 화분을 놓아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는 햇빛이 잘드는 곳, 가끔 삼겹살을 부르스타에 구워먹으며 소주 한잔할 수 있는 환기가 잘되는 곳, 한국 아파트의 발코니 공간이다. 원래 발코니는 건물의 외벽 창가에 돌출되어 마련된 공간으로 바깥 경치를 즐기며 쉬기 위한 공간으로 유럽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국 아파트 단지에서 발코니가 처음으로 선보인 것은 1960년대 마포아파트에서였다. 마포아파트는 6층 정도의 공동주택으로 건물 외관이 단순하고 기능적이어서 유럽풍의 운치는 없었으나 개방형 발코니가 세대마다 있었다. 여름의 장마, 태풍, 고온 다습 무더위, 겨울의 삭풍과 강추위 등으로 발코니 내측의 창문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웠다. 봄, 가을이라..
'처음' 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항상 특별하다. 첫사랑, 첫학기, 첫등교, 첫만남 등. 매년 3월이 되면 학교는 다시 처음을 맞이한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출발이다. 움크렸던 겨울을 지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될 때, 아이들은 한살 더 커서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러 학교로 온다. 항상 설레기만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설렘보다 떨림이 더 많다. 나만해도 그렇다. 개학날이면 늘 배가 아팠다. 원체 예민한 장을 가졌기도 했고, 불안과 걱정 많은 성격이 장을 괴롭힌 탓이기도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에 도착하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교문에서부터 교실까지 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면 뛰어가서 나와 같은 반인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는 얼굴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친한 친구가 반에 앉아 있으면..
코로나 재난지원금과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으로 나랏빚이 크게 늘면서 여당을 중심으로 증세론이 활발하다. 증세론은 정치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기본소득제도와도 연계돼 있다. 오랫동안 복지는 늘리자면서 증세는 반대하는 모순 속에 찌들어 있던 정치권이 이 만큼이라도 정직한 논쟁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재정난 타개를 위해 증세 말고 찾을 수 있는 해법이 뭐가 있나. 이젠 솔직할 필요가 있다. 야당이 정부·여당에 “퍼주기 정책 남발”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면서 대안을 말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그래도 세금 부담을 늘리면서 복지도 늘리는 ‘중부담·중복지’를 주장해왔다. 유 전 의원은 다만 “경기가 좋아도 조세저항이 심한데 지금은 적절한 시기라 보기 어렵다”며 시기 조절론을 펼치고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국정운영을 책임진 여당으로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기본소득제를 줄기차게 주창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증세에 대한 국민 합의를 전제로 목적세 추진을 거론한다. 그는 조세감면 축소와 함께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탄소세, 디지털 데이터세 등의 신설과 함께 불로소득에 부과하는 기본소득토지세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고소득층과 주요 기업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사회연대특별세’ 법안의 3월 초 발의를 예고했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복지체계 조정으로 80조 원, 부가가치세 3% 인상 등으로 100조 원 등 연간 180조 원 정도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2% 인상해 코로나 손실보상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말한다. 윤후덕 국회 기재위원장은 “화끈하게 지원하고 화끈하게 조세로 회복하는 체제가 정직한 접근”이라면서 “증세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공식 발언했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동조하는 ‘기본소득연구회’의 지난달 23일 토론회에서는 기본소득세 5% 신설, 공시지가 1%의 국토보유세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보편증세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증세론은 여전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여러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해온 대표적 기본소득 전문가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우리나라같이 조세저항이 큰 나라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증세 합의 운동’의 성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증세의 목적이자 수단이기도 한 묘한 성격을 지니는 기본소득은 더욱더 정교한 프로그램 연구가 필요하다. 지구촌 인류의 삶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이견은 없다. 대한민국도 막대한 출혈재정의 뒷감당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획기적인 국정운영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굳이 ‘저조세-저복지-저신뢰-저조세’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서의 기본소득제도가 아니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증세론을 들여다볼 때가 된 것이다. ‘부자 증세’, ‘예산 절약’ 같은 종래의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땜질 궤변만으로는 이젠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북한주민의 인권은 전세계적으로 최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매년 유엔에서는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북한인권문제를 특별하게 다루는 인권관도 임명해서 활동하게 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인권문제는 항상 민감하고 북한을 자극하는 사안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인권은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천부적 권리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보스니아 내전시 인종 청소 등 엄청난 인권침해 사례를 보면서 해당국가가 자국민 인권 개선 조치를 취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인권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가 해당국가 의사와 관계없이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보호책임(R2P)’을 강조하고 있다. 인권은 인간의 생명 생존에 관련된 사회권과 사상과 이념, 표현과 관련된 자유권으로 구분되어진..
우리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고 있고,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만약 우리가 우리를 보내신 하늘의 뜻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달구지를 끄는 말은 자신이 어디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싣고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말이 얌전하고 온순하게 짐을 끌고 간다면 그 말은 자기가 주인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예수는 말했다. 만약 우리가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만 행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가벼운 것이고 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처럼 실천하라. 그러면 하느님..
백기완과 정경모. 두 분이 하루 사이에 연이어 별세함으로 인해 정경모 선생은 그다지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경모는 요즘 말로 하면 작가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다 일본에 망명한 정경모의 본격적인 저술 활동은 광주항쟁으로 촉발되었다. 광주의 원혼들의 슬픔을 노래해주기 위해 1981년 ‘シアレヒム(씨알의 힘)’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잡지의 제6호(1983년 6월)에 여운형 · 김구 · 장준하의 구름 위 정담(三先覺雲上經綸問答)을 게재했고, 그것을 1984년 단행본으로 내놓은 게 ‘찢겨진 산하’다. 그 내용은 세 분 선각자의 말이기도 하고 작가 정경모의 생각이기도 하다. 주제의식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에 상호관련 속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운동을 한다면서 통일운동을 경원시하는 태도..
지난 2월 24일 국회에서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에 관련한 공청회가 열렸다. 방송관련법 개정안의 핵심은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방식 변경 문제였다. 사실 지난 20여 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논의가 이어졌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을 보니 이사와 사장 선임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넷플릭스 같은 OTT(범용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와 개인맞춤형 콘텐츠에 매료되는 글로벌 미디어 시대에 공영방송은 철 지난 잡지 표지처럼 낡아 보인다. 영향력이 현저하게 낮아졌고 신뢰도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재정은 파산 직전인 것 같고, 보도의 공정성 시비에서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이런 공영방송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인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문과 방송..
2019년 말 발표된 논문 한 편이 근래 들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하고 비하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 유명 유튜버는 이 논문이 자신을 ‘여혐’으로 몰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 직접 학자의 연구실을 찾아가고, 학술단체 임원과 대화한 내용을 공개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논문을 읽어보면 주제가 불법 촬영의 근원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이 논문이 혐오와 차별의식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억지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신랑‧신부의 초야에 문구멍을 뚫어 엿보거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무언가를 몰래 보고, 금지된 것을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시선이 남성을 중심으로 하며 범죄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관음증의 표현과 실행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더욱 강도가 세지고 집단화되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자 친구와 애인, 엄마, 누나, 여동생, 사촌 등 주변 여성들의 샤워하는 모습과 옷을 갈아입는 장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모습을 공유하며 은밀함을 즐긴다. 갈수록 수위는 높아져 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약물을 투여해 집단 강간하고 고문하는 스너프 필름(snuff film: 실제 성행위 장면이나 잔혹한 고문과 살인 장면 등을 찍은 영상물)의 형태로 나아간다. 이런 불법 촬영 범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밟으며 진화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혐오 유튜버들의 자극적인 영상물에 노출된 소년들은 여성에 대한 비하나 혐오가 담긴 용어를 사용하고 놀이처럼 즐긴다. ‘보이루’라는 인사말을 비롯해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를 접두어로 붙인 ‘보징어’, ‘보슬아치’, 상대의 부모에 관한 욕으로 이른바 패드립(패륜+애드리브)이라고 불리는 ‘느금마’, ‘xx년’, ‘엠창’은 대부분 어머니에 한정돼 있다. 이런 환경에서 소년은 여성을 멸시하는 것이 남자답다는 것을 수용하고 학습하며 성장한다. 남초 커뮤니티와 또래들 간의 채팅방에 텍스트를 넘어선 이미지와 동영상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단순 수용자를 넘어 직접 만들어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소위 ‘몰카충(관음충)’이라고 불리는 불법 촬영 범죄자가 탄생하는 시점이다. 성 평등과 성인지 관점에 관한 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시행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삐뚤어진 시각이 그 상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남성을 가리키고 아줌마는 여성을 가리키지만 이 두 단어는 동등하지 않다. 아저씨는 주로 누군가를 지켜주고 든든한 가부장제의 가장을 의미하며 듣는 아저씨가 기분 나쁜 경우가 드물지만, 아줌마는 상대를 함부로 대하고 얕보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남성 배우자를 지칭하는 ‘남편’의 상대어인 ‘여편’은 사용되지 않지만 ‘여편네’는 여성 배우자를 깔볼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언어는 평등하지 않으며 곳곳에 편견이 깔려 있다. 대학 교수가 되어 각종 위원회나 심사에 참여하며 매번 느끼는 건 내가 안 왔더라면 여성의 비율이 더 낮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각 분야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여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남성과 여성의 언어와 역할, 그리고 신분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비대칭의 뿌리를 깊이 드리우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을 읽으며 ‘감히’라는 부사가 아니라 ‘왜’라는 의문사를 사용해 보라고 하면 지나친 요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