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정의당을, 나는 민주당을 찍었습니다. 촛불 혁명 이후 말입니다. 형과 나는 동시에 낙망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맘 둘 정당이 없다고 씁쓸해했습니다. 형은 정의당이 대학 동아리보다 못하다고 혀를 끌끌 찼고, 나는 민주당이 무능력한데다 새로움이 없다고 분개했습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실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우리는 비판했습니다. 그 말에 따르면 정치는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허망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무한 시장 경쟁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있는 그대로 본 노 전 대통령의 솔직한 심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권력은 과연 시장으로 넘어갔을까요? 정치는 하위범주일까요? 정치는 경제를 변화시킬 수 없는 걸까요? 전 세계적 현상인 살인적 경제 양극화는 조금이라도 좁힐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일까요..
경찰이 지난달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 비리 의혹 수사 중 성남 수진·신흥 재개발 지구 일대에서 투기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잇따라 터져 나오는 LH 직원들의 신도시 관련 사전정보취득·토지매입 소식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투기 관련자들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에도 ‘제 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례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2018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솜방망이 처벌만 했다. 지난 3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2020년 12월 LH 감사결과 처분보고서 및 관련자료’에 따르면 LH는 2018년 고양·원흥지구 개발도면을 유출한 직원..
찹쌀 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함경도 아바이 순대를 떠올린다. 그러나 현재 북쪽에는 함경도 지역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바이 순대’는 없다. 다만 육류와 어류로 만든 돼지순대와 명태순대라는 이름으로 지역에서 사용하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돼지순대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명태순대는 함경도 고향에서는 대중화된 음식이다. 남쪽에서는 1960년대 돼지고기를 수출했는데 내장은 수출할 수 없어 이때부터 순대는 일반인들도 쉽게 사먹을 수 있는 대중음식이 되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경기도 우시장이 있었던 곳에는 용인백암순대, 한약집산지인 제천에는 한방순대, 지역의 재료를 사용한 천안병천순대가 있다. 당면을 넣은 돼지순대가 국민음식으로 인기가 있을 때 함경도 ‘아바이순대’는 찹쌀과 선지, 채소를 넣어 손이 많이 가는 고급음..
말을 못하는 곳이 감옥(監獄)이다. 옥살이를 뜻하는 옥(獄)은, 두 마리의 개(犭, 犬)가 말(言)을 못하게 감시하는 모양새이다. 한자가 처음 만들어질 때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옥살이를 하는 죄인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교도소에서는 감방을 나눠 죄수를 가두고 말을 통제한다. 한자에 새겨진 두 마리 개의 역할은 벽과 철문과 쇠창살과 감시카메라가 대신한다. 감방은 잠을 자는 밤에도 전등이 꺼지지 않는다. 전등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감방에는 없다. 감방을 감시하는 전등 불빛은 취침이나 기상나팔과 상관없이 하루 스물네 시간 감방을 비춘다. 감옥살이는 말을 빼앗김으로 시작된다. 말과 함께 이름도 사라진다. 사라진 이름을 대신하는 것은 죄수 번호인데, 면회와 편지와 진료와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없고 번호만 살아 숨 쉬는 곳이 감옥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정치권의 신진돌풍 ‘이준석 태풍’에 ‘꼰대 정치’가 외통수에 걸려 전전긍긍하고 있군요.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서 본선에 오른 5명의 후보 중에서 내로라하는 다선(多選) 경력 정치인들이 36세의 청년 이준석 하나를 어찌하지 못해 쩔쩔매는 중이네요. 이준석은 지난달 28일 열린 예비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1위 테이프를 끊었어요.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51%, 당원 여론조사에서 31%의 지지를 얻은 겁니다. 이준석 돌개바람은 예비경선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더 거세어지고 있네요. 여론조사업체 PNR리서치가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로 실시해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무려 40.7%가 이준석을 차기 국민의힘 당 대표에 적합한 인물로 꼽았군요. 2위인 나경원 전 의원(19.5%)과의 격차는 무려 21.2%포인트에 달하네요. 예비..
초등학교에서 보통 성교육은 보건 교사가 한다. 5학년 교육과정에 성교육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포함한 몇 차시 정도를 보건 선생님께서 수업해주신다. 덕분에 담임 교사가 직접 성과 관련된 가르치는 일이 흔치는 않다. 담임 교사 본인의 의지가 있어서 손수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하면 창체 시간을 이용해서 가르칠 수 있다. 그렇지만 굳이, 싶은 마음이 들어 포기했었다. 얼마 전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성교육을 해봤다. 6학년이라 교육과정에 자세한 내용이 없는데 여학생들에게 생리팬티 기부 제안이 들어와서 겸사겸사 진행했다. 처음엔 성교육 그거 뭐 별거라고 그냥 하는 거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공작새 깃털처럼 부풀어 있던 자신감은 교육 자료를 정리하면서 폭삭 쪼그라들었다. 13살은 이성에 한참 관심이 많을 나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느 정..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락을 중요하지 않은 것, 심지어는 일부 정통을 주장하는 종교인들의 경우와 같이 좋지 않은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락은 노동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이여 노동에 대한 대가이다. 오락을 통해 기분전환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락이 좋지 않은 것은 첫째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억지로 하게 하는 경우, 둘째는 오락이 치열한 경쟁으로 바뀌는 경우, 셋째는 오락이 오직 소수자들만을 위한 경우이다. 그리 나쁜 일(나쁜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지만)도 아니고,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며, 오히려 좋은 일을 하고 건전한 오락에 빠져 있을 때도, 어떠한 즐거움이나 일보다 더 중요한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양심이 다른 것을 요구하거나 현재 하기 시작한 일을 그만두라고 명령한다면, 우리는 모든 걸 즉시 그만두어야 한다..
지난 5월 27일 국회에서는 포털 알고리즘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포털의 뉴스관련 알고리즘을 매년 정부와 국회에 제출토록 하는 강제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대부분 참석자들은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현재 국내 온라인 뉴스 유통을 복점(duopoly)하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 측은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공개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포털의 ‘뉴스 편향노출’ 시비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7년 17대 대선 때, 대선미디어연대는 언론개혁 과제 중의 하나로 포털의 뉴스 편향성 시정을 꼽은 바 있다. 이후에도 포털의 미디어 생태계 파괴와 특정 언론 중심의 뉴스 노출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었다. 문제는, 편향성과 관련하여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잡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지난 3월 9일 MBC ‘스..
정부는 자동차의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안전속도 5030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정책은 도심지역 내의 기본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50km로 제한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역 내에서는 시속 30km로 속도를 제한함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사전 조사로 2017년 부산에서 효과 분석을 실시하였다. 결과 분석에 따르면 제한 속도를 10km 낮춤으로 인해 사망자는 24.2% 감소, 보행사고 사망자는 37.5%가 감소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시행 5년 전과 시행 5년 후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이루어졌는데,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하는 정책이 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도심 내의 모든 도로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도시지역 내에서도 일반도로의 경우 50km..
내 인생 초반부는 참으로 비겁했다. 나 혼자만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남의 등을 밟고 올라서려고 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존재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실이니 정의니 하는 것은 관심도 없었다. 불의를 보고도 내가 당하는 일이 아니면 피해갔다. 비겁한 인생이었다. 1980년 5월 어느 날 처음으로 광주시민군을 목포에서 만났다. 갑자기 상가의 셔터 문들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허둥지둥 골목으로 피했다. 무슨 총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큰 태극기를 휘날리며 택시 두 대가 앞장서고 광주 현대운수 시내버스 두 대가 목포 중앙도로를 지나갔다. 시민군은 버스 유리창에 칼빈 총을 들고 앉아 있었다. 나는 급히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시민군이 뭐라고 외쳤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김대중을 석방하라!” 라는 외침은 또렷하게 들렸다. 다들 몸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