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균 나는 무릎 꿇지 않네 무릎 시려오고 무릎이 쑤셔오는 내 삶에게나 꿇으면 꿇지 나는 아무에게나 무릎 끓지 않네 그러나 어찌하여, 오늘 나는 이 무릎을 데리고 나가 무릎이 해지도록 꿇고 또 함부로 꿇고는 있지 들에 나가 초록에게나 한없이 한없이 -- 최창균 시집,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창비, 2004년 무릎을 꿇지 않고 살아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에게나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결연한 단언을 지키고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나 수없이 많은 것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았는지. 하루의 일상에서도 자주 무너지는 무릎은 지금 관절염에 걸렸다. 절뚝거리며 걷는 길은 휘청거리며 삶을 불안하게 한다. 들에 나가 초록에게나 한없이 꿇어야 할 무릎을 어디서 함부로 꿇고 있는가 말이다. 바지런히 푸른 잎을 채우고 아무 미련 없이 비워내는 푸른 숲으로 가 초록 앞에서 다소곳이 무릎 꿇어 볼 일이다. 자작나무 흰 무릎 정갈하게 세우고 있는 숲의 품에 안겨서 해진 무릎 꿇고 다시 일어서 볼 일이다.
박경숙 한 번도 꺼내 보인 적 없던 엄마의 사랑 서랍 깊숙이 간직되어 있다 시집 와 남편에게 처음으로 받았다는 빨간 원피스 아까워서 너무 좋아서 그때는 아끼느라 입지 못했던 옷 엄마의 사랑을 펄럭이며 딸들, 번갈아 입어 본다 시집 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받았다는 빛바랜 원피스 딸들에게 꼭 맞다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친정에서 딸로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시집에서 엄마로 태어난다. 이 시의 화자는 서랍 깊숙이 간직되어 있던 어머니의 원피스를 발견하고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제는 어머니처럼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버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알뜰살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받은 원피스는 너무 좋지만 그것이 닳을까 아까워 꺼내 입지 않는다.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이다. 이 사랑으로 인해 가정이 행복한 것이다. 시인은 한신대 문창과 출신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박병두 시인
/김명리 벌레들은 풀잎에 방구들을 들이는지 그 방구들 연초록 좁다란 아랫목에서 가쁜 숨 몰아쉬며 사랑들 나누는지 비밀스레, 비밀스레 접혀진 풀잎사귀마다 저렇듯 발긋발긋 슬어놓은 알들이라니! 풀잎의 방구들 녹아날 듯 햇빛에 몽싯거리는 저 여린 목숨들, 저 바알간 몽싯거림 안으로 어느 날 문득 애벌레의 길이 잦아들리 멀고 먼 배추밭, 깜깜한 속대까지 길이 열리리 -김명리 시집 <적멸의 즐거움/문학동네 1999> 벌레들이 풀잎에 방구들을 들인단다. 사랑을 나눈단다. 그건 아직 비밀이라 말하며 가쁜 숨 몰아쉬고 있다. 나와 벌레가 하나 되어 알 속에서 내일을 꿈꾸다가 햇살아래 몽싯거리며 깨어날 연습을 하기도 한다. 가야할 머나 먼 깜깜한 속대까지 길이 열려있다고 우리를 안심 시키고 있다. 풀잎과 벌레와 알과 햇살이 모두 시인의 방 속에 한 살림을 차리게 된 기쁨으로 가득하다. 들어오라 손짓하면 누가 마다할까 신발 벗고 얼른 들어갈 일이다./조길성 시인
/문인수 11월, 이 빈 당간지주에 뭘 걸치고 싶다. 단풍 붉게 꿈틀거리며 바람 넘어가는 저 산능선 다리 벌리고 서서 오래 바라본다. 저걸 걷어 길게 걸쳐 입고 싶다. 파장에 홀로 남아 거나하게 한잔 아, 탈진한 生의 거대한 춤, 저녁노을에다 섞어 훨훨 몸 넘고 싶다 -- 문인수 시집 ‘동강의 높은 새’ / 세계사 한 해가 저물어가는 11월의 붉은 단풍들. 굽어진 곳마다 붉게 물든 ‘산능선’은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얼룩과도 같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보면 아침 출근길에 입었던 셔츠엔 열심히 일하고 흘린 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는다. 산과 산,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생성과 소멸. 그 사이에 ‘꿈틀거림’이 있다. 10월과 11월, 11월과 12월. 쓸쓸히 저물어 가는 환승역 같은 이 계절의 시작과 끝을, 우리는 그저 무심히 매일 걸쳐 입는 것이다.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출처 -공광규 시집, 『말똥 한 덩이』- 2008년 실천문학 ▲ 박설희 시인 둥근 밥상에 옹기종기 모여 조금은 불편한 자세로 먹던 밥이 얼마나 달았던지를 기억한다. 찌개 한 가지만으로도 맛나던 밥이 얼굴 반찬 때문이었다니. 고기반찬 가득 차려진 밥상 앞에서도 입맛이 돌지 않았던 게 그 까닭이었나 보다. 각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뿔뿔이 제 볼 일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잘 그려져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현대인의 비애.
낙엽 설전(舌戰) /천수호 그는 내게 아씨, 라 했다 충실한 노복처럼 극진했다 나는 제법 아씨답게 아그작아그작 밟으며 그의 노구를 걱정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아씨, 아씨, 아씨 그는 내 몸을 극진히 떠받들었다 아씨란 말은 따뜻한 전생의 소용돌이라 아씨의 세대답게 그를 하대했다 아씨, 아씨, 아씨, 아씨 그는 한참 만에 바스러졌다 아씨, 라는 호칭과 함께 순장되었다 천 년은 족히 살 그의 비명도 흙발로 다져졌다 -- 천수호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2009, 민음사) 가을에 한번쯤은 낙엽을 밟으며 살금살금 걸어보았을 것이다. 마른 낙엽들이 쌓여있는 어느 길에서 발바닥을 통해 들어오던 싸한 느낌. 그래, 가을을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가을. 전생에 내 몸을 극진히 떠받들던 소리, 아씨. 전생에 우리는 아씨였을 수도, 아씨를 떠받들던 이름 없는 몸종이었을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는 것이고 걸음을 뗄 때마다 아씨, 라는 소리를 곱씹으며 따뜻한 가을을 밟고 그 따뜻한 소리가 다져져 천 년 후에도 따뜻한 소리로 일어나길 바랄 뿐이지. /유현아 시인
/전건호 아내는 포도를 씨앗째 삼킨다 삼킨 씨앗들이 기름진 속에서 싹을 틔워 넝쿨로 뻗어나는지 오지랖 또한 포도넝쿨 같다 머문 자리마다 포도송이 같은 입담을 매단다 단내를 맡고 벌떼가 모여들 듯 날이면 날마다 동네 아줌마들이 꼬인다 동분서주, 약속이 넝쿨처럼 꼬이고 꼬여 어쩔 줄을 모른다 가정집 거실에 모여 남의 집 숟가락 수까지 헤아리던 수다는 여자들이 소통하는 방식이다. 관계의 방식이다. 이젠 시대가 변해 콩다방 별다방 하는 유명 브랜드 카페나 변두리 창 넓은 카페로 모여든다. 포도씨앗 같은 말씨 하나가 싹을 틔우면 특유의 웃음들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가는 수다의 넝쿨. 알알의 말들은 벌꿀처럼 달콤해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절대 끊어질 줄 모른다. 담쟁이처럼 한없이 뻗어 창을 넘고 담을 넘는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다음을 약속하는 여자들의 수다. 더러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나무라지 않는다. 시인의 흐뭇한 시선이 보이는 것도 같다. /성향숙시인
/남태식 누가 노래를 부르며 중얼거리며 길을 가고 있다. 귀에 반짝, 빛나는 이어폰을 꽂았다. 언제였을까, 우체국에서 그를 본 듯도 하다. 내 어린 시절의 누가 종일 노래를 부르며 중얼거리며 길을 갔다. 머리에는 방긋, 벙글은 노랑 빨강 꽃을 꽂았다. 학교길 오가는 중에 자주 내 옆을 스쳐가곤 했다. 아직도 나는 그 둘 모두 누구인지 모른다. 그 둘 모두 길 끝에 이를 때까지 어쩌면 지금처럼 모를 것이다. --계간 아라문학 가을호에서 언젠가 본 듯하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는 얼굴도 많다. 사전적으로는 ‘이미 본 적이 있다’라는 뇌의 신경화학적 작용으로 ‘데자뷰’라는 용어로 설명돼 있다. 험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스스로 편안하고 안정된 현실로 마치 꿈을 꾸듯이 만들어내는 뇌의 작용이라는 것인데, 어찌 보면 시를 쓰는 사람들의 숙명적인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 한편으로는 보다 따뜻하고 평화스러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본능적 작용에 의한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인간은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은 하나일 것이고, 그러니 모두가 형제이고 이웃
비 맞는 새들 /유민지 기다려 본 적 있는가! 비상을 서두르려 전깃줄 날개 바람을 기다리는 강남 제비 기다려 본 적 있는가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한 기대 심란한 마음을 빨랫줄에 널어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연민 바람의 깃털에도 머리카락세우며 하늘 아래 땅의 소리를 듣고 하늘 위를 나는 새의 노래를 들어 본 적 있는가 그 사람의 심장 뛰는 소리를 새는 비상을 준비한다 죽어 가는 육신을 세상에 맡기고 혼신의 힘으로 비상의 바람 속에서 들으려 좌선하는 수도승으로 새의 파수꾼처럼 유민지 수필가의 경기수필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은 ‘꽃’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모든 관계가 아름다워진다고 말했다. 수필가 역시 이 시를 통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새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존재는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 날 수 있다. 지금 외롭다고 느낀다면, 주위를 돌아보고 수많은 존재들에게 눈과 귀를 열어 보자. 참된 우리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한다. 서로에게 &lsquo
키 작은 평화 /박일환 몽골 초원에선 키를 낮춰야 한다 아름다운 풀꽃들도 함부로 키를 높이지 않고 땅과 가까이서 붙어서 산다 그게 바람을 경배하는 자세임을 오래전부터 터득한 양과 염소들도 온종일 고개를 땅으로 향한 채 키 작은 평화를 제 입에 밀어 넣고 있으니 높아지기보다 넓어지려 애써 온 초원의 시간이 지금껏 달려온 사람의 발자국을 지우고 있다 -시집 ‘지는 싸움’(애지, 2013)에서 평화를 잃은 지 오래다. 모두 웃자라 키 큰 면모를 자랑하지만 내면은 연약하기 그지없다. 남을 누르고 높아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시간들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언 앞에 고개 떨군다. 몽골에 있는 평화를 이 땅에서 찾을 수 없다는 절망에 하루하루 서럽다. 발밑에 낮게 숨 쉬고 있는 작은 목숨을 생각하며 조심조심 살아가야겠다는 바람 소리를 시 속에서 들었다.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