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유튜브, 넷플릭스에 이어 아마존,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와 같은 미국산 글로벌 미디어들이 속속 국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우리의 눈길을 잡기 위한 무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닥치는 대로 데이터를 끌어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정교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기업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페이스북을 하다보면 그저 그런 상업 광고와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유사 정보가 ‘사람사는 이야기’를 압도한다. 유튜브에 한번 들어가면 꼬리를 무는 ‘핫한’ 영상을 보느라 늪에 빠진 듯 정신 줄을 놓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뉴스나 정보 검색, 쇼핑과 관련이 있는 포털과 손절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중독 상태라는 진단도 있다. 사실 다수의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것이 ‘미디어 제..
내년 제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한국 정치에 모처럼 의미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당 대표를 뽑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세대교체론과 함께 유례없이 주목을 받았다. 변화와 쇄신을 갈망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야당의 당권 경쟁에 표출됐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9일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우당과 그 가족의 삶은 엄혹한 망국의 상황에서 정말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를 생생하게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당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부동산 불법 의혹 대상으로 통보받은 소속의원 12명 전원에 대해 탈당 권유 조치를 내렸다.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가 ‘관평원 유령청사’, 인사청문회에서 드러..
진정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 밖에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생명의 현상을 바꿀 수 있을 뿐, 결코 생명 자체를 멸망시킬 수는 없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음이 있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죽으면서 자기가 멸망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은 영원히 존재를 유지한다. (노자) 나는 현존하는 모든 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의 전승과 교육의 영향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의심 받을 이유가 없다. 나는 평생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깊이, 우리의 삶의 법칙에 대해 생각해 왔다. 나는 그것을 인류의 역사와 나 자신의 의식 속에서 탐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도달했다. 즉,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생명은 원래 영원한 것이어야 하며, 늘 그 자리에 있으며 변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법칙이라는 것, 내 안의 모든 능력과 모든 사상, 모든 요구는 실천을 통해 살려야 한다는 것, 우리 안에는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넘어서는 높은 사상과 동경이 있다는 것, 우리 안에 있는 그러한 동경은 우리의 감성을 통해 그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런 사실들이야 말로, 그것이 세상 밖에 있는 세계에서 우리 안에 들어왔으며, 세상 밖에서만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멸망하는 것은 온갖 형태뿐이며, 우리의 육체가 소멸하니까 우리의 생명도 소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노동자가 사용하는 연장이 닳아서 못쓰게 되었다고 해서 노동자도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주세페 마치니) 네 영혼 속에 있는, 스스로를 불멸의 존재로 의식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분에 의해 살라. 영혼 속의 그 부분은 바로 사랑이다. 참 계명이 어디서 옵니까? 하늘에서 오지요. 그러나 하늘이 어딥니까? 머리를 들어 인간 살육을 하는 전투기의 폭음에 떠는 저 푸른 하늘을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하늘은 맘속에 있습니다. 정신이 하늘입니다. 누구의 마음 무슨 정신입니까? 누구도 없고 무엇도 없습니다. 그저 정신이 있고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뜻이 있어 정신이 있고 정신이 있어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어 너와 내가 있지, 너와 내가 있어서 생각을 해낸 것이 아닙니다. 그 뜻, 그 정신은 자꾸만 새롭게 자라는 것입니다. (함석헌)/ 주요 출처 :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일본이 기본소득제에 관심을 갖은 건 최근. 2001년 사회학자 다케가와(武川 正吾)는 학생들이 기본소득을 공부할 수 있도록 ‘사회정책 교과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처음 5년간,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발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06년 이후부터 상황은 반전해 기본소득제 연구가 활발해졌고, 2010년까지 출판된 논문은 108개나 됐다. 특히 야마모리(山森 亮) 교수는 《기본소득 입문(ベーシック・インカム入門)》을 출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금상첨화로 2010년 “기본소득 일본네트워크(BIJN)”가 창설됐다. 이때부터 일본 정치권은 기본소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010년 참의원선거에서 신당일본(新党日本)이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거론했고, 모두의당(みんなの党)은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기..
사법부가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아무리 사회가 썩어도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사법부가 살아 있다면 그 사회의 건강성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비난하면서도 그래도 초대 사법부 수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의 행적을 기억하고 또 죽산 조봉암에게 양심적 판결을 내렸던 유병진 판사와 법복을 입은 성자였던 김홍섭 판사를 떠올리며 “그래도 그 시절 믿을 곳은 있었어”하는 위안을 삼는 것처럼 말이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존경받는 판사의 계보는 누가 잇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면 마지막으로 하소연할 곳이 사법부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사법부는 국민의 기대보다는 권력에 기대고 최근 들어서는 돈의 위력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소송한 지 6년 만에 열린 재판에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나왔다. 이미 두 차례나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피해를 인정받은 일제의 징용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했는데 판결 논리가 가관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국제사회는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 “강제동원의 불법성은 국내적 해석일뿐”,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한미동맹이 손상되어 안보가 위험해진다” 등 도무지 한국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주장들이다. 판사는 부끄러운지는 아는지 채 1분도 안 걸린 판결문 발표하고는 사법부의 높은 담장 안으로 숨어버렸다. 이제는 판사가 권력과 돈의 위력뿐 아니라 일본에 충성하고 의지하는 모습까지 봐야 하는가. 쾌재를 부르는 일본 극우파의 소식에 분통 터지는 것은 징용피해자들과 소식을 접한 국민이다. 원인은 친일의 논리가 아직 단죄와 응징되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단죄가 선언이라면 응징은 행동이다. 해방된 지 76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친일파가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것은 응징이라는 행동이 뒤따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교수, 언론인 그리고 판검사와 같은 지식인들은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과거를 합리화하기에 그 폐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크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단죄와 응징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과거청산에 성공한 나라들은 지식인을 숙청함으로써 역사적 응징과 함께 다시는 과거가 미화되는 논리가 나올 수 없게 한다. 그러나 6년을 기다린 피해자들의 소송에 응답한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응징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다. 영국의 총리였던 글래드스턴은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라틴어 원문은 LEX DILATIONES ABHORRET(렉스 딜라티오네스 압호렛)으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률용어이다. 판결한 김 판사는 읽어나 봤나 모르겠다.
정부는 2050탄소중립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 완전중단을 목표로 전기차 확대 보급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누적대수는 13만7636대로 2017년에 비해 5.5배나 증가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정부도 보조금 지급 등 친환경 자동차의 확대 보급을 위해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전기를 이용해 구동력을 얻으므로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연료비도 크게 저렴하다. 환경부의 자료에 따르면 속도를 높이지 않는 경우 화석연료보다 최대 10배 가까이 연료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따라서 전기차 시장은 급속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도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막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보다 관련 인프라다. 충전소와 폐배터리 처리 시설 등 기반 인프라는 많이 부족하다. 특히 충전소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전기차량이 증가하는 속도에 비해 충전소 설치 속도가 늦다. 이에 환경부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차 급속 충전기 1만 2000대, 완속 충전기 8만 4000대 등을 도입겠다고 밝혔다. 산업자원통상부도 의무설치 대상을 대형마트·백화점·대기업 소유건물·100세대 이상 아파트로 규정했다. 신축건물 의무설치 비율 현행 0.5%→2022년 5%, 기건축물 2022년 공공건물을 시작으로 2023년부터 민간건물에도 2% 설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경기도 역시 2030년까지 공용(완전 공개형) 전기차 충전기 규모를 약 10배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이와 관련 경기연구원은 과다하게 설치됐거나 충전량이 적은 곳은 설치량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실제 충전량보다 과소하게 설치된 곳을 우선 고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설치 과정에서 충전 수요를 고려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연구원은 최근 ‘경기도 전기차 충전기의 효율적 설치 및 운영 방안’ 보고서를 통해 설치지점과 시군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어긋난 ‘미스매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전기차는 지난해 2만477대였다. 공용 전기차 충전기는 7628기였는데 공공성과 설치 편의성 등을 주로 고려한 나머지 ‘수요 대응형’ 설치가 이뤄지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도내 공용 급속 전기차 충전기 설치지점별 비중은 상업시설(21.2%), 휴게시설(12.8%), 공공시설(12.7%) 등의 순이었지만 충전량은 다른 결과를 보였다. 설치지점 1위 상업시설은 충전량은 9위(5%)였다. 실제 수요보다 충전기가 과다 설치됐다는 얘기다. 31개 시・군별 설치 및 충전량 순위 비교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설치 비중 순위가 1위(7.8%)인 안산시의 충전량 비중 순위는 22위(2.3%)였다. 이에 연구원은 주유시설, 주차시설, 휴게시설 등 ‘이동거점’에 급속 충전기를 우선 확충해야 하라고 제안했다. 또 ‘생활거점’에 완속 충전기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확대보급을 위해서는 전기차가 많이 운행·충전되는 지역에 신속히 충전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을 수용하기 바란다.
내가 진료하는 한의원의 이름은, 말하자니 좀 쑥스러운데, 어느 작명소에서 지었다. 나의 진료공간을 시작한다는 두려움반 설레임반으로 소개받은 작명소를 찾아 작명해주는 분이 제안한 이름 여럿 중에서 부르기 쉬워보이는 ‘다강’으로 선택하였다. 생소한 조어라 그런지 개원하고 다강이라는 한의원이름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 “‘많을 다(多)’ ‘편안할 강(康)’ 으로 ‘강’자는 건강에서의 강자예요. 몸도 마음도 자신도 주변도 두루두루 다 편안하고 건강하라는 뜻이랍니다.” 라고 설명하면 정말 한의원 이름답다고 하며 끄덕끄덕했던 분들의 기억이 지나간다. 우리말에서 건강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굳세고(健) 편안함(康)으로 정신과 신체가 튼튼하고 온전할 때..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가 지난달 22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의 여파가 일파만파다. 여야 정치권과 국방부 등이 성범죄 근절 TF, 특위, 민간자문단 구성 등 뒷북을 치느라고 호들갑 떠는 익숙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인권문제가 그렇듯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비상벨’이 오작동하거나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되는 게 문제다. 특히 군문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지휘관에게 책임과 불이익이 과다하게 돌아가는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 개혁해야 할 과제가 다분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은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가 어떻게 불합리하게 다뤄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은 군 사법체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군사경찰이 이 중사 사건을 4월 7일..
오멸(吳滅. 본명 오경현) 감독이 영국産 오프로드 차 광고에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감독이 이 차를 타고 다닌다는 걸 앞세운다. 오멸이 짚차를 타고 제주 해변을 다니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얘기는 무엇일까.가 광고의 컨셉이다. 그건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실제로 놀랐던 것은 광고의 앞 부분이 영화 ‘지슬’의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지슬’은 제주 4.3 항쟁을 다룬 극영화이다. 광고는 한 아이가 동네 어른들이 피신해 있는 서귀포의 큰넓궤로 달려가 동굴 입구를 들여다 보는 장면을 보여 준다. 4·3이 광고에 나오다니. 그렇다면 4·3조차 상업화된 걸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4·3의 문제가 이제 그만큼 대중적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승만 정권과 그 이후의 반공 정권이 수십년간 좌익의 준동이니 좌파들의 난동이니 하며 온갖 흑색선전을 뿌려댔어도, 심지어 공적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하려 했어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이제 광고에까지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오멸감독 역시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했을 것이다. 광고 출연료도 짭짤했을 것이다. 그 돈은 그가 또 다른 독립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 변해 간다. 변해가는 세상에 대해 요즘엔 무릇 언론들이 전부 '이준석 돌풍'이 시그널이라며 침을 흘리듯 기사들을 써댄다. 하지만 이준석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환경운동가) 같은 친구가 아니다. 사람들이 툰베리에게 열광하고, 그녀를 지지하고, 심지어 이 아이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은 그녀가 16살에 불과해서가 아니다.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문제, 환경의 문제, 지역분쟁의 문제, 원전과 탈핵의 문제 등이 한결같이 씨줄날줄로 연결돼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16이라는 숫자를 뛰어 넘는 정치적 사회적 혜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의 간극을 무너뜨리는 공감의 정치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타칭 정치평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준석 청년 돌풍을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당들, 한국의 정치판이 배워야 한다. 이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들 입을 모은다. 본말이 전도된 한심한 논평들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물리적인 나이의 청년 정치가 아니다. 그걸 뛰어 넘는 ‘청년적’ 정치이다. 청년들, 특히 20대 남성들이 숱하게 보수화 돼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치의 유겐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우려스럽다. 이런 계층들이 사회를 주도한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고 다 낡은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고령이어도 청년적 이상을 여전히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를 청년화 하는 것이지 청년들을 시대화 하는 것, 시대에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다. 이준석이 청년정치를 올바로 가져 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왜 5·18 학살의 주범이고 연원을 더 거슬어 올라가 한국 쿠테다 역사의 원범인 정당에 들어가 있는지, 세월호 문제와 윤석열 항명 사태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태도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아마도 이준석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청년 정치가라는 라벨을 붙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하여, 정치평론가들이여 제발 그 입들을 다물라. 이준석이 청년 정치가 아니듯 윤석열은 공정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 그건 박근혜가 사실은, 여성’적’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그녀를 여성으로서 지지한다고 했던 건 무슨 무식의 발로인가. 소위 ‘이준석 돌풍’에서도 그 같은 무지함이 감지된다.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CF를 찍는 감독은 시대의 변화를 안다. 이제 오멸이 앞에 나서도, 지금 ‘지슬’을 앞장 세워도 이 광고가 세상에 먹힐 것이란 걸 안다. 그레타 툰베리도 자신이 어린 나이임에도 세상이 자기의 목소리에 귀기울 것이란 걸 안다.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진작에 감지했거나 자신에게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명분이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바로 그 지점을 회복해야 한다. 이준석의 정치활동에 돌풍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는 일은 제발 집어 치우고 그 안에 숨겨진 구악(舊惡)의 단말마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앙샹레짐(ancien régime)의 반동이 다소 세련되게 온 셈이다. 거기에 속아서는 안되는 언론들이 제일 먼저 속고 있다. 아니면 속고 있는 척 하거나. 통탄할 노릇이다.
중국 역사는 무궁무진의 스토리텔러다. 호기심도 제일이고 머리도 으뜸인 학자가 평생을 바쳤더라도, 그는 노년에 코끼리의 새끼발톱을 만진 인생이었다, 고 술회해야 할 것이다. 그 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순시대'라는 태평성세가 있었다. 4000-5000년 전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요'(堯)는 인류역사 5000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성군(聖君)이었다. 현대의 국가지도자들 중에는 역시 하나의 전설이 된 호세 무하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분은 아흔 살의 노인인데 아직도 1987년형 소형차를 운전하며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요임금을 성군으로 만든 또다른 업적은 아들에게 왕위를 승계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기에 최적의 인물을 찾아다녔다는 점이다. 그 큰 올바름이 또 하나의 신화가 되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동양세계의 정치사상과 시문학에..