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반 위에서 뼈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튕겨져 나간 흰 뼈 소리 없이 마당에 나뒹굴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다가와 남아있던 살점을 바른다 뼈들이 웅성거리며 유영한다 부딪히던 뼈들이 일시 정지하자 주방은 열기로 가득하다 살아있는 건 이렇게 뜨거운 것인가 그렇다, 살아있는 건 뜨거움의 순간을 갖는다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하얀 물들의 수런거림 뜨거움의 순간은 길면서도 짧다 숭숭 뚫린 뼛속으로 바람이 스며든다 살아있는 건 리모컨을 누르고 다시 세상 밖의 풍경을 재생하는 것이다 괄호 속에 갇혀있던 삶의 몸짓은 다시 괄호 밖으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스스로의 저울에 무게를 달고 있다 쉬잇, 우리가 기다리는 내일이 조심조심 다가오는 밤이다 - 김선주, 2012년 봄 계간 『시향』 젊은시 10선 중 곰국의 특징은 지속적 끓음에 있다. 골수를 우려낸 잔인한 만찬처럼 세상은 온통 흰 뼈들로 쌓여가고 자신의 뚫린 뼛속으로 다른 골수를 채워 넣는 식탁의 풍경에서 무언가에 굶주린 군상(群像)들을 본다. 뜨거워진 국물처럼 사람들의 혈관에는 욕망의 뜨거움이 늘 끓고 있다. 야생의 방식에 갇혀있던 인생들은 곰국 앞에 떠남과 남음의 갈등을 겪는다. 제 삶의 무게를 알지 못해 설설 끓는…
헬리콥터가 구름 아래 지붕 아래 분열증 아래 또아리튼 나를 불러냈어 맨발로 뛰쳐나갔지 저만큼 연기 꼬리가 보이길래 쫓아가면서 물었어 왜? 왜 불렀니? 왜 불렀느냐구? - 이상희 시집‘벼락무늬’/민음사 어릴 적 일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은빛 비행기가 반짝이는 햇빛을 반사하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광경을 본적 있다. 비행기가 날 부른 건 아니지만 나도 그때 반짝이는 비행기를 보기 위해 뛰쳐나갔었다. 무슨 일이지? 살아있는 생명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지진이 나거나 평상시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발생하면 소리의 진원지를 살피기 위해 뛰쳐나간다. 호기심이 인간을, 특히 어린아이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다. 아기는 엄마의 자궁 속에 ‘또아리 틀’고 있다가 어떤 소리의 유혹에 무의식적으로 뛰쳐나온 건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해 ‘왜? 왜 불렀냐구요?’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한 싸이클의 삶을 완성해 가는 지구의 숱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다. / 성향숙 시인
형광등 아래 저녁밥을 먹는 여인, 헐렁한 내장으로 차곡차곡 밥을 밀어넣는다 밥상 너머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본다 가끔 중얼거리는 말들이 밥 때문에 다시 가슴으로 들어가버린다 여지껏 한 끼도 거른 적이 없는 그녀, 눈빛을 모아 방안을 휘둘러본다 구식 가구의 비틀린 서랍들이 닫히지 않는 내용물을 삐죽삐죽 내밀고 있다 바로잡기엔 너무 낡아버린 저 커다란 무게, 저녁밥은 끊임없이 항문까지 이어진 내장을 통과하고 있다 아까부터 깜박이던 형광등이 완전히 빛을 감추고 숨는다 그녀는 간장 항아리의 내용물처럼 출렁거린다 밥상 위의 검은 것들이 내장을 향해 들어간다 텅 빈 저녁이 빈 그릇처럼 달그락거린다 - 배용제 시집 ‘삼류극장에서의 한때’/민음사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많은 웃음 많은 갈등 울고 웃던 가족들은 모두 제 생활로 바쁘고 그 많던 친구들 다 어디로 갔나? 여인은 세월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점점 고독 속으로 빠져든다. 전화기마저 먹통이 된지 오래고 말할 상대가 없어 방안의 비틀린 가구와 이야기 나누거나 유령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죽을 만큼 외로워서 삶이 서럽다. 고독하다고 느낄 땐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죽음에 다가간다는 느낌이
산모퉁이 하나 돌 때마다 앞에서 확 덮치거나 뒤에서 사정없이 밀쳐버리는 것 살랑살랑 어루만지다 온몸 미친 듯 흔들어대다 벼랑 끝으로 단숨에 떨어져 버리는 것 안을 수 없는 것 저 붙잡을 수도 가둘 수도 없는 것 언제 어디서 기다려야 할 지 기약할 수조차 없는 것 집도 절도 없이 애비 에미도 없이 광대무변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허공에 삽질을 하는, 영원히 펄럭거릴 것만 같은 무심한 도포자락 영겁을 쓰고도 한 자도 새기지 않은 길고긴 두루마리 몽땅 휩쓸고 지나가고도 흔적 없는 저 헛것, 나는 늘 그의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는다 - 김해자 시집 ‘축제’ /2007년/애지 우리 영혼의 영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딱딱한 기계들의 속도와 문명의 야만은 지친 영혼들을 갉아먹고 있다. 우리가 발을 담그는 강물은 더 이상 깨끗하지 않다. 영혼의 강물도 오염돼 가고 있다. 그래서 강물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한다. 우리의 귀는 닫혀 있고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바람의 경전을 한 페이지만이라도 제대로 듣고 읽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위태로운 시간은 임시거처인 공간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은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시집 ‘황금빛 모서리’ /1993년/문학과지성사 제 궤도를 굳건히 지키는 찬란한 태양과 냉철한 뭇별에게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별똥별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유성이 지는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 운 좋게 맞닥뜨린 그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지요. 그런데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는, 추락하는 것에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는 바라다니요. 인간이란 그토록 모순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모순 때문에 저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처절한 아름다움, 그 고통스러운 자유로움을 이해하는 자라면, 그런 자가 그 짧은 순간
줄무늬 고양이 그림자가 한 번 크게 흔들리더니 봄은 화들짝 피어난다 어떤 꽃은 바람에 실컷 혼난 것처럼 피어난다 치렁치렁 머리 기른 내 아들 기타쟁이 꽃피기 전에 기타치고 꽃 다 지고 난 다음에도 기타치고 내가 울기 전에 기타치고 나 다 울고 난 다음에도 기타치고 제 아버지 혼내기 전에도 기타치고 혼 다 나고 나서도 기타치고 바람 깨어 일어날 때 기타치고 바람 다 잠들고 나서도 기타치고 비 그친 봄길, 이쪽 끝에서는 기타소리 피고 저쪽 끝에서는 기타소리 지고 기타소리와 고양이 그림자 사이 가릉가릉 흔들리는 줄무늬 - 박유라 시집 ‘푸른 책’ /2005년/현대시 일상은 우리 앞에 봄이 오는지 봄이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가지요. 고양이 한 마리 기지개를 켰던가요? 잠시 흔들리는 줄무늬 속에 화들짝 봄이 깨어났나 보네요. 봄이라고는 해도 꽃샘바람은 날을 세워 기승을 부리고 툭하면 하늘과 땅을 뒤덮는 황사에 꽃들도 기죽어 피기 십상이지요. 치렁치렁 머리 기른 기타쟁이 아들은 연습에 연습을 더하느라 온종일 기타를 치겠지요. 기타소리 딩동 거리는 사이 내가 울고 또 울음을 그치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혼나고, 혼난 후 또다시 이어지는 기타소리... 무심
꽃은 지는 아픔으로 우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을 얻은 날 아침 정원의 꽃을 바라볼 때 이슬에 젖은 꽃이 연봉홍 기쁨을 활짝 펴 울고 있었다. 내 사랑이 떠난 날 저녁 정원에 앉아 숨죽여 울 때 벌레 먹은 꽃이 푸른 색 슬픔을 말아 울고 있었다. - 강경호 시집 ‘휘파람을 부는 개’ /2009년/시와 사람 투영된다는 말이 있다. 꽃에게 내가 투영된다. 내가 울 때 꽃도 울어준다. 내가 기뻐 울 때 꽃도 울어준다. 감정이입이니 반영이니 여러 말이 있을 수 있으나 지상의 모든 꽃은 우리와 함께 해 가는 반려 꽃이다. 반려 동물이니 반려견이니 있으나 우리는 진작 우리에게 꼬리치지 않고 우리의 손바닥을 핥아주지 않지만 너무나 친숙해 잠깐 그 존재를 잊고 있던 반려 꽃, 오늘은 꽃 앞에 서서 오래 꽃을 쳐다 볼 일이다. 꽃이 울고 있는 지 알아 볼 일이다. /김왕노 시인
미국의 전설적 노조지도자 호파 실종 미국의 전설적인 노조지도자 지미 호파(Jimmy Hoffa)가 1975년 오늘 실종된다. 호파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외곽의 브룸필드 힐스(Bloomfield Hills)에 있는 한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뒤 행방불명됐다. 호파는 이 레스토랑에서 마피아 보스인 안토니 지아칼로네와 모종의 협상을 할 예정이었다. 경찰은 마피아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했지만 단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후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실종 8년 만인 1983년 미국 정부는 호파가 사망했다고 공식 선언한다. 호파는 1957년 미국 트럭운송노동조합의 위원장에 선출된 이후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수능란한 협상력, 저돌성으로 이 조합을 회원이 200만 명에 이르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노동단체로 성장시켰다. 닉슨 측근, 워터게이트사건 청문회 출두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미국 상원의 청문회가 진행 중이던 1973년 오늘.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 두 사람이 증언대에 선다.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봅 홀드맨(Bob Haldeman)과 내무담당 수석 보좌관을 지낸 존 에를리히맨(John Ehrlichman). 둘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
수많은 초록빛 혀가 날름날름 햇살 받아먹는다. 오래전에 죽은 너도 마른 혀 꺼내 살금살금 바람 핥는다. 휘둥그레진 시간이 경계를 허물고 재잘재잘 대숲 흔들며 지나간다. 액자 속 아버지가 졸음을 못 이기고 기우뚱, 청명 쪽으로 몸 기울이신다. - 정우영 시집 ‘살구꽃 그림자’ /실천문학사 정 시인은 위암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하지만 언제나 늘 옛 모습 그대로 청청하다. 곡절을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그 속내가 늘 마음 아프다. 아버지를 그리며 평소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영정에 자신의 생애를 비추어 보았을까 시인도 사람인지라 영정을 바라보는 그이의 눈망울이 뜨겁게 전해온다. /조길성 시인
이집트,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포 이집트의 초대 대통령 나세르는 1956년 오늘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다. 이집트는 이와 함께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의 통행을 막고 티란해협을 봉쇄했다. 큰 타격을 입게 된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해 10월 29일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침공한 이틀 후에 수에즈운하를 공격한다. 수에즈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른바 제2차 중동전쟁이다. 안개 속 이탈리아 유람선 침몰 1956년 오늘 새벽 6시 51분! 미국 뉴욕항에서 3백여km 떨어진 대서양의 낸터컷(Nantucket) 섬 근처에서 이탈리아의 호화 유람선 ‘안드레아 도리아’ 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가라앉는다. 이 배는 미국 동부 표준시간으로 전날 밤 11시 15분 스웨덴 여객선 ‘스톡홀름’호와 충돌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안드레아 도리아’ 호의 침몰 사건을 계기로 모든 민간 선박이 항해용 레이더를 탑재하게 됐다. 아르헨티나 여걸 에바 페론 사망 아르헨티나의 여걸 에바 페론이 1952년 오늘 사망했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진 에바는 서른세 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