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소송에서 사실관계를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하는 판사가 판결문을 쓰느라고 사건 소송서류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면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실제로 하는 집단이 있다. 언론인을 자임하는 상당수 언론사 취재기자가 그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기사를 쓰느라 취재를 할 시간이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논리의 모순이고 궤변이며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기사가 취재의 토대 위에서 작성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기자 초년 시절 수습기간을 거치게 하고 경찰서와 병원, 사건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서 현장감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도록 하는 훈련을 받는 것도 충실한 취재와 엄밀한 확인의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 아닌가? 그런데 요즘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통해서 보다는 사이..
‘대선개입·해킹 의혹’ 등으로 최악의 관계를 보여온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16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바이든과 푸틴 대통령은 양국 갈등으로 귀국한 대사들을 다시 모스크바와 워싱턴으로 복귀시키기로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후 “현재의 상황에서 가족같은 신뢰는 있을 수 없지만 신뢰의 섬광은 비쳤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중간 대치 전선의 시계가 현란하게 돌아가고 있다. 앞서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이어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국제질서에 대한 구조적 도전”이라며 처음으로 대중국 공동 대응을 천명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신(新) 대서양헌장’을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과 윈스..
‘식이위천(食以爲天)’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뜻이다. 먹는 것이 가치보다 중요한가. 북쪽에서 공식 인정한 ‘고난의 행군’으로 불렸던 1994년~1998년은 먹거리가 가치보다 우선했다. 기아(飢餓)가 개인의 일상을 덮치고 존재도 알지 못했던 장마당이 갑자기 늘어났다. 역전 골목과 길거리에 먹거리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대용식품이 생겨나고 거친 것과 부드러운 먹거리는 수요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렸다. 처음에는 소나무 껍질을 가공한 것과 각종 나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중국의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빵이며 기름에 튀긴 완자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빵 하나에 집을 내놓은 사람도 있으니 어려운 시기 음식은 곧 하늘이다. 하늘같은 음식을 얻으려고 사람들은 갖가지 먹거리를 개발했다. 북쪽에서는 콩을 많이 심는다. 논두렁이나 산에 노란 두부콩을 심어 두부를 앗아 부식으로 먹는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 이전에도 두부를 만들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맛 보다는 허기를 채우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 두부는 소화가 빠른 가격대비 비싼 고급음식이었다. 두부 한모 보다는 중국에서 들어온 밀가루로 만든 완자나 꽈배기가 보다 저렴했다. 당시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동시에 가진 영양가 있는 먹거리가 필요했다. 수요를 알아챈 사람들이 만든 것이 두부밥이다. 두부밥은 두부를 삼각으로 잘라 기름에 튀거나 구워서 가운데 칼집을 내고 쌀밥을 한주먹 넣고 양념을 올리는 것이다. 두부밥은 한 개를 먹어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어려운 시기 개발된 영양만점 음식이다. ‘고난의 행군’시기 생겨난 대중음식으로 지금도 사랑받는 인조고기밥이 있다. 인조고기는 국가의 정책으로 대용식품을 장려하던 시기 생겼다. 북쪽의 영화 ‘자강도 사람들’에서도 대용식품이 나온다. 심지어는 굶어죽은 사람도 과감히 보여준다. 음식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는 가치를 놓치지 않은, 그 시기를 말하고 싶은 국가의 선전용에 불과하다. 드러나지 않은 많은 사실들이 깔려 있음에도 전후 남쪽에서 국민음식으로 사랑받았던 것에 못지않은 먹거리들이 개발되었다. 인조고기는 콩으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것이다. 기계와 콩찌꺼기의 화학적 과정을 거쳐 재탄생된 인조고기는 맛이 부두럽고 단백질이 풍부하다. 고기와 맞먹는다고 해서 인조고기다. 고기를 섭취 못하는 스님의 식탁에 올랐던 인조고기가 어려운 시기 대중음식으로 재탄생 한것이다. 먹는 것이 곧 하늘이었던 시기에 먹는 것은 가치보다 중요했다.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다양한 음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 시기 생겨난 두부밥, 인조고기밥은 맛과 멋을 모두 갖춘 역사의 시간에 남겨진 추억의 음식이다. 어려운 시기를 아프지 않게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양념을 올린 한 개의 두부밥, 인조고기밥을 그 때처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이상반응 없는지 대기하셨다가 안내사항 받고 가시면 됩니다.” 잔여백신 당일예약에 성공했다. 스마트폰 앱에서 잔여백신 조회와 당일예약을 반복했는데 드디어 잡았다. 얀센이냐 아스트라제네카냐 가릴 여유는 없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105일 만에 접종자 수가 1000만 명을 넘겼다. 국민 5명중 1명이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했다. 나도 먼저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잔여백신은 사전예약자가 접종 당일 예약을 취소하거나 최소 잔여형 주사기를 사용했을 때 추가로 생기는 물량이다. 잔여백신 안내를 예약해둔 병원에서 알림이 오기 전에 지도에 뜬 표시를 보자마자 클릭했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운영 종료시간이 저녁 6시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예방접종 예진표를 써서 접수했다. 정보 수신 동의에 ‘예..
홍범도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다. 1868년 평양의 서문 밖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머슴, 군인, 종이공장 노동자, 승려, 포수, 의병, 광산 노동자, 독립군, 농부, 부두 노동자, 혁명가의 삶을 살았고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 그가 한 일은 수없이 많지만 한 단어로 그를 규정해야 한다면 독립군일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 그보다 더 많이 일본군과 싸우고 그보다 더 크게 일본군을 이긴 사람은 없었다. 27세에 강원도 단발령에서 황해도 출신의 동지 김수협과 함께 일본군 12명을 처단한 이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52세까지 그는 싸우고 또 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가족 모두를 잃었다. 아내는 일제의 고문으로 죽고, 큰아들 양순은 그와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 열일곱 살 나이에 전사했다. 작은아들 용환은 그와 함께 만주를 유랑..
1. 천하일통 금계국 아침저녁으로 걷는 반석천엔 시방 금계국과 개망초 천국이다. 노란 금계국에 하얀 개망초가 제법 근사한데, 볼 때마다 끌탕 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금계국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인 이 꽃은 이르면 오월 중순부터 팔월까지 오래도록 노란 꽃을 피운다. 국화과 식물이 대개 그렇듯이 해열 효과가 있고, 부종을 제거하고, 간열을 내리는 데도 쓸 수 있지만, 한약재로 널리 쓰이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 금계국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는 점.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월동해 다음 해에도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라서일까, 번식력이 강해서 아무 땅에 심어도 잘 자라기 때문일까, 남도 해안가에서 경기도 천변, 강원도 국도변까지 금계국 천지다. 그야말로 야생화 끝판왕으로 전국을 뒤덮고 있는데, 실은 우리나라 식물 생..
코로나19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생계형 서민체납자가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업부도나 휴·폐업, 실직 등의 경제사정으로 재산이 없고 소득도 없는 체납자들은 세금을 내기가 어렵다. 세금 뿐 아니라 공공요금도 못내는 이들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에 따르면 주택용 전력 체납액도 지난해 말 기준 138억 원에서 올 4월 기준 143억원으로 5억원 늘었다고 한다. 이의원은 코로나19로 인해 가계 사정이 어려워진 탓으로 보고 있다. 이에 경기도는 생계형 체납자 2000여명을 발굴해 이 중 절반을 복지 서비스에 연계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생계형 체납자의 압박감을 덜고 희망을 주기위한 조치다. 반면에 고액 악성 체납자는 철저히 추적해 징수하거나 압류 등의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도는 ‘세금 체납은 공동체 질서를 해치는 불공정’이라며 징수..
사회 질서의 개선은 도덕적 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이렇게 붓을 들고 있는 방의 창문 밖으로, 코에 코뚜레가 꿰여 말뚝에 매어 있는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보인다. 소는 풀을 뜯어먹다가 저도 모르게 자신이 매여 있는 고삐를 말뚝에 감아버렸다. 소담스럽게 자란 풀을 눈앞에 두고도 배를 주리고 어깨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기 위해 목을 흔들지도 못한 채 죄수처럼 가만히 서 있다. 그는 몇 번이나 빠져나갈 양으로 몸부림쳐보지만, 그때마다 슬픈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지금은 얌전해져서 조용히 괴로워하고 있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이해할 만한 자각도 없이, 많은 풀 앞에서 배를 주리며 지극히 연약한 생물에게 비참하게 당하고 있는 이 소의 모습은, 내 눈에는 마치 노동자들의 상징처럼 비친다. 모든 나라에서 땀을 흘..
오는 2050년쯤이면 미세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해 서해의 4분의 1 이상이 해양생물들이 살기 어려운 ‘죽음의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와 주목된다. 불과 30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계자연기금(WWF)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1인당 매주 평균 5g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신용카드 한 장과 맞먹는 미세플라스틱을 매 주일 섭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세플라스틱 공해의 심각성이 극에 달해 드디어 말로 떠들기만 해도 되는 시간이 다 지나간 것이다. 대책을 세우고 즉각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벨기에와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환경학자들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말 전 세계 바다의 미세플라스틱 위험도를 평가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환경오염(Environmental Pollution)’에 발표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지름..
창업활동은 경제성장정책과 산업정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성장동력이며, 여기에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이 곁들여져 국가 경제의 역동성이 결정되게 된다. 창업활동의 강력한 엔진이라 할 수 있는 혁신활동을 기반으로 창업 스토리를 잘 정리하고,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적가치와 경제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사업화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 기업 경영에 있어 전략적 선택과 균형잡기는 창업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될지, 회피 대상으로 위험을 바라볼지 아니면 기회로 삼을지, 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경제 또는 전통적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사이 어느 위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