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사멸중이다. 극장용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는 얘기는 코로나 때부터 터져 나왔다. 포스트 코로나, 뉴 노멀 시대가 매우 불안하다고들 얘기했는데 이제는 정말 죽었다, 망했다로 귀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극장 티켓 가격은 최고치를 찍고 있다. 주말에는 1만6천원까지 받는다. 거기에 가계 대출금리는 오르고 모든 물가, 심지어 라면 값까지 올라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줄이는 게 문화 소비다. 엥겔 계수가 높아진다. 이런 와중에 주무부처의 장관은 유인촌이 됐다. 그는 강성의 자본주의자이다. MB시절이 학습효과를 생각하면 그는 선택과 집중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되는 영화에만 지원을 하려 할 것이다. 이른바 낙수 효과 론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되는 영화만 지원한 결과 되는 영화까지 망하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이건 보수 정부, 진보 정부 가리지 않고 비판 받아야 할 대목이다. 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 때 최고의 기회를 놓쳤다. 문재인이 문화 정책을 우선시하지 않은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도종환-박양우-황희로 이어지는 장관 명단은 지금 봐도 그리 명석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정부의 박보균 – 유인촌 순번은 지나치게 정치적 판단에 입각한 인사로 보인다. 물론 영화는 지도급 인사들에 상관없이 스스로 생존해 온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극장용 영화가 망하고 있는 것은 이놈의 사회 탓일까 아니면 영화 스스로가 못나고 잘못한 탓일까. 국내영화산업이 ‘잘 나가던 때’는 1년 총 관객 수가 2억 명을 넘게 찍었다. 현재까지, 3/4분기까지의 추세를 보면 1억3000만을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 토막이 났다. 지난 9월 관객 수는 추석 연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가 660만명에서 그쳤다. 최대 비수기라는 4월의 약 700만 관객 수에도 못 미친 수치이다. 한국 블록버스터급 흥행 영화의 창시자(?)였던 강제규 감독의 ‘1947보스톤’이 100만을 못 넘기고, 강동원이 나온 ‘천박사 퇴마연구소 : 설경의 비밀’도 BEP 한참 전에 무너졌으며,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나고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30만(세상에!)을 넘기지 못했다. 오늘 내일 하던 극장이 이번 9월-10월로 사실상 뇌사 판정을 받은 셈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원인 분석이 정확해야 한다. 영화 배급유통 전문가 이하영 씨의 얘기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는 “1960년대 TV의 보급이 대중화 됐을 때도 극장의 위기는 찾아 왔었다”며 “그러나 10대와 20대들이 극장으로 돌아 온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OTT 탓만 할 것이 아니라 10대와 20대를 겨냥한 영화들이 기획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그는 내다 본다. 이들 연령층은 1960년대나 지금이나 부모 세대와 같이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추석과 같은 주요 시즌에 있어 극장 소비의 중심은 팝콘과 콜라를 껴안고 극장 안에서 모임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어린 청소년들과 젊은 연인들이었다. 이하영 씨의 말 대로 이들에게 맞춤형의 영화(‘1947보스톤’보다는 ‘더 퍼스트 슬램 덩크’같은 것)가 없는 것이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주머니가 텅텅 비어 있는 것, 거기에 물가는 천정부지의 수준이라는 것, 젠더 갈등의 심화로 남녀가 잘 만나지 않는 것, 마이너스 출산율에 따라 젊은 층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 등등 정치사회 현상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건 빈곤의 악순환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극장용 영화가 망하고 있는 것은 영화 탓이기도 하지만 사회 탓이기도 하다는 얘기이다. 그 솔루션은 두 가지 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1차적으로는 큰 극장에 들어 갈 영화의 경우 정교하게 구분해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젊은 층을 끌어 낼 수 있는 영화들, 결국 청춘물이나 애니메이션들이 돼야 할 것인 바 이럴 경우 결국 일본 ‘꼴’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여기에서도 단계적으로, 균형 있게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영화와 드라마 등등의 구별없이 콘텐츠라면 모두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새로운 감독과 제작자, 배우를 발굴할 수 있는, 산업저변까지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큰 극장 시스템에 의존하는 정책은 버릴 때가 됐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작은 영화관, 개성있는 영화제에 집중하는 차별화된 정책을 펼쳐야 할 때이다. 이런 추세라면 체인 극장들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기업 영화사의 수직계열화(배급사와 극장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문제,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단초이다. 전환기에 정책도 발상의 전환으로 맞서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양적 확대이다. 영화와 문화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지금은 돈을 풀 때이지, 선택과 집중이라는 허울 아래 돈을 묶을 때가 아니다. 그런데 유인촌 장관이 과연 그렇게 할까? 언감생심이다. 때문에 극장용 영화는 이제 곧 사망선고를 내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두려운 일이다.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기로 방침을 정한 가운데 민주당도 이에 적극 동조하고 나서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또한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의대증원을 추진할 때 강도높게 비판하던 국민의 힘과 유력 보수매체들도 일제히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민 여론도 매우 우호적이다. 그동안 의사협회의 파업 등 초강경 투쟁에 막혀 좌절됐던 의대증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여야정 모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극단적인 정쟁에 빠져있는 여야정이 의대증원에 대해서 모처럼 한 목소리는 내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체계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경기도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숲으로 이어진 길을 걷고자 아파트 뒷문으로 나섰다. 어린이 놀이터에 자리 잡고 있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들이 길가 콘크리트 벽 쪽으로 몰려 쌓여 있다. 가을이면 도심의 길가 가로수 아래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엔 다른 시선으로 씨앗에 대한 생각을 안고 걷게 된다. 그동안 나는 이 은행나무의 잎 지는 모습에만 눈을 주었지 식물로서 생식생장을 위한 씨앗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은행나무는 아름드리나무가 될 때까지 한 해 한 해 버텨오면서 가을이면 후대를 위한 나무를 생각하며 열매 맺어 지상으로 내려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은 일찍부터 은행나무 열매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방의 땅이 온통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씨앗이 비집고 들 틈이 없었다. 그래도 은행나무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행여나’하고 열매를..
경기도가 오는 2027년 열리는 제108회 전국체육대회 유치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화성시가 주 개최지로 선정됐다. 지난 10일 열린 경기도체육회 3차 이사회에서는 화성시가 주 개최지로 선정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전국체전 화성시 개최’ 성사여부는 내년 3월에 열리는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11월 10일까지 2027년 전국체전 유치 신청을 받고 있는데 경기도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는 것은 2011년 제92회 고양시 대회 이후 16년 만이라서 기대해 볼만 하다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 수원시와 의정부시도 전국체전 유치를 검토했었다. 그러나 수원시는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부지문제로 포기했다. 보조구장은 육상 선수들이 컨디션을 조절하는 곳으로 메인 경기..
원시인류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협력하며 사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인 자연환경과 날씨의 변화, 지진, 화산 폭발, 그리고 맹수들의 위협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협력이었다. 예수의 교훈을 유럽에 전파한 바울은 신자들이 협력하며 지낼 것을 권했다. 협력하며 사는 것은 비단 유대인들만의 지혜는 아니었다. 협력은, 수 백 만년 동안 경험하면서 터득한 인류 공통의 지혜였다. 그럼으로써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협력의 대상은 무리의 구성원에 한정되었다. 한 무리의 규모가 커지고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동안 지구적인 규모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무리의 수가 많아지면서 서로 남이 된 무리들 사이에는 긴장이 조성되었다. 나와 일체가 되었던 무리의 구성원들에게 남이 라는 대상이 등장했다.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은 강화된 반면 다른 무리들은 모두 적이 되었다. 나와 남. 물론 모든 무리들이 처음부터 적대시하고 다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를 이루어 수렵과 채취 단계를 거쳐 농사를 짓는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무리들은 다른 무리들과 생산물을 교환하며 살아가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긴장은 유지되었다. 이런 양상과 관계는 씨족사회와 부족사회를 거쳐 고대국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긴장과 협력의 역사를 남기게 된다.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이분법은 현재의 국제관계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치는 한편으로 국제관계는 동맹 아니면 적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철천지원수처럼 싸운다. 지구촌 인류는 둘 중 어느 한 편을 지지하며 분열되어 있다. 남북으로 갈리진 한반도는 한미일과 북중러 대결의 코어가 되었다. 이분법은 철학과 이념의 영역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인류사회는 보수와 진보, 관념론과 유물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무수히 많은 이분법적 대립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유일신 신앙의 기독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대립한다. 협력하여 살아남아 호모 사피엔스가 된 인류는 대립과 다툼으로 공멸의 길을 가고 있다. 이분법으로 갈라진 대립의 해소 방법은 없을까?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영원한 운명인가? 호모 사피엔스 다운 지혜를 발휘할 수는 없을까? 양자역학의 선구자였던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에서 그 해법을 찾아볼 수 있겠다. 미시세계에서 전자의 운동에 대한 연구가 입자이론과 파동이론으로 대두되자 보어는 동양의 주역에서 답을 찾았다. 두 이론은 대립되는 게 아니라 상보적이라고 정리했다. 실제로 두 이론은 같은 결과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전자의 운동은 입자이면서 파동이었던 것이다. 자연의 질서 속에 지혜가 있다. 이분법은 인류의 좁은 소견일 뿐 자연의 질서는 아니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콜드게임으로 패했다. 후폭풍이 만만찮다. 호기롭던 집행부는 김장철 배추가 소금 세례를 맞은 듯 풀이 죽었다. 패배 원인과 활로 찾기에 나선 모습이 호떡집에 불난 듯 요란하다. 하지만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통령실의 지침 때문인지 웅얼거림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의 뒤틀린 심사를 되돌리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집권당에 우호적인 기사로 도배질해왔던 보수신문들도 ‘내가 언제 그런 조언 했었냐’는 투로 돌변했다. 낯뜨겁다, 이번 보궐선거 결과가 야당이 잘했기 때문이라고 믿는 유권자는 없다. 딱 하나 원인을 꼽는다면 대통령실과 집권당의 실책 남발이다. 아울러 내편이라고 생각했던 특정 언론과 아부성 기사에 휘둘린 결과다. 하루하루의 여론을 전하는 일은 언론의 본질적 책무다. 언론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민주사회라면 선거결과에 놀라는 경우가 많아서는 안된다. 일방적인 결과가 나와 유권자는 울고 웃어도, 언론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변은 언론 기능에 치명적인 결함 신호다. 언론이 듣기 좋은 기사만 편식하는 국정운영자들의 ‘고맙다’는 말에 취해 유권자인 국민 여론을 뒤전으로 밀어냈기 때문에 일어난다. 11일(투표날) 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인 새벽 5시 50분, 연합뉴스와 연합뉴스 TV는 여론조사 기관 메트릭스에 의뢰해 시행한 조사결과라며 여러 꼭지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중 하나가 ‘내일 총선이라면 어느 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국민의힘 32.6% vs 민주당 31.3%’라는 보도였다. 이 조사자료는 투표 당일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아 썼고, 하루 종일 포털의 주요기사로 자리했다. 서울경제신문은 이 조사자료를 인용, 서울에서 ‘국민의힘이 39.2%, 민주당이 26.8%’라며 오차의 범위를 크게 넘는 12.4%로 집권당의 지지도가 높다고 보도했다. 하루도 안 돼 엉터리 조사라는 게 판명됐다. 선거 6일 전부터 여론조사 보도가 금지돼 있는 현행법의 취지는 안중에 없었다. 사전투표가 시작된 7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내용과 이를 평하는 조선일보의 사설도 눈에 띄었다. “대법원장 후보 35년 만에 인준 부결, ‘이재명 방탄 의혹’ 부인할 수 있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균용 후보자가 김명수 사법부를 줄곧 비판해왔다고 그를 두둔했다. 아울러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이라는 대통령실 입장 만을 담았다. 21년 전인 2002년 대통령 선거 일 새벽 1시가 넘어 “나라의 운명을 결정 짓는 날”이란 사설을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로 바꿔 내보냈던 전력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언론은 스스로 정치권이 쉽지 않은 상대로 여기게끔 해야 한다. 언론이 특정 정치세력과 한통속이 돼 ‘나 이렇게 하고 있어요’라고 알랑대거나 ‘맹목적인 편들기’를 하는 것은 국민과 언론 간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지난주에 끝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 사격경기 시상식장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금메달은 한국, 은메달은 북한. 시상식 후 금ㆍ은ㆍ동 메달을 수상한 모든 선수들이 함께 시상대에서 기념 촬영함이 관례인가 본데, 우리 선수단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북한선수단이 참여를 거부해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유도에서는 패자인 우리 선수가 승자인 북한 선수를 찾아가 승리를 축하하며 악수를 청했으나 북한선수는 무심하게 이를 거부하고 돌아섰다. 예를 중시하는 유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 이런 냉랭한 분위기는 탁구, 농구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가슴이 아린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추억해 본다. 나는 그 때 북한선수단의 선수촌에서 통일부 연락관으로 북한선수단을 지원하는 일을 했었다. SBS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 여자축구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하여 북한선수단 선수촌에서 인터뷰를 했다. 기자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훈련 내용, 소속, 언제부터 축구를 했는가, 결혼 여부, 애인은 있는가, 북한 여자 축구의 현황 등 등. 그러던 중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한국 남자 축구 선수들과 같은 운동장에서 함께 연습할 때 무슨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우린 연습을 어떻게 하는가, 하루에 몇 시간 연습을 하는가, 뭐 이런 훈련에 관련한 것들을 물어 보는데, 가네들은 아 길세, 애인 있는가, 나 어떤가 뭐 온통 여자밖에 관심이 없더구만요”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던진 한마디가 명언! “기리니까, 가들 금메달 못 땄지요!” 기자, 남북 연락관, 선수들 모두가 깔깔깔! 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북선수간 경기를 시청하면서 내 머릿속은 온통 20년 전의 부산 아시안게임 남북 선수단의 아름다운 만남과 지금의 안타까움이 뒤섞여 혼란스러웠고 가슴엔 울분이 가득했었다. 누가 우리네 젊은이들의 이 즐거움을 빼앗아 갔는가. 다시 그런 기쁨을 이들에게 돌려 줄 길은 없는가. 정치인들은 언제나 국민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안겨 주겠다고 공언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늘 자신들의 권력 쟁취나 유지를 위한 거짓으로 점철된 행동으로 우리를 자주 실망케 한다. 남북간 화해와 평화, 그리고 번영은 남북 주민 모두의 꿈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그런데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정부가 장애물이 되려고 한다. 전쟁으로 얼룩져 가는 현 세계정세 속에서 남북간의 대화를 재개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궁리를 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어렵게 합의한 남북간 군사합의를 파기하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걱정이 태산 같다. 남북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정치, 남북관계를 재개하고 공동번영의 길을 찾는 길에 매진하라는, 국정기조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 번 강서구 보궐선거에서의 민심이 분명한데, 이 정부가 이런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는지... 답답하다.
전국 곳곳에서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싱크홀’은 국민에게는 발밑의 지뢰나 마찬가지다. 아무 경계심 없이 지나다니는 길이 느닷없이 아래로 꺼지고 사람이나 운행 중인 차량이 빠지는 일을 놓고 단순히 불운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싱크홀’의 대다수가 공사관리 부실이나 안전불감증에서 기인한다면 얘기는 더욱 달라진다. 대개 인재(人災)에 해당하는 싱크홀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인력과 장비 확충·예산 확보 등 예방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황희(서울 양천갑)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총 879건이었다. 올해는 지난 6월까지 모두 90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88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62년 그가 쓴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지금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다. 이 소설은 우연히 세상에 나온 게 아니다. 저자의 풍부하고 생생한 경험에서 비롯된 고도의 전략이 들어있는 애민 소설이다. 위고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 만화가였지만 유명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양 분야에서 펼친 그의 헌신과 이념 싸움은 ‘레미제라블’을 더욱 흥미진진하고 리얼하게 만들었다. 이 독보적인 작가는 1840년대까지 왕당파였다. 하지만 점차 민주주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루이 필립 왕의 은총으로 1848년 파리 8구의 시장이 된 그는 이듬해 제헌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1849년 7월 9일 의회 당선연설에서 빈곤과 부자들의 이기주의에 반대하는 투항을 보임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을 전율케 했다. 민중..
사회적경제는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다. 필자는 10월 11일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이 주최한 ‘경기도 사회적경제 쇼케이스 및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쇼케이스는 무대로 꾸며진 런웨이(runway)에서 사회적기업인들이 무대로 걸어나오면서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내빈소개와 인사말을 과감하게 없앴고, 사회적경제인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경기도 사회적경제 비전 선포식에서 김동연 지사는 사회적경제의 네 가지 비전을 발표했다. 임팩트 유니콘기업 100개 육성, 성공한 사회적경제기업 모델 프랜차이즈화, 공공·민간의 우선구매 1조원 시장 조성, 사회적경제 조직 1만 2천개 확대이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