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交感) /이승하 내가 잠든 하룻밤 사이 얼마나 많은 별이 새로 태어나 빛을 발하는지 헤아리지 못하는 내 혼은 너무 곤궁하구나 내가 노동한 하루 낮 사이 얼마나 많은 별이 숨져 우주의 한 공간이 어두워졌는지 헤아리지 못하는 내 몸은 너무 빈약하구나 보이는 별과 보이지 않는 별이 말한다. 네 몸은 한 줄기 바람일 뿐, 여기서 부는 미풍과 훈풍과 태풍이 다 바람일 뿐. 지상의 생명은 다 같이 유한하여 사시사철 바람을 감지할 수 있지. 바람 앞에 다 같이 흔들려야 하지.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세계사, 1992) 1992년 서른, 결혼하던 해 필자가 만난 이승하 시집 ‘욥의 슬픔’은 오랫동안 질문에 질문을 더하는 편지였다. 시인의 슬픔인지 나의 슬픔인지 알 수 없는 슬픔의 혼돈은 시인과 나의 ‘교감(交感)’으로 남게 되었다. 많은 인생들이 자기만의 울타리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자신이 잠든 하룻밤 사이 얼마나 많은 별이 새로 태어나 빛을 발하는지, 헤아리지도 못하는 우리 인생의 빈약함을 노래하는 시다. 지상의 생명은 다 같이 유한하여 사시사철 바람을 감지할 수 있지만 바람 앞에 다 흔들리는…
젖은 불꽃 /성향숙 몸에 시너를 붓고 성냥 그었을 때 여자는 꽃이 되었다 냉정이거나 지독한 나태이거나 정열이거나 꽃은 꽃이다 쏟아지는 관심으로 한 번에 발화되는 수많은 눈빛들 놀라운 초현실적 꽃의 진원지는 텅 빈 햇살, 눈부신 바닥, 꽉 찬 어둠 뒤통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상상하도록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미, 살갗에 다닥다닥 붉은 꽃들, 외상 혹은 내상 꽃물 터져 흐르는 곳 푸른 잎 한 장 덧대본다 -출처- 『엄마, 엄마들』 푸른 사상/ 2013년 막 태어난 신생아의 하품을 보면서 천천히 벙글어지는 나팔꽃이 생각났다. 흔히 아이들을 사람꽃이라 하는데 그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눈앞에서 나팔꽃의 개화와 아이의 하품이 겹쳐졌다. 그렇게 탄생은 꽃으로 시작된다. 빙 둘러싸인 가족들, 그 순간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이가 주인공인 무대에 참여한다. 제 몸에 시너를 뿌린 여자도 지금 생의 절정에 꽃을 피우는 중인가? 살다가 살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 죽음이 꽃 중의 꽃, 붉은 장미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주목받는 것일까? 풍경 앞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술렁거림을 듣는다. 결국 인간은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마감하는 생이다. /박홍점 시인
구름의 해산(解産) /김은경 탈장한 구름이 떠있군요 구름의 윤곽은 아령칙 그늘에 덧씌운 겹겹의 그늘이어서 아무리 녹여 먹고 달여 먹고 떼먹어도 거뭇한 속살에 다다를 수 없나 봐요 저 먹먹함 얼마나 무거운 상흔인지 녹인지 쇠붙이인지, 세계의 병 원이 되었다가 삼라만상 철물점이 되었다가 만년설의 정거장이 되었다가 쓸쓸해, 하고 얘기할 때 구름은 제 목 하나의 중심을 쥐어주고 제 다리 몇 갈래의 길을 내어주고 울음 알알이 무명 피륙 한 필의 안개로 전송하고 그러고도 먹장이 젖처럼 남아돌아 날마다 하염없이 둥글어지는 구름, 아비 없는 아가를 수도 없이 낳았으나 제가 부린 게 무엇인지 도무지 모른다는 듯, 흘릴 게 정(情)밖에 없는 봄날 한마디 비명도 없이 고물고물 흰떡 같은 아가를 또 -시집 <불량 젤리>(삶창, 2013)에서 구름의 모성 앞에 고개를 숙인다. ‘아비 없는 아가를 수도 없이 낳았’다는 구절에서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온갖 풍상을 겪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신산한 생애가 뭉게뭉게 떠올라서 그렇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이 땅에서 자꾸자꾸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을 찾을 길 없어
이십원 /심호택 뒷산에서 노는데 어떤 어른이 나를 알아보고 머리 쓰다듬어주고 이십원 주고 갑니다 지켜보던 동훈이가 손 내밀면서 번시 라주 __________ 십원 주라 그 말입니다 아깝지만 그런대로 공평합니다 나중에 사귀어보아도 크게 경우빠지는 짓은 안 합니다 위아래 모두 금니빨 내놓고 웃으면 시원합니다 -출처 심호택 시집 <하늘밥도둑/창작과 비평 1992>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넉살좋은 동훈이가 손바닥 펼치며 절반을 요구하는 모습이 눈에 삼삼히 다가온다. 그걸 두말 않고 건네주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도 푸살지다. 나중에 사귀어보아도 그런대로 공평하니 게다가 크게 경우 빠지지 않는다니 참 행복한 경우다. 그 친구는 아마도 남이 벌리는 손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과 함께 주고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금이빨 내놓고 웃는 웃음이 다가올 가을을 물들였으면 좋겠다. 더위를 저만치 물리치는 시원한 웃음이다. /조길성 시인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이성복 어느날 갑자기 미루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선생은 생선이 되고 아이들은 발랑까지고 어떤 노래는 금지되고 어떤 사람은 수상해지고 고양이 새끼는 이빨을 드러낸다 …… 어느날 갑자기 주민증을 잃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까먹고 갑자기,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풀섶 아래 돌쩌귀를 들치면 얼마나 많은 불개미들이 고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 먹고 얼마나 많은 하얀 개미 알들이 꿈꾸며 흙 한점 묻지 않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소식은 대개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점점 어지간한 사건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왜 사는지 회의에 젖기도 한다. ‘어느날 우연히’ 내가 능동적으로 다른 삶 곁으로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떤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이웃들, 꽃과 나무와 개미와 개와 바람과 바위 등등. 사소할지도 모를 그들의 모습을 통해 놀랍도록 반전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우연히 들친 돌쩌귀 아래…
척, 하며 가는 길 /천선자 너에게로 가는 길은 막다른 도로이다. 사방이 벽으로 쌓인 도로이다. 꺽꺽 차오르는 목구멍에서 오리소리가 난다. 이십사 시간 산소 없이 살아간다.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한다. 그건, 그냥 사는 거다. 살아주는 거다. 삶의 깊이가 꼭 발목까지만 닿는 얇고 딱딱한, 그 자리에 서서 한 길 어둠만 퍼 올린다. 금이 간 마음의 동공이 도로가에 실핏줄을 남긴다. 메마른 두 눈에서 돌알이 커 가는데 눈물이 난다. 눈물은 안개로 남아 막다른 도로 위에 눕는다. 사는 척, 하는 거다, 이젠 척, 척, 하며 습관적으로 산다. 꽉 막힌 좁은 도로에서도 척, 하면 길이 열리더라. -출처-『도시의 원숭이』 / 리토피아 2013년 밥 먹고 잠자고 숨 쉬고, 그냥 살았는데 벌써 가을이다. 일상에 떠밀려 바쁘게 살았는데 손 안에 아무것도 없다. 바쁜 척, 사는 척 했는데 어쩌면 죽어가고 있었을까? 죽은 척 누워있는 몸 위로 총알이 비껴가고 죽은 듯 누워있는 새를 건드렸더니 푸드득 날아오른다. 한 무더기 토사물을 뱉어놓고 젊은 연인들은 자리에 앉아 자는 척, 취한 척, 하더니 내려야할 정류장에 황급히 내린다. 그때 그들은 뭘 할 수 있었을까? 막다른 골목이다
바다의 아코디언 /김명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生滅)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 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서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김명인,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 지성 2002 오래전, 격포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의 빛깔이 지금도 생생하다. 채석강 주상절리에 부딪혀 튀어나올 듯 주황빛으로 빛나던 햇살의 기운. 주상절리와 지는 저녁 햇살 사이로 검은 실루엣으로 찍힌 친구모습. 사진 속에서도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기려행려도(騎驢行旅圖)/山水 서춘자 흙벽에 종이창 바르고 이름 없는 선비로 묻혀 시나 읊으러 가는 저 은일사 양가죽은 이미 걸쳤으니 동강의 낚시질 제격이네 봄비 맞아 소살거리는 저 살구꽃은 어쩌려는가 구종 혼자 바라보고 나귀는 지쳤네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는 산수·인물·풍속·화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그의 화풍은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안산시 ‘단원구’는 김홍도의 호인 ‘단원(檀園)’을 따 지은 지명이기도 하다. 화원 집안인 외가로부터 천부적 재질을 물려받은 김홍도는 안산에 칩거 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강세황(姜世晃)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20대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으며, 28세에는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 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린 바 있다. 이처럼 화려한 시절을 보낸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그는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 속에서 여생을 마쳤는데, <기려행려>를 통해 일평생 시와 함께한 나그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김홍도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이 시는 그림 속 나그네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하
알이 되어 잠을 자다 /김하정 어둠은 혼돈의 부드러운 옷자락을 걸친다 지금의 어둠도 태고의 태허를 흉내낸다 무겁고도 가볍고 깊고도 얕고 심해인가 하면 해안가이다 숲속인가 하면 나무 속이다 너인가 하면 나이고 여기이기도 하고 저기이기도 하다 잠이 올 듯 말 듯, 책을 덮을까 말까 시를 써볼까 말까 진퇴양난 속에서 어둠은 더 그윽해진다 이 어둠의 알 속에 가만히 지낸 긴 시간의 기억이 그윽히 떠오른다 그윽한 것이 어둠에 잠기면 꿈속의 알처럼 둥둥 뜨고 가라앉는다 어둠은 북명의 바닷속처럼 따사롭다 태허의 물결이 알을 감싸준다 감싸인다 -김하정 시집 <투명하고 환한 길>에서 빛의 반대로 생각한다면 어둠은 어쩐지 불안하고 음습하다. 우리에게 어둠은 불안하고 공포스런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눈꺼풀 한 번만 살짝 내리감아도 어둠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러니까 생명체에겐 빛이 필요한 만큼 어둠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어둠이야말로 가장 편안한 존재이다. 빛의 세계에서보다 우리는 어둠의 세계에서 더 자유롭다. 어둠은 신비의 세계이고, 그래서 꿈의 세계이며, 창조와 생산의 세계이다. 그것의 정체가 비록 혼돈이라 할지라도 어둠의 알 속에 안겨 있
종소리 /김영석 흙은 소리가 없어 울지 못한다 제 자식들의 덧없는 주검을 가슴에 묻어두고 삭일 뿐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그러나 흙은 제 몸을 떼어 빚은 사람을 시켜 살아있는 동안 하늘에 종을 걸고 치게 한다 소리 없는 가슴들 흙덩이가 온몸으로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출처 김영석 시집 <썩지 않는 슬픔/창작과 비평 1992> 우리는 울 줄 아는 흙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울음은 흙을 닮아 부서지기 쉬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거하는 모든 곳에 종소리가 울리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귀 막고 답답하다. 그래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닮아간다. 유치환의 깃발이 그리워진다.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종을 치지만 메아리조차 없으나 제 몸이나마 울리려 하늘에 종을 걸고 그 줄을 놓지 못한다. 언젠가 한 번 하늘이 통째로 커다란 종이 되어 푸른 종소리를 들려주기를 기도해본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