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1 /이정모 철썩거리지 않아도 안다 철들 때 알아차린 비릿한 몸짓 끊임없이 밀어내지만 우우우 우려하지 말라는 소리 대신 자지러지는 하얀 웃음 지천에 깔아놓고 대놓고 하는 바다와 육지의 교합 언제나 성공이다 망가질수록 황홀한 소리를 낸다 바람이 중얼거리며 지나간다 -이정모 시집 〈기억의 귀〉에서 음양의 아름다운 교합도 소통이 있은 후에야 가능하다. 생명체는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반드시 음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있어야만 비로소 생명체이다. 그러니까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해진다. 이때의 소통에는 억지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통하면 된다. 파도는 항상 해변과 소통한다. 영원히 교합한다. 육지는 철없는 파도라 탓하지 않는다. 대신 하얀 웃음을 마음껏 보내준다. 그래서 그들의 교합은 언제나 성공적이다. 망가질수록 황홀하다. 사실은 망가지는 것이야말로 때 묻지 않은 본능이다. /장종권 시인
겨울날 /김영재 두 무릎 푹푹 빠지는 겨울 산으로 들어가 바위에 부딪히고 나뭇가지에 찢기어 얼어서 더욱 빛나는 낭자한 꽃이었으면 -시조집 ‘화답’(책만드는집, 2014)에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산으로 가는 뜻은 새롭습니다. 광장과 산을 대비하여 생각하면, 광장은 현실의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이고 산은 광장의 논리로부터 벗어난 곳입니다. 신동엽은 ‘진달래 산천’에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산으로 갔어요/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어쩌면 이 시조의 시인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겨울날 산으로 들어가는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기다림에 지쳤다는’말에 눈길이 갑니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람에 치여 지치고 지친 사람들이 향하는 이상향은 아닐까요? 굳이 온 몸 찢기어 낭자하도록 산으로 가려는 뜻은 분명 마지막 결심인 듯합니다. 그러나 백석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노래했듯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시인은 우리 모두와 함께 소리치고 있습니
손 /박소원 형은 평생 독선생을 자청한 할아버지 두툼한 손을 가졌다 고등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어서도 공책 몇 장씩 가족 이름만을 필사하던 장애 이급의 손을 가졌다 그는 가난한 친구에게 할아버지 몰래 슬쩍 공책 몇 권 집어주던 날랜 손을 가지고 있다 대나무밭을 들락거리며 담배를 일찍 배우던 니코틴 노랗게 밴 손가락을 가졌다 구름 그늘 몇 근 내려앉을 때까지 어린 내가 꺽꺽 울면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주던 골 붉은 손을 가지고 있다 -박소원 시집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 북인 ‘손’은 형태적으로는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큰 손, 작은 손, 두툼한 손, 가느다란 손. 그러나 모습으로 손을 다 말할 수는 없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손’의 의미는 노력, 권력, 수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소통의 관계에서 손은 가장 먼저 접촉하는 신체 부위라 할 수 있다. 악수를 시작으로 위로와 격려의 단계로 발전하여 봉사, 기부로 이어지는 손의 쓰임새는 무한하다. 손버릇이 나쁘다거나 폭력을 가하는 부정적인 손도 있다. 손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손 주인의 몫이다. 말없이 누군가의 등을 토닥여주는 골 붉은 손은 얼마나 아름
류머티즘 /나석중 내가 목을 걸고 싶어서 수평선은 저기 있다 수평선은 질기다. 얼마나 질긴지 두 손으로 잡아보는 순간, 여윈 손바닥의 살점 베어간다. 피는 한 방울도 비치지 않는다. 그간 부리 사나운 새들이 쪽쪽 쪼아 먹고 파먹어 허연 뼈 드러난다. 드러난 뼈가 시원할 것 같아 물너울에 몸을 던져보지만 저 운명선으로 몸을 데리고 가기는커녕 물 밖으로 자꾸 뱉어놓는다 --시집 「풀꽃독경」 현대시세계 시인선 2014년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내가 목을 걸고 싶어서 수평은 저기 있다」라고 했을까. 류머티즘의 증상은 통증과 경직이다. 사나운 새가 쪼아 먹는 듯한 뼈의 통증 차라리 뼈를 드러내면 통증이 덜할 것 같아 물너울에 몸을 던져보기도 한다. 수평선에 닿아야하는데 운명은 물 밖으로 자꾸 고통스러운 뼈를 뱉어놓는다. 그래서 목숨 같은 수평선은 질기고 질기다. 이곳저곳 통증에 파스를 덧대고 있는 노인들이 그리워지는 길고 길 겨울밤이다. 찬바람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든다. 아픈 곳은 어떠세요 괜찮아요? /김명은 시인
동태찌개를 먹는 저녁(부분) /서정임 누군가 주방을 향해 목을 세웠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겨! -근데 이 집 동태는 어디 산이래요? 우리를 바라본 주방 아줌마의 대답이 명쾌했다 -요즘 어디 산이 어딨어요, 우리 집 거는 글로벌이예요. 모두가 떠먹는 동태찌개가 시원했다 몇 순배의 술이 돌고 어느 사이 우리 마음이 태평양처럼 되어 있었다 바글바글 끓는 찌개가 크고 작은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 누구도 원산지를 따지지 않았다 글로벌의 저녁이 환했다 -시집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자리가 꽉 찬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은 기다려도 나올 줄 모른다. 앞에 놓인 수저를 만지작거리거나 맹물을 홀짝거린다. “근데 이 집 동태는 어디 산이래요?” 까칠한 질문에 “우리 집 거는 글로벌이에요.” 주방 아줌마의 호쾌한 대답에 모두들 폭소를 터트린다. 그 한 마디에 날카로운 감정의 찌꺼기들은 사라지고 흥겨운 대화가 오간다. 그 사이에 나온 동태찌개는 어느 때보다 시원하다. 바글바글 끓는 소리 따라 동태잡이 배에 타고 태평양 파도의 리듬을 타고 있다. /신명옥 시인
우는 여자 /김석일 염천, 개가 봐도 개 같은 날 애지중지 의지하며 기르던 멍멍이 단발마 비명이 들린 후 맞는 게 차라리 낫다던 그녀가 때리는 사내의 악귀 같은 얼굴을 기어이 지게 작대기로 내리쳤다 버둥대는 피투성이 사내보다 때린 여자의 가슴이 더 아픈지 여자는 왼 종일 떨며 울었다 그 누구도 여자의 울음을 말리지 않았다 -김석일 시집『평택항』/북인 나 어릴 적 옆집에서도 매일 사내에게 맞고 사는 여자가 있었다. 농경사회에선 흔치 않았던 일들이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꽤 흔했던 게 사실이다. 농촌에서 도시 변두리로 거처를 옳긴 사람들, 사회적응이 힘들었던 사내들과 돈이 생활수단의 전부였던 도시 생활이 빚은 삶의 부조리가 아니었을까? 아이들과 함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아니면 情으로 사는 것인지 그 집구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맞으면서도 백년해로했다. 구석으로 몰린 쥐는 결국 고양이를 문다. 매 맞을 때마다 개의 위로를 받았던 여자는 삶의 의지처인 개의 죽음으로 드디어 이성을 잃고 만다. 여자의 멈추지 않는 울음, 울음의 여운은 참 길다. /성향숙 시인
아침에 /위선환 당신이 보고 있는 강물 빛과 당신의 눈빛 사이를 무어라 이름 지을 것인가 시간의 저 끝에 있는 당신과 이 끝에 있는 나 사이는 어떻게 이름 부를 것인가 고요에다 발을 딛는 때가 있다 고요에다 손을 짚는 때가 있다 머뭇거리며 딛는 고요와 수그리고 짚는 고요 사이로 온몸을 디밀었으니 지금, 내 몸에 어리는 햇살의 무늬를 어떤 착한 말로 읽어내야 할 것인가 나뭇잎과 나뭇잎의 그림자 사이를 나뭇잎이 나뭇잎의 그림자가 되는 사이라 읽으니, 한 나무는 다른 나무쪽으로 가지를 뻗고 다른 나무는 한 나무쪽으로 가지를 뻗어서 두 나무는 서로 어깨를 짚어주는 사이라 읽으니 -계간 『서정시학』 2009년 가을호 이 아침에, 당신과 나 사이를 착한 사이라 말하고 싶은데 나뭇잎이 나뭇잎의 그림자가 되는 사이라 읽으니, 서로 어깨를 짚어주는 사이라 읽으니 아, 아침은 온몸으로 행복을 던져주는구나 라고 시인은 나직이 배려 깊은 아침을 맞고 싶을 뿐이다. /김휴 시인
나는 나를 떠먹는다 /이재무 아내는 비정규직인 나의 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로는 더욱 그렇다 이런 날 나는 물그릇에 밥을 말아 먹는다 흰 대접 속 희멀쑥한 얼굴이 떠 있다 나는 나를 떠먹는다 질통처럼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없어진 얼굴로 현관을 나선다 밥 벌러 간다 모름지기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거나 씁쓸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대화도 유대도 놓여 있지 않다. 찬밥 신세다. 물에 밥을 말아먹는 일은 정상적인 식사가 아니다. 그릇 속에는 혼자서 밥을 먹는 자의 슬픈 얼굴이 담겨 있다. 밥을 먹는 일은 나의 슬픈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니 곧 ‘나는 나를 떠먹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밥’을 벌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오늘도 ‘현관을 나선다’. 아니 나서야만 한다. 이것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생활 시 혹은 삶의 시가 사라지고 개인의 넋두리만 난무하는 요즘 시들 속에서 이재무의 진솔한 생활시들은 얼마나 귀한가. /김선태 시인·목포대 교수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함민복 살며 풀어놓았던 말 연기라 거두어 들이는가 입가 쪼글쪼글한 주름의 힘으로 눈 지그시 감고 영혼의 뜸을 뜨고 있는 노파에게 거기는 금연구역이라고 -- 함민복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 2013. 2 집안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가 이웃집으로 넘어가지 않 게 주의하라는 아파트 관리실 안내방송이 있었다. 요즈음이야 누구나 담배 피우는 일을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베란다에 매달려 담배를 피우는 간 큰 사람들도 없다. 식구들 눈총에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예민한 촉각에 주의해야 하는 사람살이가 너무 팍팍하다 싶었다. 제 집에서조차 할 수 없는 일들만 늘어가는 것이 아닌지. 건강을 해치는 일을 삼가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그것이 남에게 해를 입혀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혹자에게는 정말 깊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영혼의 뜸을 뜨는 노파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말이다. /이명희 시인
붉은 담쟁이 /손세실리아 불화와 우울 떨쳐내지 못해 허공에 몸 날려 해체된 19층 여자 네 살배기 아들 만나러 아파트 외벽 기어오르는 중이다 다 왔나 싶은데 이제 겨우 1.5층 손바닥 짚었다 뗀 자리마다 인줏빛 선명하다 재작년 그 일 있은 직후 오밤중 짐 꾸려 떠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손세실리아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 숨이 턱 막히고 만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참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사람이다. 여장부 같기도 하고,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기도 하고, 청초한 아침 이슬 같은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건드리면 금방 터질 것 같은 물집 같은 뒷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제주에 내려가 그 많은 바람 다 받아 안고 깊어진 눈빛이 붉은 담쟁이를 놓치지 않았으리라. 시인이 손바닥 짚었다 뗀 자리마다 인줏빛 선명히 글썽인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