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팅목장갑 /이장근 작업을 마치고 벗어놓은 너덜너덜한 코팅목장갑 붉은 손바닥에도 손금이 있다 손바닥 가운데를 가로지른 굵은 지능선 위에 평행 맞춰 시원스럽게 뻗은 감정선 잘은 몰라도 똑똑하고 따뜻한 사람이겠다 새끼손가락 밑에 보일락 말락 수줍게 그어진 결혼선까지 소꿉놀이하듯 알콩달콩 살겠지 그런데 세로 선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중략- 운명도 돈도 생명도 모르게 작업을 마치고 장갑을 빠져나간 손 탈피하듯 허물을 벗어놓고 떠난 하루살이의 날아간 자리를 가늠해본다 붉게 펼쳐진 노을 위로 새가 난다 하루치 손금을 긋는다 출처-이장근 시집 꿘투-2011년 삶이보이는창 손바닥을 살짝 펴면 손금들이 펼쳐진다. 수많은 줄무늬로 이루어진 잔금들로 우리의 운명을 확실하게 점쳐볼 수 있을까? 그러나 시인의 눈은 손바닥의 손금이 아니라 코팅목장갑 붉은 손바닥 위에 새겨진 손금을 보고 있다. 코팅목장갑 손금들이 시원스럽게 연결되어야 하는데, 가만 보니 “감정선”과 “수줍게 그어진 결혼선”까지는 있는데 세로선이 보이지 않는다. 운명선과 재물선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둘이 없다고 해도 하다못해 “생명선&rdquo
그녀는 걸었다 /황인숙 그녀는 걸었다, 긴 복도를 링거병을 끌고 졸음에 취한 나를 끌고 걸음, 걸음, 걸음, 문 닫힌 병동의 밤이 긴 복도 그녀는 쫓기듯 걸었다, 쫓기듯 아니, 그녀는 걸었다, 걸음, 걸음, 걸음, 자기의 걸음을 견디면서 자기의 걸음을 즐기면서 자기의 걸음을 확인하면서 걸음, 걸음, 걸음, 창백한 형광등 그녀의 걸음이 가득한 복도 그녀는 걸었다, 유령같은 나를 끌고 걸음, 걸음, 걸음, 그녀는 걸었다 그녀는 걸었다. 출처- 『자명한 산책』 / 문학과 지성사 2003년 비 오는 아침이다. 길 위에 물방울들이 탁 탁 쉼표를 찍듯이 걸음, 걸음을 내딛고 있다.머지않아 봄꽃들도 걸음, 걸음을 내딛고 세상 밖으로 나올 것만 같다. 아이가 화장대 모서리를 붙잡고 일어서서 한 걸음 내디딜 때의 경이와 탄성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두 다리로만 걷는 것 같아도 양팔의 조응으로 더 안전한 걸음, 뇌와 혈류의 지원으로 힘찬 걸음, 실은 온몸 온 마음으로 걷는 것이 걸음이다. 시속에는 17개의 쉼표와 한 개의 마침표가 있다. 걸음,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 살아있다는 확증이다. 투덜거리면서도 걷고, 울면서도 걷고, 꿈속에서도 걷고, 밥 먹으면서도 걷는다.…
백마는 가자 울고 /윤형돈 추억을 견인하러 갑니다 주차한 세월이 너무 길어 한 떼거리의 슬픔과 한 종지의 아침이슬을 마시고 갑니다 교외선 열차가 백마역쯤에 닿으면 녹슬어버린 화사랑 -중략- 마른 씨앗이 된 박제 가슴을 누군가 허브농장에 옮겨 심어 놓았군요 이번 겨울이 올 때 까지만 어딘가 꿀 풀 속에 숨어 있을 로즈마리 여인을 기다려보려구요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 데 남루한 유행가처럼. 시인의 안부가 아주 멀다. 정보통신 시대의 창은 예민하지만, 홍수 속 대화는 짧아진 전자매체뿐 아니다. 인간적인 절차가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랑의 안부를 전하기도 어렵지 않은 시대지만 닿을 듯 손에 들어오지 않는 사랑의 연애는 살아있는 동안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정리할 일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살아가면서 부탁할 일도 많아진다. 가벼워지려면 더 많은 것이 걸리고, 익숙한 시들의 노래는 만나보니 머릿속을 맴돈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은 몰랐던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만남과 안부의 노래는 여전하게 사랑스럽기만 할 것이다. 시인의 무게가 느껴진 날 앰프 음성이 사랑과 대화 속 이야기들이 전해주고 전위된 몸속 가슴앓이처럼 오버랩 되는 순간 무상한 정적한…
좋은 날 /천양희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 새들이 언제 허공에 길 있다고 발자국 남기겠습니까 바람이 언제 정처 없다고 머물겠습니까 강물이 언제 바쁘다고 거슬러 오르겠습니까 벼들이 언제 익었다고 고개 숙이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해 지는 줄 모르고 팽이를 돌리고 있습니다 햇살이 아이들 어깨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진장 좋은 날입니다 -천양희 시집 ‘너무 많은 입’ / 창작과 비평사 펼쳐진 풍경을 보는 일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 자연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좋다”로 전이될 때 우리에게 전달되는 감정은 배가된다. “다투”어 피려고 경쟁하거나 “발자국”을 남기려고 악착같이 하나 더 얻으려는 많은 이름들의 욕망들. “좋은날”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거슬러”오르는 일 없이 순리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벼들”처럼 겸손하게 살 일이다. /권오영
봉숭아 꽃물 /박해성 아홉 살 돌팔매가 잔별로 뜬 새벽 두 시 모닥불 약쑥 연기 진양조로 흔들리면 제풀에 불콰해졌지, 꽃잎파리 싸맨 손톱 손톱이며 가슴까지 으깬 꽃잎 동여매고 초경보다 더 붉게, 붉게 젖어 타던 속내 어머니 혼불 지피셨지, 손가락 끝 끝마다 -박해성 시집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 중에서 사춘기의 여름은 봉숭아꽃물로 절정에 이른다. 대개는 어머니 손에 의해 물들이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어머니는 모깃불 피워놓은 마루에 앉아 짓이긴 봉숭아꽃잎을 성장한 딸의 손톱에 정성들여 싸매준다. 하룻밤 자고나면 이튿날 아침 손톱에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롭고 아름다운 빛깔이 물들어 있게 된다. 어떤 이는 발톱에까지 곱게 물들인다. 누이의 손톱에 물들여진 봉숭아꽃물을 훔쳐보며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사춘기를 보내지 않은 대한민국의 남성은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사춘기는 건강하게 자랐으며, 에너지 넘치는 청년기로 들어설 수 있었다. 봉숭아꽃물의 어떤 속성이 우리를 설레게 만들었을까. 붉은 봉숭아꽃물은 강렬한 젊음의 징표이고 상징이며 전유물이다. 건강한 생명의 미래를 열어가는 성에너지의 무한 표출이다.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순례:11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출처 - 오규원 시집 『순례』- 1997년 문학동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명구를 남긴 순례 시편 중 하나. 빈 들에 혼자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시간들, 늘 시끄럽고 와글거리는 내면의 소리들에 휘둘릴 때 빈 들에 가서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로 바람을 맞아보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오늘도 바람이 부는가. 살아봐야겠다.
숲속에 누워 나무의 사랑을 이야기 하다 /이경렬 엉켜 있어 보여도 서로 붙잡고 있지 않았구나 욕심처럼 붙잡고 있지 않아서 서로 바라볼 수 있구나 이만치의 거리로 바라보아서 서로 마음을 줄 수 있구나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어서 서로 기댈 수가 있구나 닿을 듯 기댈 수 있어서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구나 시인은 산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은 인생과 삶의 축약본이겠지만 여행에서 서로마주하고 치유를 하기도 한다. 산을 오를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내려올 때 보인다하지 않은가, 시인이 겪는 교단의 고달픈 단상과 천진무구한 자연학교에서 정리해야 하는 순환의 질서를 밟으며,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 깊어간다. 삶을 계획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내안의 욕망과 욕심이란 굴레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지속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일상과 충돌이 수반한다. 결국 시인은 산행에서 지리멸렬한 삶을 벗어나려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 여행은 언제든 그만둘 수도 있지만, 삶은 그럴 수 없다. 버리고, 지우며 살아가려는 지나가는 인생열차에서, 문학의 길에서 돌아보니 비로소 보이는 쓸쓸함일지라도 가장 인간적인 마음과 情이 많은, 사람 좋은 시인은 회상의 늪으로 서 있는 듯, 하지만 그래서
소풍 /박병두 갓바위로 소풍 가면 술래잡기, 보물찾기를 하다가 비를 맞아 젖은 도시락 먹으며 우정을 키웠다. 교련복을 입고 행군하여 우황리 앞바다에 도착하면 무거운 혁대 벗고 수통의 꼭지 열어 바닷바람을 맞고 땀을 식혔다. 부글부글 국물이 끓는 포장마차에서 떠나간 여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는 사연을 키우고 추억을 남겼다. 곤곤한 술기운들로 무서운 화학선생님 곁으로 소주잔 건네면, 봄날의 소풍은 만점이 되었다. 이별하고 싶지 않은 그리운 것들이여, 공룡화석이 남아 있는 그곳은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서울사람들을 불러모은다. 기러기들이 떼를 이루던 우황리 해변 그곳으로 소풍 가고 싶다. -리토피아 겨울호에서 소풍 가는 날이 기다려지던 시절도 있었다. 만국기 휘날리는 교정에서의 운동회도 추억 중의 추억이지만 먼 들길 산길 걸어 걸어서 계절의 자연 속으로 뛰어드는 소풍도 나름대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온갖 장사꾼들이 동행하여 모처럼 마음껏 군것질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으니 어린 마음에 그보다 더 좋은 날이 또 있으랴. 다 자란 후에 그 시절 소풍지를 돌아보면 대부분은 씁쓸하다. 특히 어린이들이 줄어들어 시골이 피폐해지면서 문 닫은 초등학교도 있는 판이니…
渡易水 역수를 건너며 -荊軻형가 風蕭蕭兮易水寒(풍소소혜역수한)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구나 壯士一去兮不復還(장사일거혜불부환) 대장부 한번 떠나면 다시 오지 않으리 探虎穴兮入蛟宮(탐호혈혜입교궁) 호랑이 굴을 찾아서 이무기 궁으로 들어가네 仰天噓氣成白虹(앙천허기성백홍) 하늘을 우러른 외침이 흰 무지개를 이루었구나 형가는 협객이나 자객의 대명사로 불린다. 자기를 믿어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불사하는 충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연나라 사람으로 진시황을 암살하고자 태자 단의 부탁으로 장도에 오를 때 읊은 시이다. 얼마나 비장했으면 곡을 듣는 이들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겠는가. 끝내 암살에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두 다리가 잘리고도 비수를 던졌으나 기둥에 박히고 만다. 형가라는 이름은 현대인들이 함부로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이름이 되었다. 살아 그런 친구 하나 만나거나 그런 이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조길성 시인
동태국 끓이는 저녁 /최기순 부엌 창문으로 내다보는 가로등 둥그런 불빛 속으로 눈이 쌓인다 흩날리는 눈발 속은 아득해서 눈보라 벌판에 까만 점같이 죽은 할머니가 동태 몇 마리 사들고 걸어온다 눈은 펄펄 날리고 동태국은 국솥에서 하염없이 끓고 다시 어린 내가 부엌문에 꼭 붙어 서서 아랫마을 장기 두러 간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온 집안 동태국 끓는 냄새 구수하고 며칠 전 사십구재를 지낸 숙부도 돌아와 장작을 팬다 쭉쭉 찢어놓는 나무의 속살은 푹 익은 살코기 같아 어머니도 생전에 쓰던 자루가 긴 국자를 들었다가 놓는다 출처- 시집 『음표들의 집』 / 2012년 푸른사상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지상의 동태국에서는 김이 오르고 그 사이에 화자(사람)가 있다. 삼중물의 어우러짐이 안전한 구도를 보여준다. 마들렌 과자처럼 동태국 끓이는 저녁이, 칼칼하고 얼큰한 국 냄새가 오래전의 시간과 공간속으로 손을 잡아끈다. 아니 오래전의 시간과 공간이 지금 이 순간 막 도착한 것이다. 그 시공간 속으로 죽은 할머니와 죽은 할아버지와 죽은 숙부와 어머니까지 불러내는 군고구마처럼 달큰하고 따뜻한 저녁이다. 모든 생명들을 살게 하고 연결시키고 집합시키는 음식의 힘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