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김점미 어느 날 이른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리에서 달아나는 당신을 보곤 나도 막 달려갔지요 그러나 잡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아 통곡하고 일어나니 구름이 걷히고 아침 해가 내 눈물을 말리더니 두통이 사라지고 두 다리가 가벼워졌어요 무서움도 외로움도 모두 가슴팍에서 사라졌어요, 나는 다시 어린애가 되었어요 모든 게 투명해졌어요 -김점미 시집 <한 시간 후, 세상은>에서 사랑할 때에는 사랑하거나 사랑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잘 모르기 쉽다. 마냥 행복하기 때문이다. 실은 그 행복감조차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별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랑했음을 혹은, 사랑 받았음을 알게 된다. 이별은 대개 불시에 오게 마련이고 그래서 준비하기가 어렵다. 한바탕 피울음을 울고 나면 체념도 가능하고 새로운 사랑도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피울음이 바로 사랑의 깊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깊은 사랑은 이별하자마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기억으로 머물게 될 것이다. /장종권 시인
뒷방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던 상심의 파편들이 구불구불 숨어 사는 거기 살을 모두 바라낸 시간들이 백골이 되어 뒹굴고 있는 거기 서로 어울릴 수도 없으면서 소중한 척, 서로 컴컴한 냄새가 되어가고 있는 거기 속을 다 열어젖히고 산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벌써 알고 있던 찢어진 깜장 우산처럼 스멀스멀 숨어 들어가 눕고 싶은, 거기 -한보경 시집 ‘여기가 거기였을 때’ / 지혜 /한보경 뒷방은 일상에서 잠시 밀려난 것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조금 어두컴컴하고 그래서 아늑하기도 한 뒷방에서 ‘잠시’의 시간들은 구불구불해지기 시작한다. 이내 서로 엉키어 백골이 되어 뒹군다. 마침내 컴컴한 냄새가 되어 있는 일상의 한 때. 어려서는 무섭기조차 했던 그 뒷방에 스멀스멀 숨어 들어가 눕고 싶은 때가 있다. 그만큼 뒷방은 치열함의 반대쪽에 있다. 무덤, 고향, 어머니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를 뒷방이 문득 그립다. /이미산시인
포장된 슬픔 /구순희 바다 변두리만 기웃거리는 게는 그 단단한 껍데기 속 물컹물컹한 슬픔 태산 같을지라도 창자가 없어 창자 끊어질 일 없다 하지만 아니다 곧장 앞으로 가지 못하는 숙명은 이미 창자 다 끊어져 더 이상 문드러질 게 없다 생의 부채에 허덕이는 사람이 무심코 걷어차는 바다 모래더미 속으로 어린 게가 어미 게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다 바다는 밤낮 집채만 한 파도로 게를 덮친다. -구순희 시집 ‘내려 놓지마’에서 포장된 슬픔이라는 시어가 재미가 있다. 게는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결국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속살이 아니라 고뇌이자 슬픔이다. 그러나 그 속에 꽉 찬 채 껍질로 포장된 슬픔의 그 힘으로 살아간다. 슬픔의 몸체가 커지려고 껍질 벗기를 한다. 이것이 삶의 아름다운 과정이자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파도가 아무리 집채만 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 게 껍질이다. 슬픔으로 꽉 찬 게이다. 게도 덮쳐오는 파도 속에서 희열을 느낄 것이다. 파도가 거세고 높을수록 살아있음의 노래를 끝없이 부를 것이다. 삶을 진지하게 살아온 시인의 혜안으로 읽어낸 세상의 일면이 힘차면서 아름답게 다가온다. 늘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는 좋은
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있다 /김승희 꽃들이 반짝반짝했는데 그 자리에 가을이 앉아 있다 꽃이 피어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검붉은 씨가 눈망울처럼 맺혀 있다 희망이라고… 희망은 직진하진 않지만 희망에는 신의 물방울이 들어 있다 -<희망이 외롭다>(2013 문학동네)에서 조락의 계절에 비로소 새 생명의 씨앗을 보았다는 발견은 낯익습니다. 그런데 희망이 직진하지 않는다는 말 앞에서 마음이 서늘합니다. 시인의 회한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치러내는 절망이 새삼 눈물겹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을씨년스런 가을 거리에 서 있습니다. 마음에 두고도 쉽게 하지 못한 말들이 낙엽처럼 쌓여 밟힐 때마다 수런수런 불온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처럼 삶은 곡절의 연속입니다. 인간은 삶의 마디마디에서 신의 계시를 듣게 됩니다. 시인도 희망으로 바뀐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신비한 물체를 신의 물방울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물방울은 일본 만화에 나오는 와인처럼 달콤하지 않고 쓰디쓰리라는 걸 금방 알아챘습니다. /이민호 시인
수유리 2 /유희주 잠자리에 들면 귀가 베개에 닫힐까봐 모로 누운 채로 두 손을 볼 밑으로 넣는다 고요함도 얼어버린 겨울 나무에서 얼음조각이 떨어진다 산산이 부서진 고요의 조각들 사이로 살아남은 소리들의 기척을 잠자리에 누워 듣는다 먼 이국의 땅에서 모로 누워 귀를 바닥에 대면 바다 건너에 사는 친구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혹 내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고요 사이로 내 이름을 누가 불러줄지도 모른다 어제도 전화번호 하나가 연결되지 않았다 수첩에는 겨우 몇몇의 친구 이름이 남아 있고 미국 사람 몇몇을 새로 적어 넣었다 책장을 넘겨야 하는데 반쯤 넘어간 책장에 수유리의 어느 골목길이 구불구불 살아 있고 아직도 나는 거기 서 있다 -유희주 시집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문학사상 2012> 행간마다에 떨어져 내린 얼음조각이 녹아 흥건하다. 산산이 부서진 소리는 이국땅에 부서지는 얼음조각임과 더불어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속을 흘러내리는 살아남은 소리들의 기척을 듣기 위해 시인은 모로 누운 채 두 손으로 귀를 받치고 있다. 어쩌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손을 넣어 받치다가 눈물이라는 단어를 애써 지우고서 울음을 행간으로 이동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수첩
안경점에서 /임병호 잃어버린 내 안경들 어디에 있을까 술집에서, 喪家에서 택시 안에서 기억 없는 곳에서 나와 헤어진 안경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어두운 세상 밝게 보려던 흐려진 가슴 맑게 보려던 내 안경들은 지금 도시 어디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산속 어디서 새소리 바라보고 있을까 이승 어디서 저승을 바라보고 있을까 늙었는가, 옛날 옛일이 자꾸 생각나는데 나를 떠난 추억들이 분신처럼 그리워진다. 이 시의 화자, 즉 시인은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안경을 잃어버리듯 추억도 잃어버리고 사는 생의 이면을 안타깝게 붙잡으려 하고 있다. 시인의 추억들에는 아픔이 가득 묻어나 있다. 그 아픔들을 회상하는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회상 덕분에 고뇌와 사유가 담긴 시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강산은 유수하게 변했건만 시인은 여전히 추억의 그 자리에 서 있다. 번지 없는 주막에서 그때 그 시절을 불러내고, 울고 넘는 박달재의 서곡은 애절한 추억들을 내놓은 깊은 밤, 시인은 어느덧 주름이 깊게 진 사람이 되었지만 추억과 함께하는 순간 시인은 늙지 않는다. 시인의 따스한 감성과 여린 마음이 서글프다 못해 아프다. 촘촘히 따스하게 걸어온 시
형제들의 삼국지 /박하리 시계바늘이 부지런히 돌고 있다. 달각달각 분침이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선다. 초침은 뱅글뱅글 바쁜 걸음으로 원을 그린다. 노모는 풀매긴 광목 이부자리에 누워 있다. 삼형제가 골프장에서 만나 단판승부를 시작한다. 홀인원을 기대하고 이글을 기대하고 파이길 기도한다. 게임의 패자는 어머니를 얻을 것이고, 승자는 어머니를 잃게 될 것이다. 첫째는 홀인원으로 끝내려 하고, 둘째는 이글이어도 괜찮다. 셋째는 더블보기를 걱정한다. 첫째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다리가 풀린다. 둘째는 사업 걱정에 골프채가 천근만근이다. 셋째는 지난밤 술로 인해 공이 두서너 개로 겹쳐 보인다. 벙커로 떨어진 골프공이 모래 바람을 일으키다가 그린으로 올라온다. 데구루루, 홀컵을 향한다. 어머니를 얻은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온다 어머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갑게 묻는다 누구신가요? -계간 아라문학 2013년 가을호에서 자식의 생활이 어려워서 부모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던 시절도 있기는 하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에 아예 받을 생각을 안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였다. 떵떵거리고 살면서도 늙은 부모는 못 본 척하는 사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마 그랬을…
꽃 동냥치 /박상률 밥 한 주먹 담아 먹을 양재기 하나 없어도, 동전 몇 닢 받아 넣을 깡통 하나 없어도, 그는 동냥치다. 한 면에 한 마을씩 가가호호 제삿날만 챙겨 두면 먹고사는 일 정승 판서 부럽지 않은 그. 등짝에 지고 다니는 망태기엔 철따라 달리 피는 들꽃 가득하여 꽃동냥치라 불리지만, 그는 여태껏 무얼 동냥한 적이 없다. 어쩌다 제사 없는 날엔 아침 일찍 뒷산에 올라 마을 사람 아침잠을 다 깨운다. “내 며느리들 빨리 일어나서 나 먹을 아침밥 지어라!” 졸지에 한 마을 아낙이 모두 그의 며느리가 되고 만다. 그가 죽어 그의 꽃 망태기도 같이 묻혔다. 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났다. 지금 내가 그에게 동냥을 청한다. “꽃 한 송이, 내 등짝에도 피어나게 해 주세요.” -박상률 육필시집 『꽃동냥치』 2013 이 시는 박상률 시인의 소설 『봄바람』에 삽입된 시이기도 하다. ‘동냥치’는 불교용어인 동령(動鈴)에서 나온 소위 탁발승의 세속적 표현이다. 시인의 어린 시절 보았을 동냥치들은 승려가 아니어도 마치 승려같이 보시(布施)주머니인 망태기를 들고 동네 잔치집 혹은 상가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동냥
등 굽은 그늘 /윤승천 열 네 살쯤에 척박한 뒤뜰에 살 수 있을까 하며 심어놓은 나무가 내가 저를 잊은 지도 수 십 년이* 되었는데도 그 때 그 자리에서 뒤틀리고 옹이 투성인 채로 모두 떠난 빈 집에 등 굽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윤승천 시집 한어동에서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꺾꽂이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온 날 우리 집 담 아래에다 셀 수 없이 많은 사철나무 꺾꽂이를 했다. 그것이 조금씩 자라는 줄 알았는데 대학교를 외지에서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철나무는 내 키를 넘고 무성해져 더군다나 사철나무 속에다가 박새는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기도 했다. 사철나무는 꺾꽂이해 준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두런거리는 내 목소리에 사철나무는 마음 설레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자주 둘러보고 그늘 아래 서 보고 애정을 쏟던 사철나무는 그 때 나의 반려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등 굽은 그늘이 등 굽은 그리움, 등 굽은 기다림으로 읽혀지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멋진 시를 윤승천 시인이 보여주었기에 가능하다. 시는 이처럼 공감대를 형성해 감동 깊은 세계로 우리를 끝없이 이끌어가기도 한다. /김왕노 시인
사냥 /이시영 빙하가 둥둥 떠다니는 북극 노르웨이령 스발바르드제도의 한 섬, 굶주림을 참지 못한 북극곰이 동족의 새끼를 사냥하여 물고 가다가 뒤를 슬쩍 돌아다보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너무 일찍 녹아 먹잇감인 연어와 바다표범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란다. 인류의 공멸 이전에 자연의 붕괴가 먼저 시작되는 것인가? 눈밭에 점점이 흩어진 어린 곰의 피가 꽃처럼 붉다. -웹진「시인광장」 피 비린내가 갈수록 진동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동족을 사냥한 기억으로 우리는 인간을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각박해서 누군가 쓰러져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의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아비가 아들을 물고 아들이 아비를 물고, 세상은 아비규환이 되어 더 이상 삶의 본능이 평화라는 것을 기억할 수 없도록. 모두가 지치고 힘들어 하다가 결국 제 동족을, 급기야 제 살을 물어뜯으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분별없이 저만이 온전한 존재인 것처럼 독식과 경쟁만이 힘의 결정인 듯 서로를 할퀴며 마음을 무너뜨리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빙하가 녹아 더 이상 먹이가 없어진 북극곰이 동족의 새끼를 물고 가다가 뒤를 슬쩍 돌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