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림청이 국내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을 발표했다.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은 시민들의 삶 속에 쉼터가 되어주는 도시숲의 가치와 각 도시에 조성된 도시숲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게 산림청의 설명이다. 아름다운 도시숲은 국내에 모범적으로 조성·관리되고 있는 도시숲을 인증하는 제도다. 전국 도시숲, 마을숲, 경관숲, 학교숲, 가로수 등이 인증신청 대상이다. 특히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어야 한다는 단서도 붙어있다. 산림청은 국민과 지방정부 등으로부터 아름다운 도시숲 916개소를 추천 받았으며 이 가운데 50개소를 최종 선정했다. 대국민 선호도 조사와 접근성, 생태적 건강성, 이용 정도, 경관적 가치, 차별성 등이 평가된 50선 가운데는 경기도내의 ▲평택 바람길숲(평택-기후변화 대응형) ▲일산호수공원 도시숲(고양-경관 개선형) ▲노송숲(수원-경관 개선형) ▲영흥수목원 도시숲(수원-주민참여형) ▲동탄호수공원 도시숲(화성-주민참여형) ▲상동 호수공원 도시숲(부천-주민참여형) 등 6곳도 포함돼 있다. 수원 노송숲은 장안구 이목동 5만6천㎡ 넓이 노송지대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을 하사해 소나무를 심었다. 경기도지방기념물 제19호, 경기도 자연유산 제1호로 지정됐다. 일산호수공원은 고양시의 대표적 명소로 인공호수와 산책로, 다양한 식물군이 어우러진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정받았다. 다양한 식물군이 어우러져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화성시 동탄호수공원은 호수를 따라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피크닉장·피톤치드 숲 등이 있는 도심속 웰빙공간으로 화려한 멀티미디어 수경시설인 ‘루나분수’로 대표되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매주 1만 명 이상의 시민이 방문하고 있는 화성시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수원 영흥수목원은 산지형 정원문화 중심으로 조성됐다. 방문자센터, 느티나무홀(대강당), 책마루, 카페, 가든숍, 체험교실, 정원상담소, 가든교육장, 자원봉사자실], 전시온실, 꽃과 들풀 전시원, 전시숲, 생태숲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숲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한 전시형 숲정원과 생태 숲이 있다. 부천 상동호수공원은 부천 최대 공원으로 호수 주변 산책코스와 새로 단장한 어린이놀이터, 부천호수식물원 ‘수피아’를 포함하고 있으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높아 연 180만 명이 방문한다. 평택 바람길숲은 도시 외곽 산림에서 생성된 맑고 시원한 찬 공기를 도심으로 유입해 미세먼지 저감, 도시열섬 완화 등의 개선 효과를 증명했다. 산과 나무가 부족한 도심 환경 문제를 바람길숲을 통해 많은 부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시숲은 콘크리트와 자동차로 가득한 삭막한 도시의 경관을 개선할 뿐 아니라 도심의 열섬 현상 방지에도 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전세계 도시들은 도시에 숲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2007년부터 전국 도시공원의 숲을 확대하고 있다. 이상기후 현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관리하는 일은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의 역사가 흘러가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진일보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것이 올림픽 정신의 근간이다. 그러나 야누스처럼 인류의 또 다른 얼굴인 전쟁의 역사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망하여 다시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거나 친구와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출전하는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올림픽의 정신을 위배하였다는 사유로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일부 선수들은 개인 중립 선수로 경쟁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가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안과 관련된 질문에 “우리에게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차갑게 응수하기도 하였다. 경기에서 ‘승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올림..
올림픽 보도와 중계는 미디어 비평의 단골 소재다. 올림픽 때마다 비슷한 잘못이 반복하고 있다. 고질이다. 금메달 지상주의, 맹목적 국가주의, 시급한 국내 현안 뒤덮기, 전쟁 용어 남발하기, 선정적인 기사로 독자 유인하기, 인기 종목 중복 편성 같은 문제가 그것들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동아일보의 김순덕 고문은 자신의 칼럼에서 지금은 국뽕이 필요할 때라며 우리 선수들 만세를 외치자고 제안했다. 우리 선수들에 대한 응원을 담은 내용이었지만 ’국뽕‘이란 용어는 부적절했다. 5일 아침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대한민국의 ’금‘고는 총·칼·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사격과 펜싱, 양궁에서 거둬들인 금메달 소식을 전하는 기사였지만, 많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갖을만 했다. 이 기사의 영향이었는지 SBS도 같은..
엿새 후면 79주년 광복절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단행한 윤석열 대통령의 부적절한 인사 때문에 사회적 혼란과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윤 대통령은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해온 ‘뉴라이트’ 출신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보은인사, 이념인사 등으로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어도 한 참 넘었다. 자칫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부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무지라면 바로잡을 기회가 있기에 차라리 다행이지만, 이념갈등을 부추기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독립기념관장 임원후보추천위원인 이종찬 광복회장에 따르면 김형석씨는 면접과정에서 “1948년 이전에 우리 국민은 없고 일본 국민만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독립기념관장 후보자가 임시정부의 적통을 부정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논리를 편 셈이다. 이를 알고도 국가보훈부는 김구 선생의 손자 등 독립운동가 후손인 두 명의 후보를 탈락시키고 김형석씨를 윤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죽하면 이종찬 광복회장이 정부 내에 ‘밀정’이 있는 것 같다는 주장을 펴겠는가. 과거 보수정부는 물론 군사정부에서도 이런 인사는 없었다. 1987년 개관된 이후 독립기념관장은 주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맡아왔다. 전두환 정부가 임명한 초대 독립기념관장은 안중근 의사의 종질인 안춘생 관장이었고, 노태우 정부는 독립운동가 면암 최익현의 현손 최창규 관장을 임명했다.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핀 이명박 정부도 독립유공자 김병우의 손자이며, 독립유공자 김재성의 조카, 독립유공자 류후직의 처조카이기도 한 김능진 관장을 임명했다. ‘국정교과서’ 논란을 일으켰던 박근혜 정부 조차도 윤봉길 의사의 친손녀인 윤주경 관장을 임명했다. 역대 보수정부 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해 다른 시각은 있었지만 독립기념관 만큼은 건들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헌법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관장을 임명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역사적 정의에 반하고 '독립기념관법'에 위배되는 불법이자 불의"라며 "독립운동 세력을 약화, 분열시키고 민족혼을 빼는 일제 강점기 밀정 같은 일"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독립기념관장직에 응모했다 석연찮은 이유로 탈락한 독립운동가 후손 김진 광복회 부회장과 김정명 한국과학기술대학원 석좌교수는 "독립기념관 관장 임원추천위원회가 절차상 하자가 있는 위법한 추천 결정으로 탈락했다"며 "추천 결정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 뿐 아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은 물론 보수언론까지 나서서 이번 인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제 79주년 광복절이 엿새 남았다. 윤 대통령은 부디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 임명을 철회하길 바란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을 야기시킨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가 및 그 후손들과 국민들께 사과해야 한다.
국제 스포츠 대회 개최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이는 2024년 파리올림픽과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유치 및 개최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올림픽 유치 당시 파리는 경쟁 없이 단독으로 개최권을 획득했는데 로스앤젤레스를 제외한 다른 후보 도시들이 유치 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는 파리와의 협상 끝에 2028년 개최권을 확정 짓게 되었다. 대규모 예산과 인프라 투자에 대한 부담, 개최 후 경제적 효과에 대한 회의론 등으로 인해 많은 도시가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 소극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치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긍정적인 효과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제 스포츠 대회의 개최는 대회 준비를 위한 인프라 구축, 관광객 유입, 스폰서십 및 방송권 수익 등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총 2억 2천5백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올림픽 역사상 경제적 성공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민간 자본을 적극 유치한 결과였다. 반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1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 대회 후 30년 동안 빚을 갚아야 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도 2조 2천억 원의 비용이 소요되었고 일부 경기장과 시설들이 대회 후 활용되지 않거나 유지 관리가 어려워져 이른바 '하얀 코끼리' 문제를 피하지 못했다. 하얀 코끼리란 유지비는 많이 들지만 실제 활용도는 낮은 자산을 의미한다. 국제 스포츠 대회를 통해 개최국의 문화와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으며 스포츠 대회를 계기로 다양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6년 리우 올림픽은 브라질의 풍부한 문화와 자연을 세계에 알렸으며 2021년 도쿄 올림픽은 일본의 첨단 기술과 전통문화를 소개하며 국가 이미지를 높였다. 새로운 친환경적 기술과 인프라의 도입을 촉진하고 홍보하여 환경 보호 의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녹색 올림픽'을 표방하며 지속 가능한 국제 스포츠 대회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경기장을 재활용 자재로 건설하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했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또한 '녹색 올림픽'으로 브랜딩하여 100%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한 첫 올림픽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인공 눈 제작을 위해 약 5억 갤런의 물을 사용해야 했고, 이는 현지 주민과 농부들의 물 부족 문제를 악화시켰다. 올림픽이 끝난 후 대부분의 시설은 사용되지 못해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 스포츠 대회의 개최는 경제, 사회문화, 환경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동시에 미치는 만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대회 종료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는 경기장과 같은 인프라 시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사후 이용 계획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사회와 문화뿐만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도 고려해야 백 년 뒤에도 국제 스포츠 대회를 즐길 수 있다.
전라도 보성 벌교에 100미터 남짓 되는 나지막한 산 하나가 있다. 부용산이다. 부용(芙蓉)은 산에서 사는 연꽃이다. 같은 이름의 산이 전국에 열 개나 되는 걸로 보아, 부용은 이름 없는 무명의 씨알들처럼 이 땅에 흔하디 흔한 야생초다. 나는 오는 8월 31일 공장의사 김현주 선생(종합예술단 봄날의 소프라노)의 작은 음악회에 우정출연하여 ‘부용산’을 부른다. 요즈음 지하철에서든 다방에 앉아서든 중얼거린다. 완벽하게 외웠다고 자신할 때,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랫말은 슬픈 서정시다. 눈물겹다. 노래 부르다가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다. 특별한 시 ‘부용산’이 오늘날 묵직한 명곡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 궁금하여 여기저기 드나들며 공부 좀 했다. 시인 박기동은 1917년 여수 출생으로, 열두 살 때 벌교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지역에서 이름있는 한의사였다. 그 덕택으로 열네 살에 일본의 중학교로 유학을 갔으며, 관서대학 영문과를 다녔다. 해방 전에 귀국하여 1944년 벌교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교가도 지었다. 해방 후, 광주로 전근가서 가르치다가 벌교중학으로 돌아왔다. 여기서도 교가를 지었다. 그 후 1947년 순천사범으로 옮겨서 교사가 될 청년들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남조선 교육자협의회’에 가입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붙들려갔다. 혹심한 고초를 겪었다. 정직도 당했다. 그 해, 18세에 결혼하여 집을 떠난 여동생 영애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겨우 스물 넷이었다. 사랑하는 누이를 묻고 내려와 울면서 지은 추모시가 ‘부용산’이었다.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1948년 신학기에 목포 항도여중(목포여고 전신)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이 학교에서 두 사람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를 노래로 만든 음악선생 안성현과 천재로 호가 났던 제자 김정희였다. 오호애재라! 이 때 안의 열다섯 살 누이 순자와 열여섯 살 제자 정희가 폐결핵으로 연이어 죽었다.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세상을 하직한 세 꽃봉우리들! 두 사람은 자주 깊고 짙은 아픔과 슬픔을 삭이며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곤 하였다.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 어느 날, 안성현이 박기동의 시에 곡을 붙였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눈물겨운 협동인가. 영락없이, 8세기 신라의 승려 월명사가 지은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의 20세기 버전이었다. 박기동은 목포사범학교를 끝으로 1957년 교직을 떠났다. 당국이 ‘사상불량’ 타령하며 끊임없이 호출하고 소환하며 괴롭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성현과의 아름다운 우정이 연좌제로 작용했다. 그 때 받은 모욕과 폭력의 기억은 평생의 상처가 되었다. 시인은 해운회사에 다니다가 서울의 출판사로 이직, ‘빙점’ 등 일본 문학작품 번역가로 일했다. 1982년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군부독재의 억압을 피하여 혈혈단신 호주로 이민을 갔다. 그때 나이 일흔 여섯이었다. 거기서 정부가 주는 최저생계비(월 4~50만원)를 받고 시를 쓰며 살았다. 어느 날 시드니에 방문한 연극인 김성옥(목포출신. 손숙의 남편)이 시인을 만나 부용산 2절을 쓰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2000년, 마침내 ‘목포 부용산 음악제’에서 처음으로 2절이 공개되었다. 53년만이었다. 그 전까지 ‘부용산’은 빨치산 출신 장기수들이 박정희 전두환 때 감옥에 들어온 운동권 학생들에게 전파하여 그들이 석방되면 환영하는 술자리에서 불리며 지하에 널리 퍼졌다. 가수 안치환이 1997년에 낸 음반 ‘노스탤지어’에도 '부용산'은 ‘작자 미상’의 구전가요로 되어 있다. 노시인은 2절가사를 손수 들고 안치환을 찾아와서 건네주며 '꼭 자네가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문민정부 들어서고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우리는 이 특별한 노래의 작사-작곡자들 이름은 찾았지만, 팔순 노인이 된 친구들은 살아서 평양이든 광주든 그 어디에서든 만나서 이 노래를 함께 부르지 못했다.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안성현은 나주 출신으로 동경음악학교에서 유학했다. 그 때부터 알고 지낸 무용가 최승희가 어느 날 '북쪽은 예술가들에게 천국'이라고 말했다. 오래 전 북쪽에서 자리잡은 아버지 안기옥을 만날 겸 동행했다. 1남1녀의 어린 자식들을 둔 젊은 가장이었다. 그는 6.25 내전이 터지는 바람에 처자식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월북자 신세가 되었다. 부친은 가야금 명인으로 그 시절 이미 광주 서울 평양 함흥에서 공연하고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국제 음악회에도 초청받는 저명한 음악인이었다. 훗날 父子가 함께 조선에서 최고 등급인 인민예술가로 대우 받으며 활동했다. 안기옥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숙청되어 끝이 좋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안성현은 북한정부가 비중있게 부고를 낼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2006년 세상을 떴다. 86세였다. 보라! 1절이든 2절이든 어느 한 대목 좌익 이데올로기를 직설하거나 은유한 곳이 있는가. 여순사태 이후, 빨치산들이 불렀다는 그 단 한 가지 이유로, 그리고 훗날 안성현이 북쪽으로 가서 그곳에 자리잡고 최고등급의 음악가로 활동한다는 이유로, 저 동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를 불온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 노래가 장장 80년 동안 이렇게 나쁜 역사의 육중한 무게를 감당해야만 할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 쉬쉬하며 숨어부르던 그 노래는 이제 '부용산 노래 부르기 대회'가 생길 정도로 국민가요가 되었다. 비정상의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기뻐해야 하는가. 시인과 음악가는 오늘도 누이들과 제자를 만나서 저 푸른 초원으로 소풍을 갈 것이다. 거기서 ‘부용산’도 부르고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도 부를 것이다. 우리는 이들처럼 죽어서야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된다. 숙명이다. 벗이여! 이승에서 해탈과 초월을 꿈꾸지 말라.
인천과 김포지역의 교통 체증문제는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 한계치를 넘어선지 오래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9월에 김포골드라인이 개통됐다. 김포골드라인은 김포시 최초의 노선으로 김포 한강신도시의 양촌역과 서울 강서구의 김포공항역을 잇는 철길이다. 그러나 1편성 당 단2량뿐인 미니열차라서 출퇴근 시간대 혼잡이 심해 ‘지옥철’로 불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검단 신도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이후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안전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김포골드라인은 출퇴근 시간(오전 7시50분~8시10분) 혼잡도가 최고 289%에 달한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엔 압사사고 공포증마저 더해졌다. 이에 국토부는 열차 편성을 증차하고 배차 간격을 단축하는가하면 추가 버스를 투입해 혼잡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인천 검단신도시를..
여름날 ‘부채!’ 하면 담양 소쇄원 댓바람 소리가 생각난다. 대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대나무의 바람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부채로써 합죽선의 멋과 신바람은 뭐니 뭐니 해도 남원의 판소리 춘향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옥에 갇힌 춘향이를 만나러 가서 “암행어사 출도야!” 하고 외치면서 소리꾼이 쥐고 있던 합죽선을 쫙 펼칠 때의 후련함과 통쾌한 감격! 그리고 당시의 민주화 즉 신분 차별 없이 남녀평등사상이 깃들어 있는 외침이었기 매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여름 마을 앞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은 노인들이 모여 앉아 부채 바람을 일으키면서 흰 수염을 날리던 할아버지들의 풍류적인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비들 영혼의 바람결을 존중하며 속되지 않고 운치 있는 품격의..
체감온도 35도가 넘는 폭염에 한반도가 펄펄 끓는 요즘이다. 덕분에 주말동안 에어컨에 의지해 집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하(夏)면’에 들어갔다. 계획한 일은 전혀 하지 못하고 내내 유튜브와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 주로 유튜브에서 시청하는 영상의 주제는 ‘여행’과 3040세대의 ‘이른 퇴직’ 혹은 회사의 눈총과 최저시급도 감내하며 버텨내는 50대 이상의 ‘직장생활 분투기’다. 관련 영상을 보며 알게 됐다. 현대인에게 직장생활과 퇴직, 여행은 겉보기엔 다르지만 하나로 이어진 ‘이음동의어’라는 사실을. 조기은퇴를 꿈꾸던, 장기근속을 원하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 단지 그것을 직장을 통해 실현할지, 직장을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직장생활이 자신에게 해답이 아님을 깨달았으나 무엇을 해야할지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은 돌연 사직서를 내고 자아를 찾기 위해 여행길에 나서기도 한다. 아니면 정년을 채워 퇴직에 성공한 이들은 일에 매진하며 살아온 지난날 자신에게 보상을 주듯 한가로이 여행하며 노후를 보낸다. 유튜브에서 인기있는 주제인 <여행>, <이른 퇴직>, <늦은 나이의 직장생활>을 보면서 이같은 유사점을 발견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15~64세 고용률은 30대 등에서 상승했으나, 50대 등에서는 하락했다. 실업률은 30대와 40대 등에서 상승해 1년 전보다 0.2%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도 발표했는데, 55~79세 고령층 인구는 1598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50만2000명 증가했으며,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년 대비 0.4%p 오른 60.6%로 역대 최고치였다. 고용률도 0.1%p 늘어난 59.0%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고령화를 지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불안정한 직장 생활과 노후 걱정에 미래를 저당잡힌 각자도생 사회에 살고 있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가 나의 미래를 책임지기는커녕, 예상보다 빨리 이별을 고하는 세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 자립과 조기 은퇴’를 뜻하는 ‘파이어(FIRE)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파이어(FIRE)족이란 ‘젊었을 때 극단적인 절약으로 노후 자금을 빨리 확보해 40대에는 퇴직하려는 이들’을 뜻한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게 퇴직일까? 어차피 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일 또는 회사라면, 그보다는 자신이 사랑하고 잘할 수 있는, 평생 ‘업’을 찾으려는 시도가 ‘파이어’로 드러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어쩌면 은퇴란 평생 하고픈 나만의 ‘업’을 만나려는 일은 아닐까.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을 위해.
11세기 교황은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하여 유럽 가국의 영주들에게 전쟁의 필요성을 호소하였고 이렇게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약 200년 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당시 영국의 많은 영주들 역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당시 이들이 관리하던 토지를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양도하고 토지를 양도받은 친구는 이를 관리하여 전쟁에 나간 영주의 자녀와 배우자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던 것이 현대 신탁제도의 연원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신탁제도는 영미권 국가에서는 보편적인 재산관리 방식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노인들의 경우 유언을 대신하여서 신탁이 이용되기도 하고,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경우 부모 사후의 자녀의 경제적 자립을 위하여 신탁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신탁은 위탁자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거나 사후에도 위탁자의 의사에 따라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관리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현재 후견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생면부지의 노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이나 선호를 가지고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필자와 같은 전문후견인들은 피후견인의 가치관이나 선호 보다는 일반적인 사회통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후견사무를 수행하기 쉽습니다. 일례로 필자는 해외에 거주하는 자녀들에게 부과되던 세금을 피후견인의 재산으로 내는 문제로 법원의 허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피후견인에게 치매가 발생하기 전 피후견인이 늘 자녀들의 세금을 부담하였던 사실을 고려하면 피후견인의 추정적 의사에 기초하여 이를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이후 법원의 후견감독이 부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후견인으로서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다 보면 금융재산의 경우 정기예금에 보관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다소의 투자위험이 있는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만약 치매가 발병하기 이전에 신탁계약을 통해 본인의 재산의 사용처나 관리방법을 정해두었다면 재산은 보다 더 유연하게 관리될 수 있었을 것이고, 자녀의 생활비나 손자의 교육비로 지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신탁을 통해 특정 자녀에게 다소 많은 재산을 물려주게 되면 자녀들간에 불필요한 유류분 분쟁이 발생하는 것 역시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탁은 안전한 노후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 중에 하나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탁은 부유층이나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알려져있습니다. 실제 과거 금융기관들은 수억 원 이상의 자산을 맡기는 경우에만 신탁설정이 가능하였으나 최근에는 그 문턱을 많이 낮추어 중산층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상품들을 내놓아 그 저변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재산을 잘 지키는 것만큼 이를 잘 사용하여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